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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헤어우드 백작 조지 래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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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지 래슬스는 제7대 헤어우드 백작으로, 1923년 런던에서 태어나 2011년 사망했다. 그는 조지 5세 국왕의 손자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전후에는 헤어우드 백작위를 계승했으며, 오페라, 음악, 축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이사, BBC 회장, 리즈 유나이티드 FC 회장 등을 역임했고, 예술 및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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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헤어우드 백작 조지 래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조지 래슬스
본명조지 헨리 휴버트 래슬스
출생일1923년 2월 7일
출생지잉글랜드 런던
사망일2011년 7월 11일
사망지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주 헤어우드
안장 장소올 세인츠 교회, 헤어우드
국적영국
학력러드그로브 스쿨
이튼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배우자매리언 스타인 (1949년 결혼, 1967년 이혼)
패트리샤 터크웰 (1967년 결혼)
자녀데이비드 래슬스
제임스 래슬스
제러미 래슬스
마크 래슬스
부모헨리 래슬스, 제6대 헤어우드 백작
메리, 로열 프린세스
작위
작위헤어우드 백작
경력
직업작가
활동 기간1956년 2월 7일 ~ 1999년 11월 11일
직책상원 의원
이전헨리 래슬스
이후1999년 상원법
서훈
훈장KBE
AMh

2. 생애

제6대 헤어우드 백작 헨리 래슬스와 메리 공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인 조지 5세 국왕의 첫 손자였으며, 어린 시절 숙부 조지 6세의 대관식에서는 명예 시종(Page of Honour)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영국 육군 그레나디아 근위대 소속 대위로 참전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나치 독일의 포로가 된 경험이 있다.

1947년 아버지 헨리 래슬스의 사망으로 헤어우드 백작위를 계승했으며, 1956년에는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

클래식 음악, 특히 오페라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로열 오페라 하우스, 잉글리쉬 국립 오페라,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등 여러 주요 음악 기관에서 중요한 직책을 역임했다. 또한, 리즈 유나이티드 FC 회장과 잉글랜드 축구 협회 협회장을 지내는 등 축구계에서도 활동했으며, BBC 회장과 같은 공직을 맡기도 했다.

2011년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

1923년 부모와 함께 있는 아기 조지 래슬스


조지 래슬스는 1923년 2월 7일, 그의 부모가 런던에서 거주하던 체스터필드 하우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6대 헤어우드 백작 헨리 래슬스와 메리 공주 사이의 첫째 아들이었으며, 외조부모인 조지 5세 국왕과 메리 왕비에게는 첫 손주였다.

그의 세례식은 1923년 3월 25일, 가족 소유의 저택인 골즈버러 홀 근처 골즈버러 마을에 위치한 성 메리 교회에서 거행되었으며, 외조부인 조지 5세 국왕이 대부가 되었다.[1] 1929년 할아버지인 제5대 헤어우드 백작이 사망하자 아버지 헨리 래슬스가 백작위를 계승하였고, 조지 래슬스는 '래슬스 자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1937년 5월에는 삼촌인 조지 6세 국왕의 대관식에서 명예 시종(Page of Honour)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요크셔의 헤어우드 하우스에서 성장했으며, 러드그로브 학교와 이튼 칼리지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의 대학 생활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중단되었다.[2]

2. 2.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래슬스가 석방된 후 동료 ''프로미넨테''들과 함께: 존 알렉산더 엘핀스턴, 처칠의 사촌 맥스 드 하멜, 마이클 알렉산더 및 존 와이넌트 주니어 등.


래슬스는 영국 육군에 입대하여 1942년 장교로 근위 보병 연대 (그의 아버지의 연대)의 소위로 임관하였고, 이후 대위 계급까지 올랐다. 그는 연대 제3대대 소속으로, 처음에는 제78 보병 사단 예하 제1 근위 여단에 속해 싸웠으며, 이 여단은 나중에 제6 기갑 사단으로 전속되었다. 그는 북아프리카이탈리아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1944년 6월 18일 몬테 코르노에서 나치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이 날은 그의 아버지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부상당한 날이자, 그의 증조부가 워털루 전투에서 부상당한 날과 같은 날이었다.[2]

