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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실리나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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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실리나제르는 알제리에 위치한 사암 지형으로, 자연 암석 아치와 깊은 협곡, 영구적인 물웅덩이가 특징이다. 사하라 사막 서부 산악 건조림 생물지리구에 속하며, 멸종 위기종인 사하라 사이프러스와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이다. 타실리나제르는 선사 시대 암각화로 유명하며, 고대, 원형 머리 시대, 소과, 말, 낙타 시대로 구분되는 암각화는 사하라 지역의 문화와 기후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2011년 티나리웬의 앨범 '타실리'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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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실리나제르
지리
타실리 나제르의 모래 언덕 항공 사진
타실리 나제르의 모래 언덕 항공 사진
일반 정보
위치알제리
면적7,200,000 헥타르 (72,000 제곱킬로미터)
지정1972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명칭타실리 나제르
위치알제리
등재 연도1982년
지정 기준(i), (iii), (vii), (viii)
ID179
람사르 습지
명칭라 발레 디헤리르
지정일2001년 2월 2일
등록 번호1057
기타
보호 구역 유형II
관할 기관타만라세트 주

2. 지질

타실리나제르는 대부분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다.[9] 얇은 외부층에 침착된 금속 산화물에 의해 얼룩져 있으며, 암석 형성은 거의 검은색에서 탁한 적색까지 다양한 색상을 띤다.[9] 이 지역의 침식으로 인해 남동쪽에는 거의 300개의 자연 암석 아치가 형성되었고, 북쪽에는 깊은 협곡과 영구적인 물웅덩이가 형성되었다.[9]

랜드샛의 타실리나제르 다층 이미지


타실리나제르 산맥은 대부분 사암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침식 작용으로 300개의 자연석 아치와 더불어 담수 용천, 습지, 지하의 카르스트 수계도 분포하고 있다.[42]

3. 생태

타실리나제르는 사하라 사막 서부 산악 건조림 생물지리구에 속하며, 높은 고도와 사암의 보수력 덕분에 주변 사막보다 식생이 풍부하다. 이는 다양한 동물 종에게 매력적인 서식지를 제공한다.[9]

이 공원의 동쪽 고지대에는 멸종 위기종이자 고유종인 사하라 사이프러스와 사하라 머틀로 구성된 개방된 삼림이 특징이다.[9] 사하라 사이프러스는 미국 서부의 브리스틀콘소나무 다음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무 중 하나이다.[3]

서아프리카악어는 20세기까지 타실리나제르에 고립된 개체군으로 생존했지만, 현재는 주로 세네갈에서 차드에 이르는 서아프리카중앙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 열대 지역에서 발견된다.[10] 바바리양은 이 지역 고대 암벽화에 묘사된 유일한 현존 동물 종이다.[9]

바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은 점무늬모래꿩, 관모래꿩, 리히텐슈타인모래꿩, 파라오올빼미, 큰두꺼비딱새, 흰꼬리종달이, 사막종달이, 엷은바위제비, 황갈색수다쟁이, 흰머리솔잣새, 애도솔잣새, 사막참새, 나팔수염새 등의 개체군이 상당하여 이 공원을 국제적으로 중요한 조류 지역(IBA)으로 지정했다.[11]

사암의 수분 함유 특성과 고도 덕분에 주변 사막보다 식물이 자라기 쉽다. 산맥 동쪽 절반 고지대에는 멸종위기종인 사하라 고유 사하라측백나무 (''Cupressus dupreziana''), 올리브 아종 ''Olea europaea'' subsp. ''laperrinei'', ''Myrtus nivellei'', ''Lupinus pilosus'', ''Convolvulus fatmensis'', 줄풀속, 골풀속 (''Juncus''), 갈대속, 차축조류속 (''Chara''), 말즘속, 검정말속, ''Pseuderucaria clavata'', 아카시아속 (''Vachellia nilotica'') 등의 군락이 산재한다.[41] 동물로는 바버리양, 도르카스가젤, 도마뱀, , 4종의 어류가 서식한다.[42]

타실리나제르 생태계는 서사하라 산악 건조림 (West Saharan montane xeric woodlands)에서 더 자세히 설명된다. "타실리나제르"는 투아레그어로 "강의 고원", "물줄기가 많은 땅"을 의미하며,[43] 과거 더 습윤했던 신석기 시대 다우기 (Neolithic Subpluvial) 시기가 있었음을 시사한다(사하라 펌프 이론 (Sahara pump theory)).

