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육군은 독일 연방군의 육상 전력을 담당하는 군으로, 1955년 11월 12일 창설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독은 냉전 시기 NATO에 가입하여 군사력을 재건했으며, 공격용 무기 제한과 잠수함 크기 제한 등의 제약을 받았다. 현재는 2개의 기갑 사단, 1개의 신속대응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장비와 병과를 운용한다. 육군 감찰관의 지휘를 받으며, 육군사령부가 슈트라우스베르크에 위치하고 있다. 독일 육군의 계급은 NATO의 계급 구조를 따르며, 육군총감은 중장, 연방군 총감은 대장 계급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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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훈장
훈장 및 장식
2. 역사
1871년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통일로 현대적인 독일 육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통일 독일의 군대는 ''Deutsches Heer''(독일 육군)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어 단일한 지휘 체계 아래 조직되고 훈련받았다. 이 군대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고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해체되었다.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Reichsheer''(국가 육군, 1921-1935)로 명맥을 이었으며, 나치 독일 시대에는 ''Heer''(육군, 1935-1945)로 불렸다. 이 시기 육군(''Heer'')은 국방군의 일부였으나, 나치당의 전투 조직인 ''Waffen-SS''는 국방군과는 별개의 조직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1946년 8월 연합국에 의해 ''Heer''를 포함한 모든 독일 군사 조직은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독일 연방 공화국과 독일 민주 공화국으로 분단되었다. 냉전이 심화되면서 서독의 재무장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955년 11월 12일 서독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일원으로 새로운 육군, 즉 현재의 독일 육군(Heerde)을 창설했다.[6] 동독 역시 1956년 3월 1일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일원으로 Landstreitkräfte der NVA(국가인민군 육군)을 창설했다. 냉전 시대 동안 서독 육군은 NATO의 중앙 유럽 방어 계획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동독 육군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최전선 군대로 서독 육군과 대치했다. 이 시기 서독 육군은 핵무기나 탄도 미사일 같은 공격용 무기 보유가 금지되었고, 잠수함 크기도 제한되는 등 제약을 받았으나, NATO의 틀 안에서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발전시켰다. 특히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구조 개편(육군 구조 1~4)을 단행하며 기동성과 방어 능력을 강화했다.
1990년 독일 재통일로 동독 육군은 해체되고 일부 병력과 장비가 독일 육군에 통합되었다. 통일 이후 독일 육군은 대규모 병력 감축과 구조 개편을 겪었다. 냉전 시대의 대규모 지상전 대비 태세에서 벗어나, 변화된 안보 환경에 맞춰 해외 평화 유지 활동 및 위기 대응 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UN 및 NATO, EU 주도의 국제 평화 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대표적으로 발칸 반도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병력을 파견했다. 2011년에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완전한 직업군 체제로 전환하여 전문성과 신속 배치 능력을 더욱 강화했다. 현재 독일 육군은 감축된 병력 규모에도 불구하고 첨단 장비를 운용하며 NATO 및 EU의 집단 안보 체제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49년 서독 건국 이후, 국제 정세는 점차 냉전 구도로 재편되었다. 특히 1950년 동아시아에서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유럽의 최전선이었던 독일에서의 군사적 긴장감도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독의 재무장 필요성이 서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1950년 8월, 유럽 평의회는 서독의 참여를 전제로 한 유럽 방위 공동체(EDC) 창설을 논의했으나, 이는 프랑스 국민 의회의 비준 거부로 무산되었다.
