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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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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읍성은 지방 행정 기능을 수행하고 군사적 방어 역할을 겸했던 한국의 전통적인 도시 방어 시설이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철거되었으나, 고창읍성, 낙안읍성, 해미읍성 등 일부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읍성은 행정 시설, 방어 시설, 그리고 성문, 치성, 옹성, 해자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며, 읍성 내에는 관아가 위치하여 행정과 군사 기능을 담당했다. 읍성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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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자는 성이나 요새와 같은 방어 시설의 바깥쪽에 굴착된 도랑 형태의 장애물로, 공성 무기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굴착을 방해하며 필요에 따라 물을 채워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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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읍성 정보
서산읍성
서산읍성
유형읍성
위치평지 또는 평산성
축조 목적군사적 목적
행정적 목적
경제적 목적
기능지방 행정 중심지 보호
군사적 방어 거점
백성들의 대피 장소
특징성벽: 돌, 흙
시설: 관아, 학교, 사찰 등
축조 배경
시기고려 시대 ~ 조선 시대
목적왜구 및 북방 민족의 침입 방어
지방 통치 체제 강화
구조
성벽돌, 흙 등을 이용하여 축조
동문, 서문, 남문, 북문 (4대문)
옹성문의 바깥에 덧붙여 쌓은 작은 성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방어 시설
해자성벽 주변에 둘러 판 물길
시설관아
학교
사찰
창고
우물
역사적 의의
기능지방 방어 체계의 중요한 부분
백성들의 삶의 터전
역사, 문화, 사회적 중심지
현재일부 읍성은 역사 유적지로 보존됨
참고 자료
관련 자료읍성론(邑城論)

2. 역사

한국의 읍성은 지방 행정부가 있는 고을에 축성되었으며, 성 안에는 관아가 있어서 행정과 군사적인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주로 서남해안 지역과 북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데, 평지에만 성을 쌓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인근의 야산을 끼고 함께 성을 쌓는 평산성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다만, 고려 시기 건축되어 조선 시대까지 운용된 경주읍성과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군사 중심지였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방어력은 거의 없고, 관의 통치 중심지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형식상의 성을 쌓은 것이 대다수여서 전란이 발생할 때 실질적인 방어는 인근의 산성으로 피난하여 농성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읍성은 민과 관이 함께 거주하면서 생활하는 공간으로, 읍성 내외의 거주민은 일종의 운명공동체라 할 수 있었다. 이는 영주나 귀족과 같은 지배층만 지키는 역할을 한 서양이나 일본의 성(Castle, Citadel)과는 다른 성격이었다. 전란 시 읍성 주민들은 강한 저항 의지를 가지고 의병 활동에 참여했으며, 둔전, 부병 및 징병 제도 등으로 인해 무기류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남성들이나 패잔병 등이 의병의 주력으로 활동하였다. 여성, 어린이, 장인 등은 식량 보급, 무기 및 방어구 제조, 보급을 담당하였고, 여성들도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 중요 거주지에는 규모에 상관없이 읍성이 건설되었다.

읍성은 기본적으로 토축과 석축을 병행하여 축조되었으며, 체성은 도성 축조 기법에 따라 내탁부가 토사로 경사면을 이루도록 하였다. 세종 20년에 성벽을 모두 석재로 쌓도록 하고 내탁부도 석재로 계단을 이루도록 하면서 읍성의 석축화가 진행되었으나, 이후 성이 단기간에 붕괴하는 현상이 발생하여 5년 만에 내탁부를 토사 경사면으로 축조하도록 양식이 변경되었다. 이는 조선 시대 건설된 읍성 및 다른 성곽 구조물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양식이다. 후면에 경사가 없는 석축 성벽은 병력 배치와 교체, 궁병에게 화살 보급, 대포포환과 장약 보급을 용이하게 하는 등 방어자에게 유리한 이점을 제공하였다.

2. 1. 한국의 읍성

한국의 읍성은 지방 행정부가 있는 고을에 축성되었으며, 성 안에는 관아가 있어서 행정과 군사적인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주로 서남해안 지역과 북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데, 평지에만 성을 쌓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인근의 야산을 끼고 함께 성을 쌓는 평산성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다만, 고려 시기 건축되어 조선 시대까지 운용된 경주읍성과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군사 중심지였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방어력은 거의 없고, 관의 통치 중심지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형식상의 성을 쌓은 것이 대다수여서 전란이 발생할 때 실질적인 방어는 인근의 산성으로 피난하여 농성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읍성은 민과 관이 함께 거주하면서 생활하는 공간으로, 읍성 내외의 거주민은 일종의 운명공동체라 할 수 있었다. 이는 영주나 귀족과 같은 지배층만 지키는 역할을 한 서양이나 일본의 성(Castle, Citadel)과는 다른 성격이었다. 전란 시 읍성 주민들은 강한 저항 의지를 가지고 의병 활동에 참여했으며, 둔전, 부병 및 징병 제도 등으로 인해 무기류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남성들이나 패잔병 등이 의병의 주력으로 활동하였다. 여성, 어린이, 장인 등은 식량 보급, 무기 및 방어구 제조, 보급을 담당하였고, 여성들도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 중요 거주지에는 규모에 상관없이 읍성이 건설되었다.

