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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와라 사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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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20세기 일본의 시인으로, 구어체 자유시를 확립하여 일본 근대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86년 군마현 마에바시에서 태어나, 1917년 첫 시집 《달에게 짖다》를 통해 근대인의 고독과 불안을 표현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푸른 고양이》, 《얼음 섬》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다양한 시적 시도를 보여주었고, 시론집 《시의 원리》를 통해 자유시의 내재율을 옹호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일본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시뿐만 아니라 시론, 평론, 수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일본 근대시의 중요한 인물로, 사후에는 하기와라 사쿠타로상이 제정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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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와라 사쿠타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하기와라 사쿠타로
하기와라 사쿠타로
이름하기와라 사쿠타로
로마자 표기Hagiwara Sakutarō
출생일1886년 11월 1일
출생지군마현 마에바시시
사망일1942년 5월 11일
사망지도쿄도 세타가야구 다이타
묘지쇼준지 (마에바시시)
직업시인, 작가
언어일본어
활동 기간1917년 - 1942년
영향 받은 인물기타하라 하쿠슈, 무로 사이세이, 오테 다쿠지
영향을 준 인물미요시 다쓰지, 미야자와 겐지, 니시와키 준자부로, 요시모토 다카아키, 미시마 유키오, 이토 노부키치
작품 활동
장르
수필
평론
소설
단가
주제적요, 고독, 권태, 우울, 공허
문학 경향상징주의
예술시파
아포리즘
구어 자유시
신비주의
주요 작품《달에게 짖는다》(1917년)
《우울한 고양이》(1923년)
《순정소곡집》(1925년)
《빙도》(1934년)
《고양이 마을》(1935년, 소설)
데뷔 작품《한밤의 인연》(1902년, 단가)
《길을 가다》(1913년, 시)
학력
모교게이오기주쿠 대학 예과 중퇴
가족 관계
배우자우에다 이네코 (1919년 결혼, 1929년 이혼)
오타니 미쓰코 (1938년 결혼, 1940년 이혼)
자녀2녀 (장녀: 하기와라 요코)
수상
수상 내역제8회 문학계상(1936년)
제4회 도게 문학상(1940년)

2. 생애

1886년 군마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문학잡지 '명성'에 단가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하여 1913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했다.

이후 도쿄와 고향을 오가며 시작에 전념하여 1917년 첫 시집 ≪달 보고 짖는다≫를 간행했다. 이 시집에서 근대인들의 고독감과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로 섬세하게 표현하여 다카무라 고타로와 함께 '일본 근대시의 완성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1923년 두 번째 시집 ≪우울한 고양이≫를 출판했다. 이 시집에서는 우울함, 무료함, 권태로움을 '우울한 고양이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시 형식으로 표현했다. 쇼펜하우어,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염세적 허무 의식과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시상이 주를 이루었다. 1925년 발간한 ≪순정 소곡집≫은 '애련(愛憐) 시편'과 '향토망경(鄕土望景)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에는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이, 후자에는 도쿄에서 바라본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과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1934년 마지막 시집 ≪얼음 섬≫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영원한 방랑자로서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적요와 격정'을 담은 '절규'를 비분강개의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했다. 그 밖에 아포리즘집 ≪새로운 욕망≫(1922년), 시론집 ≪시의 원리≫(1928년), 수필집 ≪일본으로 회귀≫(1938년), 산문시집 ≪숙명≫(1939년) 등이 있다.

사쿠타로는 시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1928년 간행된 ≪시의 원리≫는 그의 시론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민중시파'가 평이한 시를 추구하여 시가 산문처럼 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자유시는 '내재율'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2. 1. 탄생과 학창 시절

1886년 11월 1일, 군마현 마에바시 시에서 개업의였던 아버지 밋쿠라와 어머니 케이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인 사쿠타로는 장남이자 음력 초하루(朔日, ついたち)에 태어났기 때문에 지어졌다.[6] 1893년 군마현 사범학교 부속소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부터 신경질적이고 허약하여 "학교에서는 나 혼자만 따돌림을 당하고, 항상 주위로부터 차가운 적의를 가지고 미움을 받고 있다."[6]라고 말하며 고독을 좋아하여 혼자서 하모니카아코디언 등을 즐겼다.

