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평화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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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동 평화 로드맵은 2003년 미국, 유럽 연합, 유엔, 러시아로 구성된 중동 쿼텟이 제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계획이다. 이 로드맵은 폭력 종식, 정착촌 건설 중단, 팔레스타인 개혁, 이스라엘의 존재 인정,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등을 목표로 3단계로 구성되었으나, 이스라엘의 조건부 수용과 유보 조항, 팔레스타인 내부의 반발, 폭력 사태의 지속 등으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졌다. 2004년 이후,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분리 계획 발표와 서안 지구 정착촌 확장,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개혁 시도 등에도 불구하고 로드맵은 실패로 끝났으며, 한국은 이 분쟁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며 평화적 해결을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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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평화 로드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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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평화 로드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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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공식 명칭 | 평화를 위한 로드맵 |
목표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종식 |
지리적 범위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
시작일 | 2002년 |
상태 | 사실상 중단 |
관련 당사자 |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 유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
배경 | |
발단 | 제2차 인티파다의 격화 |
주요 사건 | 캠프 데이비드 2000년 정상회담 실패 아랍 평화 이니셔티브 (2002년) |
내용 | |
주요 제안 |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 이스라엘의 안전 보장 정착촌 활동 중단 테러 행위 중단 |
단계별 계획 | 1단계: 테러 중단 및 팔레스타인 개혁 2단계: 과도기적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3단계: 영구적 지위 협상 |
진행 상황 | |
주요 장애물 |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 정책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의 테러 행위 상호 불신 |
성과 | 제한적인 진전, 공식적인 합의 도달 실패 |
평가 및 영향 | |
비판 | 실행력 부족 불균형적인 요구 조건 당사자들의 정치적 의지 부족 |
영향 |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관여 평화 협상 노력의 틀 제공 |
관련 문서 | |
관련 협정 | 오슬로 협정 와이 강 협정 |
관련 결의안 |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242호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338호 |
기타 | |
관련 인물 | 조지 W. 부시 토니 블레어 아리엘 샤론 마무드 압바스 |
2. 배경
2차 인티파다는 2000년 9월에 시작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상호 폭력 사태가 격화되었다.[2] 2002년 3월, 팔레스타인 자살 공격이 잇따라 발생하고, "과월절 학살"이 절정에 달하자,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서 방어벽 작전으로 명명된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2]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공공 행정부를 완전히 파괴했다.[3][4] 이스라엘은 오슬로 2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인도될 예정이었던 A 지역 및 B 지역을 포함, 서안 지구에 대한 완전한 군사 통제권을 재확립했다. 이스라엘군은 야세르 아라파트 대통령을 포위하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주요 사무실이 있던 아라파트 복합 단지를 파괴했다.
2002년 6월 24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바탕으로 로드맵이 작성되었다.[5] 2002년 9월에 제안된 첫 번째 EU 초안은 미국 초안을 선호하여 보류되었다.[5] 부시 행정부의 초안은 2002년 11월 14일에 공개되었다.[6] EU는 2002년 12월 20일에 최종 텍스트를 발표하도록 쿼텟을 압박했지만, 이스라엘의 반대로 실패했다.[7] 샤론은 팔레스타인 국가가 서안 지구의 42%와 가자 지구의 70%로 제한되고, 이스라엘의 완전한 통제를 받는다는 조건 하에 로드맵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8]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분할과 팔레스타인의 귀환 권리를 배제하고 로드맵에 100개 이상의 변경을 요청했다.[9] 샤론의 재선, 마무드 아바스의 팔레스타인 총리 임명, 그리고 새로운 팔레스타인 정부가 구성된 후에야, 이 계획은 이라크 전쟁의 침공 단계가 끝난 날인 2003년 4월 30일에 최종적으로 발표되었다.[5][10] 부시는 성명을 통해 이 계획이 쿼텟이 아닌 미국에 의해 개발되었음을 분명히 했다.[5]
"성과 중심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로드맵"으로 묘사된 이 로드맵은 세부 사항 없이 목표를 기반으로 구축되었다.[11] 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2001년 9월 11일 공격 이후, 조지 W.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 국제 정치를 지배한 배경에서 미국, 유럽 연합, 유엔 및 러시아는 중동 쿼텟을 결성하여 새로운 계획으로 '"평화 프로세스"'를 구제하려 했다.
