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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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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두남은 평양 출신의 작곡가로, 미국인 신부에게 서양 음악을 배우고 11세에 작곡가로 데뷔했다. 숭실학교 졸업 후 만주에서 활동하며 가곡 '선구자'를 작곡했으며, 광복 후 서울과 마산에서 활동하며 피아노 교육에 힘썼다. '선구자'는 민족적 기상을 담은 곡으로 널리 불렸으나, 작사가 윤해영의 친일 행적과 조두남의 만주 활동 관련 의혹으로 논란이 일었다. 결국 조두남기념관은 마산음악관으로 변경되었고,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2009년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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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조두남
본명조두남
출생일1912년 11월 03일
출생지일제강점기 평안남도 평양부
거주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사망일1984년 11월 08일
사망지경상남도 마산시
직업피아니스트, 작곡가, 교육인
장르서양 고전음악
배우자김민혜
활동 시기1923년 ~ 1984년
악기피아노

2. 생애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 노래비


조두남은 평양의 서구적인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 출신 신부 조지프 캐논스에게 서양 음악과 작곡을 배웠다. 11세에 가곡 〈옛이야기〉를 작곡하여 작곡가로 데뷔했고, 17세에 첫 가곡집을 발간했으며, 21세에 가곡 〈선구자〉를 작곡했다.[7]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에서 활동했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창작 활동을 하였고, 한국 전쟁 후에는 마산에 정착하여 작곡 활동보다는 주로 피아노 교육에 매진했다. 1962년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마산시 지부의 초대 지부장에 오르는 등 마산 지역 예술 진흥에 많은 공헌을 했다.

대표곡은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가곡선구자〉이다. 이 노래는 조두남이 만주에 머물 때 작곡한 곡으로 민족적 기상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 널리 불렸으나, 원 제목은 〈룡정의 노래〉이며 내용도 알려진 바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초기 작품 경향은 서정적이나 후기에는 민족적 정서를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1962년 경상남도 문화상, 1976년 눌원문화상을 받았다.

1982년, 음악 평론가 박봉석이 〈선구자〉는 1922년 작곡된 〈님과 함께〉(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표절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선구자〉는 1970년대, 1980년대의 한국 민주화 운동 중에도 자주 불렸으며,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조용필, 조영남, 윤형주, 엄정행(테너 가수) 등이 자신의 앨범에 〈선구자〉를 수록했다.

2003년 5월 29일, 한국 마산에서 조두남 기념관이 개관했지만 시민 단체의 항의를 받아 폐관되었다. 2005년 6월 15일, 조두남 음악관은 '''마산 음악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개관하여 조두남 외 다른 음악가들의 자료도 함께 전시한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조두남이 포함되었다. 2009년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정식으로 수록되었다.

2019년 8월 7일, 창원시는 마산 음악관에 전시하고 있던 흉상, 밀랍 인형, 〈선구자〉 악보 등 조두남에 관한 전시를 철거했다. 〈선구자〉 가사에 나오는 일송정, 영등레 우물 등 야외 전시물에 대해서도 재정비나 철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평안남도 평양시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 출신 신부 조셉 캐넌스(J. Cannons)에게 서양 음악과 작곡을 배웠다. 11세(1923년)에 "옛이야기"를 작곡, 17세에 첫 가곡집을 출판했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로 이주했다. 21세 때 가곡 선구자를 작곡했다.[7]

2. 2. 만주에서의 활동과 〈선구자〉 작곡



조두남은 평양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 출신 신부 조지프 캐논스에게 서양 음악과 작곡을 배웠다. 11세이던 1923년에 가곡 〈옛이야기〉를 작곡해 작곡가로 데뷔했고, 17세 때 첫 가곡집을 발간했으며, 21세 때 가곡 〈선구자〉를 작곡했다.[7]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에서 활동했다. 대표곡은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가곡선구자〉이다. 이 노래는 조두남이 만주에 머물 때 작곡한 곡으로 민족적 기상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 널리 불렸으나, 원 제목은 〈룡정의 노래〉이며 내용도 알려진 바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조두남은 무단장의 허름한 숙소에서 윤해영이라는 젊은이가 찾아와 가사를 보여주면서 "우리 민족이 모두 함께 조국의 광복을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하여 작곡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윤해영과는 그 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윤해영에 대해서는 만주에서 교사로 있었다는 것 외에는 잘 알려진 바가 없으며, 조두남은 회고록에서 윤해영을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독립 투사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 연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당시를 아는 조선족의 증언을 통해 그의 친일적인 인물상이 드러났다.