비록 유럽 방위 공동체 구상은 좌절되었지만, 서독의 재무장 준비는 계속되었다. 1950년 10월,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서독 총리는 테오도어 블랑크를 '연합군 관련 문제 특별 담당'으로 임명했다. 이는 사실상 국방부의 전신 역할을 할 블랑크 기관(Amt Blank)의 설립으로 이어졌으며[3], 이곳에서 본격적인 재무장 계획이 수립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전직 국방군 고위 장교들은 히머로더 각서를 통해 서유럽 방어를 위한 독일군 파견 구상을 구체화했는데, 이 각서에서는 약 25만 명 규모의 육군 창설을 제안했다.[4] 블랑크 기관은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1954년 3월까지 6개의 보병 사단, 4개의 기갑 사단, 2개의 기계화보병 사단(기갑척탄병 사단)을 창설하여 서유럽 방위에 기여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4]
재무장을 위한 법적, 외교적 기반도 마련되었다. 1954년 2월 8일, 서독 분데스탁(연방의회)은 서유럽 방위에 대한 독일의 기여를 승인했으며[5], 같은 해 2월 26일에는 독일 연방 공화국 기본법을 개정하여 국가 방위에 관한 조항을 명시했다.[5] 유럽 방위 공동체 계획이 실패한 후 대안으로 추진된 런던 및 파리 회의(1954년 9월~10월)에서는 서독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가입과 재무장이 최종 결정되었고, 이는 1955년 5월 9일 공식 발효되었다.
NATO 가입 이후 블랑크 기관은 독일 연방 국방부로 정식 개편되었으며, 테오도어 블랑크가 초대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마침내 1955년 11월 12일, 안데르나흐에서 첫 병사들이 복무를 시작하며 새로운 독일 육군, 즉 연방군(Bundeswehr) 육군(Heerde)이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6] 신생 독일 육군은 스스로를 나치 독일의 국방군 계승자가 아닌, 19세기 초 프로이센 군사 개혁가들과 나치즘에 저항했던 군인들(7·20 사건 관련 장교 등)의 전통 위에 세워졌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군 창설을 위한 인력 부족 문제로 인해 초기 장교단의 상당수는 전직 국방군 출신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초대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된 한스 로티거 역시 전 국방군 기갑대장 출신이었다.
육군 창설 초기에는 조직의 기틀을 다지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1956년부터는 각지에 훈련 중대가 설치되고 장교 학교 및 육군 사관학교(함부르크 소재 연방군 지휘참모대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1957년 4월 1일에는 첫 징집병들이 입대했다. 초기 장비는 주로 M-47 패튼 전차와 같은 미국제 무기들로 구성되었다. 1960년 ''연방군''에서 운용된 M47 패튼 전차. 1957년에는 제1군단, 제2군단, 제3군단 등 3개의 군단 사령부가 창설되어 지휘 체계를 갖추었다. 또한 같은 해, NATO 지휘 체계와는 별도로 국가 지휘 하에 후방 지역 방어 및 예비 전력 관리를 담당하는 영토군(Territorialheer)을 지휘하는 '영토 방위청'이 설립되었다.[7]
'육군 구조 1' 계획에 따라 1959년까지 총 12개의 기갑 사단 및 보병 사단을 창설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실제 편제 완비는 1965년에야 이루어졌다. 1958년 말 기준으로 독일 육군의 병력은 약 20,200명 수준이었다. 한편, 동독에서는 1956년 3월 1일 국민인민군 육군(Landstreitkräfte der NVA)이 창설되어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일원으로 서독 육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2. 2. 냉전 시대 (1950년대 후반 ~ 1990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분단되어 독일 연방 공화국과 독일 민주 공화국으로 나뉘었고, 두 국가는 각각 군대를 창설했다. 서독은 NATO에, 동독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 가입하며 정식 군대 체제를 갖추었다. 동서냉전의 최전선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으나,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 같은 공격용 무기 보유는 금지되었고 잠수함 역시 냉전 종식 시점까지 배수량 500ton급으로 제한되었다 (이후 해제).[2]
1955년 11월 12일, 안데르나흐에서 첫 징집병들이 복무를 시작하며 서독 육군(Heerde)이 공식 창설되었다.[6] 이는 1946년 8월 연합국에 의해 해산된 국방군(Wehrmachtde)과는 다른 군대였다.[2] 1950년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하에 서방과의 관계가 강화되면서 유럽 방위 공동체 구상이 논의되었고, 전직 국방군 고위 장교들은 히머로더 각서를 통해 12개 기갑 사단과 6개 군단 참모부 중심의 25만 명 규모 군대 창설을 제안했다. 이는 수적으로 우세한 바르샤바 조약 기구 군대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4]
테오도어 블랑크가 이끄는 블랑크 관저(Amt Blankde)는 서독의 재무장을 준비했으며, 1954년에는 6개 보병 사단, 4개 기갑 사단, 2개 기계화 보병 사단 창설 계획을 수립했다.[3][4] 기본법 개정을 통해 국방 주권 조항이 삽입되었고,[5] 1955년 5월 9일 서독은 NATO에 가입했다. 블랑크 관저는 국방부로 승격되었고, 블랑크는 초대 국방장관이 되었다.
