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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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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중반 근대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등장한 사상으로, 보편적 진리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모순을 수용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1870년에 용어가 처음 등장했지만, 1950~60년대부터 건축,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가 활발해졌다.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예술, 영화, 건축, 도시 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대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유행이 지났다는 의견이 늘어나면서,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메타모더니즘 등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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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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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신 국립 미술관, 제임스 스털링 설계,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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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고스트 의자, 필립 스탁 디자인, 2009년
개요
분류예술, 문화, 이론 운동
선행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티
관련 개념해체
초근대
과잉현실
탈인간주의
탈구조주의
분야
학문 분야포스트모던 인류학
탈과정 고고학
포스트모던 건축
포스트모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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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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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나키즘
탈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실증주의
포스트모던 심리학
포스트모더니즘 (정치학)
포스트모던 연극
포스트모던 신학 및 포스트모던 종교
반응
비판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관련 운동메타모더니즘
탈-포스트모더니즘
리모더니즘
관련 개념
사회적 구성주의사회 구성주의 및 사회적 구성주의
포스트모던 사회적 자연 구성
사회적 성 구성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
언어학언어적 전환

2. 역사적 배경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주의)은 1960년대에 일어난 문화 운동이자,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된 한 시대의 이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대주의(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modern) 시대는 보통 18세기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이성 중심주의 시대를 의미한다.[12][13][14][15][16] 모더니즘은 산업혁명, 도시화, 세속화, 기술 발전,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그리고 세계화와 같은 서구 세계의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19세기 후반에 등장했으며, 여러 분야에서 전통적인 사상과 형식을 재검토하며 기본적인 진리와 가치를 재정의하려 시도했다.[12][13][14][15][16]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중반, 특히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많은 학자들은 이를 모더니즘의 주요 개념들에 대한 반발이나 차용을 통해 모더니즘을 확장하거나 대체하려는 사조로 본다. 모더니즘이 중시했던 합리성, 객관성, 진보와 같은 이상들의 보편성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계몽주의적 합리주의를 비판하고, 정치적·경제적 권력 유지에 있어 이데올로기의 역할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지지자들은 이 사조가 후기 자본주의나 방송 매체의 성장과 같은 특수한 사회경제적 상황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와 세계화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심화시키고, 정치, 소통, 지식 생산 등에서 과거의 중앙 집중적 구조를 약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분화된 사회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메타서사(거대 서사)나 헤게모니와 같은 통일된 틀에 대한 회의주의적 반작용으로 나타났다고 분석된다.[5] 이는 현실을 재현하는 능력 자체에 대한 깊은 불신, 즉 '표상의 위기'와 연결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지식 주장이나 가치체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담론이나 위계의 산물이며, 우연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객관적 현실, 보편적 도덕, 진리, 인간성, 이성, 과학, 언어, 사회적 진보 등에 대한 보편주의적 관념을 비판하며, 자의식, 자기언급, 인식론적 및 도덕적 상대주의, 다원주의, 불손함 등의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전통적인 장르, 구조, 문체의 경계를 허물고,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의 구분과 같은 기존의 틀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철학 분야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이 크며, 예술 분야에서는 사실주의나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는 "매우 논쟁적인 용어"이며, 단일하고 통합된 현상이라기보다는 여러 다양한 현상을 포괄하는 복잡한 개념으로 이해된다.

2. 1. 초기 등장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1870년 화가 존 와킨스 채프먼(John Watkins Chapman)이 프랑스 인상주의에서 벗어난 "포스트모던 회화 양식"을 묘사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이후 20세기 초반 다양한 분야에서 산발적으로 등장했다. 1914년 미국 성공회 사제 J. M. 톰슨(J. M. Thompson)은 종교 비판의 태도 변화를 설명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고, 근대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지칭했다. 1916년에는 화가 거스 매거(Gus Mager)가 "포스트' 모던 화가"로 언급되기도 했다.[17]

1926년, 세인트 스티븐스 대학교 총장이었던 버나드 아이딩스 벨(Bernard Iddings Bell)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다른 에세이(Postmodernism and Other Essays)』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는 근대성 이후의 역사적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한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18] 이 책은 계몽주의 시대의 사회문화적 규범과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으로부터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1939년 아놀드 J.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우리 자신의 포스트모던 시대는 1914년에서 1918년까지의 세계 대전으로 시작되었다"고 언급하며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를 학문적 맥락에서 사용했다. 문학 분야에서는 1942년 H. R. 헤이스(H. R. Hays)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새로운 문학 형식으로 묘사했으며,[19] 1949년에는 근대 건축 운동의 국제 양식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 용례들은 20세기 후반에 본격화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직접적인 연속성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와 1960년대부터이며, 언제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다양한 시점을 제시한다. 특히 1977년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언어』와 1979년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출간 이후 건축, 철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중요한 시대적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122]

2. 2. 이론적 발전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 문화 운동으로 시작하여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시대 이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18세기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이성 중심의 근대주의(모더니즘)를 먼저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근대주의의 핵심 개념에 반발하거나 이를 차용하여 확장 또는 대체하려는 사조로 본다. 근대주의가 중시했던 합리성, 객관성, 진보와 같은 이상들의 보편성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의문을 던진다.

포스트모더니즘 지지자들은 후기 자본주의나 방송 매체 발달 같은 특정 사회경제적 상황이 이 사조를 낳았다고 보기도 한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순히 근대주의의 연장일 뿐 새로운 시대나 사상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초기 논쟁은 현대 사회의 기술적, 경제적 변화가 소통과 의미를 객관적 실체로부터 분리시켰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세계화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심화시키고 중앙 집중적 구조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자들은 분화된 사회가 메타서사(거대 서사)나 헤게모니 같은 통일된 틀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스트모던적 인식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통적 장르나 구조를 해체하고 로고스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는 정의하기 어렵고 논쟁적이다.[3][4] 단일 현상이 아닌 여러 다양한 현상을 포괄하며, 학자 루이 메난드(Louis Menand)는 이를 "비판적 개념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에 비유했다.[3]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표상의 위기', 즉 현실 재현 능력에 대한 깊은 불신이 지적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회의주의적 태도를 공유하며[5], 예술, 문학 등에서 장르 경계를 허물고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에 도전한다.[6] 또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기존 제도와 규범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와 다양성 포용을 촉구한다.[7][8][9][10][11]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1870년대부터 회화, 종교 비판, 역사 구분, 문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발적으로 사용되었으나[17][18][19], 현재와 같은 의미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점은 1950년대~1960년대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론적 발전은 1970년대 중반 사회학자 대니얼 벨(Daniel Bell)이 포스트모더니즘을 근대주의 윤리에 대한 허무주의적 공격으로 규정한 것에서 중요한 계기를 맞는다. 그는 근대적 이상이 소비주의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벨의 주장은 이후 1980년대 중반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와 프레드릭 제이미슨(Fredric Jameson)이 예술 및 문학 비평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사회학에 재도입하면서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졌다. 이 시기 논의는 문학과 건축 이론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점차 철학적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주의와의 단절인지, 연속인지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었다.