읍성은 기본적으로 토축과 석축을 병행하여 축조되었으며, 체성은 도성 축조 기법에 따라 내탁부가 토사로 경사면을 이루도록 하였다. 세종 20년에 성벽을 모두 석재로 쌓도록 하고 내탁부도 석재로 계단을 이루도록 하면서 읍성의 석축화가 진행되었으나, 이후 성이 단기간에 붕괴하는 현상이 발생하여 5년 만에 내탁부를 토사 경사면으로 축조하도록 양식이 변경되었다. 이는 조선 시대 건설된 읍성 및 다른 성곽 구조물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양식이다. 후면에 경사가 없는 석축 성벽은 병력 배치와 교체, 궁병에게 화살 보급, 대포포환과 장약 보급을 용이하게 하는 등 방어자에게 유리한 이점을 제공하였다.

2. 1. 1. 일제강점기의 읍성 철거

1906년 대구읍성 철거는 경상도 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였던 친일파 박중양이 주도하였다. 그는 일본인들의 주장을 등에 업고 대한제국 정부의 승인 없이 읍성을 철거했다.[1] 대한제국 정부는 박중양을 징계하려 했으나, 이토 히로부미가 그를 비호하여 징계안을 철회시켰다.[1]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읍성 철거령을 내려 전국의 거의 모든 읍성을 헐어버렸다.[1] 이는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도시 발전과 새로운 도로 건설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방어 거점을 무력화시키고 민족정신을 말살하여 식민 통치를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였다.[1] 읍성은 각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읍성을 없애는 것은 한국인들이 모일 만한 구심점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1]

이러한 읍성 철거로 인해 온전히 살아남은 읍성은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거나 일부분만 남게 되었다.[1]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한 채 남아있는 읍성은 고창읍성, 낙안읍성, 해미읍성 정도이다.[1] 고창읍성은 입구가 평지이지만 사실상 산성이었고, 낙안읍성은 성 뒤편이 산이라 읍성을 헐 명분이 없었다.[1] 해미읍성은 내부를 비우고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신사를 세우면서 살아남았다.[1]

현존하는 읍성들은 대부분 원형을 보존하지 못하고, 도시 개발로 인해 성곽 전체가 사라져 버린 경우가 많다.[1] 그나마 남아있는 경우도 성문이나 성벽 일부 구간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 다만, 읍성 내부의 마을은 지명에 '성내리', '성내동'과 같이 남아있어, 지적도상에서 읍성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1]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읍성은 관광 자원으로 인식되어 일부 구간을 복원하거나 남아있는 성벽을 활용하여 공원으로 꾸미는 경우가 있다.[1]

3. 구조 및 시설

읍성은 지방 행정부가 있는 고을에 설치되었으며, 성 안에는 관아가 있어 행정과 군사적인 기능을 겸했다. 주로 서남해안 지역과 북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데, 평지에만 성을 쌓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인근의 야산을 끼고 함께 성을 쌓는 평산성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다만 고려 시기 건축되어 조선 시대까지 운용된 경주읍성과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읍성은 기본적으로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하여 축조되었으며, 성벽은 한양도성의 축조 기법에 따라 안쪽을 흙으로 경사지게 쌓았다. 세종 20년에 성벽을 모두 돌로 쌓도록 하고 흙으로 된 경사면도 돌로 계단을 만들도록 하면서 읍성의 석축화가 진행되었으나, 이후 오히려 성이 단기간에 무너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5년 만에 안쪽 경사면을 다시 흙으로 쌓도록 양식이 변경되었다.

읍성 내부에는 객사, 아사, 향청 등 중앙 정부와 고을을 상징하는 핵심 시설들이 있었다. 이러한 시설들은 보통 읍성 중앙부에 위치했으며, 동헌, 내아 등 고을 수령의 집무실과 함께 있었다. 이 외에도 읍창, 군기고, 화약고, 환창 등의 창고 시설과 향교, 문묘, 사직단 등의 제사 시설이 읍성의 성격에 따라 설치되었다. 규모가 큰 읍성에는 읍내에 읍시(邑市)를 개설하여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방어 시설로는 성문, 치성, 옹성, 해자 등이 있었다. 성문은 역할에 따라 정문, 간문, 암문, 수문으로 구분되며, 읍성의 규모, 목적, 지형 등에 따라 그 수가 결정되었다. 치성은 성 밑으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고, 옹성은 성문 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시설이다. 해자는 성벽 주변에 땅을 파거나 자연 하천을 이용하여 만든 장애물로, 성벽의 방어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3. 1. 한국 읍성의 구조

