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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2세 (스코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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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임스 2세는 1437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가 암살된 후 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스코틀랜드의 국왕이었다. 그는 초기 통치 기간 동안 반란과 귀족들의 음모에 시달렸지만, 성장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려 노력했다. 1449년 겔데른의 메리와 결혼하여 일곱 자녀를 두었으며, 왕권 강화를 위해 더글러스 가문과 대립했다. 1452년 더글러스 백작을 살해하는 사건을 겪었으며, 1459년 잉글랜드를 침공하다가 1460년 록스버러 성 포위전에서 대포 폭발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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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2세 (스코틀랜드)
기본 정보
제임스 2세, 얼굴의 뚜렷한 흉터를 보여주는 당대 이미지
얼굴의 뚜렷한 흉터를 보여주는 당대 이미지
군주 칭호스코틀랜드 국왕
통치 기간1437년 2월 21일 – 1460년 8월 3일
대관식1437년 3월 25일
이전 군주제임스 1세
다음 군주제임스 3세
섭정아치볼드 더글러스, 5대 더글러스 백작 (1437–1439)
윌리엄 크라이턴, 초대 크라이턴 경 (1439–1445)
알렉산더 리빙스턴 경 (1439–1445)
윌리엄 더글러스, 8대 더글러스 백작 (1445–1449)
배우자메리 오브 헬데르스 (1449년 결혼)
자녀제임스 3세
알렉산더, 올버니 공작
데이비드, 머레이 백작
존, 마와 가리오크 백작
마거릿 스튜어트
메리, 애런 백작부인
왕가스튜어트
아버지제임스 1세
어머니조앤 보포트
출생일1430년 10월 16일
출생 장소홀리루드 사원, 스코틀랜드
사망일1460년 8월 3일
사망 장소록스버러 성, 록스버러셔, 스코틀랜드
매장 장소홀리루드 사원

2. 생애

제임스 2세는 홀리루드 수도원에서 제임스 1세와 요안 보퍼트의 아들로 태어났다.[2] 그는 쌍둥이 형 알렉산더가 첫 생일이 되기 전에 사망하여 상속자가 되었고 로세이 공작 칭호를 받았다. 1437년 제임스 1세가 암살당하자, 6살의 어린 나이로 즉시 왕위를 계승했다.[1]

제임스 2세는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고 평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왕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문학적 취향은 물려받지 못했지만, 글래스고 대학교 설립을 지원하고 세인트 앤드루스 세인트 살바토르 대학에 기부하는 등 학문을 장려했다. 그러나 더글러스 백작 살해 사건은 그의 통치에 오점을 남겼다.[17][18]

1449년, 18세의 제임스 2세는 겔데른의 메리와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두었다.[1] 이 결혼으로 플랑드르와 스코틀랜드 왕국의 관계가 개선되었다. 그의 별명 "불타는 얼굴(Fiery Face)"은 얼굴의 붉은 반점 때문이었는데, 동시대 사람들은 이를 격렬한 성격의 징표로 여겼다.

제임스 2세는 포병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으며, 1460년 록스버러 성 포위 공격에서 독립 전쟁 이후에도 잉글랜드가 점유하고 있던 성을 탈환하려 했다. 그러나 8월 3일, 대포 중 하나가 폭발하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11]

로버트 린제이 오브 핏스코티는 그의 역사에서 "왕이 포병 근처에 서 있었는데, 발사 중에 깨진 잘못된 형태의 총 부품으로 그의 허벅지 뼈가 두 동강이 났고, 이로 인해 그는 쓰러져 급히 죽었다"고 기록했다.[11]

스코틀랜드군은 앵거스 백작 조지 더글라스가 이끌어 포위를 계속했고, 며칠 후 성이 함락되었다. 제임스 2세의 미망인 겔더 공작부인 메리는 성을 파괴하도록 명령했다.[12] 제임스 2세의 아들 제임스 3세가 왕위를 계승했고, 메리는 3년 후 사망할 때까지 섭정으로 활동했다.