2. 2. 1. 문학 및 건축 이론

문학과 건축 이론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1950년대 블랙 마운틴 시인으로 알려진 찰스 올슨과 로버트 크릴리는 모더니즘 시에 대한 반대 입장에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현재와 유사한 의미로 처음 사용한 인물들로 여겨진다.[20] 이들은 계몽주의가 내세운 합리주의적 가치에 도전하는 논쟁적인 입장을 취했다.

1972년의 시인 로버트 크릴리


1960년대에는 뉴 레프트 진영에서 이 용어를 다소 비판적으로 사용했는데, 젊은 세대 사이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 같은 정치적 이상에 대한 헌신이 약화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문학 비평가 어빙 하우는 포스트모던 문학이 당대 사회의 특징을 단순히 반영할 뿐, 적극적으로 사회를 재구성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 문학 비평가 이합 하산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새롭게 조명했다. 그는 모더니즘의 엄숙함과 대비되는 니체적인 유희 정신과 쾌활한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포스트모더니즘의 긍정적인 특징으로 부각시켰다. 이 시기에는 포스트구조주의 이론, 특히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접근이 문학 비평에 영향을 미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일종의 반(反)표상적 자기반성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문학 작품 내에서는 장르 간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는 다양한 시점을 활용하여 현실감을 높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작가 중심의 해석에서 벗어나 독자의 능동적인 상상력과 참여를 중시하는 특징을 보인다.

건축 분야에서는 1970년대 후반 찰스 젠크스가 저술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언어'(1977년)가 중요한 계기가 되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건축 및 디자인계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122]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년) 역시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확산에 기여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건축 이론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젠크스는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의 영향을 받아,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과 합리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했던 모더니즘 건축("권위주의적 스타일")의 획일성을 비판했다. 그는 건축에서의 다양성, 장식성, 절충주의, 그리고 건물이 들어서는 지역적 맥락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의 호황 속에서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다채롭고 실험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들이 많이 세워졌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친 장식성이나 기이함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상업주의에 머물렀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일부 포스트모던 건축에서는 아르데코아르누보 같은 과거 양식의 장식성을 차용하거나, 탈구축주의 건축처럼 해체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제품 디자인 영역에서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그룹 멤피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사례로 꼽힌다.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를 중심으로 1981년 결성된 이 그룹은 독특한 형태와 밝고 대담한 색채를 사용한 가구 및 생활용품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 2. 2.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

철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23]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으며,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당히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구조주의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상 배후의 구조 분석을 통해 시스템의 내적 문법을 추출하려 했으나, 구조를 정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차이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이러한 구조주의의 경향, 특히 서구 중심적인 로고스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했다.

197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 특히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적 접근 방식과 깊이 연관되기 시작했다. 데리다는 언어와 지식에 대한 모든 기초주의적 접근 방식, 즉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기초 위에 지식 체계를 세우려는 시도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고 오류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이려 시도했다. 이 시기 포스트모더니즘은 고정된 의미나 재현을 거부하는 일종의 반(反)표상적 자기 반성과 동일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비평가들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작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푸코는 지식, 권력, 담론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분석하며,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권력 관계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했다. 그의 이론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사회적 권력 관계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불어넣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페미니즘(feminism) 및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와 같은 사회 운동과 결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들 운동은 기존의 권력 구조와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며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했고, 푸코의 이론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뒷받침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특히 미술 비평가 크레이그 오웬스(Craig Owens)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제시하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나 린다 니콜슨(Linda Nicholson)과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동조적인 일부 페미니스트들조차 이러한 포괄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회의주의적이고 아이러니한 태도, 그리고 큰 이야기(메타내러티브)와 모더니즘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의 거부로 특징지어진다. 계몽주의 시대부터 강조되어 온 합리주의를 비판하며,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이데올로기의 역할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은 지식 주장이나 가치체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담론이나 위계의 산물이며, 우연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객관적 현실, 보편적 도덕, 진리, 인간성, 이성, 과학, 언어, 사회적 진보 등에 대한 보편주의적이고 절대적인 관념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비판적 접근은 다양한 학문 분야와 예술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2. 2. 3. 범위의 확장

포스트모더니즘 비판과 사상은 초기부터 철학적 사상에 기반을 두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철학적 어휘에 명시적으로 도입된 것은 1979년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저서 ''포스트모던 컨디션: 지식에 대한 보고서''(영어 번역본, 1984년)를 통해서였다. 이 저서는 이후 해당 용어를 둘러싼 많은 지적 논쟁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1990년대가 되자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더니티 또는 포스트모던 표현 양식 자체에 대한 비판적, 철학적 담론과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더 이상 특정 예술이나 일반적인 예술에 중점을 두지 않고, 대신 다양한 문화와 형태의 새로운 확산이 사회 전반에 제기하는 더 일반적인 문제들을 다루게 되었다. 이 시기에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정체성 정치와도 관련되게 되었다.

이 무렵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문화에서 느슨한 종류의 상대주의와 관련된 일반적인 "철학적 성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용어는 비학문적 맥락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비난의 용어"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그것을 절충주의와 유쾌한 자기 풍자의 미학적 "라이프스타일"로 여겼다.

3.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의 탈근대주의

철학에서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탈근대주의는 예술계에서도 사실주의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며 큰 영향을 미쳤다. 철학적 흐름과 마찬가지로 예술에서의 탈근대주의 역시 일률적인 것을 거부하고 다양성, 개성, 자율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미술에서의 팝 아트비디오 아트, 음악에서의 처럼 기존의 예술 형식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들로 나타났다. 특히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순수 미술과 상업 디자인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앤디 워홀의 팝 아트는 이러한 탈근대주의적 감성을 대중에게 알린 대표적인 사례로, 그의 1960년대 작품 ''캠벨 수프 캔'' 시리즈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25][26][27][28]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I'' (1968)


탈근대주의는 특정 예술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예술 운동과 스타일을 포괄한다.

  • 시각 예술: 팝 아트, 개념 미술, 페미니즘 미술, 비디오 아트, 미니멀리즘, 네오 익스프레시니즘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이 나타났다.[21][22][23][24]
  • 음악: 존 케이지, 마돈나, 펑크 록 등이 탈근대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예술가 및 장르로 언급된다.
  • 문학: 장르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작가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독자의 능동적인 해석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소설의 결말에 여운을 남겨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방식도 이러한 영향 중 하나이다.
  • 기타: 이 외에도 건축, 무용, 패션, 영화, 그래픽 디자인, 연극, 조각 등 다양한 창의적 분야에서 탈근대주의적 표현이 등장했다.


