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입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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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언입천류는 밀교의 한 유파로, 사제 관계를 기록한 혈맥을 통해 계승되었다. 다이 니치 료라이, 콩고 사타 등을 거쳐 고보 대사, 닌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가지며, 닌칸은 이즈로 유배된 후 렌넨으로 개명하여 타츠카와류를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겐렌을 거쳐 1211년경 '타츠카와류'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며, 무사시립 타치카와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쇼묘지의 신카이, 신기 진언종의 라이유 등이 관련 승려로 알려져 있다. 신조의 비판과 에도 시대 중기에 쇠퇴했지만, 2000년대에 사료 비판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타치카와류는 해골을 이용한 의식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13세기부터 비판을 받아 쇠퇴하여, 현대에는 거의 소멸되었으나, 일부에서는 오늘날에도 활동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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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언입천류 | |
|---|---|
| 개요 | |
| 종류 | 일본 밀교의 한 종파 |
| 기원 | 진언종 다이고파 산보인 계통의 법류 |
| 영향 | 요가의 탄트라와 유사한 성적 의식으로 해석되기도 함 |
| 역사 | |
| 창시자 | 니겐다이시 |
| 시대 | 헤이안 시대 말기 |
| 발전 | 가마쿠라 시대에 입천류라는 이름으로 발전 |
| 특징 | 성애를 깨달음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논란 |
| 논쟁과 비판 | |
| 해석 | 일부 학자들은 입천류의 성적 의식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 |
| 현대적 시각 | 불교적 가르침의 왜곡 또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함 |
2. 역사
밀교에는 혈맥(けちみゃく)이라고 하여, 사제 관계의 역사를 기록한 계보가 있다. 타츠카와류의 혈맥은 대일여래・금강보살에서 시작하여, 홍법대사 고보 대사, 신가・겐닌・쇼보(다이고지의 개기)・간겐・준유・겐고・닌카이・가쿠겐・조켄・쇼가쿠, 그리고 "렌넨"이라는 인물로 이어진다. 이 렌넨은 닌칸(?–1114년)이 이즈국으로 유배된 후에 개명한 인물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렌넨까지는 진언종 다이고파산보인의 정통 혈맥에 속하며, 렌넨에 의해 새로운 법류가 창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제자가 겐렌이라는 승려인데, 이 인물의 자세한 사항은 불명확하지만, 시바타 겐류에 따르면, 당시 덴다이종이었던 구노지(후의 린자이종뎃슈지(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시미즈구))의 승려였으며, 재상 입도 간렌(공경후지와라 노리나가(1109–?))과도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진짜 타츠카와류는 그 혈맥에 반드시 렌넨과 겐렌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속칭 타츠카와류(「그의 법」집단)와 구별할 수 있다.는 설이 있다.
"타츠카와류"라는 명칭은 적어도 겐랴쿠 원년(1211년) 8월 25일 필사의 가나자와 문고 소장 "수정비구"까지 용례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또한, 켄아 (1261–1338년) 자필의 닌칸 혈맥에 "무사시국 타츠카와 렌넨"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타츠카와류의 "타츠카와"는 무사시립 타츠카와(도쿄도다치카와시)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진언 타츠카와류의 혈맥에 관련된 저명한 승려로는 분에이 4년(1267년)에 가나자와 류 호조 씨의 보제사(菩提寺)인 요코하마시쇼묘지(가나자와 문고)의 개산이 된 신카이와, 신기 진언종을 세운 라이유 (1226–1304년) 등이 있다.
신조 (1215–?)는 『수법용심집』(분에이 5년(1268년)) 속에서 다키니텐을 모시고 해골 본존이라는 성적 의식을 신봉하는 명칭 불명의 밀교의 한 파(「그의 법」집단)를 "사행"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신조의 『수법용심집』에는 물론 "그의 법" 집단이나 명칭 불명의 밀교의 한 파라는 명칭이 나오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것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읽을 수 없는 점, 신조 자신이 타츠카와류의 성교를 이취경이나 유기경의 창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 신조가 애초에 타츠카와류의 승려였는지 하는 점, 게다가 전거가 되는 『수법용심집』이 필사된 연대에 따라 문의 가필 등이 있다는 점도 함께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타츠카와류는 『수법용심집』에 부언한 에카이 『파사현정집』(코안 4년(1281년))이나 유카이 『보경초』(덴주 원년/에이와 원년(1375년)) 등에서 해골 본존을 모시는 사도 법류였던 것처럼 인상 조작을 받아 풍평 피해를 입었으며, 또한 고다이고 천황의 측근인 분칸도 타츠카와류의 한 사람으로 오인받게 되었다는 학설이 최근 존재한다(자세한 내용은 「그의 법」집단#역사 참조).
