성승
1. 개요
성승은 사육신 성삼문의 아버지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병마절제사, 중추원 부사 등을 역임하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세조를 제거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여 능지처참을 당했다. 숙종 때 사육신으로 복권되어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정조 때 좌찬성에 증직되고 장릉 충신단에 배향되었다.
-
사육신 -
사육신공원
사육신공원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조성된 공원이며, 사육신 묘, 의절사, 사육신역사관 등의 시설이 있다. -
사육신 -
하위지
하위지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38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으며, 세조 즉위 후 육조 직계제를 반대하다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처형된 사육신 중 한 명이다. -
1456년 사망 -
한확
한확은 조선 초 문신으로, 명나라 외교에서 활약하며 세종 대에 사신으로 공물 면제를 주청하고,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에 책록되어 우의정에 올랐으며, 세조의 명나라 책봉을 성사시키는 데 기여했으나 명나라로 가는 길에 사망했다. -
1456년 사망 -
순평군
순평군은 조선 정종의 서자로 순평군에 봉해졌으며, 순창 설씨와 혼인하여 자녀를 두고 유배, 파면, 복권 등의 사건을 겪었으며, 학문을 시작하여 효경을 배우고 사망하여 시호는 충간이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성승은 사육신 성삼문의 아버지이자, 생육신 성담수, 성담년의 아버지 성희와 사촌 형제간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1440년(세종 22) 경상도병마절제사로 부임하였고, 1446년 중추원 부사가 되었다. 1447년(세종 30)과 1451년(문종 1년)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453년(단종 1년) 도진무로 부임하였고, 1455년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강압으로 양위받자 말을 달려 집으로 돌아와 통곡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다.
2.1. 생애 초반
성승은 사육신 성삼문의 아버지이자, 생육신 성담수, 성담년의 아버지 성희와 사촌 형제간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1440년(세종 22) 경상도병마절제사로 부임하였다.
1446년 중추원 부사가 되었다. 1447년(세종 30) 중국에 파견되는 성절사(聖節使)에 임명되어 명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1451년(문종 1년) 명나라에 파견되는 정조사(正朝使)의 부사(副使)로 임명되어 다시 연경에 다녀왔다. 1453년(단종 1년) 도진무로 부임하였고, 1455년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강압으로 양위받자 말을 달려 집으로 돌아와 통곡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다.
2.2. 세조 반정 직후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의 왕위를 강압으로 양위받자 말을 달려 집으로 돌아와 통곡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다.
1455년 단종이 왕숙 수양대군을 추대하는 훈신들의 압력에 의해 양위하자 병을 핑계로 사퇴하였다. 세조의 회유책으로 지중추원사에 승진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고 이후 아들 성삼문, 박팽년, 류성원, 하위지, 이개, 김문기, 허조, 박쟁, 박중림 등과 함께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한다.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한 공신들을 축하하는 한 연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뒤 기회를 엿보던 중 1456년 6월 1일 세조가 상왕인 단종과 함께 명나라 사신을 위하여 창덕궁에서 큰 잔치를 여는 그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동지중추원사인 유응부와 당상(堂上) 무신인 박쟁과 함께, 왕의 뒤에 운검(雲劒)으로 섰다가 그 자리에서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하기로 계획하였다.
2.3. 거사 실패와 최후
1456년 6월 명나라에서 사신이 파견될 때 거사를 정하여 별운검으로 참여, 세조와 의경세자, 해양대군 삼부자의 목을 치기로 결정하였으나, 이를 눈치챈 신숙주, 한명회 등이 연회를 취소하고 조사하면서 체포되었다.
1456년 6월 7일 세조가 잔치의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운검을 폐지하라고 명을 내렸으므로 그날의 거사는 중지되고, 뒷날 임금이 곡식의 씨를 뿌리는 것을 관람하는 행사인 관가(觀稼)때에 다시 거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거사의 실패로 체포를 염려한 김질의 밀고로 발각됨에 따라 모의하던 이들과 함께 체포되어 그해 6월 8일 군기시 앞에서 능지처참형(凌遲處斬刑)을 당했다. 이때 그의 아들과 손자도 모두 죽음을 당했고, 조카들과 사촌 성희 등도 연좌되어 유배되었으며 아버지 성달생의 묘소는 석물을 뒤엎어버리고 부관참시되었다.
