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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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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염행은 후한 말, 위나라 시대의 인물로, 한수의 부하로 시작하여 조조에게 귀순한 인물이다. 젊은 시절부터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한수와 마초 간의 다툼에서 마초를 공격하기도 했다. 209년 조조를 방문하여 건위태수에 임명되었고, 한수에게 조조에게 귀순할 것을 권유했다. 이후 관중십장의 조조에 대한 반대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한수의 배신으로 조조에게 항복하여 열후에 봉해졌다. 이후 한수가 강족의 공격을 받자 도망치려 했으나, 한수의 죽음으로 화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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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행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염행 (閻行)
본명염염 (閻艷)
언명 (彥明)
출생지량주금성군 유중현
사망지미상
배우자한수의 딸
소속한수조조
직책건위군 태수, 열후
관직 경력
건위태수 임기 시작209년
통치 군주한나라 헌제
재상조조
기타 정보

2. 생애

염행은 어릴 적부터 용맹한 남자로 평판이 있었으며, 처음에는 한수의 부하로 발탁되었다.[3] 젊어서부터 건장하다고 이름이 났다.[1]

건안 초, 한수와 마등 사이에서 양주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다. 이때, 역시 강자로 명성이 높았던 마초를 찌르려다 가 부러졌다. 부러진 모로 마초의 을 가격해 거의 죽을 뻔하게 만들었다.[3][1]

209년(건안 14년), 한수의 사신으로서 조조를 방문했다. 빈객으로 대접받았으며, 조조의 상주를 통해 건위[4]태수로 임명되었다.[5] 염행 측에서는, 조조에게 조정 내에서 늙은 아버지의 신원 인수를 편의를 봐 달라고 요청했고, 그 약속을 받아냈다. 귀환한 염행은 "양주는 군민 모두 피폐해졌으니, 조조에게 빨리 귀순해야 합니다."라고 제언했다. 게다가 "저는 친부를 조조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한수도 아들을 인질로 내놓아 귀순을 타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진언했다. 한수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210년, 한수가 중앙을 대신해 무위태수 장맹을 토벌하러 갔을 때는 염행이 본거지를 지켰다.[9]

211년,[10] 마초 등 관중십장이 조조에 대항하기로 뜻을 모으고 한수를 설득하였다. 염행은 이에 가담하지 말라고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중십장과 조조는 동관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다. 한수가 조조와 회담할 때 염행이 호위하였다. 조조는 염행에게 "(장안에 있는 늙은 아버지에게) 효도할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6] 관중십장은 완패하여 한수와 염행도 금성군으로 돌아왔다. 조조는 염행이 개전에 반대했다는 것을 듣고 수도에 와있던 한수의 자손만을 주살하고 염행의 아버지는 살려주었다. 한수는 염행도 같은 일을 당해 자신과 한마음이 되기를 바랐다. 이에 어린 딸을 염행에게 강제적으로 혼인시켰다. 조조는 과연 염행을 의심하였다.

214년, 한수는 그런 짓을 해놓고, 염행에게 별군을 이끌고 서평군의 통치를 일임했다. 염행은 모반하여, 한수의 목을 조조에게 바치려 싸움을 걸었다.[7] 그러나, 한수가 강족의 비호를 구하고, 강족이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를 토벌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처자를 데리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조조는 조정에 상주하여, 염행을 열후로 발탁했다.

215년, 조조는 한중 침공에 대비하여, 하후연의 군대를 양주에서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고, 염행을 한수에 대한 대비로 삼았다.

후에, 한수가 강족 등 이민족의 군세 수만 명을 이끌고 역습을 꾀하자, 두려워한 염행은 성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한수가 교전 전에 부하의 배신으로 살해되었기[8] 때문에, 염행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후, 사서에서 그의 기술은 확인할 수 없다.

