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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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종실록은 현종 시대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으로, 조선왕조실록의 일부이다. 1675년에 편찬이 시작되어 1677년에 완성되었으며, 총 22권 2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후 서인에 의해 내용의 문제점이 제기되어 《현종개수실록》이 편찬되었으나, 《현종실록》 역시 보존되었다. 현종실록은 낙동계자와 현종실록자를 사용하여 인쇄되었으며, 편찬 과정을 기록한 의궤가 존재한다. 현종 시대의 사실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역사 및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현종개수실록은 《현종실록》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재편찬한 실록으로, 경신환국 이후 서인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어 1683년에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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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 | |
---|---|
기본 정보 | |
![]() | |
휘 | 이연 (李棩) |
묘호 | 현종 (顯宗) |
시호 | 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 (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 |
능호 | 숭릉 (崇陵) |
재위 기간 | 1659년 ~ 1674년 |
출생 | 1641년 3월 14일 (음력 2월 4일) |
사망 | 1674년 9월 17일 (음력 8월 18일) |
부모 | 효종, 인선왕후 |
가족 관계 | |
왕후 | 명성왕후 |
후궁 | 숙종의 생모 명빈 박씨 |
자녀 | 슬하 1남 3녀 |
왕자 | 숙종 |
왕녀 | 3녀 |
기타 정보 | |
시대 | 조선 |
2. 현종실록
1659년(현종 즉위년) 음력 5월부터 1674년(현종 15년) 음력 8월까지 총 15년 3개월에 걸친 현종 시대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총 22권 2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를 이룬다. 정식 명칭 및 권두제는 《현종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실록》(顯宗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實錄)이며, 표지에는 《현종대왕실록》(顯宗大王實錄)으로 쓰여 있다.
1675년(숙종 1년) 음력 5월 춘추관의 건의로 편찬 작업이 시작되어[1] 1677년(숙종 3년) 음력 9월 11일에 완성되었다.[4]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남인 세력이 편찬을 주도하였으며, 총재관은 허적과 권대운이 맡았다.
훗날 서인들이 내용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현종개수실록》이 편찬되었으나, 《현종실록》 역시 폐기되지 않고 함께 보존되었다.[5]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이후 《조선왕조실록》 전체가 영인될 때 《현종실록》도 함께 영인본으로 간행되었다. 현재 《현종실록》은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이 전해지며, 정족산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소에, 태백산본은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구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되어 있다.[6][7][8]
2. 1. 편찬 과정
1675년(숙종 1년) 음력 5월 춘추관의 건의로 편찬 작업이 시작되었다.[1] 우선 3방(房)을 설치하여 춘추관 사관이 기록한 사초(史草)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당상관과 낭청들이 사초, 《승정원일기》, 《비변사일기》, 《의금부추안》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편년체 방식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실록 편찬 작업은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총재관에 허적과 권대운이 임명되는 등 남인들이 편찬을 주도했다. 그러나 실록청 관원들이 다른 직책을 겸직하는 등의 이유로 편찬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1677년(숙종 3년) 음력 2월, 실록청이 설치된 지 3년이 되도록 편찬이 절반도 완료되지 않자, 숙종이 직접 나서서 관련자들을 추궁하였다. 당시 숙종이 별감을 보내 실록청 상황을 알아보았을 때, 당상관과 낭청들 중 자리에 나와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기록도 있다.[2]
이러한 숙종의 독촉 이후 실록청의 당상관 및 낭청 인원이 보강되었고, 편찬 효율을 높이기 위한 묘사유파법(廟社儒罷法)[3]이라는 규정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작업 속도가 빨라져 같은 해 음력 5월에 초고가 완성되었고, 마침내 음력 9월 11일에 총 22권으로 이루어진 《현종대왕실록》이 완성되었다.[4]
총 편찬 인원은 66명이었으며, 주요 직책별 인원은 다음과 같다. 이들 편찬자 대부분은 남인이었다.
직책 | 인원 |
---|---|
총재관 | 2명 |
도청당상 | 6명 |
도청낭청 | 11명 |
3방 당상 및 낭청 | 47명 |
훗날 서인 세력이 실록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현종개수실록》이 새로 편찬되었으나, 기존의 《현종실록》 역시 폐기되지 않고 함께 보존되었다.[5]
2. 2. 특징 및 평가
《현종실록》의 인쇄에는 민간에서 빌려온 "낙동계자"[13] 35,830자와 새로 주조한 동활자 40,825자가 함께 사용되었다. 새로 만든 활자는 "현종실록자"라고 불린다. 민간에서 빌린 "낙동계자"는 "현종실록자"와 매우 유사하여 구분이 어려웠고, 결국 반환하지 못하는 대신 《전한서》와 《후한서》 각 1벌을 주고 교서관으로 이관하였다. "현종실록자"는 활자 주조 기술 자체는 뛰어나지 않았으나, 글자체가 매우 단아하고 획이 바르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 활자는 이후 여러 왕의 실록과 다른 서적들을 인쇄하는 데에도 널리 사용되었다.[14][15]또한, 1675년(숙종 1년)에는 《현종실록》의 편찬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의궤인 《현종대왕실록찬수청의궤》(顯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가 1책 81장 분량으로 간행되었다. 이 의궤는 초기에 태백산, 오대산 등의 사고에 보관되었으나,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16]
《현종실록》은 현종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국정 전반에 관한 사실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7]
3. 현종개수실록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은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로, 정식 명칭은 《현종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개수실록》(顯宗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改修實錄)이며 표지에는 《현종대왕개수실록》(顯宗大王改修實錄)으로 쓰여 있다. 총 28권 2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실록은 기존의 《현종실록》을 단순히 수정하거나 보완한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다시 편찬했기 때문에 "개수(改修)"라는 명칭이 붙었다.[5] 1680년(숙종 6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한 후, 기존에 남인 주도로 편찬된 《현종실록》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개수 작업이 시작되었다.[9] 자세한 편찬 과정과 내용은 하위 문단에서 다룬다.
