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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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관적 관념론은 지각된 대상의 실재성을 주체의 마음에 의존한다고 보는 관념론의 한 형태로, 18세기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대표적인 주창자이다. 버클리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라는 명제를 통해 물질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사물이 인간 또는 신의 마음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플라톤 등의 사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사무엘 존슨과 같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주관적 관념론은 버트런드 러셀, 데이비드 스토브 등 여러 철학자들의 비판을 받았으며, 문학 작품에서도 주제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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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관적 경험 - 마음
마음은 의식, 사고, 지각, 감정, 동기, 행동, 기억, 학습 등을 포괄하는 심리적 현상과 능력의 총체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인간 삶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 주관적 경험 - 지각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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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관념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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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관념론 | |
유형 | 형이상학적 관념론 |
주요 인물 | 조지 버클리 |
대조되는 학파 | 객관적 관념론, 물리주의, 실재론 |
2. 역사
주관적 관념론은 인도 불교의 유가행파 학파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은 경험의 세계를 주관적 인식의 흐름으로 축소했다. 이후 18세기 유럽에서 조지 버클리가 주관적 관념론을 주장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버클리는 마음에 독립적인 실재는 없으며, 세상은 인간과 신의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마누엘 칸트는 버클리의 주장에 반박하며 초월적 관념론을 제시했다. 칸트는 정신 독립적인 세계가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칸트 이후에도 현상주의, 주관주의, 관점주의 등 주관적 관념론과 유사한 사상들이 이어져 왔다.
플라톤, 플로티노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사상가들은 물질의 열등하거나 파생적인 현실에 대한 견해를 통해 관념론의 비물질주의적 주장을 예견했으나, 버클리와 같이 주관성으로의 전환은 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러한 관점을 설명했다.[1]
7세기 인식론자 달마키르티와 같은 요가차라 사상가들은 관념론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서구 세계에서 주관적 관념론의 가장 유명한 주창자는 조지 버클리였으며, 그의 인기는 동시대 성공회 철학자 아서 콜리어를 능가했다. 콜리어는 "외부 세계의 부인"을 주장하며 버클리보다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버클리는 '비물질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Esse est percipi"(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라는 명제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했다.[2] 그는 "아이디어의 존재는 지각되는 것으로 구성된다"고 썼으며,[3] 모든 것을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물질은 모든 사람이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실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버클리는 모든 물질이 인간 정신에 의해 구성된다고 믿었으며,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평범한 사물(집, 산 등)을 지각한다. (2) 우리는 아이디어만 지각한다. 따라서 (3) 평범한 사물은 아이디어이다."[4] 그는 물질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5]
버클리의 주장은 사무엘 존슨에 의해 비판받기도 했다. 존슨은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라고 외치며 돌을 걷어차는 일화를 남겼다. 이 에피소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언급된다.[1]
2. 1. 서양 철학
현상주의 또는 경험주의와 정신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관념론을 융합한 주관적 관념론은, 즉시 지각된 것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관념론은 비정신적인 것의 인식 가능성이나 존재를 부정하고, 현상주의는 정신적인 것을 경험적인 것으로 제한한다. 주관적 관념론은 정신적 현실을 일상적 경험의 세계와 동일시하며, 이 현실이 범신론처럼 "신성한" 것인지, 절대적 관념론처럼 근본적으로 통일된 전체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형태의 관념론은 객관적인 실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실재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마음에 완전히 의존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주관적"이다.[1]주관적 관념론자로 식별되는 초기 사상가들은 경험의 세계를 주관적 인식의 흐름으로 축소한 인도 불교의 유가행파 학파 구성원들이었다. 주관적 관념론은 18세기 유럽 조지 버클리의 저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그는 마음에 독립적인 실재라는 관념이 일관성이 없으며 세상은 인간과 신의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작가들은 버클리의 회의적인 주장에 계속 대응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버클리의 비물질주의를 거부하고, 정신 독립 세계를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인식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초월적 관념론으로 대체했다. 칸트 이후, 진정한 비물질주의는 희귀했지만, 현상주의, 주관주의, 관점주의와 같은 부분적으로 겹치는 운동에 의해 유지되었다.[1]