그는 1945년 5월까지 포로로서 악명 높은 오프라크 IV-C (콜디츠 성)에 수감되었다. 당시 국왕 조지 6세의 조카였기 때문에, 래슬스는 콜디츠 성의 ''프로미넨테''(Prominente, 유명인사 또는 VIP 포로) 중 한 명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나치가 그를 잠재적인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다.[2] 래슬스는 훗날 1982년 ''무인도 디스크''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 유명한 인맥을 가진 사람은 반 다스 정도였고, 우리 자신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30대 언저리의 비교적 하급 장교들이었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누군가가 그들의 협상력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소모품이 될 것입니다... 일단 국방군, 즉 육군이 우리에게서 흥미를 잃으면, 우리는 게슈타포의 포로가 되거나 매우 불쾌해질 수 있는 무언가가 될까 두려웠습니다."라고 회고하며, '프로미넨테'로서 느꼈던 불안감을 드러냈다.[2]

1945년 3월, 아돌프 히틀러는 래슬스의 사형 집행 영장에 서명했으나, 포로 수용소를 지휘하던 SS 장군 고틀로프 베르거는 임박한 전쟁 패배를 인지하고 명령 집행을 거부했다. 대신 베르거는 래슬스를 스위스로 이동시켜 석방했다.[3]

전후인 1945년부터 1946년까지는 당시 캐나다 총독이었던 삼촌 애슬론 경의 부관으로 복무했다. 또한 1947년, 1953-54년, 1956년에는 국무 고문으로 활동했다.

2. 3. 전후 활동

래슬스는 영국 왕자가 아닌 상태에서 국가 자문관으로 봉사한 유일한 인물로, 1945년부터 1951년까지, 그리고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역임했다. 1947년, 부친 헨리 래슬스의 사망으로 헤어우드 백작위를 습위했으며, 1956년에는 귀족원 의원으로 취임했다.

1949년 요크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를 관람한 것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1950년 오페라 전문 잡지 기자를 시작으로,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이사(1951-1953, 1969-1972), 잉글리쉬 국립 오페라 이사 사장(1972-1985) 및 회장(1986-1995),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예술 감독, 리즈 음악제의 종합 감독 겸 예술 감독(1958-1974) 등 다양한 음악 관련 직책을 맡았다.

교육 분야에서는 1962년부터 1967년까지 요크 대학교의 총장을 지냈다. 또한, BBC 회장(1985-1987), 전영국 영상 등급 심사 기구 총재(1985-1996) 등 공적인 역할도 수행했다.

축구계에서도 활동하여, 리즈 유나이티드 FC 회장과 잉글랜드 축구 협회 협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상당한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선데이 타임스 부자 순위 2008에 따르면 약 5500만파운드의 재산을 보유하여 1355위를 기록했다. 이 재산에는 신탁으로 보유 중인 5000만파운드 이상의 가치를 지닌 예술품들과 리즈 외곽의 3000 에이커 부지가 포함되었다. 다만, 헤어우드 저택과 그 부지는 900만파운드의 자산을 가진 자선 단체가 소유하고 있어 그의 개인 재산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2011년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3. 예술 및 문화 활동

1949년, 요크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를 관람한 것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후 그의 경력 대부분은 오페라 분야에 집중되었으며, 여러 주요 음악 기관 및 축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BBC 회장, 전영국 영상 등급 심사 기구 총재 등을 역임하며 방송 및 영화 분야에도 기여했다. 이외에도 축구계에 진출하여 리즈 유나이티드 FC 회장과 잉글랜드 축구 협회 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3. 1. 오페라

음악 애호가였던 제7대 헤어우드 백작은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오페라에 헌신했으며, 그의 요크셔 출신 배경은 이러한 관심에 영향을 미쳤다. 1949년 3월, 그는 리즈 타운 홀에서 열린 요크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공연을 관람했으며, 1950년까지 이 오케스트라 콘서트의 후원자가 되었다.[5][6]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잡지 ''오페라''의 편집자로 활동했다. 이 잡지는 1950년 2월, 음악 애호가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리처드 버클의 런던 저택에서 창간되었다.[7] 그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의 이사(1951–1953년, 1969–1972년), 잉글리시 국립 오페라(ENO)의 상무 이사(1972–1985년) 및 이사회 의장(1986–1995년)을 역임했다. 또한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을 맡았으며, 리즈 3년 음악 페스티벌의 총감독 겸 예술 감독(1958–1974년)으로 활동했다. ENO의 자회사인 잉글리시 국립 오페라 노스의 상무 이사(1978–1981년)도 지냈다. 제7대 헤어우드 백작은 1985년부터 1987년까지 BBC의 이사로, 1985년부터 1996년까지 영국 영화 등급 심의 위원회의 회장으로 활동했다.[8]

