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야마 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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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노야마 기신은 일본의 사진작가로, 누드 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사진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니혼 대학을 졸업하고, 라이트 퍼블리시티 에이전시에서 활동하다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1960년대부터 활동하며, 잡지 표지, 앨범 재킷, 사진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집》, 《산타페》 등이 있으며, 2009년에는 공연음란 혐의로 자택이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2024년 1월 4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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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시노야마 기신은 니혼 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광고 제작 회사 라이트 퍼블리시티에서 일하다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되었다. 옷을 입은 사진, 대부분 옷을 벗은 사진, 누드 사진 등 다양한 사진집을 출판했다.

1975년 발매된 대형 사진집 『집(家)』은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열도 약 80곳에 이르는 다양한 "일본의 집" 모습을 담고 있다. 이와테현 도노시의 고민가(古民家), 아카사카 영빈관, 다이토구 우에노의 고풍스러운 목욕탕, 요코오 타다노리가 살았던 집, 다카나와의 고 히로미 저택, 신주쿠 아파트, 기타큐슈 지쿠호 탄광, 오키나와현 다케토미섬, 나가사키현 군함도(하시마섬) 폐허 등이 수록되었다.[4]
1978년부터 1997년까지 『주간 아사히』 표지 사진을 촬영했으며, 1980년 시작된 여자 대학생 시리즈는 여러 여배우와 아나운서를 배출했다.[14] 1995년부터는 아사히 카메라 1월호 표지와 권두 그라비아 촬영을 담당했다.
모델명은 해당 잡지 내 표기된 대로 기재. 권두 그라비아, 목차, 촬영 노트에 모델명이 없으면 "기재 없음"으로 표기.
2009년, 시노야마 자택과 사무실은 공연음란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2008년 사진집 『20XX 도쿄』를 위해 공공장소에서 여성 누드를 촬영했기 때문이다.[1] 2010년, 아오야마 묘지 촬영에 대해 공연음란죄 및 사찰 훼손죄로 유죄 판결, 300000JPY 벌금형을 받았다.
미나미 사오리와 결혼, 아들 시노야마 아키노부는 배우이다. 2024년 1월 4일, 도쿄도 병원에서 노쇠로 사망했다.[19][2] 향년 83세.
2. 1. 초기 (출생 ~ 대학 시절)
시노야마 기신은 도쿄도 신주쿠구에 있는 진언종 호산파 엔쇼지 주지 시노야마 아키노부(篠山明信)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시노야마가 4살 때 아버지가 전사하였다.신주쿠구립 요도바시 제4소학교를 거쳐 사립 시바 중학교・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고등학교 시절까지 생가인 엔쇼지에서 생활하였다.[4] 일반 대학 입시에 실패하자 충동적으로 일본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에 지원하여 입학했다.[5] 일본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 동기인 사진작가 사와타리 사쿠에게는 '오시노'라고 불렸다.[6][7]
사진학과에 들어왔으니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일본대학과 병행하여 도쿄 종합사진전문학교에도 다녔다. 재학 중 신진 사진작가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1961년 도쿄 종합사진전문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대학 재학 중 광고사진가협회전 APA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광고 제작 회사 라이트 퍼블리시티에 취직했다.[8] 이 면접을 위해 허세를 부리려고 당시 매우 고가였던 해즐블라드 500C와 린호프를 양쪽 어깨에 메고 갔다는 일화가 있다.[9]
2. 2. 사진작가 활동
시노야마는 니혼 대학을 졸업했다. 학생 시절 라이트 퍼블리시티 에이전시에서 일했고 졸업 후에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옷을 입은, 대부분 옷을 벗은, 그리고 누드 사진이 담긴 많은 사진집을 출판했다.
1966년에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현대사진의 10인」전에 최연소로 참가했다.[8] 1976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일본관에 대표 작가로 선정되었다.[8] 초기 작품으로는 『Death Valley』, 『Twins』, 『Nude』 등 걸작이 많다. 존 레논의 생전 마지막 앨범 『더블 판타지』의 재킷 사진 촬영은 시노야마 기신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 수와 장르의 다양성은 누드부터 가부키까지 다른 사진작가들을 훨씬 능가한다. 1973년, 데뷔부터 캐롤을 찍어 캐롤의 인기몰이에 기여했다.[10][11] 같은 해 『타마사부로 전』으로 예술선장 신인상(芸術選奨新人賞)을 수상했다. 1975년 잡지 『고로(GORO)』에서 가수 야마구치 모모에 특집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격사(激写)」는 유행어가 되었고,[12] 이후 나카모리 아키나 등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모델로 한 일련의 격사 시리즈로 알려지게 되었다.