1960년대 훈련 중인 MG1 및 HK G3를 장비한 ''연방군'' 병사들. 배경에는 Schützenpanzer Kurz가 있다.
신생 육군은 패배한 국방군이 아닌, 프로이센 군사 개혁가들과 7·20 사건 같은 반나치 군사 저항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장교단 대부분은 전직 국방군 출신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으며, 초대 육군참모총장 한스 로티거 역시 히머로더 각서 작성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1956년부터 부대 창설과 학교 설립이 시작되었고, 1957년 4월 첫 징집병이 입대했다. 초기 군사 조직은 교육 대대, 장교 학교, 육군 사관학교 등이었다. 육군 구조 I (Heeresstruktur Ide) 하에 1959년까지 12개 기갑 및 보병 사단 창설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 완편은 1965년에 이루어졌다. 1958년 말 병력은 약 100,000명에 달했고, 초기 장비는 M-47 패튼 전차 등 미국제였다. 1957년부터 제1군단, 제2군단, 제3군단의 3개 군단 사령부가 창설되었다.
NATO 지휘 하의 야전군과 별도로, 국가 지휘 하에 후방 지역 방어를 담당하는 영토군(Territorialheerde)이 1957년 창설된 영토 방위청(이후 영토 방위 사령부) 아래 조직되었다. 영토군은 3개의 영토 사령부(Territorialkommandosde)와 최대 6개의 군관구 사령부(Wehrbereichskommandode, WBK)로 구성되었다.[7]
소련의 전술 핵무기 개발에 대응하여 육군 구조 II (Heeresstruktur IIde)가 도입되었다. 이는 핵 공격 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존의 대규모 사단을 더 작고 기동성 있는 여단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었다. 여단은 핵전장 환경에서 며칠간 자급자족하며 공수 전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새로운 기갑여단과 기계화여단(기갑척탄병여단)은 합동 교리 전투 수행 능력을 갖추었다.
기갑여단: 기갑척탄병 대대 1, 기갑 대대 2, 자주포 대대 1, 보급 대대 1
기계화여단: 보병 대대 1, 기계화보병 대대 2, 기갑 대대 1, 야전 포병 대대 1, 보급 대대 1
보병여단 (Jägerde): 보병 대대 3, 대전차 대대 1, 야전 포병 대대 1, 보급 대대 1
산악여단 (Gebirgsjägerde): 산악 대대 3, 산악 포병 대대 1, 보급 대대 1
1959년까지 육군은 4개 기갑, 4개 기계화(기갑척탄병), 2개 보병(예거), 1개 산악 사단 등 총 11개 사단 27개 여단으로 구성되었다. 1969년 육군 병력은 약 305,000명으로 증가했다. 이 시기 레오파르트 1 전차, 마르더 보병전투차(초기 Spz HS.30 장갑차 대체), M113 장갑차, UH-1 헬리콥터 등이 도입되었다.
