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관계 (1919년-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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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9년부터 1939년까지의 국제 관계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이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뿌리면서 시작되었다. 1920년대에는 국제 연맹이 창설되어 평화를 추구했지만, 미국의 불참과 일본의 만주 침공,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등 연맹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군축을 위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런던 해군 군축 조약, 로카르노 조약, 켈로그-브리앙 조약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1930년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팽창주의 정책으로 국제 정세는 악화되었다. 특히 독일은 라인란트 재무장, 오스트리아 병합,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유화 정책으로 대응했지만 실패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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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계 (1919년-193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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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1920년대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화 이후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국제 연맹 창설과 더불어, 주요 강대국들은 군비 축소를 통해 전쟁 발발 가능성을 줄이고자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식과 베르사유 조약 체결은 전후 국제 질서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동시에 패전국에 대한 가혹한 배상금 부과와 민족 자결주의 원칙의 불완전한 적용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
3. 평화와 군축을 위한 노력
워렌 G. 하딩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워싱턴 군축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9개국이 참여했으며, 소련은 초청받지 않았다. 회의의 주요 성과는 4개국 조약, 5개국 조약(워싱턴 해군 조약), 9개국 조약 체결을 통해 해군 군축에 합의한 것이다.[9][10]
1930년에는 런던 해군 조약이 체결되어 1922년에 합의된 주요 강대국 간 군함 제한이 연장되었다. 이러한 조약들은 1920년대 동안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지만, 1931년 이후 세계 정세가 악화되면서 갱신되지 못했다.[11][12]
1925년에는 로카르노 조약이 체결되어 서유럽의 정치적 분위기를 개선하고, 독일이 국제 연맹에 가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1936년 라인란트 비무장지대 재무장을 통해 로카르노 조약을 파기했다.[15]
3. 1. 국제 연맹 창설
국제 연맹은 국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1919년에 창설되었다.[188] 그러나 미국, 독일, 소련 등 주요 강대국이 참여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일본도 불참하면서 약화되었다.[188] 특히, 일본과 이탈리아처럼 불리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들을 제재할 강제력이 부족하여 주요 분쟁에서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189][190]
일본의 만주 침공은 국제 연맹의 한계를 드러낸 초기 사건 중 하나였다. 일본은 국제 연맹의 질책을 받고 탈퇴했다.[191]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이어진 아비시니아 위기에서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의 독립국 에티오피아 제국(아비시니아)을 침공했다. 국제 연맹은 이탈리아에 경제 제재를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다.[192] 이 사건은 히틀러의 독일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동맹으로 유지하려 했던 프랑스와 영국의 약점을 드러냈다. 결국 서방 열강의 소극적인 대응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히틀러의 독일과 동맹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192]
이처럼 국제 연맹은 스페인 내전과 같은 분쟁 해결에 있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또한, 스페인과 모로코 분리주의자 간의 리프 전쟁과 같이 유럽 주요 국가들이 관련된 소규모 분쟁에서도 무력함을 드러냈다.[193]
3. 2. 군비 축소 노력
1920년대에는 큰 전쟁이 없었다. 주변부에서 몇몇 작은 전쟁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1922년까지 종결되었다. 예외로는 1917년에서 1922년까지의 러시아 내전, 1919년에서 1921년까지의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1919년에서 1922년까지의 그리스-터키 전쟁 그리고 아일랜드와 같은 몇몇 내전이 있었다.[2] 그 대신 평화주의는 1920년대 모든 주요 국가의 국제적 의제를 지배하는 주제였다. 영국의 노동당 지도자이자 총리인 램지 맥도널드는 특히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했다.
> "국제 연맹과 같은 기구에 의한 보장을 목표로 하는 순간, 당신은 조약의 군사적 가치를 최소화하고 종속시키며, 조정, 중재, 공정하고 사법적인 판단에서 비롯되는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수준의 도덕적 보장을 높입니다."[2]
3. 3. 로카르노 조약과 켈로그-브리앙 조약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미국과 프랑스가 초안을 작성하여 "그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격이나 기원에 관계없이 분쟁이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실상 전쟁을 불법화한 조약이다.[201] 대부분의 국가는 평화로운 외교 정책의 목표를 촉진하기 위해 기꺼이 조약에 서명하고 이를 사용했지만, 모든 전쟁 포기의 실제 공식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프랑스는 정의를 침략 전쟁으로 제한하기를 원했지만, 미국은 모든 종류의 전쟁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01] 역사학자 해롤드 조셉슨은 이 조약이 도덕주의와 율법주의, 외교 정책에 대한 영향력 부족으로 인해 조롱받았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더 적극적인 미국 외교 정책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전쟁 사용을 포기하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침략을 막기 위한 집단적 무력 사용을 촉진하는 주요 조항은 UN 헌장 및 기타 조약에 포함되었다.[201] 이후 내전은 계속되었지만, 1945년 이래로 기성 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중동의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드물었다.[201]
미국에서는 여성 단체와 개신교 교회에서 열렬한 지원이 있었다.[202] 1920년대에는 큰 전쟁이 없었고, 주변부에서 있었던 몇몇 작은 전쟁들은 1922년까지 종결되었으며 확전의 위험은 없었다. 평화주의는 1920년대 모든 주요 국가의 국제적 의제를 지배하는 주제였다. 영국의 노동당 지도자이자 총리인 램지 맥도널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국제 연맹과 같은 기구에 의한 보장을 목표로 하는 순간, 당신은 조약의 군사적 가치를 최소화하고 종속시키며, 조정, 중재, 공정하고 사법적인 판단에서 비롯되는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수준의 도덕적 보장을 높입니다."[2]
4. 유럽의 정세
1920년대와 1930년대 유럽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후유증과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며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주요 국가들의 정세는 다음과 같다.