그는 세 권의 책을 저술하거나 편집했다. ''코베의 완전 오페라 북''(1954년 편집, 이후 ''새로운 코베의 오페라 북'', 앤토니 피티와 공동 편집, 최신판 1997년; 그의 의붓아들 마이클 스미스와 함께 편집한 ''새로운 포켓 코베의 오페라 북'', 2000년)[9], 자서전 ''The Tongs and the Bones''(1981년), 그리고 ''코베의 일러스트 오페라 북''(1989년 편집)이 있다. 또한 희귀 오페라 가수의 역사적인 78 rpm 녹음을 고품질로 발행하는 음반 레이블인 히스토릭 마스터스의 회장을 맡았다. 그는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친구이자 동료였으며, 그녀의 경력과 오페라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한 1968년 EMI 다큐멘터리 ''칼라스 컨버세이션 Vol. I''에 출연하기도 했다.

3. 2. 기타 문화 활동

그 외, BBC 회장(1985-1987), 전영국 영상 등급 심사 기구 총재(1985-1996) 등을 역임했다.

또한, 축구계에도 진출하여, 리즈 유나이티드 FC 회장, 잉글랜드 축구 협회 협회장 등을 맡았다.

4. 스포츠 활동

그는 축구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1961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리즈 유나이티드 FC의 회장을 지냈다. 또한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회장을 역임했다.[10][11]

5. 결혼과 가족

1949년 9월 29일, 런던의 세인트 마크 교회에서 헤어우드 경은 피아니스트이자 출신의 음악 출판사 에르빈 슈타인의 딸인 마리온 슈타인과 결혼했다. 헤어우드의 왕위 계승 서열 때문에 이 결혼은 1772년 왕실 결혼법에 따라 군주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조지 5세의 왕비이자 헤어우드의 할머니인 메리 여왕은 이 결혼에 반대했지만, 결국 허가가 내려졌다.[15] 슈타인 가문의 친구인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은 결혼식을 위해 찬송가 "Amo Ergo Sum"을 작곡했다.[16]

헤어우드 경과 마리온 슈타인 사이에는 세 아들이 있었다.

이름출생결혼 및 가족 관계
데이비드 래슬스, 제8대 헤어우드 백작1950년 10월 21일1979년 2월 12일 마가렛 메신저와 결혼 (1989년 이혼, 자녀 4명, 손주 7명). 1990년 3월 11일 다이앤 하우즈와 재혼. 현 제8대 헤어우드 백작.
명예로운 제임스 래슬스1953년 10월 5일1973년 4월 4일 프레데리카 듀르슨과 결혼 (1985년 이혼, 자녀 2명, 손녀 1명). 1985년 5월 4일 로리 리와 재혼 (1996년 이혼, 자녀 2명, 손주 1명). 1999년 1월 30일 조이 엘리아스-릴완과 세 번째 결혼.
명예로운 제레미 래슬스1955년 2월 14일1981년 7월 4일 줄리 베일리스와 결혼 (이혼, 자녀 3명, 손주 5명). 1999년 1월 7일 캐서린 벨과 재혼 (딸 1명).



헤어우드 백작과 마리온 슈타인의 결혼은 백작의 정부였던 패트리샤 "밤비" 터크웰이 그의 아들을 낳은 후 1967년에 이혼으로 끝났다. 패트리샤 터크웰은 호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가 배리 터크웰의 여동생이었다. 이혼과 혼외 관계는 당시 큰 스캔들로 여겨졌고, 헤어우드 경과 터크웰이 재혼한 후에도 몇 년 동안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는 결과를 낳았다.[17] 마리온 슈타인은 이후 정치인 제레미 소프와 재혼했다.

헤어우드 경은 1967년 7월 31일 패트리샤 터크웰(1926년 11월 24일 ~ 2018년 5월 4일)과 재혼했다. 결혼식은 미국 코네티컷주 뉴 캐넌의 웨보니 공원에서 열렸다. 당시 영국에서는 왕실 결혼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이 등록 사무소에서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이혼한 사람들은 잉글랜드 교회에서 재혼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18][19]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한 명이 있었다.