플라톤, 플로티노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사상가들은 물질의 열등하거나 파생적인 현실에 대한 견해를 통해 관념론의 비물질주의적 주장을 예견했다. 그러나 이들은 버클리처럼 주관성으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사람들이 평생 그림자만 보다가 밖으로 나가면 완전히 다른 현실을 보지만 이전 것을 잊게 된다고 설명하며, 이는 버클리의 비물질주의 이론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1]
7세기 인식론자 달마키르티와 같은 요가차라 사상가들은 관념론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서구 세계에서 주관적 관념론의 가장 유명한 주창자는 18세기 아일랜드 철학자 조지 버클리였으며, 그의 인기는 동시대 성공회 철학자 아서 콜리어를 능가했다. 콜리어는 "외부 세계의 부인"을 주장하며 버클리보다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버클리는 '비물질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그의 관점에서 물질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현상 세계는 인간에 의존한다. "Esse est percipi"(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는 버클리의 주장을 요약한 것으로, 사물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고 보일 때 존재한다는 것이다.[2] 버클리는 "아이디어의 존재는 지각되는 것으로 구성된다"고 썼다.[3] 그는 모든 것을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물질은 모든 사람이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실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2]
버클리는 모든 물질이 인간 정신에 의해 구성된다고 믿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의 주장은 "(1) 우리는 평범한 사물(집, 산 등)을 지각한다. (2) 우리는 아이디어만 지각한다. 따라서 (3) 평범한 사물은 아이디어이다."[4]
버클리는 물질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만약 외부의 몸이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없을 것이고, 만약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과 같은 이유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존재는 외부의 몸의 도움 없이도 당신이 가진 것과 같은 일련의 감각이나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5]
사람들은 전제 (2)가 틀렸다고 주장하며, 사물을 지각하고 그 다음에 그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지각하는 것은 도구, 장애물 및 위협이라고 믿는다. 고릴라 심리 연구는 사람들이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7] 따라서, 사물이 곧바로 정신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다.
버클리는 물리적 세계의 움직임이 어떻게 정신의 감정으로 변환될 수 있는지 명백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질주의자들조차도 이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로크는 물리적 대상에서 정신적 이미지로의 전달을 "전적으로 우리 창조주의 기쁨으로 돌려야 한다"고 믿었다.[8] "물질의 존재가 우리의 아이디어의 발생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6]는 사실은 버클리에게 물질을 믿는 이유를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버클리에 따르면, 어떤 대상은 그것이 마음에 의해 지각되는 한 실재적 존재를 갖는다. 신은 전지하기 때문에 모든 지각 가능한 것을 지각하며, 모든 실재적 존재는 신의 마음에 존재한다. 버클리는 물질적 우주는 존재하지 않으며, 무감각한 물질로 구성된 우주에 대해 이론을 세우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비물질주의에 대한 버클리의 평가는 사무엘 존슨에 의해 비판받았다. 존슨 박사는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라고 외치며 돌을 걷어찼다. 이 에피소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언급된다.[1]
3. 주요 내용
주관적 관념론은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것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현상론과 정신적인 것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관념론을 융합한 것이다. 관념론은 비정신적인 것의 지식 가능성 또는 존재를 부정하고, 현상론은 정신적인 것을 경험적인 것으로 제한한다. 주관적 관념론은 정신적 현실을 일반적인 경험의 세계와 동일시한다. 이러한 현실이 범신론처럼 "신성"한지, 절대적 관념론처럼 근본적으로 통일된 전체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관념론이 "주관적"인 이유는 객관적 현실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마음에 완전히 의존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주관적 관념론자로 볼 수 있는 초기 사상가들은 인도의 불교 유가행파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경험의 세계를 주관적 지각의 흐름으로 축소했다. 주관적 관념론은 18세기 조지 버클리의 저술을 통해 유럽에 나타났다. 버클리는 마음과 독립적인 현실이라는 개념이 모순된다고 주장하며, 세계가 인간의 마음과 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이마누엘 칸트는 버클리의 비물질주의를 거부하고 초월적 관념론으로 대체했다. 칸트는 마음과 독립적인 세계가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인지할 수 없는 본체라고 보았다. 칸트 이후, 진정한 비물질주의는 드물게 나타났지만, 현상론, 주관주의, 원근주의와 같은 운동을 통해 이어져 왔다.
