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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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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클레이토스는 마케도니아 귀족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누나 라니케는 알렉산드로스의 유모였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3세 치하에서 기병 친위대장과 헤타이로이 기병대장을 역임하며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목숨을 구하는 등 뛰어난 군사적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정책에 반대하며 갈등을 빚었고, 기원전 328년 술에 취한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살해당했다. 클레이토스는 헨델의 오페라, 존 베리먼의 시, 영화 "알렉산더" 등 다양한 문화 작품에 등장하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도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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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토스 - [인물]에 관한 문서

2. 생애

마케도니아 귀족 도로피데스의 아들로, 알렉산더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누나인 라니케는 알렉산더의 유모였다.

클레이토스는 알렉산더 3세에 의해 기병 친위대장에 임명되었으며, 기원전 334년 그라니코스 전투에서는 알렉산더의 목숨을 구하는 큰 공을 세웠다.[15][16] 이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도 활약하였고, 필로타스가 처형된 후 공석이 된 헤타이로이 기병대장에 헤파이스티온과 함께 임명되는 등 뛰어난 지휘관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클레이토스는 전통적인 마케도니아 풍습을 중시하였기에, 페르시아 풍의 궁중 의례를 도입하고 이민족과의 융화를 추구하는 알렉산더의 정책에 점차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왕에게 아첨하는 신하들의 언행을 공공연히 비난하기도 했다.

기원전 328년, 소그디아나의 마라칸다(현재 사마르칸트)에서 페르시아의 박트리아 총독 아르타바조스가 고령으로 사임하자, 알렉산더는 클레이토스를 후임 총독으로 임명하고 축하 연회를 열었다.[17] 하지만 이미 알렉산더와의 관계가 악화된 상태였던 클레이토스는 연회 자리에서 왕의 동방 정책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술에 취한 알렉산더는 클레이토스의 도발적인 언사에 격분하여 창을 던져 그를 살해했다. 술에서 깨어난 알렉산더는 자신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고 사흘 동안 슬픔에 잠겨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2. 1. 군사적 활약

클레이토스는 필리포스 2세 치하에서 그리스 기병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이 직위는 알렉산드로스 3세 치하에서도 유지되었다.[8]

기원전 334년 그라니코스 강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의 사트라프인 로사케스와 스피리다테스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했을 때, 클레이토스는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뒤에서 공격하려던 스피리다테스의 팔을 베어 떨어뜨려 알렉산드로스의 목숨을 구했다.[8][9][10][15][16]

이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는 왕과 함께 기병대를 이끌고 적진에 돌입하여 용맹하게 싸웠다. 또한 필로타스가 재판 후 처형되자, 공석이 된 헤타이로이 기병대의 두 지휘관 중 한 명으로 헤파이스티온과 함께 임명되어 우수한 지휘관임을 입증했다.[5][6][7]

2. 2. 알렉산드로스와의 갈등

클레이토스를 죽이는 알렉산더. 앙드레 카스타뉴 작, 1898–1899


클레이토스는 전통적인 마케도니아 풍습을 존중했기 때문에, 페르시아 풍의 궁중 의례를 도입하고 이민족과의 융화를 중시하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왕에게 아첨하는 신하들의 언행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기원전 328년, 소그디아나의 마라칸다(현재 사마르칸트)에서 페르시아의 박트리아 총독이었던 아르타바조스가 고령을 이유로 사임하자, 알렉산더는 클레이토스를 후임 박트리아 총독으로 임명하고 축하 연회를 열었다.[17][8][11] 이 연회는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일에 사트라피 궁전에서 열렸다.[6]

그러나 클레이토스와 알렉산더 사이에는 이미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연회에서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술에 취한 가운데, 알렉산더는 지휘부 개편을 발표했다. 클레이토스는 패배한 그리스 용병 16,000명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 유목민과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클레이토스는 자신이 왕의 곁에서 멀어져 잊힌 존재가 될 것이며,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병사들을 데리고 변방에서 싸우게 된 것에 분노하여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다.

알렉산드로스와 클레이토스의 다툼


설상가상으로 알렉산더가 자신의 업적이 아버지 필리포스 2세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랑하자, 클레이토스는 알렉산더가 마케도니아의 정당한 왕이 아니며 그의 모든 업적은 아버지 덕분이라고 맞받아쳤다.[12] 격분한 알렉산더는 경비병을 불렀으나 그들은 친구 사이의 다툼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클레이토스에게 사과를 던지고 무기를 찾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이를 제지하고 클레이토스를 방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그러나 클레이토스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알렉산더에게 불만을 계속 쏟아냈다(일부 기록에는 클레이토스가 방을 떠나지 않았다고도 한다). 결국 술에 취한 알렉산더는 창을 집어 클레이토스의 가슴을 꿰뚫어 죽였다.[2][5][7]

술에서 깨어난 알렉산더는 자신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고 사흘 동안 방에 틀어박혀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친구를 죽인 자신이 사는 것은 옳지 않다"며 창으로 자결하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그만두었다.[9][6]

이 다툼의 배경에는 알렉산더가 다리우스 3세 사후 페르시아 제국의 왕으로서 페르시아 관습을 점차 받아들인 것에 대한 클레이토스의 반감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알렉산더는 내시를 고용하고, 많은 마케도니아 군인들이 굴욕적으로 여겼던 프로스키네시스(엎드려 절하는 예법)와 같은 페르시아 관습을 용인했다.[3] 클레이토스는 이러한 변화에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3. 죽음

기원전 328년, 아르타바조스가 박트리아의 사트라프 직위를 사임하자, 알렉산드로스는 클레이토스를 후임으로 임명했다.[8][11][17] 알렉산드로스는 클레이토스가 통치를 시작하기 전날 밤, 소그디아나의 마라칸다(현재 사마르칸트)의 사트라프 궁전에서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일에 연회를 열었다.[6][17] 그러나 당시 클레이토스와 알렉산드로스 사이에는 이미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마케도니아 풍습을 존중했던 클레이토스는 페르시아 풍의 궁중 의례 도입과 이민족 융화 정책 등 알렉산드로스의 방식에 비판적이었고, 왕에게 아첨하는 신하들을 공공연히 비난하기도 했다.