한국의 읍성은 지방 행정부가 있는 고을에 축성되었으며, 성 안에는 관아가 있어 행정과 군사적인 기능을 겸했다. 주로 서남해안 지역과 북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데, 평지에만 성을 쌓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인근의 야산을 끼고 함께 성을 쌓는 평산성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다만 고려 시기 건축되어 조선 시대까지 운용된 경주읍성과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읍성의 축조는 기본적으로 토축과 석축을 병행하여 이루어졌으며, 체성은 도성 축조 기법에 따라 내탁부가 토사로 경사면을 이루도록 축조되었다. 그러나 세종 20년에 성벽을 모두 석재로 쌓도록 하고 토사로 이루어진 내탁부도 석재로 계단을 이루도록 하면서 읍성의 석축화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석축화 이후 오히려 성이 단기간에 붕괴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5년 만에 내탁부를 토사로 경사면을 축조하도록 양식이 다시 변경되었다.

이러한 내탁부 경사면 양식은 방어자 입장에서 매우 좋은 장점을 제공한다. 후면에 경사가 없는 석축 성벽은 성벽 위의 병력 초기 배치나 손실 병력 교체, 궁병에게 화살 보급, 대포포환과 장약 보급을 할 때 비좁은 계단을 이용해야 하지만, 경사면을 이용하면 병력 배치와 화살 및 탄약 보급이 매우 쉬워진다. 또한 파손된 화포를 통째로 교체하거나 전사상자를 후방으로 운반하여 응급처치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3. 2. 행정 시설

읍성 내부에는 중앙 정부의 왕, 고을의 수령, 고을 향민을 상징하는 핵심 시설들이 있었다. 객사, 아사, 향청이 대표적인 건물이다. 객사와 아사는 보통 읍성 중앙부에 위치했으며, 고을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과 내아 등과 함께 모여 있었다.[1]

이 외에도 읍성에는 다양한 창고 시설과 제사 시설이 있었다. 읍창, 군기고, 화약고, 환창 등의 창고 시설과 향교, 문묘, 사직단 등의 제사 시설이 읍성의 성격에 따라 설치되었다.[1]

규모가 큰 읍성에는 읍내에 시장인 읍시(邑市)를 개설하여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1]

3. 3. 방어 시설


  • 성문: 역할에 따라 정문, 간문, 암문, 수문으로 구분되며 성곽의 규모, 목적, 지형 등에 따라 그 수가 결정된다. 문의 형식은 홍예식, 평거식, 개거식이 있으며 홍예식 성문이 가장 높은 등급의 문에 해당한다.
  • 치성: 성 밑으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로 제도상 전면 15척, 좌우 각 20척을 돌출시키는 규모로 규정되어 있으며 설치시 간격은 150척마다 1개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이를 현대 단위로 환산하면 전면부 7m, 돌출 길이 9.4m이며 70m를 기본 간격으로 한다. 물론 실제 상황에 따라 치의 숫자와 간격이 조정된 경우는 많다.
  • 옹성: 공성전에서 가장 공격이 집중되고 취약한 부분인 성문을 보강하기 위한 시설로 개구부는 중앙 또는 좌, 우 한쪽으로 결정된다. 보통 50~60척 정도의 길이로 현대 기준으로는 23.4m~28m가량 되는 규모가 일반적이다. 반월형 형상과 ㄷ자 모양으로 꺾어 들어오는 형상 두 가지를 사용한 것이 일반적이다.
  • 해자: 성벽 주변에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 하천을 이용하여 장애물을 설치, 성벽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시설이다. 만일 성문 정면부에 해자가 있을 경우 별도의 교량 시설을 두도록 하고 있다.

4. 목록

다음은 현존하는 읍성의 목록이다.

국가지역읍성 이름비고
대한민국서울특별시한양도성사적 제10호, 성곽 일부와 성문(숭례문, 흥인지문)이 남아 있음.
대한민국부산광역시동래읍성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
대한민국부산광역시기장읍성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
대한민국인천광역시교동읍성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대한민국대구광역시대구읍성현재 남아있지 않음.
대한민국광주광역시광주읍성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0호, 현재 남아있지 않음.
대한민국울산광역시언양읍성사적 제153호
대한민국경기도 안산시안산읍성경기도 기념물 제127호
대한민국경기도 수원시화성사적 제3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한민국경기도 화성시수원 고읍성경기도 기념물 제93호
대한민국경상남도 사천시사천읍성경상남도 기념물 제144호
대한민국경상남도 창녕군영산읍성경상남도 기념물 제59호, 터만 남아있음.
대한민국경상남도 창원시웅천읍성경상남도 기념물 제15호, 터만 남아있음.
대한민국경상남도 하동군하동읍성사적 제453호
대한민국경상북도 경주시경주읍성사적 제96호
대한민국경상북도 성주군성주읍성
대한민국경상북도 청도군청도읍성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대한민국경상북도 포항시장기읍성사적 제386호
대한민국전라남도 강진군강진읍성전라남도 기념물 제233호
대한민국전라남도 순천시낙안읍성사적 제302호
대한민국전라남도 진도군진도읍성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대한민국전라북도 고창군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대한민국전라북도 고창군무장읍성사적 제346호
대한민국전라북도 나주시나주읍성사적 제337호, 터만 남아있음.
대한민국전라북도 남원시남원읍성사적 제298호
대한민국충청남도 보령시남포읍성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대한민국충청남도 서산시해미읍성사적 제116호
대한민국충청남도 서천군서천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2호
대한민국충청남도 서천군비인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대한민국충청남도 서천군한산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4호
대한민국충청남도 홍성군결성읍성충청남도 기념물 제165호
대한민국충청남도 홍성군홍주읍성사적 제231호