2. 1. 초기 생애와 용맹

염행은 어릴 적부터 용맹한 남자로 평판이 있었으며, 처음에는 한수의 부하로 발탁되었다.[3] 젊어서부터 건장하다고 이름이 났다.[1]

건안 초, 한수와 마등 사이에서 양주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다. 이때, 역시 강자로 명성이 높았던 마초를 찌르려다 가 부러졌다. 부러진 모로 마초의 을 가격해 거의 죽을 뻔하게 만들었다.[3][1]

209년, 양주에 남은 한수의 사자로서 조조를 방문했다. 빈객으로 대접받았으며, 조조의 상주를 통해 검위[4]태수로 임명되었다.[5] 염행 측에서는, 조조에게 조정 내에서 늙은 아버지의 신원 인수를 편의를 봐 달라고 요청했고, 그 약속을 받아냈다. 귀환한 염행은 "양주는 군민 모두 피폐해졌으니, 조조에게 빨리 귀순해야 합니다."라고 제언했다. 게다가 "저는 친부를 조조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한수도 아들을 인질로 내놓아 귀순을 타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진언했다. 한수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무렵, 장맹이 반란을 일으키자, 한수는 토벌에 출진했고, 염행에게 유수를 맡겼다. 출장에서 돌아온 한수는, 기다리고 있던 마초 등에게 조조에 대한 모반을 꾸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동조하여 맹주로 옹립되었다. 이 말을 들은 염행이 간언했지만, 한수는 마초와의 맹약과 조조에 대한 반역을 재고하지 않았다.

211년, 조조와의 싸움이 시작되자, 한수는 화음이라는 곳에서 조조와 회담 자리를 마련했다. 이때 염행은 한수의 호위로서 멀리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회담 중, 조조는 염행에게 "(장안에 있는 늙은 아버지에게) 효도할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6]

2. 2. 한수의 사신으로 조조 방문 (209년)

젊어서부터 건장하다고 이름이 났다.[1] 건안 초, 한수와 마등전쟁을 벌였을때, 마등의 아들이자 역시 건장하다고 이름난 마초를 찌르려다 가 부러졌다. 부러진 모로 마초의 을 가격해 거의 죽을 뻔하게 만들었다.[1] 209년(건안 14년), 한수는 그를 한나라 중앙 정부와 꼭두각시 헌제를 장악한 군벌 조조에게 사신으로 보냈다.[1] 조조는 염행을 잘 대우했고 그를 건위태수에 임명했다.[1] 염행은 가족을 황도 허(許, 현재의 쉬창, 허난성)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받은 후 한수로 돌아가, 한수에게 조조의 신하가 되어 아들 중 한 명을 "인질"로 허에 보내 중앙 정부에 충성을 표할 것을 조언했다.[1] 한수는 처음에는 그렇게 하기를 꺼렸지만, 결국 동의하여 가족을 인질로 허에 보냈다.[1]

2. 3. 관중십장과 동관 전투 (211년)

젊어서부터 건장하다고 이름이 났다. 건안 초, 한수마등전쟁을 벌였는데, 이때 마초를 찌르려다 가 부러졌다. 부러진 모로 마초의 을 가격해 거의 죽을 뻔하게 만들었다.[1] 209년(건안 14년), 한수의 사신으로서 조조를 방문하여 후한 대접을 받고 건위태수에 임명되자 그 아버지를 숙위시켜달라고 청하였다. 한수에게로 돌아와 조조에게 귀부해야 한다고 진언하며 아들을 인질로 보낼 것을 제안했으나, 한수는 처음에는 관망하였다.[9]

211년,[10] 마초 등 관중십장이 조조에 대항하기로 하고 한수를 설득할 때, 염행은 이에 가담하지 말라고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중십장은 동관 일대에서 조조와 전투를 벌였고, 이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한수가 조조와 회담할 때 염행이 호위하였으며, 조조는 염행에게 효자가 되라고 말하였다.[2] 관중십장의 완패 후 한수와 염행은 금성군으로 돌아왔다. 조조는 염행이 개전에 반대했다는 것을 듣고 수도에 와있던 한수의 자손만을 주살하고 염행의 아버지는 살려주었다. 한수는 염행도 같은 일을 당해 자신과 한마음이 되기를 바라며 어린 딸을 염행에게 강제적으로 혼인시켰다. 조조는 과연 염행을 의심하였고, 이후 서평군에 있게 되자 한수를 공격했으나 패하여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조조에게로 도주하였다. 조조는 옌싱을 열후(列侯)로 봉했다.