- 영국: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는 파리 평화 회의에서 프랑스의 과도한 보복 요구를 완화하려 했으나,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206] 국제 연맹의 적극적인 회원이였지만, 연맹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208][209]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뉴질랜드 등의 자치령은 1931년 사실상 외교 정책에서 독립을 달성했다.[213] 제2차 세계 대전의 공포와 죽음에 대한 기억은 많은 영국인과 정치 지도자들을 평화주의로 이끌었고, 이는 독재자들을 달래는 유화정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223]
- 프랑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독일의 위협에 대항하여 영국 및 중부 유럽의 작은 국가들과 동맹을 맺으려 했다.[229][230][231] 마지노선이라는 정교한 국경 방어 체계를 구축하여 독일의 공격을 막고자 했다.[234] 1933년 이후 나치 독일이 더 강해지면서 경제 침체, 식민지에서의 불안, 치열한 내부 정치 투쟁을 겪었고, 서방세계에서는 유화정책이 점점 더 많이 채택되었다.[235]
-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해외 식민지, 동쪽의 폴란드 지역, 서쪽의 알자스-로렌 지역을 잃고 1919년에 공화국이 되었다. 민주주의와 근대화를 추구했지만, 좌익과 우익의 내부적 도전과 프랑스의 외부적 압력에 직면했다.[250]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나치당은 독일을 베르사유 조약과 유대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독재 국가로 만들었다.[261]
-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1920년대부터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했다. 파시즘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유럽에서 나타난 급진적인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의 한 형태였다.[60] 무솔리니는 1935년 에티오피아 침공을 통해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았음에도 팽창 정책을 지속했다.
- 소련: 레닌은 1922년에 무력화되었고 1924년에 사망했다. 그는 공산주의 봉기를 후원하려는 목표를 거부한 이오시프 스탈린으로 대체되었다.[292] 1934년 스탈린은 1928년 사회주의자들을 공격하기로 한 그의 결정을 번복하고 그의 새로운 계획인 "인민 전선"을 도입했다.[301]
- 동유럽 국가들: 제1차 세계 대전의 주요 결과는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의 붕괴와 독일 제국의 부분적인 손실이었다. 민족주의의 급증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승인된 일련의 새로운 국가들을 동유럽에 형성시켰다.[271]
- 스페인: 스페인 내전은 유럽 전역의 정치적 분열을 드러냈다. 우파와 가톨릭교는 국민파를 볼셰비즘 확산을 막는 방법으로 지지했다. 노동조합, 학생, 지식인을 포함한 좌파는 이 전쟁이 파시즘의 확산을 막고 스페인 공화파의 대의를 지원하기 위한 필요한 전투로 간주했다.[137]
4. 1. 대영 제국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식민지에서 독립 운동이 거세지면서 대영 제국의 국력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다.[205]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는 파리 평화 회의에서 프랑스의 과도한 보복 요구를 완화하려 노력했지만,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206] 영국은 독일에 대한 보복을 요구하는 프랑스를 견제해야 했다.[207] 국제 연맹의 적극적인 회원이였지만, 연맹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208][209]
정치적으로는 자유당 출신의 로이드 조지가 이끄는 연립 정부가 보수당의 지지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로이드 조지는 자유당 지지 기반을 잃어가면서, 외교 정책 문제로 보수당의 지지마저 잃게 되었다. 1922년 차나칼레 위기로 영국은 터키와 전쟁 위기에 직면했지만, 자치령의 반대와 군부의 주저로 로이드 조지의 강경 정책은 실패하고,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210][211]
영국은 미국,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고립주의를 거부하고, 해군 군비 제한 조약을 통해 세계 평화를 추구했다.[197] 1925년 로카르노 조약을 통해 독일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며, 독일을 번영하고 평화로운 국가로 회복시키고자 했다.[212]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뉴질랜드 등의 자치령은 영국 해군에 의존했지만, 1931년 사실상 외교 정책에서 독립을 달성했다. 1931년 이후 영국은 영연방에 유리한 무역 정책을 추진했고, 미국 등 다른 국가에는 관세를 부과했다. 독립한 아일랜드 자유국과는 1932년부터 1937년까지 무역 전쟁을 벌이며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213]
오스틴 체임벌린 외무장관은 독일 문제 해결에 성공한 후, 프랑스, 이탈리아와 협력하여 동유럽과 발칸 반도의 외교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잘못된 인식과 판단으로 인해 실패하고, 국가 간의 적대감을 극복하지 못했다.[214]
영국은 군축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21년 워싱턴 군축 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한 해군 군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33년 이후 군축은 실패하고, 독일과의 전쟁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215]
영국은 전쟁 중 미국에서 빌린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었다. 1923년 영국은 미국과 부채 재협상을 통해 상환 조건을 완화했다. 미국은 독일에 돈을 빌려주고, 독일은 이 돈으로 영국에 배상금을 지불하고, 영국은 다시 미국에 부채를 갚는 복잡한 구조였다. 영국은 도스 플랜과 영 플랜을 통해 독일 배상금 문제에 대한 미국의 해결책을 지지했다.[216][217] 1931년 독일의 배상금 지불이 중단되고, 1932년 영국은 미국에 대한 부채 상환을 중단했다. 독일과 영국의 부채는 1952년에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218]
영국 국내 정치에서는 노동당이 급부상하며 평화주의에 기반한 외교 정책을 펼쳤다. 노동당 지도자들은 자본주의, 비밀 외교, 무기 거래가 평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의 심리적 영향과 민족주의와 같은 감정적인 긴장은 간과했다. 램지 맥도널드 수상은 유럽 정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1924년 수상 재임 기간 동안 영국 외교 정책의 기본 원칙을 수립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강력히 반대했으며,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공정한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219] 맥도널드는 도스 플랜을 수용하고 국제 연맹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다.[220] 그는 러시아와 데탕트를 추구하며 1924년 공식적으로 러시아를 인정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차관 상환 문제는 난항을 겪었다. 1924년 총선 직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수장인 그리고리 지노비예프가 서명한 지노비예프 서한이 공개되어 영국 공산당에 선동 활동을 지시하는 내용이 폭로되었다. 이 서한은 위조로 밝혀졌지만, 보수당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221]
