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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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411년은 명나라 영락제 치세, 일본 오에이 시대, 후 쩐 왕조 쭝꽝 3년, 조선 태종 11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주요 사건으로는 독일 기사단과 폴란드-리투아니아-독일 기사단 전쟁을 종식시키는 토룬 제1조약 체결, 오스만 왕조 간극에서 무사 첼레비의 집권, 명나라 정화의 두 번째 항해, 스코틀랜드 하롤 전투,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간 셀림브리아 조약 체결, 중국 대운하 복원 공사 시작 등이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의 정화가 실론 왕을 영락제에게 바쳤고, 중국 대운하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명나라 사신을 추방하고 조선에 대장경을 요청했다. 유럽에서는 토룬 제1조약 체결, 오스만 왕조 간극, 하롤 전투, 셀림브리아 조약 체결, 잉글랜드 의회 소집 등이 있었다. 주요 사망 인물로는 요프스트, 에사우 데 부온델몬티, 레오폴트 4세, 할릴 술탄 등이 있으며, 박원형, 이정녕 등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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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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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정보 | |
그레고리력 | 1411 |
로마 숫자 | MCDXI |
간지 | 신묘년 |
발생 | |
날짜 미상 | 명나라에서 《영락대전》 편찬을 시작하다. |
날짜 미상 | 아유타야 왕국의 제7대 왕 람라차티랏이 사망하다. |
탄생 | |
2월 11일 | 교황 알렉산데르 6세, 교황 (1503년 사망) |
날짜 미상 | 요한 4세, 몽페라토 후작 (1445년 사망) |
사망 | |
5월 18일 | 조비니, 로마 가톨릭 추기경 |
날짜 미상 | 람라차티랏, 아유타야 왕국의 왕 |
2. 연호
3. 사건
- 1411년 2월 1일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과 튜턴 기사단이 제1차 토룬 조약을 체결했다.[1]
- 1411년 2월 17일 - 오스만 왕조 간극: 무사 첼레비가 형 슐레이만 첼레비를 몰아내고 수도 에디르네를 장악하면서, 유럽의 오스만 영토(루멜리아) 지배권이 무사에게 넘어갔다.[1]
- 1411년 7월 6일 - 명나라의 정화가 두 번째 항해를 마치고 난징으로 돌아와 명-코테 전쟁 중에 사로잡은 실론 왕을 영락제에게 바쳤다.[1]
- 1411년 7월 24일 - 스코틀랜드 왕국에서 하롤 전투가 벌어져, 아이슬레이의 도널드, 아일 오브 아일스의 영주와 마 백작 알렉산더 스튜어트가 이끄는 군대가 무승부를 기록했다.
- 1411년 9월 3일 -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사이에 셀림브리아 조약이 체결되었다.
- 1411년 9월 21일 - 잉글랜드의 헨리 4세가 9번째 의회를 소집했다.
- 1411년 11월 30일 - 헨리 4세가 왕세자 헨리 5세와 그의 지지자들을 정부에서 해임했다.
- 명나라 영락제 치세에, 앞선 원나라 시대에 방치되어 훼손되었던 중국 대운하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1411년에서 1415년 사이에 총 16만 5천 명의 노동자가 산둥에서 운하 바닥을 준설하고, 새로운 수로, 제방, 수문을 건설하였다. 산둥에는 지역 지하수에 의존하는 대신 수위 조절을 위해 네 개의 대형 저수지도 건설되었다. 또한, 운하로 웬허의 물을 남서쪽에서 유입시키기 위한 대규모 댐도 건설되었다.[1]
-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스만 왕위 계승 전쟁 기간 중 비잔티움 제국이 슐레이만 첼레비를 지지함에 따라, 오스만 왕위 계승자인 무사 첼레비에 의해 짧게 포위되었다.
- (아마도 1412년 초) 오스만 왕위 계승 전쟁 중에 메흐메드 1세와 무사 첼레비 사이에 인체지즈 전투가 벌어졌다.