하지만 예술에서의 탈근대주의 운동에 대해서는 아름다움으로부터의 이탈, 예술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언어에 대한 과도한 의존, 일관성이나 이해력 부족, 명확한 구조의 부재, 그리고 어둡고 부정적인 주제에 치우치는 경향 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29][30]

3. 1. 건축

뉴타운 스퀘어(Newtown Square) 근처에 있는 에피스코팔 아카데미(Episcopal Academy)의 예배당 내부. 아카데미 동문이자 건축가인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가 설계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장식을 배제하고 "금욕적인 네모난 상자"로 평가받기도 하는 기능주의 및 근대 합리주의 기반의 모더니즘 건축이 가진 획일성과 단조로움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122]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출발하여, 다양성, 장식성, 절충성, 때로는 과잉성을 특징으로 삼았다.[122] 건축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데에는 건축 비평가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70년대 초 강연과 1975년 에세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부상(The Rise of Post-Modern Architecture)"을 발표했으며,[31] 1977년 출간된 그의 저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언어(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32][122] 젠크스는 이 책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적 종말을 선언하며,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아이고(Pruitt–Igoe) 주거 단지 철거 사건을 그 예로 들었다.[33]

젠크스는 건축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순한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 "이중 코딩(double coding)"이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건축물이 대중 및 전문가(주로 다른 건축가) 모두와 소통하기 위해 현대 기술과 다른 요소(주로 전통적인 건축 양식)를 결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34] 이러한 경향은 "덜어낼수록 더 좋다(less is more)"라는 모더니스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유명한 표어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스트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가 "덜어낼수록 지루하다(less is a bore)"라고 응수한 데서 잘 드러난다.[36] 테리 페어렐과 아담 퍼먼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이 건축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더 즐겁고 감각적인 경험을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했다.[35]

198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건설된 시기였다. 특히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 호황기에 힘입어 풍부한 예산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적 건축 디자인이 시도되었고, 이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122] 당시 지어진 외관상 독특한 인상을 주는 건축물 중 다수가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ism)"이라는 용어도 사용되었으나, 명확한 방법론이 구축되지 못하면서 점차 "포스트모던"으로 불리게 되었고, 단순한 유행 현상으로 취급되기도 했다.[122]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때로는 지나친 과잉성이나 기이함으로 인해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건축 표현에 머물렀다는 평가도 받는다.[122] 일부 디자인에서는 근대 이전의 아르데코아르누보 양식의 장식성을 참조하기도 했고, 탈구축주의 건축처럼 파괴적인 시도도 있었으나, 종종 건축의 상업적 유행이나 센세이셔널리즘의 틀 안에 머물렀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외관이나 내장의 표면적인 측면이 정보화 사회의 흐름에 휩쓸린 측면도 있다.[1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를 경험한 건축가들이 현대에 이르러 차세대 디자인 이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포스트모던의 영향을 받은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122]

포스트모던 제품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로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그룹 멤피스(Memphis)가 있다.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를 중심으로 1981년 결성된 이 그룹은 초기에는 미켈레 데 루키 등 이탈리아 디자이너들로 구성되었으나 점차 국제적인 집단으로 발전했다. 독특한 형태와 밝은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디자인은 가구, 생활용품 등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80년대 호황기 도쿄에는 전 세계의 포스트모던 디자인 건축물과 인테리어, 제품들이 넘쳐났다.[122]

3. 2. 무용

포스트모던 무용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했던 주드슨 댄스 시어터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시기 무용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작곡가 존 케이지가 시도했던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노력에서 비롯되었으며,[37] 특히 케이지의 파트너였던 미국의 무용수이자 안무가 머스 커닝햄에 의해 발전되었다.[37]

주드슨 댄스 시어터의 무용수들은 "화려한 기교, 기발한 의상, 복잡한 줄거리, 전통적인 무대"와 같은 기존의 연극적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대신 앉기, 걷기, 무릎 꿇기 등 일상적인 동작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었으며, 공연 장소 역시 평범한 공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38] 이러한 경향은 이미 1950년대 애나 할프린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댄서스 워크숍에서 시작된 탐구와 연결된다. 할프린의 워크숍은 당시 현대 무용의 기술적 제약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으며, 이는 이후 주드슨 댄스 시어터에서 발전된 아이디어들의 기반이 되었다.[39] 애나 할프린, 시몬 포르티, 이본 레너는 포스트모던 무용 분야의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40]

주드슨 집단은 단순히 훈련된 무용수뿐만 아니라 시각 예술가, 영화 제작자, 작가,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서로의 접근 방식을 교환하며 전통적인 무용 형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공유했고,[41] 무용의 최종 결과물보다는 "무용을 창작하는 지적인 과정"에 더 큰 중점을 두었다.[42]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분석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다시 의미 표현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43]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장르를 혼합하거나,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정치적인 차원을 작품에 통합하는 등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적인 특징들이 무용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3. 3. 패션

레이 가와쿠보의 드레스(1997)
레이 가와쿠보(1997)의 패딩 드레스


패션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양상은 기존의 우아함 개념에 대한 대안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레이 가와쿠보는 199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몸의 예상치 못한 부분에 거위털로 비대칭적인 패딩을 넣은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세이 미야케의 1985년 드레드락 모자는 즉각적이면서도 일시적인 '다문화적' 패션 경험을 제공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50년대 의류 복제부터 역사적 양식과 문화적 영향 탐구까지 매우 다양한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녀의 1981년 첫 런웨이 쇼인 "해적" 컬렉션은 영국 역사, 18세기와 19세기 의상, 아프리카 섬유 디자인을 랩과 민족 음악 사운드트랙과 결합했다.[44][45]

1950년대까지 패션 디자인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프랑스의 ''오뜨 꾸뛰르''로 대표되는 우아함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44] 1960년대에는 팝 아트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종이로 만든 "일회용" 드레스가 하이 패션이 되기도 했다.[44] 크리스찬 디올에게 "우리 모두의 거장", 코코 샤넬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유일한 쿠튀리에"라고 불렸던[46]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1968년 파리 쿠튀르 하우스를 갑자기 폐쇄하며 "하이 패션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47][48] 다른 디자이너들은 대중의 태도를 해석하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했다.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이브 생 로랑은 거리와 50대 50의 거래를 하고 있다. 그는 절반의 시간은 거리에서 영감을 받고 절반의 시간은 거리가 이브 생 로랑으로부터 스타일을 얻는다"라고 말했다.[44]

포스트모더니즘 패션 감각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하위 문화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히피, 펑크 등 반문화 그룹은 음악, 속어, 외모 선택 등으로 비순응적 정체성을 구축했다.[44] 이러한 스타일이 주류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본래의 깊은 의미는 희석되기도 했다. 표면적인 스타일만 차용하는 것은 "하위 문화적 생활 방식에 대한 헌신 없이 반항의 스릴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소비되었다.[44]

2021년 발렌시아가 쿠튀르 하우스가 재개장했으며,[49] 이듬해 패션 잡지 ''i-D''는 "오뜨 꾸뛰르는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번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오뜨 꾸뛰르가 소수의 부유층("0.001%")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 상업적인 대량 생산 라인의 마케팅 도구로 기능하는 현실을 보여준다.[50] 여러 요소를 혼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충주의는 디자이너 청바지, 비즈니스 캐주얼, 고급 스포츠웨어 등 일상 패션에도 폭넓게 통합되었다.[44]

3. 4. 영화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는 주류 서사 구조와 캐릭터 설정의 관습을 전복하고, 관객의 믿음의 정지를 시험하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51][52][53] 일반적으로 이러한 영화는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예술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허물고, 종종 성별, 인종, 계급, 장르, 그리고 시간에 대한 전형적인 묘사를 뒤집어 전통적인 서사 표현을 따르지 않는 것을 창조하려 한다.[54]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와 모더니즘 영화, 전통적인 서사 영화를 구분하는 데 사용되는 특정한 주요 특징들이 있다.[55][56]