4. 고고학

타실리나제르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과 고고학적 유적으로 유명하며, 알제리 암벽화는 1863년부터 유럽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스테판 게셀(1901~1927), G. B. M. Flamand(1892~1921), 레오 프로베니우스와 휴고 오베르마이어(1925), 앙리 브뢰이(1931~1957) 등이 조사를 실시했다.[12]

1930년대 프랑스 레지옹 외인부대 장교 샤를 브레낭 중위의 스케치를 통해 타실리가 서구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12] 1956~1957년, 1959년, 1962년, 그리고 1970년에 프랑스 고고학자 앙리 로트가 타실리를 방문하여 연구를 진행했다.[13] 그러나 로트의 탐험은 그림을 위조하고, 사진 촬영을 위해 그림을 밝게 하면서 훼손하여 원래 색깔을 복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비난을 받았다.[14][15]

타실리나제르의 암각화는 모리타니아의 다르 티치트(Dhar Tichitt) 등 다른 유적지와 함께[22] 북아프리카의 축산업 발달과 사하라 횡단 무역을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기원전 3000~2000년경부터 광대한 지역에 걸쳐 가축이 사육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 목축의 기원과 확산을 반영한다. 이후 기원전 1000년 이전에 이, 그리고 다음 천년기에 낙타가 등장했다.[23]

타실리나제르의 예술 양식은 고대(기원전 1만 년~7500년), 원형 머리(기원전 7550년~5050년), 소과/목축(기원전 4500년~4000년), 말(기원전 2000년~서기 50년), 낙타(기원전 1000년 이후) 등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4. 1. 선사 시대 암각화

타실리나제르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과 고고학적 유적으로 유명하다. 이 바위그림은 소 떼, 악어와 같은 대형 동물, 수렵과 춤을 추는 사람들의 활동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9]

타실리나제르 유적지는 주로 신석기 시대 이동 목축민 집단이 점유했으며, 이 지역의 지리, 고도, 천연자원은 소규모 집단의 건기 야영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산맥 내 와디(wadi)는 암석 고지대와 사구 저지대 사이의 통로 역할을 했다. 고지대에서는 기원전 5500년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 저지대에서는 기원전 6000년부터 기원전 4000년까지 돌무덤(Tumulus)과 화덕이 발견되었다. 저지대는 특히 우기에 거주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16] 사암 숲에는 수많은 바위그늘이 있으며, 도자기 항아리와 파편, 석재 화살촉, 그릇, 갈돌, 구슬, 장신구 등 신석기 시대 유물이 흩어져 있다.[3]

초기 홀로세(Holocene) 아프리카 습윤기(African Humid period) 이후 목축으로의 전환은 타실리나제르의 고고학적 기록, 암각화, 동물 고고학에 반영되어 있다. 타실리의 점유는 사하라 중부 지역 내 더 큰 이동과 기후 변화의 일부이다. 사하라 중부 지역에서는 기원전 14,000년경부터 고기후 및 고환경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후 좁은 생태적 틈새를 만든 건조한 시대가 이어졌다.[17] 기후는 일정하지 않았고, 사하라는 건조한 저지대와 습윤한 고지대로 나뉘었다. 고고학적 발굴은 기원전 10,000년부터 기원전 7500년까지 수렵 채집 집단 형태의 인간 점유가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기원전 7500년 이후, 인간은 예측 불가능해지는 기후에 대응하여 목축 집단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18] 타실리에서는 기원전 7900년에서 기원전 7200년 사이에 건조한 시기가 있었는데,[19] 이는 최초의 목축 집단이 출현하기 전이었으며, 사하라-사헬 지대의 다른 지역과 일치한다.[20] 타실리에서 발굴된 목축 이전의 토기는 기원전 9000~8500년경, 목축 관련 토기는 기원전 7100~6000년경의 것이다.[21]

