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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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락대전은 1404년 명나라 영락제의 명으로 시작되어 1408년에 완성된 중국의 대형 백과사전이다. 2,169명의 학자들이 동원되어 편찬되었으며, 총 11,095권, 22,937책으로 구성되었다. 경사자집, 제자백가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수집하여, 홍무정운의 운서 순서에 따라 배열하여 검색의 편의성을 높였다. 원본은 명나라 말기에 소실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에 약 400권 정도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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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선》은 명나라 이반룡이 편찬한 당나라 시 선집으로, 성당 시기의 시를 중심으로 두보, 이백, 왕유 등의 작품을 수록하고 동아시아 시문학에 영향을 미쳤으나, 위작 논란이 제기되었다. - 명나라의 문학 - 본초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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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은 강희제의 명으로 편찬되어 1726년에 완성된 백과사전으로, 고대부터 청나라 초기까지의 문헌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천문, 지리, 인간, 자연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영락대전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유형 | 백과사전 |
언어 | 한문 |
시대 | 명나라 |
완성 연도 | 1408년 |
편찬 | 영락제 |
총 책임자 | 해진 |
부 책임자 | 요광효, 김헌 |
참여 학자 | 3,000여 명 |
원래 권 수 | 22,937권 |
현존 권 수 | 400여 권 (원본은 없음) |
주제 | 유교 경전, 역사, 지리, 예술, 과학 등 |
특징 | |
특징 | 중국 역사상 가장 큰 백과사전 다양한 분야의 지식 집대성 |
역사 | |
편찬 동기 | 영락제의 권위 강화 이전 시대의 지식 통합 |
제작 과정 | 1403년 편찬 시작 1408년 완성 필사본으로 제작 |
보관 | 난징의 문연각에 보관 |
소실 | 대부분 소실 일부는 약탈, 분실 등으로 유출 |
가치 | |
가치 | 명나라 시대의 귀중한 자료 중국 문화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 유실된 고대 문헌의 내용 일부 포함 |
참고 자료 | |
참고 자료 | 사고전서 중국철학사대사전 |
관련 정보 | |
관련 정보 | 속자치통감강목 문헌통고 |
2. 연혁
1404년 명나라에서 문헌대성(文獻大成)이 완성되었고, 1407년 영락대전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정본(正本) 1부가 제작되었다.[20] 1562년에는 부본(副本) 1부가 제작되었다.[20]
영락제는 1404년 한림원 출신 학자 100명에게 『문헌총서(A Complete Work of Literature)』 편찬을 명했으나,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자료를 추가할 것을 지시했다.[4] 1405년에는 학자 수를 2,169명으로 늘려 중국 전역에서 자료를 수집, 영락대전을 편찬하게 했다.[4] 영락대전은 중국 고전의 주석, 역사, 철학, 예술, 과학 등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완성 후 영락제는 직접 서문을 작성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5]
명나라 말기 혼란으로 화재와 도난 등이 발생하여 정본 1부(1407)를 제외한 원본과 부본은 소실되었다.[20] 청나라 시기에는 사고전서 편찬에 참조되었다.[20]
1860년 영국과 프랑스군에 의한 애로호 사건(제2차 아편전쟁)으로 약탈 및 소실되었다.[20] 당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에 침입했을 때, 영락대전을 빗물에 젖은 길바닥에 펼쳐놓았다고 한다.[20] 1900년 의화단 운동과 팔국연합군의 베이징 점령 등으로 추가 소실되었다.[20] 청나라의 문정식(文廷式)은 100권 이상을 훔쳐 자택에 보관했다고 한다.[20]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중국 베이징의 중국 국가도서관(中國國家圖書館)에 162권,[21] 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원에 62권,[22] 미국 미국 의회도서관에 41권,[23] 일본의 동양문고에 34권[24] 등 각지에 분산되어 남아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책들을 모으면 약 400권 정도가 된다고 하며, 그것을 집성한 영인본도 중화서국에서 출판되었지만, 그래도 영락대전 전체에서 보면 수 퍼센트 정도의 분량에 불과하다. 일본에도 정가당문고와 천리대 부속 천리도서관 등에 소장본이 있다.
