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운
1. 개요
권대운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642년 진사가 되고 1649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이 되었다. 이후 여러 청요직을 거쳐 승지에 이르렀으며, 평안도 관찰사, 대사간,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예송 논쟁과 갑인환국 이후 숙종 대에 예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보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좌의정으로 승진했으나 경신대출척으로 파직, 유배되었고, 기사환국으로 복귀하여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나 갑술환국으로 다시 파직되었다. 이후 무고의 옥으로 관작을 추탈당했다가 사후 복권되었다.
| 이름 | 권대운 |
|---|---|
| 원어명 | 權大運 |
| 출생일 | 1612년 |
| 사망일 | 1699년 (향년 88세) |
| 국적 | 조선 |
| 종교 | 유교(성리학) |
| 배우자 | 우씨 부인 |
|---|---|
| 자녀 | 권위(장남) 권규(차남) |
| 부모 | 권근중(부) |
| 친인척 | 권상(증조부) 권협(친조부) 이유혼(외조부) 우정(장인) 이덕주(사돈) 권중경(친손) |
| 학력 | 1649년 별시문과 을과 급제 |
|---|---|
| 경력 | 문신, 사상가, 작가, 시인, 학자, 정치가 |
| 정당 | 남인 잔존 후예 탁남 세력 |
|---|
| 군주 | 조선 숙종 이돈 |
|---|---|
| 임기 (우의정) | 1675년 2월 18일 ~ 1675년 6월 23일 |
| 직책 | 우의정 |
| 군주 (좌의정) | 조선 숙종 이돈 |
| 임기 (좌의정) | 1675년 6월 5일 ~ 1679년 6월 17일 |
| 직책 | 좌의정 |
| 군주 (영의정) | 조선 숙종 이돈 |
| 임기 (영의정) | 1689년 2월 10일 ~ 1694년 4월 1일 |
| 직책 | 영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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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남 -
심재
심재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좌의정 심희수의 후손이며, 문과 급제 후 여러 요직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 이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했으나 갑술환국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 -
탁남 -
허적
조선 중기 문신 허적은 예송논쟁의 남인 주요 논객이자 탁남 영수로, 영의정까지 올랐으나 당쟁과 정치적 음모로 처형 후 복권되었으며, 평안도 관찰사 시절 대동법 확대에 기여했으나 허목과의 갈등과 천막 남용 사건으로 몰락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
윤휴 -
경신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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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 -
권시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권시는 효종 때 공조좌랑으로 등용되어 승정원 승지, 한성부 우윤 등을 역임했으나, 상복 문제 당쟁으로 파직 후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고 사후 의정부 좌찬성으로 추증, 도산서원에 배향되었다. -
1612년 출생 -
오삼계
오삼계는 명나라 말 청나라 초의 무장으로, 명나라 멸망 후 청과 손잡고 이자성을 격파, 평서왕에 봉해졌으나 삼번의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인물로, 배신과 야망의 상징이자 진원원과의 러브스토리로도 알려져 있다. -
1612년 출생 -
미야모토 이오리
미야모토 이오리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사이자 미야모토 무사시의 양자로, 무사시 사후 오가사와라 다다자네를 섬기며 시마바라의 난에서 공을 세워 가문 내 최고위 가신으로 출세하고 후대에 그의 충성심과 능력을 기리는 일화와 무사시의 업적을 기리는 장덕비 건립으로 알려졌다.
2. 생애
1666년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대사간,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1670년 호조판서로 발탁된 후 형조판서, 도승지를 거쳐 우참찬이 되고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을 겸임하였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1642년 진사가 되고, 1649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이 되었다. 이후 지평, 헌납, 장령, 감찰, 이조정랑, 응교, 사간 등의 청요직을 거쳐 승지가 되었다. 그 뒤 형조참의, 병조참의, 예조참의와 좌승지를 거쳐 한성부우윤, 형조참판, 개성유수 등을 역임했다.
2.2. 예송 논쟁과 남인 옹호
1674년 2차 예송 논쟁으로 갑인환국이 단행되자 중앙으로 복귀하였다. 숙종이 즉위하자 예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송시열을 처형할 것을 주장한 허목, 윤휴에 반대하여 허적과 함께 탁남의 지도자가 되었다.
2.3. 숙종 대 정치 활동과 탁남 영수
1674년 갑인예송으로 갑인환국이 단행되자 중앙으로 복귀하였다. 숙종이 즉위하자 예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송시열을 처형할 것을 주장한 허목, 윤휴에 반대하여 허적과 함께 탁남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어 우의정으로 승진했다가 1680년(숙종 6년)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고 판중추부사로 좌천, 영일에 위리안치되었다. 1689년 남인이 집권하자 복귀하여 영중추부사를 거쳐 1690년 영의정이 되었다.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2.4. 경신대출척과 유배
1680년(숙종 6년) 좌의정으로 승진했으나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었다. 허목, 윤휴 등이 송시열을 처형할 것을 주장하는 것에 반대하여 허적과 함께 탁남의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판중추부사로 좌천되었고, 경상북도 영일에 위리안치되었다.
2.5. 기사환국과 복권, 영의정 임명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권대운은 복권되어 영중추부사를 거쳤다. 1690년 영의정에 임명되었고,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1694년 갑술환국으로 파직되어 절도에 안치되었다가 귀향하였다.
2.6. 갑술환국과 유배, 사망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면서, 권대운은 파직되었다. 이후 절도에 안치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1697년 복권되었으나, 1701년 무고의 옥으로 관작을 추탈당했다. 1795년 10월 남인 인사들이 복권될 때 함께 복권되었다.
2.7. 사후 복권과 평가
1697년 정조 대에 이르러 남인이 복권되면서 권대운도 복권되었으나,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관작을 추탈당했다. 1795년 10월 다시 복권되었다.
권대운은 조선 후기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침을 겪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허목, 윤휴 등 강경파에 맞서 허적과 함께 온건한 입장을 견지하며, 때로는 소신 있는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당쟁의 희생양이 되어 유배와 복권을 반복하는 불운한 삶을 살았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증조부 | 권상(權常) |
| 조부 | 권협(權悏) |
| 부친 | 권근중(權謹中) |
| 모친 | 이유혼(李幼渾)의 딸 |
| 배우자 | 단양 우씨 (우정(禹鼎)의 딸) |
| 장남 | 권위(權瑋) |
| 자부 | 이덕주의 딸 |
| 손자 | 권중경(權重經) |
| 차남 | 권규(權珪, 1648년 ~ 1722년) |
4. 권대운이 등장하는 작품
權大運중국어이 등장하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장희빈 (1995년, SBS): 이정웅이 권대운 역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