사범학교 부속소학교 고등과를 졸업한 후, 1900년 구제 현립 마에바시 중학교(현 군마현립 마에바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기 사촌 형 하기와라 에이지에게 단가를 배웠고, 교우회지에 '한밤의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단가 5수를 발표했다. 재학 중 급우들과 '야모리'라는 순회 잡지를 만들어 단가를 발표했는데, 마치다 요시아키도 참여하여 교류를 깊게 했다. 요사노 아키코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1903년 요사노 텟칸이 주재하는 『묘죠』에 단가 3수가 게재되었고, 이시카와 타쿠보쿠 등과 함께 "신시샤"의 동인이 되었다.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섰지만, 교외 들판에서 잠을 자거나 숲 속을 돌아다녔고, 수업 시간에는 항상 창밖을 바라보았다.[7] 결국 중학교에서 유급했다.

1907년 9월, 제5고등학교 제1부 을류(영어문과)에 1년 만에 입학했지만,[8] 이듬해 7월 유급했다. 1908년 9월, 제6고등학교 제1부 병류(독일어문과)로 전학했으나, 시험을 보지 않아 교사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어 이듬해 7월 유급했다. 1910년 6고에 재적을 유지하면서 게이오기주쿠 대학부 예과 수료반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중퇴했다. 같은 해 여름 장티푸스에 걸려 귀향하여 5월, 6고를 중퇴했다. 이듬해 게이오 예과에 재입학하여 히루마 켄파치에게 만돌린을 배우고 음악회나 오페라를 즐겼지만, 정신적 고뇌에 시달려 11월에 게이오 예과를 중퇴했다. 게이오 대학 입퇴학이 반복된 것은 구제 제6고등학교 교수가 사쿠타로의 아버지 밋쿠라에게 "사쿠타로의 학업에 장래의 희망이 없다"고 충고했기 때문이다.[9]

2. 2. 시인으로서의 출발

1913년, 北原白秋(키타하라 하쿠슈)의 잡지 『주란(朱欒)』에 「미치유키(みちゆき)」 등 5편의 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여기서 室生犀星(무로오 사이세이)를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10] 1914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山村暮鳥(야마무라 보쵸) 등과 함께 人魚詩社(인어시사)를 설립하고, 1915년에는 시 전문지 『卓上噴水』(탁상분수)를 창간했다.[11]

1916년에는 무로오 사이세이와 함께 2인 잡지 『감정(感情)』을 창간했다.[10] 1917년, 32세에 첫 시집 『달에게 짖다(月に吠える)』를 자비 출판하여 森鷗外(모리 오가이)의 극찬을 받는 등[12] 시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19년, 우에다 이나코와 결혼했다.[3] 같은 해, 시인 단체 "詩話会"(시화회) 위원이 되고, 기관지 『日本詩人』(일본시인) 창간과 함께 아포리즘풍의 글을 처음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2년에는 아포리즘집 『신しき 욕정(新しき欲情)』을 간행했다.

2. 3. 재혼과 문학 활동

1923년(다이쇼 12년) 1월 26일 시집 『청묘(青猫)』를 간행하고, 7월에는 『나비를 꿈꾸다(蝶を夢む)』를 간행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방문했다. 1925년(다이쇼 14년)에는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상경하여, 도쿄부 에하라군 오이정(현 시나가와구) 및 기타토요시마군 다키노가와정 다바타(현 기타구)로 이사하여, 이웃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무로 세이세이와 자주 교류했다. 8월에는 『순정소곡집(純情小曲集)』을 간행했다.

1928년(쇼와 3년) 2월에는 『시론과 감상(詩論と感想)』을, 12월에는 『시의 원리(詩の原理)』를 간행했다.