국가읍성 이름비고
레바논바알베크로마 시대 건축물을 헐어서 만든 아랍 시대 성곽 일부가 아크로폴리스와 구시가지 주변에 남아 있음.
레바논바트룬페니키아 시대에 해안에 길이 225m의 성곽을 쌓음. 기원전 9세기에 성채도 하나 지었으며,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있음.
레바논베이루트도시 중심지에서 페니키아 및 로마 시대의 성벽 및 오스만 시기의 성채가 발굴됨. 파크르알딘 2세가 큰 읍성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음.
레바논비블로스구시가지가 중세 시절 읍성으로 둘러싸여 있음. 읍성벽 남쪽 가장자리에 성관도 하나 있음.
레바논시돈성왕 루이 성관을 제외하면 거의 남아있지 않음.



국가읍성 이름비고
말레이시아말라카코타 아 파모사. 1511년 말라카를 점령한 포르투갈인들이 읍성을 축조. 1806년 영국인들이 헐었음.



국가읍성 이름
베트남꼴로아
베트남하노이
베트남후에
베트남박닌
베트남



국가읍성 이름비고
스리랑카갈 요새.
스리랑카마타라마타라 요새.



국가읍성 이름
시리아알레포
시리아다마스쿠스
시리아홈스



국가읍성 이름
아프가니스탄발흐



국가읍성 이름
예멘사나
예멘시밤



국가읍성 이름
우즈베키스탄부하라
우즈베키스탄히바
우즈베키스탄사마르칸트



국가읍성 이름
이라크바빌론
이라크바그다드
이라크바스라
이라크아르빌



국가읍성 이름
이란
이란이스파한
이란시라즈
이란타브리즈
이란야즈드



국가읍성 이름
이스라엘아크레
이스라엘예루살렘예루살렘성
이스라엘자파
이스라엘사페드
이스라엘티베리아스



국가읍성 이름비고
인도아그라
인도아흐메다바드
인도암라바티
인도암리차르
인도다티아
인도델리
인도돌라비라
인도하이데라바드
인도자이푸르
인도자이살메르자이살메르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도조드푸르
인도루크노우
인도뭄바이
인도라이가드
인도우다이푸르
인도와랑갈
인도첸나이
인도모우



국가읍성 이름비고
인도네시아욕야카르타18세기에 은가욕야카르타 하디닝그라트 왕국의 하멩쿠부와노 1세가 네덜란드로부터 수도를 지키기 위해 축성. 현재 읍성의 96% 정도가 보존.
인도네시아수라카르타1754년 2월 17일 수라카트라 왕국이 수도를 옮기면서 길이 15km의 성곽을 쌓음. 현재 90%가 보존.
인도네시아수로소완반텐 왕국의 수도였음.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에 파괴되어 10% 정도만 남아 있음.
인도네시아트로울란마자파히트 제국의 수도였음. 마자파히트의 전성기였던 13-15세기에 성곽과 운하, 도로를 갖춘 유럽식 읍성을 갖추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남아있지 않음.



국가지역읍성 이름비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평양직할시평양성성문(보통문)이 남아 있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평안북도 영변군영변읍성



국가읍성 이름
중화민국장화 시
중화민국자이 시
중화민국펑산 구
중화민국헝춘 진
중화민국신주 시
중화민국마궁 시
중화민국푸리 진
중화민국진먼 현
중화민국타이난시
중화민국타이베이시
중화민국쭤잉 구



국가읍성 이름비고
중화인민공화국베이징 시베이징성. 1960년대에 도시를 확장하면서 대부분 헐림.
중화인민공화국다리 시
중화인민공화국젠수이 현
중화인민공화국장저우 시
중화인민공화국난징시난징성.
중화인민공화국취푸 시
중화인민공화국핑야오 현핑야오 고성.
중화인민공화국상하이 시일부만 남아 있음.
중화인민공화국쑹판 현
중화인민공화국시안시시안성벽.
중화인민공화국정딩 현



국가읍성 이름
타이아유타야
타이방콕
타이치앙마이
타이치앙라이
타이치앙센
타이캄파엥페트
타이람빵
타이람푼
타이롭부리
타이나콘랏차시마
타이나콘시탐마랏
타이
타이피찰
타이파야오
타이피마이
타이핏사눌록
타이프래
타이시삿차날라이
타이송클라
타이수코타이
타이수판부리
타이톤부리
타이위앙쿰캄



국가읍성 이름
파키스탄하이데라바드
파키스탄라호레라호레 읍성.
파키스탄물탄
파키스탄페샤와르



국가읍성 이름
팔레스타인예리코



국가읍성 이름비고
필리핀세부산페드로 요새.
필리핀마닐라인트라무로스.
필리핀올롱가포
필리핀오사미스
필리핀삼보앙가필라르 요새.



