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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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중전차는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제2차 세계 대전에 걸쳐 요새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고안된 중장갑과 강력한 화력을 가진 전차를 의미한다. 그러나 시제품 제작이나 제한적 생산에 그쳤고 실전에 투입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은 여러 초중전차를 개발했지만 실전에는 투입되지 못했다. 냉전 시대에는 전술 핵무기의 위력으로 인해 초중전차의 개념이 덜 발전했으며, 주력 전차의 등장으로 초중전차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20세기 말에는 주력 전차의 중량이 증가했지만, 도로 및 교량의 한계와 장갑 기술의 발달로 인해 초중전차 수준의 전차 개발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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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전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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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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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초중전차 |
개발 국가 | 나치 독일 |
생산 회사 | 포르셰 |
생산 기간 | 1944년 |
생산 수량 | 2대 (시제 차량) |
제원 | |
중량 | 188톤 |
전장 | 10.2m |
전폭 | 3.71m |
전고 | 3.63m |
승무원 | 5~6명 |
무장 | |
주포 | 12.8 cm KwK 44 L/55 강선포 |
부포 | 7.5 cm KwK 37 L/24 강선포 |
기관총 | 7.92 mm MG 34 기관총 |
기동 | |
엔진 | 초기: 다임러-벤츠 MB 509 가솔린 엔진 (1,080 마력) 후기: 다임러-벤츠 MB 517 디젤 엔진 (1,200 마력) |
현가 장치 | 토션 바 |
속도 | 도로: 20 km/h 야지: 13 km/h |
항속 거리 | 도로: 186 km 야지: 62 km |
장갑 | |
차체 장갑 | 220 mm |
포탑 장갑 | 240 mm |
2. 역사
초중전차는 원래 중장갑과 강력한 화력으로 적의 요새나 방어선을 제압·돌파할 목적으로 고안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제2차 세계 대전에 걸쳐 여러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제품 제작이나 제한적인 생산에 이른 것은 적었고, 실전에 참가한 것은 거의 없다. 이 목적으로 계획된 초중전차에는 다포탑 형식과 포탑이 없는 돌격포 형식의 것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은 연합국(주로 소련)과의 전차 개발 경쟁 속에서 적 전차를 주포의 위력과 중장갑으로 압도하는 초중전차 계획을 실시하여 여러 시제 차량을 제조했지만, 실전 투입에는 이르지 못했다.
초중전차가 공식적인 분류 명칭으로 정의된 경우는 거의 없으며, 미국 육군이 1946년에 약 72574.80kg(약 73t)을 초과하는 전차를 초중전차(Super-heavy Tank)로 분류하고 T28을 여기에 포함시킨 것이 거의 유일한 예이다.[6] 대부분의 경우, 초중전차라는 호칭은 동시대의 다른 전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전차나 장갑 전투 차량에 대한 편의상의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본 항목에서 언급하고 있는 차량도 공식적으로는 중전차로 분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전차의 무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장갑이나 무장의 강화로 인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M26 전차처럼 중전차로 개발되었지만, 다른 전차와의 균형을 고려하여 정식 채택 후 1년여 만에 중형전차로 분류가 변경된 예도 있다. 따라서 단순히 차체의 크기나 무게만으로 초중전차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냉전기에는 과거의 중전차에서 진화한 주력 전차가 전차의 중심이 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후 얼마 동안은 중전차의 개발도 계속되었으며, 초중전차적인 성격을 가진 것도 소수 개발되었다. 그러나 장갑 기술의 진보로 전차의 무게는 경량화되어, 대략 최대 65ton의 범위 내에 수렴되었다.
2. 1. 제1차 세계 대전
최초의 초중전차는 1911년부터 1915년까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러시아 해군 기술자 바실리 멘델레예프가 설계했다. 이 전차는 당시 거의 모든 위협에 무적일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높은 제작 비용으로 인해 서류상에만 머물렀다.[1][2] 영국의 최초 전차 생산 이후, 영국은 포격에 저항할 수 있는 전차로 "플라잉 엘리펀트"를 설계했다. 기동성이 방어력보다 더 중요했고, 이미 개발된 전차들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독일의 K-Wagen(Großkampfwagen)은 4문의 대포를 탑재하고 27명의 승무원이 필요한 매우 무거운 설계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두 대가 건조 중이었으며, 두 대 모두 파괴되었다.2. 2.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주요 참전국들은 특수 임무를 위한 초중전차 시제품을 선보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에서 승리할" 무기를 옹호했으며, 188톤의 마우스나 더 거대한 1,000톤의 란트크로이처 P. 1000 라테와 같은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영국과 소련은 모두 야크트티거와 유사한 시제품 설계를 제작했으며, 미국은 T95 자주포로 알려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으며, 이는 나중에 T28 초중전차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는 대부분 시제품 단계에서 멈췄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주요 참전국들은 각자의 사정에 맞춰 초중전차 시제 차량을 제작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최신·최강의 초병기 개발을 지시하여, 188톤의 마우스나 140톤의 E-100 등 초중전차 계획을 추진했다. 영국과 소련은 야크트티거와 유사한 시제차량을 만들었고, 미국도 T28 초중전차의 시제를 제작했다. 일본에서도 150톤의 오이 차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병기가 필요해지는 전장은 매우 한정적이었고, 각국 모두 보다 실용적인 전차의 개발과 양산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모두 시제에 머물러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다음은 제2차 세계 대전 각국의 초중전차 목록이다.