1929년(쇼와 4년) 7월 가정 파탄으로 두 딸을 데리고 마에바시의 친가로 돌아가, 이혼과 가정 붕괴의 고뇌로 생활이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1931년(쇼와 6년) 5월에는 만엽집에서 신고금집에 이르는 와카 437수의 해설을 중심으로 한 『연애명가집(恋愛名歌集)』을 간행했다. 1933년(쇼와 8년) 세타가야구 다이타 1정목에 직접 설계한 자택을 신축하여 입주했다. 개인 잡지 『생리(生理)』를 발간했다.

2. 4. 일본주의로의 변모와 죽음

1934년(쇼와 9년)에 시집 『얼음 섬』을 간행했다.[4] 같은 해 7월 메이지대학 문예과 강사가 되어 시 강의를 담당했다. 1935년(쇼와 10년) 『순정시론(純正詩論)』, 『절망의 도주(絶望の逃走)』, 『고양이 마을』을 간행했다.[4] 이토 시즈오(伊東静雄)의 출판 기념회를 개최했다. 1936년(쇼와 11년) 『향수의 시인 요사 부손』, 수필 평론집 『복도와 방(廊下と室房)』을 간행했다.[4] 잡지 『문학계(文学界)』에 연재한 「시단시평(詩壇時評)」으로 제8회 문학계 상을 수상했다.[4] 10월에 「시가 곤와회(詩歌懇和会)」 임원이 된다.

1937년(쇼와 12년) 죠모 신문(上毛新聞) 주재 「하기와라 사쿠타로 환영좌담회」에 참석하고 귀향한다. 『시인의 사명(詩人の使命)』, 『무로부터의 항쟁(無からの抗争)』을 간행했다.[4] 「스토야회(透谷会)」 창립 발기인이 되고, 「스토야 문학상(透谷文学賞)」 심사위원이 된다. 1938년(쇼와 13년) 「신일본문화의회(新日本文化の会)」 기관지 『신일본(新日本)』을 창간했다. 『일본으로의 귀환(日本への回帰)』을 발표하여 일본주의(日本主義)를 주장하며, 국수주의자(国粋主義者)로 비판받는다.[4] 4월, 오타니 미츠코와 결혼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1939년(쇼와 14년) 파논의회(パノンの会)를 결성했다. 『숙명(宿命)』을 간행했다.[4] 1940년(쇼와 15년) 『귀향자(帰郷者)』(제4회 스토야 문학상 수상), 『항구에서(港にて)』, 『아대(阿帯)』를 간행한다.[4] 1942년(쇼와 17년) 메이지대학 강사직을 사임한다. 같은 해 5월 11일 급성 폐렴(肺炎)으로 55세로 사망한다.[4] 묘소는 마에바시시 세이준지(政淳寺).[4] 법명은 '''광영원석문소거사(光英院釈文昭居士)'''이다.[4]

3. 작품의 특징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구어 자유시를 확립하여 일본 근대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초기에는 현대인의 고독, 불안, 권태 등을 섬세한 감각으로 표현했다.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1917년에 발표한 달에게 짖는다와 1923년에 출판한 푸른 고양이가 있다. 달에게 짖는다에서는 근대인의 고독감과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로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2] 푸른 고양이에서는 우울함과 무료함, 권태로움을 ‘우울한 고양이 스타일’이라 불리는 독특한 시 형식으로 표현했으며, 쇼펜하우어,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염세적 허무 의식과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시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중기에는 단카에서 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을 노래하거나, 고향의 변화와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1925년에 발간한 ≪순정 소곡집≫은 ‘애련(愛憐) 시편’과 ‘향토망경(鄕土望景)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에는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과 영탄이, 후자에는 도쿄에서 바라본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과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후기에는 일본주의로 변모하여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규를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했다. 1934년에 출판된 마지막 시집 ≪얼음 섬≫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영원한 방랑자로서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적요(寂寥)와 격정’을 담은 ‘절규’를 비분강개의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시론, 평론, 수필,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아포리즘을 모은 책 ≪새로운 욕망≫(1922), 시론집 ≪시의 원리≫(1928), 수필집 ≪일본으로 회귀≫(1938), 산문시집 ≪숙명≫(1939) 등이 있다.

