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이 S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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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호이 Su-7은 소련의 수호이 설계국에서 개발한 초음속 전선 전투기이다. 1950년대에 개발되어 다양한 파생형이 제작되었으며, Su-7A를 시작으로 Su-7B, Su-7BM, Su-7BKL, Su-7BMK, 훈련기 버전인 Su-7U 등이 생산되었다. Su-7은 지상 공격기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6일 전쟁, 욤 키푸르 전쟁 등에서 실전에 투입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수호이 Su-17 및 미코얀 MiG-27으로 대체되어 소련 공군에서는 퇴역하였으나, 폴란드, 인도, 이집트 등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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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이 Su-7 | |
---|---|
개요 | |
![]() | |
기종 | 전투기, 전투폭격기 / 공격기 |
제작 국가 | 소비에트 연방 |
제작사 | 수호이 |
최초 비행 | 1955년 9월 7일 |
도입 시기 | 1959년 |
현황 | 조선인민군 공군에서 제한적으로 운용 중 |
주요 운용국 | 소련 공군 (과거) |
기타 운용국 | 인도 공군 (과거) 북한 공군 |
생산 기간 | 1957년–1972년 |
생산 대수 | 1,847대 |
발전형 | 수호이 Su-17 |
명칭 | |
러시아어 | Су-7 |
개발 | |
설계 | 수호이 설계국 |
제작 | 제126 제조 공장 |
2. 개발 및 설계
1953년 요시프 스탈린 사망 이후, 수호이 설계국(OKB-51)은 재개되었고,[2] 그해 여름 후퇴익 전선 전투기 개발을 시작했다.
초기 Su-7은 MiG-21F에 대응하는 대형 전선 전투기로 개발되어 1955년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후 전폭기로 개발 방향을 전환하여, Su-7B, Su-7BM, Su-7BKL, Su-7BMK 등으로 발전했다. 복좌형은 Su-7U, UM, UMK, UKL 등이 생산되었으며, Su-17M 등의 훈련기로도 사용되었다. 소련 방공군용으로 개발된 Su-9 요격기는 Su-7의 후퇴익 대신 MiG-21과 같은 삼각익을 갖춘 자매기이다.
2. 1. S-1 (시제기)
요시프 스탈린 사망 이후 재개된 수호이 설계국(OKB)에서 개발을 시작한 S-1은 류리카 AL-7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2] S-1은 전진익 꼬리 날개와 이동식 동체, 초음속에서 엔진으로의 기류 관리를 위한 공기 흡입구의 이동식 흡입구 콘을 사용한 최초의 소련 항공기였다.[3] 또한 60°의 날개 후퇴각, 비가역 유압식 부스터 제어 장치, 수호이 자체 설계 사출 좌석을 갖추었다.[2]S-1은 1955년 9월 7일 A. G. 코체트코프의 조종으로 처음 비행했고,[3] 1956년 4월 애프터버너가 장착된 AL-7 엔진을 장착, 2,170 km/h (1,170 kn, 1,350 mph, 마하 2.04)의 소련 속도 기록을 세웠다.[3]
S-1은 세 개의 37 mm 누델만 N-37 기관포와 32개의 회전 안정식 57 mm (2.25 in) 무유도 로켓을 동체 하부 트레이에 장착할 예정이었다.[3] 두 번째 시제기인 S-2는 몇 가지 공기역학적 개선을 도입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없는 엔진으로 인해 테스트가 복잡해졌고, S-1은 1956년 11월 23일 추락하여 조종사 I. N. 소콜로프가 사망했다.[2]
2. 2. Su-7A (전투기)
Su-7A는 최초의 양산형이자 전술 항공 우세 전투기로 생산된 유일한 기종이다. 공장 지정 명칭은 S-2[2]이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132대가 생산되어 1965년까지 실전에서 사용되었다.[2] 1958년부터 극동에서 제한적으로 운용되었으나, 1959년에 미그-21 생산을 우선하기로 결정하면서 200대 미만이 배치되었고, 1965년에 퇴역했다.[2]2. 3. Su-7B (전폭기)
