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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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잠실은 과거 조선 시대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왕실 또는 관에서 설치했던 누에를 치는 장소를 의미한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과 잠원동은 이 잠실과 관련된 지명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실에서 운영하거나 왕비의 선잠과 관련된 잠실이 있었으며, 세종 때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에 내잠실, 뚝섬에 외잠실이 있었다. 태종 때 가평과 양근에 잠실이 처음 설치되었고, 이후 전국 각지에 도회잠실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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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위치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
면적 | 15.37km² |
인구 | 108,308명 (2023년 12월 기준) |
행정동 | 잠실본동, 잠실2동, 잠실3동, 잠실4동, 잠실6동, 잠실7동 |
법정동 | 잠실동 |
역사 | |
형성 | 한강 매립으로 형성 |
옛 이름 | 잠실리(蠶室里) |
유래 | 양잠 장려를 위해 뽕나무를 심었던 곳 |
시설 | |
주요 시설 | 잠실종합운동장 롯데월드 올림픽공원 석촌호수 코엑스 제2롯데월드 |
주요 도로 | 올림픽대로 송파대로 테헤란로 |
교통 | |
지하철 |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 지하철 8호선 서울 지하철 9호선 |
철도역 | 종합운동장역 잠실역 몽촌토성역 석촌역 송파나루역 올림픽공원역 |
특징 | |
특징 | 상업 시설 밀집 지역 한강변에 위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 서울 지하철 노선 집중 지역 국제교류복합지구 조성 계획 |
기타 | |
관련 정보 | 잠실대교 잠실철교 잠실한강공원 코엑스아쿠아리움 잠실새내역 (구 신천역) |
2. 지명의 유래
잠실은 조선 시대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왕실이나 관청에서 시범적으로 설치한 누에를 치는 장소였다. 태종 16년(1416) 2월, 경기도 가평의 조종(朝宗)과 양근의 미원(迷原) 두 곳에 처음으로 잠실이 설치되었다. 이듬해 1월에는 전국적으로 잠실을 배치하여 개성, 가평, 청풍, 태인, 수안, 의성, 홍천 등에 도회잠실(都會蠶室)을 설치하였다.
이로써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 6도에 1곳씩 잠실도회가 설치되었는데, 서울 일대의 잠실은 모두 왕비의 선잠(先蠶)과 관련되거나 왕실에 의해 운영되었다. 세종 때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에 내잠실(內蠶室)이 있었고, 뚝섬에 외잠실(外蠶室)이 있었다. 현재의 잠실동, 잠원동은 이때 생긴 지명이다.
세조 때에는 아차산의 동잠실(東蠶室)과 연희궁의 잠실이 추가로 설치되었고, 성종 때에는 한강변 원단동(圓壇洞, 현 잠원동)에 신잠실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잠실은 운영상 여러 폐단이 있어 몇 차례 존폐를 거듭하였다.
누에는 고조선 시대에 기자가 중국에서 가져온 벌레로 전해진다. 오랫동안 한국인과 함께 해왔기 때문에 누에, 고치, 번데기등 관련된 다양한 명칭이 존재한다.
2. 1. 서울 지역 잠실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에는 서잠실이, 송파구 잠실동, 신천동 일대에는 동잠실이 있었다. 서초구 잠원동의 잠실은 '신잠실'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송파구 잠실보다 늦게 설치되었기 때문이다.3. 역사
잠실은 조선 시대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설치된 곳이다. 蠶室중국어은 왕실이나 관청에서 누에를 치는 시범적인 장소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관찰사는 잠실이 있는 읍과 주변 읍의 공천(公賤) 중에서 잠실에서 일할 사람을 정하고, 선상노비(選上奴婢)의 신공(身貢)은 면제했다. 잠양관(養蠶官)을 두어 수령이 그 치적을 평가하도록 했다.
누에는 고조선 시대에 기자가 중국에서 가져온 벌레로 전해지며, 오랫동안 한국인과 함께 길러졌기 때문에 묘, 의자(蟻子), 삼유(三幼), 잠노(蠶老), 홍잠(紅蠶), 용(踊), 아(蛾), 견(繭), 잠사(蠶砂)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3. 1. 설치 배경
조선은 농업을 근본으로 하는 국가였기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쳐서 비단을 만드는 양잠은 농업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왕실과 관부는 양잠 기술을 발전시키고 보급하기 위해 잠실을 설치하고 운영하였다.태종 16년(1416) 2월에 경기도 가평의 조종(朝宗), 양근의 미원(迷原) 두 곳에 최초로 잠실이 설치되었고, 이듬해 1월에는 개성, 가평, 청풍, 태인, 수안, 의성, 홍천 등지에 도회잠실(都會蠶室)이 설치되었다.
이로써 평안도,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 6도에 1곳의 잠실도회가 설치되었는데, 서울 일대의 잠실은 모두 왕비의 선잠(先蠶)과 관련되거나 왕실에 의해 운영되었다. 세종 때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에 내잠실(內蠶室)이 있었고, 뚝섬에 외잠실(外蠶室)이 있었다. 현재의 잠실동, 잠원동은 이때 생긴 지명이다.
세조 대에는 아차산의 동잠실(東蠶室)과 연희궁의 잠실이 더 설치되었고, 성종 대에 한강변 원단동(圓壇洞, 현 잠원동)에 신잠실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 조선 시대의 잠실은 운영상 여러 가지 폐단이 생겨 몇 차례 존폐를 거듭하였다.