2.4. 사후
성승은 사육신 성삼문의 아버지이자, 생육신 성담수, 성담년의 아버지 성희와 사촌 형제간이다. 그의 상세한 행적이나 전기가 없는 이유는 당시 그의 혈족이 몰살되었기 때문이다. 숙종 때 사육신이 모두 복권되면서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정조 8년(1784년) 판서 엄숙(嚴璹)의 상소로 신원되고, 증 의정부좌찬성에 증직되었다. 단종의 묘소인 장릉(莊陵) 충신단에 배향되고, 홍주(洪州) 노운서원(魯雲書院), 공주의 동학사 숙모전(肅慕殿)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조부 | 성석용 | 성석린의 동생 |
| 종조부 | 성석린 | |
| 아버지 | 성달생 | |
| 어머니 | 풍양 조씨(趙氏) | 조운개(趙云价)의 딸 |
| 부인 | 죽산 박씨 | 박첨의 딸 |
| 아들 | 성삼빙 (? - 1456년) | |
| 며느리 | 의정(義貞) |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권개(權愷)의 노비가 됨 |
| 손자 | 성한 | |
| 아들 | 성삼문 (1418년 ~ 1456년 6월 8일) | |
| 며느리 | 신씨 | |
| 며느리 | 연안 김씨(延安金氏) | 김잉(仍)의 딸, 차산(次山) |
| 손자 | 성맹첨 (? - 1456년) | |
| 손자며느리 | 현비(現非) | 전균(田畇)의 노비가 됨 |
| 손자 | 성맹년 (? - 1456년) | |
| 손녀 | 성씨 | 성맹년의 딸, 유자미의 며느리 |
| 손자 | 성맹종 (? - 1456년) | |
| 딸 | 효옥 | 사육신 처형 당시 미혼으로, 노비가 됨 |
| 딸 | 성씨 (1439 ~ 1489) | |
| 사위 | 박림경 (1436 ~ 1485) | |
| 외손 | 박증 (1461 ~ 1517) | |
| 외손 | 박호 (1466 ~ 1533) | |
| 외손 | 박한 (? ~ ?) | |
| 딸 | 성씨 (? ~ ?) | |
| 외손 | 엄찬 | |
| 아들 | 성삼고 (? - 1456년) | |
| 며느리 | 김씨(金氏) | 김수손(金首孫)과 재혼, 이름은 사금(四今), 김련(金憐)의 딸, 김잉의 손녀 |
| 손녀 | 성씨 | |
| 아들 | 성삼성 (? - 1456년) | |
| 며느리 | 명수(命守) | 홍달손(洪達孫)의 노비가 됨 |
| 부인 | 미치(未致) | 계림군(雞林君) 이흥상(李興商)의 노비가 됨 |
| 첩 | 이름 미상 | |
| 서녀 | 성금(性今) | 신숙주(申叔舟)의 노비가 됨 |
| 서녀 | 옥동(玉童) | 박원형(朴元亨)의 노비가 됨 |
| 외할아버지 | 조운개(趙云价) | 조운흘의 동생, 본관은 풍양 |
| 장인 | 박첨(朴瞻) | 본관은 죽산 |
4. 묘소
그의 묘소는 두 곳이다. 사형 직후 누군가 시신을 수습하여 아들 성삼문과 함께 서울 노량진에 장사하였으나 실전되었고, 처가가 있던 충청남도 홍주(洪州) 노은동(홍성군 홍북면 노은동)에 본부인 죽산 박씨의 묘소와 쌍분으로 된 묘소가 있다. 홍성군에는 성삼문의 유허지와 함께 성삼문의 유품을 모신 가묘도 함께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