이름출생결혼 및 가족 관계
마크 허버트 래슬스1964년 7월 4일1992년 8월 8일 안드레아 커쇼(1964년 6월 16일 출생)와 결혼 (2005년 이혼, 딸 3명). 2011년 7월 16일 주디스 앤 킬번과 재혼. 2024년 9월 1일부로 엡솜 칼리지 교장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6. 서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86년 6월 13일 여왕 생일 기념 명예 훈장 수여 명단에서 그를 대영 제국 훈장 기사단장(KBE)으로 임명했다.[12] 2010년 7월 1일에는 "호주 예술에 기여하고, 영국에서 호주 예술가를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오스트레일리아 훈장 명예 회원(AM)으로 임명되었다.[13]

1959년에는 오스트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은장(Großes Silbernes Ehrenzeichen am Bande für Verdienste um die Republik Österreich|오스트리아 공화국 공로 대은장de)을 수여받았다.[14]

국가날짜임명리본약자비고
영국1935년 5월 6일조지 5세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
조지 5세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 리본
영국1937년 5월 12일조지 6세 대관식 기념 메달
조지 6세 대관식 기념 메달 리본
영국1953년 6월 2일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기념 메달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기념 메달 리본
영국1977년 2월 6일엘리자베스 2세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
엘리자베스 2세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 리본
영국1986년 6월 14일대영 제국 훈장 기사단장
대영 제국 훈장 리본 (민간)
KBE[12]
영국2002년 2월 6일엘리자베스 2세 즉위 50주년 기념 메달
엘리자베스 2세 즉위 50주년 기념 메달 리본
호주2010년 7월 1일오스트레일리아 훈장 회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 리본 (민간)
AM[13]
오스트리아1959년오스트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은장
오스트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리본 (3등급)
[14]


7. 죽음

제7대 헤어우드 백작은 2011년 7월 11일 자택에서 평화롭게 사망했으며, 향년 88세였다.[10] 7월 15일, 개인적으로 치러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장례식이 열렸다.[20]

참조

[1] 뉴스 The Earl of Harewood https://web.archive.[...] The Daily Telegraph 2018-05-30
[2] 뉴스 Earl of Harewood https://www.bbc.co.u[...] Desert Island Discs 1982-01-01
[3] 뉴스 Obituary of George 7th Earl of Harewood KBE AM The Yorkshire Post 2011-07-11
[4] 웹사이트 Preamble (Hansard, 7 February 1956) https://api.parliame[...] 2011-09-29
[5] 뉴스 Significant Choice for Y.S.O. concert https://www.britishn[...] 1950-02-20
[6] 웹사이트 Bradbury https://www.genesreu[...] 1949-03-21
[7] 뉴스 From Our London Correspondent http://www.britishne[...] Yorkshire Post and Leeds Intelligencer 1950-02-10
[8] ODNB Lascelles, George Henry Hubert, seventh earl of Harewood (1923–2011) http://www.oxforddnb[...] 2015-01
[9] 서적 The new pocket Kobbe's opera book / edited by the Earl of Harwood with Michael Shmith http://catalogue.nla[...] National Library of Australia Catalogue 2018-05-16
[10] 뉴스 Queen's cousin Lord Harewood dies https://www.bbc.co.u[...] BBC News 2011-07-11
[11] 뉴스 George Lascelles, Lord Harewood, Dies at 88; Wrote Opera Reference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2015-09-25
[12] 간행물 London Gazette 1986-06-14
[13] 웹사이트 Commonwealth of Australia Special Gazette S102, 1 July 2010 https://web.archive.[...] 2011-09-29
[14] 웹사이트 Reply to a parliamentary question http://www.parlament[...] 2012-10-18
[15] 서적 Jeremy Thorpe https://books.google[...] Little, Brown Book Group 2014-12-16
[16] 서적 Letters from a Life: 1952-1957 https://books.google[...] Boydell Press
[17] 간행물 Publicly Shunned for Years, the Earl and Countess of Harewood Get a Royal Welcome https://people.com/a[...] 1981-06-08
[18] 서적 The Tongs and the Bones
[19] 간행물 A Wedding in New Canaan https://web.archive.[...] 1967-08-11
[20] 뉴스 FITTING FINALE: Opera star sings at Lord Harewood's statley home funeral https://www.pressrea[...] 2011-07-16
[21] 웹사이트 Styles of the members of the British royal family Documents https://www.heraldic[...] Heraldica 20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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