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마드 (자라이르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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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흐마드는 1382년 형 후세인 1세를 처형하고 자라이르 왕조의 술탄이 되었으나,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과 티무르 제국의 침입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 티무르의 침략으로 여러 차례 망명 생활을 했으며, 티무르 사후 바그다드로 돌아와 왕조를 재건하려 했지만 흑양조와의 대립에서 패배하여 처형당했다. 아흐마드 사후 자라이르 왕조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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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흐마드 (자라이르 왕조) | |
|---|---|
| 기본 정보 | |
![]() | |
| 군주 칭호 | 제4대 잘라이르 왕조 군주 |
| 재위 기간 | 1382년 - 1410년 |
| 즉위일 | 알 수 없음 |
| 전체 이름 | 알 수 없음 |
| 출생일 | 알 수 없음 |
| 출생지 | 알 수 없음 |
| 사망일 | 1410년 |
| 사망 장소 | 알 수 없음 |
| 매장일 | 알 수 없음 |
| 매장지 | 알 수 없음 |
| 후계자 | 알 수 없음 |
| 계승 형식 | 알 수 없음 |
| 배우자 | 알 수 없음 |
| 자녀 | 알 수 없음 |
| 왕가 | 알 수 없음 |
| 왕조 | 잘라이르 왕조 |
| 왕실 노래 | 알 수 없음 |
| 아버지 | 샤이흐 우와이스 1세 |
| 어머니 | 알 수 없음 |
| 종교 | 알 수 없음 |
| 서명 | 알 수 없음 |
2.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 (1382년)
아흐마드는 형 후사인 1세를 상대로 음모를 꾸며 권력을 잡았으나, 후사인 1세는 체포되어 처형되었다.[1] 그러나 아흐마드의 다른 형제들인 샤이흐 알리와 바야지드는 아흐마드에게 반대했다. 후사인 1세의 아미르였던 아딜 아카는 솔타니예에서 바야지드를 술탄으로 선포했고, 샤이흐 알리는 바그다드를 떠나 타브리즈로 진격할 준비를 했다. 아흐마드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카라 코윤루(흑양 투르크멘)의 지원을 요청했고, 이들은 샤이흐 알리를 격파했다. 이후 아흐마드는 2년 안에 다른 형제인 바야지드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1]
2. 1. 후사인 1세의 실정
후사인 1세는 외부의 침입과 내부 분쟁으로 점차 권력을 잃고 있었다. 이전부터 후사인 1세에게 공개적으로 대립해왔던 아흐마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382년, 아흐마드는 타브리즈로 진격하여 후사인 1세를 손쉽게 붙잡아 처형하고 스스로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2. 2. 아흐마드의 반란
1382년 아흐마드는 타브리즈로 진격하여 형인 후사인 1세를 손쉽게 붙잡아 처형하고 스스로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 형제인 샤이흐 알리와 바야지트가 남아 있었다. 또한 유력한 아미르였던 아딜 아카도 바야지트를 지원하며 솔타니예에서 바야지트를 술탄으로 추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불안을 느낀 아흐마드는 흑양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흑양조의 군대는 아흐마드의 기대대로 샤이흐 알리를 격파하였고 아흐마드는 바야지트를 처리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2. 3. 다른 형제들과의 대립
1382년, 아흐마드는 타브리즈로 진격하여 형인 후사인 1세를 손쉽게 붙잡아 처형하고 스스로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1] 하지만 아직 형제인 샤이흐 알리와 바야지트가 남아 있었다.[1] 또한 유력한 아미르였던 아딜 아카는 바야지트를 지원하며 솔타니예에서 바야지트를 술탄으로 추대하였다.[1] 이러한 상황에 불안을 느낀 아흐마드는 흑양조에 도움을 요청했다.[1] 흑양조의 군대는 아흐마드의 기대대로 샤이흐 알리를 격파하였고,[1] 아흐마드는 바야지트를 처리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3. 티무르의 침입과 망명 (1384년 ~ 1405년)
1386년 티무르가 다시 침략해 오자, 킵차크 한국의 토크타미시에게 이미 큰 피해를 입었던 아흐마드는 수도 타브리즈를 버리고 바그다드로 도망갔다. 타브리즈는 정복되었고, 주민들은 무거운 세금을 내야 했다. 이전에 티무르에게 항복했던 아딜 아카는 티무르의 명으로 타브리즈를 다스리다 부패 혐의로 처형당했다.[2]
이후 아흐마드는 티무르의 침입과 내부 혼란으로 인해 여러 차례 망명 생활을 했다.