1929년 영국에서의 대공황은 영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영국은 대영 제국 특혜 정책으로 전환하여 영연방 국가 간에는 낮은 관세를 유지하고, 외부 국가에는 높은 무역 장벽을 세웠다. 1931년, 뉴욕으로부터의 자금 흐름이 끊기면서 배상금과 전쟁 부채 상환 시스템은 붕괴되었다.[222] 1920년대의 군축 노력은 중단되었고, 대부분의 주요 국가들은 재무장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공포와 죽음에 대한 기억은 많은 영국인과 정치 지도자들을 평화주의로 이끌었다. 이는 독재자들을 달래는 유화정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223]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들의 위협에 국제 연맹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영국은 독재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유화정책을 펼쳤다. 1938년 뮌헨 협정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의 요구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를 희생시켰다.[224] 그러나 히틀러는 폴란드를 위협했고, 네빌 체임벌린 수상은 유화정책을 포기하고 폴란드를 방어하겠다고 선언했다. 히틀러는 이오시프 스탈린과 동유럽 분할에 합의하고,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 연방은 영국의 결정에 따랐다.[225]
영국 의회에서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이 통과된 후, 자치령들은 법적으로 독립했다. 이 법령은 대영 제국의 영토를 "지위가 평등"하고 "국내 또는 외부 문제의 어떤 측면에서도 서로 종속되지 않은" 자주 공동체로 선언했다.[226] 이 법은 캐나다, 아일랜드 자유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법안 통과 직후 사실상 독립을 인정했다.[227]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호주, 뉴펀들랜드, 뉴질랜드에는 즉시 적용되지 않았고, 해당 지역 의회의 비준이 필요했다.[228]
전간기 동안 1929년 제네바 협약에 의해 공식적인 보호국의 외교적 역할이 확립되었다. 보호국은 전쟁 포로 수용소를 검사하고, 포로와 개별 면담을 하며, 포로와 자유롭게 소통하고, 감옥 도서관에 책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 적십자 위원회가 조약 준수를 보장해야 한다는 제안은 거부되었다.
4. 2. 프랑스
프랑스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독일의 위협에 대항하여 영국 및 중부 유럽의 작은 국가들과 동맹을 맺으려 했다.[229][230][231] 1920년대 프랑스는 마지노선이라는 정교한 국경 방어 체계를 구축하여 독일의 공격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이 요새는 독일 국경을 따라갔지만 북쪽으로 벨기에까지 확장되지는 않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1940년 벨기에를 통해 공격해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진군했다.[234]1923년 1월 바이마르 공화국이 초인플레이션으로 배상금 중 충분한 석탄을 운송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프랑스(및 벨기에)는 루르 산업 지역을 점령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소극적인 저항으로 대응했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폭주했다. 프랑스는 독립 완충국을 지향하는 분리주의 운동을 조장했지만, 얼마간의 유혈 사태로 무너졌다. 개입은 실패했고 1924년 여름 프랑스는 도스 플랜에 명시된 배상 문제에 대한 미국의 해결책을 받아들였다.[233]
1933년 이후 나치 독일이 더 강해지면서 프랑스는 경제 침체, 식민지에서의 불안, 치열한 내부 정치 투쟁을 겪었고, 서방세계에서는 유화정책이 점점 더 많이 채택되었다.[235]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비무장지대로 남겨진 라인란트에 군대를 주둔시켰을 때 프랑스도 영국도 전쟁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237] 1936년 이후 영국과 협력한 독일의 유화 정책은 프랑스가 히틀러의 요구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달라디에는 네빌 체임벌린이 1938년 뮌헨 협정을 이용하여 평화를 구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영국의 지원 없이 독일과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거부했었다.[238][239] 1938년 프랑스와 영국이 뮌헨에서 히틀러의 조건에 동의했을 때 히틀러의 요구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와 프랑스의 군사 동맹이 희생되었다.[240][241]
레옹 블룸 정부는 스페인 내전(1936~39) 동안 무기 금수 조치를 수립하는 데 영국과 합의했다. 블룸은 내전이 심하게 분열된 프랑스로 퍼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스페인 제2공화국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다. 스페인에서 공화당의 대의가 흔들렸을 때 블룸은 비밀리에 무기, 기금, 보호소와 함께 공화당의 대의를 스페인에 제공했다. 폴란드와의 군사 협력에 대한 재정 지원도 정책이었다. 정부는 무기 공급업체를 국유화하고 마지막 순간에 독일군을 따라잡기 위해 프랑스 군대를 재무장하는 프로그램을 극적으로 늘렸다.[242]
4. 3.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해외 식민지, 동쪽의 폴란드 지역, 서쪽의 알자스-로렌 지역을 잃고 1919년에 공화국이 되었다. 민주주의와 근대화를 추구했지만, 좌익과 우익의 내부적 도전과 프랑스의 외부적 압력에 직면했다.[250]1918년 11월, 독일 11월 혁명으로 카이저와 귀족이 전복되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지도자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1923년 사망할 때까지 독일의 재상을 역임했다. 그의 SPD 온건파는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 급진 세력을 추방했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의 이름으로 정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는 독일 공산당(KPD)을 결성했다. 1919년 1월, 공산주의자들은 베를린, 브레멘, 브라운슈바이크, 루르 지방에서 스파르타쿠스 봉기를 주도했다. 육군은 대대적으로 동원 해제되었지만, 많은 참전 용사들이 에베르트와 그의 국방 장관 구스타프 노스케를 지원하는 자유군단(자유군)을 결성하기 위해 자원했다. 그들은 제대로 조직되지 않은 봉기를 쉽게 진압했다. 리프크네히트와 룩셈부르크는 살해되었고, 이는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에 영구적인 분열을 초래하여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251] 바이에른주에서는 공산주의 반란이 1919년 4월 6일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을 단기간 동안 수립했다. 이 공화국은 다음 달 육군과 자유군단에 의해 진압되었다.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나치당은 독일을 베르사유 조약과 유대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독재 국가로 만들었다.[261] 독일은 막대한 군사 지출로 실업 문제를 해결했다.[262]
히틀러의 외교 전술은 겉으로는 합리적인 요구를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쟁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양보가 이루어지면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요구를 했다.[263] 반대자들이 그를 달래려 할 때, 그는 제공된 이득을 받아들이고 다음 목표로 나아갔다. 이러한 공격적인 전략은 독일이 국제 연맹에서 탈퇴(1933년)하고, 베르사유 조약을 거부하고 독일 재군비 선언(1935년)을 시작하여 영독 해군 협정을 맺고, 자르를 되찾고(1935년), 라인란트를 재군사화(1936년)하고,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동맹(추축국)을 결성(1936년)하고,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에게 대규모 군사 지원을 보냈으며, 오스트리아를 병합(1938년)하고, 1938년 뮌헨 협정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유화 정책을 펼친 후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1939년 8월 이오시프 스탈린의 러시아와 평화 조약을 맺고,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성공했다.[264]
1933년 1월 권력을 잡은 히틀러와 나치 지도부는 외교 경험이 거의 없었으며, 독일 내부 권력 장악에 집중하며 이 분야에서 천천히 움직였다.[265] 첫 번째 대외적 움직임은 제네바 군축 회의를 무력화하는 것이었는데, 병력 제한을 거부한 것이다. 독일은 나치 돌격대(SA)를 어떤 할당량 시스템에도 포함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은 4년간 군비를 동결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독일은 즉시 "방어 무기"를 갖는 것을 고집했다.