- 조선에서는 명나라 사신의 입경 거부로 인해 1432년까지 국교가 단절되었다.[1]
- 아시카가 요시모치와 오우치 모리미가 조선에 대장경을 요청했다.
- 음력 7월 - 히다 국 국사 아네가코지 스케쓰나가 반란을 일으켜 막부에 의해 히다 고시마 성에서 살해당했다. 사쓰마 국에서 시부야 씨가 반란을 일으켜 시마즈 모토히사와 이지인 요리히사와 싸웠다.
- 음력 8월 - 시마즈 모토히사가 사망하고, 시마즈 히사토요가 계승했다. 호소카와 모토모치가 이즈미 국 반국 수호가 되었다.
- 음력 9월 -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명나라의 사신 왕진을 효고에서 추방하고, 감합무역이 단절되었다.
- 음력 10월 (윤달) - 고후쿠지에서 낙뢰로 탑 3기와 금당 등이 불탔다.
- 이큐 소준이 아시카가 요시모치를 알현했다.
3. 1. 동아시아
3. 1. 1. 조선
- 태종 11년
- 음력 윤12월 19일 - 이정녕 출생
- 월일 미상 - 강곤, 송문림, 이채 출생
사망일 | 이름 |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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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15일 | 윤사수 |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
음력 5월 22일 | 이조 | 참지의정부사 |
음력 6월 4일 | 서유 | 이성군(利城君) |
음력 6월 9일 | 김천석 | 경기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 |
음력 8월 10일 | 박원형 | |
음력 10월 6일 | 신유현 | 이성도병마사(泥城都兵馬使) |
음력 10월 8일 | 허응 | 개성유후(開城留後) |
음력 10월 15일 | 조휴 | 판강릉대도호부사(判江陵大都護府事) |
음력 10월 19일 | 이성중 | 검교의정부좌정승(檢校議政府左政丞) |
음력 11월 13일 | 안원 | 개성유후 |
음력 11월 29일 | 고봉례 |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
3. 1. 2. 명나라
명나라 영락 9년- 1411년 7월 6일 - 명나라의 정화가 두 번째 항해를 마치고 난징으로 돌아와 명-코테 전쟁 중에 사로잡은 실론 왕을 영락제에게 바쳤다.[1]
- 명나라 영락제 치세에, 앞선 원나라 시대에 방치되어 훼손되었던 중국 대운하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1411년에서 1415년 사이에 총 16만 5천 명의 노동자가 산둥에서 운하 바닥을 준설하고, 새로운 수로, 제방, 수문을 건설하였다. 산둥에는 지역 지하수에 의존하는 대신 수위 조절을 위해 네 개의 대형 저수지도 건설되었다. 또한, 운하로 웬허의 물을 남서쪽에서 유입시키기 위한 대규모 댐도 건설되었다.[1]
- 명나라 사신의 입경 거부로 1432년까지 국교가 단절되었다.[1]
3. 1. 3. 일본
- 応永|오에이일본어 18년
- 7월 (음력) - 히다 국(飛騨国) 국사(国司) 아네가코지 스케쓰나(姉小路尹綱)가 반란을 일으켜 막부에 의해 히다 고시마 성(飛騨小島城)에서 살해당했다. 사쓰마 국(薩摩国)에서 시부야 씨(渋谷氏)가 반란을 일으켜 시마즈 모토히사와 이지인 요리히사(伊集院頼久)와 싸웠다.
- 8월 (음력) - 시마즈 모토히사가 사망하고, 시마즈 히사토요(島津久豊)가 계승했다. 호소카와 모토모치(細川持氏)가 이즈미 국(和泉国) 반국(半国) 수호(守護)가 되었다.
- 9월 (음력) -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명나라의 사신 왕진(王進)을 효고(兵庫)에서 추방하고, 감합무역이 단절되었다.
- 10월 (음력 윤달) - 고후쿠지(興福寺)에서 낙뢰로 탑 3기와 금당 등이 불탔다.
- 아시카가 요시모치와 오오우치 모리미(大内盛見)가 조선에 대장경을 요청했다. 이큐 소준(一休宗純)이 아시카가 요시모치를 알현했다.