1970년대 육군 구조 III (Heeresstruktur IIIde)은 NATO의 유연 대응 전략 채택과 소련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 배치에 대응하여 추진되었다. 1975년까지 36개 현역 여단 체제를 목표로 했으며, 제2 및 제4 기갑척탄병사단이 잠시 예거 사단으로 개편되기도 했다. 공수여단(Fallschirmjägerbrigadede)은 공중기동여단(Luftlandebrigadede)으로 명칭이 바뀌고 제3의 여단이 창설되었다.
1980/81년부터 시행된 육군 구조 IV (Heeresstruktur IVde)는 냉전기 독일 육군의 최종 형태로, 12개 사단(6개 기갑, 4개 기계화, 1개 공수, 1개 산악) 예하에 38개 현역 여단을 두었다.
제1군단은 NATO 북부군 집단에, 제2군단과 제3군단은 중부군 집단에 배속되었다.
제6 기계화 보병 사단은 연합군 발트해 접근로 사령부 소속이었다.
제1 공수 사단은 평시 제2군단 소속이었으나, 전시에는 3개 여단이 각 군단에 분산 배치될 예정이었다.[8]
여단 예하 전투 대대 수는 3개에서 4개로 증가했으며, 전차와 기계화보병이 혼합된 대대도 운용되었다. 기계화보병 대대 내 일부 중대는 마더 IFV 대신 M113 장갑차를 장비했다. 이 시기 M109 155mm 자주 곡사포, MLRS, 게파르트 자주 대공포 등이 배치되었다. 영토군은 12개 향토방위여단(Heimatschutzbrigadede, HSB)을 포함하여 유사시 45만 명까지 증강 가능했으며, 평시 약 85,000명 규모를 유지하며 미군 지원(Wartime Host Nation Support) 임무도 수행했다.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독일 육군은 동독 군대인 국민인민군(Nationale Volksarmeede, NVA)을 흡수했다. 구 동독군은 예르크 쇤보옴 중장이 지휘하는 연방군 동부 사령부 통제 하에 있다가 1991년 6월 30일 해체되었다.[9] 통합 직후 독일 육군은 포츠담의 제4군단을 포함한 4개 군단 체제에 병력 36만 명 규모였으나, 이후 지속적인 감축이 시작되었다.
2. 3. 냉전 이후 (1990년 ~ 현재)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독일 육군(독일어: Heerde)은 구 동독의 군대인 국민인민군(NVA)을 흡수했다. 초기에는 예르크 쇤보옴 중장이 지휘하는 연방군 동부 사령부의 통제 하에 있었으나, 1991년 6월 30일에 동독군은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9] 통일 직후 독일 육군은 4개 군단(구 동독 지역의 포츠담에 제4군단 포함)으로 구성되었으며, 병력은 36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변화된 안보 환경에 따라 병력은 지속적으로 감축되었다. 소비에트 연방과의 합의에 따라 1994년까지 평시 병력을 37만 명 이하로 유지하기로 했으며, 실제 목표는 25만 5천 명 수준이었다.
1990년대 동안 육군 구조는 여러 차례 개편되었다.
1994년: 제3군단이 해체되고 독일 육군 사령부로 개편되었다. 제1공수사단과 제4기갑척탄병사단이 통합되어 해외 위기 대응을 위한 코만도 공중 기동 부대/제4사단이 창설되었다. 지역군(Territorialheer)이 폐지되고 야전군(Feldheer)으로 통합되었다.
1995년: 제1군단이 해체되고 네덜란드군과 통합하여 제1 독일/네덜란드 군단이 창설되었다. 동독 지역을 담당하던 동부 지역 사령부/제4군단은 제4군단으로 개편되었다.
1997년: "신 임무를 위한 신 육군(''Neues Heer für neue Aufgaben'')" 계획에 따라 위기 대처 부대(Krisenreaktionskräfte, KRK)와 기간 방위 부대(Hauptverteidigungskräfte, HVK)로 전력을 분류하는 새로운 편제가 도입되었다.
2000년대에도 구조 개혁은 계속되었다.
2000년: 물류, CBRN 방어, 영토 방어, 군사 경찰 부대가 합동 지원 부대로, 의료 부대가 합동 의료 부대로 분리되었다.