3. 1. 1차 침입 (1384년)
1384년 티무르가 자라이르 왕조의 영토로 침입하여 바야지트가 차지하고 있던 솔타니예를 점령했다.[2] 티무르는 솔타니예를 아딜 아카에게 맡기고 잠시 철수하였는데, 아흐마드는 티무르가 철수한 틈을 타 솔타니예 탈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2]3. 2. 킵차크 한국과의 전쟁 (1385년)
1385년 티무르와 킵차크 한국의 토크타미시 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 때문에 킵차크 한국과 티무르 제국 사이에 위치하고 있던 자라이르 왕조는 큰 타격을 입었다.[2] 아제르바이잔은 황폐화되었고 타브리즈는 약탈당했다.[2]3. 3. 2차 침입과 바그다드 함락 (1393년)
1393년 티무르는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티무르는 8월 말에 바그다드에 도착하여 공격을 가했다. 아흐마드는 도시를 방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맘루크 왕조로 망명했다. 술탄이 사라진 바그다드를 정복한 티무르는 많은 인질과 배상금을 요구했지만 도시를 약탈하지는 않았다.[2] 티무르는 바그다드를 떠나며 사르바다르의 콰자 마수드 사브자와리에게 바그다드의 통치권을 부여했다.3. 4. 바그다드 복귀와 재함락 (1394년 ~ 1401년)
1394년,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로 돌아왔다. 당시 바그다드를 통치하고 있던 사르바다르의 크와자 마수드 사브자바리는 아흐마드가 돌아오자 바그다드를 포기하고 도망쳤다. 하지만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친 아흐마드의 인기는 떨어졌고, 1397년(혹은 1398년)에는 아흐마드를 살해하려는 음모까지 발각되었다.[2] 불안감을 느낀 아흐마드는 흑양조의 카라 유수프에게 도망쳐 도움을 요청했다. 카라 유수프는 군대를 일으켜 바그다드까지 진격했으나 바그다드에 다다르자 아흐마드를 무시하고 바그다드를 약탈하려 했다. 아흐마드는 간신히 카라 유수프를 제지하고 돌려보냈다.흑양조의 군대가 물러났으나 아직 위기를 완전히 모면한 것은 아니었다. 1398년, 티무르의 아들이자 아제르바이잔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미란 샤는 티무르의 명령을 받고 바그다드를 침공했다. 하지만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고 미란 샤는 소득없이 물러났다. 1399년에는 조지아 왕국 군대가 알렌자크를 점령한 뒤 바그다드까지 진군했으나 진영 내에서 반란이 일어나 후퇴하였다.
1400년, 동쪽으로 원정을 갔었던 티무르가 돌아오자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를 버리고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다. 1401년, 티무르의 공격을 버티지 못한 바그다드는 두 번째로 함락당했고 이번엔 약탈과 파괴를 피할 수 없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학살당했고 수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3. 5. 흑양조와의 동맹과 배신 (1402년 ~ 1403년)
1402년, Kara Yusuf|카라 유수프tr와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를 정복했지만, 바그다드 점령 후 카라 유수프는 아흐마드를 추방했다.[2]쫓겨난 아흐마드는 다시 한번 맘루크 왕조에 망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티무르를 두려워했던 맘루크 왕조는 아흐마드를 감옥에 가두었다. 1403년, 카라 유수프 역시 티무르에게 쫓겨 맘루크 왕조에 망명을 요청했지만,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재회한 아흐마드와 카라 유수프는 다시 우정을 맹세하고, 카라 유수프는 아제르바이잔, 아흐마드는 이라크 지역을 차지하기로 약속했다.[2]
4. 티무르 사후 복귀와 최후 (1405년 ~ 1410년)
1405년 티무르가 사망하자, 맘루크 왕조는 아흐마드를 석방했다.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로 돌아왔으나, 아제르바이잔을 되찾기 위해 카라 코윤루를 공격했다. 그는 잠시 타브리즈를 점령했지만, 1410년 8월에 카라 유수프에게 패배하여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4. 1. 흑양조와의 전투와 죽음
1405년 티무르가 사망하자 맘루크 왕조는 아흐마드와 카라 유수프를 석방했다. 약속대로 카라 유수프는 타브리즈로 갔고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로 갔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410년 아흐마드는 카라 유수프와의 약속을 깨고 흑양조를 공격했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전투에서 패한 아흐마드는 아들인 알라 알다울라(Ala al-Daula)와 함께 카라 유수프에 의해 처형당했다.아흐마드가 죽자 그의 조카인 왈라드(Walad/Valad)가 술탄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411년, 흑양조의 군대는 바그다드를 함락시켰고 왈라드는 술탄의 자리에 오른 지 1년 만에 처형당했다. 이후 자라이르 왕조는 이라크 남부로 내려가서 20여년간 존속하다가 1432년에 흑양조 군대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5. 잘라이르 왕조의 멸망 (1411년 ~ 1432년)