국가읍성 이름
나이지리아베닌
나이지리아카노
나이지리아케피



국가읍성 이름
니제르진데르



국가읍성 이름
리비아아폴로니아
리비아벵가지
리비아키레네
리비아데르나
리비아게르마
리비아가다메스
리비아가트
리비아자그부브
리비아카바우
리비아무르주크
리비아날루트
리비아소크나
리비아톨메이타
리비아트리폴리
리비아와단



국가읍성 이름
말리드제네
말리가오
말리팀북투



국가읍성 이름비고
모로코아가디르
모로코아이트벤하두유네스코 세계유산.
모로코아실라
모로코아제무르
모로코카사블랑카
모로코셰프샤우엔
모로코엘자디다
모로코에사우이라
모로코페스
모로코카사르엘케비르
모로코카사르엘사기르
모로코라라슈
모로코마라케시
모로코메크네스
모로코물라이이드리스
모로코우아르자자트
모로코우지다
모로코라바트
모로코사피
모로코살레
모로코세프루
모로코탕헤르
모로코타루단트모로코에서 읍성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2]
모로코타자
모로코테투안
모로코티즈니트



국가읍성 이름
알제리알제
알제리가르다이아
알제리티미모운



국가읍성 이름
에티오피아하라르



국가읍성 이름
이집트카이로
이집트알푸스타트
이집트다미에타



국가읍성 이름
짐바브웨그레이트 짐바브웨



국가읍성 이름
튀니지튀니스
튀니지수스
튀니지스팍스
튀니지카이르완



국가읍성 이름비고
도미니카 공화국산토도밍고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읍성이 존재했고, 현재 성곽 일부와 성문이 남아 있음.



국가읍성 이름비고
멕시코멕시코시티
멕시코툴룸
멕시코캄페체
멕시코베라크루스19세기에 성곽들은 헐리고 보루들만 남아 있음.[3]



국가도시비고
미국매사추세츠주보스턴1631년부터 18세기 말까지 보스턴 지협에 방벽을 쌓고 성문을 달았음.
미국사우스캐롤라이나주찰스턴1690년대부터 1720년대까지 읍성이 있었음. 성곽 일부가 남아 있음.
미국플로리다주세인트오거스틴1704년 에스파냐인들이 도시 전체를 감싸는 성곽을 축조.[4]
미국루이지애나주뉴올리언스1718년 읍성이 있는 성곽도시로 설계됨. 뉴올리언스 전투 때도 읍성이 있었으나 방어시설로서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되지는 않았음.[5][6]



국가읍성 이름
칠레발디비아



국가읍성 이름비고
캐나다퀘벡퀘벡 성곽. 멕시코 이북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읍성 성곽. 캐나다 국립사적지.
캐나다몬트리올구 항구 주변으로 거의 다 허물어진 잔해 일부만 남아 있음.



국가읍성 이름
콜롬비아카르타헤나



국가읍성 이름
쿠바아바나



국가읍성 이름비고
파나마파나마구시가지에 성곽 일부가 남아 있음.[7]



국가읍성 이름
페루리마
페루트루히요



국가읍성 이름
푸에르토리코산후안


4. 1. 한국

조선시대 지방 행정부가 있던 고을에는 읍성이 축성되었으며, 성 안에는 관아가 있어 행정과 군사적인 기능을 겸했다. 읍성은 주로 서남해안 지역과 북부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평지에만 성을 쌓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인근의 야산을 끼고 함께 성을 쌓는 평산성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다만 고려시대 건축되어 조선시대까지 운용된 경주읍성과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읍성은 백성과 관청이 함께 거주하면서 생활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읍성 내외의 거주민은 일종의 운명공동체라 할 수 있었다. 이는 영주나 귀족과 같은 지배층만 지키는 역할을 한 서양이나 일본의 성과는 다른 성격의 방어시설이었다.

읍성의 축조는 기본적으로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하여 이루어졌으며, 성벽은 서울 한양도성 축조기법에 따라 안쪽을 흙으로 경사지게 쌓았다. 그러나 세종 20년에 성벽을 모두 돌로 쌓도록 하고 흙으로 이루어진 안쪽도 돌로 계단을 이루도록 하면서 읍성의 석축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석축화 이후 오히려 성이 단기간에 붕괴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5년 만에 안쪽을 흙으로 경사지게 쌓도록 양식이 다시 변경되었다. 이러한 양식은 조선시대 건설된 읍성 및 다른 대다수 성곽 구조물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양식이다.

