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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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폴로니아는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기독교 성녀로, 치통과 치과 질환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받는다. 데키우스 황제 시대의 박해를 받아 턱이 부서지고 이가 뽑히는 고문을 당했으며,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위협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순교했다. 아폴로니아는 249년 성녀로 추대되었으며, 2월 9일에 축일을 기념한다. 그녀의 유해는 유럽 각지에 보관되어 있으며, 예술 작품과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치아 요정으로도 여겨지며, 영국에서는 중세 시대부터 숭배되어 많은 교회에서 그녀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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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니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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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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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Αγία Απολλωνία (Agía Apollōnía, 그리스어), Ϯⲁⲅⲓⲁ Ⲁⲡⲟⲗⲗⲟⲛⲓⲁ (아폴로니아, 콥트어)' |
기념일 | 2월 9일 (로마 가톨릭 교회 및 동방 정교회), 2 Meshir (콥트 정교회) |
칭호 | 동정녀이자 순교자 |
수호 성인 | 치과의사, 치통 문제, 엘스트, 벨기에, 아리치아, 쿠카로 몬페라토, 이탈리아 |
생애 | |
출생 연도 | 2세기 |
사망 연도 | 249년 |
사망 장소 | 알렉산드리아, 로마 이집트 |
숭배 정보 | |
공경하는 교회 | 가톨릭 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
상징 | 집게 (때로는 치아를 잡고 있음), 십자가 또는 순교자의 야자수 또는 왕관을 들고 있는 모습 |
2. 생애와 순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디오니시우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 파비아누스에게 보낸 편지는 성녀 아폴로니아의 생애와 순교에 대한 주요 기록이며, 이 편지는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보존되어 있다.[2]
디오니시우스는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설명하며,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집 밖으로 끌려나와 재산을 약탈당하고 살해되는 사건을 언급한다. 이 과정에서 아폴로니아는 턱이 부서지고 이가 뽑히는 고문을 당했으며, 도시 밖으로 끌려나가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않으면 산 채로 불태워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아폴로니아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뒤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3] 훗날 이 사건은 아폴로니아가 불속으로 몸을 던질 때 '치통으로 고통받은 모든 이들을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다는 전승으로 이어졌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도시''에서, 박해 기간 동안 어떤 성스러운 여인들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교회가 신뢰할 수 있는 계시를 통해 이 그리스도교인들의 기억을 이렇게 존경하도록 신성하게 권한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삼손의 경우처럼, 그들이 잘못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 행동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4]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폴로니아의 축제는 서방에서도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아폴로니아는 배교 황제 율리아누스의 박해로 로마에서 순교한 다른 아폴로니아와 혼동되기도 하였다.
2. 1. 알렉산드리아에서의 박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디오니시우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 파비아누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아폴로니아는 알렉산드리아 치안판사의 딸로 중년의 처녀였다.[2] 디오니시우스는 이 편지에서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에 대해 설명하면서, 폭동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집 밖으로 끌려나와 재산을 약탈당하고 살해되었다고 전한다. 아폴로니아 역시 약탈당했으며, 턱이 부서지고 이가 뽑히는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도시 밖으로 끌려나가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구절을 암송하지 않으면 산 채로 불태워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이에 아폴로니아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갑자기 결박을 풀고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졌다.[3] 훗날 이 사건은 아폴로니아가 불속으로 몸을 던질 때 '치통으로 고통받은 모든 이들을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다고 알려지게 되었다.디오니시우스는 안티오키아의 파비우스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백성이 겪은 고통을 이야기하는데, 이 내용 중 긴 발췌문이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보존되어 있다.[2] 그는 그리스도교인 남자와 여자, 메트라스와 퀸타가 폭도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하고, 다른 여러 그리스도교인들의 집이 약탈당한 과정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그 당시에는 ''파르테노스 프레스비티스'' (아마도 여집사를 의미)인 아폴로니아를 존경했습니다. 이 남자들은 또한 그녀를 붙잡아 반복적인 타격으로 그녀의 모든 이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들은 그 다음 도시 문 밖에서 나무 더미를 세우고 그녀가 그들의 불경스러운 말(그리스도에 대한 신성 모독 또는 이교도 신을 불러내는 것)을 따라하지 않으면 산 채로 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의 요청에 따라 약간의 자유를 얻은 후 재빨리 불 속으로 뛰어들어 불에 타 죽었습니다.[3]
디오니시오의 이야기는 성 아폴로니아의 행동에 대해 조금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만큼 순교자였고,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그렇게 존경받았다.