타실리나제르의 암석 지대는 수많은 선사 시대 벽화 예술 작품으로 유명한 고고학 유적지로, 1910년 처음 보고되었다.[4] 이 작품들은 사하라 사막이 현재의 사막이 아닌 거주 가능한 사바나였던 최종 빙하기 말기 신석기 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가장 오래된 작품은 1만 2천 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24][25] 관련 퇴적물의 광자극 루미네선스(OSL) 연대 측정에 따르면 대부분은 기원전 9천년기와 1만년기 또는 그 이후의 것이다.[26] 이 작품들은 말라 떨어져 묻힌 채색 패널의 작은 조각들을 수집하여 연대를 측정하였다.[27]

지금까지 확인된 1만 5천 점의 조각 그림에는 영양, 악어와 같은 큰 야생 동물, 가축 무리, 사냥과 춤과 같은 활동을 하는 인간 등이 묘사되어 있다.[9] 이 그림들은 중앙 사하라 예술가들의 초기 작품 중 일부이며, 타실리에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난다.[17] 알제리가 이베리아 반도와 비교적 가까이 있지만, 타실리나제르의 암석 예술은 유럽 전통과는 별개로 발전했다.[28] 유네스코에 따르면, "그림과 조각의 예외적인 밀도...는 타실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29]

타실리나제르의 예술 양식은 다른 사하라 지역의 암석 예술 유적과 마찬가지로 고대, 원형 머리, 소과/목축, 말, 낙타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대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시대시기특징
고대기원전 1만 년~7500년주로 조각. 사냥꾼 수렵 채집인들이 제작. 큰 동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 기하학적 무늬와 인물. 인간과 동물은 주로 사냥 장면에 묘사.
원형 머리기원전 7550년~5050년주로 그림.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노출된 암벽화 중 일부 포함. 둥글고 특징 없는 머리와 형태 없는 몸을 가진 떠 있는 듯한 인물. 의례, 제의, 의식의 중심지였음을 시사. 무플론과 영양 묘사, 대개 사냥 장면이 아닌 정적인 자세.
소과/목축기원전 4500년~4000년사하라 사막에 가축 도입, 이동 목축 확산. 소, 양, 염소, 개와 같은 가축 묘사. 다양한 목축민 공동체, 활을 사용하는 사냥꾼, 여성과 어린이들을 보여주며, 재산에 기반한 사회 계층화 증가 시사.
기원전 2000년~서기 50년사하라 사막의 완전한 사막화, 새로운 이동 수단 필요. 말, 마차, 기수 묘사. 전쟁보다는 사냥과 관련. 선조 베르베르인들이 사용했던 리비아-베르베르 문자가 그림 옆에 나타나지만, 완전 해독 불가.
낙타기원전 1000년 이후당나귀를 대체한 낙타 등장. 장거리 무역로 발달. 방패, , 을 든 기마와 보병 등장. 염소를 포함한 동물, 야생 동물은 투박하게 묘사.



이러한 시대 구분은 연속적이지만, 시간 틀은 유동적이며 기술과 해석 발전에 따라 고고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재구성되고 있다. 예술 작품의 연대는 고고학자들이 암벽에서 떨어진 파편과 잔해를 수집하여 측정하였다.[32]

학술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으로는 원형 머리 시대의 "달리는 뿔 달린 여인" 또는 "뿔 달린 여신"이 있다.[33] 이 그림은 뿔 달린 여성 인물을 묘사하며, 몸통과 사지에 점 장식, 프린지 장식이 달린 팔찌, 치마, 다리띠, 발찌를 착용하고 있다. 아리시카 라작에 따르면, 타실리의 뿔 달린 여신은 "아프리카 신성한 여성"의 초기 사례이다.[33] 그녀의 여성성, 다산, 자연과의 연결이 강조되며, 신석기 시대 예술가는 더 작고 오래된 인물 위에 이 인물을 겹쳐 그렸다. 수소의 뿔 사용은 후기 원형 머리 그림에서 흔한 주제이며, 사하라 일상생활에 가축이 꾸준히 통합된 것을 반영한다. 특히 수소의 가축 이미지[34]는 타실리뿐만 아니라 리비아 인근 유적지에서도 중심적인 주제가 되었다.[35]

1989년, 환각제 연구자 조르조 사모리니는 타실리 동굴의 균류와 유사한 그림들이 사하라가 아직 푸른 땅이었을 때의 고대 사하라 지역 주민들과 환각제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36] 이 이론은 테렌스 맥케나가 1992년 저서 ''신들의 음식''에서 재사용되었는데, 그는 그 유적지에 살았던 신석기 시대 문화가 종교 의식의 일부로 실로시빈 버섯을 사용했다는 가설을 세우고, 손에 버섯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는 사람들과 몸에서 버섯이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암각화를 인용했다.[37] 1950년대 후반에 타실리 동굴을 발견한 앙리 로트에게 이것들은 분명히 비밀 성소였다.[36]