『보경초』에 의해 사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후 쇠퇴하여, 에도 시대 중기에 소멸했다.
2000년대에 독일의 일본학자슈테판 쾨크 등에 의해 본격적인 사료 비판이 시작되었으며, 진언 타츠카와류・"그의 법" 집단(해골 본존을 모시는 교단)・분칸파의 세 집단은 각각 전혀 관계가 없는 집단이라고 미나가 주장하고 있다. "그의 법" 집단(속칭 타츠카와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의미에서의 타츠카와류에 대한 연구는 다이고지의 학승인 시바타 겐류 등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2. 1. 닌칸과 타치카와류 창시

승려 닌칸(仁寛)은 좌대신(左大臣) 미나모토노 토시후사 (1035-1121)의 아들로, 교토 다이고지(醍醐寺)의 진언종 사찰에서 승려가 되었다.[1] 1086년부터 다이고지의 주지를 지낸 그의 형 쇼카쿠(勝覚, 1057-1129)의 제자가 되었으며, 고산조 천황의 셋째 아들인 스케히토 친왕(輔仁親王, 1073-1119)의 호지승(護持僧, 황실의 안녕을 위해 의식을 행하는 승려)이 되었다.[1] 닌칸은 1097년 무량광원(無量光院) 건립 의식에 참여했고, 1101년 초 쇼카쿠로부터 "법통 계승의 관정"을 받았다.[1]
고산조 천황 사후, 시라카와 천황과 그의 아들 호리카와 천황, 토바 천황으로 이어지는 황위 계승 과정에서 스케히토 친왕과의 관계는 긴장되었다.[1] 1113년, 닌칸은 토바 천황을 저주하려 했다는 혐의로 스케히토 친왕과 함께 체포되어 유배되었다.[1] 닌칸은 이즈 국으로, 센주마루는 사도 섬으로 유배되었고, 스케히토는 가택 연금되었다.

닌칸은 유배 이후 렌넨(蓮念)으로 이름을 바꾸고, 점성가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3] 그는 이즈에서 타치카와 계통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지와라노 타다자네(藤原忠実, 1078-1162)의 일기인 『덴랴쿠』(殿暦, 1098-1118년 기록)에 닌칸이 이즈의 이즈 오시마(伊豆大島)로 유배되었는데, 이곳은 점술 전문가의 유배지로 유명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야산의 승려 유카이(宥快, 1345-1416)는 『호쿄쇼』(宝鏡鈔, "보배로운 거울의 편람", 1375)에서 닌칸이 이즈에서 무사시 국 타치카와(立川) 출신의 온묘도(onmyōji) 음양사와 함께 진언종을 공부하고 음양도 수행을 도입하여 타치카와 종파를 창시했다고 기록했다.
타치카와류는 사악한 의식을 전파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현존하는 문헌에는 성적인 가르침이나 이단적인 내용은 없다.[1] 실제로는 다이고지 계통의 분파인 정상적인 진언종 분파였을 가능성이 높다. 닌칸의 계통에서 실제로 수행된 점성술 및 점술 행위는 "많은 중세 일본의 밀교 수행의 일반적인 것이었다".