1958년 7월 31일, 소련 전술 항공대는 수호이 설계국에 일리우신 Il-40을 대체할 지상 공격기 개발을 지시했다. 시제기 '''S-22'''는 고속 저고도 작전을 위해 구조적으로 개선되었다. 1959년 3월 첫 비행을 하였고, 1961년 '''Su-7B'''로 실전 배치되었다. 1960년부터 1962년까지 431대가 생산되었다.[1]Su-7B는 340-360km/h의 높은 착륙 속도, 낮은 시야, 계기 착륙 장치 부재 등 작전상 어려움이 있었다. 1961~1962년, 블로운 플랩을 실험 ('''S-25''')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S-22-4'''에서 시험된 JATO 로켓은 Su-7BKL에 통합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시도는 가변 형상 수호이 Su-17 개발로 이어졌다.[1]
Su-7B는 1960년대 소련의 주요 지상 공격기였으며, 691대가 수출되었다. 짧은 작전 반경과 긴 활주로 필요성으로 인해 작전 유용성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조종사들에게는 조종성, 단순 조작, 저고도 고속 비행, 정비 용이성 등으로 인기가 있었다. 1977~1986년, 수호이 Su-17, 미코얀 MiG-27로 대체되었다.[1]
3. 종류
Su-7은 초기에는 MiG-21F와 같은 소형 전선 전투기에 대응하는 대형 전선 전투기로 개발되어 1955년에 첫 비행을 했다. 그러나 이후 '''Su-7B''' 생산형부터 전폭기로 개발 방향을 바꾸어, '''Su-7BM'''을 거쳐 '''Su-7BKL'''과 수출형 '''Su-7BMK'''로 발전했다. 복좌형으로는 '''Su-7U''', '''UM''', '''UMK''', '''UKL'''이 생산되었고, Su-17M 등의 훈련기로도 쓰였다. 소련 방공군용으로 개발된 Su-9 요격기는 Su-7의 후퇴익 대신 MiG-21과 같은 삼각익을 갖춘 자매기이다.[2]
3. 1. 주요 형식 (Variants)
- '''Su-7A'''
최초 양산형으로, 전술 항공 우세 전투기였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132대가 생산되었으며, 1965년까지 실전에서 사용되었다.[2]
- '''Su-7B'''
최초의 지상 공격기 버전으로, 1960년부터 1962년까지 431대가 생산되었다.[9]
- '''Su-7BM'''
AL-7F-1 엔진으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동체 상단 양쪽에 외부 배관이 있는 업그레이드된 연료 시스템, 날개 연료 탱크 설치, 외부 연료 탱크를 장착하기 위한 "습식" 날개 하드포인트, 전술 핵폭탄 탑재가 가능하도록 개량되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290대가 생산되었다.[9]
- '''Su-7BKL'''
주 착륙 장치 측면에 스키드가 고정되어 있고, JATO 로켓 2개와 이중 브레이크 낙하산을 장착하여 거친 활주로에서도 운용 가능한 파생형이다. 1965년부터 1972년까지 267대 생산되었다.[9]

- '''Su-7BMK'''
Su-7BM의 단순화된 수출 버전으로, 1967년부터 1971년까지 441대가 생산되었다.[9]
- '''Su-7U''' (NATO ''Moujik'')
Su-7B의 2인승 훈련기 버전이다. 연료 용량이 감소되었으며,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생산되었다.
- '''Su-7UM''' (NATO ''Moujik'')
Su-7BM의 2인승 훈련 버전이다.
- '''Su-7UMK''' (NATO ''Moujik'')

Su-7BMK의 2인승 훈련 버전이다. 모든 Su-7 훈련기는 총 411대가 제작되었다.[9]
- '''Su-7IG'''
가변익 항공기 실험 모델로, 수호이 Su-17로 개발되었다.
- '''100LDU 제어 구성 차량'''

카나드와 종방향 안정성 증강 시스템으로 개조된 Su-7U이다.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의 테스트베드로 설계되었다.