후면에 경사가 없는 석축성벽은 성벽 위의 병력 초기 배치나 손실 대처를 위한 병력 교체를 실시하거나 궁병에게 화살을, 대포포환과 장약을 보급하는데에 매우 유리하다.

다음은 현존하는 읍성 목록이다.

  • 서울 한양도성 : 엄밀히 말하면 왕성으로 읍성의 등급은 아니다.
  • 수원 화성 : 본래 수원읍성은 다른 곳(현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었으나 화성 건설로 읍치가 이쪽으로 옮겨졌다. 이쪽은 왕이 오갈 수 있는 행궁이 있어서 일반적인 읍성이 아닌 행재성이라는 별도의 등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 진주성 : 읍성의 명칭은 붙어있지 않지만 읍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형태상으로는 산성에 더 가까우며 군사적 목적으로도 함께 사용된 병영성에 해당한다.
  • 공주 공산성 : 이름은 산성이지만 당시 공주 일대의 행정, 군사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하였다.
  • 남한산성 : 숙종 이후 광주부를 광주유수부로 승격하고 유수부 관아를 아예 산성 안으로 옮겨버렸다. 남한산성 행궁에 있는 집무실이 바로 그것이다.
  • 고창읍성
  • 순천 낙안읍성
  • 서산 해미읍성

4. 2. 아시아

서울 성곽(한양도성의 잔해)


해미읍성.


국가지역읍성 이름비고
대한민국서울특별시한양도성사적 제10호, 성곽 일부와 성문(숭례문, 흥인지문)이 남아 있음.
대한민국부산광역시동래읍성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
대한민국부산광역시기장읍성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
대한민국인천광역시교동읍성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대한민국대구광역시대구읍성현재 남아있지 않음.
대한민국광주광역시광주읍성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0호, 현재 남아있지 않음.
대한민국울산광역시언양읍성사적 제153호
대한민국경기도 안산시안산읍성경기도 기념물 제127호
대한민국경기도 수원시화성사적 제3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한민국경기도 화성시수원 고읍성경기도 기념물 제93호
대한민국경상남도 사천시사천읍성경상남도 기념물 제144호
대한민국경상남도 창녕군영산읍성경상남도 기념물 제59호, 터만 남아있음.
대한민국경상남도 창원시웅천읍성경상남도 기념물 제15호, 터만 남아있음.
대한민국경상남도 하동군하동읍성사적 제453호
대한민국경상북도 경주시경주읍성사적 제96호
대한민국경상북도 성주군성주읍성
대한민국경상북도 청도군청도읍성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대한민국경상북도 포항시장기읍성사적 제386호
대한민국전라남도 강진군강진읍성전라남도 기념물 제233호
대한민국전라남도 순천시낙안읍성사적 제302호
대한민국전라남도 진도군진도읍성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대한민국전라북도 고창군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대한민국전라북도 고창군무장읍성사적 제346호
대한민국전라북도 나주시나주읍성사적 제337호, 터만 남아있음.
대한민국전라북도 남원시남원읍성사적 제298호
대한민국충청남도 보령시남포읍성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대한민국충청남도 서산시해미읍성사적 제116호
대한민국충청남도 서천군서천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2호
대한민국충청남도 서천군비인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대한민국충청남도 서천군한산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4호
대한민국충청남도 홍성군결성읍성충청남도 기념물 제165호
대한민국충청남도 홍성군홍주읍성사적 제231호



국가읍성 이름비고
레바논바알베크로마 시대 건축물을 헐어서 만든 아랍 시대 성곽 일부가 아크로폴리스와 구시가지 주변에 남아 있음.
레바논바트룬페니키아 시대에 해안에 길이 225m의 성곽을 쌓음. 기원전 9세기에 성채도 하나 지었으며,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있음.
레바논베이루트도시 중심지에서 페니키아 및 로마 시대의 성벽 및 오스만 시기의 성채가 발굴됨. 파크르알딘 2세가 큰 읍성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음.
레바논비블로스구시가지가 중세 시절 읍성으로 둘러싸여 있음. 읍성벽 남쪽 가장자리에 성관도 하나 있음.
레바논시돈성왕 루이 성관을 제외하면 거의 남아있지 않음.



국가읍성 이름비고
말레이시아말라카코타 아 파모사. 1511년 말라카를 점령한 포르투갈인들이 읍성을 축조. 1806년 영국인들이 헐었음.



국가읍성 이름
베트남꼴로아
베트남하노이
베트남후에
베트남박닌
베트남



국가읍성 이름비고
스리랑카갈 요새.
스리랑카마타라마타라 요새.