국가 | 전차명 | 중량 | 비고 |
---|---|---|---|
미국 | T28 초중전차 | 86톤 | 자주포, 승무원 5명 탑승, 테스트 |
영국 | TOG1 전차 | 80톤 | 시제품 1개 |
TOG2 중전차 | 80톤 | 시제품 1개 | |
토터스 중돌격전차 | 78톤 | 자주포, 승무원 6명 탑승, 테스트 | |
플라잉 엘리펀트 | 100톤 | 계획 | |
프랑스 | 2C 전차 | 69톤 | 1920년 10대 생산 |
FCM F1 | 139톤 | 계획 | |
독일 | K바겐 | 120톤 | 1918년 2대 제작 |
7호 전차 뢰베 | 76–90톤 | 마우스 초중전차 생산으로 프로젝트 해지 | |
마우스 초중전차 | 188톤 | 시제품 2개, 1개 완성, 1개 차체 완성 | |
E-100 전차 | 140톤 | 차체 1개 완성 | |
란트크로이처 P. 1000 라테 | 1000톤 | 계획 | |
란트크로이처 P. 1500 몬스터 | 1500톤 | 계획 | |
소련 | TG-5 (T-42) | 100톤 | 107mm 주포와 부포 4개, 계획[6] |
T-39 | 90톤 | 버전 1, 버전 2 존재 | |
KV-5 | 계획 | ||
KV-6 | |||
일본 | 실험용 O-I 초중전차 | 130톤 | 1944년에 시제품 1개 생산 (추정) |
실험용 O-I 초중전차 | O-I 초중전차의 수정형, 부포 4개 |
2. 3. 냉전 시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술 핵무기의 파괴력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든 장갑을 압도할 수 있게 되면서 초중전차의 개념은 덜 발전하게 되었다. 전쟁 중의 장갑 및 추진 기술의 발전으로 여러 국가에서 개발한 전후의 중전차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운용된 평균적인 중전차보다 훨씬 더 무거워졌지만, 전반적인 기동성은 유지되었다. 예시로는 279호 (소련), T30 중전차 (미국), 컨커러 (영국)가 있다. 이 차량들은 모두 60ton 이상의 무게를 가지면서도 시속 35km 이상으로 주행할 수 있었다. 미국의 T30 전차는 전투 시 85ton을 초과했지만, 이 차량들은 초중전차로 간주되지 않는다.주력 전차는 냉전 시대에 모든 전차 생산 국가에서 개발 및 사용되었으며, "중형", "중(重)형", "순항", "보병" 전차의 교리적 역할과 사용을 대부분 대체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운용된 중전차는 65ton의 M103으로, 1963년 미국 육군에서 퇴역했으며 (1973년 미 해병대에서 퇴역).[3] 이 기간 동안 주력 전차보다 더 큰 전차를 배치하는 것은, 예상되는 전장 상황과 전쟁 지역을 고려할 때, 방어력이나 공격 능력에 상당한 이점을 제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냉전 시대에는 초중형 주력 전차가 생산되지 않았다.
냉전기에는 과거의 중전차에서 진화한 주력 전차가 전차의 중심이 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후 얼마 동안은 중전차의 개발도 계속되었으며, 초중전차적인 성격을 가진 것도 소수 개발되었다. 그러나 장갑 기술의 진보로 전차의 무게는 경량화되어, 대략 최대 65ton의 범위 내에 수렴되었다. 예시로는 소련의 오브젝트 279, IS-7, 미국의 T29 중전차, T30 중전차 등이 있다.