3. 로드맵의 발전 과정
4. 로드맵의 주요 내용
그러나 성과 기반 계획으로서, 진전은 당사자들의 선의의 노력과 쿼텟이 계획에 포함시킨 각 의무를 준수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이는 로드맵을 이전의 평화 계획과 다르게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현실적인) 시간 계획은 없었다.
로드맵은 세 단계로 구성되었다.
:::*I.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의 전제 조건 충족;
:::*II. "임시" 국경을 가진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III. 영구적 지위 협상, "영구적" 국경을 가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분쟁 종식.
1단계 (2003년 5월 조기 완료): 상호 인정; 무장 활동 및 이스라엘인에 대한 모든 폭력 행위를 종식시키기 위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휴전; 팔레스타인 정치-제도 개혁; 팔레스타인 선거; 2000년 9월 28일 (제2차 인티파다 시작일) 이전의 이스라엘 철수 (계획은 추가 철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음). 이스라엘은 추방, 민간인 공격, 철거 및 파괴, 기타 조치를 자제;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기관 재개방; 인도주의적 상황 개선, 베르티니 보고서의 완전한 이행, 이동 완화; 2001년 이후 건설된 정착촌 확장을 동결하고 정착촌 전초기지를 해체.
2단계 (2003년 6월–12월): 팔레스타인 경제 회복을 지원하고 임시 국경을 가진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국제 정상 회담; 지역 수자원, 환경, 경제 개발, 난민 및 무기 통제 문제를 포함한 다자간 협력 재개; 아랍 국가들은 인티파다 이전의 이스라엘과의 관계 (무역 사무소 등 포함)를 복원.
3단계 (2004–2005): 두 번째 국제 회의; 영구적 지위 합의 및 분쟁 종식; 최종 국경 합의, 예루살렘의 운명, 난민 및 정착촌 문제에 대한 매우 논쟁적인 질문 명확화;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에 동의.
참고: 2단계의 임시 국가는 기존의 모든 정착촌을 포함하고 동예루살렘을 제외한다. 이 계획은 상당한 지연과 함께 제시되었지만, 원래의 시간표는 조정되지 않았다.
4. 1. 1단계: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의 전제 조건 충족 (2003년 5월 완료 목표)
상호 인정 및 무장 활동 중단, 팔레스타인 정치·제도 개혁 및 선거 실시, 이스라엘의 2000년 9월 28일 이전 위치로 철수가 이루어져야 했다.[11][5] 이스라엘은 추방, 민간인 공격, 철거 및 파괴, 기타 조치를 자제해야 했다.[11]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기관 재개방, 인도주의적 상황 개선, 베르티니 보고서의 완전한 이행, 이동 완화가 이루어져야 했다.[11] 2001년 이후 건설된 정착촌 확장을 동결하고 정착촌 전초기지를 해체해야 했다.