타치카와류의 계보에 따르면 닌칸(렌넨)은 4명의 제자에게 계승되었으며, 그 중 한 명은 켄렌(見蓮)이었다. 켄렌은 시미즈구에 위치한 린자이종 사찰인 쿠노지(久能寺, 현재는 테슈지)의 승려였으며, 후지와라노 노리나가 (1109-?)와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3]
밀교에는 혈맥(けちみゃく)이라고 하여, 사제 관계의 역사를 기록한 계보가 있다. 타츠카와류의 혈맥은 대일여래・금강보살에서 시작하여, 고보 대사를 통해 렌넨(닌칸)으로 이어진다. 렌넨까지는 진언종 다이고파산보인의 정통 혈맥에 속한다. 렌넨에 의해 새로운 법류가 창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제자가 겐렌이라는 승려인데, 시바타 겐류에 따르면, 당시 덴다이종이었던 구노지(후의 린자이종뎃슈지(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시미즈구))의 승려였다
"타츠카와류"라는 명칭은 적어도 겐랴쿠 원년(1211년) 8월 25일 필사의 가나자와 문고 소장 "수정비구"까지 용례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켄아 (1261–1338년) 자필의 닌칸 혈맥에 "무사시국 타츠카와 렌넨"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타츠카와류의 "타츠카와"는 무사시립 타츠카와(도쿄도다치카와시)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진언 타츠카와류의 혈맥에 관련된 저명한 승려로는 신카이와, 신기 진언종을 세운 라이유 (1226–1304년) 등이 있다
그러나 "속칭 타츠카와류" = "그의 법" 집단과의 관련에서 가장 유명한 승려는 신조 (1215–?)이다. 타츠카와류는 『수법용심집』,『파사현정집』,『보경초』등에서 해골 본존을 모시는 사도 법류였던 것처럼 인상 조작을 받아 풍평 피해를 입었으며, 또한 고다이고 천황의 측근인 분칸도 타츠카와류의 한 사람으로 오인받게 되었다는 학설이 최근 존재한다.
『보경초』에 의해 사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후 쇠퇴하여, 에도 시대 중기에 소멸했다.
2000년대에 독일의 일본학자슈테판 쾨크 등에 의해 본격적인 사료 비판이 시작되었으며, 진언 타츠카와류・"그의 법" 집단(해골 본존을 모시는 교단)・분칸파의 세 집단은 각각 전혀 관계가 없는 집단이라고 미나가 주장하고 있다.
2. 2. 겐렌과 타치카와류
밀교에는 혈맥(けちみゃく)이라고 하여, 사제 관계의 역사를 기록한 계보가 있다. 타츠카와류의 혈맥은 대일여래・금강보살에서 시작하여, 홍법대사 고보 대사, 신가・겐닌・쇼보(다이고지의 개기)・간겐・준유・겐고・닌카이・가쿠겐・조켄・쇼가쿠, 그리고 "렌넨"이라는 인물로 이어진다. 이 렌넨은 닌칸(?–1114년)이 이즈국으로 유배된 후에 개명한 인물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렌넨까지는 진언종 다이고파산보인의 정통 혈맥에 속하며, 렌넨에 의해 새로운 법류가 창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제자가 겐렌이라는 승려인데, 이 인물의 자세한 사항은 불명확하지만, 시바타 겐류에 따르면, 당시 덴다이종이었던 구노지(후의 린자이종뎃슈지(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시미즈구))의 승려였으며, 재상 입도 간렌(공경후지와라 노리나가(1109–?))과도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진짜 타츠카와류는 그 혈맥에 반드시 렌넨과 겐렌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속칭 타츠카와류(「그의 법」집단)와 구별할 수 있다.는 설이 있다."타츠카와류"라는 명칭은 적어도 겐랴쿠 원년(1211년) 8월 25일 필사의 가나자와 문고 소장 "수정비구"까지 용례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또한, 켄아 (1261–1338년) 자필의 닌칸 혈맥에 "무사시국 타츠카와 렌넨"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타츠카와류의 "타츠카와"는 무사시립 타츠카와(도쿄도다치카와시)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진언 타츠카와류의 혈맥에 관련된 저명한 승려로는 분에이 4년(1267년)에 가나자와 류 호조 씨의 보제사(菩提寺)인 요코하마시쇼묘지(가나자와 문고)의 개산이 된 신카이와, 신기 진언종을 세운 라이유 (1226–1304년) 등이 있다.