1996년, 『조선족 문화 총서 두만강 4집』(요녕 민족 출판사)에서 1940년대 흑룡강성에서 조두남과 함께 활동했던 김종화(1912~)는 「선구자」가 1932년이 아니라 1944년 봄 녕안에서 열린 조두남의 신곡 발표회에서 발표되었으며, 당시 가사에는 "말을 달리던 선구자", "조국을 되찾겠다고 맹세한 선구자" 등은 없고 "눈물의 행상", "흘러온 신세" 등 유랑하는 백성의 한과 슬픔을 호소하는 서정적인 내용이었다고 말했다.[2]

2002년 11월, 연변 작가 류영상이 한국 월간지 『말』에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를 기고하며 조두남의 친일 의혹을 다시 제기했다. 같은 해, 조두남의 친일 문제가 커지면서 김종화는 조두남의 회고록 『사모(그리움)』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며,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와 함께 만주국을 찬양하는 "아리랑 만주"를 작곡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조두남과 윤해영은 친밀한 사이였으며, 함께 음악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2. 3. 광복 이후 활동

광복 이후 조두남은 서울에서 창작 활동을 했고, 한국 전쟁 후에는 마산에 정착하여 작곡 활동보다는 주로 피아노 교육에 매진했다.[7] 1962년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마산시 지부의 초대 지부장에 오르는 등 마산 지역 예술 진흥에 많은 공헌을 했다.[7]

초기 작품 경향은 서정적이었으나 후기에는 민족적 정서를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했다.[7] 1962년 경상남도 문화상, 1976년 눌원문화상을 받았다.[7]

1963년 12월 30일 서울시민회관에서 개최된 "1963년 송년 음악회"에서 바리톤 김학근이 선구자를 불렀다. 이후 기독교방송 프로그램 "정든 우리 가곡"의 주제 음악으로 7년 동안 매일 방송되어 국민적 애창곡이 되었다.

1982년 병으로 요양 중에 『제2 수상집 - 그리움 - 작곡가 조두남의 인간과 음악 -』을 출판하여 목단강에서 윤해영과의 만남에 대해 회상했다.

1984년 11월 8일, 마산시 신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사후에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 4. 사망

1984년 11월 8일, 경상남도 마산시 신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사후에 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8]

3. 주요 작품

〈선구자〉 외에도 다수의 가곡과 대규모 성악곡인 칸타타 〈농촌〉, 오페레타 〈에밀레종〉 등이 있다.[7]

4. 논란

〈선구자〉의 작사가 윤해영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서, 만주에서의 조두남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2년 연변 음악계 원로 김종화는 조두남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전쟁 협력 성격이 짙은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와 함께 일본의 만주국 건설을 찬양하는 내용의 〈아리랑 만주〉 등을 작곡했다고 밝혔다.[9][10][11]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분야에 조두남을 포함시켰다.

조두남과 〈선구자〉를 둘러싼 논란은 그의 친일 행적 의혹과 기념 시설, 노래비 존폐 문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주요 사건들을 연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도사건 내용
1982년음악 평론가 박봉석이 〈선구자〉가 1922년 작곡된 〈님과 함께〉(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표절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
1994년 5월 24일마산 아카데미 라이온스 클럽, 창원역 앞 광장에 〈선구자〉 노래비 건립
1996년『조선족 문화 총서 두만강 4집』(요녕 민족 출판사) 출판. 김종화가 〈선구자〉의 발표 시기가 1932년이 아니라 1944년 봄 녕안에서 열린 조두남의 신곡 발표회였다고 증언
2002년 6월마산 시의원들이 조두남 기념관 건설 예정지에 소나무 기증, 「일송 기증석」 비석 건립[3]
2002년 11월연변 작가 류영상이 한국 월간지 『말』에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 기고, 조두남 친일 의혹 제기
2002년김종화, 조두남 회고록 『사모(그리움)』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 조두남이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 〈아리랑 만주〉 작곡했다고 증언
2003년 5월 29일한국 마산에서 조두남 기념관 개관, 시민 단체 항의로 폐관
2003년 7월마산시 「작곡가 조두남 실태 조사단」, 연변 방문, 연변대학교 교사들과 간담회 개최
2004년 3월 12일한국 KBS 『열린 채널』, 「선구자는 없다」 방송. 〈선구자〉 표절 의혹 재추궁
2004년 5월『음악가 김종화 - 그의 음악 작품과 인생』(민족 출판사) 연변에서 출판. 조두남 언급
2005년 6월 15일조두남 음악관, 마산 음악관으로 개칭 후 재개관. 조두남 외 다른 음악가 자료도 전시
2008년민족문제연구소 편찬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조두남 포함
2009년 11월 8일민족문제연구소 편찬 『친일인명사전』에 조두남 정식 수록
2013년국립서울현충원 일송정에 〈선구자〉 가사 새긴 목비 설치
2015년 11월 19일국립서울현충원, 〈선구자〉 가사 새긴 목비 철거.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 단체 항의[4]
2019년 5월마산 음악관 전시 리뉴얼. 〈선구자〉 악보 등 새로 전시[5]
2019년 8월 6일열린사회희망연대와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창원 시청에서 기자 회견, 조두남 관련 전시 철거 요구[5]
2019년 8월 7일창원시, 마산 음악관 내 조두남 관련 전시 철거. 야외 전시물도 재정비나 철거 예정[5]
2020년 3월 27일오마이뉴스, 창원역 앞 〈선구자〉 노래비 철거 목소리 제기 보도[6]