1단계는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의 전제 조건 충족을 목표로 2003년 5월 조기 완료를 예상했다.[11]
4. 2. 2단계: 임시 국경을 가진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2003년 6월-12월)
2단계(2003년 6월-12월)에는 팔레스타인 경제 회복 지원과 임시 국경을 가진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한 국제 정상 회담 개최가 포함되었다.[11] 지역 수자원, 환경, 경제 개발, 난민 및 무기 통제 문제를 포함한 다자간 협력이 재개될 예정이었다.[11] 또한, 아랍 국가들은 인티파다 이전의 이스라엘과의 관계 (무역 사무소 등 포함)를 복원할 계획이었다.[11]
4. 3. 3단계: 영구적 지위 협상 및 분쟁 종식 (2004-2005년)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3단계에서는 두 번째 국제 회의 개최가 예정되어 있었다.[5] 이 회의를 통해 영구적 지위 합의 및 분쟁 종식을 목표로 하였다.[11] 최종 국경, 예루살렘의 운명, 난민, 정착촌 문제와 같이 매우 민감하고 논쟁적인 문제들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 과제였다.[5] 또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에 동의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2단계에서 제시되었던 임시 국가는 기존의 모든 정착촌을 포함하고 동예루살렘을 제외하는 것으로 계획되었으나, 원래의 시간표는 상당한 지연과 함께 조정되지 않았다.[5]
5. 이스라엘의 조건부 수용과 유보 조항
2003년 5월 12일,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정착촌 건설 동결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하며, 정착민들의 주택 건설 필요성을 강조했다.[12]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총리는 로드맵을 수용했으나, 이스라엘 정부 내 우익 각료들은 반대했다.[12] 샤론 총리는 "교묘한 표현"을 통해 로드맵 자체가 아닌 "로드맵에 제시된 '''단계'''"를 수락했다.[14]
2003년 5월 25일, 이스라엘 총리 내각은 14가지 유보 조항과 함께 로드맵을 승인했다.[13] 팔레스타인 측에 보안 조직 해체 및 개혁, 폭력 및 선동 중단, 평화 교육 실시, 하마스 등 무장 단체 해체 및 불법 무기 수집·파괴 등을 요구했다.[13] 이스라엘은 로드맵에 따른 폭력 및 선동 중단 의무가 없음을 명시하고, 테러, 폭력, 선동이 완전히 중단되기 전까지 다음 단계로 진전은 없으며 기한도 없다고 밝혔다. 야세르 아라파트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지도부 교체 및 개혁을 요구하고, 쿼텟이 아닌 미국이 과정을 감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시 팔레스타인 국가는 비무장화, 임시 국경, "주권의 특정 측면"을 가지며, 이스라엘이 출입, 공역, 전자기 스펙트럼 등을 통제한다고 명시했다. 유대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난민의 이스라엘 귀환 권리를 포기하며, 최종 협상 전 정착촌, 예루살렘, 국경 논의는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242와 338 외 다른 평화 이니셔티브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2000년 9월 선으로의 철수는 조건부라고 밝혔다.
로드맵은 수정 없이 수용되어야 했으나,[14] 이스라엘은 유보 조항을 로드맵의 일부로 간주했다.[15] 이스라엘 정부는 난민 문제 해결이 이스라엘 내 입국 또는 정착을 포함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15] 미국은 이스라엘의 모든 요구 충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고, 아바스는 이스라엘의 유보 조항이 로드맵의 일부가 아니며 팔레스타인에게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15]
6. 로드맵의 전개와 교착
로드맵 발표에도 불구하고 2차 인티파다의 폭력 사태는 계속되었다. 하마스는 "'아부 마젠'은 미국을 달래고 이스라엘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국민의 투쟁과 지하드를 배신하고 있다"며 로드맵을 거부했다.[12]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로드맵 추진을 위해 2003년 6월 2일부터 4일까지 중동을 방문하여 이틀간 정상 회담을 가졌다. 6월 3일, 이집트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바레인의 지도자들과 아바스 총리를 만났다. 아랍 지도자들은 로드맵을 지지하고 테러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을 약속했다. 6월 4일, 부시는 아리엘 샤론과 마흐무드 아바스를 직접 만나기 위해 요르단으로 향했다.
부시가 이 지역을 떠난 후, 폭력이 재개되어 로드맵 계획은 위협받았다.[19] 2003년 6월 29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 하마스,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등 주요 팔레스타인 단체들은 잠정적인 일방적 휴전(후드나)을 선언했다.[20][21] 그러나 ''후드나''는 곧 붕괴되었다.
2003년 8월 21일,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아부 샤납을 암살했다.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자살 폭탄 테러를 강력히 반대하며 휴전을 지키려 했던 샤납은 하마스의 비교적 온건하고 실용적인 지도자로 여겨졌다.[25][24] 샤납과 함께 다른 민간인 3명(그의 경호원 2명과 74세 노인 1명)이 사망했다. 시더와 샤납의 암살로 인해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휴전을 중단했다.[25]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2003년 11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1515에서 로드맵을 지지했지만, 2003년 말까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팔레스타인 테러를 막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2000년 9월 28일 이후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철수하지 않았으며, 정착촌 확장을 동결하지 않았다. 결국 로드맵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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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 2003년 6월 4일 :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아바스 총리,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요르단 아카바에서 역사적인 로드맵 회담을 가졌다.