버섯 가설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그림은 "타실리 버섯 인물 마탈렘-아마자르"인데, 묘사된 주술사의 몸이 버섯으로 덮여 있다. 얼 린의 저서 ''신들의 몸에서: 정신활성 식물과 죽은 자들의 숭배''(2012)에 따르면, 이 이미지는 "버섯 주술사"가 옷을 입은 채 매장되었고, 얼마 후 발굴되었을 때 작은 버섯이 옷에서 자라고 있었던 고대 사건을 가리킨다. 얼 린은 타실리의 버섯 그림을 상당히 사실적인 것으로 여겼다.[38]

''버섯'' 저널의 필자인 브라이언 에이커스에 따르면, 타실리의 균류 암각화는 셀바 파스쿠알라 동굴(2015)의 ''Psilocybe hispanica'' 묘사와 유사하지 않으며, 그는 그것을 사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39]

4. 1. 1. 고대 시대

타실리나제르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과 고고학적 유적으로 유명하다. 바위그림에는 소 떼, 악어 등 큰 동물, 수렵과 춤을 추는 사람들의 활동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타실리나제르 유적지는 주로 신석기 시대 이동 목축민 집단이 점유했다. 이 지역의 지리, 고도, 천연자원은 소규모 집단의 건기 야영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산맥 내 와디(wadi)는 암석 고지대와 사구 저지대 사이의 통로 역할을 했다. 고지대에서는 기원전 5500년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 저지대에서는 기원전 6000년부터 기원전 4000년까지 돌무덤(Tumulus)과 화덕이 발견되었다. 저지대는 특히 우기에 거주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16] 사암 숲에는 수많은 바위그늘이 있으며, 도자기 항아리와 파편, 석재 화살촉, 그릇, 갈돌, 구슬, 장신구 등 신석기 시대 유물이 흩어져 있다.[3]

초기 홀로세(Holocene) 아프리카 습윤기(African Humid period) 이후 목축으로의 전환은 타실리나제르의 고고학적 기록, 암각화, 동물 고고학에 반영되어 있다. 타실리의 점유는 사하라 중부 지역 내 더 큰 이동과 기후 변화의 일부이다. 사하라 중부 지역에서는 기원전 14,000년경부터 고기후 및 고환경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후 좁은 생태적 틈새를 만든 건조한 시대가 이어졌다.[17] 기후는 일정하지 않았고, 사하라는 건조한 저지대와 습윤한 고지대로 나뉘었다. 고고학적 발굴은 기원전 10,000년부터 기원전 7500년까지 수렵 채집 집단 형태의 인간 점유가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기원전 7500년 이후, 인간은 예측 불가능해지는 기후에 대응하여 목축 집단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18] 타실리에서는 기원전 7900년에서 기원전 7200년 사이에 건조한 시기가 있었는데,[19] 이는 최초의 목축 집단이 출현하기 전이었으며, 사하라-사헬 지대의 다른 지역과 일치한다.[20] 타실리에서 발굴된 목축 이전의 토기는 기원전 9000~8500년경, 목축 관련 토기는 기원전 7100~6000년경의 것이다.[21]

타실리의 암각화는 모리타니아의 다르 티치트(Dhar Tichitt) 등 다른 유적지와 함께[22] 북아프리카의 축산업 발달과 사하라 횡단 여행을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기원전 3000~2000년경부터 광대한 지역에 걸쳐 가축이 사육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 목축의 기원과 확산을 반영한다. 이후 기원전 1000년 이전에 말이, 다음 천년기에 낙타가 등장했다.[23] 낙타의 등장은 사하라 횡단 무역의 발전을 반영하는데, 낙타는 주로 무역 대상 운송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타실리나제르의 암석 지대는 수많은 선사 시대 벽화 예술 작품으로 유명한 고고학 유적지로, 1910년 처음 보고되었다.[4] 이 작품들은 사하라 사막이 현재의 사막이 아닌 거주 가능한 사바나였던 최종 빙하기 말기 신석기 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가장 오래된 작품은 1만 2천 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24][25] 관련 퇴적물의 광자극 루미네선스(OSL) 연대 측정에 따르면 대부분은 기원전 9천년기와 1만년기 또는 그 이후의 것이다.[26] 이 작품들은 말라 떨어져 묻힌 채색 패널의 작은 조각들을 수집하여 연대를 측정하였다.[27]