제임스 2세는 동시대 인물이 그린 초상이 남아있는 최초의 스코틀랜드 군주이다.[9]

1449년 7월 3일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수도원에서 겔더스 공국의 메리와 결혼하여 슬하에 7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름출생사망비고
이름 없는 아들1450년 5월 19일
제임스 3세1451년 7월 10일1488년 6월 11일제임스의 후계자, 스코틀랜드 왕
메리 스튜어트1453년 5월 13일1488년 5월(첫 번째) 토머스 보이드 (애런 백작)의 아내; (두 번째) 제임스 해밀턴 (제1대 해밀턴 남작)의 아내
올버니 공작 알렉산더c. 14541485년 8월 7일
모레이 백작 데이비드c. 14551457년 7월 이전
마 백작 존c. 1456c. 1479
마가렛1453/60미상



또한, 제임스 2세에게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얻은 사생아 아들 존 스튜어트가 있었다. 존 스튜어트는 스틱스의 영주였으며, 아르나강, 발레친, 이너바크, 킬리하시, 후일의 키나친스, 클루니 호수 및 스튜어트필드의 스튜어트 가문의 조상이다.[13]

2. 1. 즉위 초반 (1437년 ~ 1449년)

1430년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제임스 2세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로서 1436년 부왕 제임스 1세가 암살되자 6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즉위 초기에는 반란과 귀족들의 음모에 시달렸으나, 성장하면서 왕 노릇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1] 제임스 2세는 홀리루드 수도원에서 태어났으며, 제임스 1세와 요안 보퍼트의 아들이었다.[2] 첫 생일이 되기 전, 그의 유일한 형제이자 쌍둥이 형인 알렉산더가 사망하여 제임스는 상속자가 되었고 로세이 공작 칭호를 받았다. 1437년 2월 21일, 제임스 1세가 암살당하자 6세의 제임스는 즉시 제임스 2세로서 왕위를 계승했고, 같은 해 3월 23일 홀리루드 수도원에서 패트릭 수도원에 의해 대관식을 치렀다.[1]

1437년 2월 21일, 제임스 2세의 아버지 제임스 1세는 블랙프라이어스 수도원에서 암살당했다. 어머니 존 여왕은 부상을 입었지만, 왕이 된 여섯 살 아들에게 도달했다. 1437년 3월 25일, 제임스 2세는 홀리루드 사원에서 스코틀랜드 왕으로 공식 대관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왕실 재산 양도를 무효화하고, 제임스 2세가 18세가 될 때까지 신분 계급의 동의 없이는 양도를 금지했다.

1439년까지 제임스 2세는 어머니와 여섯 자매 중 다섯 명과 함께 던바 성에서 살았다. 같은 해 7월, 어머니는 교황의 특별 허가를 받아 근친혼과 친족 관계에 대해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 the Black Knight of Lorne)와 결혼했다. 제임스 2세의 맏누이 마가렛은 1436년 프랑스로 떠나 도팽 루이(훗날 루이 11세)와 결혼했다.

1437년부터 1439년까지 국왕의 사촌인 아치볼드 더글러스가 왕국의 부총독으로 정부를 이끌었다. 그의 죽음 이후, 사망, 몰수 또는 어린 나이로 인해 스코틀랜드 왕국에서 저명한 백작들이 전반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정치 권력은 윌리엄 크리튼, 스코틀랜드의 대법관(때로는 에번데일 백작과 협력)과 캘린더의 알렉산더 리빙스턴 경에게 불안하게 분담되었다. 스털링 성의 감시인이었던 리빙스턴은 어린 국왕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틈타 리빙스턴은 1439년 8월 3일 존 여왕과 그녀의 새 남편 제임스 스튜어트 경을 스털링 성에서 "가택 연금"했다. 그들은 9월 4일에야 제임스를 리빙스턴의 보호 아래 두는 공식적인 합의를 하고, 그의 양육을 위해 여왕이 지참금을 포기하기로 동의하며, 리빙스턴이 국왕의 안전을 위한 열정으로 행동했다고 고백함으로써 풀려났다.