2. 2. 아폴로니아의 순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디오니시우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 파비아누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아폴로니아는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인 박해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 폭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 재산을 약탈하고 살해했다. 아폴로니아 역시 붙잡혀 턱이 부서지고 이가 모두 뽑히는 고통을 당했다.[2] 그녀는 도시 밖으로 끌려나가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산 채로 불태워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아폴로니아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뒤, 스스로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3]
전승에 따르면, 아폴로니아는 불길 속에서 "치통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폴로니아는 치통을 앓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2. 3. 연대기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디오니시우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 파비아누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아폴로니아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인 박해 때 순교했다. 폭도들에게 붙잡힌 아폴로니아는 턱이 부서지고 이가 뽑히는 고통을 당했다. 그녀는 도시 밖으로 끌려나가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않으면 산 채로 불태워질 위협을 받았으나,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졌다.[3] 이 사건은 249년에 일어났으며, 아폴로니아는 성녀로 추대되었다.[2]교회사학자들은 필리푸스 아라비스 황제 말년(재위 244–249), 로마 건국 1000주년(248년경)을 기념하는 축제 기간 동안 알렉산드리아 폭도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 주교(247–265)는 안티오키아의 파비우스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폭도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한 메트라스와 퀸타, 약탈당한 그리스도교인들의 집을 언급하며, 당시 ''파르테노스 프레스비티스''(아마도 여집사)였던 아폴로니아가 존경받았다고 기록했다. 폭도들은 그녀를 붙잡아 반복적인 타격으로 모든 이를 부러뜨리고, 도시 문 밖에서 그녀가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않으면 산 채로 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아폴로니아는 잠시 자유를 얻은 후 재빨리 불 속으로 뛰어들어 불에 타 죽었다.[3]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도시''에서, 박해 기간 동안 어떤 성스러운 여인들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교회가 신뢰할 수 있는 계시를 통해 이 그리스도교인들의 기억을 이렇게 존경하도록 신성하게 권한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삼손의 경우처럼, 그들이 잘못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 행동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4]
디오니시오의 이야기는 성 아폴로니아의 행동에 대한 비난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만큼 순교자였고,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그렇게 존경받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의 축제는 서방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나중 이야기는 아폴로니아를 율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아래 로마의 기독교 처녀로 만들었고, 같은 치아의 운명을 겪게 했다.
3. 숭배와 유물
성녀 아폴로니아는 치통과 치과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데키우스 황제 시대의 박해 때, 아폴로니아는 이교 신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불길에 뛰어드는 순교를 택했다.[5]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디오니시우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 파비아누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폭도들은 아폴로니아를 붙잡아 반복적으로 구타하여 이빨을 모두 부수었다. 그리고 도시 성문 밖에 장작을 쌓아 놓고, 이교 신에게 숭배하라고 강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산 채로 불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아폴로니아는 잠시 풀려나자마자 불 속으로 뛰어들어 순교했다.
중세 시대에는 성녀의 치아라고 주장하는 유물들이 치통 치료제로 판매되기도 했다.[6] 로마 트라스테베레에는 성녀를 기리는 교회가 있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피아차 산타폴로니아''라는 작은 광장만 남아있다. 리스본의 주요 기차역 중 하나는 성녀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프랑스 로크로낭에는 성 아폴로니아의 동상이 있으며, 모리셔스 섬은 1507년 포르투갈 항해사들에 의해 ''산타 아폴로니아''라고 명명되었다.[7] 독일 아헨 에일렌도르프의 본당 교회는 성 아폴로니아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