독일은 1933년 10월 군축 회의와 국제 연맹에서 탈퇴했지만, 그때조차도 윈스턴 처칠을 제외한 몇몇 유럽 지도자들은 히틀러를 적으로 보거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영국 대사였던 에릭 핍스는 이후 유화 정책으로 알려진 정책을 열렬히 추진했다. 그는 국제 연맹이 다음 전쟁을 막는 열쇠라고 믿었고, 독일의 협력을 얻기 위한 노력에 프랑스를 참여시키려 했다.[266] 무솔리니 또한 히틀러와 협력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간의 4개국 조약에 독일의 서명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조약은 실패했고, 히틀러가 로마에서 무솔리니를 방문한 후 오스트리아를 장악하려는 독일의 의도에 대해 의견 충돌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그 후 몇 년 동안 이탈리아를 독일 편보다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했다.[267] 1934년 1월, 독일은 폴란드와 독일-폴란드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동유럽에서 프랑스의 대독일 동맹 네트워크를 붕괴시켰다.[268] 1935년 3월, 히틀러는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포함된 독일 군축 요구 사항을 비난했다. 독일과 영국은 1935년 6월 영독 해군 협정에서 합의에 도달했다. 독일은 해군 확장을 영국 해군의 35%로 제한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269]
미국인들은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깊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무역 분쟁, 반유대 시위, 재무장 문제로 관계가 꾸준히 악화되었다. 워싱턴은 독일의 외교 정책이 주로 두 가지 요인, 즉 내부 경제 문제와 히틀러의 팽창주의적 야망을 반영한다고 판단했다. 한편, 새로운 루스벨트 행정부는 데탕트를 기반으로 소련과 관계를 맺었으며, 스파이 행위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270]
4. 4.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1920년대부터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했다. 파시즘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유럽에서 나타난 급진적인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의 한 형태였다.[60] 파시스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을 전쟁, 사회, 국가, 기술의 본질에 막대한 변화를 가져온 혁명으로 보았다. 총력전의 출현과 사회의 완전한 대중 동원은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분을 무너뜨렸다.[61]파시스트들은 자유 민주주의가 구식이라고 주장하며, 전체주의적 일당 독재 하에서 사회를 완전히 동원하는 것이 무력 충돌에 대비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필요하다고 간주했다.[62] 국가는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지도되어 민족적 통합을 구축하고 이견이 없는 안정적이고 질서 있는 사회를 유지했다. 파시즘은 폭력이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라는 주장을 거부하고 정치적 폭력과 전쟁을 국가 부흥을 달성할 수 있는 도구로 간주했다.[63] 무솔리니는 1935년 에티오피아 침공을 통해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았음에도 팽창 정책을 지속했다.