3. 편찬 배경 및 과정
3. 1. 배경
영락제(1402~1424)는 군사적 업적으로 유명하지만, 독서를 즐기던 지식인이었다.[3]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희귀한 책을 보존하고 연구를 단순화하기 위해 문학 작품을 분류하는 참고용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계기가 되었다.[4][5] 이러한 사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영락제가 한림원의 기능을 개편한 것이었다.[4]
영락제 이전의 한림원은 선포와 칙령 초안 작성과 같은 다양한 서기 업무를 담당했다.[4] 영락제는 한림원의 지위를 높여 한림원에 최고위급 신입생만을 선발하기 시작했다.[3] 서기 업무는 황실 관리들에게 맡겨졌고, 엘리트 학자들로 가득 찬 한림원은 황제를 위한 문학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3]
3. 2. 편찬 과정
영락제(1402~1424)의 명으로 1405년(태종 5년)에 학자 2,169명이 영락대전 편찬에 참여하였다.[4][5] 영락제는 개인 고문이자 승려였던 도연(Dao Yan)과 유집기(Liu Jichi)를 공동 편집자로 임명하여 요광효(Yao Guangxiao)를 지원하도록 하였다.[5] 이들은 총편집자 요광효의 지휘 아래 4년 동안 『류서(類書, leishu)』 백과사전을 편찬하였다.[6][7]
1408년(태종 8년) 남경(현재 난징대학교)의 국자감(Guozijian)에서 완성되었다.[8] 약 40m3의 공간을 차지하는 11,095권, 22,937권의 필사본[8] 또는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3억 7천만 자의 한자[7][9]로 작성되었다. 이는 약 2억 5천만 개의 영어 단어(《브리태니커 백과사전》(Encyclopædia Britannica)의 약 6배)에 해당한다.[5]
4. 구성 및 특징
《영락대전》은 당시 다른 어떤 중국 백과사전과도 물리적으로 달랐다.[10] 크기가 더 컸고, 특수한 종이를 사용했으며, "포배장(包背裝, bao bei zhuang)" 방식으로 제본되었다.[11] 제목과 저자 이름에 황제 전용 붉은 잉크를 사용한 점은 이 책이 왕실에서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10]
각 권은 노란 비단으로 싸인 딱딱한 표지로 보호되었다.[11] 명나라 시대에 이미 인쇄술이 있었지만, 《영락대전》은 모두 손으로 썼다.[11] 각 필사본 항목은 기존 문헌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일부는 희귀하고 손상되기 쉬운 자료에서 가져온 것이다.[11]
4. 1. 구성
경사자집(經史子集), 제자백가, 천문, 음양, 의복(醫卜), 승도(僧道), 기예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수집하여 홍무정운에 따른 운자의 순서에 따라 배열하였다. 경·사·자·집의 사부에서 천문, 지지(地誌), 음양(陰陽), 의(医)복(卜), 승(僧)도(道), 기예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서를 원본으로 수집하였다. 홍무정운(洪武正韻)이라는 운서(韻書)의 운(韻) 순서에 따라 분류 배열함으로써 검색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다만, 단기간에 완성한 까닭에 조잡한 점도 종종 보인다.그중에는 후세에 산일(散逸)되어 버린 문헌도 포함되어 있다. 현행의 구오대사(舊五代史), 송회요집고(宋會要輯稿), 경세대전(經世大典) 등은 청대에 이 책에서 수집하여 재생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서적이 경부 66종, 사부 41종, 자부 103종, 집부 175종으로 총 4,926권에 달했다고 한다.