- 2003년 6월 5일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공격했다.
- 2003년 6월 11일 : 예루살렘에서 버스 테러로 17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 공격으로 하마스 간부 등 7명을 살해했다.
- 2003년 6월 29일 :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3개월 휴전을 선언했다.
- 2003년 8월 19일 : 예루살렘에서 자폭 테러로 22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접촉을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 2003년 8월 21일 :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자 아부 샤나브를 살해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휴전 선언을 철회했다.
- 2003년 9월 6일 : 아바스 총리 사임으로 로드맵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6. 1. 일지
- 2003년 6월 4일 :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아바스 총리,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요르단 아카바에서 역사적인 로드맵 회담을 가졌다.
- 2003년 6월 5일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공격했다.
- 2003년 6월 11일 : 예루살렘에서 버스 테러로 17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 공격으로 하마스 간부 등 7명을 살해했다.
- 2003년 6월 29일 :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3개월 휴전을 선언했다.
- 2003년 8월 19일 : 예루살렘에서 자폭 테러로 22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접촉을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 2003년 8월 21일 :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자 아부 샤나브를 살해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휴전 선언을 철회했다.
- 2003년 9월 6일 : 아바스 총리 사임으로 로드맵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7. 2004년 이후의 상황
2004년, 평화 프로세스는 제2차 인티파다로 인해 난항을 겪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보고에 따르면, 분쟁으로 인해 약 110명의 이스라엘인과 82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군인 40명과 민간인 67명이 사망했고,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약 350명, 민간인 452명, 신원 미상 18명이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다수는 공격 중 사망했지만,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팔레스타인 지역 습격이나 체포 시도 과정에서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샤론의 일방적 분리 계획 발표2004년 4월 14일, 아리엘 샤론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동 평화 로드맵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재확인했다.[29]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로드맵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며,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함께 나아갈 팔레스타인 파트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29] 샤론은 일방적 분리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가자 지구의 모든 이스라엘 정착촌과 서안 지구의 4개 정착촌을 철수하는 것을 의미했다.[29] 이 계획은 2003년 12월 18일 제4차 헤르츨리야 회의에서 이미 제안된 바 있다.[30]
샤론은 이 일방적인 조치가 로드맵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며, 부시 대통령은 이 계획을 지지하며 "평화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과감하고 역사적인 이니셔티브"라고 말했다.[29] 2004년까지 미국의 공식 입장은 이스라엘이 원칙적으로 1949년 휴전선인 그린 라인으로 복귀해야 하며, 이 선에 대한 변경은 최종 지위 협상에서 상호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샤론의 서한에 대한 답변에서 부시는 "이미 존재하는 주요 이스라엘 인구 중심지를 포함한 현장의 새로운 현실을 고려할 때, 최종 지위 협상의 결과가 1949년 휴전선으로의 완전하고 전면적인 복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29][31] 이는 이스라엘의 현실주의 정책을 수용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샤론에게 큰 승리로 여겨졌다.[32]
부시는 또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에 대해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에 대한 합의된, 공정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최종 지위 협정의 일부로 마련하려면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 국가를 설립하고 그곳에 팔레스타인 난민을 정착시키는 방식을 통해 찾아야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라고 말했다.[29][31]
