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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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젬갈레는 발트족의 한 부족인 셈갈리아인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현재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 걸쳐 있는 역사적 지역을 가리킨다. 젬갈레는 북쪽 국경 지대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1세기에서 13세기까지 리가만, 다우가바 강, 무샤 강을 경계로 영토를 확장했다. 13세기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과의 갈등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배를 거치며, 젬갈레어는 16세기경 소멸되었다. 현재는 라트비아의 역사적 문화 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옐가바를 중심으로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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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젬갈레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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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
| 이름 | 쳄갈레 |
| 현지 이름 | 라트비아어: Zemgale |
| 다른 이름 | 라틴어: Semigallia 독일어: Semgallen 프랑스어: Sémigalie 리투아니아어: Žiemgala 폴란드어: Semigalia 리보니아어: Zemgāl 사모기티아어: Žemgalė 체코어: Zemgalsko |
| 종류 | 역사적 지역 |
| 최대 도시 | 옐가바 |
| 좌표 | 56°40′N 23°30′E |
| 행정 구역 | |
| 국가 |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
| 지리 | |
| 면적 | (알 수 없음) |
| 인구 통계 | |
| 인구 | (알 수 없음) |
| 기타 정보 | |
| 시간대 | EET |
| UTC 오프셋 | +2 |
| 여름 시간 (DST) | EEST |
| UTC 오프셋 (DST) | +3 |
| ISO 3166-1 | (알 수 없음) |
| 깃발 및 문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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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지표 | |
| HDI (2017년) | 0.816 (매우 높음) · 5위 |
2. 명칭
젬갈레(Semigallia)라는 이름은 ''Seimgala'', ''Zimgola'', ''Sem''[''e'']''gallen''과 같은 자료에 나타난다. '-gal[l]' 요소는 '국경' 또는 '끝'을 의미하며, 첫 음절은 ''ziem''('북쪽')에 해당한다. 따라서 젬갈레인은 "북쪽 국경 지대의 사람들"(즉, 무샤 강과 리에루페 강 계곡의 하류)이었다.[1]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젬갈리아 문화권은 최대로 확장되었다. 북쪽으로는 리가만까지 영토가 뻗어 해안의 더 넓은 지역을 포함했고, 서쪽 경계는 예제루피스 강과 바다크스티스 강으로 표시되었다. 동쪽으로는 다우가바 강을 건너 그 오른쪽 강둑 일부를 포함했으며, 남쪽 경계는 무샤 강으로 표시되었다.[4] 젬갈리아인, 사모기티아인, 셀로니아인, 라트갈리아인은 하나의 문화권을 구성했다.
3. 지리
5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젬갈레인들이 점유한 영토는 축소되었다. 그들은 북쪽의 리가만 해안의 더 작은 지역을 점유했고, 북동쪽의 다우가바 강에는 이르지 못했다.[4] 5세기에 리예루페 강 유역에 별도의 젬갈레 부족이 형성되었다. 그들의 영토는 서쪽으로 벤타 강, 북쪽으로 발트해, 리예루페 강 하구를 포함하며, 동쪽으로는 레부오와 무샤 강 유역, 남쪽으로는 현재 리투아니아의 샤울랴이 및 파네베지스 구의 북쪽 경계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가레, 파크루오이스, 파스발리스, 링크바, 요니쉬키스에 거주했다.[3]
13세기부터 셀로니아도 젬갈레에 포함되었으며, 현재도 젬갈레 선거구의 동부를 이룬다. 같은 발트인인 셀로니아인에서 유래한 이 지역은 리투아니아 북동부이기도 하다.
9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젬갈레는 북쪽의 리보니아인, 북동쪽의 라트갈리아인, 동쪽의 셀로니아인, 남쪽의 아욱슈타이티아인, 남서쪽의 사모기티아인, 서쪽의 쿠로니아인과 인접했다.
9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젬갈레의 영토는 더욱 축소되었다. 서부 젬갈레의 중심지는 테르베테였고, 동부 젬갈레의 중심지는 메조트네였는데, 1220년 리보니아 기사단에 의해 파괴되었다. 13세기 전반기에는 도베네, 도벨레, 실레네, 스파르네네, 테르베테, 우프말레, 자가레 등 6개의 젬갈레 지역이 알려져 있었다.