4. 5. 소련
레닌은 1922년에 무력화되었고 1924년에 사망했다. 그는 공산주의 봉기를 후원하려는 목표를 거부한 이오시프 스탈린으로 대체되었다. 1924년에는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이 소련의 새 지도자를 인정했으며, 스탈린은 지노비예프를 제거하고 세계 혁명을 설파한 트로츠키와 그의 강경한 동맹들을 숙청했다. 스탈린은 첫 번째 우선순위가 "일국 사회주의"[292]라는 공식 슬로건으로 표현되었다고 말했다. 1928년 자본주의에 대한 NEP 실험은 종료되었다.1920년대 전반에 걸쳐 불신과 논쟁이 영-소 관계를 특징짓고 1927년 외교적 단절로 절정에 이르렀다. 영국은 1924년 2월 1일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1922-1991)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양국 간의 외교 관계는 1927년 5월 경찰이 전 러시아 협동조합 협회를 급습한 후 스탠리 볼드윈 총리가 소련 간첩 활동을 증명하는 해독된 소련 전보를 하원에 제출한 후 단절되었다.[295][296] 1929년에 새 노동당 정부는 영구적인 외교 관계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297]
1928년 코민테른의 제6차 세계 대회에서 스탈린은 전 세계적으로 공산당이 사회주의자나 다른 좌파 정당과 협력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령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적이었던 공산주의자들은 잠입해 노동조합을 장악하려 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있는 힘껏 반격했다.[298]
인근 국가들과의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가기 위해 1932년 스탈린은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핀란드, 프랑스와 같은 위생 위생 국가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소련은 1934년 국제연맹에 가입했다.[299] 미국은 소련 정부를 인정한 마지막 주요 열강이었다. 1933년의 인정은 미국에서 인기가 있었으며 상인들은 대규모 무역을 계획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300]

좌파의 공산당과 정당들은 나치 운동의 성장으로 인해 점점 더 위협받았다. 1933년 1월에 집권한 히틀러는 독일에 대한 통제를 신속하게 공고히 하고 독일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을 파괴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부과된 군대 제한을 거부했다. 1934년 스탈린은 1928년 사회주의자들을 공격하기로 한 그의 결정을 번복하고 그의 새로운 계획인 "인민 전선"을 도입했다. 그것은 보통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지역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반파시스트 정당들의 연합체였다.[301] 새로운 정책은 파시즘과 특히 나치 독일에 반대하는 다당 연합에서 좌파와 중도의 모든 정당과 협력하는 것이었다. 새 슬로건은 "파시즘과 전쟁에 반대하는 인민전선"이었다. 이 정책에 따라 공산당은 국내 사회 발전을 확보하고 소련과의 군사 동맹을 통해 파시스트 독재 정권을 고립시키려는 목적으로 모든 반파시스트 정당과 광범위한 동맹을 맺도록 지시받았다.[302] 이렇게 형성된 "인민 전선"은 프랑스, 칠레, 스페인, 그리고 중국에서 정부를 구성하는 몇 년 동안 각각 몇 년 동안만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된다.[303] 다른 곳에서는 정치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인민전선에서의 접근 방식은 1939년 이후 독일이 정복한 프랑스와 기타 국가의 저항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전후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304]
1938~39년에 소련은 프랑스와 영국을 포함한 독일의 적들과 강력한 군사 동맹을 맺으려 했다. 그 노력은 실패했고, 스탈린과 히틀러가 합의에 이르게 된 마지막 단계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역사가 프랑수아 퓌레는 "1939년 8월 23일 리벤트로프와 몰로토프가 모스크바에서 서명한 이 협정은 소련과 나치 독일 간의 동맹을 맺었다. 이는 단순한 불가침 조약이 아니라 동맹으로 제시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밀 조약은 폴란드의 상호 분할에 동의하고 동유럽을 분할하고 소련이 발트해 연안 국가를 인수했다.[305] 소련은 1940년 5월에서 6월 사이에 독일군이 서유럽 전역을 도는 동안 독일에 석유와 탄약을 공급하는 것을 도왔다.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히틀러가 소련에 대한 전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으나 독일은 1941년 6월에 소련 침공을 시작했다.[306]
4. 6. 동유럽 국가들
제1차 세계 대전의 주요 결과는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의 붕괴와 독일 제국의 부분적인 손실이었다. 민족주의의 급증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승인된 일련의 새로운 국가들을 동유럽에 형성시켰다.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도 독립을 시도했지만, 나중에 러시아 볼셰비키에 의해 점령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는 완전히 새로운 국가로 탄생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독일과 헝가리 핵심 인구를 기반으로 훨씬 작은 영토를 가지고 생존했다.[271]폴란드는 1790년대 분할로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분할된 후 재건되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는 위기에서 살아남았지만 국경이 조정되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산업이 거의 없고 도시 중심지가 거의 없는 매우 시골적인 지역이었다. 민족주의가 지배적인 세력이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는 다수 민족에게 위협을 느끼는 소수 민족 또는 종교적 소수가 존재했다. 거의 모든 국가가 1920년대에 민주주의를 채택했지만, 체코슬로바키아와 핀란드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독재, 강권 통치 또는 일당 국가를 선호하며 민주주의를 포기했다. 이들 신생 국가들은 안정적인 군사 동맹을 형성할 수 없었고, 1938년에서 1945년 사이에 이들을 점령한 나치 독일이나 소련에 맞서기에는 너무 약했다.[272]
우크라이나는 복잡한 민족 구성을 가지고 있었고, 강한 민족 의식이 부족했다. 사회, 정치, 문화, 경제 엘리트는 주요 도시에 기반을 두고 러시아 민족주의를 옹호했으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었다. 농민들은 토지 재분배를 위해 독립을 지지했지만, 지도부는 경험이 부족했고, 강력한 군대와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외부 세력들은 서로 다른 비전을 가지고 우크라이나에 개입했다. 영국은 우크라이나의 독립 시도를 조롱했고, 백계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의 주로 되돌리려 했다. 러시아 볼셰비키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점령했고, 미국은 유대인 대량 학살에 분노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지원했지만, 식량 확보가 주요 목표였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를 원했고, 프랑스는 폴란드를 지원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편입되었고, 서부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로 분할되었다.[128]
그리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겪었고, 정치 엘리트들의 국제적 충성심이 분열되어 오스만 제국에 맞서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가 이끄는 친영,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은 보수 및 친독일 군주인 콘스탄티노스 1세와 권력 쟁탈전을 벌였다. 1919년 그리스 군대는 스미르나와 서부 아나톨리아의 넓은 지역을 점령했고, 1920년 세브르 조약이 체결되었으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그리스 군대를 몰아내고 그리스-터키 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대규모 민족 교환이 이루어졌다.[99]
헝가리는 1919년 공산주의자들이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1919년 8월 정권이 전복되었다. 이후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했고, 1920년 트리아농 조약에서 헝가리는 많은 영토와 자원을 잃었다. 그 결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과의 친밀도가 높아졌다.[100]