1975년에 발매된 대형 사진집 『집(家)』과 『맑은 날(晴れた日)』은 초기 대표작이다. 『집』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열도 약 80곳에 이르는 「일본의 집」의 다양한 모습이 기록되었으며, 홋카이도, 이와테현 도노시의 고민가(古民家)를 비롯하여, 아카사카의 영빈관, 다이토구 우에노의 고풍스러운 목욕탕, 요코오 타다노리가 예전에 살았던 집, 다카나와의 고 히로미 저택, 신주쿠의 아파트, 기타큐슈의 지쿠호 탄광, 오키나와현 다케토미섬, 나가사키현 군함도(하시마섬)의 폐허 등이 담겨있다.[4]
또한, 그의 생가와 4살 때 1년 가까이 피난 생활을 했던 사이타마현 지치부에도 30년 만에 어머니와 함께 방문하여 유년 시절의 기억을 촬영했다. 이것은 시노야마에게 있어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재확인하는 행위였던 것 같다. 시노야마는 「그리움이나 개인적인 정은 있었지만, 그것들은 「사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감정도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사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다면 「문학」으로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4] 이듬해 1976년에는 평론가 다키 코지가 집필한 텍스트 『살아온 집(生きられた家)』이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1978년에 사진집 『대격사 135명의 여자 친구(大激写 135人の女ともだち)』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계기로 1980년에는 시노야마를 중심으로 한 사진 잡지 『샤라쿠』가 창간되었다.[13]
1978년부터 1997년까지는 『주간 아사히』의 표지 사진을 촬영했다. 1980년에 시작된 『주간 아사히』 표지의 여자 대학생 시리즈에서는 여러 명의 여배우와 여자 아나운서를 배출했다.[14] 그 외에도 『주간 겐다이』의 표지 사진과 월간 TV 정보지 『B.L.T.』의 표지 및 권두 그라비아 페이지를 매호 담당했다. 『B.L.T.』에서는 피사체의 누드는 없지만, 누워서 가슴 골이 보이는 포즈 등 다른 잡지보다 노출도가 높은 그라비아를 촬영했다.
시노야마 기신은 1995년부터 아사히 카메라 1월호 표지와 권두 그라비아 촬영을 담당했다.
모델명은 해당 잡지 내에 표기된 대로 기재하였다. 권두 그라비아, 목차, 촬영 노트에 모델명이 기재되지 않은 경우는 “기재 없음”으로 하였다.
단, 예외적으로 1997년은 모델명의 기재가 없었지만, 본문에 “애틀랜타 올림픽・TOTO 국제 슈퍼 육상”이라고 있으며, 모델을 특정하는 중요한 정보로서 이를 기재하였다.
2009년 11월 10일, 시노야마의 자택과 사무실은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압수수색은 그가 2008년 8월 자신의 사진집 『20XX 도쿄』를 위해 두 여성을 공공장소에서 누드로 촬영했다는 우려에서 비롯되었다.[1] 2010년 5월 26일, 법원은 시노야마가 아오야마 묘지에서 사진을 촬영한 것에 대해 공연음란죄와 사찰 훼손죄로 유죄를 선고하고 300000JPY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2. 3. 누드 사진과 사회적 논란
시노야마는 니혼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학생 시절 라이트 퍼블리시티 에이전시에서 일했고 졸업 후에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시노야마는 옷을 입은, 대부분 옷을 벗은, 그리고 누드 사진이 담긴 많은 사진집을 출판했다.