연회에서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술에 취해 있었고, 알렉산드로스는 지휘부 개편을 발표했다. 특히 클레이토스에게는 패배한 그리스 용병 16,000명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초원 유목민과 싸우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클레이토스는 이 명령이 자신을 왕의 핵심 측근에서 멀어지게 하고 잊히게 만들려는 의도로 받아들여 분노했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병사들을 이끌고 외딴곳에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터뜨리며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의 업적이 아버지 필리포스 2세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랑하자, 클레이토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성공은 모두 아버지 덕분이며, 그가 마케도니아의 정당한 왕이 아니라고 맞받아쳤다.[12] 격분한 알렉산드로스는 경비병을 불렀지만, 그들은 친구 사이의 다툼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클레이토스에게 사과를 던지고 단검이나 창을 찾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무기를 치우고 알렉산드로스를 제지하며 클레이토스를 방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힙파시스트(Hypaspists, 왕의 근위 보병대)들은 알렉산드로스 주변을 떠나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나팔수를 불러 군대를 소집하라고 명령했지만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이토스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알렉산드로스에게 더 많은 불만을 토로했다(일부 기록에서는 그가 방을 떠나지 않았다고도 한다). 결국, 여러 기록은 알렉산드로스가 창을 집어 클레이토스의 가슴을 꿰뚫어 죽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2][5][7]

알려진 주요 기록들 모두 알렉산드로스가 클레이토스의 죽음에 대해 깊이 슬퍼했다고 전한다.[6] 술에서 깨어난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친구를 죽인 자신이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창을 벽에 기대어 놓고 스스로 그 위에 쓰러지려고 했다"고 한다.[9] 그는 사흘 동안 방에 틀어박혀 통곡을 계속했다.

이 다툼의 배경에는 클레이토스가 알렉산드로스가 점차 페르시아 관습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분노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리우스 3세 왕이 죽은 후, 알렉산드로스는 법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되었다. 그는 내시를 고용하고, 많은 마케도니아 군인들에게 굴욕적으로 여겨지는 프로스퀴네시스(절하기)와 같은 페르시아 관습을 용인했다.[3]

3. 문화적 영향


  • 클레이토스는 클리토(Clito)라는 이름으로 헨델의 오페라 ''알레산드로''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 미국의 시인 존 베리먼은 그의 서른세 번째 "꿈의 노래"에서 "클레이토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게리 스트레치가 연기한 클레이토스는 영화 ''알렉산더''의 조연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그의 죽음 장면은 역사적 자료와 일치한다.
  • 클레이토스의 죽음은 메리 버츠의 1931년 소설 ''마케도니아인''에서도 묘사된다.
  • 클레이토스의 이야기는 헨리 5세와 클레이토스, 알렉산더를 비교하는 맥락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 4막 7장 33–50행에서 언급된다.
  • 세네카는 그의 저서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도덕 서한''의 83번째 서한에서 클레이토스의 죽음을 언급한다.

참조

[1] 서적 Ghost on the Throne: The Death of Alexander the Great and the War for Crown and Empire https://books.google[...] Alfred A. Knopf
[2] 뉴스 How suspicion and intrigue eroded Alexander's empire https://www.national[...] National Geographic 2018-09-27
[3] 서적 Carnage and Culture: Landmark Battles in the Rise to Western Power https://books.google[...] Knopf Doubleday Publishing Group 2007-12-18
[4] 서적 The Story of Alexander the Great https://books.google[...] J.D. Rockefeller 2016-11-22
[5] 서적 A History of Greece: From the Earliest Period to the Close of the Generation Contemporary with Alexander the Great https://books.google[...] John Murray 1907
[6] 서적 Empire of Alexander the Great https://books.google[...] Infobase Publishing 2009
[7] 서적 In Bed with the Ancient Greeks https://books.google[...] Amberley Publishing Limited 2016-05-15
[8] 서적 Reconstructing the Black Image https://books.google[...] Trentham Books 1993
[9] 문서 Anabasis Alexandri http://websfor.org/a[...]
[10] 문서 The Life of Alexander https://penelope.uch[...]
[11] 문서 Dictionary of Greek and Roman Biography and Mythology http://quod.lib.umic[...] Boston 1867
[12] 서적 The Madness of Alexander the Great: And the Myth of Military Genius https://books.google[...] Pen and Sword 2015-03-31
[13] 문서 Folger inline
[14] 웹사이트 Epistulae Morales ad Lucilium https://archive.org/[...] 2020-04-03
[15] 문서 Anabasis Alexandri http://websfor.org/a[...]
[16] 문서 The Life of Alexander http://penelope.uchi[...]
[17] 문서 그리스-로마 전기, 신화 사전 http://quod.lib.umic[...] 보스톤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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