2001년: 7개 사단(기계화 5, 특수 1, 공중강습 1) 구조로 전환하는 개혁이 시작되었다. "미래의 육군(2001-2006)" 및 "육군 2010(2006-2010)" 계획이 추진되었다.
2002년: 제4군단이 해체되고, 사령부 요원은 해외 파병 임무를 전담하는 연방군 출동 지휘 사령부로 흡수되었다. 육군 지원 사령부가 해산되고, 지원 기능은 육군 부대 집단과 항공기 기동 작전 사단 등으로 이관되었다.
2005년: 제2군단(1993년 제2 독일-미국 군단으로 개편)이 해산되었다. 병과 체계가 재편성되어 구축전차 부대가 해체되고 육군 정찰 부대가 창설되었다.
1993년 소말리아에서 UNOSOM II 임무 중인 제261 공수대대 소속 독일 육군 병사
2011년 7월 1일, 독일은 징병제를 중단하고[10] 완전한 직업군 체제로 전환했다. 이는 국제 테러와 같은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고, UN 및 EU 주도의 해외 파병 임무에 더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더 작고 유연하며 신속하게 배치 가능한 부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11] 이 개혁으로 육군은 3개 사단(제1기갑사단, 제10기갑사단, 신속대응사단) 중심의 구조로 재편되었다. 2022년 1월 기준, 독일 육군의 병력은 62,766명이다.[1]
현재 독일 육군은 육군 감찰관(''Inspekteur des Heeres'')의 지휘 아래 슈타르스베르크에 위치한 육군 사령부(''Kommando Heer'')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주요 전투 부대는 다음과 같다.
또한 독일 육군은 유로군단, 제1 (독일/네덜란드) 군단, 다국적 군단 북동부 등 다국적 군단에도 참여하고 있다.
2023년 네덜란드 육군 부대가 통합된 독일 육군의 조직도
냉전 종식 이후 독일 육군은 해외에서의 인도적 지원 및 평화 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초기에는 UN 주도의 임무에 참여했으며, 대표적으로 1993년 소말리아에서의 UNOSOM II가 있다. 1995년부터는 NATO 및 EU 주도의 작전에도 참여하여, 발칸 반도의 IFOR, SFOR, KFOR, EUFOR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9.11 테러 이후에는 대테러 전쟁의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의 ISAF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으며, 이는 독일 육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파병이었다. 2006년에는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EUFOR RD Congo 임무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해외 파병은 독일 내에서 정치적, 사회적 논의를 동반하기도 했지만, 변화된 안보 환경 속에서 독일의 국제적 역할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육군 장비 현대화도 꾸준히 진행되었다. 공수부대를 위한 비젤 공수전투차, PzH2000 자주 곡사포, 딩고 및 뭉고 장갑차, 복서 장륜 장갑차, 페넥 정찰차, 푸마 장갑 보병 전투차 등이 도입되었거나 도입 중이다. 항공 전력으로는 유로콥터 타이거 공격헬기와 NH90 수송헬기가 배치되었다. 기존의 게파르트 자주 대공포는 2010년부터 퇴역하고 MANTIS 방공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3. 조직
독일 육군(독일어: Heerde)은 육군 감찰관의 지휘를 받으며, 최고 지휘 기관은 베를린 인근 슈트라우스베르크에 위치한 육군사령부이다.[9] 1990년 통일 이후 여러 차례의 구조 개편을 거쳐 현대적인 군 조직으로 발전했다. 특히 2011년 징병제 중단 이후, 국제적 위기 대응 및 파병 임무에 적합하도록 작고 유연한 부대 구조로 개편되었다.[10][11]
현재 독일 육군의 핵심 전투력은 2개의 기갑사단(제1기갑사단, 제10기갑사단)과 1개의 신속대응사단으로 구성된다. 이들 사단은 고강도 및 저강도 분쟁, 공수 및 특수 작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네덜란드 왕립 육군의 여단들이 독일 육군 사단에 통합되어 운영되는 등 국제 협력이 강화된 점이 특징이다. 독일 육군은 유럽군단, 제1독일-네덜란드군단, 북동다국적군단 등 여러 다국적 군단에도 참여하고 있다.