  • 오마주 또는 파스티슈: 다른 예술 작품의 스타일이나 특징을 모방하는 것이다.
  • 메타 참조 또는 자기 참조: 이미지와 미디어의 다른 이미지와의 관계를 강조하고 어떤 종류의 외부 현실과는 관련시키지 않는 것이다.[55] 영화 자체가 단지 영화일 뿐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상기시키는데, 영화의 등장인물이 다른 허구 작품을 언급하는 문간성을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 비선형적 서사 구조: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전개되는 이야기로, 영화의 구성적인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시간을 해체하거나 조각내는 것이다.
  •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사이의 간극 메우기: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52][53][55]
  • 모순의 중요성: 모든 종류의 모순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매우 중요하다.[52][57]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1982)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예로 널리 연구되어 왔다. 배경은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강화된 안드로이드 노동자 "복제인간"들이 직장에서 탈출하면 사냥당하는 미래 디스토피아이다. 이 영화는 장르와 문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이질적인 스타일과 시대를 융합한다. 미래적인 시각적 효과는 "1940년대의 단조로운 옷과 사무실, 펑크록 헤어스타일, 팝 이집트 스타일, 그리고 동양 문화와 혼합된다." [55][52] 필름 누아르와 공상 과학 소설을 테크 누아르로 융합하는 것은 영화와 장르 모두의 해체를 보여준다.[58] 이 영화는 또한 메이저 스튜디오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의 신비로움과 매력을 판매 전략으로 사용하는" 예로 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모든 포스트모더니즘 특징을 보여준다".[55] 다른 관점에서,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비판적 반응은 현대/포스트모던 경계의 양쪽에 걸쳐 있다." – "모더니스트"와 "포스트모더니스트"적 접근 방식에서 나온 비판적 분석은 완전히 다른 해석을 산출한다.[59]

3. 5. 그래픽 디자인

1960년대 후반 영국의 디자인 잡지 ''Design''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초기 언급이 등장했다.[60] 이 논의는 변화하는 세계의 경제적 필요성에 대처하는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실용적이면서도 완전히 편안하지 않은 관점을 취했다. 그래픽 디자인은 광범위한 대상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제품 표면을 스타일링하고, 포장 및 홍보에 시각적 장치를 사용하며, 산업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는 역할을 했다. ''Design'' 편집장 코린 휴즈-스탠튼(Corin Hughes-Stanton)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전개되는 발전에 대한 창의적인 대응의 형태를 취하는 태도이며, 상업적이고 전문적인 관심사로부터의 학문적 후퇴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참여의 신호이다."라고 결론지었다.[61]

1970년대, 미국의 크랜브룩 예술 아카데미(Cranbrook Academy of Art)는 인터내셔널 스타일(International Style)의 모더니즘을 거부하고,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62] 1980년대까지 크랜브룩은 미국의 디자인 분야에서 선두에 섰다.[63] 1980년대 중반,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작업과 할 포스터(Hal Foster)의 ''반미학(The Anti-Aesthetic)'' 선집이 학교에 자리 잡았다. 디자인 공동 감독인 캐서린 매코이(Katherine McCoy)는 특정 이론을 특정 프로젝트에 적용하기보다는 크랜브룩이 예술 및 건축 분야에서 유통되는 문헌에서 광범위하게 자료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62]

''그래픽 디자인 역사: 비판적 안내(Graphic Design History: A Critical Guide)''(2008)는 선사 시대부터 디지털 시대까지 시각 커뮤니케이션 연대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위치짓는다. 이 책은 "레트로, 테크노, 펑크, 그런지, 해변, 패러디, 파스티슈가 모두 두드러진 경향"이며 각각 고유한 "장소와 장소, 비난자와 옹호자"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공유된 태도는 표면 스타일을 넘어서 "지식, 역사, 권력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제기"했다.[64]

3. 6. 문학

1971년, 미국의 문학 이론가인 이합 하산은 그의 영향력 있는 저서 ''오르페우스의 해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향하여''를 통해 문학 연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널리 알렸다. 학자 데이비드 허위츠에 따르면, 소설이라는 장르가 "소진되었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켰던 존 바스를 비롯해 도널드 바틀렘, 토머스 핀천과 같은 미국의 작가들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나 새뮤얼 베케트 후기 작품의 스타일적 혁신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종종 현실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문제에 주목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언어 유희, 뒤틀린 줄거리(플롯), 여러 명의 서술자(내레이터), 미해결된 결말 등을 활용하여, 소설이 세계를 충실하게 반영한다는 기존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브라이언 맥헤일은 그의 저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Postmodernist Fiction, 1987)에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변화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 모더니즘에서 발전하여, 존재하는 것에 대한 관심("존재론적 우위")에서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인식론적 우위")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한다.[65] 맥헤일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이었는가?"(What Was Postmodernism?, 2007)라는 글에서[66] 레이먼드 페더먼처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논의할 때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포괄성, 의도적인 무차별성, 비선택, 그리고 "논리적 불가능성"과 같은 구성 및 의미론적 특징들을 활용한다고 주장한다.[67]

3. 7. 음악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마돈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은 음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확장되었으며, 일반 대중이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참고 자료, 아이러니, 패스티슈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68] 대중음악에서는 마돈나, 데이비드 보위, 토킹 헤즈 등이 비평가와 학자들에 의해 포스트모더니즘 아이콘으로 지목되었다. 예술 음악(소위 진지하고 고전적인 음악)이 민속 음악이나 대중 음악보다 더 높은 문화적, 기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기존의 생각은 포스트모더니즘적 분석 아래에서 힘을 잃었으며,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음악적 하이브리드와 크로스오버가 학문적 관심을 끌었다.[68][69]

음악 비평가 앤디 쿠시는 토킹 헤즈를 "뉴욕 아트 펑크"라고 묘사하며, 그들의 "대담한 포스트모더니즘과 부인할 수 없는 그루브의 조화는 그들을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를 대표하는 록 밴드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70] 미디어 이론가 딕 헤브디지는 토킹 헤즈의 "로드 투 노웨어" (1985) 뮤직 비디오를 분석하면서, 이 그룹이 "다양한 시각적 및 청각적 자료를 절충적으로 활용하여 독특한 패스티슈 또는 하이브리드 '하우스 스타일'을 만들었으며, 1970년대 중반 결성 이후 의도적으로 록/팝/비디오/예술/공연/관객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존의 (산업적) 정의를 확장해왔다"고 지적하며 그들을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 밴드"라고 불렀다.[71] 리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작곡가인 데이비드 번은 2011년에 "무엇이든 섞어서 맞출 수 있었고 – 또는 오늘날 말하는 것처럼 믹스할 수 있었고 – 무엇이든 영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72]

다양한 음악 전통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장르 혼합, 아이러니, 유머, 자기 패러디, 형식 구조에 대한 관심보다는 "표면"을 탐구하는 경향, 그리고 음조로의 복귀 등 몇 가지 핵심 특징을 통해 나타난다.[69] 이는 음악에 대한 유럽 중심적 관점의 권위 상실과 포스트모더니즘 가치에 영향을 받은 월드 뮤직의 부상과도 관련이 있다. 작곡가들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는데, 어떤 이들은 실험보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갔고, 다른 이들은 지배적인 음악 구조의 권위에 도전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여러 스타일을 자유롭게 섞고 맞췄다.[68]

작곡가 조나단 크레이머는 아방가르드 음악 작품(일부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기보다는 모더니즘으로 간주될 수 있음)이 "듣는 사람을 유혹하기보다는 거부하고,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아이디어 자체를 잠재적으로 불안한 수단으로 확장한다"고 설명했다.[73] 1960년대에 테리 라일리, 헨리크 구레츠키, 브래들리 조셉, 존 애덤스,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 마이클 나이먼, 루 해리슨과 같은 작곡가들은 무조 음악을 중심으로 한 학계 모더니즘의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불협화음에 대한 반작용으로 단순한 질감과 상대적으로 협화적인 화성을 가진 음악을 만들었다. 반면 존 케이지와 같은 작곡가들은 모더니즘에서 중시되던 아름다움과 객관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도전했다.