3. 2. OKB-51 표기
- S-1: (Стреловидное крыло|후퇴익ru) Su-7/Su-9 계열의 첫 번째 시제기.[17]
- S-2: Su-7의 첫 번째 생산 버전.[17]
- S-22: Su-7B 생산 항공기.[17]
- S-22-2: Su-7BM의 시제기.[17]
- S-22M: Su-7BM 생산 항공기.[17]
- S-22KL: S-22-4에서 테스트된 단거리 활주 장비를 통합한 Su-7BKL 생산 항공기.[17]
- S-23: S-22-4 테스트의 전조로, 순수한 스키 랜딩 기어와 주 랜딩 기어에만 스키를 장착하여 테스트.[17]
- S-22-4: 거친/비포장 활주로 작전을 위해 휠/스키 랜딩 기어, 브레이크 낙하산 및 SPRD-110 JATO 부스터를 장착하여 테스트한 S-22.[17]
- S-25: 압축기 블리드 공기를 전방 가장자리로 불어 이륙 거리를 줄이는 경계층 제어 (BLC) 테스트용 항공기.[17]
- S-25T: 전체 규모의 풍동에서 사용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경계층 제어 시스템을 장착한 Su-7.[17]
- S-26: 휠/스키 랜딩 기어, 이중 브레이크 낙하산 및 JATO 부스터를 사용한 S-22-4 테스트의 연장 (러시아 공군 박물관에 전시).[17]
- S-22MK: Su-7BMK로 지정된 Su-7BKL의 단순화된 수출 버전.[17]
- U-22: Su-7BM을 기반으로 한 확장된 노즈에 두 개의 좌석을 직렬로 배치한 훈련기 버전.[17]
- U-22MK: 소련 공군에 의해 Su-7UMK로 지정된 Su-7U의 수출 버전.[17]
- S-3: 재구성된 노즈 섹션에 "Izumrud" 레이더 및 항공 전자 장비를 갖춘 S-2의 예상 요격기 버전.[17]
- S-41: 길어진 노즈와 면적 규칙이 적용된 후방 동체를 가진 S-1/S-2의 실험적인 버전.[17]
- T-1: S-2를 기반으로 한 삼각익 전술 전투기 프로젝트로, 시제품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취소.[17]
- T-3: S-3 및 T-1과 병행하여 개발된 S-2의 삼각익 요격기 버전. 이는 결국 Su-9 요격기의 T-43 시제품으로 이어짐.[17]
4. 운용
조선인민군 공군은 1971년에 최소 28대의 Su-7BMK/-7UMK를 인도받았다.[10]
4. 1. 개요
Su-7은 초기에는 전투기로 개발되었으나, 이후 전폭기로 개발 방향이 전환되었다. 소련 공군 외에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인도,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알제리, 예멘 등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었다. 특히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Su-7에 핵 공격 임무를 부여하기도 했다. 소련에서는 Su-17, MiG-27의 배치로 인해 최전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시험 목적으로 계속 운용되었다. 독립 국가 연합(CIS) 국가들에서의 운용 실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4. 2. 주요 운용 국가
조선인민군 공군 - 1971년에 최소 28대의 Su-7BMK/-7UMK를 인도받았다.[10]아프가니스탄 공군 - 1972년부터 Su-7BMK 24대와 Su-7U 훈련기 16대를 도입했다. 높은 사고율과 부실한 유지보수로 인해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며, 1980년대에 79대가 추가 공급되었으나 현재는 운용하지 않는다.[10]
알제리 공군 - Su-7BMK 40대를 운용했다.[10]
체코슬로바키아 공군 - 1963년 최초 도입한 외국 운용국으로, Su-7BM 64대, Su-7BKL 31대, Su-7U를 운용했으나 1990년에 퇴역했다.[10]
이집트 공군 - 1967년부터 1972년까지 Su-7BMK/SU-7UMK 185대를 도입했으나, 욤 키푸르 전쟁 이후 1980년대 중반에 퇴역했다.[10]
인도 공군 - 1968년에 140대를 도입하여 6개 비행대에 장비했으며,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활약했으나 1986년에 퇴역했다.[11]
이라크 공군 - 1965년에 Su-7BMK 최대 34대를 계약하고,[12] 1967년부터 인도를 시작했다.[13] 1967년 7월에는 Su-7BMK 20대를 추가 주문했다.[14] 현재는 운용하지 않는다.
폴란드 공군 - 1964년 7월부터 1990년 6월까지 Su-7BM 6대, Su-7BKŁ 33대, Su-7U 8대를 운용했으나 현재는 운용하지 않는다.[10]
소련 공군
시리아 공군 - 1967년에 Su-7 25대를 도입했으며, 욤 키푸르 전쟁 이후 추가 공급을 받았으나 1990년대에 퇴역했다.[10]
4. 3. 실전 기록

Su-7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집트와 함께 전투를 벌였으며, 그 후 소모전과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집트군이 이스라엘 지상군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다.[4]
인도 공군(IAF)은 1971년 파키스탄과의 전쟁에서 Su-7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총 14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6개 비행대가 전쟁 기간 동안 거의 1,500번의 공격 출격을 수행했으며,[4] 주간 공격 임무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인도 공군은 Su-7로 매우 높은 작전 수행 속도를 유지하여 조종사 1인당 하루 6회의 출격 횟수를 기록했다.[4] 전쟁 중 14대의 Su-7이 손실되었으며, 대부분 대공포 화력에 의한 것이었다.[4] 전쟁 후, 이 항공기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생존성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H.S. 망갓 사령관의 Su-7은 파키스탄 공군의 F-6가 발사한 PL-2 미사일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충격은 매우 심하여 방향타의 절반이 사라지고, 승강기, 에일러론, 플랩이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미사일의 절반이 슈트 파이프에 박혔다.[4] [6] 조종사는 기지로 귀환했다. 최소 한 명의 인도 조종사의 사망은 최소 간접적으로나마 열악한 조종석 설계 때문일 수 있다. 한 조종사가 "폭탄 조준기와 앞쪽의 총 조준기를 조작하기 더 쉽다"는 이유로 위험한 위치로 좌석을 앞으로 이동시켰고, 이륙 중 사망했다.[7]
