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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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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영섭은 GC녹십자의 사장 및 회장을 역임하며 필수의약품 국산화에 기여한 바이오제약 경영인이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아헨 공과대학교를 졸업했다.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및 회장을 역임하며 B형 간염 백신, 일본뇌염백신, 수두백신 등을 개발하고, 혈우병 환자를 위한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했다. 또한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하여 생명공학 연구 발전에 기여했으며, 은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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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허영섭
허영섭
이름허영섭
원어 이름許永燮
개인 정보
직업기업인

2. 학력

3. 주요 경력

연도경력
1970GC녹십자 입사
1980 ~ 2009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회장
1987 ~ 1994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 이사장
1991 ~ 1997한국생물산업협회 초대 이사장
1997 ~ 1999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2000한독상공회의소 이사
2001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2003제4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2007.05제3대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


4. 생애 및 업적

허영섭은 1964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으나,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1970년 귀국하여 선친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던 군수산업체인 극동제약(GC녹십자의 전신)에 입사했다. 공무부장, 관리부장, 기획실장을 거쳐 총무담당 상무, 전무이사를 역임한 후 1980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1]

이후 필수의약품 국산화와 사회 공헌에 힘썼으며, 2009년 68세로 타계했다. 그는 자신의 주식과 유산 3분의 2를 장학재단과 연구재단에 기부했으며, 동생 허동섭은 탤런트 길용우의 손윗동서이다.[1]

4. 1. 필수의약품 국산화

당시 많은 제약회사들은 해외 제약사의 약품을 복제해서 판매하는 데 주력했지만, 허영섭은 '만들기는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필수의약품을 개발'하여 국민 보건 증진에 기여하고자 특수의약품 분야를 개척해나갔다. GC녹십자는 1983년 12년 연구 끝에 B형 간염 백신인 <헤파박스> 개발에 성공했으며, 이는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였다.[1] 헤파박스로 인해 연간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B형 간염 환자들은 수입가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저렴한 값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한국의 B형 간염보균율은 13%에서 선진국 수준(2~3%)으로 떨어졌다.[1]

일본뇌염백신, DPT(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백신을 개발했으며, 국내 최초이자 세계 여섯 번째로 혈액제제 공장을 건설했다. 1988년 유행성 출혈열 백신 <한타박스>를 개발했고, 1993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두백신 개발에 성공했다.[1] 플라즈마네이트, 알부민 등 수입에 의존하던 필수 의약품을 국산화했으며, 고부가가치 의약품인 혈전 용해제 <유로키나제>를 개발하여 해외 수출도 본격화했다. 또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헌터증후군 치료제를 개발했으며, 최근 중국 희귀의약품전문기업에 그 기술을 수출했다.[1]

2009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계절독감백신을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공급했다. 인플루엔자 범유행(Pandemic)으로 인해 전세계가 패닉상태에 빠졌을 당시,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백신을 개발하고 적시에 공급하여 인플루엔자 진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 특히, 세계적인 백신 공급 부족으로 인해 국제 백신 가격이 치솟아 수출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우선 공급원칙을 지켜 국가 보건안보를 지켰다.[1]

4. 2.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과 국가 보건안보 기여

허영섭은 2009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계절독감백신을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공급하였다. 인플루엔자 범유행(Pandemic)으로 인해 전세계가 패닉상태에 빠졌을 당시,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백신을 개발하고 적시에 공급하여 인플루엔자 진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세계적인 백신 공급 부족으로 인해 국제 백신 가격이 치솟아 수출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우선 공급원칙을 지켜 국가 보건안보를 지켰다.[1]

4. 3. 사회 공헌

허영섭은 GC녹십자 회장으로 재직하며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힘썼다.

1984년 B형 간염백신으로 거둔 이윤을 바탕으로 목암생명과학연구소(목암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처의 승인을 받은 대한민국 최초의 순수 민간연구법인으로, 유전공학 등 첨단 생명기술을 활용하여 각종 질병 예방, 진단 및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1990년에는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혈우병 환자들의 관절 수술과 재활 치료를 지원하고, 경제적 부담을 줄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응고인자, 간염,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등에 대한 무료 검사를 통해 혈우병 예방에도 힘쓰고 있다.

2009년 타계한 후에는 자신의 주식과 유산 3분의 2를 장학재단과 연구재단에 기부했다.[1]

5. 상훈

연도상훈
1984년은탑산업훈장
1992년국민훈장 모란장
2000년인도네시아 정부 사트리아 바크티 수하다 카르티카상
2002년아헨 공대 명예 세너터[2]
2009년과학기술훈장 창조장


참조

[1] 뉴스 부음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2023-11-04
[2] 웹인용 허영섭 회장 명예 세너터로 https://www.joongang[...]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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