4. 6. 1.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1918~1920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여 독립 국가가 되었다. 초기에는 볼셰비키 급진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기도 했지만, 특히 라트비아에서 그러했으며, 1920년대에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보수적인 정치 연합으로 대체되었다. 1920년대 초, 이들 국가의 인구는 에스토니아 110만 명, 라트비아 180만 명, 리투아니아 220만 명이었다. 각 국가 인구에서 소수 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에스토니아 12%, 라트비아 27%, 리투아니아 20%였다. 각 국가는 농촌 지역, 특히 리투아니아에서 소수민족의 비율이 더욱 두드러졌다.[273]각 국가는 주요 소수 민족과 그들의 언어 및 종교에 특권을 부여했다. 이들은 독일인, 유대인, 벨라루스인, 러시아인, 폴란드인 등 다양한 소수 민족을 다루어야 했다. 소수 민족들은 서로 다른 언어, 종교,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주요 지주였던 독일인들은 분리주의 운동을 일으키려 했으나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발트해 연안 정부들은 소수 민족의 권리와 특권을 제한했지만, 소수 민족은 동화에 저항할 만큼 충분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시도는 국제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274] 폴란드의 빌뉴스 점령은 리투아니아인들을 분노하게 했고, 3국 간의 어떠한 조정이나 외교적 협력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275]
이들 세 국가는 모두 1939~40년까지 존속했지만, 결국 소련에 점령되었고, 지역 지도자들은 억압, 처형되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1941년 독일이 침공했다가 1944년에 축출되었으며, 추가 숙청 이후 많은 수의 러시아인들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소수의 러시아인들이 리투아니아에 재정착했다.[276]
4. 6. 2. 그리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몇 년 동안 여러 차례의 복수주의 전쟁을 겪은 그리스는 정치 엘리트들의 국제적 충성심이 분열되어 역사적 적인 오스만 제국에 맞서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위기에 이르렀다. 국가 분열이라 불리는 기간 동안,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가 이끄는 친영적,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적 운동은 보수 및 친독일 군주인 콘스탄티노스 1세와 통제권을 놓고 경쟁했다.1919년, 그리스 군대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스미르나와 서부 아나톨리아의 넓은 지역을 점령했다. 1920년 오스만 제국 정부는 세브르 조약에 동의했는데, 이 조약은 5년 후에 스미르나에서 이 지역이 그리스에 합류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규정했다. 그러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터키 민족주의자들은 오스만 제국 정부를 전복시키고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그리스인을 몰아내려 했다. 1921년에 그리스의 주요 공세는 중단되었고, 1922년에는 그리스 군대가 퇴각했다. 터키군은 스미르나를 탈환하고 모든 그리스군을 몰아냈다. 터키와의 전쟁은 현재의 터키에 살았던 110만 명의 그리스계 기독교인(아마도 그리스어를 할 줄 몰랐을 수도 있음)이 그리스로 이주하고, 38만 명의 무슬림이 터키로 이주하는 대규모 민족 교환을 하기로 합의하면서 끝났다.[277]
4. 6. 3. 헝가리
1919년의 혼란 속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은 헝가리 공산주의자들은 정부를 전복하고 1919년 3월 21일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을 수립했다. 벨라 쿤은 공식적으로는 외무장관이었지만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그의 정권은 산업과 금융을 국유화했지만 토지를 농민에게 재분배하지 않아, 구 지주계급이 관리하는 대규모 집단농장을 세우려 했으나 반발이 커져 헝가리 적색 테러로 폭력적으로 진압했다.[278] 헝가리는 곧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루마니아 및 체코슬로바키아와 전쟁을 벌였고 1919년 8월 정권이 전복되었다.[278] 지주계급에 뿌리를 둔 "백인" 반혁명가들은 1920년부터 1944년 체포될 때까지 독재자였던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을 집권시켰고,[279][280] 혁명의 잔당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281]1920년 트리아농 조약에서 헝가리는 많은 역사적 영토와 자원을 잃었고, 많은 헝가리인들이 다른 나라에 거주하게 되었다. 헝가리 민족은 지위 회복을 원했으나, 다른 곳에 발이 묶인 헝가리인들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의 St. George Scout Circle(나중에 "Sarló"로 불림)과 루마니아의 Transylvanian Youth(Erdélyi Fiatalok)와 같은 조직을 결성했다.[282] 그 결과, 잃어버린 영토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한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과의 친밀도가 높아졌다.
4. 6. 4. 폴란드
재건된 폴란드는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 소수 민족 문제,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렸다.[58] 특히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지정학적 위협에 노출되었다. 1938년 뮌헨 협정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히틀러의 요구에 동의했을 때, 프랑스의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군사 동맹은 희생되었다.[56][57] 프랑스는 폴란드와의 군사 협력에 대한 재정 지원 정책도 시행했다.[58]4. 6. 5. 스페인
스페인 내전은 유럽 전역의 정치적 분열을 드러냈다. 우파와 가톨릭교는 국민파를 볼셰비즘 확산을 막는 방법으로 지지했다. 노동조합, 학생, 지식인을 포함한 좌파는 이 전쟁이 파시즘의 확산을 막고 스페인 공화파의 대의를 지원하기 위한 필요한 전투로 간주했다. 많은 국가에서 반전 및 평화주의 정서가 강해, 내전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137] 이런 점에서 이 전쟁은 유럽 전역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였다.[138]스페인 내전에는 수만 명의 외부인들이 우파와 좌파에서 참전했다.[139] 이탈리아는 보병 연대를 파병했고, 독일은 공군을 파견했다.[140]
전 세계의 공산주의 세력은 모스크바의 감독을 받으며 반파시스트 정당과의 인민 전선 협력을 통해 "국제 여단"에 자원병을 파견했다.[141] 이들 자원병의 대부분은 공산당원이었으며,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대의에 시간, 에너지, 생명을 바쳤다.[142] 좌파의 많은 작가와 지식인들도 참여했는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공화파를 지지했고, 조지 오웰은 입장을 바꿔 공산주의에 대해 날카롭게 반대했다.[143] 모스크바는 또한 NKVD와 GUM이라는 비밀 경찰의 요원들을 파견했다. 그들의 임무는 연대와 당론을 강화하고, 스탈린주의 노선을 위협하는 좌익 아나키스트들을 색출하여 처형하는 것이었다.[144][145] 1937년 스페인 정부는 당시 5억달러가 넘는 가치의 모든 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보냈다. 이것은 스탈린이 스페인에 대한 모든 무기 판매 대금을 통제했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갖게 했다. 금은 반환되지 않았다.[146]