2005년 5월 26일, 마흐무드 아바스와의 공동 기자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어떤 최종 지위 협정도 양측 간에 합의되어야 하며, 1949년 휴전선에 대한 변경은 상호 합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33] 또한, 실행 가능한 두 국가 해법은 서안 지구의 연속성을 보장해야 하며,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사이에도 의미 있는 연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33] 이 발언은 2004년 4월 14일 서한과 상반된다는 평가를 받으며 아바스에게 큰 승리로 여겨졌다.[34]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두 발언 사이의 불일치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개혁 시도야세르 아라파트가 사망한 후, 마무드 아바스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38]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테러와 싸울 것을 약속했다.[42] 그러나 팔레스타인 국가 안보군은 서안 지구의 약 60%에 해당하는 C구역에서 활동이 금지되었고,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안보 통제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었다.[42] 팔레스타인 통제 구역은 C구역 내 160개가 넘는 앙클라브로 흩어져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했다.[42]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테러가 평화 협정의 주요 장애물이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테러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팔레스타인 지도부 해체를 국가 수립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46][47] 이스라엘은 아라파트를 중동 평화 프로세스의 주요 장애물로 간주하고, 표적 살해 정책을 추진하며 팔레스타인 안보군과 사무실을 공격했다.[48][45][49]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안보국의 사무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여 2003년까지 90%가 파괴되었고, 안보 요원의 약 4분의 3이 구금되거나 살해되었다.[50][51] 하마스가 대부분의 폭탄 테러와 총격 사건에 책임이 있었음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은 주로 팔레스타인 안보군에 집중되었다.[52] 이스라엘군은 아미라 하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민간 기관을 파괴하고 공공 데이터 뱅크를 삭제하여 팔레스타인의 독립 목표를 방해했다.[53]
이스라엘의 서안 지구 정착촌 확장 지속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2003년 5월 12일, 정착촌 건설 동결은 가정을 꾸리는 정착민들을 위한 새 주택 건설 필요성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12] 이스라엘은 로드맵 1단계의 핵심 요구 사항인 2000년 9월 28일의 위치로 철수하지 않았으며,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은 수많은 도로 봉쇄, 토루 및 검문소로 인해 심하게 방해받았다.[26][54]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사이의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스라엘은 정착촌 확장을 동결하고 2001년 이후 건설된 전초 기지를 해체해야 했지만, 정착민 수는 계속 증가했다. ''제2차 인티파다'' 기간에도 정착민 인구는 높은 비율로 계속 증가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 지구의 정착민 수는 50,000명 이상 증가했으며,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유대인 인구는 약 70,000명 증가했다.[55] 그러나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정착촌의 총 건설 규모는 4년 동안 6,868채의 주택에 불과했다.[56]
서안 지구 장벽 건설로 팔레스타인 땅이 몰수되고 합병되었다.[57] 국제사법재판소는 그린 라인 너머의 장벽이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은 아리엘 동쪽, 다른 대규모 정착촌 블록 동쪽, 서안 지구 내 22km 지점까지 장벽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1,500채 이상의 팔레스타인 가옥이 철거되었고,[26] 팔레스타인 구조물 건설은 사실상 완전히 금지되었다.
7. 1. 샤론의 일방적 분리 계획 발표
2004년 4월 14일, 아리엘 샤론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동 평화 로드맵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재확인했다.[29]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로드맵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며,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함께 나아갈 팔레스타인 파트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29] 샤론은 일방적 분리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가자 지구의 모든 이스라엘 정착촌과 서안 지구의 4개 정착촌을 철수하는 것을 의미했다.[29] 이 계획은 2003년 12월 18일 제4차 헤르츨리야 회의에서 이미 제안된 바 있다.[30]샤론은 이 일방적인 조치가 로드맵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며, 부시 대통령은 이 계획을 지지하며 "평화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과감하고 역사적인 이니셔티브"라고 말했다.[29] 2004년까지 미국의 공식 입장은 이스라엘이 원칙적으로 1949년 휴전선인 그린 라인으로 복귀해야 하며, 이 선에 대한 변경은 최종 지위 협상에서 상호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샤론의 서한에 대한 답변에서 부시는 "이미 존재하는 주요 이스라엘 인구 중심지를 포함한 현장의 새로운 현실을 고려할 때, 최종 지위 협상의 결과가 1949년 휴전선으로의 완전하고 전면적인 복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29][31] 이는 이스라엘의 현실주의 정책을 수용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샤론에게 큰 승리로 여겨졌다.[32]
부시는 또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에 대해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에 대한 합의된, 공정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최종 지위 협정의 일부로 마련하려면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 국가를 설립하고 그곳에 팔레스타인 난민을 정착시키는 방식을 통해 찾아야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라고 말했다.[29][31]