지금까지 확인된 1만 5천 점의 조각 그림에는 영양, 악어와 같은 큰 야생 동물, 가축 무리, 사냥과 춤과 같은 활동을 하는 인간 등이 묘사되어 있다.[9] 이 그림들은 중앙 사하라 예술가들의 초기 작품 중 일부이며, 타실리에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난다.[17] 알제리가 이베리아 반도와 비교적 가까이 있지만, 타실리나제르의 암석 예술은 유럽 전통과는 별개로 발전했다.[28] 유네스코에 따르면, "그림과 조각의 예외적인 밀도...는 타실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29]

타실리나제르의 예술 양식은 다른 사하라 지역의 암석 예술 유적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시대시기특징
고대기원전 1만 년~7500년주로 조각. 사냥꾼 수렵 채집인들이 제작. 큰 동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 기하학적 무늬와 인물. 인간과 동물은 주로 사냥 장면에 묘사.
원형 머리 시대기원전 7550년~5050년주로 그림.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노출된 암벽화 중 일부 포함. 둥글고 특징 없는 머리와 형태 없는 몸을 가진 떠 있는 듯한 인물. 의례, 제의, 의식의 중심지였음을 시사. 무플론과 영양 묘사, 대개 사냥 장면이 아닌 정적인 자세.
소과/목축 시대기원전 4500년~4000년사하라 사막에 가축 도입, 이동 목축 확산. 소, 양, 염소, 개와 같은 가축 묘사. 다양한 목축민 공동체, 활을 사용하는 사냥꾼, 여성과 어린이들을 보여주며, 재산에 기반한 사회 계층화 증가 시사.
기원전 2000년~서기 50년사하라 사막의 완전한 사막화, 새로운 이동 수단 필요. 말, 마차, 기수 묘사. 전쟁보다는 사냥과 관련. 선조 베르베르인들이 사용했던 리비아-베르베르 문자가 그림 옆에 나타나지만, 완전 해독 불가.
낙타기원전 1000년 이후당나귀와 소를 대체한 낙타 등장. 장거리 무역로 발달. 방패, 창, 칼을 든 기마와 보병 등장. 소와 염소를 포함한 동물, 야생 동물은 투박하게 묘사.



이러한 시대 구분은 연속적이지만, 시간 틀은 유동적이며 기술과 해석 발전에 따라 고고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재구성되고 있다. 예술 작품의 연대는 고고학자들이 암벽에서 떨어진 파편과 잔해를 수집하여 측정하였다.[32]

학술 저술에서 흔히 언급되는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원형 머리 시대의 "달리는 뿔 달린 여인" 또는 "뿔 달린 여신"이 있다.[33] 이 그림은 뿔 달린 여성 인물을 묘사하며, 몸통과 사지에 점 장식, 프린지 장식이 달린 팔찌, 치마, 다리띠, 발찌를 착용하고 있다. 아리시카 라작에 따르면, 타실리의 뿔 달린 여신은 "아프리카 신성한 여성"의 초기 사례이다.[33] 그녀의 여성성, 다산, 자연과의 연결이 강조되며, 신석기 시대 예술가는 더 작고 오래된 인물 위에 이 인물을 겹쳐 그렸다. 수소의 뿔 사용은 후기 원형 머리 그림에서 흔한 주제이며, 사하라 일상생활에 가축이 꾸준히 통합된 것을 반영한다. 특히 수소의 가축 이미지[34]는 타실리뿐만 아니라 리비아 인근 유적지에서도 중심적인 주제가 되었다.[35]

타실리나제르 산맥은 선사 시대의 암각화군과 다른 고고학적 경관으로도 유명하다. 신석기 시대에 이 일대는 사막이 아니고 사바나로 풍요로웠다.[43] 암각화에는 소 떼, 악어 등의 대형 생물, 사냥이나 무용과 같은 사람들의 활동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양식은 '칭기즈족 이전의 남아프리카 미술'(pre-Nguni art)이나, 서기 1200년 이전에 산족에 의해 그려진 동굴 벽화 등과도 유사성을 갖는다.

