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블랭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블랭 가문은 1141년 예루살렘 왕국의 풀크 1세가 건설한 이블린 성에서 유래한 예루살렘 왕국과 키프로스 왕국의 주요 귀족 가문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추정되는 바리장 디블랭이 야파 백작의 기사로 시작하여 이블린 성을 하사받고 세력을 확장했다. 가문의 기원에 대해서는 프랑스 샤르트르 출신 설과 이탈리아 피사 출신 설이 대립한다. 이블랭 가문은 13세기에 키프로스 왕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왕족과 혼인하며 세력을 유지했으며, 베이루트 영주 가문, 세네샬 가문, 아르수프 영주 가문, 키프로스 대원수 가문, 야파 영주 가문 등 여러 분가를 형성했다. 15세기 맘루크 왕조의 침략으로 몰락했다.

2. 가문의 기원

이블랭 가문의 이름은 예루살렘 왕국의 풀크 1세가 1141년 야파와 아스칼론 사이에 건설한 이블린 성에서 유래했다.[1] 이블린 성은 파티마 왕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1] 가문의 시조인 바리장 디블랭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야파 백작의 가신 기사였다.[4] 1134년 야파 백작 위그 2세 드 르 퓌이제의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워 이블린 성을 하사받고,[4] 1122년 람라의 상속녀 헬비스와 결혼하여 세력을 확장했다.[4]

이블랭 가문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프랑스 샤르트르 출신 설과[3] 이탈리아 피사 출신 설이[2] 대립하고 있다. 조나단 라일리-스미스는 샤르트르 출신 설을 지지하며, 바리장이 르 퓌이제의 위그의 동생이자 보두앵 2세 왕의 친척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3] 반면, 피터 W. 에드버리는 피사 출신 설을 주장하며, 샤르트르 출신 설이 날조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2]

바리산은 야파 백작의 기사로, 1115년에는 야파의 집정관을 역임했다. 바리산과 헬비스 사이에는 위그, 보두앵, 바리산, 에르망가르드, 스테파니가 태어났다. 막내 아들 바리산은 발리앙으로 알려졌으며, 마리아 콤네나와 결혼하여 나블루스 영지를 받았다. 발리앙은 1187년 살라딘에게 영토가 함락될 때까지 이 영토들을 소유했다.

발리앙 드 이블랭, 보두앵 5세를 안고 있는 모습


이블랭 가문은 평범한 출신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 왕국키프로스 왕국의 주요 귀족 가문 중 하나로 성장했다.

3. 가문의 발전

바리장 디블랭은 헬비스와의 사이에서 위고, 보두앵, 바리장 등의 아들들을 낳았다.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바리장은 나중에 발리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는데 동로마 제국 황녀 마리아 콤네나와 결혼하여 나블루스의 영주가 되었다.[4] 이로써 이블랭가는 헬비스와의 결혼으로 람라를, 콤네나와 결혼으로 나블루스를 병합하였다. 발리앙1187년 살라흐 앗 딘에게 영지를 빼앗길 때까지 끝까지 영지를 사수하였다.

이블랭 가는 불과 두 세대 만에 이렇듯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했는데 유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성공이었다. 이것은 당시 팔레스타인 십자군 국가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3. 1. 13세기의 이블랭 가

발리앙 디블랭의 아들 장은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십자군 국가를 지배하려 할 때 반대세력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제6차 십자군 이후 조약으로 특정 영토가 기독교도에게 반환되었을 때 이블랭 가문은 잠시 이벨린 성을 다시 장악하기도 했다. 장은 아르수프의 멜리센데와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 또한 키프로스 왕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블랭 가문의 다른 후손들은 13세기 초 키프로스 왕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왕족과 혼인하고 고위 관직을 역임하며 세력을 유지했다. 특히 키프로스에서 이블랭 가는 주로 왕비를 많이 배출했다. 발리안의 차남 필립은 키프로스 섭정을 맡았으며, 그의 아들 이벨린의 존은 예루살렘 고등 법원의 관습법 편찬에 참여하는 등 법률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세기 초, 이 가문의 여러 구성원이 새로운 키프로스 왕국으로 갔으며, 본토 왕국이 조각조각 잃어감에 따라 나머지 대부분도 그곳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뤼지냥 왕가를 비롯한 유력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으며 키프로스 왕국 내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4. 이벨인의 영주 목록