여성을 촬영 대상으로 한 많은 누드 사진을 촬영했다. 1969년에는 사진작가 사와타리 사쿠, 하야시 히로키 등과 전일본수모노출연맹(젠치로렌, Zenchiroren)을 결성하여 회장에 취임했다.[15]
1991년에는 여배우 히구치 카나코를 모델로 한 사진집 『Water Fruit 不測の事態(부측의 사태)』에서 사실상 음모를 공개했고, 이어 같은 해 당시 최고 인기 아이돌이었던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 사진집 『Santa Fe』를 출판하여 신문에 게재한 전면 광고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헤어 누드 붐을 일으켰다. 『Santa Fe』는 그 해 베스트셀러 7위, 『Water Fruit 不測の事態(부측의 사태)』는 10위를 기록했다.[16] 또한 『Santa Fe』는 사진집 발행 부수에서 세계 기록도 수립했다.[17]
2009년 11월 10일, 시노야마의 자택과 사무실은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압수수색은 그가 2008년 8월 자신의 사진집 『20XX 도쿄』를 위해 두 여성을 공공장소에서 누드로 촬영했다는 우려에서 비롯되었다.[1] 2010년 5월 26일, 법원은 시노야마가 아오야마 묘지에서 사진을 촬영한 것에 대해 공연음란죄와 사찰 훼손죄로 유죄를 선고하고 300000JPY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2. 4. 말년
시노야마는 미나미 사오리와 결혼했으며, 아들 시노야마 아키노부는 배우이다.2009년 11월 10일, 시노야마의 자택과 사무실은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는 2008년 8월 사진집 『20XX 도쿄』를 위해 두 여성을 공공장소에서 누드로 촬영했기 때문이었다.[1] 2010년 5월 26일, 법원은 아오야마 묘지에서 사진을 촬영한 시노야마에게 공연음란죄와 사찰 훼손죄로 유죄를 선고하고 300000JPY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2020년 10월 13일, 제68회 기쿠치 간상을 수상했다.[18]
2024년 1월 4일, 도쿄도 병원에서 노쇠로 사망했다.[19][2] 향년 83세.
3. 주요 작품
시노야마 기신은 사진집, 광고, 잡지 표지, 그라비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특히 '격사(激写)'라는 용어를 유행시키며,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본 사진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작품시노야마 기신은 누드 사진부터 가부키(歌舞伎)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 사진집 《산타페》,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앨범 《더블 판타지》 표지 사진 등이 있다.
1973년 반도 타마사부로를 촬영한 작품으로 예술선장 신인상을 받았으며,[12] 1975년에는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오키나와(沖縄県|沖縄)까지 일본 각지의 가옥과 군함도(軍艦島) 폐허 등을 담은 사진집 《집》을 발표했다.[4]
1978년 사진 잡지 《샤가쿠)》 창간에 참여했고,[13] 같은 해부터 1997년까지 『주간 아사히』 표지 사진을 담당했다. 1980년대 『주간 아사히』 표지 여자 대학생 시리즈는 많은 여배우와 아나운서를 배출했다.[14] 『주간 겐다이』, 『B.L.T.』 등 잡지 표지와 그라비아도 담당했다.
1995년부터는 『아사히 카메라(アサヒカメラ)』 1월호 표지와 권두 그라비아 촬영을 맡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사진집 하위 섹션을 참조.
3. 1. 사진집
격사 문고 시리즈 상세 목록
액시던트 시리즈 상세 목록
액시던트 도쿄 시리즈 상세 목록
3. 2. 그 외
시노야마 기신은 누드 사진부터 가부키(歌舞伎)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발표했다. 1973년 반도 타마사부로를 촬영한 작품으로 예술선장 신인상을 받았고, '격사'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다.[12] 1975년에는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오키나와(沖縄県|沖縄)까지 일본 각지의 가옥과 군함도(軍艦島) 폐허 등을 담은 사진집 《집》을 발표했다.[4]1978년 사진 잡지 《샤가쿠(写楽 (雑誌)|샤가쿠)》 창간에 참여했고,[13] 1978년부터 1997년까지 『주간 아사히』 표지 사진을 담당했다. 1980년대 『주간 아사히』 표지 여자 대학생 시리즈는 많은 여배우와 아나운서를 배출했다.[14] 『주간 겐다이』, 『B.L.T.』 등 잡지 표지와 그라비아도 담당했다.
1995년부터 『아사히 카메라(アサヒカメラ)』 1월호 표지와 권두 그라비아 촬영을 맡고 있다.
모델명은 해당 잡지 내에 표기된 대로 기재하였다. 권두 그라비아, 목차, 촬영 노트에 모델명이 기재되지 않은 경우는 “기재 없음”으로 하였다.