냉전 기간 동안 각국의 주력 전차는 적대 진영의 주력 전차에 대항하기 위해 장갑을 순차적으로 증대시켰다. 냉전 종결 후에도 비정규전에서의 대전차 미사일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 증대는 계속되었다. 그 결과, 20세기 말 시점에서 미국, 영국, 독일의 주력 전차의 중량은 60ton을 넘어섰고, 과거의 중(重)전차에 필적하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대출력 엔진으로 어느 정도의 기동성은 확보할 수 있었지만, 도로와 교량 등의 인프라가 무제한적인 중량 증가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며, 또한 이러한 전차의 장갑은 이미 과거에 사용되었던 균질압연강장갑 1m 이상에 상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앞으로 중량이 초중전차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에 달하는 전차가 출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3. 목록
국가 | 명칭 | 중량 | 비고 |
---|---|---|---|
미국 | T28 초중전차 | 86ton | 자주포, 승무원 5명 탑승 후 테스트. |
영국 | TOG1 전차 | 80ton | 시제품 1대 제작. |
TOG2 중전차 | 80ton | 시제품 1대 제작. | |
토터스 중돌격전차 | 78ton | 자주포, 승무원 6명 탑승 후 테스트. | |
플라잉 엘리펀트 | 100ton | 계획만 진행. | |
프랑스 | 2C 전차 | 69ton | 1920년에 10대 생산. |
FCM F1 | 139ton | 계획만 진행. | |
독일 | K바겐 | 120ton | 1918년에 2대 제작. |
7호 전차 뢰베 | 76ton~90ton | 마우스 초중전차 생산으로 프로젝트 취소. | |
마우스 초중전차 | 188ton | 시제품 2대 제작, 1대 완성, 1대는 차체 완성. | |
E-100 전차 | 140ton | 차체 1대 완성. | |
란트크로이처 P. 1000 라테 | 1000ton | 계획만 진행. | |
란트크로이처 P-1500 몬스터 | 1500ton | 계획만 진행. | |
소련 | TG-5 (T-42) | 100ton | 107mm 주포와 4개의 부포, 계획만 진행.[11] |
T-39 | 90ton | 90mm 장갑, 버전 1, 버전 2 존재. | |
KV-5 | - | 계획만 진행. | |
KV-6 | - | 정보 없음. | |
일본 | 실험용 O-I | 130ton | 1944년에 시제품 1대 생산(추정). |
실험용 O-I | - | O-I 초중전차의 수정형, 4개의 부포. |
4. 평가
초중전차는 공식적인 분류 명칭으로 정의된 경우가 거의 없으며, 미국 육군이 1946년에 80미국 톤(약 73t)을 초과하는 전차를 초중전차(Super-heavy Tank)로 분류하고 T28을 여기에 포함시킨 것이 거의 유일한 예이다.[6] 대부분의 경우, 초중전차라는 호칭은 동시대의 다른 전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전차나 장갑 전투 차량에 대한 편의상의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본 항목에서 언급하고 있는 차량도 공식적으로는 중전차로 분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전차의 무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일반적으로 장갑이나 무장의 강화로 인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M26 전차처럼 중전차로 개발되었지만, 다른 전차와의 균형을 고려하여 정식 채택 후 1년여 만에 중형전차로 분류가 변경된 예도 있다. 따라서 단순히 차체의 크기나 무게만으로 초중전차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냉전 기간 동안 각국의 주력 전차는 적대 진영의 주력 전차에 대항하기 위해 장갑을 순차적으로 증대시켰다. 냉전 종결 후에도 비정규전에서의 대전차 미사일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 증대는 계속되었다. 그 결과, 20세기 말 시점에서 미국, 영국, 독일의 주력 전차의 중량은 60톤을 넘어섰고, 과거의 중(重)전차에 필적하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대출력 엔진으로 어느 정도의 기동성은 확보할 수 있었지만, 도로와 교량 등의 인프라가 무제한적인 중량 증가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며, 또한 이러한 전차의 장갑은 이미 과거에 사용되었던 균질압연강장갑 1m 이상에 상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앞으로 중량이 초중전차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에 달하는 전차가 출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어쨌든 적의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는 중(重)장갑과 대화력으로 적을 압도한다는 초중전차 본래의 개발 사상에 따른 차량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전 중에 시제(試製)된 차량도 실전에 참여할 수 없었고, 실전에 투입된 야크트티거 또한 대중량에 기인하는 저(低)기동성과 잦은 고장에 시달렸으며, 초중전차 수준의 화력과 장갑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 압도하고 항공기의 지원도 받은 연합군 차량을 저지할 수 없었다. 이로부터 초중전차의 개발 사상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참조
[1]
서적
"Yauza, [[Eksmo]]"
[2]
서적
Kharvest
[3]
서적
Patton: A History of the American Main Battle Tank
Presidio Press
1984
[4]
웹사이트
Taki’s Imperial Japanese Army page: Super-Heavy Tank "O-I"
http://www3.plala.or[...]
[5]
웹사이트
Design history.
http://english.battl[...]
2023-02-12
[6]
서적
『第二次大戦の超重戦車』
[7]
서적
"Yauza, {{仮リンク|エクスモー|en|Eksmo}}"
[8]
서적
Kharvest
[9]
간행물
製 1/72スケールプラモデル「150t 超重戦車〔オイ〕」組立説明書・実車解説
[[ファインモールド]]
[10]
서적
『日本の重戦車』
[11]
문서
Zaloga 1984:85
[12]
웹사이트
KV-4 data sheet and pictures of the proposed designs
http://forum.worldof[...]
[13]
서적
『日本の重戦車』
[14]
서적
『第二次大戦の超重戦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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