1405년 티무르가 사망하자,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술탄 나시르 앗딘 파라지는 아흐마드를 석방했다.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로 돌아갔고, 카라 유수프는 타브리즈에 거주했다. 그러나 흑양조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아흐마드는 아제르바이잔을 되찾기를 원했고, 그 결과 카라 코윤루를 공격했다. 그는 잠시 타브리즈를 점령했지만 1410년 8월에 패배하여 카라 유수프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아흐마드의 아들 알라 웃 다울라도 살해되었다. 아흐마드의 조카 샤 발라드 잘라이르가 잠시 바그다드를 계승했지만, 카라 코윤루가 1년 후에 그 도시를 점령했다.[1]
잘라이르 왕조는 결국 남쪽으로 밀려나 하부 이라크로 들어가 힐라, 와시트 및 바스라의 도시들을 통치하다가 1432년에 카라 코윤루에게 패배하면서 멸망했다.[2]
5. 1. 아흐마드 사후 권력 투쟁
1410년 아흐마드는 흑양조의 카라 유수프와의 약속을 깨고 흑양조를 공격했으나 대패했다. 전투에서 패한 아흐마드는 아들인 알라 알다울라와 함께 카라 유수프에 의해 처형당했다.아흐마드가 죽자 그의 조카인 왈라드가 술탄이 되었다. 1411년, 흑양조의 군대는 바그다드를 함락시켰고 왈라드는 술탄의 자리에 오른 지 1년 만에 처형당했다.[1] 이후 자라이르 왕조는 이라크 남부로 내려가 20여 년간 존속하다가 1432년에 흑양조 군대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2]
5. 2. 멸망
1405년 티무르가 사망하자 자라이르 왕조는 재기했지만, 1410년 아흐마드가 흑양조의 카라 유수프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처형되었다.[1] 아흐마드의 조카인 왈라드(Walad/Valad)가 술탄이 되었으나, 1411년 흑양조에게 바그다드를 함락당하고 처형되었다.[1] 이후 자라이르 왕조는 이라크 남부로 내려가 20여 년간 존속하다 1432년 흑양조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1]6. 아흐마드와 고려-조선 관계
아흐마드의 재위 기간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격동기와 겹친다. 이 시기 고려와 조선은 원 제국의 쇠퇴와 명 제국의 부상, 그리고 빈번한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복잡한 외교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2]
6. 1. 고려말-조선초 외교 상황
元末明初|원말명초중국어와 倭寇|왜구중국어 등으로 고려와 조선은 외교적 어려움을 겪었다.6. 2. 잘라이르 왕조와 교류 가능성
고려와 조선은 이슬람 세계와 제한적인 교류를 했으나, 아흐마드의 서방 외교 정책을 고려할 때 잘라이르 왕조와 고려 또는 조선 간의 직접적인 접촉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2]7. 평가
아흐마드는 격동의 시대에 왕조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외부 침략과 내부 분열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의 통치는 티무르 제국의 부상과 쇠퇴, 그리고 흑양조와의 관계로 점철되었다.[2]
1382년 형을 살해하고 군주로 즉위했지만, 1386년부터 티무르의 침략으로 맘루크 왕조로 도망쳤다. 1396년 티무르가 귀환하자 맘루크 왕조의 원군을 얻어 바그다드를 탈환했으나, 1400년 티무르의 재침공으로 다시 도망쳤다. 1405년 티무르 사후 바그다드로 돌아와 왕조를 부활시켰지만, 1410년 흑양조의 카라 유수프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처형되었다.
참조
[1]
서적
The Jalayirids: Dynastic State Formation in the Mongol Middle East
https://www.jstor.or[...]
Edinburgh University Press
[2]
간행물
The Kurdish Principality of Hakkariya (14th-15th Centuries), Iran & the Caucasus, Vol. 7, No. 1/2
[3]
서적
Devletler ve hanedanlar: Turkiye (1074-1990)
Kültür Bakanlığ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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