3. 1. 버클리의 주장
조지 버클리는 마음에 독립적인 실재라는 관념은 일관성이 없으며, 세상은 인간과 신의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1] 후속 작가들은 버클리의 회의적인 주장과 계속 씨름했다.플라톤은 동굴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비유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현실이 있다는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다. 사람들이 평생 동안 그림자만 보면서 묶여 있다가 밖으로 나가면 완전히 다른 현실을 보게 되지만, 이전의 것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1] 이는 버클리의 비물질주의 이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데, 사람들이 같은 세상에 노출되어도 서로 다르게 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버클리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시도했다.
요가차라 사상가들은 궁극적 실재를 감각 지각과 동일시했다. 서구 세계에서 주관적 관념론의 가장 유명한 주창자는 18세기 아일랜드 철학자 조지 버클리였으며, 그의 인기는 동시대의 동료 성공회 철학자인 아서 콜리어를 능가했다. 콜리어는 물질의 존재를 반박하거나, 그가 말하길 "외부 세계의 부인"을 주장하며 버클리보다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론에 대한 버클리의 용어는 '비물질주의'였다. 주관적 관념론에서, 물질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현상 세계는 인간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 철학 체계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사물이 아이디어 또는 감각의 복합체이며, 지각의 대상과 주체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Esse est percipi"는 버클리의 모든 주장을 요약한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2] 그는 사물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고 보일 때 존재한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자신의 요점을 구성했다. 버클리는 "아이디어의 존재는 지각되는 것으로 구성된다"라고 썼다.[3] 이것은 모든 것을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물질은 주관적인 범주에 속하는데, 모든 사람이 물질을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물질은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버클리는 모든 물질이 인간 정신에 의해 구성된다고 믿는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평범한 사물(집, 산 등)을 지각한다.
# 우리는 아이디어만 지각한다.
# 따라서 평범한 사물은 아이디어이다.[4]
버클리는 물질주의자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다. 그는 "만약 외부의 몸이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없을 것이고, 만약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과 같은 이유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5] "생각하는 존재는 외부의 몸의 도움 없이도 당신이 가진 것과 같은 일련의 감각이나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다."라고 하였다.[5] 버클리는 사람들이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단순히 그들의 마음 속의 창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없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전제 (2)가 틀렸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지각"[6]을 구별하여, 사물을 지각하고 그 다음에 그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게 되면서, 동등성을 효과적으로 삭감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명백한 경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논쟁의 여지가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지각하는 것은 도구, 장애물 및 위협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비디오를 보고 얼마나 많은 농구 패스가 이루어졌는지 세도록 요청받은 유명한 고릴라 심리 연구는 사람들이 실제로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고등학교 체육관을 가로질러 행진하는 고릴라조차도 보지 못했다.[7] 마찬가지로, 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보다 더 빠르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사물이 곧바로 정신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다.
버클리는 심지어 물리적 세계의 움직임이 어떻게 정신의 감정으로 변환될 수 있는지 명백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질주의자들조차도 이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로크는 물리적 대상에서 정신적 이미지로의 전달을 설명하기 위해 "전적으로 우리 창조주의 기쁨으로 돌려야 한다"고 믿었다.[8] 뉴턴의 물리학 법칙은 모든 움직임이 다른 움직임의 역 변화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며, 물질주의자들은 인간이 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그들의 부분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객체가 존재하는 것과 규칙적인 아이디어의 완전히 다른 영역 간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명백하지 않다. "물질의 존재가 우리의 아이디어의 발생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6]는 사실은 버클리에게 물질을 믿는 이유를 훼손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물질주의자들이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방법이 없다면, 그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버클리에 따르면, 어떤 대상은 그것이 마음에 의해 지각되는 한 실재적 존재를 갖는다. 신은 전지하기 때문에 모든 지각 가능한 것을 지각하며, 따라서 모든 실재적 존재는 신의 마음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자율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자기 성찰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우리의 감각과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버클리에 따르면, 물질적 우주는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로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무감각한 물질로 구성된 우주에 대해 이론을 세우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 아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물질적 우주에 대한 긍정적인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이며, 오직 우리의 마음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한 추측만 있을 뿐이다.