4. 1. 2. 원형 머리 시대

타실리나제르의 원형 머리 시대는 특정한 양식적 특징을 가진 인간 형상을 묘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냥꾼 수렵 채집인들이 두 시대 모두에 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전통과는 명확히 구분된다.[30] 이 시대의 예술은 주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노출된 암벽화 중 일부를 포함한다. 한 인물은 5미터가 넘고 다른 인물은 3.5미터에 이른다. 둥글고 특징 없는 머리와 형태 없는 몸을 가진 떠 있는 듯한 인물의 독특한 묘사 때문에 "원형 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그림과 모티프는 고원의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이 장소들이 의례, 제의, 의식의 중심지였음을 시사한다.[12] 묘사된 동물은 대부분 무플론과 영양이며, 대개 사냥 장면의 일부가 아닌 정적인 자세로 나타난다.

학계에서 흔히 언급되는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원형 머리 시대의 "달리는 뿔 달린 여인" 또는 "뿔 달린 여신"이 있다.[33] 이 그림은 뿔이 달린 여성 인물이 보폭을 걷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몸통과 사지에는 점들이 장식되어 있고, 프린지 장식이 달린 팔찌, 치마, 다리띠, 발찌를 착용하고 있다. 아리시카 라작에 따르면, 타실리의 뿔 달린 여신은 "아프리카 신성한 여성"의 초기 사례이다.[33] 그녀의 여성성, 다산, 자연과의 연결이 강조되며, 신석기 시대 예술가는 더 작고 오래된 인물 위에 이 인물을 겹쳐 그렸다. 수소의 뿔을 사용하는 것은 후기 원형 머리 그림에서 흔한 주제이며, 이는 사하라 일상생활에 가축이 꾸준히 통합된 것을 반영한다. 특히 수소의 가축 이미지[34]는 타실리뿐만 아니라 리비아의 인근 유적지에서도 중심적인 주제가 되었다.[35]

4. 1. 3. 소과/목축 시대

타실리나제르의 암각화는 북아프리카의 축산업 발달과 사하라 횡단 여행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기원전 3000~2000년경부터 광대한 지역에 걸쳐 가축이 사육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 목축의 기원과 확산을 반영한다. 기원전 1000년 이전에는 말이, 그 이후 천년기에는 낙타가 등장했다.[23] 낙타의 등장은 사하라 횡단 무역의 발전을 보여주는데, 낙타는 주로 무역 대상 운송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타실리나제르의 암석 지대는 수많은 선사 시대 벽화 예술 작품으로 유명하며, 1910년에 처음 보고되었다.[4] 이 작품들은 사하라 사막이 현재의 사막이 아닌 거주 가능한 사바나였던 최종 빙하기 말기 신석기 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오래된 작품은 1만 2천 년 전 것으로 추정되지만,[24][25] 대부분은 기원전 9천년기와 1만년기 또는 그 이후의 것이다.[26] 지금까지 확인된 1만 5천 점의 조각 그림에는 영양, 악어와 같은 큰 야생 동물, 가축 무리, 사냥과 춤과 같은 활동을 하는 인간 등이 묘사되어 있다.[9]

다른 사하라 지역의 암석 예술 유적과 마찬가지로, 타실리나제르의 예술 양식은 고대(기원전 1만 년~7500년), 원형 머리(기원전 7550년~5050년), 소과(기원전 4500년~4000년), 말(기원전 2000년~서기 50년), 낙타(기원전 1000년 이후) 등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소과/목축 시대는 사하라 사막에 가축이 도입되고 이동 목축이 점차 확산된 것과 일치한다. 목축 시대는 앞선 두 시대와 눈에 띄는 시각적 차이를 보이며, 사하라 사막의 건조화와 일치한다. 양식적 변화가 증가하여 이 지역 내 다양한 문화 집단의 이동을 시사한다. 소, 양, 염소, 개와 같은 가축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이 지역의 동물 고고학 기록과 일치한다. 이 장면들은 다양한 목축민 공동체, 활을 사용하는 사냥꾼, 여성과 어린이들을 보여주며, 재산에 기반한 사회 계층화의 증가를 시사한다.