신조 (1215–?)는 『수법용심집』(분에이 5년(1268년)) 속에서 다키니텐을 모시고 해골 본존이라는 성적 의식을 신봉하는 명칭 불명의 밀교의 한 파(「그의 법」집단)를 "사행"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신조의 『수법용심집』에는 물론 "그의 법" 집단이나 명칭 불명의 밀교의 한 파라는 명칭이 나오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것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읽을 수 없는 점, 신조 자신이 타츠카와류의 성교를 이취경이나 유기경의 창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 신조가 애초에 타츠카와류의 승려였는지 하는 점, 게다가 전거가 되는 『수법용심집』이 필사된 연대에 따라 문의 가필 등이 있다는 점도 함께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타츠카와류는 『수법용심집』에 부언한 에카이 『파사현정집』(코안 4년(1281년))이나 유카이 『보경초』(덴주 원년/에이와 원년(1375년)) 등에서 해골 본존을 모시는 사도 법류였던 것처럼 인상 조작을 받아 풍평 피해를 입었으며, 또한 고다이고 천황의 측근인 분칸도 타츠카와류의 한 사람으로 오인받게 되었다는 학설이 최근 존재한다(자세한 내용은 「그의 법」집단#역사 참조).
『보경초』에 의해 사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후 쇠퇴하여, 에도 시대 중기에 소멸했다.
2000년대에 독일의 일본학자슈테판 쾨크(Stefan Köck) 등에 의해 본격적인 사료 비판이 시작되었으며, 진언 타츠카와류・"그의 법" 집단(해골 본존을 모시는 교단)・분칸파의 세 집단은 각각 전혀 관계가 없는 집단이라고 미나가 주장하고 있다. "그의 법" 집단(속칭 타츠카와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의미에서의 타츠카와류에 대한 연구는 다이고지의 학승인 시바타 겐류 등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2. 3. 비판과 쇠퇴
다치카와류는 남북조 시대인 13세기 중반에 진언종 정통 분파의 주요 경쟁자가 될 정도로 널리 수용되고 실천되었다. 13세기부터 고야산의 진언종 정통 분파는 다치카와류에 대한 비방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1470년경에 차별과 공격이 절정에 달했다.1470년부터 1500년까지 진언종 정통 분파는 다치카와류의 대부분의 가르침과 수행자들을 공식적으로 비난하고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치카와류는 일반 대중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다치카와류의 저작들은 『三界一心記』(삼계일심기), 『不動尊具鈔』(부동존구초), 『金剛鈔』(금강초)와 같은 작품으로 출판되었다.
다치카와류의 사상과 영향은 이중 가네샤(소신 강기천)와 라가라자(아이젠 묘-오), 그리고 멸망한 ''겐시 키묘단'' 종파의 텐다이종을 포함한 다른 주요 정통 밀교 종파에서도 나타났다. 또한 조도신슈(정토 신앙)의 가르침과 이념, 특히 가쿠반과 도한이 개발한 ''비밀 염불''(秘密念仏)에서도 나타났다.
3. 해골 의식
다치카와류가 행했다고 주장하는 많은 의식과 의례 중에는 해골 의식도 있었다. 사람이나 동물의 해골을 사용하는 의식은 드물지 않다. 다치카와류 해골 의식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무상유가 인도-티베트 금강승-탄트라, 특히 헤바즈라 탄트라와 찬다마하로사나 탄트라의 의식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추가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그 기원에 대한 다른 결론은 내릴 수 없다.
다치카와류 해골 의식에 대한 묘사는 신조(Shinjō)라는 알려지지 않은 진언종 승려로부터 나왔다.[4] 신조에 대해서는 그가 자신에 대해 쓴 것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해골 의식은 1270년경에 쓰여진 그의 저서인 『수법용심집(受法用心集)』(Sanford 1991)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5]
두개골에 종교적, 마법적 힘을 부여하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특징이며, 특히 탄트라 불교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초기 탄트라 카팔리카(카팔리카) 수행자들은 시디(sidhhi, 마법적 힘)를 준다고 믿으며 끝에 해골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죽은 자를 부르기 위해 유향을 사용하는 것은 고대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민간 설화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또한 헤바즈라 탄트라에서 "무드라"(봉인)를 성적 의례의 의식적 파트너로 묘사하는 데서 동등하게 적절한 탄트라적 용법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소녀가 "유향과 장뇌를 소유"하는 것으로 묘사되며, 피와 정액(적색과 백색)에 대한 암호화된 언급으로 밝혀졌다. 여성의 피와 남성의 정액(쌍둥이 물, 또는 적색과 백색)의 종교적, 마법적 힘은 더 바로크한 형태의 탄트라주의에서 표준이다. 예시는 카울라의 요니 탄트라(Yoni-Tantra, 질 탄트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최고의 사다카(sadhaka, 집전자)는 요니(yoni, 질)와 링감(lingam, 남근)에서 나온 분비물을 물에 섞어, 이 아미리타(amrita, 감로)를 마시면서 자신을 양육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해골의 눈 구멍을 통해 향 연기를 통과시키는 아이디어는 향이 기도나 생각에 의해 힘을 얻기 전까지는 순수하다는 불교의 믿음을 반영한다. 그런 다음 불이 붙으면 아그니의 불에 의해 정화되고, 순수한 증류된 의도는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로 나타난다. 따라서 연기가 눈(눈은 영혼의 창)을 통과하도록 함으로써 순수한 증류된 의도는 해골의 닫힌 두개골로 포착되어 응축된다.