4. 2. 특징
은 당시 다른 어떤 중국 백과사전과도 다른 물리적 특징을 지녔다.[10] 크기가 더 컸고, 특수한 종이를 사용했으며, “포배장(包背裝, bao bei zhuang)” 방식으로 제본되었다.[11] 제목과 저자 이름에 황제 전용 붉은 잉크를 사용한 점은 이 책이 왕실에서 제작되었음을 확인시켜 준다.[10]각 권은 노란 비단으로 싸인 딱딱한 표지로 보호되었다.[11] 다른 백과사전과 달리 주제별로 배열되지 않았고, (Hongwu zhengyun) 즉, 음운이나 운율에 따라 글자를 배열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11] 이러한 방식은 독자가 특정 항목을 쉽게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11]
명나라 시대에 이미 인쇄술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은 전적으로 손으로 썼다.[11] 각각의 필사본 항목은 기존 문헌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일부는 희귀하고 손상되기 쉬운 자료에서 유래한 것이었다.[11] 의 중요성은 이러한 자료들을 보존하고 방대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점에 있다.[11]
5. 평가 및 의의
명나라 말기 학자들은 영락제가 백과사전의 사본을 더 만들지 않고 창고에 보관한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5] 청나라 학자 손성택(孫承澤) 등 일부 학자들은 영락제가 정치적 이유로 이 문학 프로젝트를 이용했다고 추측했다.[5] 당시 성리학자들은 영락제의 폭력적인 왕위 찬탈 때문에 과거 시험을 거부하거나 어떤 황실 임무에도 참여하지 않았다.[5] 그러나 영락제의 문학적 사업은 이러한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 그들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5]
영락제는 백과사전에 엄격한 유교적 관점만을 반영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교가 아닌 학자들도 포함되었고, 불교, 도교 및 점술 부분에 기여했다.[5] 이러한 주제들의 포함은 백과사전이 "겨와 쭉정이"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영락제에 대한 비판을 강화시켰다.[5] 그러나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 백과사전은 중국의 광범위한 역사적 작품들을 보존하는 데 있어 귀중한 공헌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많은 작품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경·사·자·집의 사부에서 천문, 지지(地誌), 음양(陰陽), 의(医)복(卜), 승(僧)도(道), 기예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서를 원본으로 수집하고 있다. 그것들을 『홍무정운(洪武正韻)』이라는 운서(韻書)의 운(韻) 순서에 따라 분류 배열함으로써 검색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다만, 단기간에 완성한 까닭에 조잡한 점도 종종 보인다.
그중에는 후세에 산일(散逸)되어 버린 문헌도 포함되어 있다. 현행의 『구오대사(舊五代史)』, 『송회요집고(宋會要輯稿)』, 『경세대전(經世大典)』 등은 청대에 이 책에서 수집하여 재생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서적이 경부 66종, 사부 41종, 자부 103종, 집부 175종으로 총 4,926권에 달했다고 한다.
6. 소실 및 현황
1404년 영락제가 『문헌대성』(文獻大成)을 완성했으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1407년에 『영락대전』으로 이름을 바꾸고 정본(正本) 1부를 제작했다. 1562년에는 부본(副本) 1부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명나라 말기의 혼란기에 화재와 도난 등으로 정본과 부본은 소실되었고, 원본의 행방은 묘연하다.