학술 저술에서 흔히 언급되는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원형 머리 시대의 "달리는 뿔 달린 여인" 또는 "뿔 달린 여신"이 있다.[33] 이 그림은 뿔 달린 여성 인물이 보폭을 걷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몸통과 사지에 점들이 장식되어 있고, 프린지 장식이 달린 팔찌, 치마, 다리띠, 발찌를 착용하고 있다. 타실리의 뿔 달린 여신은 "아프리카 신성한 여성"의 초기 사례로 여겨진다.[33] 그녀의 여성성, 다산, 자연과의 연결이 강조되며, 신석기 시대 예술가는 더 작고 오래된 인물 위에 이 인물을 겹쳐 그렸다. 수소의 뿔을 사용하는 것은 후기 원형 머리 그림에서 흔한 주제이며, 이는 사하라 일상생활에 가축이 꾸준히 통합된 것을 반영한다.

4. 1. 4. 말 시대

타실리나제르의 암각화는 말, 마차, 기수를 묘사하고 있으며, 종종 전속력으로 달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전쟁보다는 사냥과 더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12] 그림 옆에는 선조 베르베르인들이 사용했던 리비아-베르베르 문자가 나타나지만, 이 글은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다.

4. 1. 5. 낙타 시대

타실리나제르의 암각화는 모리타니아의 다르 티치트(Dhar Tichitt) 등 다른 유적지와 함께[22] 북아프리카의 축산업 발달과 사하라 횡단 여행을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기원전 3000~2000년경부터 광대한 지역에 걸쳐 가축이 사육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 목축의 기원과 확산을 반영한다. 이후 기원전 1000년 이전에 이, 그리고 다음 천년기에 낙타가 등장했다.[23] 낙타의 등장은 사하라 횡단 무역의 발전을 반영하는데, 낙타는 주로 무역 대상의 운송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주요 교통 수단으로 당나귀를 대체한 낙타의 등장은[31]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소금, 상품, 노예를 운반하는 대상들이 이용하는 장거리 무역로의 발달과 일치한다. 방패, , 을 든 기마와 보병이 등장한다. 염소를 포함한 동물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야생 동물은 투박하게 묘사되어 있다.

4. 2. 균류 암각화 (논란)

1989년, 환각제 연구자인 조르조 사모리니(Giorgio Samorini)는 타실리 동굴의 균류와 유사한 그림들이 사하라가 푸른 땅이었을 때 고대 사하라 지역 주민들과 환각제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36]

테렌스 맥케나(Terence McKenna)는 1992년 저서 ''신들의 음식''에서 이 이론을 다시 사용했는데, 그는 유적지에 살았던 신석기 시대 문화가 종교 의식의 일부로 실로시빈 버섯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손에 버섯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는 사람들과 몸에서 버섯이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암각화를 인용했다.[37] 1950년대 후반에 타실리 동굴을 발견한 앙리 로트(Henri Lhote)는 이것들이 비밀 성소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36]

버섯 가설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그림은 "타실리 버섯 인물 마탈렘-아마자르"인데, 묘사된 주술사의 몸이 버섯으로 덮여 있다. 얼 린의 저서 ''신들의 몸에서: 정신활성 식물과 죽은 자들의 숭배''(2012)에 따르면, 이 이미지는 "버섯 주술사"가 옷을 입은 채 매장되었고, 얼마 후 발굴되었을 때 작은 버섯이 옷에서 자라고 있었던 고대 사건을 가리킨다. 얼 린은 타실리의 버섯 그림을 상당히 사실적인 것으로 여겼다.[38]

''버섯'' 저널의 필자인 브라이언 에이커스에 따르면, 타실리의 균류 암각화는 셀바 파스쿠알라 동굴(2015)의 ''Psilocybe hispanica'' 묘사와 유사하지 않으며, 그는 그것을 사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39]

5. 대중문화


  • 투아레그족 밴드 티나리웬의 2011년 음반 타실리는 이곳에서 녹음되었다.
  • 덥 음악 그룹 자이온 트레인의 1994년 음반 ''Natural Wonders of the World in Dub''에 타실리 평원을 소재로 한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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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웹사이트 Tassili-n-Ajjer https://www.britanni[...] britannica 2017-02-07
[5] 웹사이트 Tassili n'Ajjer National Park, Djanet https://web.archive.[...] Algeria.com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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