3. 1. 의식에 대한 참고 사항
두개골에 종교적, 마법적 힘을 부여하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특징이며, 특히 탄트라 불교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초기 탄트라 카팔리카(카팔리카) 수행자들은 시디(sidhhi, 마법적 힘)를 준다고 믿으며 끝에 해골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죽은 자를 부르기 위해 유향을 사용하는 것은 고대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민간 설화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또한 헤바즈라 탄트라에서 "무드라"(봉인)를 성적 의례의 의식적 파트너로 묘사하는 데서 동등하게 적절한 탄트라적 용법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소녀가 "유향과 장뇌를 소유"하는 것으로 묘사되며, 피와 정액(적색과 백색)에 대한 암호화된 언급으로 밝혀졌다. 여성의 피와 남성의 정액(쌍둥이 물, 또는 적색과 백색)의 종교적, 마법적 힘은 더 바로크한 형태의 탄트라주의에서 표준이다. 예시는 카울라의 요니 탄트라(Yoni-Tantra, 질 탄트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최고의 사다카(sadhaka, 집전자)는 요니(yoni, 질)와 링감(lingam, 남근)에서 나온 분비물을 물에 섞어, 이 아미리타(amrita, 감로)를 마시면서 자신을 양육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해골의 눈 구멍을 통해 향 연기를 통과시키는 아이디어는 향이 기도나 생각에 의해 힘을 얻기 전까지는 순수하다는 불교의 믿음을 반영한다. 그런 다음 불이 붙으면 아그니의 불에 의해 정화되고, 순수한 증류된 의도는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로 나타난다. 따라서 연기가 눈(눈은 영혼의 창)을 통과하도록 함으로써 순수한 증류된 의도는 해골의 닫힌 두개골로 포착되어 응축된다.
4. 현대
다치카와류는 13세기에 일본 당국에 의해 금지되었고, 거의 모든 저술은 불태워지거나 고야산 및 관련 사찰에 봉인되어 실질적으로 소멸되었다.[6] 그러나 적어도 1689년까지 비밀리에 학교가 존속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오늘날에도 변장한 채 활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6]
참조
[1]
웹사이트
立川流 (Tachikawa-ryū)
https://kotobank.jp/[...]
2021-07-11
[2]
웹사이트
義範 (Gihan)
https://kotobank.jp/[...]
2021-07-14
[3]
웹사이트
金沢文庫蔵の真言立川流聖教の和訳紹介
https://blog.goo.ne.[...]
2021-07-11
[4]
서적
The Invention of Religion in Japan
2012
[5]
서적
Tantra of the Tachikawa Ryu: Secret Sex Teachings of the Buddha
https://books.google[...]
Stone Bridge Press
2010-10-19
[6]
서적
Lust for Enlightenment: Buddhism and Sex
Shambhala
1990
[7]
간행물
いわゆる「立川流」ならびに髑髏本尊儀礼をめぐって
https://www.academia[...]
智山勧学会
2018-03-31
[8]
간행물
いわゆる「立川流」ならびに髑髏本尊儀礼をめぐって・資料
https://www.academia[...]
智山勧学会
2018-03-31
[9]
간행물
The Dissemination of the Tachikawa-ryū and the Problem of Orthodox and Heretic Teaching in Shin-gon Buddhism
東京大学大学院人文社会系研究科インド哲学仏教学研究室
2000
[10]
학위논문
Das Juhō-yōjin-shū [Sammlung von der Wachsamkeit beim Empfangen buddhistischer Lehren] des Mönches Shinjō als Apologie der Shingon-Schule gegenüber konkurrierenden Lehren in der Provinz Echizen um 1270
https://hss-opus.ub.[...]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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