누에는 고조선 시대에 기자가 중국에서 가져온 벌레로 전해지며, 누에의 명칭은 묘, 의자(蟻子), 삼유(三幼), 잠노(蠶老), 홍잠(紅蠶), 용(踊), 아(蛾), 견(繭), 잠사(蠶砂) 등 다양했다.
3. 2. 초기 잠실
태종 16년(1416) 2월, 경기도 가평군의 조종(朝宗)과 양근의 미원(迷原)에 최초로 잠실이 설치되었다. 이후 전국 각지에 도회잠실(都會蠶室)이 설치되어,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 6도에 1곳씩 잠실도회가 설치되었다.蠶室중국어은 조선 시대에 양잠을 장려하고자 왕실 또는 관부가 시범소로서 특정한 지역에 설치한 누에치는 장소였다. 세종 때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에 내잠실(內蠶室)이 있었고 낙천정(樂天亭)에 외잠실(外蠶室)이 있었다. 현재의 잠실동, 잠원동은 이때 생긴 지명이다.
세조 대에는 아차산의 동잠실(東蠶室)과 연희궁의 잠실이 더 설치되었고, 성종 대에 한강변 원단동(圓壇洞, 현 잠원동)에 신잠실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 조선 시대의 잠실은 운영상 여러 폐단이 생겨 몇 차례 존폐를 거듭하였다.
누에는 고조선 시대에 기자가 중국에서 가져온 벌레로 전해진다. 한국인과 함께 오랫동안 길러졌기 때문에 명칭도 다양하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묘, 검은 털을 벗지 못한 새끼를 의자(蟻子), 세 번째 잠자는 누에는 삼유(三幼), 27일 된 것을 잠노(蠶老), 늙은 것을 홍잠(紅蠶), 번데기를 용(踊), 성체를 아(蛾), 고치를 견(繭), 똥을 잠사(蠶砂)라 하였다.
3. 3. 서울의 잠실
세종 때 경복궁과 창덕궁에 내잠실(內蠶室)이, 뚝섬 낙천정(樂天亭)에 외잠실(外蠶室)이 있었다. 세조 때는 아차산에 동잠실(東蠶室)과 연희궁의 잠실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성종 때 한강변 원단동(圓壇洞, 현 잠원동)에 신잠실이 설치되었다. 현재의 잠실동, 잠원동은 이때 생긴 지명이다.3. 4. 운영상의 문제점과 변화
조선 시대 잠실은 운영상 여러 가지 폐단이 생겨 몇 차례 존폐를 거듭하였다. 이는 양잠 기술 부족, 관리 소홀, 백성들의 부담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4. 누에와 관련된 전통
잠실은 조선 시대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왕실이나 관청에서 시범적으로 설치한 누에를 치는 장소였다. 태종 16년(1416) 2월, 경기도 가평의 조종(朝宗)과 양근의 미원(迷原) 두 곳에 처음으로 잠실이 설치되었다. 이듬해 1월에는 전국적으로 잠실을 확대하여 개성, 가평, 청풍, 태인, 수안, 의성, 홍천 등지에 도회잠실(都會蠶室)을 설치하였다.
이로써 평안도,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 6도에 1곳씩 잠실도회가 설치되었다. 서울 일대의 잠실은 모두 왕비의 선잠(先蠶)과 관련되거나 왕실에 의해 운영되었다. 세종 때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에 내잠실(內蠶室)이 있었고, 뚝섬에 외잠실(外蠶室)이 있었다. 현재의 잠실동, 잠원동은 이때 생긴 지명이다.
세조 때에는 아차산에 동잠실(東蠶室)과 연희궁에 잠실이 추가로 설치되었고, 성종 때에는 한강변 원단동(圓壇洞, 현 잠원동)에 신잠실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잠실은 운영상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하여 몇 차례 존폐를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에를 키워 이용하는 것은 국가가 장려하는 행사였다.
4. 1. 누에의 전래
누에는 고조선 시대에 기자가 중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누에는 한국인과 함께 오랫동안 길러져 왔기 때문에 명칭도 다양하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묘, 검은 털을 벗지 못한 새끼는 의자(蟻子), 세 번째 잠자는 누에는 삼유(三幼), 27일 된 것은 잠노(蠶老), 늙은 것은 홍잠(紅蠶), 번데기는 용(踊), 성체는 아(蛾), 고치는 견(繭), 똥은 잠사(蠶砂)라 하였다.4. 2. 누에의 다양한 명칭
누에는 고조선 시대에 기자가 중국에서 가져온 벌레로 전해진다. 한국인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길러 왔기 때문에 명칭도 다양하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묘, 검은 털을 벗지 못한 새끼를 의자(蟻子), 세 번째 잠자는 누에는 삼유(三幼), 27일 된 것을 잠노(蠶老), 늙은 것을 홍잠(紅蠶), 번데기를 용(踊), 성체를 아(蛾), 고치를 견(繭), 똥을 잠사(蠶砂)라 하였다고 한다.5. 관련 기록
경국대전에는 잠실 운영과 관련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러 도에서 뽕나무가 잘 되는 곳에 도회잠실을 설치하여 문서를 만들어 본 예조•본도•본읍에 간직하고 누에를 길러 고치를 거두어 상납한다.
관찰사는 잠실이 있는 본읍 및 부근 여러 읍의 공천 중에서 잠실에서 일할 사람들을 헤아려 정한다. 선상노비의 신공은 면제된다. 관직을 가진 사람 중에서 부지런하고 조심성 있는 사람 1명을 택하여 잠양관으로 삼고 수령이 그 치적을 상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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