1440년, 국왕의 이름으로 16세의 윌리엄 더글러스와 그의 남동생 12세의 데이비드를 1440년 11월 에든버러 성에서 국왕을 방문하도록 초청했다. 그들은 왕실 식탁에서 접대받았고, 어린 소년이었던 제임스는 그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식사 도중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황소 머리가 들어와 백작 앞에 놓였다. 그들은 반역죄로 11월 24일 에든버러 성 뜰에서 참수당했고, 10세의 국왕은 그들의 생명을 구걸했다. 사흘 후 컴벌노드의 맬컴 플레밍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어린 국왕은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었으며, 이 악명 높은 사건은 "검은 저녁식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1449년, 제임스 2세는 친정을 할 나이가 되자 더글러스 가문과 대립하였다.[17][18]

2. 2. 더글러스 가문과의 투쟁 (1449년 ~ 1455년)

1449년, 제임스 2세는 친정을 할 나이가 되자 더글러스 가문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2세의 아버지 제임스 1세는 강력한 왕권으로 연방 정부의 세력을 굳건히 다졌으나,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너무 어려 국정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임스 1세가 이룩한 강력한 중앙집권은 순식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임스 2세는 성장하여 연방 정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크라이턴-리빙스턴-더글러스 세 대귀족 가문을 견제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1449년 헬데르란트의 메리와 결혼한 후 왕권은 더욱 강화되었으나, 지나친 왕권 강화는 귀족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더글러스 백작 8세가 반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7]

1439년, 리빙스턴은 제임스 2세의 어머니 존 여왕과 그녀의 새 남편 제임스 스튜어트 경을 스털링 성에서 가택 연금했다. 이들은 제임스를 리빙스턴의 보호 아래 두는 공식적인 합의를 하고 나서야 풀려났다.[18] 1440년에는 국왕의 이름으로 16세의 윌리엄 더글러스와 그의 남동생 데이비드를 에든버러 성으로 초대하여 "검은 저녁식사"라 불리는 사건을 일으켜 그들을 처형했다.

1452년 2월 22일, 제임스 2세는 스털링 성에서 8대 더글러스 백작 윌리엄을 직접 칼로 찔러 살해했다.[19] 국왕은 더글러스 백작에게 존 맥도널드(제11대 로스 백작) 및 알렉산더 린제이(제4대 크로퍼드 백작)와의 유착을 끊으라고 요구했으나, 더글러스가 이를 거부하자 격노하여 범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더글러스 가문의 권력은 종식되지 않고, 1452년부터 1455년까지 간헐적인 내전 상태가 이어졌다. 주요 교전은 아란 섬의 브로딕, 렌프루의 인버킵, 그리고 아킨홀름 전투에서 벌어졌다.

제임스는 더글라스의 동맹에게 영지, 작위, 관직을 하사하며 지지를 확보했고, 1455년 5월 아킨홀름 전투에서 더글러스 가문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여 마침내 그들을 패배시켰다.[20] 이후 스코틀랜드 의회는 더글러스 가문의 광대한 영지를 몰수하여 왕실에 병합했다. 이로써 제임스 2세는 자신의 뜻대로 통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후 스코틀랜드 왕들은 이와 같은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지 않았다.

2. 3. 왕권 강화와 잉글랜드와의 전쟁 (1455년 ~ 1460년)

1455년에서 1460년 사이에 제임스 2세는 적극적이고 간섭적인 국왕의 면모를 보였다. 오크니, 셰틀랜드 및 맨 섬을 점령하려는 야심찬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국왕은 전국을 순회했으며, 중범죄에 대한 사면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관행을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제임스 3세의 일부 인기 없는 정책이 실제로는 145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1458년 의회법은 국왕에게 그의 행동을 수정하도록 명령했지만,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의 통치가 어떻게 발전했을지는 알 수 없다.

1459년 제임스 2세는 잉글랜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싸운 백년 전쟁에서 패배하여 나라가 큰 혼란에 빠져 있었고 장미 전쟁의 막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틈을 타서 제임스 2세는 잉글랜드를 침공하였다. 당황한 잉글랜드는 우선 군대로 막았다. 결국 제임스는 국경지방을 공격하다가 전사하였다. 1460년, 잉글랜드에 점령당했던 록스버러(Roxburgh) 성의 포위전 중에 대포 폭발로 사망했다.[21][22] 이 패배로 제임스 3세가 왕에 올랐고 결국 제임스 2세가 지킨 연방 정부는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귀족들 중 제임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어린 제임스 3세를 이용하여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제임스 2세는 유능한 왕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3. 죽음