아방가르드 학자들은 미국의 가수 마돈나를 "포스트모더니즘의 구현"으로 규정하고, 문화 연구의 하위 분야인 마돈나 연구를 탄생시켰다.[74] 마돈나가 보여준 자의식적인 성별과 정체성 구성, 그리고 "머터리얼 걸" (1984)과 "익스프레스 유어셀프" (1989) 뮤직 비디오에서 나타나는 고전 영화에 대한 참조는 문화 이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마돈나가 "포스트모더니스트 주관성 모델을 수행한다"고 보았다.[75] 마돈나는 단편화, 패스티슈, 회고, 반 기초주의, 차별화 해제 등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구현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머터리얼 걸" 비디오에서는 "남성의 시선의 전복에 대한 전복에 대한 전복"이라는 복잡한 분석이 이루어지기도 했다.[74] 기독교 작가 그레이엄 크레이는 그녀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것의 가장 눈에 띄는 예"라고 말했으며,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는 그녀를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인물"이라고 묘사했다.[76]

3. 8.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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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 운동의 선두 주자였던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는 1961년에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나는 정치적이고 에로틱하며 신비로운 예술을 지지한다… 나는 일상의 쓰레기와 씨름하면서도 결국 승리하는 예술을 지지한다." [78] 같은 해 그는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잡화점 지역에 ''The Store''를 열었다. 이곳에서 그는 밝은 색으로 칠한 햄버거, 탄산음료 캔, 드레스, 속옷 등 일상의 물건들을 복제하여 판매하며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는 "부르주아 개념에서의 박물관은 나의 개념에서의 상점과 같다"고 말했다.[79][80] 올덴버그는 제프 쿤스, 에바 헤세, 루이즈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데미언 허스트, 레이철 화이트리드, 리처드 세라 등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주요 조각가 중 한 명이었다.

3. 9. 연극

포스트모더니즘 연극은 모더니즘 연극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했다.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들은 절대적인 진실의 오류 가능성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고, 대신 관객이 스스로 개별적인 이해에 도달하도록 장려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연극은 본질적으로 답을 제공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질문을 제기한다.

4. 철학에서의 탈근대주의

철학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주로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 아래 근대주의와 구조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이는 프리드리히 니체마르틴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에 뿌리를 두기도 한다.[123]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종종 철학적 회의주의적이고 아이러니한 태도를 특징으로 하며, 근대주의와 관련된 큰 이야기(거대 서사)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 특히 계몽주의 시대부터 강조되어 온 합리주의를 비판하며, 지식이나 가치체계가 객관적이기보다는 특정 시대의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담론 속에서 형성되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 현실, 도덕, 진리, 인간성, 이성, 과학, 언어, 사회적 진보 등 보편주의적인 관념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자의식적이고 자기언급적이며, 인식론적 상대주의, 도덕적 상대주의, 다원주의, 그리고 기존의 권위에 대해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일률적인 것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며, 근대주의가 추구했던 거대한 해방의 약속이나 철학적 체계 역시 하나의 '큰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칸트가 이야기한 순수 이성에 기반한 이상 사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정치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적 접근 방식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다양한 학문 분야와 예술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비판 역시 존재하는데, 주로 몽매주의를 조장하거나 의미 없는 담론에 머무르며, 실질적인 지식 탐구에는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126]

4. 1. 포스트구조주의적 선구자들

197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프리드리히 니체마르틴 하이데거형이상학 비판에 영향을 받아 현대 철학에 대한 새로운 비판을 전개한 이론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종종 '포스트구조주의자'로 묶여 불리지만, 이들 중 스스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상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구조주의처럼 인간의 정체성, 가치관 등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고 보았다.[81] 하지만 구조주의가 언어와 같은 거대한 체계 속에서 고정된 관계를 통해 의미가 생성된다고 본 반면, 포스트구조주의는 이러한 체계가 고정되어 있거나 중심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대신, 문화적인 구조들이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했다. 또한 의미는 고정된 실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사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언어가 가진 유연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을 포함하는 더 넓은 지적 흐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123]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그의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에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거대한 이념 체계, 즉 '큰 서사'가 힘을 잃는 시대로 규정했다. 이는 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거대 담론보다는 다양하고 작은 이야기들이 중요해지는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포스트구조주의 및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은 공통적으로 이성 중심주의, 통일적 체계성, 도구적 이성에 의한 세계의 객관화, 중심과 주변 같은 위계 설정 등 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회의주의적 태도를 바탕으로 기존의 지식 체계와 사회 규범을 재검토하고, 다원성과 차이를 존중할 것을 강조했다.[126]

'포스트모더니스트'라는 명칭은 주로 외부 비평가들에 의해 붙여진 것으로, 정작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포스트구조주의 및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언급되는 주요 사상가 그룹은 다음과 같다.

이들 중 자신의 철학 내에서 '포스트모던'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인물은 리오타르 정도이며, 푸코나 들뢰즈와 같은 다른 주요 사상가들은 오히려 이 용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4. 1. 1. 자크 데리다와 해체

19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 특히 텍스트에 대한 해체(deconstruction)적 접근 방식으로 잘 알려진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 데리다는 언어와 지식에 대한 모든 기초주의적 접근 방식이 지지될 수 없으며 잘못된 것임을 보이고자 했다.

해체자크 데리다가 개발한 철학, 문학 비평, 그리고 텍스트를 면밀히 읽는 방법론이다. 이는 텍스트 분석을 통해 검증하고자 하는 가정, 즉 어떤 텍스트에도 저자의 의도된 안정적인 의미를 훼손하는 고유한 "결정 불가능성"(undecidabilityeng)의 지점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데리다는 글쓰기 과정 자체가 필연적으로 억압된 요소들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텍스트를 지탱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원적 대립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데리다가 "기원"이나 "진리" 같은 개념 자체를 완전히 없애려 한 것은 아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이러한 개념들이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방식이다. 그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개념들이 "지움 아래에"(sous raturefra) 놓여 있다고 표현하며, 이는 해체적 독해를 일종의 "이중적 게임"(double gameeng)으로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데리다는 서구 철학 전통의 형이상학적 실천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다양한 이원론 내의 위계질서와 종속 관계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서구 형이상학은 존재와 순수성을 우연적이거나 복잡한 것보다 우선시하며, 후자를 철학적 분석과 무관한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즉, 데리다에 따르면 형이상학적 사유는 대립하는 두 항 중 하나를 우위에 두면서 다른 하나를 무시하거나 주변화한다. 그는 지식에 대한 이러한 기초주의적 접근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현존의 형이상학(metaphysics of prese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이 현실에 대해 매개되지 않은 직접적 접근을 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고 여겼다. 현대 철학의 기본 가정들을 해체하고 문제 삼는 이러한 기획은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4. 1. 2. 미셸 푸코의 권력 관계

1980년대에 들어 일부 비평가들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작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푸코의 연구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사회적 권력 관계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 페미니즘(feminism) 및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와 결합하는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푸코는 권력이 특정 개인의 의도와는 별개로, 사회 제도의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개인은 이러한 권력 관계의 역동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동시에 그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이다. 푸코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향을 받은 "계보학적 방법"과 같은 독창적인 분석틀을 사용하여, 역사적 변화 과정 속에서 권력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는지를 분석했다.