4. 사상

초기에는 서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근대적인 자아의 고뇌, 불안, 허무 등을 노래했다. 쇼펜하우어, 니체의 철학, 불교 사상 등에 심취하여 염세주의적인 경향을 보였다.[2] 상징주의 시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리듬감 있고 음악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다. 중기 이후에는 일본 전통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며, 일본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사쿠타로는 자유시가 시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시론을 발표했다. 1920년대는 '민중시파'가 맹위를 떨치던 때로, 그들은 평이한 일상어로 시를 쓰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시의 대중화는 이루어졌지만, 시가 단순히 행을 구별한 산문과 비슷하게 되어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사쿠타로는 이러한 '행을 구별한 산문'이 시로 인정받는 것에 우려와 불만을 느껴, 리듬이나 운율이 없는 산문시는 시가 아니며 자유시와는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다. 그는 자유시에 '내재율'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로서는 중요한 이론적 설명이었다.[18]

5. 영향

무로오 사이세이, 미요시 타츠지 등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구어 자유시의 선구자로서 일본 근대시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후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2] 1913년,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기타하라 하쿠슈가 편집한 잡지 '잠보아'에 자신의 시 5편을 발표했다. 그는 또한 마에다 유구레의 '시이카'와 하쿠슈가 창간한 또 다른 잡지 '치죠 준레이'에도 시를 기고했다. 이듬해, 그는 무로오 사이세이와 기독교 목사 야마무라 보초와 함께 음악, 시, 종교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닌교 시샤'를 결성했다. 세 작가는 자신의 문예지인 '타쿠죠 훈스이'를 만들어 1915년에 초판을 발행했다.[2]

1915년, 지속적인 건강 악화와 알코올 중독으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지만, 1916년 무로오 사이세이와 함께 문예지 '칸죠'를 공동 창간했다. 이 잡지는 그가 개발 중이던 일본 현대시의 "새로운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당시 다른 문예지에 실린 지적인 전통적인 형식의 시들과는 대조적이었다. 1917년, 기타하라 하쿠슈의 서문을 붙인 그의 첫 번째 자유시집 《달에게 짖다》를 출판하여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2]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하기와라 사쿠타로상이 제정되어 현대시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고 연구되고 있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여러 작품들이다.

작품명비고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주인공 이름은 하기와라 사쿠타로에서 따왔다.
영화『게드전기』 삽입곡 「테루의 노래」미야자키 고로 감독이 작사하고, 타니야마 코우코가 작곡했으며,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시 「마음(こころ)」에서 영감을 얻었다.
키요이에 유키코『달에게 짖을 수 없어』월간 애프터눈 2013~2019년에 연재되었으며,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작품에서 받은 인상을 캐릭터화한 "삭군(朔くん)"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천상의 꽃(天上の花)』2022년 공개 영화로, 원작은 하기와라 요코의 『천상의 꽃 미요시 타츠지 초(天上の花 三好達治抄)』(신초사, 1966년)이다. 후키코시 만이 하기와라 역을,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미요시 타츠지 역을, 이리야마 호우코가 여동생 하기와라 케이코 역을 연기했다.
우노 치요『살아가는 나』우노 치요의 자전 소설이다. 1984년 MBS・TBS 계열에서 방송된 드라마판에서는 스가 칸타로가 하기와라 사쿠타로를 연기했다.


6.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아버지하기와라 밋쿠라개업의
어머니케이
아내우에다 이나코1919년 결혼, 1929년 이혼[3][4]
아내오타니 미츠코1938년 결혼, 혼인신고는 하지 않음
장녀하기와라 요코작가
차녀아키라코
손자하기와라 사쿠미연출가, 하기와라 요코의 아들
여동생아이시인 사토 소우노스케의 아내


7. 작품 목록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시, 아포리즘집, 수필, 소설, 시가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月に吠える|달 보고 짖는다일본어, 青猫|우울한 고양이일본어, 氷島|얼음 섬일본어 등이 있으며, 아포리즘집 新しき欲情|새로운 욕망일본어, 수필집 日本への回帰|일본으로 회귀일본어, 소설 猫町|고양이 마을일본어, 시론집 詩の原理|시의 원리일본어 등이 있다.