인도 Su-7BMK는 1971년 전쟁에서 최소 2대의 선양 F-6를 격추했으며,[4] 파키스탄 측 자료에 따르면 F-6에 Su-7 3대가 손실되었다.[8]
4. 4. 평가
Su-7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집트와 함께 전투를 벌였으며, 그 후 소모전과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집트군이 이스라엘 지상군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다.[4]인도 공군(IAF)은 1971년 파키스탄과의 전쟁에서 Su-7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총 14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6개 비행대가 전쟁 기간 동안 거의 1,500번의 공격 출격을 수행했으며,[4] 주간 공격 임무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인도 공군은 Su-7로 매우 높은 작전 수행 속도를 유지하여 조종사 1인당 하루 6회의 출격 횟수를 기록했다.[4] 전쟁 중 14대의 Su-7이 손실되었으며, 대부분 대공포 화력에 의한 것이었다.[4] 전쟁 후, 이 항공기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생존성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H.S. 망갓 사령관의 Su-7은 파키스탄 공군의 F-6가 발사한 PL-2 미사일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충격은 매우 심하여 방향타의 절반이 사라지고, 승강기, 에일러론, 플랩이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미사일의 절반이 슈트 파이프에 박혔다.[4] [6] 조종사는 기지로 귀환했다. 최소 한 명의 인도 조종사의 사망은 최소 간접적으로나마 열악한 조종석 설계 때문일 수 있다. 한 조종사가 "폭탄 조준기와 앞쪽의 총 조준기를 조작하기 더 쉽다"는 이유로 위험한 위치로 좌석을 앞으로 이동시켰고, 이륙 중 사망했다.[7]
인도 Su-7BMK는 1971년 전쟁에서 최소 2대의 선양 F-6를 격추했으며,[4] 파키스탄 측 자료에 따르면 F-6에 Su-7 3대가 손실되었다.[8]
5. 제원 (Su-7BKL)
- '''승무원:''' 1명
- '''길이:''' 16.8m
- '''날개폭:''' 9.31m
- '''높이:''' 4.99m
- '''날개 면적:''' 34m2
- '''공허 중량:''' 8940kg
- '''총 중량:''' 13570kg
- '''최대 이륙 중량:''' 15210kg
- '''엔진:''' 류리카 AL-7F-1 애프터버닝 터보제트 1개
- '''최대 속도:''' 고고도에서 2150km/h (M1.74)
- '''항속 거리:''' 1650km
- '''상승 한도:''' 17600m
- '''상승률:''' 160m/s
- '''무장:'''
- * 2 × 30 mm 누델만-리히테르 NR-30 기관포 (각 포신당 70발, 총 140발)
- * 날개 밑 4개, 동체 밑 2개 스테이션. 2000kg 탑재가능
- ** UB-16-57U 로켓 포드 (S-5 로켓)
- ** FAB-250 범용 폭탄
- ** FAB-500 GP 폭탄
- ** 8U69 핵폭탄
참조
[1]
서적
1992
[2]
웹사이트
Sukhoi Su-7
http://www.sukhoi.or[...]
2011-01-28
[3]
서적
The Great Book of Fighters
MBI Publishing
2001
[4]
웹사이트
A whale of a fighter: Su-7 in IAF service
http://www.bharat-ra[...]
2011-01-28
[5]
서적
2003
[6]
문서
The chute pipe is the section of the engine intake located just before the turbine
[7]
간행물
To Err is Human Case Reports of Two Military Aircraft Accidents
http://web.squ.edu.o[...]
2010
[8]
웹사이트
Final Salute to F-6
http://www.defencejo[...]
[9]
웹사이트
Sukhoi Su-7
http://www.vectorsit[...]
2011-01-2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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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down in Western Sahara, Volume 1: Air Warfare over the Last African Colony, 1945-1975
Helion & Company Publishing
2018
[11]
웹사이트
Su-7
http://www.bharat-ra[...]
2011-01-2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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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selig.ae.i[...]
2019-04-16
[16]
웹사이트
Sukhoi Company (JSC) - Airplanes - Museum - Su-7 - Specifications
http://www.sukho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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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서적
India's ad hoc Arsenal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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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India's ad hoc Arsenal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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