2005년 5월 26일, 마흐무드 아바스와의 공동 기자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어떤 최종 지위 협정도 양측 간에 합의되어야 하며, 1949년 휴전선에 대한 변경은 상호 합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33] 또한, 실행 가능한 두 국가 해법은 서안 지구의 연속성을 보장해야 하며,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사이에도 의미 있는 연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33] 이 발언은 2004년 4월 14일 서한과 상반된다는 평가를 받으며 아바스에게 큰 승리로 여겨졌다.[34]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두 발언 사이의 불일치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7. 2.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개혁 시도
야세르 아라파트가 사망한 후, 마무드 아바스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38]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테러와 싸울 것을 약속했다.[42] 그러나 팔레스타인 국가 안보군은 서안 지구의 약 60%에 해당하는 C구역에서 활동이 금지되었고,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안보 통제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었다.[42] 팔레스타인 통제 구역은 C구역 내 160개가 넘는 앙클라브로 흩어져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했다.[42]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테러가 평화 협정의 주요 장애물이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테러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팔레스타인 지도부 해체를 국가 수립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46][47] 이스라엘은 아라파트를 중동 평화 프로세스의 주요 장애물로 간주하고, 표적 살해 정책을 추진하며 팔레스타인 안보군과 사무실을 공격했다.[48][45][49]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안보국의 사무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여 2003년까지 90%가 파괴되었고, 안보 요원의 약 4분의 3이 구금되거나 살해되었다.[50][51] 하마스가 대부분의 폭탄 테러와 총격 사건에 책임이 있었음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은 주로 팔레스타인 안보군에 집중되었다.[52] 이스라엘군은 아미라 하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민간 기관을 파괴하고 공공 데이터 뱅크를 삭제하여 팔레스타인의 독립 목표를 방해했다.[53]
7. 3. 이스라엘의 서안 지구 정착촌 확장 지속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2003년 5월 12일, 정착촌 건설 동결은 가정을 꾸리는 정착민들을 위한 새 주택 건설 필요성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12] 이스라엘은 로드맵 1단계의 핵심 요구 사항인 2000년 9월 28일의 위치로 철수하지 않았으며,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은 수많은 도로 봉쇄, 토루 및 검문소로 인해 심하게 방해받았다.[26][54]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사이의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이스라엘은 정착촌 확장을 동결하고 2001년 이후 건설된 전초 기지를 해체해야 했지만, 정착민 수는 계속 증가했다. ''제2차 인티파다'' 기간에도 정착민 인구는 높은 비율로 계속 증가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 지구의 정착민 수는 50,000명 이상 증가했으며,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유대인 인구는 약 70,000명 증가했다.[55] 그러나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정착촌의 총 건설 규모는 4년 동안 6,868채의 주택에 불과했다.[56]
서안 지구 장벽 건설로 팔레스타인 땅이 몰수되고 합병되었다.[57] 국제사법재판소는 그린 라인 너머의 장벽이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은 아리엘 동쪽, 다른 대규모 정착촌 블록 동쪽, 서안 지구 내 22km 지점까지 장벽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1,500채 이상의 팔레스타인 가옥이 철거되었고,[26] 팔레스타인 구조물 건설은 사실상 완전히 금지되었다.
8. 로드맵의 실패 원인과 한국의 관점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1515에서 지지된 중동 평화 로드맵은 2003년 말까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테러 방지 실패와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및 정착촌 확장 동결 불이행으로 인해 1단계 요구 사항이 충족되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66]
2005년 2월 8일 샤름 엘 셰이크 정상 회담과 2007년 11월 27일 애나폴리스 회의에서 양측은 로드맵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지만, 2008년 9월 협상은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66] 에후드 올메르트 정부가 2008년 12월 이스라엘로의 로켓 발사를 막기 위해 가자 지구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시작하면서 "평화 프로세스"는 완전히 붕괴되었다.[66]
2009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된 후 로드맵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주요 쟁점은 서안 지구 점령지의 영구적 지위, 지속적인 정착촌 확장, 팔레스타인 테러, 이스라엘의 최종 경계선 등이었다.[66]
한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며, 양측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해야 한다. 특히,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 개선과 자결권 보장을 위해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강경 정책과 정착촌 건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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