2022년 1월 기준으로 독일 육군의 병력 규모는 약 62,766명이다.[1] 상세한 지휘 구조와 부대 편성은 하위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독일 육군은 육군 감찰관(Inspekteur des Heeres)의 지휘 아래 있으며, 육군 감찰관은 베를린 인근 슈트라우스베르크에 위치한 육군사령부(Kommando Heer)에 속한다. 훈련 관련 업무는 라이프치히의 육군 훈련 사령부가 담당한다.
1990년 통일 이후, 동독의 군대였던 국민인민군을 흡수하면서 육군은 초기에 4개 군단, 36만 명 규모로 확대되었으나[9] 지속적인 감축 과정을 거쳤다. 2000년대에는 물류, CBRN 방어, 군사경찰 등의 부대가 합동지원사령부로, 의료 부대는 합동의무사령부로 이관되었다. 2011년 징병제 중단[10] 이후 국제적 위협 대응 및 UN, EU 임무 수행을 위해[11] 작고 유연하며 배치 가능한 부대 중심으로 개편되어, 현재는 2개의 기갑사단과 1개의 신속대응사단을 핵심 전투부대로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2022년 1월 기준, 독일 육군의 병력은 약 62,766명이다.[1]
독일 육군의 계급 구조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계급 구조(STANAG 2116)에 맞춰져 있다. 이전 독일 제국 육군이나 나치 독일 육군과는 달리, 현대 독일 육군은 상급 대장(Generaloberst) 계급을 사용하지 않는다. 육군 장교의 최고 계급은 통상 중장(Generalleutnant)이며, 대장(General) 계급은 연방군 총감(Generalinspekteur der Bundeswehr)이나 NATO 고위직을 맡는 경우에만 부여된다. 육군총감(Inspekteur des Heeres)은 중장이다.
1990년 이후 독일 연방군의 개편과 규모 축소 과정에서 여러 병과가 해체되거나 다른 조직으로 이관되었다. 특히 합동 지원 부대(Streitkräftebasis)와 사이버 및 정보 도메인 부대(Cyber- und Informationsraum)가 창설되면서 일부 육군 병과가 해당 부대로 옮겨갔다.
밝은 빨간색: 장성 계급 (깃 카라탭(Kragenspiegelde)만 해당, 장식 끈(Litzede)은 아님)
진홍색: 참모부
참조
[1]
웹사이트
Aktuelle Personalzahlen der Bundeswehr [Current personnel numbers of the Federal Defence]
https://www.bundeswe[...]
2024-08-13
[2]
서적
Germans to the Front: West German Rearmament in the Adenauer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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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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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Das neue Heer
[20]
문서
독일어 명칭은 'Division Schnelle Kräfte'이다. 1956년 창설된 제1공수사단(1. Luftlandedivision), 2001년의 특수작전사단(Division Spezielle Operationen), 2003년의 [[공중기동작전사단]](Division Luftbewegliche Operationen) 후신이다.
[21]
문서
전문직(특기병)에만 존재하는 계급으로 독일군 기술병과에서만 한정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서독군 시절에는 없었던 계급이나,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이 통일되면서 중위와 대위 사이에 상위 계급이 있는 동독군 위관 장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신설한 계급이다. 단, 동독군이 사용했던 공산권의 '소위-중위-상위-대위' 체계가 아닌 '소위-중위-대위-상급대위' 체계를 적용하였으며, 이는 엄연히 중위와 대위 사이에 계급을 신설한 것이 아니고, 대위 위에 계급을 신설한 것이기 때문에 공산국가를 포함한 타국의 상위, 대위보다 더 높은 계급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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