1459년 제임스 2세는 잉글랜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싸운 백년 전쟁에서 패배하여 나라가 큰 혼란에 빠져 있었고 장미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임스 2세는 이 틈을 타 잉글랜드를 침공하였으나, 잉글랜드 군대에 막혔다. 결국 제임스 2세는 국경지방을 공격하다가 전사하였다. 이로 인해 제임스 3세가 왕위에 올랐고, 제임스 2세가 지키던 연방 정부는 무너졌다. 귀족들은 제임스 2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고, 어린 제임스 3세를 이용하여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늘날 제임스 2세는 유능한 왕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제임스 2세는 그의 폭탄 중 하나가 폭발했을 때 록스버러 성 성벽 밖에서 사망했다.


제임스 2세는 현대 포병을 열정적으로 장려했으며, 블랙 더글라스 가문에 대항하여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사용했다. 스코틀랜드의 위상을 높이려는 그의 야망으로 인해 1460년 록스버러 성을 포위했는데, 이는 독립 전쟁 이후에도 잉글랜드가 여전히 점유하고 있던 마지막 스코틀랜드 성 중 하나였다.[11]

제임스 2세는 이 포위를 위해 플랑드르에서 수입한 다수의 대포를 가져왔다. 1460년 8월 3일, 그는 이 대포 중 하나 근처에 서 있다가 대포가 폭발하여 사망했다. 로버트 린제이 오브 핏스코티는 제임스 2세의 통치에 대한 그의 역사에서 "왕이 포병 근처에 서 있었는데, 발사 중에 깨진 잘못된 형태의 총 부품으로 그의 허벅지 뼈가 두 동강이 났고, 이로 인해 그는 쓰러져 급히 죽었다"고 말했다.[11]

스코틀랜드군은 앵거스 백작 조지 더글라스가 이끌어 포위를 계속했고, 며칠 후 성이 함락되었다. 성이 함락되자 제임스 2세의 미망인인 겔더 공작부인 메리는 성을 파괴할 것을 명령했다.[12] 제임스의 아들은 제임스 3세로 왕이 되었고, 메리는 3년 후 그녀가 죽을 때까지 섭정으로 활동했다.

4. 가족 관계

James II영어는 홀리루드 수도원에서 제임스 1세와 요안 보퍼트의 아들로 태어났다.[1][2] 1449년 7월 3일, 18세의 제임스는 홀리루드 수도원에서 헬레르 공작 아르놀트와 클레베의 캐서린의 딸인 15세의 겔데른의 메리와 결혼했다.[1] 슬하에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 중 여섯 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했다.

이름출생사망비고
이름 없는 아들1450년 5월 19일
제임스 3세1451년 7월 10일1488년 6월 11일스코틀랜드 왕, 제임스의 후계자
메리 스튜어트1453년 5월 13일1488년 5월(첫 번째) 토머스 보이드 (애런 백작)의 아내; (두 번째) 제임스 해밀턴 (제1대 해밀턴 남작)의 아내
올버니 공작 알렉산더1454년경1485년 8월 7일
모레이 백작 데이비드1455년경1457년 7월 이전
마 백작 존1456년경1479년경
마가렛 스튜어트1453/60년경미상



제임스는 또한 알려지지 않은 정부와의 사이에서 한 명의 사생아 아들을 두었다.


  • 존 스튜어트, 스틱스의 영주 (1523년 9월 21일 사망), 아르나강, 발레친, 이너바크, 킬리하시, 후일의 키나친스, 클루니 호수 및 스튜어트필드의 스튜어트 가문의 조상.[13]

5. 평가

제임스 2세는 여러 연극, 역사 소설, 단편 소설에서 묘사되었다.[14]