4. 1. 〈선구자〉와 친일 논란

〈선구자〉의 작사가 윤해영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서, 만주에서의 조두남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2년 연변 음악계 원로 김종화는 조두남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전쟁 협력 성격이 짙은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와 함께 일본의 만주국 건설을 찬양하는 내용의 〈아리랑 만주〉 등을 작곡했다고 밝혔다.[9][10][11] 오래전 만주에서의 행적이기에 확인이 어려워 논란이 이어졌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의 조두남기념관 명칭을 놓고도 찬반 양론이 대립했다.[9][10][11] 그 결과 조두남기념관은 개관 1개월이 채 못 되어 휴관하였다. 결국 2005년 6월 15일 조두남기념관을 '''마산음악관'''으로 개칭하고, 조두남 이외의 다른 지역 출신 음악가들의 자료도 함께 전시하는 장소로 바꾸고 나서야 개관할 수 있었다.[12]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분야에 조두남을 포함시켰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가도」로 시작하는 「선구자」는 1970년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 중에도 자주 불렸으며,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선구자」를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가수로는 조용필, 조영남, 윤형주, 엄정행(테너 가수) 등이 있다.

조두남은 작곡 경위에 대해, 무단장의 허름한 숙소에서 살던 자신에게 윤해영이라는 젊은이가 갑자기 찾아와 가사를 보여주면서 "우리 민족이 모두 함께 조국의 광복을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말해 이에 응하여 작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윤해영과는 그 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윤해영에 대해서는 만주에서 교사로 있었다는 것 외에는 잘 알려진 바가 없으며, 조두남은 회고록에서 윤해영을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독립 투사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를 전후로 한국과 중국 연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당시를 아는 조선족의 증언을 통해 그의 친일적인 인물상이 드러났다.

조두남과 〈선구자〉에 대한 논란 및 사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연도사건 내용
1982년음악 평론가 박봉석이 〈선구자〉가 1922년 작곡된 〈님과 함께〉(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표절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
1994년 5월 24일마산 아카데미 라이온스 클럽, 창원역 앞 광장에 〈선구자〉 노래비 건립
1996년『조선족 문화 총서 두만강 4집』(요녕 민족 출판사) 출판. 김종화가 〈선구자〉의 발표 시기가 1932년이 아니라 1944년 봄 녕안에서 열린 조두남의 신곡 발표회였다고 증언
2002년 6월마산 시의원들이 조두남 기념관 건설 예정지에 소나무 기증, 「일송 기증석」 비석 건립[3]
2002년 11월연변 작가 류영상이 한국 월간지 『말』에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 기고, 조두남 친일 의혹 제기
2002년김종화, 조두남 회고록 『사모(그리움)』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 조두남이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 〈아리랑 만주〉 작곡했다고 증언
2003년 5월 29일한국 마산에서 조두남 기념관 개관, 시민 단체 항의로 폐관
2003년 7월마산시 「작곡가 조두남 실태 조사단」, 연변 방문, 연변대학교 교사들과 간담회 개최
2004년 3월 12일한국 KBS 『열린 채널』, 「선구자는 없다」 방송. 〈선구자〉 표절 의혹 재추궁
2004년 5월『음악가 김종화 - 그의 음악 작품과 인생』(민족 출판사) 연변에서 출판. 조두남 언급
2005년 6월 15일조두남 음악관, 마산 음악관으로 개칭 후 재개관. 조두남 외 다른 음악가 자료도 전시
2008년민족문제연구소 편찬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조두남 포함
2009년 11월 8일민족문제연구소 편찬 『친일인명사전』에 조두남 정식 수록
2013년국립서울현충원 일송정에 〈선구자〉 가사 새긴 목비 설치
2015년 11월 19일국립서울현충원, 〈선구자〉 가사 새긴 목비 철거.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 단체 항의[4]
2019년 5월마산 음악관 전시 리뉴얼. 〈선구자〉 악보 등 새로 전시[5]
2019년 8월 6일열린사회희망연대와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창원 시청에서 기자 회견, 조두남 관련 전시 철거 요구[5]
2019년 8월 7일창원시, 마산 음악관 내 조두남 관련 전시 철거. 야외 전시물도 재정비나 철거 예정[5]
2020년 3월 27일오마이뉴스, 창원역 앞 〈선구자〉 노래비 철거 목소리 제기 보도[6]