바리장 디블랭 (1134년경 – 1150년)

위고 디블랭 (1150년 – 1170년)

보두앵 디블랭 (1170년에 이블랭을 상속받았으나 곧 발리앙 디블랭에게 넘김)

발리앙 디블랭 (1170년 – 1193년)

장 디블랭 (1193년 – 1236년)

이후 야파와 아스칼론 백작이 직접 소유했다.

5. 15세기 이후

15세기에 맘루크 왕조가 키프로스 왕국을 침략하면서 이블린 가문은 몰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키프로스 왕국이 멸망하면서 토지와 지위를 잃었고, 이후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

6. 분가

6. 1. 베이루트 영주 가문

바리산과 람라 영주 보두앙 1세의 딸 엘비즈, 마나세 드 이엘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녜스 드 쿠르트네(1=아모리 1세, 3=시돈 영주 르노)와 위그(1132-1169/71), 리실드 드 베이산 사이에서 태어난 보두앙](1133-1188)과 이자벨 고트만(카이사리아 영주 위그 과부) 사이에서 태어난 바리앙](1143-1193)과 마리아 콤네나(아모리 1세 과부) 사이에서 태어난 에르멘가르드(1140-1167, 갈릴리 공작 엘리나르 드 뷔르), 스테파니](1144-1167)가 있었다.

에메리 드 뤼지냥(키프로스 왕)과 에시브, 토마, 스테파니(1174-1187, 나블루스 자작 에메리), 장 1세](c.1180-1236, 베이루트 영주, 예루살렘 대원수, 키프로스 대원수), 필리프(c.1180-1227), 마르그리트(1=위그 드 티베리아스, 2=카이사리아 영주 고티에 3세 드 브리엔)와 엘비즈(1=시돈 영주 르노, 2=기 드 몽포르)가 있었다.

위그 1세(키프로스 왕)와 바리앙](1210/1-1247, 베이루트 영주), 위그(1212/3-1239 이전), 이자벨, 장](1211/2-1258, 아르수프 영주, 예루살렘 대원수, 키프로스 대원수), 보두앙](1210/2-1267, 키프로스의 세네샬), 기(1215/8-?, 키프로스 대원수)가 있었다. 야파 영주 가문도 이 가문에 속한다.

앙리 1세(키프로스 왕)와 바리앙, 위그(1231/2-1254/5), 장 2세](1230/1-1264, 베이루트 영주), 이자벨(1230/5-?, 지블레 영주 엔리코 1세 엠브리아코(1201-1271)), 세네샬 가문, 기, 바리앙, 위그가 있었다. 아르수프 영주 가문과 키프로스 대원수 가문도 이 가문에 속한다.

위그 2세(키프로스 왕)와 이자벨(c.1252-1283), 옹프로와 드 몽포르(티루스 영주), 에시브(1253-1312), 기 드 뤼지냥(키프로스 왕 위그 3세 아들)이 있었다.

위그 4세(키프로스 왕)가 있었다.

6. 2. 세네샬 가문



6. 3. 아르수프 영주 가문

아르수프 영주 가문은 이블랭 가문의 분가로, 장 2세가 1211년에서 1258년 사이에 아르수프 영주를 지내면서 시작되었다. 장 2세는 예루살렘 왕국과 키프로스 왕국의 대원수를 역임했다.

장 2세의 아들 바리앙(1239년경 ~ 1277년)은 아르수프 영주를 계승하고, 예루살렘 왕국과 키프로스 왕국의 대원수를 역임했다. 바리앙은 키프로스 왕 앙리 1세의 과부인 플레장스와 결혼했다.

