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 (1511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정(李貞)은 1511년에 태어나 1583년에 사망한 조선 중기의 인물이다. 그는 증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덕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인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순절하여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으로 추증되었다. 이정은 변수림의 딸과 혼인하여 슬하에 네 아들을 두었으며,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충청남도 아산시에 묘가 있다.
중종 6년(1511) 7월 2일 태어났다. 중종 25년~29년경(1530~1534경) 증 정경부인(貞敬夫人) 초계 변씨 변수림(卞守琳)의 따님과 혼례 후 서울 건천동(現 서울 을지로)에 터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아버지인 선교랑 평시서 봉사 이백록(李百祿)에 대한 잘못된 녹안을 당대 영의정인 윤인경 등을 통해 진소(陳訴)하여 해결한 것을 알 수 있다.[1] 이를 통해 비록 관직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4대조인 정정공 이변(李邊), 조부인 이거(李琚)의 영향으로 사대부들과 교류가 있었으며, 잘못을 바로잡고자 노력한 강단 있는 성격임을 알 수 있다.
[1]
서적
조선왕조실록
1546-04-06
2. 생애
중종 30년(1535) 장남 이희신(李羲臣)이 태어났고, 중종 37년(1542) 차남 이요신(李堯臣)이 태어났다. 인종 1년(1545) 삼남 이순신(李舜臣)이 태어났으며, 인종 1년경(1545경) 아버지인 이백록(李百祿)이 별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도미상 사남 이우신(李禹臣)이 태어났다.
명종 1년(1546) 진소(陳訴)를 통해 아버지 이백록(李百祿)이 중종 대왕의 국휼(國恤) 때 주육(酒肉)을 갖추어 베풀고는 아들을 성혼시켰다고 잘못 녹안(錄案)된 것을 바로잡았다. 명종 9년~14년경(1555~1560경) 서울 건천동에서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 6년(1573) 음서로 관직에 올라 종6품 병절교위를 지냈으며, 선조 9년(1576) 종5품 창신교위를 지냈다. 선조 13년(1580) 경진(庚辰)정월 23일 차남 이요신(李堯臣)을 39세로 참척하였다.
선조 16년(1583) 11월 15일 향년 73세로 별세하였다.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 자락에 쌍분으로 모셔져 있다.
선조 37년(1604) 덕풍부원군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순절 훈공으로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대광보국(大匡輔國) 숭록대부(崇祿大夫) 의정부 좌의정(議政府左議政) 겸(兼)영(領) 경영사(經筵事)에 추증되고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에 봉해졌다.
3. 가계
며느리 : 증 정부인 진주 강씨(晉州姜氏), 강세온(姜世溫)의 딸
* 손자 : 이뢰(李蕾, 1561~1648), 찰방
* 손자 : 이분(李芬, 1566~1619), 병조정랑
* 손자 : 이번(李蕃, 1575~1668), 효릉참봉
* 손자 : 이완(李莞, 1579~1627), 증 병조판서, 시호 강민(剛愍), 정묘호란 전사
며느리 : 증 정부인 청풍 김씨(清風金氏), 김대신(大頣)의 딸
* 손자 : 이봉(李菶, 1563~1650), 선무원종공신 2등, 경상도병마절도사겸 오위도청부 부총관, 평안도병마절도사, 포도대장, 삼척포첨사
* 손자 : 이해(李荄, 1566~1645), 선무원종공신 2등, 훈련원주부
며느리 : 정경부인 상주 방씨(尙州 方氏; 온양 방씨)
* 손자 : 이회(李薈, 1567~1625) 선무1등공훈, 훈련원 첨정, 증 승정원 좌승지
* 손자 : 이예(李䓲, 1571~1631) 형조정랑, 증 승정원 좌승지
* 손자 : 이면(李葂, 1577~1597) 증 이조 참의, 정유재란시 왜군과 교전 중 전사
며느리(첩) : 해주 오씨(海州吳氏; 해주 오씨)
* 손자 : 이훈(李薰, 1574~1624) 무과, 증 병조참의, 이괄의 난 진압 중 전사
* 손자 : 이신(李藎, 미상~1627) 무과, 정묘호란시 종형제 이완(李莞)과 함께 전사
며느리 : 온양 조씨(溫陽鄭氏)
3. 1. 가계도
wikitext
손자 : 이뢰(李蕾, 1561~1648) - 찰방
손자 : 이분(李芬, 1566~1619) - 병조정랑
손자 : 이번(李蕃, 1575~1668) - 효릉참봉
손자 : 이완(李莞, 1579~1627) - 증 병조판서, 시호 강민(剛愍), 정묘호란 전사
손자 : 이봉(李菶, 1563~1650) - 선무원종공신 2등, 경상도병마절도사겸 오위도청부 부총관, 평안도병마절도사, 포도대장, 삼척포첨사
손자 : 이해(李荄, 1566~1645) - 선무원종공신 2등, 훈련원주부
손자 : 이회(李薈, 1567~1625) - 선무1등공훈, 훈련원 첨정, 증 승정원 좌승지
손자 : 이예(李䓲, 1571~1631) - 형조정랑, 증 승정원 좌승지
손자 : 이면(李葂, 1577~1597) - 증 이조 참의, 정유재란시 전사
손자 : 이훈(李薰, 1574~1624) - 무과, 증 병조참의, 이괄의 난 진압 중 전사
손자 : 이신(李藎, ?~1627) - 무과, 정묘호란시 종형제 이완(李莞)과 함께 전사4. 재산
5. 평가 및 의의
부인 초계 변씨(草溪卞氏)가 1588년 3월 12일에 작성한 별급문기를 보면, 전국에 노비 총 21명(노 12명, 비 9명)과 토지(영광, 나주, 고흥, 영변, 은율, 은진, 아산, 온양 등)를 소유하고 있어 몰락한 양반 집안은 아니었다.[2] 슬하 형제들에게 재산 증여가 이루어졌는데, 장남 이희신(李羲臣)은 가문 상속자로 승중(承重) 분급되었고, 차남 이요신(李堯臣)은 선조 6년(1573) 노 3명, 비 3명을 각각 분급받았다.[2] 삼남 이순신(李舜臣)은 선조 9년(1576) 무과 급제 후 노 7명, 비 1명을 분급받았고, 막내 이우신(李禹臣)은 명종 19년(1564) 노 2명, 비 2명을 분급받았다.[2]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 이정(李貞)의 아들 대에서 참판공파(羲臣), 율리공파(堯臣), 충무공파(舜臣)로 나누어졌다. 이정(李貞)이 1555년~1560년 사이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일대에 터를 잡은 이후 덕수 이씨 덕연부원군 후손(율리공파, 충무공파)들의 집성촌이 되었으며, 장자 이희신(李羲臣)의 후손인 참판공파는 이백록(李百祿)의 묘가 있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일대에 터를 잡았다.
6. 관련 작품
7. 기타
참조
[2]
서적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3]
서적
德水李氏世譜 덕수이씨세보
덕수이씨대종회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