국가읍성 이름
시리아알레포
시리아다마스쿠스
시리아홈스



국가읍성 이름
아프가니스탄발흐



국가읍성 이름
예멘사나
예멘시밤



국가읍성 이름
우즈베키스탄부하라
우즈베키스탄히바
우즈베키스탄사마르칸트



국가읍성 이름
이라크바빌론
이라크바그다드
이라크바스라
이라크아르빌



국가읍성 이름
이란
이란이스파한
이란시라즈
이란타브리즈
이란야즈드



국가읍성 이름
이스라엘아크레
이스라엘예루살렘예루살렘성
이스라엘자파
이스라엘사페드
이스라엘티베리아스



자이살메르성.


국가읍성 이름비고
인도아그라
인도아흐메다바드
인도암라바티
인도암리차르
인도다티아
인도델리
인도돌라비라
인도하이데라바드
인도자이푸르
인도자이살메르자이살메르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도조드푸르
인도루크노우
인도뭄바이
인도라이가드
인도우다이푸르
인도와랑갈
인도첸나이
인도모우



국가읍성 이름비고
인도네시아욕야카르타18세기에 은가욕야카르타 하디닝그라트 왕국의 하멩쿠부와노 1세가 네덜란드로부터 수도를 지키기 위해 축성. 현재 읍성의 96% 정도가 보존.
인도네시아수라카르타1754년 2월 17일 수라카트라 왕국이 수도를 옮기면서 길이 15km의 성곽을 쌓음. 현재 90%가 보존.
인도네시아수로소완반텐 왕국의 수도였음.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에 파괴되어 10% 정도만 남아 있음.
인도네시아트로울란마자파히트 제국의 수도였음. 마자파히트의 전성기였던 13-15세기에 성곽과 운하, 도로를 갖춘 유럽식 읍성을 갖추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남아있지 않음.



국가지역읍성 이름비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평양직할시평양성성문(보통문)이 남아 있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평안북도 영변군영변읍성



국가읍성 이름
중화민국장화 시
중화민국자이 시
중화민국펑산 구
중화민국헝춘 진
중화민국신주 시
중화민국마궁 시
중화민국푸리 진
중화민국진먼 현
중화민국타이난시
중화민국타이베이시
중화민국쭤잉 구



시안성벽망루.


국가읍성 이름비고
중화인민공화국베이징 시베이징성. 1960년대에 도시를 확장하면서 대부분 헐림.
중화인민공화국다리 시
중화인민공화국젠수이 현
중화인민공화국장저우 시
중화인민공화국난징시난징성.
중화인민공화국취푸 시
중화인민공화국핑야오 현핑야오 고성.
중화인민공화국상하이 시일부만 남아 있음.
중화인민공화국쑹판 현
중화인민공화국시안시시안성벽.
중화인민공화국정딩 현



국가읍성 이름
타이아유타야
타이방콕
타이치앙마이
타이치앙라이
타이치앙센
타이캄파엥페트
타이람빵
타이람푼
타이롭부리
타이나콘랏차시마
타이나콘시탐마랏
타이
타이피찰
타이파야오
타이피마이
타이핏사눌록
타이프래
타이시삿차날라이
타이송클라
타이수코타이
타이수판부리
타이톤부리
타이위앙쿰캄



국가읍성 이름
파키스탄하이데라바드
파키스탄라호레라호레 읍성.
파키스탄물탄
파키스탄페샤와르



국가읍성 이름
팔레스타인예리코



인트라무로스.


국가읍성 이름비고
필리핀세부산페드로 요새.
필리핀마닐라인트라무로스.
필리핀올롱가포
필리핀오사미스
필리핀삼보앙가필라르 요새.



국가읍성 이름
나이지리아베닌
나이지리아카노
나이지리아케피



국가읍성 이름
니제르진데르



국가읍성 이름
리비아아폴로니아
리비아벵가지
리비아키레네
리비아데르나
리비아게르마
리비아가다메스
리비아가트
리비아자그부브
리비아카바우
리비아무르주크
리비아날루트
리비아소크나
리비아톨메이타
리비아트리폴리
리비아와단



국가읍성 이름
말리드제네
말리가오
말리팀북투



아이트벤하두.


에사우이라.


국가읍성 이름비고
모로코아가디르
모로코아이트벤하두유네스코 세계유산.
모로코아실라
모로코아제무르
모로코카사블랑카
모로코셰프샤우엔
모로코엘자디다
모로코에사우이라
모로코페스
모로코카사르엘케비르
모로코카사르엘사기르
모로코라라슈
모로코마라케시
모로코메크네스
모로코물라이이드리스
모로코우아르자자트
모로코우지다
모로코라바트
모로코사피
모로코살레
모로코세프루
모로코탕헤르
모로코타루단트모로코에서 읍성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2]
모로코타자
모로코테투안
모로코티즈니트



국가읍성 이름
알제리알제
알제리가르다이아
알제리티미모운



국가읍성 이름
에티오피아하라르



국가읍성 이름
이집트카이로
이집트알푸스타트
이집트다미에타



국가읍성 이름
짐바브웨그레이트 짐바브웨



국가읍성 이름
튀니지튀니스
튀니지수스
튀니지스팍스
튀니지카이르완



퀘벡 성곽.


