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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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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문화급은 수나라 말기의 인물로, 수 양제를 시해하고 황제를 자칭했으나 결국 몰락한 인물이다. 그는 북주 좌익위장군 우문술의 아들로, 수 양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반란을 일으켜 양제를 살해했다. 이후 양호(수나라)를 황제로 옹립하고 섭정했으나, 이밀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국호를 허(許)로 정했다. 당나라의 이신통에게 패배하여 요성으로 도망쳤으나, 두건덕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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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화급
인물 정보
이름우문화급
가문우문(宇文)
작위허(許) 황제
생애
출생알 수 없음
사망일619년 3월 22일
직업군인, 군주, 정치가
통치 정보
통치 기간618년 – 619년
연호천수(天壽) (618년 – 619년)
가족 관계
아버지우문술(宇文述)

2. 생애

우문화급(宇文化及)은 북주 좌익위장군 우문술의 장남으로 대군 무천진(현재의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 시 우촨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수도 장안에서 자랐으며, 장안에서는 "경박공자"라고 불렸다. 어린 시절부터 양광 (양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여러 번 뇌물을 받은 탓에 파면되기도 했다. 하지만 양제는 그를 곧 복직시켰다. 양제의 즉위 후에는 태복소경에 임명되었다. 대업 원년( 605년)에 양제가 유림으로 행차했을 때, 동생 우문지급과 함께 금지되었던 돌궐과의 교역을 한 사실이 발각되어 양제의 분노를 사 형제들은 수개월간 감금되었다. 양제는 대흥성에 도착하여 형제들을 참수하려 했으나, 우문화급에게 시집간 남양공주의 일도 있어 잠시 후 두 사람의 사형을 사면하고 우문술의 노예로 만들었다. 616년에 우문술이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신분을 회복하고 우둔위장군에 임명되었다.

619년 봄, 우문화급은 이밀 휘하의 장수였던 원보장(元寶藏)을 공격했다. (이밀은 618년 가을 왕세충에게 패배하여 당나라로 도주했으나, 618년 겨울에 당나라에 반기를 들려다 619년 설 무렵에 살해되었다.) 원보장은 당나라에 항복했고, 이어서 당나라 장군 이신통(고조의 사촌)이 우문화급을 공격했다. 우문화급은 이신통의 공격에 저항할 수 없어 동쪽으로 도주하여 요성으로 향했다. 이신통은 그를 뒤쫓아 요성을 포위했다.

우문화급은 당시 가지고 있던 보물을 사용하여 다른 반란군 장수들을 유혹하여 자신을 돕게 하려 했다. 왕박(王薄)이 이에 응하여 요성에 들어가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곧 우문화급은 식량이 바닥나 이신통에게 항복을 제안했다. 이신통의 보좌관 최민간(崔民幹)은 이신통에게 항복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지만, 이신통은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고 우문화급의 보물을 빼앗아 병사들에게 하사하려는 생각에 이를 거절했다. 한편, 우문화급은 우문사급을 성 밖으로 보내 식량을 구했고, 우문사급은 요성에 약간의 식량을 전달하여 우문화급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에 우문화급은 항복 제안을 철회하고 저항을 계속했다. 이신통은 요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얼마 후, 우문화급을 공격하려던 또 다른 반란 지도자인 두건덕이 도착하여 이신통을 철수하게 만들었다. 두건덕 역시 요성을 포위했고, 왕박은 성문을 열어 하(夏)나라 군대를 맞이했다. 두건덕은 우문화급을 생포하고, 소황후에게 "신(臣)"이라고 칭하며 수 양제를 위한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수나라 관리들을 위로했다. 그는 우문지급, 양사란(楊士覽), 그리고 우문화급의 다른 측근들을 체포하여 공개 처형했다. 그 후 우문화급과 그의 아들 우문승기와 우문승지를 그의 근거지인 상국(襄國, 현재의 싱타이, 허베이)으로 보내 공개 참수했다. 그의 목은 돌궐로 시집간 수나라의 종실 딸인 의성공주에게 보내졌다.

2. 1. 출세와 권력 장악

수 양제 양광의 총애를 받아 양광의 근위장이 되었고, 얼마 안 되어 태복소경에 봉해졌다.[1] 618년, 좌둔위장군에 봉해진 우문화급은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으로 천하가 혼란한 것을 알고 둘째 동생 우문지급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양제는 우문화급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알고 도망가려 했으나 이내 우문화급의 무리에게 붙잡혔고 허리에 매고 있던 띠로 교살당하였다.[2] 양제를 시해한 우문화급은 촉왕 양수를 황제로 추대하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양수를 비롯한 수나라 황족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는데, 우문화급의 동생 우문지급과 친했던 양광의 조카 진왕(秦王) 양호만이 화를 피하고 살아남았다.[3] 그리하여 우문화급은 양호를 황제로 추대하고 자신은 섭정으로써 모든 권력을 차지했다.