3. 1. 축일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는 2월 9일을 성 아폴로니아의 축일로 기념한다.[5]3. 2. 상징
성녀 아폴로니아는 주로 이를 뽑는 집게나 뽑힌 이빨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는 2월 9일을 성 아폴로니아의 축일로 기념하며,[5] 카타니아의 수호 성인 중 한 명이다.[5]
성 아폴로니아의 유해는 로마의 옛 성 아폴로니아 교회,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대성당(머리),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팔), 성 바실(턱의 일부) 등 여러 곳에 분산되어 보관되었다.[6] 앤트워프의 예수회 교회, 브뤼셀의 성 어거스틴, 메헬렌의 예수회 교회, 리에주의 성 크로스, 포르투 대성당의 보물, 쾰른의 여러 교회에도 유해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6] 이 유해는 이빨이나 뼈 조각 형태로 남아있다.[6]
로욜라 대학교 시카고의 마돈나 델라 스트라다 예배당에는 성 아폴로니아를 묘사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이 있다.[9]
3. 3. 유물 보관
성녀 아폴로니아의 유해는 여러 곳에 분산되어 보관되어 있다. 윌리엄 S. 왈시는 자신의 저서에서 유해 대부분이 로마의 옛 성 아폴로니아 교회에 보관되어 있으며, 머리는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대성당에, 팔은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턱의 일부는 성 바실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고 기록했다.[6] 그 외에도 앤트워프의 예수회 교회, 브뤼셀의 성 어거스틴, 메헬렌의 예수회 교회, 리에주의 성 크로스, 포르투 대성당의 보물, 쾰른의 여러 교회에도 유해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6] 이 유해들은 치아나 뼈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6]3. 4. 치아 요정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성녀 아폴로니아가 치아 요정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8] 아이들이 빠진 유치를 성녀 아폴로니아에게 바치면 선물을 받는다는 민간 신앙이 전해진다.[8]4. 문화적 영향
성녀 아폴로니아는 중세 시대부터 회화,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주제로 등장했으며, 특히 집게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5] 영국에서는 종교 개혁에도 불구하고 데번과 이스트앵글리아를 중심으로 많은 가톨릭 교회에서 성 아폴로니아 조각상이 발견되었다.[6] 이 조각상들은 대부분 로오드 스크린 패널이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발견되며, 스토크인테인헤드에는 유일하게 돌기둥 형태의 조각상이 남아있다. 1499년경 코번트리의 세인트 메리 길드홀에 있는 태피스트리에도 성 아폴로니아가 묘사되어 있다.
영국 치과 협회 문장의 측면 지지대는 성 아폴로니아이다. 체셔 번버리, 콘월 파운드스톡 등 잉글랜드 각지에서 성 아폴로니아를 기리는 성상, 그림 및 유물이 발견된다.[6]
카운티별 성 아폴로니아 숭배 장소는 다음과 같다.
카운티 | 위치 |
---|---|
데번 | 알핑턴(현재 사라짐), 애쉬턴, 콤 마틴, 엑서터 대성당(세인트 가브리엘 예배당의 태피스트리), 홀른, 켄, 켄턴, 킹스커스웰, 매너턴, 페이헴버리, 사우스 밀턴, 스토크-인-테인헤드, 토브리안, 어그보로, 윔플(현재 사라짐), 와이드콤-인-더-무어, 울보로(뉴턴 애벗) |
링컨셔 | 롱 서튼 |
노퍽 | 바튼 터프, 도킹, 호샴 세인트 페이스, 러드햄, 노리치(세인트 스테판 교회), 노리치 오버 더 워터(사용하지 않는 교회), 샌드링엄 |
서퍽 | 노턴, 서머레이턴, 웨스트홀, 칠턴 |
리스본의 주요 기차역, 프랑스 로크로낭의 교회, 모리셔스 섬(1507년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성녀 아폴로니아를 기려 '산타 아폴로니아'로 명명) 등 여러 지역의 지명과 건물 이름에 성녀 아폴로니아의 이름이 사용되었다.[7] 독일 아헨의 교외인 에일렌도르프의 본당 교회도 성 아폴로니아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성 아폴로니아가 아이들이 잠자는 동안 떨어진 유치를 모으고 그 대가로 선물을 남기는 치아 요정 역할을 한다.[8]
로욜라 대학교 시카고의 마돈나 델라 스트라다 예배당에는 성 아폴로니아를 묘사한 북쪽 벽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이 있다.[9] 로욜라 대학교 치과대학은 1993년에 폐교되었지만 예배당의 창문은 남아 있다.[10]
4. 1. 예술 작품
성녀 아폴로니아는 중세 시대부터 회화,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주제로 등장했다. 특히 집게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묘사된다.[5]미술 작품에서 그녀는 치아를 담은 족집게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5]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모든 이빨이 무자비하게 뽑히거나 산산조각 나는 고문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림에서는 이빨을 뽑기 위한 가위(때로는 이빨)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로욜라 대학교 시카고의 마돈나 델라 스트라다 예배당에는 성 아폴로니아를 묘사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이 있다.[9] 로욜라 대학교 치과대학은 1993년에 폐교되었지만, 예배당의 창문은 남아 있다.[10] 프랑스 로크로나의 교회에는 성 아폴로니아의 동상이 있다.