- 명나라 사신의 입경 거부로 인한 국교 단절(~1432년)
3. 2. 오스만 제국
- 1411년 2월 17일 – 오스만 왕조 간극: 무사 첼레비가 형 슐레이만 첼레비를 몰아내고 수도 에디르네를 장악하면서, 유럽의 오스만 영토(루멜리아) 지배권이 무사에게 넘어갔다.[1]
- 1411년 9월 3일 –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사이에 셀림브리아 조약이 체결되었다.
-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스만 왕위 계승 전쟁 기간 중 비잔티움 제국이 슐레이만 첼레비를 지지함에 따라, 오스만 왕위 계승자인 무사 첼레비에 의해 짧게 포위되었다.
- (아마도 1412년 초) 오스만 왕위 계승 전쟁 중에 메흐메드 1세와 무사 첼레비 사이에 인체지즈 전투가 벌어졌다.
3. 3. 유럽
- 1411년 2월 1일 – 독일 기사단 국가와 폴란드-리투아니아-독일 기사단 전쟁을 종식시키는 토룬 제1조약이 토룬에서 체결되었다.[1]
- 1411년 2월 17일 – 오스만 왕조 간극: 무사 첼레비가 형 슐레이만 첼레비를 몰아내고 수도 에디르네를 장악하면서, 유럽의 오스만 영토(루멜리아) 지배권이 무사에게 넘어간다.[1]
- 1411년 7월 24일 – 스코틀랜드 왕국에서 하롤 전투가 벌어져, 아이슬레이의 도널드, 아일 오브 아일스의 영주와 마 백작 알렉산더 스튜어트가 이끄는 군대가 피비린내 나는 무승부를 기록한다.
- 1411년 9월 3일 –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사이에 셀림브리아 조약이 체결된다.
- 1411년 9월 21일 – 잉글랜드의 헨리 4세가 9번째 의회를 소집한다.
- 1411년 11월 30일 – 헨리 4세가 왕세자 헨리 5세와 그의 지지자들을 정부에서 해임한다.
-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왕위 계승 전쟁 기간 중 비잔티움 제국이 슐레이만 첼레비를 지지함에 따라 오스만의 왕위 계승자 무사 첼레비에 의해 짧게 포위되었다.
- (아마도 1412년 초) 오스만 왕위 계승 전쟁 중에 라이벌 형제인 메흐메드 1세와 무사 첼레비 사이에 인체지즈 전투가 벌어졌다.
4. 탄생
5. 사망
- 윤사수 - 조선의 참지의정부사였다. [1]
- 이조 - 조선의 참지의정부사였다. [2]
- 서유 - 조선의 이성군이었다.
- 김천석 - 조선의 경기도관찰사였다.
- 신유현 - 조선의 이성도병마사였다.
- 허응 - 조선의 개성유후였다.
- 조휴 - 조선의 판강릉대도호부사였다.
- 이성중 - 조선의 검교의정부좌정승이었다.
- 안원 - 조선의 개성유후였다.
- 고봉례 - 조선의 우군동지총제였다.
- 요프스트 - 모라비아의 통치자이자 로마 왕이었다.
- 에사우 데 부온델몬티 - 에피로스 데스포타국의 통치자였다.
- 레오폴트 4세 - 오스트리아 공작이었다.
- 앤 드 모티머 - 캠브리지 백작 부인이었다.
- 칼릴 술탄 - 트란속시아나의 통치자였다.
- 하스다이 크레스카스 - 유대 철학자였다.
- 야마시나 노리토키 - 남북조 시대, 무로마치 시대의 공가였다.
- 시마즈 모토히사 - 남북조 시대, 무로마치 시대의 무장이자, 시마즈씨 제7대 당주였다.
- 할릴 술탄 - 티무르 제국의 제2대 군주였다.
참조
[1]
서적
The Sons of Bayezid: Empire Building and Representation in the Ottoman Civil War of 1402-13
https://books.google[...]
BRILL
[2]
웹사이트
Richard, 3rd duke of York English noble
https://www.britanni[...]
20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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