3. 1. 편찬 과정
《현종실록》 편찬 당시에는 남인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었으며, 총재관 허적, 권대운 등 대부분 남인이 편찬을 주도했다. 그러나 1680년(숙종 6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인들은 기존 《현종실록》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던 김석주는 같은 해 음력 7월, 자신이 편찬했던 부분을 총재관 허적이 임의로 수정했으며, 빠른 완성을 위해 생략된 내용도 많다고 주장했다. 다른 신하들도 대체로 실록 개수에 동의하면서,[9] 결국 《현종실록》을 전면적으로 다시 편찬하는 작업이 결정되었다. 이처럼 일부 수정이 아닌 전면적인 재편찬이었기 때문에 "개수"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5]1681년(숙종 7년) 음력 5월, 실록 개수를 위한 책임자들이 임명되었다. 이때 총재관에는 김수항이, 당상에는 김석주, 이단하, 이민서, 김만중 등이 임명되었으며, 한성부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도청랑과 등록랑 각 8명씩을 두었다.[10] 본래 실록청을 설치하면 사초를 정리하는 3방(三房)을 두어야 하지만, 기존 《현종실록》 편찬 후 관련 사초를 모두 세초(洗草, 기록 말소 및 폐기)하였기 때문에 3방은 설치되지 않았다. 개수 작업은 1683년(숙종 9년) 음력 3월 11일에 완료되었다.[11] 총 편찬 인원은 다음과 같다.
직책 | 인원 |
---|---|
총재관 | 김수항 (1명) |
도청당상 | 6명 |
도청낭청 | 15명 |
등록낭청 | 53명 |
총계 | 75명 |
3. 2. 특징 및 평가
《현종개수실록》의 정식 명칭은 《현종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개수실록》(顯宗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改修實錄)이며, 표지에는 《현종대왕개수실록》(顯宗大王改修實錄)으로 쓰여 있다. 총 28권 29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일부이다. "개수"라는 명칭은 단순히 일부 내용을 수정하거나 추가한 것이 아니라, 실록 전체를 다시 편찬했기 때문에 붙여졌다.[5]현종 시대에는 주로 서인이 정권을 잡았으나, 《현종실록》 편찬은 총재관 허적, 권대운 등 남인들이 주도하였다. 이후 1680년(숙종 6년) 경신환국이 일어나 남인이 정치적으로 밀려나고 서인이 다시 등용되면서, 서인들은 남인이 편찬한 《현종실록》의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현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던 김석주는 같은 해 음력 7월, 자신이 편찬했던 부분을 총재관 허적이 임의로 수정했으며, 빠른 완성을 위해 많은 내용이 생략되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서인 신하들도 대체로 실록 개수에 동의하였고,[9] 결국 《현종개수실록》 편찬으로 이어졌다.
1681년(숙종 7년) 음력 5월, 실록 개수를 위한 담당자들이 임명되었다. 총재관에는 김수항이, 당상관으로는 김석주, 이단하, 이민서, 김만중 등이 임명되었다. 실록청은 한성부에 설치되었으며, 도청낭청과 등록낭청이 각각 8명씩 배치되었다.[10] 본래 실록청을 설치하면 사초 정리 작업을 담당하는 3방(房)을 두어야 하지만, 《현종실록》 편찬 후 관련 사초를 모두 세초(洗草)했기 때문에 3방은 설치되지 않았다. 《현종개수실록》은 1683년(숙종 9년) 음력 3월 11일에 완성되었다.[11]
직책 | 인원 |
---|---|
총재관 (김수항) | 1명 |
도청당상 | 6명 |
도청낭청 | 15명 |
등록낭청 | 53명 |
합계 | 75명 |
《현종개수실록》의 편찬 과정은 1680년(숙종 6년) 음력 7월에 간행된 《현종대왕실록개수청의궤》(顯宗大王實錄改修廳儀軌)에 기록되어 있다. 이 의궤는 총 1책 118장 분량으로, 원래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었으나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16]
《현종개수실록》은 기존 《현종실록》과 더불어 현종 시대의 사실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역사 및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12] 《현종개수실록》 역시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이후 영인본으로 간행되었다.[8][12]
참조
[1]
문헌
승정원일기 13책 (탈초본 247책) 숙종 1년 5월 18일 병자 17/21 기사
[2]
문헌
숙종실록 6권, 숙종 3년 2월 5일 임자 2번째기사
[3]
문서
묘사유파법. 오전 7시에 출근하여 오후 7시에 퇴근하는 것을 말한다.
[4]
문헌
숙종실록 6권, 숙종 3년 9월 11일 을유 1번째기사
[5]
뉴스
지우개를 쓰지 않는 역사
https://news.naver.c[...]
2016-05-21
[6]
백과사전
현종실록
https://terms.naver.[...]
[7]
백과사전
현종실록
https://terms.naver.[...]
[8]
서적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03-15
[9]
문헌
숙종실록 9권, 숙종 6년 7월 15일 임인 1번째기사
[10]
문헌
숙종실록 11권, 숙종 7년 5월 22일 갑술 6번째기사
[11]
문헌
숙종실록 14권, 숙종 9년 3월 11일 계축 1번째기사
[12]
백과사전
현종개수실록
https://terms.naver.[...]
[13]
웹사이트
洛東契字
http://navercast.nav[...]
[14]
백과사전
현종실록자
https://terms.naver.[...]
[15]
백과사전
현종실록자
https://terms.naver.[...]
[16]
웹사이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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