4. 2. 영국에서의 숭배
잉글랜드에서는 16세기 종교 개혁에도 불구하고, 데번과 이스트앵글리아를 중심으로 많은 가톨릭 교회에서 성 아폴로니아 조각상 52개가 발견되었다.[6] 이 조각상들은 대부분 로오드 스크린 패널이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발견되며, 스토크인테인헤드에는 유일하게 돌기둥 형태의 조각상이 남아있다. 1499년경 코번트리의 세인트 메리 길드홀에 있는 태피스트리에도 성 아폴로니아가 묘사되어 있다.
성 아폴로니아는 영국 치과 협회 문장의 측면 지지대이기도 하다.
4. 2. 1. 영국 내 숭배 장소
체셔 번버리, 콘월 파운드스톡을 포함하여 잉글랜드 각지에서 성 아폴로니아를 기리는 성상, 그림 및 유물이 발견된다.[6]성 아폴로니아의 이미지는 16세기 위원회의 파괴로부터 살아남은 영국 교회에 52개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데번과 이스트앵글리아에 집중되어 있다. 이 이미지의 대부분은 로오드 스크린의 패널에 있거나 스테인드글라스에 등장하며, 돌 기둥은 하나뿐(스토크인테인헤드)이다. 그녀는 또한 1499년경 세인트 메리 길드홀, 코벤트리에 있는 태피스트리에 묘사되어 있다.
카운티별 성 아폴로니아 숭배 장소는 다음과 같다.
카운티 | 위치 |
---|---|
데번 | 알핑턴(현재 사라짐), 애쉬턴, 콤 마틴, 엑서터 대성당(세인트 가브리엘 예배당의 태피스트리), 홀른, 켄, 켄턴, 킹스커스웰, 매너턴, 페이헴버리, 사우스 밀턴, 스토크-인-테인헤드, 토브리안, 어그보로, 윔플(현재 사라짐), 와이드콤-인-더-무어, 울보로(뉴턴 애벗) |
링컨셔 | 롱 서튼 |
노퍽 | 바튼 터프, 도킹, 호샴 세인트 페이스, 러드햄, 노리치(세인트 스테판 교회), 노리치 오버 더 워터(사용하지 않는 교회), 샌드링엄 |
서퍽 | 노턴, 서머레이턴, 웨스트홀, 칠턴 |
4. 3. 기타
리스본의 주요 기차역, 프랑스 로크로낭의 교회, 모리셔스 섬 등 여러 지역의 지명과 건물 이름에 성녀 아폴로니아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모리셔스 섬은 1507년 포르투갈 항해사들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성녀 아폴로니아를 기려 '산타 아폴로니아'로 명명되었다.[7] 독일 아헨의 교외인 에일렌도르프의 본당 교회도 성 아폴로니아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성 아폴로니아가 아이들이 잠자는 동안 떨어진 유치를 모으고 그 대가로 선물을 남기는 치아 요정 역할을 한다.[8]
로욜라 대학교 시카고의 마돈나 델라 스트라다 예배당에는 성 아폴로니아를 묘사한 북쪽 벽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이 있다.[9] 로욜라 대학교 치과대학은 1993년에 폐교되었지만 예배당의 창문은 남아 있다.[10]
참조
[1]
서적
"Milton's Teeth and Ovid's Umbrella: Curiouser & Curiouser Adventures in History"
Simon & Schuster
1996
[2]
문서
Historia Ecclesiae
[3]
백과사전
St. Apollonia
http://www.newadvent[...]
2017-12-21
[4]
서적
The City of God
[5]
웹사이트
Virgin Martyr Apollonia - Troparion & Kontakion
https://www.oca.org/[...]
2021-07-08
[6]
서적
Curiosities of Popular Customs And of Rites, Ceremonies, Observances, and Miscellaneous Antiquities
1897
[7]
서적
Histoire de l’océan Indien
1955
[8]
뉴스
La fatina dei denti
https://www.quotidia[...]
Quotidiano del Canavese
2019-08-22
[9]
웹사이트
The North Wall Stained Glass Windows
http://www.lib.luc.e[...]
2017-12-21
[10]
뉴스
Loyola Closing Dental School
https://www.chicagot[...]
Chicago Tribune
199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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