푸코의 정치적 저술들은 역사적 관점담론 분석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공유한다. 그는 사회 현상을 특정 시대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주로 학술적인 문헌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특정 시대의 지식과 사상이 담긴 텍스트, 즉 담론(discourse)이 어떻게 현대의 정치 사상과 사회 제도를 형성해왔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푸코는 종종 포스트구조주의 사상가로 분류되지만, 스스로를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칭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이 용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123][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조르조 아감벤, 주디스 버틀러 등 후대의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바이오폴리틱스, 퀴어 이론, 젠더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 사회 비판의 중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푸코의 정치적 입장과 그의 견해의 일관성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4. 1. 3. 질 들뢰즈의 생산적 차이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차이(difference)를 단순히 부정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메커니즘으로 개념화했다. 그는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각과 느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들뢰즈는 철학적 비판이란 사유와 그것을 행동으로 이끄는 힘 사이의 만남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비판적 사유를 위해서는 훈련, 규율, 창의성,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잔혹함"까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유가 스스로 활성화될 수는 없으며, 깨어나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예술, 과학, 철학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변혁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통해 이러한 사유의 활성화를 도울 수 있다고 보았다.

들뢰즈는 가타리, 네그리 등과 함께 근대적 사회·경제 시스템에 가장 강력한 비판을 가하는 사상가 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들뢰즈 자신은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표명한 바 있다.

4. 1. 4. 장 보드리야르의 초현실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장 보드리야르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정신 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일부 용어를 활용하여, 사회적 생산이 실제 사물을 만드는 것에서 기호와 상징을 생산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했다.[81] 현실로부터 분리된 이러한 상징적 교환 체계는 초현실을 구성한다. 한 논평가에 따르면, "초현실은 스스로를 시뮬레이션하는 시뮬레이션 체계"이다.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더니티를 현실 영역이 기호에 의해 너무 과도하게 매개되어 현실 자체에 접근할 수 없게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는 이미지, 즉 시뮬라크라(simulacra)의 영역에 남게 된다. 이 초현실은 기호와 이미지가 완전히 자기 참조적이 되는 시뮬레이션의 최종 단계로 제시된다.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종말론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며, 그의 후기 작업이 공상 과학인지 아니면 진지한 이론적 주장인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4. 2. 정당성 위기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그의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년)에서 "포스트모던이란 큰 서사(物語)의 종언"이라고 정의하며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의 핵심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큰 서사'란 마르크스주의처럼 사회와 역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거대 이념 체계를 의미한다. 리오타르는 이러한 거대 서사가 설득력을 잃으면서 보편적인 진리나 가치 기준이 사라지고, 다양한 가치관과 이야기들, 즉 '언어 게임'만이 남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큰 서사의 해체는 기존의 지식이나 제도가 의존하던 보편적 정당화 근거가 흔들리는 '정당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보편적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각 언어 게임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효율성이나 실용성과 같은 현실적인 기준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 리오타르의 분석이다.[126] 이는 과학적 지식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지식과 가치 체계가 기존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4. 2. 1. 포스트모던 컨디션

철학자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사진작가 브라카 L. 에팅거(Bracha L. Ettinger), 1995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철학적 맥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용어는 그의 1979년 저서 ''포스트모던 컨디션: 지식에 관한 보고서''에서 등장했다.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리오타르는 여기서 포스트모던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저는 포스트모던을 거대서사에 대한 불신으로 정의합니다."

리오타르가 말하는 "거대서사"(메타내러티브)란 기독교, G. W. F. 헤겔, 그리고 칼 마르크스 등이 제시한 것처럼, 세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와 의미를 규정하는 큰 이야기 틀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통합적인 서사가 힘을 잃은 사회에서는 단지 이질적이고 각 집단에 고유한 서사들만 남게 된다고 보았다. 이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을 빌려 "언어 게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다양한 언어 게임들 사이에서 어떤 것이 더 우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이나 관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정당성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독일 철학자 유르겐 하버마스에게서 가져온 개념이지만, 리오타르는 하버마스가 제시한 의사소통 합리성 이론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리오타르는 특히 과학이 주장하는 객관성이나 보편적 진리와 같은 개념들이 어떻게 이러한 거대서사의 해체 속에서 정당성을 잃어가는지에 주목했다. 그의 주장은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초월적인 정당화 원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으로 확장된다. 대신, 각각의 언어 게임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효율성이나 실용성과 같은 현실적인 기준에 의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리오타르는 이러한 상대주의적인 결과를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그는 이후 연구에서 서로 다른 언어 게임들, 특히 윤리나 정치와 관련된 게임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4. 2. 2. 위르겐 하버마스의 철학적 비판

철학자 유르겐 하버마스는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저명한 비평가로서, 1985년 저서 《모더니티의 철학적 담론》(The Philosophical Discourse of Modernity)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이 수행적 모순(performative contradiction)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들의 근대성 비판이 그 자체가 근대적 이성의 산물인 개념과 방법에 의존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사상가들이 주체를 거부하고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전략을 받아들이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그들의 모더니즘 비판이 궁극적으로 그들이 해체하려는 바로 그 주체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하버마스는 또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철학과 문학의 구분을 평준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그는 그러한 수사적 전략이 논증과 의사소통 이성의 중요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하버마스의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은 몇몇 핵심적인 기저 문제들을 명확히 함으로써 그 이후의 많은 논쟁의 토대를 마련했다. 학자 게리 에일스워스(Gary Aylesworth)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무의미하다고 일축하는 견해에 반대하며, 하버마스가 "포스트모더니즘 텍스트를 면밀하고 논의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이해 가능성을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사상과의 교류는 리오타르와 같은 일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이 하버마스의 비판에 유사하게 참여하게 했다.

4. 2. 3. 프레드릭 제이미슨의 마르크스주의적 반론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프레드릭 제이미슨(Fredric Jameson)은 언어 상대주의의 등장을 비판하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박을 제시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어니스트 만델(Ernst Mandel)의 이론과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초기 연구를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상품 생산보다는 구경거리와 스타일의 경제로 확장된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로 파악했다. 제이미슨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적, 역사적 상황의 결과이므로 단순히 수용하거나 비난할 대상이 아니라, 현재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분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다.

제이미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여러 특징을 지적했다. 첫째,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둘째, 통합된 "부르주아 자아"가 상실되면서 주관성이 약화되고, 사회 세계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되는 현상인 "정동의 감퇴"를 경험하게 된다. 셋째, 이러한 의미 상실은 "깊이 없음"으로 이어져, 문화적 대상의 피상적인 모습 너머의 깊은 의미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넷째, 역사는 다양한 스타일의 집합으로 축소되어 정치적 힘을 잃는다. 이는 특정 의도를 가지고 스타일을 혼합하는 "패러디"에서, 원래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스타일을 뒤섞는 "파스티슈"로 변화하는 현상에서 드러난다.