영국과 프랑스는 스페인에 대한 모든 무기 금수 조치를 포함한 스페인 내전에 대한 불개입을 약속하는 27개국의 연합을 이끌었다. 미국은 비공식적으로 동의했다. 독일, 이탈리아, 소련은 공식적으로 서명했지만 금수 조치를 무시했다. 그러나 수입 물품을 억제하려는 시도는 대체로 효과가 없었고, 특히 프랑스는 공화군에 대량의 물품을 지원했다. 국제 연맹은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이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정부는 공화파와 외교 관계를 유지했지만, 국민파의 승리가 임박해짐에 따라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새로운 스페인 정부가 결국 추축국에 영구적으로 충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교 정책을 신속하게 조정해야 했다. 이전에 공화파를 조심스럽게 지지했던 프랑스 정부는 1939년 2월 25일 스페인 국민파와 베라르-조르다나 협정을 맺어 프랑코 정부를 스페인의 합법적인 정부로 공식 인정했다.[147][148] 비시 프랑스의 지도자가 된 필리프 페탱이 프랑스의 프랑코주의 스페인 대사가 되었다.[149] 영국 정부는 같은 날 프랑코 정부를 인정했고, 미국 정부는 1939년 4월 7일에 뒤따랐다.[148] 프랑코 정부는 서방 민주주의 국가와 유럽 파시스트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유지했으며, 1939년 3월 24일 독일-일본 반공산주의 조약에 가입했다.[150][151][152]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1939년 8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서 독일-소련의 협력으로 인해 거부감을 느껴[153] 궁극적으로 추축국의 공개적인 가입을 거부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립을 유지했지만, 스페인 자원병은 독일 제250 보병 사단의 일부로 추축국을 위해 싸울 수 있었다.[154][155]
5. 아시아의 정세
1919년부터 1939년까지 아시아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일본 제국은 군국주의화와 팽창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만주사변과 중일 전쟁을 일으켰다. 중국은 청나라 멸망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대립, 그리고 일본의 침략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이집트는 영국의 지배에 맞서 독립을 쟁취했지만, 영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일본에서는 군부가 점차 정부를 장악하고, 중국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346] 이러한 일본의 정책은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자극했다.[347]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일본은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부를 세우고 국제 연맹에서 탈퇴했다.[349][350]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은 지역 군벌들이 권력을 장악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 쑨원 사후 장제스는 중국 국민당을 장악하고 북벌을 통해 중국 남부와 중부 대부분을 통일했지만, 중국 공산당과 결별하고 탄압했다.[357][358][359]
이집트는 1922년 영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지만,[166] 영국은 수에즈 운하 등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파루크 1세는 영-이집트 조약을 통해 영국의 군사력을 일부 철수시켰다.[166]
5. 1. 일본 제국
일본에서는 군부가 점차 정부를 장악하고, 반대하는 지도자들을 암살하고, 좌파를 억압하며, 중국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346] 이러한 일본의 정책은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자극했다.[347] 일본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과 함께 주요한 동기였다.[348] 극우 세력은 일본 정부와 사회 전반, 특히 일본 소유의 남만주 철도를 따라 만주에 주둔한 관동군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1931년 만주사변 당시, 급진적인 장교들은 일본 정부의 허가 없이 지방 관리들로부터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부를 세웠다. 이러한 침략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으로 일본은 국제 연맹에서 탈퇴하게 되었다.[349][350]- -|]]|thumb|right|300px|1942년 미국, 영국,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정복한 대동아 공영권.]]
일본의 팽창주의적 야망은 점차 대담해졌다. 일본의 많은 정치 엘리트들은 일본이 자원 확보와 잉여 인구 정착을 위해 새로운 영토를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51] 이러한 야망은 1937년 중일 전쟁 발발로 이어졌다. 일본군은 난징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악명 높은 난징 대학살을 자행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정부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했고, 중국 정부는 오지로 후퇴하여 저항을 계속했다. 이 분쟁은 1945년까지 교착 상태로 이어졌다.[352] 일본의 전쟁 목표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광대한 범아시아 연합인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이었다.[353] 일본의 대외 전쟁에서 쇼와 천황의 역할은 논쟁의 대상으로, 다양한 역사가들은 그를 무력한 허수아비 또는 일본 군국주의의 조력자이자 지지자로 묘사한다.[354] 미국은 일본의 영향권 안에 있는 미국 식민지인 필리핀에 대해 점차 우려하게 되었고, 일본의 팽창을 억제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355]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해 고립주의자들을 포함한 미국 대중과 엘리트들의 여론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이 중국에서 전쟁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석유와 철강을 차단하기 위해 점차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에 일본은 1940년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어 삼국 동맹을 결성하여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1941년 7월, 미국, 영국, 네덜란드는 일본의 모든 자산을 동결하고 석유 수송을 중단했다. 일본은 자체적인 석유 자원이 거의 없었다.[356]
5. 2. 중국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은 지역 군벌들이 권력을 장악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 이 시기 쑨원은 남중국에 혁명 기지를 세우고 중국 공산당과 동맹을 맺는 등 국가 통일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1925년 쑨원이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인 장제스는 중국 국민당을 장악하고 북벌을 통해 중국 남부와 중부 대부분을 통일했다. 1927년 장제스는 공산당과 결별하고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1934년, 중국 공산당은 대장정을 통해 산시성 옌안에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했고, 마오쩌둥이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다.[357][358][359]한편, 만주를 점령한 일본은 1932년 만주국이라는 괴뢰 국가를 세우고 국제 연맹에서 탈퇴하는 등 침략 야욕을 드러냈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을 계기로 중일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상하이, 난징 등 주요 도시들을 점령했고, 난징 대학살과 같은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 중국은 충칭으로 수도를 옮겨 저항을 이어갔고, 미국은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며 중국을 지원했다.[360][361][362][363][364]
5. 3. 이집트
1921년 12월, 시위가 다시 폭력으로 이어졌다. 증가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존중과 고등 판무관인 앨런비 경의 제안에 따라, 영국은 1922년 2월 28일 이집트의 독립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166] 그러나 영국은 이름을 바꾼 이집트 왕국을 계속 통제했다. 영국은 국왕을 지도했고 수에즈 운하, 수단, 그리고 이집트의 대외 및 군사 문제를 통제했다. 푸아드 1세 국왕은 1936년에 사망했고, 파루크 1세가 열여섯 살의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 놀란 그는 영-이집트 조약에 서명하여 영국이 1949년까지 수에즈 운하를 제외한 모든 병력을 이집트에서 철수하도록 했다.[166]6. 라틴 아메리카의 정세
1930년대 라틴 아메리카는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큰 변화를 겪었다. 원자재 수요 급감으로 칠레, 페루, 볼리비아 등 주요 수출국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157][158] 이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수입 대체 산업화를 추진하며 자립 경제 구축을 모색했다.