청나라 시대에 사고전서 편찬에 참조되기도 했으나, 1860년 애로호 사건으로 영국과 프랑스군에게 약탈당하고, 1900년 의화단 운동으로 인해 추가적인 소실을 겪었다. 특히, 문정식(文廷式)은 100권 이상을 훔쳐 자택에 보관하기도 했다.[20]
현재 전 세계에 약 400여 권이 흩어져 남아있으며, 중화서국에서 영인본을 출판했지만, 이는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6. 1. 소실
1562년 부본(副本) 1부가 제작되었으나, 명나라 말기의 혼란으로 인해 화재와 도난 등으로 원본과 정본(1407년 제작)을 포함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3] 청나라 때 사고전서 편찬에 참조되기도 했으나, 1860년 애로호 사건으로 영국과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 및 소실되었다.[20] 1909년 의화단 운동 등으로 추가적인 소실이 발생했다.[6]《영락대전》은 1421년 영락제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기 전까지 남경의 문연각에 보관되어 있었다가, 이후 자금성으로 옮겨졌다. 1557년 가정제 시대에 자금성에 큰 화재가 발생했으나, 《영락대전》은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 1567년 사본이 완성된 후 원본은 분실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6]
- 명나라 말기 소실설: 1644년 반군 지도자 이자성이 명나라 수도 북경을 점령했다가 오삼계와 돌궐의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북경에서 철수하면서 자금성에 불을 질렀는데, 이때 《영락대전》이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12]
- 가정제와 함께 매장설: 가정제가 1566년 12월에 사망하고 3개월 후인 1567년 3월에 매장되었는데, 사본 완성을 기다린 후 함께 매장했을 가능성이 있다.[12]
- 천청궁 화재 소실설
- 은닉설
원본은 명나라 말기에 거의 완전히 소실되었고, 청나라 시대 제2차 아편전쟁까지 1567년 사본의 90%가 보존되었다. 그러나 1860년 영불 연합군의 북경 침략으로 대부분이 소실되거나 약탈당했고, 영국과 프랑스 군인들이 사본의 상당 부분을 기념품으로 가져갔다.[13][6] 심지어 영불 연합군은 영락대전을 빗물에 젖은 길바닥에 펼쳐놓기도 했다.
1875년에는 5,000권, 1894년에는 800권으로 줄었다. 의화단 운동과 1900년 팔국 연군의 북경 점령 당시 연합군이 수백 권을 가져갔고, 한림원 화재로도 많은 권이 소실되어 북경에는 60권만 남았다.[6]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약 400권 정도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소재지 | 소장 권수 |
---|---|
중국 중국 국가도서관 | 162권[21] |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 62권[22] |
미국 미국 의회도서관 | 41권[23] |
일본 동양문고 | 34권[24] |
기타 | 일본 정가당문고, 천리대 부속 천리도서관 등 |
중화서국에서 영인본을 출판했지만, 이는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6. 2. 현황
현재 전 세계에 약 400여 권이 흩어져 남아있다.[21][22][23][24] 각 도서관별 소장 현황은 다음과 같다.참조
[1]
백과사전
Encyclopedias and Dictionaries
[2]
웹사이트
600-year-old Chinese book found in SoCal | Across America | chinadaily.com.cn
http://www.chinadail[...]
[3]
학술지
The Yongle Dadian: The Origin, Destruction, Dispersal and Reclamation of a Chinese Cultural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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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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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Emperor Yongle
2004-04-01
[5]
서적
Perpetual Happiness: The Ming Emperor Yong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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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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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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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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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Yongle dadian (Chinese encyclopa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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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1
[9]
웹사이트
国家图书馆《永乐大典》收藏史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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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Library of China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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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The Huntington Library's Volume of the Yongle Encyclopaedia (Yongle Dadian 湛樂댕듕): A Bibliographical and Historical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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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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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The BP Exhibition: Ming: 50 Years That Change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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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永乐大典》 正本陪葬了嘉靖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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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xford History of Historical Writing: Volume 2: 40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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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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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t Documents of the Yung-lo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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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tington archivist finds historic piece of China's largest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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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6
[16]
웹사이트
China's Colossal Encyclopedia | Library of Congress Blog
https://blogs.loc.go[...]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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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ts Urge Collectors To Share World's Earliest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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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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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Holdings of Yong Le Da Dian in United Kingdom Libraries
http://www.bodley.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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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g Dynasty encyclopedia sells for 1,000 times the expected price at a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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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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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林清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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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国家図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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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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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oyo-bunk[...]
東洋文庫ミュージアム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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