2. 4. 한수의 배신과 조조에게 귀순

젊어서부터 건장하다고 이름이 났으며, 처음에는 한수의 부하로 발탁되었다.[3] 건안 초, 한수와 마등전쟁을 벌였을 때, 마초를 찌르려다 가 부러졌다. 부러진 모로 마초의 을 가격해 거의 죽을 뻔하게 만들었다.[1]

209년, 한수의 사신으로서 조조를 방문하였다. 후한 대접을 받고 건위태수에 임명되자[4][5]아버지를 숙위시켜달라고 청하였다. 한수에게로 돌아와 ‘군을 일으킨 지 30여 년인데 백성과 병사들은 피폐하고 은 협소하니 어서 조조에게 귀부해야한다’면서 아들 한 명을 보내라고 진언하였다. 한수는 일단 관망을 택했다가 후일 자식을 보냈다.[9]

211년,[10] 마초 등 관중십장이 조조에 대항하기로 뜻을 모으고 한수를 설득하였을때, 염행은 이에 가담하지 말라고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중십장과 조조는 동관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다. 한수가 조조와 회담할 때 염행이 호위하였다. 조조는 염행더러 효자가 되라고 말하였다.[6] 관중십장은 완패하여 한수와 염행도 금성군으로 돌아왔다. 조조는 염행이 개전에 반대했다는 것을 듣고 수도에 와있던 한수의 자손만을 주살하고 염행의 아버지는 살려주었다. 한수는 염행도 같은 일을 당해 자신과 한마음이 되기를 바랐다. 이에 어린 딸을 염행에게 강제적으로 혼인시켰다. 조조는 과연 염행을 의심하였다. 이후 서평군에 있게 되자 한수를 공격했는데 패하여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조조에게로 도주하였다. 조조가 표를 올려 열후(列侯)로 봉해주었다.

2. 5. 조조 사후 행적

젊어서부터 건장하다고 이름이 났다. 건안 초, 한수마등전쟁을 벌였는데, 이때 염행은 마등의 아들 마초를 찌르려다 가 부러졌다. 부러진 모로 마초의 을 가격해 거의 죽을 뻔하게 만들었다.[1] 209년(건안 14년), 한수의 사신으로서 조조를 방문하여 후한 대접을 받고 건위태수에 임명되자 그 아버지를 숙위시켜달라고 청하였다. 한수에게로 돌아와 조조에게 귀부해야 한다고 진언하며 아들을 인질로 보낼 것을 권하였으나, 한수는 관망을 택했다.[2] 210년, 한수가 중앙을 대신해 무위태수 장맹(張猛)을 토벌하러갔을 때는 염행이 본거지를 지켰다.[9]

211년,[10] 마초 등 관중십장이 조조에 대항하기로 하고 한수를 설득할 때, 염행은 이에 가담하지 말라고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중십장과 조조는 동관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고, 한수가 조조와 회담할 때 염행이 호위하였다. 조조는 염행에게 효자가 되라고 말하였다. 관중십장은 완패하여 한수와 염행도 금성군으로 돌아왔다. 조조는 염행이 개전에 반대했다는 것을 듣고 수도에 와있던 한수의 자손만을 주살하고 염행의 아버지는 살려주었다. 한수는 염행도 같은 일을 당해 자신과 한마음이 되기를 바랐고, 이에 어린 딸을 염행에게 강제적으로 혼인시켰다. 조조는 과연 염행을 의심하였다. 이후 서평군에 있게 되자 한수를 공격했는데 패하여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조조에게로 도주하였다. 조조가 표를 올려 열후(列侯)로 봉해주었다.

참조

[1] 서적 Weilue annotation in Sanguozhi vol. 15
[2] 서적 Weilue annotation in Sanguozhi vol. 15
[3] 문서
[4] 문서
[5] 문서
[6] 문서
[7] 문서
[8] 문서
[9] 서적 전략 배송지 주석, 《삼국지》18권 위서 제18 방육(龐淯)에서 인용
[10] 서적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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