3. 1. 영역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젬갈리아 문화권은 최대 규모로 확장되었다. 북쪽으로는 리가만까지 영토가 뻗어 해안의 더 넓은 지역을 포함했고, 서쪽 경계는 예제루피스 강과 바다크스티스 강으로 표시되었다. 동쪽으로는 다우가바 강을 건너 그 오른쪽 강둑 일부를 포함했으며, 남쪽 경계는 무샤 강으로 표시되었다.[4] 젬갈리아인, 사모기티아인, 셀로니아인, 라트갈리아인은 하나의 문화권을 구성했다.
5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젬갈레인들이 점유한 영토는 축소되었다. 그들은 북쪽의 리가만 해안의 더 작은 지역을 점유했고, 북동쪽의 다우가바 강에는 이르지 못했다.[4]
5세기에 리예루페 강 유역에 별도의 젬갈레 부족이 형성되었다. 그들의 영토는 서쪽으로 벤타 강, 북쪽으로 발트해, 리예루페 강 하구를 포함하며, 동쪽으로는 레부오와 무샤 강 유역, 남쪽으로는 현재 리투아니아의 샤울랴이 및 파네베지스 구의 북쪽 경계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가레, 파크루오이스, 파스발리스, 링크바, 요니쉬키스에 거주했다.[3]
리보니아 연맹의 붕괴 이후 젬갈레 대부분은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쿠를란트와 젬갈레 공국에 속했으며, 이는 폴란드 분할까지 지속되었다.[3]
1795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쿠를란트 현에 속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라트비아 영토가 되었다.
13세기부터 셀로니아도 젬갈레에 포함되었으며, 현재도 젬갈레 선거구의 동부를 이룬다. 같은 발트인인 셀로니아인에서 유래한 이 지역은 리투아니아 북동부이기도 하다.
3. 2. 인접 부족 및 지역
9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젬갈레는 북쪽의 리보니아인, 북동쪽의 라트갈리아인, 동쪽의 셀로니아인, 남쪽의 아욱슈타이티아인, 남서쪽의 사모기티아인, 서쪽의 쿠로니아인과 인접했다.
3. 3. 주요 도시 및 지형
9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젬갈레의 영토는 더욱 축소되었다. 사모기티아인들은 남서쪽 땅을 차지했고, 동쪽에 있던 이전 젬갈레 영토는 코크네세 공국이 되었다.[4] 인접한 부족은 북쪽의 리보니아인, 북동쪽의 라트갈리아인, 동쪽의 셀로니아인, 남쪽의 아욱슈타이티아인, 남서쪽의 사모기티아인, 서쪽의 쿠로니아인이었다. 서부 젬갈레의 중심지는 테르베테였고, 동부 젬갈레의 중심지는 메조트네였는데, 1220년 리보니아 기사단에 의해 파괴되었다. 13세기 전반기에는 도베네, 도벨레, 실레네, 스파르네네, 테르베테, 우프말레, 자가레 등 6개의 젬갈레 지역이 알려져 있었다.
4. 역사
셈갈리아(Semigallia)라는 이름은 덴마크 연대기, 스웨덴의 룬 문자 비문 등 스칸디나비아 자료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13세기 전반부터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 셈갈리아를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셈갈리아인들은 리투아니아인들과 동맹을 맺거나 저항하는 등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리보니아 기사단에게 셈갈리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이 리보니아를 공격하거나 사레마 섬으로 가는 경로였고, 튜튼 기사단의 프로이센 지부와 분리시키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2] 리보니아 기사단은 강줄기를 따라 성을 건설하며 셈갈리아 지역을 장악해 나갔고,[2] 1250년에는 셈갈리아 전체를 정복했다. 그러나 셈갈리아인들은 1258년과 1279년에 나메이시스 공작의 주도로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며 저항했다.
이후 셈갈리아는 리보니아 기사단과 리투아니아 사이에 분할되었으며,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는 스스로를 셈갈리아 공작이라 칭하기도 했다.[3][6] 셈갈리아어는 16세기경까지 사용되었다.
1795년부터 1918년까지는 러시아 제국의 쿠를란트 현에 속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라트비아의 영토가 되었다.
4. 1. 초기 역사
셈갈리아(Semigallia)라는 이름은 스칸디나비아 자료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덴마크 연대기인 "안날레스 르센시스"(Annales Ryenses)는 870년경 덴마크의 바이킹들이 "프로이센 전체, 셈갈리아 및 기타 여러 지역"을 정복했다고 언급한다.[2] 11세기의 "잉바르 사가"(Yngvars saga)는 셈갈리아인(Seimgaler)을 스웨덴에 조공을 바치는 자들로 언급한다. 스웨덴의 메르발라 석(Mervala stone)에는 다음과 같은 룬 문자 비문이 새겨져 있다.: ''sirið · lit · ræisa · stæn · (þin)a · at · suæin · sinn · (b)unta · h(n) · uft · siklt · til · simkala · turu(m) · knæri · um · tumisnæs''.