  • 제임스 그랜트의 ''경호대장''(1862)은 1440년부터 1452년까지의 사건을 다루며, 제임스 2세와 더글러스 백작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부 내용은 제임스 2세의 장인인 아르놀트 공작의 궁정을 배경으로 한다.[14]
  • 샬롯 메리 영의 ''두 명의 가난한 공주들''(1891)에서 제임스 2세는 조연으로 등장하며, 그의 누이들인 엘리너 스튜어트, 부칸 백작 부인 메리 스튜어트, 모턴 백작 부인 조안 스튜어트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 소설은 어린 잉글랜드의 헨리 6세와 앙주의 르네를 포함한 외국 궁정으로의 여정을 다룬다.[14][15]
  • 사무엘 러더퍼드 크로켓의 ''검은 더글러스''(1899)와 속편 ''메이드 마가렛''(1905)은 1439년부터 1460년까지 제임스 2세 통치 기간의 사건을 다룬다. 제임스 2세와 더글러스 백작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묘사되며, 제임스 2세가 윌리엄 더글러스를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1452)과 록스버러 포위 공격에서 대포가 터져 제임스 자신이 죽는 장면(1460)이 포함된다. 윌리엄 더글러스, 더글러스 백작 (6대), 마가렛 더글러스, 갤러웨이의 아름다운 소녀, 알렉산더 리빙스턴 오브 캘린더 경, 윌리엄 크라이튼, 프랑스의 샤를 7세와 그의 도팽(루이 11세, 아녜스 소렐) 등도 묘사된다. 사건은 주로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에서 일어난다. 장미 전쟁 (1455–1485)의 초기 단계가 언급되지만, 영국의 사건은 간략하게 다뤄진다.[14]
  • 로나 먼로의 ''제임스 2세: 순진한 자들의 날''(2014)은 스코틀랜드 국립 극장,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영국 국립 극장의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진 역사극 3부작 중 하나이다. 각 연극은 과거와 미래를 놓고 갈등하는 국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연극은 제임스 2세의 초기 생애, 더글러스 가문과의 관계, 그리고 더글러스 경의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16]
  • 나이젤 트랜터의 ''사자의 새끼''(1997)는 1437년부터 1460년까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 통치 기간을 배경으로 한다. 소년 왕이 더글러스 백작(5대) 아치볼드 더글러스, 크라이튼 경, 알렉산더 리빙스턴 경(1대)의 섭정하에 있던 시절과 ''검은 만찬''에서 윌리엄 더글러스, 더글러스 백작(6대)을 죽이려는 음모를 글래미스 영주, 2대 글래미스 경 알렉산더 리언의 시각으로 묘사한다. 책은 제임스의 죽음으로 끝난다.
  • 나이젤 트랜터의 ''검은 더글러스''(1968)는 8대 더글러스 백작의 살해까지의 사건을 다루며, 백작에게 동정적이고 제임스 2세에게는 비우호적인 시각을 보인다.
  • 도로시 더넷의 ''니콜로 라이징''(1986)은 당시 국제적인 환경, 특히 소설의 배경인 플랑드르에 영향을 미치는 제임스 2세의 음모와 전쟁을 언급한다.
  • 마가렛 J. 앤더슨의 어린이 판타지 소설 ''시간의 요새에서''(1977)에서 배경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별명과 그것에서 영감을 얻은 반점이 묘사되며,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록스버러 성 전투와 그를 죽인 "사자"의 폭발을 목격한다.

6. 문화

제임스 2세는 여러 연극, 역사 소설, 단편 소설에 묘사되어 왔다.[14]


  • 제임스 그랜트의 ''경호대장''(1862)은 1440년부터 1452년까지의 사건을 다루며, 주로 제임스 2세와 더글러스 백작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일부는 제임스 2세의 장인인 아르놀트 공작의 궁정에서 벌어진다.[14]

  • 샬롯 메리 영의 ''두 명의 가난한 공주들''(1891)에서 제임스 2세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그의 누이들인 엘리너 스튜어트, 부칸 백작 부인 메리 스튜어트, 모턴 백작 부인 조안 스튜어트이다. 이 소설은 잉글랜드의 헨리 6세와 앙주의 르네를 포함한 외국 궁정으로의 여정을 다룬다.[14][15]