4. 2. 친일인명사전 등재

윤해영이 쓴 〈선구자〉 가사의 친일 행적이 밝혀지면서, 만주에서 조두남이 보인 행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2년 연변 음악계 원로 김종화는 조두남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전쟁 협력을 부추기는 내용의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와 함께 일본의 만주국 건설을 칭찬하는 내용의 〈아리랑 만주〉 등을 작곡했다고 밝혔다.[9][10][11] 오래전 만주에서의 행적은 확인하기 어려워 논란이 계속되었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의 조두남기념관 명칭을 두고도 찬반 의견이 맞섰다. 그 결과 조두남기념관은 개관 한 달도 안 되어 문을 닫았다. 결국 2005년 6월 15일, '''조두남기념관'''을 '''마산음악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두남 외 다른 지역 출신 음악가들의 자료도 함께 전시하는 곳으로 변경한 후에야 다시 개관할 수 있었다.[12]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분야에 조두남을 포함시켰다.

4. 3. 기념 시설 및 노래비 논란

尹海榮|윤해영중국어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서 만주에서의 조두남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2년 연변 음악계 원로인 김종화는 조두남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와 함께 일본의 만주국 건설을 찬양하는 내용의 〈아리랑 만주〉 등을 작곡했다고 밝혔다.[9][10][11] 오래전 만주에서의 행적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논란이 이어졌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의 조두남기념관 명칭을 놓고도 찬반 양론이 대립했다.[9][10][11] 그 결과 조두남기념관은 개관 1개월이 채 못 되어 휴관하였다. 2005년 6월 15일, 조두남기념관을 마산음악관으로 개칭하고, 조두남 이외의 다른 지역 출신 음악가들의 자료도 함께 전시하는 장소로 바꾸고 나서야 개관할 수 있었다.[12]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분야에 조두남을 포함시켰다.

5. 친일인명사전에 함께 수록된 음악가

친일인명사전에 함께 수록된 음악가
이름
김동진
김성태
김재훈
김준영
김해송
박시춘
반야월
서영덕
손목인
안익태
이면상
이봉룡
이재호
이종태
이철
이흥렬
임동혁
전기현
조명암
한상기
현제명
홍난파


참조

[1] 웹사이트 故 趙斗南선생 기리는 선구자 노래비 세워져-마산 https://mnews.joins.[...] 중앙일보 2020-04-18
[2] 웹사이트 「선구자」 원제목은 “용정의 노래”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19-02-03
[3] 웹사이트 "마산음악관, 친일 조두남 흔적인 '일송 기증석'도 없애야" http://www.ohmynews.[...] ohmynews 2020-01-09
[4] 뉴스 서울 국립묘지 한복판 '친일 노래 나무패' 논란속 철거.연합뉴스 http://www.yonhapnew[...] 2015-11-22
[5] 웹사이트 마산음악관 '친일 음악가' 조두남 기념물 모두 철거 https://www.yna.co.k[...] Yonhapnews 2019-08-14
[6] 웹사이트 "친일파에 '사기'로 밝혀진 가곡 '선구자', 노래비 없애야" http://www.ohmynews.[...] OhmyNews 2020-04-18
[7] 문서 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의 서양음악가/작곡가/조두남 글로벌 세계 대백과
[8] 뉴스 작곡가 고 조두남옹 금관 문화훈장 추서 조선일보 1984-11-11
[9] 뉴스 "조두남·이은상 삭제, 마산음악·문학관으로" - 시민위 결정, 마산음악관은 향토음악가 위한 공간으로 전환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8-05-05
[10] 뉴스 조두남 친일의혹 진실규명 민·관공동 중국 현지조사 http://www.hani.co.k[...] 한겨레 2008-05-05
[11] 뉴스 조두남기념관 유족들도 철거요구 http://www.hani.co.k[...] 한겨레 2008-05-05
[12] 뉴스 조두남기념관→마산기념관 http://news20.busan.[...] 부산일보 2010-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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