이는 "Si(g)rid는 남편인 Swen을 위해 이 돌을 세웠다. 그는 귀중한 배를 타고 셈갈리아(Simkala)로 자주 항해했고, Dómisnes(케이프 콜카)를 지나갔다"라고 번역된다.
4. 2.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과의 관계
13세기 전반, 다우가바강 유역의 정착촌들은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잦은 공격을 받았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은 동부 젬갈레를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리투아니아에 대항하고자 젬갈레인 및 라트갈리아인과 동맹을 맺었다.[2] 1205년 겨울, 비에스타르드가 이끄는 젬갈레 군대는 에스토니아와의 전쟁에서 전리품과 에스토니아 노예들을 데리고 귀환하던 리투아니아 공작 즈벨가이티스의 군대를 공격하여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즈벨가이티스는 독일인 테오도르 쉴링이 던진 필룸에 맞아 사망했고, 1,200명의 리투아니아 기사들이 사망했다. 에스토니아 노예들은 리보니아인에 대한 "과거의 범죄"에 대한 보복으로 학살되었다.[2] 1208년, 비에스타르드는 젬갈레와 십자군 연합 군대를 이끌고 리투아니아를 공격했지만 패배했다. 1220년, 동부 젬갈레의 중심지인 메조트네는 리보니아 기사단에 의해 파괴되었다. 1236년, 젬갈레인들은 사울레 전투에서 리투아니아인들과 함께 리보니아 기사단에 맞서 싸웠다. 같은 해 동부 젬갈리아에서 봉기가 일어났다.[2]4. 3. 리보니아 기사단의 지배와 젬갈레인의 저항
리보니아 기사단에게 셈갈리아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리보니아 정착촌을 습격하기 위해 셈갈리아를 통과했고, 리가만에서 겨울 얼음을 이용하여 사레마 섬에 도달했다. 또한 이 지역은 리보니아 기사단을 튜튼 기사단의 프로이센 지부로부터 분리시켰다.[2]성들은 셈갈리아 지역으로 확장하려는 리보니아 기사단의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들은 강줄기를 따라 건설되었으며, 일부는 원주민 요새 부지에 세워졌다.[2] 1250년, 셈갈리아 전체가 리보니아 기사단에 의해 정복되었다. 4년 후, 리보니아 기사단은 이 지역을 자신들과 리가 대주교 사이에 분할했다. 1258년, 셈갈리아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독립을 되찾았다. 1265년, 리보니아 기사단은 옐가바 성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1272년, 셈갈리아는 마침내 리보니아 기사단에 굴복했다.
1279년, 아즈크라우클레 전투에서 리투아니아인들이 승리한 후, 나메이시스 공작이 이끄는 마지막 셈갈리아 봉기가 시작되었다. 나메이시스는 자신이 리투아니아 대공 트라이데니스의 봉신임을 인정했다. 1287년, 가로자 전투에서 셈갈리아인들이 승리했다.[3]
4. 4. 리투아니아 대공국과의 관계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은 13세기 전반기에 동부 셈갈리아를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셈갈리아인 및 라트갈리아인과 동맹을 맺고 리투아니아에 대항했다. 1205년 겨울, 비에스타르드가 이끄는 셈갈리아 군대는 리투아니아 공작 즈벨가이티스의 군대를 공격하여 승리했다. 1208년에는 셈갈리아와 십자군 연합 군대를 이끌고 리투아니아를 공격했으나 패배했다. 1236년, 셈갈리아인들은 사울레 전투에서 리투아니아인들과 함께 리보니아 기사단에 맞서 싸웠고, 같은 해 동부 셈갈리아에서 봉기가 일어났다.[2]리보니아 기사단에게 셈갈리아는 튜튼 기사단의 프로이센 지부와 분리시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2] 1250년 셈갈리아 전체가 리보니아 기사단에 정복되었고, 1258년에는 셈갈리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독립을 되찾기도 했다. 1272년, 셈갈리아는 결국 리보니아 기사단에 굴복했다.[2]
1279년 아즈크라우클레 전투에서 리투아니아인들이 승리한 후, 나메이시스 공작이 이끄는 셈갈리아 봉기가 일어났다. 나메이시스는 트라이데니스의 봉신임을 인정하고 1281년 리투아니아로 철수하여 트라이데니스가 이끈 전투에 참여했다.[2]
이후 셈갈리아는 리보니아 기사단과 리투아니아 사이에 분할되었다.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는 스스로를 셈갈리아 공작이라고 칭했다.[3][6]
4. 5. 16세기 이후
발트인의 일파인 젬갈레인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13세기부터 셀로니아도 젬갈레에 포함되었으며, 현재도 젬갈레 선거구의 동부를 이룬다. 같은 발트인인 셀로니아인에서 유래한 이 지역은 리투아니아 북동부이기도 하다.1795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쿠를란트 현에 속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라트비아 영토가 되었다.