4. 3. 리처드 로티의 신실용주의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신실용주의(neopragmatism)의 언어적 형태를 주장한 미국의 철학자이다. 그는 처음에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에 관심을 가졌으나, 나중에는 표상주의(representationalism)를 거부했다. 로티에게 큰 영향을 준 사상가로는 후기구조주의자들보다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 Georg Gadamer),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 W. F. Hegel), 그리고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등이 있다.

로티는 마음(mind)과 언어(language)로부터 독립적인 현실(reality)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언어가 단순히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고 보았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그는 사물의 본질에 직접 다가갈 수 있는 특별한 정신적 능력이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을 버렸다.

대신 로티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진리(truth)를 찾는 것보다, 현재 우리가 가진 믿음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대안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리나 선(善)에 대한 권위적인 주장에서 벗어난 창조적인 세속 인본주의(secular humanism)가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믿었다. 로티는 자신의 신실용주의를 계몽주의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생각했으며, 인간 삶을 덮고 있는 신비를 걷어내고 전통적인 권력 관계를 관용자유에 기반한 관계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5. 사회에서의 탈근대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 교육, 도시 계획, 종교학, 정치 등 다양한 사회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영향을 통해 그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은 인류학, 고고학, 페미니즘, 마케팅, 심리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나타나지만, 각 분야에 따라 그 정도와 방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사상이 실제 각 분야의 실천에 통합되는 정도 역시 다양하게 관찰된다.

5. 1. 인류학

인류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은 1960년대 문학적 포스트모더니즘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서 작업하는 인류학자들은 경험적 관찰에 의존하기보다는 문화적 텍스트와 관행을 분석하여 문화 비평을 해부하고, 해석하고, 작성하려고 한다. 주관성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다. 민족지는 저자의 관점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개별 문화 연구에서 저자의 의견을 과학적이라고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82] 포스트모더니즘 인류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클리포드 기어츠[83]는 "인류학적 저술 자체가 해석이며, 두 번째이자 세 번째 순서의 해석이다. (정의에 따르면, '원주민'만이 첫 번째 순서의 해석을 한다. 그것은 ''그의'' 문화이다.)"[84]라고 주장한다. 21세기에 일부 인류학자들은 문화 해석에서 관찰자의 관점보다 연구 대상의 관점을 우선시하는 관점 이론의 한 형태를 사용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인류학의 핵심에는 연구 대상의 의견과 관점을 포함하는 것에 대한 강조;[85]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 상대적인 가치와 신념을 고려하는 문화 상대주의를 조사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86]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의 주장에 대한 회의론;[87] 그리고 다른 문화를 설명하는 거대하고 보편적인 체계나 이론을 거부하는 것[85]이 있다.

5. 2. 고고학

후기과정론 고고학(또는 해석적 고고학이라고도 함)[88]은 영미권에서 발생한 고고학 이론의 한 흐름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89] 이 학파는 고고학적 해석의 주관성과 사회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다양한 사상들이 느슨하게 뭉쳐진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기과정론은 과정론의 핵심 원칙, 즉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면 고고학적 해석이 완전히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후기과정론 운동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 영국에서 이언 호더, 다니엘 밀러, 크리스토퍼 틸리, 피터 우코 같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는 1960년대 프랑스에서 발전한 마르크스주의 영향을 받은 사회인류학,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미국에서 등장한 새로운 문화인류학의 세 가지 중심적인 영향에 대한 반응이었다. 미국에서도 곧 유사한 발전이 이어졌다. 초기 후기과정론은 주로 1960년대에 발전하여 1970년대 영어권 고고학에서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된 과정론 고고학에 대한 반응이자 비판이었다. 과정론 지지자들은 과학적 방법을 엄격하게 사용하면 고고학 기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정론적 접근 방식 자체는 19세기에 고고학이 독립적인 학문으로 등장하면서 함께 나타난 문화사적 고고학에 대한 비판이었다. 문화사적 고고학은 민족 및 문화 집단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정의하고, 그들의 물질 문화 유물과 건축물을 통해 연구했다.

후기과정론 자체는 더 이상 학문적 논쟁의 중심 주제는 아니지만, 그 실질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90][91] 미국에서는 고고학자들이 후기과정론을 과정론 운동과 함께하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보는 반면, 영국에서는 여전히 별개의 상반되는 이론적 운동으로 간주된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후기과정론이 고고학 사상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5. 3. 페미니즘

탈근대 페미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프랑스 페미니즘을[92] 결합하여 모든 여성을 하나로 묶는 보편적인 여성 주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93][94] 그 목표는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성 불평등을 야기하는 가부장제적 규범들을 해체하는 것이다.[93] 이러한 관점에서는 본질주의, 철학적 보편성, 그리고 보편적 진리를 거부하며, 모든 여성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할 것을 주장한다.[94] 사회의 모든 여성에게 보편적인 진리를 적용하려는 시도는 개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무시하게 만들 수 있으며, 사회에서 표준으로 제시되는 생각들은 종종 여성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남성 중심적인 관점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한다.[95]

탈근대 페미니즘은 성 불평등을 초래한 기존의 개념들을 분석하고, 중심주의(logocentrism)를 비판하며, 다양한 목소리(다중 담론)를 지지하고, 기존의 텍스트를 해체하며, 주관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평등을 추구한다.[92][94]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이 모든 페미니스트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탈근대적 사고방식이 페미니스트 이론이 이루려는 변화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우려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지지한다.[92]

5. 4. 법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서 법을 해석할 때는 성별, 계급, 인종, 민족 등과 관련된 법적 불평등 문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법 해석 과정에서 "다양성과 다원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연관된 비판적 리터러시나 탈구조주의 같은 비판적 방법론들은, 기존에 간과되었거나 인정받지 못했던 다양한 가치와 규범들을 법 해석에 반영하고 고려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96]

5. 5. 마케팅

마케팅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광범위한 시장 일반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개별 소비자에게 맞춰진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97] 학자 스티븐 브라운(Stephen Brown)은 "마케터는 소비자에 대해 알고 있으며, 소비자는 마케터에 대해 알고 있고, 마케터는 소비자가 마케터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소비자는 마케터가 소비자가 마케터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하며 상호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3년 브라운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 방식이 기존의 질서를 강요하거나 분업화된 방식으로 일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고 보았다. 대신 마케터는 직관, 창의성, 자발성, 추측, 감정, 참여와 같은 '예술적' 자질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7]

2020년 Journal of Business Research에 발표된 한 논문은 마케팅 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 연구는 "소비자가 특정 방식으로 소비하도록 이끄는 변화하는 사회적 조건"에 주목하며, 마돈나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로 설정하고 레이디 가가를 그 전환기의 예시로 삼아 노래 가사를 분석하고 비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연구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는 악명 높게 혼란스럽고, 자주 역설적이며 다면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마케팅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섯 가지 주제, 즉 반기초주의, 탈차별화, 분열, 생산과 소비의 역전, 그리고 초현실을 비교 분석의 틀로 활용했다.[98]

5. 6. 심리학

1992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새로운 유형의 심리학자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라는 기사를 통해, 점점 영향력을 얻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심리학자들이 "고립되고 통합된 자아라는 미국적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99] 이러한 방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개인에 대한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라는 근대주의적 관점[100]에 도전하며, 내면의 자아가 아니라 언어에 의해 지배되는 문화적/공동체적 산물로서 인간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101] 이는 단일하고 보편적인 '나'라는 개념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다양한 정체성에 주목하는 시각이다.