이후 우문화급은 황제 양호와 대신들, 자신의 측근 및 병사는 물론 수 양제의 보물들까지 이끌고 수나라의 옛 수도인 낙양으로 향했다. 이때 낙양에서는 왕세충을 비롯한 여러 관리들이 양동을 황제로 옹립한 상태였다. 낙양의 관리들은 다른 반란 세력인 이밀에게 위공(魏公)의 자리를 주고 우문화급을 막게 했다.

우문화급은 이밀과 몇 차례 싸웠지만 우세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밀은 우문화급에게 화친을 제의하는 척하면서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완전히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우문화급은 이밀의 이러한 전략을 알아챈 뒤 이밀의 진영을 기습했고 거의 이밀을 죽일 뻔했으나 이밀의 부하 장수 진숙보의 보호로 이밀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밀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식량도 얻지 못한 채 북상한 우문화급은 자신이 세운 황제 양호마저 독살한 뒤, 스스로 황제라 칭했다. 그는 국호를 '허'(許)라 하고, 연호를 천수라 하였다.

2. 2. 몰락과 최후

618년, 양광의 근위장이었던 우문화급은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으로 천하가 혼란한 것을 알고 동생 우문지급과 함께 병변을 일으켰다. 양제는 우문화급의 반란 소식을 듣고 도망가려 했으나, 우문화급의 무리에게 붙잡혀 허리에 매고 있던 띠로 교살당했다.[2]

우문화급은 양제를 시해한 후 촉왕 양수를 황제로 추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양수를 비롯한 수나라 황족들을 살해했다. 다만, 우문지급과 친했던 양광의 조카 진왕 양호는 살아남았다.[3] 우문화급은 양호를 황제로 추대하고 섭정으로서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우문화급은 황제 양호, 대신, 측근, 병사, 수 양제의 보물들을 이끌고 낙양으로 향했다. 낙양에서는 왕세충 등이 양동을 황제로 옹립한 상태였다. 낙양의 관리들은 반란세력 이밀에게 위공(魏公)의 자리를 주고 우문화급을 막게 했다.

우문화급은 이밀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으나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군량이 부족해지자 이밀은 화친을 제의하는 척하며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완전히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밀의 전략을 알아챈 우문화급은 이밀의 진영을 기습했으나, 진숙보의 보호로 이밀을 죽이지 못했다. 결국 우문화급은 이밀을 제압하지 못하고 식량도 얻지 못한 채 북상하여, 양호를 독살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국호를 '허'(許), 연호를 천수(天壽)라 하였다.

619년 봄, 당나라를 세운 이연의 사촌 동생 이신통이 우문화급을 공격했다. 우문화급은 패배하여 요성으로 도망쳐 항전했으나, 물자가 부족해 이신통에게 항복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신통은 우문화급의 보물과 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항복을 거부했다. 이때 두건덕이 군대를 이끌고 와 이신통 군대를 쫓아내고 성을 함락시켰다. 두건덕은 우문화급과 그의 아들 우문승기, 우문승지를 양국(襄國)으로 데려가 참수했다.

우문화급의 동생 우문사급은 목숨을 건져 당나라에 귀순하여 명신이 되었다.

2. 3. 평가

우문화급은 스스로를 태부(太傅)라 칭하고 사실상 섭정으로 활동하며 황제의 권한을 남용했다. 양제 사후,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황제에게만 허용되는 물품과 의례를 사용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사마덕간(司馬德勘) 등은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우문화급에게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우문화급은 낙양으로 향하던 중 이밀의 저항에 부딪혔다. 이밀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우문화급은 결국 618년 양제를 독살하고 스스로 허(許)나라 황제를 칭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패배와 부하들의 배신으로 인해 그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619년, 우문화급은 두건덕에게 생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는 죽기 전, "나는 하왕에게 아무런 해를 끼친 적이 없소!"라고 항변했다.

3.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아버지우문술수나라 장군
형제우문지급수나라 장군, 두건덕에 의해 처형
형제우문사급수나라 장군, 이연에게 항복, 당나라 재상
형제우문혜급(宇文惠及)수나라 장군, 초기 사망
아들우문승기(宇文承基)두건덕에 의해 619년 처형
아들우문승지(宇文承趾)두건덕에 의해 619년 처형
아들최소 한 명 이상
기타우문성도(宇文成都)소설 설당연의에 등장하는 아들
기타우문성룡(宇文成龙)소설 설당연의에 등장하는 아들
기타우문성호(宇文成虎)소설 설당연의에 등장하는 아들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2006년~2007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윤철형이 연기했다.[1]

참조

[1] 서적 중국을 말한다 신원문화사 2008
[2] 서적 중국 역사 이야기 8 일송북 2005
[3] 서적 중국사 열전 황제 달과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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