7. 1. 시집

제목출판년도설명
月に吠える|달 보고 짖는다일본어1917년다카무라 고타로와 함께 일본 근대시의 완성자로 평가받게 한 처녀 시집. 근대인의 고독,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로 섬세하게 표현. 기타하라 하쿠슈의 서문을 붙여 출판되었으며,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2] 니체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실존적 불안을 다룬 암울한 분위기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蝶を夢む|나비를 꿈꾸다일본어1923년
青猫|우울한 고양이일본어1923년우울한 고양이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시 형식으로 우울함, 무료함, 권태로움을 표현. 쇼펜하우어,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염세적 허무 의식과 관능적, 퇴폐적 시상이 주를 이룸.[2] 시집 제목의 (푸를 청)은 영어 blue의 의미로, 희망이 없는, 우울한, 피로한 등의 뜻을 담고 있으며, 도시 하늘의 파란 전기 스파크를 큰 고양이 이미지로 보아 도시에 대한 향수를 표현.
純情小曲集|순정 소곡집일본어1925년단가에서 시로 옮길 때의 작품인 애련(愛憐) 시편과 30대 후반의 향토망경(鄕土望景) 시편으로 구성.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과 영탄, 도쿄에서 바라본 고향의 변화와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를 표출.
萩原朔太郎詩集|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일본어1928년
氷島|얼음 섬일본어1934년고향을 상실한 영원한 방랑자로서 사회에 대한 분노, 증오, 적요, 격정을 담은 절규를 비분강개한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 자유시와 구어체 대신 전통적 구조와 현실적 내용으로 회귀.
定本 青猫|정본 우울한 고양이일본어1936년
宿命|숙명일본어1939년소겐샤에서 출판.


선집


  • 萩原朔太郎詩集|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일본어, 미요시 다치 선, 이와나미문고, 1952년, 개정판 1981년
  • 萩原朔太郎詩集|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일본어, 이토 신키치 편, 야요이서방, 1963년 / 각카와문고, 1956년
  • 萩原朔太郎詩集|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일본어, 가와카미 뎃타로 편, 신초문고, 개정판 2004년
  • 萩原朔太郎詩集|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일본어, 사조사 현대시문고, 1975년
  • 萩原朔太郎 近代の詩人7|하기와라 사쿠타로 근대의 시인 7일본어, 나카무라 신이치로 편·해설, 시오출판사, 1991년
  • 青猫 萩原朔太郎詩集|푸른 고양이 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일본어, 아게 쿠후사 해설, 슈에이샤문고, 1993년
  • 月に吠える 萩原朔太郎詩集|달을 향해 짖다 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일본어, 각카와문고, 개정판 1999년
  • 萩原朔太郎詩集|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일본어, 하루키문고·각카와 하루키 사무소, 1999년

7. 2. 아포리즘집

新しき欲情일본어 (알스, 1922)

虚妄の正義일본어 (제일서방, 1929, 고단샤 문예문고에서 재판)

絶望の逃走일본어 (제일서방, 1935)

港にて일본어 (소겐샤, 1940)

7. 3. 수필 및 소설


  • 日本への回帰일본어: 1938년에 출판된 수필집이다.
  • 宿命일본어: 1939년에 출판된 산문시집이다.
  • 猫町일본어: 1935년에 출판된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유일한 소설이다.
  • 廊下と室房일본어: 1936년에 출판된 수필집이다.
  • 帰郷者일본어: 1940년에 출판된 수필집으로, 츄코문고(中公文庫)에서 재간되었다.
  • 阿帯일본어: 1940년에 출판된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수필집이다.