비물질주의에 대한 버클리의 평가는 사무엘 존슨에 의해 비판받았다. 이 이론에 대응하여, 존슨 박사는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라고 외치며 "강력한 힘"으로 돌을 걷어찼다.
4. 비판
버트런드 러셀은 저서 ''철학의 문제들''에서 관념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버클리의 동어반복적 전제를 강조한다. 우리가 아는 것이 마음속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음의 앎의 능력을 부당하게 제한하거나, 단순한 동어반복을 말하는 것이 된다. 만약 '마음 속에'라는 말이 '마음 앞에'라는 말과 같이, 마음으로 파악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는 단순한 동어반복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에서 마음속에 있는 것은 정신적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버클리의 주장은 형식과 실질 모두에서 틀렸으며, 관념이 정신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근거는 타당성이 없다.[9]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데이비드 스토브는 철학적 관념론이 "세계 최악의 주장"에 근거한다고 비판한다. 스토브는 버클리가 동어반복적 추론에서 비동어반복적 결론을 도출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버클리의 경우 논리적 오류가 명백하지 않은 이유는 한 전제가 동어반복적인 의미와 결론과 논리적 동치인 또 다른 의미 사이에서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9]
앨런 머스그레이브는 개념적 관념론자들이 용어-언급 구별을 혼동하는 실수를 저지른다고 주장한다.[10] 예를 들어,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지만, "산타클로스"라는 이름/개념/동화는 존재한다. 머스그레이브는 "사물 자체"(이마누엘 칸트), "우리에 의해 상호작용하는 사물"(아서 파인), "상식의 테이블"과 "물리학의 테이블"(아서 에딩턴)과 같은 하이픈으로 연결된 실체들의 증식이 개념적 관념론의 "경고 신호"라고 지적한다. 머스그레이브는 리처드 로티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용어와 언급을 혼동한다고 비판한다.
존 설은 주관적 관념론에 대한 두 가지 주장을 요약한다. 첫 번째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기반한다. 우리가 인식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 내용뿐이고, 외부 세계에 대한 주장의 유일한 인식론적 근거는 우리의 지각적 경험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지각적 경험의 현실이다.[11] 설은 두 번째 전제에 동의하지만, 첫 번째 전제가 틀렸고 결론이 전제들에서 유추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 주장은 모든 인지 상태는 인지 상태 집합의 일부로, 인지 시스템 내에서 발생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이로부터 모든 인지 상태와 시스템 밖으로 나가 그들 간의 관계와 그들이 인지하는 현실을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인지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12] 설은 두 번째 결론이 전제에서 유추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5. 문학에서의 수용
주관적 관념론은 노르웨이 소설 《소피의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소피의 세계"는 사실 책의 페이지 속에만 존재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틀론,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서도 주관적 관념론의 비유를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버클리를 언급하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Allegory of the Cave
https://web.stanford[...]
[2]
서적
George Berkeley
http://plato.stanfor[...]
Stanford University
[3]
서적
A Treatise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Human Knowledge
Scolar Press
1734
[4]
웹사이트
George Berkeley
http://plato.stanfor[...]
2019-05-21
[5]
웹사이트
The Principles of Human Knowledge
https://www.earlymod[...]
2019-05-21
[6]
웹사이트
George Berke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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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1
[7]
간행물
Gorillas in our midst: sustained inattentional blindness for dynamic events
http://www.chabris.c[...]
2019-05-21
[8]
웹사이트
Of the Extent of Human Knowledge
http://enlightenment[...]
2019-05-21
[9]
웹사이트
Stove's discovery of the worst argument in the world
http://web.maths.uns[...]
[10]
문서
Alan Musgrave, in an article titled ''Realism and Antirealism'' in R. Klee (ed), ''Scientific Inquiry: Reading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Oxford, 1998, 344-352 - later re-titled to ''Conceptual Idealism and Stove's Gem'' in A. Musgrave, Essays on Realism and Rationalism, Rodopi, 1999 also in [[Maria Luisa Dalla Chiara|M.L. Dalla Chiara]] et al. (eds), ''Language, Quantum, Music'', Kluwer, 1999, 25-35 - [[Alan Musgrave]]
[11]
문서
[[John Searle]], ''The 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p. 172
[12]
문서
[[John Searle]], ''The 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p.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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