미국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린 정책 하에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개입을 줄여나갔다. 몬테비데오 협약을 통해 내정 불간섭 원칙을 천명하고, 플랫 수정안을 폐지하여 쿠바에 대한 간섭을 중단했다.[156] 또한, 멕시코의 석유 산업 국유화와 같은 일부 미국 기업의 국유화를 용인했다.[159][160]
남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간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며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국의 동맹국으로 참전하여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340][341]
1932년부터 1935년까지 볼리비아와 파라과이는 그란 차코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차코 전쟁을 벌였다.[342] 이 전쟁에서 파라과이가 승리하여 분쟁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했다.[344]
6. 1. 미국의 선린 정책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개입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선린 정책을 추진했다. 1890년대부터 미국은 이 지역을 자국의 세력권으로 여겨왔다. 미국은 미국의 아이티 점령을 끝내고 아이티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으며, 쿠바 및 파나마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여 미국의 보호령 지위를 종식시켰다. 1933년 12월, 루스벨트는 몬테비데오 협약에 서명하여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내정에 일방적으로 개입할 권리를 포기했다. 또한 미국은 플랫 수정안을 폐지하여 쿠바에 대한 법적, 공식적인 간섭을 중단했다.[156]라틴 아메리카의 대공황은 원자재 수요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하여 이 지역의 주요 수출 부문에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칠레, 페루, 볼리비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157][158] 이러한 상황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지식인과 정부 지도자들은 기존의 경제 정책을 버리고 수입 대체 산업화를 추진했다. 이들은 자체 산업 부문과 대규모 중산층을 육성하여 세계 경제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급자족 경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33–1945) 행정부는 미국의 상업적 이익에 대한 잠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수입 대체 산업화에 전적으로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루스벨트는 선린 정책을 시행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부 미국 기업의 국유화를 막지 않았다. 멕시코 대통령 라사로 카르데나스는 미국의 석유 산업 석유 회사를 국유화하여 페멕스를 설립했다.[159][160]

6. 2. 경제 대공황의 영향
경제 대공황은 라틴 아메리카의 원자재 수요를 급격히 감소시켜 주요 수출 부문에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칠레, 페루, 볼리비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157][158] 이에 라틴 아메리카의 지식인과 정부 지도자들은 기존 경제 정책을 버리고 수입 대체 산업화를 추진했다. 이들은 자체 산업 부문과 대규모 중산층을 갖춘 자급자족 경제를 구축하여 세계 경제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1933–1945) 행정부는 미국의 상업적 이익에 대한 잠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수입 대체 산업화에 전적으로 반대할 수 없음을 인지했다. 루스벨트는 선린 정책을 시행하며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부 미국 기업의 국유화를 용인했다. 멕시코 대통령 라사로 카르데나스는 미국 석유 회사를 국유화하여 페멕스를 설립했다.[159][160]
6. 3.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남아메리카의 최대 국가인 브라질에서는 1930년 자유주의 혁명으로 과두적 커피 농장주들이 실각하고, 산업화와 현대화를 추진하는 도시 중산층이 집권했다. 신산업 육성 정책은 1933년까지 경제를 회복시켰고, 미국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았다.[340][341] 1920년대와 1930년대 브라질 지도자들은 아르헨티나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을 스페인어 사용 국가들로부터 고립시켜 남아메리카에서 자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더 강력한 아르헨티나 군대가 상대적으로 약한 브라질 군대를 기습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340][341]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브라질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브라질은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으로서 유럽에 군대를 파병했다. 미국은 무기대여법을 통해 1억달러 이상의 군사 원조를 제공했고, 그 대가로 브라질은 대서양 횡단 수송에 필요한 공군 기지와 대잠 작전을 위한 해군 기지를 무상으로 임대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때로는 독일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340][341]
6. 4. 차코 전쟁
차코 전쟁은 1932년부터 1935년까지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두 나라는 최근 석유가 발견된 그란 차코 지역의 통제권을 두고 격렬하게 싸웠다.[342] 볼리비아는 석유를 수출하기 위해 파라과이가 통제하는 강에 있는 항구가 필요했다.[343]볼리비아는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장비를 잘 갖춘 대규모 군대를 동원했다. 그러나 볼리비아군은 고지대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저지대 질병이 많은 차코 정글에서는 약했다.[343] 반면, 파라과이는 러시아 출신 장교를 고용하여 더 나은 계획과 보급 체계를 갖추었고, 일반적으로 군사적으로 더 성공적이었다.[343]
전쟁으로 약 28,000명의 군인이 사망했다.[344] 아르헨티나와 남미 4개국이 중재한 평화 조약에 따라 파라과이는 분쟁 지역의 약 4분의 3을 차지했다.[344] 좌절한 볼리비아 참전용사들은 정당을 결성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3년 동안 통치했지만, 이후 다음 쿠데타로 전복되었다.[344]
7. 제2차 세계 대전의 도래
1930년대 후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팽창 정책은 더욱 노골화되어 국제 정세를 악화시켰다. 영국의 유화 정책은 히틀러의 침략 야욕을 막는 데 실패했고, 결국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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