5. 언어
동부 발트어군에 속한다. 이 언어는 리투아니아 북부와 라트비아 남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16세기까지는 사멸된 것으로 여겨진다. 젬갈레인 중 일부는 라트비아인에게 동화되었고, 다른 일부는 리투아니아인에게 동화되었다.
6. 현재
오늘날의 라트비아에서 젬갈레는 라트비아의 역사적 문화 지역 중 하나로 지위를 가진다. 이 지역은 발트 족의 일파인 셈갈리아인에게서 이름을 따왔다.[3] 13세기부터 셀로니아는 젬갈레의 일부로 포함되었으며, 현재 젬갈레 선거구의 동부를 구성한다. 셀로니아는 셀로니아인 발트 부족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통적인 셀로니아는 리투아니아 북동부의 일부도 포함한다. 라트비아의 문장에서 셈갈리아는 쿠를란트(''Kurzeme'')와 함께 묘사되는데, 이는 두 지역 간의 역사적 연결 때문이다. 젬갈리아는 북동쪽의 비드제메(구 스웨덴령 리보니아의 남부), 남쪽의 리투아니아 사모기티아, 서쪽의 쿠를란트 및 동쪽의 셀로니아와 인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리가만과 접한다. 젬갈리아의 지형은 주로 평원과 몇몇 언덕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예루페 강은 다우가바 강 다음으로 중요한 강이다. 주요 도시는 옐가바(Mitau|미타우de)로, 이전 쿠를란트 공국과 셈갈리아 공국의 수도였다.
라트비아의 젬갈리아 지역의 영토는 법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7]
| 지역 |
|---|
| 옐가바 시 |
| 바우스카 자치시 |
| 도벨레 자치시 |
| 옐가바 자치시 |
| 발도네 교구의 일부 |
| 발도네 시 |
| 다우그말레 교구 |
| 케카바 교구의 일부 |
| 바비테 교구의 일부 |
| 비르즈갈레 교구 |
| 케굼스 시의 다우가바 강 좌안 부분 |
| 토메 교구 |
| 올라인 교구의 일부 |
| 야우나우체 교구 |
| 루바 교구 |
| 바닥스테 교구 |
| 주크스테 교구 |
| 야운필스 교구 |
| 레스테네 교구 |
| 슬람페 교구 |
리투아니아에서 젬갈리아(''Žiemgala'')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발트 지역으로 간주된다. 젬갈라는 아욱슈타이티야의 일부이며, 주요 중심지는 요니슈키스, 파크루오이스, 제이멜리스, 린쿠바, 파스발리스이다. 젬갈리아 박물관은 1958년 제이멜리스에 개관했다.[8]
참조
[1]
웹사이트
Sub-national HDI - Area Database - Global Data Lab
https://hdi.globalda[...]
2018-09-13
[2]
서적
Crusader castles of the Teutonic Knights. 2, The stone castles of Latvia and Estonia 1185-1560
https://www.worldcat[...]
Osprey
[3]
웹사이트
Žiemgala
https://www.vle.lt/s[...]
2023-06-02
[4]
웹사이트
The Semigallian cultural area
http://www.istorija.[...]
2020-10-12
[5]
서적
Foreword to the Past: A Cultural History of the Baltic People
https://books.google[...]
Central European University Press
1999-01-01
[6]
웹사이트
Gediminas
https://www.vle.lt/s[...]
2023-06-02
[7]
웹사이트
Latviešu vēsturisko zemju likums - Latvijas Vēstnesis
https://www.vestnesi[...]
2024-08-09
[8]
웹사이트
Žiemgala museum
https://www.visitsia[...]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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