카르타헤나 읍성 성곽.


국가읍성 이름비고
도미니카 공화국산토도밍고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읍성이 존재했고, 현재 성곽 일부와 성문이 남아 있음.



국가읍성 이름비고
멕시코멕시코시티
멕시코툴룸
멕시코캄페체
멕시코베라크루스19세기에 성곽들은 헐리고 보루들만 남아 있음.[3]



국가도시비고
미국매사추세츠주보스턴1631년부터 18세기 말까지 보스턴 지협에 방벽을 쌓고 성문을 달았음.
미국사우스캐롤라이나주찰스턴1690년대부터 1720년대까지 읍성이 있었음. 성곽 일부가 남아 있음.
미국플로리다주세인트오거스틴1704년 에스파냐인들이 도시 전체를 감싸는 성곽을 축조.[4]
미국루이지애나주뉴올리언스1718년 읍성이 있는 성곽도시로 설계됨. 뉴올리언스 전투 때도 읍성이 있었으나 방어시설로서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되지는 않았음.[5][6]



국가읍성 이름
칠레발디비아



국가읍성 이름비고
캐나다퀘벡퀘벡 성곽. 멕시코 이북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읍성 성곽. 캐나다 국립사적지.
캐나다몬트리올구 항구 주변으로 거의 다 허물어진 잔해 일부만 남아 있음.



국가읍성 이름
콜롬비아카르타헤나



국가읍성 이름
쿠바아바나



국가읍성 이름비고
파나마파나마구시가지에 성곽 일부가 남아 있음.[7]



국가읍성 이름
페루리마
페루트루히요



국가읍성 이름
푸에르토리코산후안


4. 3. 아프리카



국가읍성
나이지리아베닌, 카노, 케피
니제르진데르
리비아아폴로니아, 벵가지, 키레네, 데르나, 게르마, 가다메스, 가트, 자그부브, 카바우, 무르주크, 날루트, 소크나, 톨메이타, 트리폴리, 와단
말리드제네, 가오, 팀북투
모로코아가디르, 아이트벤하두(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실라, 아제무르, 카사블랑카, 셰프샤우엔, 엘자디다, 에사우이라, 페스, 카사르엘케비르, 카사르엘사기르, 라라슈, 마라케시, 메크네스, 물라이이드리스, 우아르자자트, 우지다, 라바트, 사피, 살레, 세프루, 탕헤르, 타루단트(모로코에서 읍성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2]), 타자, 테투안, 티즈니트
알제리알제, 가르다이아, 티미모운
에티오피아하라르
이집트카이로, 알푸스타트, 다미에타
짐바브웨그레이트 짐바브웨
튀니지튀니스, 수스, 스팍스, 카이르완


4. 4. 아메리카


  • '''''' 산토도밍고: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읍성이 존재했고, 현재 성곽 일부와 성문이 남아 있다.

  • ''''''
  • * 보스턴: 1631년부터 18세기 말까지 보스턴 지협에 방벽을 쌓고 성문을 달았다.
  • * 찰스턴: 1690년대부터 1720년대까지 읍성이 있었다. 성곽 일부가 남아 있다.
  • * 세인트오거스틴: 1704년 에스파냐인들이 도시 전체를 감싸는 성곽을 축조했다.[4]
  • * 뉴올리언스: 1718년 읍성이 있는 성곽도시로 설계되었다. 뉴올리언스 전투 때도 읍성이 있었으나 방어시설로서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되지는 않았다.[5][6]

  • ''''''
  • * 퀘벡: 퀘벡 성곽. 멕시코 이북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읍성 성곽이다. 캐나다 국립사적지.
  • * 몬트리올: 구 항구 주변으로 거의 다 허물어진 잔해 일부만 남아 있다.

  • '''''' 파나마: 구시가지에 성곽 일부가 남아 있다.[7]

참조

[1] 웹인용 읍성론(邑城論) http://www.cultureco[...] 문화콘텐츠닷컴 2018-04-16
[2] 웹인용 12 Impressive Walled Cities in the World http://www.touropia.[...] 2012-12-09
[3] 웹인용 Baluarte de Santiago https://web.archive.[...] Fodor's 2009-10-30
[4] 웹사이트 http://www.nps.gov/n[...]
[5] 웹사이트 New Orleans before the battle The Battle of New Orleans December 1814 - January 8, 1815 http://battleofnewor[...] 2016-09-04
[6] 서적 New Orleans City Guide https://books.google[...] Garrett County Press 2011-08-15
[7] 서적 UNESCO Guides: Panamá la Vieja and Casco Viejo UNESCO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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