7. 4. 시가론

사쿠타로는 일본에서 드물게 시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습작기부터 초보적인 시론을 발표했으며, 이는 1928년 간행된 시론집 ≪시의 원리≫의 기초가 되었다.[2] 그는 시집마다 새로운 시 형태를 선보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 형태를 추구하고 나아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론을 구축하려 했다. 사쿠타로가 시론을 발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시집이 발간된 1920년대는 이른바 ‘민중시파’가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민중시파는 일반 서민 누구나 시를 이해하고 직접 쓸 수 있도록 아주 평이하고 간단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로 시를 쓰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시의 대중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시가 산문을 단순히 행만 구별한 것과 비슷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행을 구별한 산문’이 시로 인정받고, 이러한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사쿠타로는 깊은 우려와 불만을 가졌다. 그리하여 리듬이나 운율을 전혀 느낄 수 없이 단순히 행만 구별한 산문시는 시가 아니며, 자유시와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려 했다. 자유시는 운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을 뿐 ‘내재율’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자유시가 시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는 고전시 연구가이기도 했으며, ≪시의 원리≫(1928)를 출판했다.[2] 그의 비평 연구 ≪연애명가집≫(1931)은 일본 고전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며, ≪향수의 시인 요사 부손≫(1936)은 17세기 바쇼의 규칙으로 회귀를 주장한 하이쿠 시인 요사 부손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준다.[2]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시론 관련 저서는 다음과 같다.

제목출판사출판 연도비고
시의 원리제일서방(第一書房)1928년소겐선서(創元選書), 신초문고(新潮文庫)에서 재간
연애명가집제일서방(第一書房)1931년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에서 재간, 2022년
향수의 시인 요사 부손제일서방(第一書房)1936년신초문고(新潮文庫), 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에서 재간
쇼와시초도야마방(冨山房) 백과문고(百科文庫)1940년


8. 기타

만돌린기타 연주를 즐겼으며, 마에바시 시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군마현립 마에바시 고등학교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기타·만돌린 동아리가 있다. 하기와라 요코가 만돌린을 연주하고,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기타를 연주했다고 하며, 그의 연주는 감정이 넘쳤다고 한다.[16]

사진 촬영이 취미였으며, 특히 파노라마 사진을 좋아했다. 16세 때 첫 카메라를 구입한 후, 10년 만에 스테레오 카메라를 입수했으며, 쥘 리샤르의 벨라스코프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에바시 문학관에는 45×107mm 사진 건판이 전시되어 있다.[16]

추리 소설을 좋아했으며,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 특히 《인간 의자》를 칭찬했다. 1931년부터 에도가와 란포와 직접 교류하며 《파노라마 섬 기담》을 칭찬했다.[16]

20대부터 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아마추어 매지션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마술을 즐겼으며, 사후 서재 선반에서 마술 비밀이 담긴 상자가 발견되기도 했다.[16]

참조

[1] 간행물 Hagiwara Sakutarō's Fitzgerald https://www.enotes.c[...] 1973-06-01 # Summer issue assumed to be June
[2] 서적 Cat Town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14
[3] 서적 Face at the Bottom of the World and Other Poems https://books.google[...] Tuttle Publishing
[4] 서적 Rats' Nests: The Poetry of Hagiwara Sakutarō https://books.google[...] Unknown Publisher
[5] 웹사이트 コトバンク-伊藤信吉 https://kotobank.jp/[...]
[6] 문서 詩人全集 1966
[7] 문서 永遠の退屈
[8] 서적 やむを得ず早起き 小学館 2012
[9] 서적 現代文学大系〈第34〉萩原朔太郎,三好達治,西脇順三郎集 筑摩書房
[10] 문서 문화재
[11] 문서 詩人全集 1966
[12] 문서 詩人全集 1966
[13] 문서 쇼와 20년대 후반에 이토 신키치 등의 해설로 문고선집을 간행
[14] 웹사이트 「萩原朔太郎大全2022」を開催 ~萩原朔太郎没後80年記念事業~ https://www.atpress.[...] アットプレス 2022-06-08
[15] 웹사이트 苗穂駅に掲示されている、「フランスに行きたいが遠いので、せめて新しい背広に着替えて旅に出よう」というような内容の詩の作者とタイトルを特定したい。 https://crd.ndl.go.j[...] 2018-10-31
[16] 간행물 季刊クラシックカメラNo.5ツァイス
[17] 간행물 私の変態心理 1923-02-01 # Assumed to be February
[18] 간행물 質疑問答
[19] 서적 萩原朔太郎全集 第十一巻 筑摩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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