5. 7. 도시 계획

근대주의는 산업적 대량생산 논리에 따라 도시를 설계하고 계획했으며, 대규모 해결책, 미적 표준화, 조립식 설계를 선호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도시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환경을 만들어 도시 생활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인 제이콥스는 1961년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102]에서 근대주의 도시 계획, 특히 로버트 모세스와 같은 계획가들의 방식을 강하게 비판하며 여론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03]

198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도시계획학과를 중심으로 로스앤젤레스 학파가 등장했다. 이들은 현대 로스앤젤레스를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도시로 보았다. 이는 도시를 기능적 영역으로 나누어 이해하려 했던 시카고 학파와 대조적이었다.[104][105] 로스앤젤레스 학파의 에드워드 소자는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을 결합하여, 세계화, 전문화, 산업 구조 변화(산업화/탈산업화), 신자유주의, 대규모 이민 등이 어떻게 다양한 인구와 경제 활동이 뒤섞인 거대 도시 지역을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했다.[104][106]

도시 계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성을 포용하고 만들어내며, 불확실성, 유연성, 변화를 중시한다. 또한, 유토피아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유토피아적인 사고와 행동을 받아들이는 이론들을 포함한다. 이는 근대주의를 해체하려는 시도이며, 기원에 대한 비판이지만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계획가들은 도시 계획에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만 있다는 주장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타일과 아이디어에 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107]

5. 8. 신학

포스트모더니즘 신학 운동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하이데거 이후 사상의 관점에서 기독교 신학을 해석한다. 이 운동은 포스트구조주의, 현상학, 탈구조주의와 같은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기존의 고정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살아있는 경험의 역할을 탐구하며, 텍스트에 숨겨진 가정과 모순을 밝히고자 한다.[108]

이 운동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를 공통의 출발점으로 삼은 소수의 철학자들이 기독교 신학과 관련된 영향력 있는 책들을 출판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했다.[109] 주요 저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장-뤼크 마리옹, ''존재 없는 신'' (1982)
  • 마크 C. 테일러, ''Erring'' (1984)
  • 찰스 윈퀴스트, ''Desiring Theology'' (1994)
  • 존 D. 카푸토, ''The Prayers and Tears of Jacques Derrida'' (1997)
  • 칼 라슈케, ''The End of Theology'' (2000)


''The Cambridge Companion to Postmodern Theology''(2003)는 포스트모더니즘 신학을 일곱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는 다른 학술적 분류들을 결합하고 확장한 것으로, 포스트리버럴, 포스트형이상학적, 탈구조주의적, 재구성적, 여성주의적, 영미권 포스트모더니티, 그리고 급진적 정통주의를 포함한다. 해당 저서는 이 분류가 "잠정적이고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전적으로 임의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각 유형이 둘 이상의 신학자들이 채택한 접근 방식이고, 각 유형의 지지자들이 "자신이 현대성에 반응하거나, 거부하거나, 현대성을 거쳐가는 것이지, 현대성에 속해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두 가지 주요 기준을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6. 유산

건축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장식을 배제하고 "금욕적인 네모난 상자"로 평가받던 기능주의 및 근대 합리주의 기반의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다양성, 장식성, 절충성, 과잉성 등을 특징으로 하며, 1980년대는 포스트모던 건축이 활발하게 시도된 시기로 평가받는다. 특히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 시기의 풍부한 건설비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적 건축 디자인이 시도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버블 붕괴 이후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특이한 외관으로 인식되는 당시의 건축물 중 상당수가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명확한 방법론을 구축하지 못하고 점차 단순한 유행으로 취급되어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 자체도 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근대 건축의 획일성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지만, 때로는 지나친 과잉성과 기이함으로 인해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건축 표현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에서는 아르데코아르누보 양식 같은 근대 이전 장식 양식을 참조하거나 탈구축주의 건축처럼 파괴적인 시도도 있었지만, 건축의 상업적 유행이나 표면적인 스타일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 시기를 경험한 세대가 중견 설계가가 되면서, 현대 건축 디자인 과정에서 포스트모던의 영향이 간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그룹 "멤피스"(Memphis)가 대표적이다.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를 중심으로 1981년 결성되어 초기에는 미켈레 데 루키 등 이탈리아 디자이너들로 구성되었으나 이후 국제적인 그룹으로 발전했다. 독특한 형태와 밝은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가구, 생활용품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80년대 호황기 도쿄에서는 전 세계의 포스트모던 디자인 건축물, 인테리어, 제품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6. 1. 탈-탈근대주의

1990년대 후반부터 대중문화와 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커졌다.[110] 일부 학자들은 현대 문화 생산의 맥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11][112][113]

문학 비평가이자 영문학 및 비교문학 교수인 래리 맥카퍼리(Larry McCaffery)는 2004년, 1990년에 ''아메리칸 북 리뷰(American Book Review)''에 발표했던 자신의 록 음악 관련 에세이를 재검토하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과거 입장을 되돌아보았다. 그는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하는 데 있어 "거의 무심한 확신"을 가졌으며, 음악과 소설처럼 본질적으로 다른 매체들의 '혁신적 특징'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고 가정했던 점을 지적했다. 2004년의 관점에서 그는 "만약 제가 오늘 이런 글을 쓴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완전히 생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더 이상 제가 (혹은 다른 누구라도)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일관성 있거나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다.[114]

2011년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열린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과 전복 1970–1990(Postmodernism: Style and Subversion 1970–1990)'' 전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예술, 디자인, 건축에 대한 최초의 심층 조사"로 기획되었으나,[115]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 자체의 모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시는 건축, 디자인, 예술,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했지만,[116] ''디자인 이슈(Design Issues)''지의 한 논평은 이 전시가 "가장 미끄럽고 정의할 수 없는 '운동'"을 다루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큐레이터들조차 전시 기획을 '어리석은 짓'으로 여길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언급했다.[117]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휴머니즘, 그리고 사이보그주의 사이의 연관성은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고, 이는 2003년경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라는 용어의 등장을 촉발했다.[118][119][120]

이후 메타모더니즘,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07년 Andrew Hoberek은 ''20세기 문학'' 저널 특별호 서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 선언은 비평적 상투어가 되었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경향을 확인했다.

소수의 비평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문화 또는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들을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Raoul Eshelman의 퍼포먼티즘, 질 리포베츠키의 하이퍼모더니티, 니콜라 부리오의 얼터모던, 그리고 Alan Kirby의 디지모더니즘(이전에는 유사모더니즘으로 불림)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이론이나 용어들은 아직 학계나 문화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상태이다. 한편, 사회문화인류학자 Nina Müller-Schwarze는 신구조주의를 가능한 대안적 방향으로 제시하기도 했다.[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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