1997년은 모델명 기재가 없었지만, 본문에 “애틀랜타 올림픽・TOTO 국제 슈퍼 육상”이라고 있어 모델을 특정하는 중요한 정보로 기재하였다.
2018년은 “<인형 협력>4woods, 하야토메 토토로(早乙女トトロ), 나나사이(七彩)”라고 되어 있으며, 인간 모델이 아니지만 인형을 특정하는 중요한 정보로 기재하였다. https://aidoll.4woods.jp/entrance.html 4woods는 러브돌(ラブドール) 제조업체, 하야토메 토토로(早乙女トトロ)는 러브돌 대여점 http://www.ero104.com/ エロエロ天使 주인, http://www.nanasai.co.jp/ 七彩는 마네킹(マネキン人形) 제조업체이다.
4. 수상
5. 논란
시노야마 기신은 니혼 대학 졸업 후, 학생 시절부터 일하던 라이트 퍼블리시티 에이전시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옷을 입은 사진, 대부분 옷을 벗은 사진, 그리고 누드 사진이 담긴 많은 사진집을 출판했다.
2006년 4월 25일에는 사무실에 빈집털이범이 들어 현금을 도난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5. 1. 공연음란죄
2009년 11월 10일, 시노야마의 자택과 사무실은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는 2008년 8월 사진집 『20XX 도쿄』를 위해 두 여성을 공공장소에서 누드로 촬영했다는 우려에서 비롯되었다.[1] 사진집 자체의 음란성이 아니라 도쿄도립 아오야마 묘원 등 공중의 눈에 띄는 장소 12곳에서 촬영한 행위가 문제가 되었다.[21][22]시노야마는 "수영복을 입고 촬영했다"는 거짓 내용의 사과문을 경시청에 제출했지만,[21] 2010년 1월 25일에는 불법성을 인정하고 모델 2명과 함께 경시청 생활안전부 보안과에 불기소 처분되었다.[23] 시노야마는 "죄송합니다. 주변에 배려하려고 했지만 부족했습니다"라며 혐의를 전면적으로 인정했다.[21]
검찰은 시노야마가 거짓 내용의 사과문을 제출한 점을 악질적이라고 판단하여 묘지에 국한하여 기소했다. 2010년 5월 26일, 도쿄 간이재판소는 시노야마가 아오야마 묘지에서 사진을 촬영한 것에 대해 공연음란죄와 사찰 모독죄로 유죄를 선고하고 300000JPY의 벌금형을 약식명령했다.[24]
5. 2. 여성 모델 관련 논란
시노야마 기신은 여성 모델을 대상으로 많은 누드 사진을 촬영했다. 1969년에는 사진작가 사와타리 사쿠, 하야시 히로키 등과 함께 전일본수모노출연맹(젠치로렌, Zenchiroren)을 결성하여 회장으로 취임했다.[15]1991년에는 여배우 히구치 가나코를 모델로 한 사진집 《Water Fruit 不測の事態(부측의 사태)》에서 사실상 음모를 공개했다. 같은 해, 당시 최고 인기 아이돌이었던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 사진집 《Santa Fe》를 출판하여 신문에 게재한 전면 광고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헤어 누드 붐을 일으켰다.[16] 《Santa Fe》는 그 해 베스트셀러 7위, 《Water Fruit 不測の事態(부측의 사태)》는 10위를 기록했다.[16] 또한 《Santa Fe》는 사진집 발행 부수에서 세계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17]
2009년 11월 10일, 시노야마의 자택과 사무실은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는 2008년 8월 사진집 《20XX 도쿄》를 위해 두 여성을 공공장소에서 누드로 촬영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1] 2010년 5월 26일, 법원은 시노야마가 아오야마 묘지에서 사진을 촬영한 것에 대해 공연음란죄와 사찰 훼손죄로 유죄를 선고하고 300000JPY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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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代官山 蔦屋書店 オフィシャルブログ - ヴィンテージ:篠山紀信氏写真集『家』と「激写」の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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篠山紀信、60年以上のキャリアを通覧する初の試み。東京都写真美術館で「新・晴れた日」が開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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篠山紀信さんの事務所捜索 ヌード撮影で公然わいせつ容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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篠山紀信さんに罰金30万円 霊園ヌード撮影に東京簡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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