  • 사무엘 러더퍼드 크로켓의 ''검은 더글러스''(1899)와 속편 ''메이드 마가렛''(1905)은 1439년부터 1460년까지의 사건을 다루며, 제임스 2세 통치의 대부분을 포함한다. 제임스 2세와 더글러스 백작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묘사된다. 제임스 2세가 윌리엄 더글러스, 더글러스 백작 (8대)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1452)과 록스버러 포위 공격에서 대포가 터져 제임스 자신이 죽는 장면(1460)을 포함한다. 묘사된 다른 역사적 인물로는 윌리엄 더글러스, 더글러스 백작 (6대)와 그의 형제 데이비드, 마가렛 더글러스, 갤러웨이의 아름다운 소녀, 알렉산더 리빙스턴 오브 캘린더 경, 윌리엄 크라이튼, 초대 크라이튼 경, 프랑스의 샤를 7세와 그의 도팽(루이 11세, 아녜스 소렐)이 있다. 사건은 주로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나고, 부차적으로 프랑스에서 일어난다. 장미 전쟁(1455–1485)의 초기 단계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영국의 사건은 "약간 언급"될 뿐이다.[14]

  • 로나 먼로의 ''제임스 2세: 순진한 자들의 날''(2014)은 스코틀랜드 국립 극장,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영국 국립 극장의 공동 제작이다. 제임스 플레이 - ''제임스 1세'', ''제임스 2세'', ''제임스 3세'' -는 로나 먼로의 역사극 3부작이다. 각 플레이는 과거와 미래를 놓고 씨름하는 국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플레이는 제임스 2세의 초기 생애, 더글러스 가문과의 발전하는 관계, 그리고 결국 더글러스 경의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16]

  • 나이젤 트랜터의 ''사자의 새끼''(1997)는 1437년부터 1460년까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 통치 기간을 배경으로 한다. 소년 왕이 더글러스 백작(5대) 아치볼드 더글러스, 크라이튼 경, 알렉산더 리빙스턴 경(1대)의 섭정하에 있던 시절과 ''검은 만찬''에서 윌리엄 더글러스, 더글러스 백작(6대)을 죽이려는 음모를 글래미스 영주, 2대 글래미스 경 알렉산더 리언의 시각으로 묘사한다. 책은 제임스의 죽음으로 끝난다.

  • 나이젤 트랜터의 ''검은 더글러스''(1968)는 8대 더글러스 백작의 살해까지의 사건을 다루며, 백작에게 동정적이고 제임스 2세에게 비우호적이다.

  • 도로시 더넷의 ''니콜로 라이징''(1986)은 당시 국제적인 환경의 일부로서, 특히 소설의 배경인 플랑드르에 영향을 미치는 그의 음모와 전쟁을 언급한다.

  • 마가렛 J. 앤더슨의 어린이 판타지 소설 ''시간의 요새에서''(1977)에서 배경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별명과 그것에서 영감을 얻은 반점이 모두 묘사되어 있으며,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록스버러 성 전투와 그를 죽인 "사자"의 폭발을 목격한다.

참조

[1] 서적 Grants "Old and New Edinburgh"
[2] 서적 Britain's Royal Families: The Complete Genealogy https://books.google[...] Random House 2011-04-18
[3] 간행물 Joan Beaufort https://www.oxfordre[...]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4] ODNB Joan [née Joan Beaufort] (d. 1445), queen of Scots, consort of James I 1394–1437 https://www.oxforddn[...] 2004
[5] 서적 Collins Scottish Clan & Family Encyclopedia The Standing Council of Scottish Chiefs 1994
[6] 서적 James II
[7] 서적 The Black Douglases
[8] 서적 Scottish Parliament
[9] 문서 McGladdery
[10] 서적 City, marriage, tournament : arts of rule in late medieval Scotland https://archive.org/[...] Madison, Wis. :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91
[11] 웹사이트 Scottish Monarchs – Kings and Queens of Scotland – James II http://www.englishmo[...] 2016-10-11
[12] 서적 1963
[13] 웹사이트 History of the Stewarts; Family Lines, JAMES https://www.stewarts[...]
[14] 서적 1968
[15] 웹사이트 "Project Gutenberg's Two Penniless Princesses, by Charlotte M. Yonge" http://www.gutenberg[...]
[16] 웹사이트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2014" http://eif.co.uk/201[...] 2014-10-12
[17] 문서
[18] 문서
[19] 문서
[20]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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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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