바리앙의 아들 장 3세(1260/70년 ~ 1309년)는 아르수프 영주와 예루살렘 왕국의 대원수를 계승했다. 장 3세의 아들 바리앙(1301/7년 ~ 1333년)은 아르수프 영주를 계승했다. 바리앙의 아들 기는 1367년에 사망했고, 기의 동생 필립은 1320/5년에서 1374/6년 사이에 사망했다.

```wikitable

이름생몰년비고
장 2세1211/2년 ~ 1258년아르수프 영주, 예루살렘 대원수, 키프로스 대원수
바리앙1239년경 ~ 1277년아르수프 영주, 예루살렘 대원수, 키프로스 대원수
장 3세1260/70년 ~ 1309년아르수프 영주, 예루살렘 대원수
바리앙1301/7년 ~ 1333년아르수프 영주
? ~ 1367년
필립1320/5년 ~ 1374/6년


6. 4. 키프로스 대원수 가문

기는 키프로스 대원수였다.

키프로스 대원수
위그 3세키프로스 왕
이사벨(?-1324)
바리앙(1240/5-1302)
키프로스 세네셜
앨리스= 우드 드 당피에르
보두앵키프로스 대원수
필리프(1250/5-1318)
예루살렘 바이이
키프로스 세네셜
마리= 르팽 드 몽포르
이사벨= 알스프 영주 장 3세 디블랑
(1285/8-1308)
니코시아 영주
이사벨(1285/90-1315)
(보두앵 디블랑의 딸)
마르그리트= 코리코스 영주 오신
(?-1329)
이사벨1= 마요르카 왕자 페란
(하이메 2세의 아들)
2= 야파 백작 위그 디블랑
키프로스 세네셜
바리앙
엘비즈= 브라운슈바이크-그루벤하겐 공작 하인리히 2세
위그 4세키프로스 왕
앨리스(1304/6-1386 이후)
필리프(1332-1369)
(브라운슈바이크-그루벤하겐 공작 하인리히 2세의 아들)
마르그리트
피에르 1세키프로스 왕
장 드 뤼지냥안티오키아 공
앨리스
피에르 2세키프로스 왕
마르그리트
자크트리폴리 백작


6. 5. 야파 영주 가문

장(1210/5-1266)은 1247년부터 1266년까지 야파 영주였다. 그의 아들 자크(c.1240-1276)와 기(1250/5-1304)가 야파 영주를 계승했다. 기는 야파 백작이 되었다. 기의 아들 위그(1295/1300-1349)는 야파 백작이자 예루살렘의 세네샬이었다. 위그의 동생 이자벨은 필리프 디블랭의 딸이다. 필리프(1292/3-1316)는 야파 백작이었다. 그의 아들 바리앙과 기가 야파 백작을 계승했다. 바리앙은 아르수프 영주 장 3세 디블랭의 딸 마르그리트와 결혼했다.

7. 가계도

이벨린의 바리상 (1152년 사망)은 람라의 헬비스와 결혼하였다. 이들 부부에게는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다.


  • 이벨린의 휴 (1130-1133년경–1169/1171)는 코트네의 아그네스와 결혼하였다.
  • 이벨린의 발두앵 (1130년대 초–1187년경 또는 1186/1188)은 베산의 리칠데, 이자벨 고스만, 트리폴리의 마리아와 차례로 결혼하였다.
  • 이벨린의 발리안 (1140년대 초–1193)은 예루살렘의 왕비 마리아 콤네나와 결혼하였다.
  • 이벨린의 에르멘가르드 (1160/1167년 사망)
  • 이벨린의 스테파니 (1167년 이후 사망)


이벨린의 발두앵은 세 번 결혼하여 이벨린의 토마스와 이벨린의 에스치바 등의 자녀를 두었다. 에스치바는 루지냥의 아말릭과 결혼하였다.

이벨린의 발리안은 마리아 콤네나와 결혼하여 이벨린의 존 등을 두었다. 이벨린의 존은 네핀의 헬비스, 아르수프의 멜리센데와 차례로 결혼하였다.

참조

[1] 서적 Riley-Smith
[2] 서적 The Kingdom of Cyprus and the Crusades 1191 -1374
[3] 서적 The First Crusaders, 1095-1131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4] 서적 Edbury
[5] 서적 Chronicles of the Crusades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