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 베레니키아누스
1. 개요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 베레니키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속국이었던 케티스 왕국에서 태어난 인물로, 유대인, 나바테아인, 에돔인 등 다양한 혈통을 지녔다. 그는 로마 원로원에 진출하여 보궐 집정관과 아시아 속주의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카시아 레피다와 결혼하여 율리아 카시아 알렉산드라를 두었다. 베레니키아누스는 헤로데 왕조의 후손이며, 3세기의 찬탈자 요타피아누스의 가능한 조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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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 베레니키아누스 |
|---|---|
| 원어 이름 | Γαίος Ιούλιος Αλέξανδρος Βερενικιανός그리스어 |
| 출생 | 기원후 75년경 |
| 사망 | 기원후 150년경 |
| 직함 | 원로원 의원 보좌 집정관 아시아 속주 총독 |
|---|---|
| 왕조 | 헤로데 왕조 |
| 배우자 | 카시아 레피다 |
|---|---|
| 자녀 | 율리아 카시아 알렉산드라 |
| 아버지 |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 |
| 어머니 | 율리아 이오타파 (안티오코스 4세의 딸) |
-
150년대 사망 -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로마 제정 시대 아니우스 가문 출신의 귀족 여성으로, 가이우스 안니아누스 베루스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으며, 남편은 로마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움미디우스 가문 출신이다. -
2세기 로마인 -
아풀레이우스
아풀레이우스는 로마 제국 시대 북아프리카 출신의 작가이자 철학자, 웅변가로, 『황금 당나귀』라는 소설과 뛰어난 변론 능력으로 유명하며, 플라톤 철학 연구와 신플라톤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
2세기 로마인 -
폼페이아 플로티나
폼페이아 플로티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아내이자 하드리아누스 즉위에 영향을 미쳤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를 후원하고 황제 숭배 대상이 된 로마 황후이다. -
1세기 로마인 -
티투스 리비우스
티투스 리비우스는 《로마 건국사》를 저술한 로마의 역사가로, 파타비움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활동하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친분을 맺었고, 그의 작품은 로마 영웅주의를 강조하는 서사적 특징을 지닌 라틴 문학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
1세기 로마인 -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의 저서는 현존하는 유일한 고대 문헌 자료로, 일부 학자들은 정치적 이유로 그의 생전에는 원고가 출판되지 못하고 사후에 황제가 보관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생애
베레니키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속국이었던 케티스 왕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 왕국은 과거 그의 카파도키아 왕족 조상과 외조부 코마게네의 안티오코스 4세가 통치했던 킬리키아 지역에 위치했으며, 엘라이우사 세바스테 시를 포함했다. 그의 부모인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6세와 오프갈리는 58년 로마에서 결혼한 후, 로마 황제 네로에 의해 케티스의 군주로 임명되어 그 지역을 다스렸다. 베레니키아누스는 케티스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의 가계는 유대인, 나바테아인, 에돔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메디아인,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민족의 혈통이 섞여 있었으며, 헤로데 왕조를 포함한 여러 유력 가문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현존하는 비문들은 그의 가문이 아시아 지역의 유대인 및 비유대인 귀족들과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유대교를 버린 배교자였으며, 유대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로마에서 그는 성공적인 정치 경력을 쌓았다. 94년에는 로마 원로원 의원이 되었고, 116년에는 보궐 집정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132년부터 133년까지 아시아 속주의 집정관을 지냈는데, 이 기간 동안 예술 후원 활동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BCH 1, 1877, 291, no. 80 그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직계 후손인 카시아 레피다와 결혼하여 후손을 두었다.
2.1. 가계
베레니키아누스는 유대인, 나바테아인, 에돔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메디아인,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그의 이름은 헤로데 왕조와의 가족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6세 왕이며, 어머니는 오프갈리이다. 아버지를 통해 그는 카파도키아의 아르켈라오스 왕, 유대 왕 헤로데 대왕과 그의 아내 마리암네의 후손이기도 하다. 베레니키아누스는 그의 가족 및 아버지 쪽 친척들과 함께 헤로데 왕조의 마지막으로 알려진 후손 중 하나였다. 그는 유대교를 버린 배교자였으며, 유대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외조부모는 코마게네의 안티오코스 4세 왕과 율리아 요타파 여왕이다.
베레니키아누스는 카시아 레피다(약 80년 출생)와 결혼했다. 카시아 레피다는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와 유니아 레피다의 아들인 카시우스 레피두스의 딸이다. 카시아는 그녀의 아버지와 아버지 쪽 할머니를 통해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직계 후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율리아 카시아 알렉산드라(약 105년 출생)가 있었다. 율리아 카시아 알렉산드라는 가이우스 아비디우스 헬리오도루스(약 100년 출생)와 결혼했다. 헬리오도루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ab epistulis(황제의 서신 담당 비서)였으며, 138년부터 140년까지 이집트 속주의 총독(프라펙투스 아이깁티)을 지냈다. 헬리오도루스와 알렉산드라 사이에는 아비디우스 카시우스를 포함한 자녀들이 있었다.
베레니키아누스의 가능한 후손으로는 3세기의 로마 황제 찬탈자였던 요타피아누스가 있다.
2.2. 로마에서의 경력
현존하는 비문을 통해 베레니키아누스의 경력을 알 수 있다. 그는 94년에 아그리파와 함께 로마 원로원에 들어갔으며, 116년에는 보궐 집정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132년부터 133년까지 아시아 속주의 집정관을 지냈는데, 이 시기에 예술 후원 활동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BCH 1, 1877, 291, no. 80
2.3. 결혼과 후손
그는 카시우스 레피두스(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와 유니아 레피다의 아들)의 딸인 Cassia Lepida라틴어(약 80년 출생)와 결혼했다. 카시아 레피다는 그녀의 아버지와 아버지 쪽 할머니를 통해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직계 후손이었다.
베레니키아누스와 카시아 레피다는 Julia Cassia Alexandra라틴어(약 105년 출생)라는 딸을 두었다. 율리아 카시아 알렉산드라는 {{lang (약 100년 출생)와 결혼했다. 헬리오도루스는 황제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ab epistulis라틴어 직책을 맡았으며, 138년부터 140년까지 이집트 총독({{lang)을 지냈다. 헬리오도루스와 알렉산드라는 {{lang를 포함한 자녀들을 두었다.
베레니키아누스의 가능한 후손으로는 3세기의 찬탈자 {{lang가 있다.
3. 헤로데 왕조 가계도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 베레니키아누스의 가계는 헤로데 왕조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는 유대인, 나바테아인, 에돔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메디아인,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혈통을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6세 왕이며, 어머니는 오프갈리이다. 아버지 티그라네스 6세를 통해 베레니키아누스는 카파도키아의 아르켈라오스 왕과 헤로데 대왕, 그리고 헤로데 대왕의 두 번째 아내인 마리암네의 후손이 된다. 이를 통해 그는 헤로데 왕조의 혈통을 잇고 있으며, 그의 조카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파와 함께 헤로데 왕조의 마지막 알려진 후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베레니키아누스라는 이름 자체도 그가 헤로데 왕조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의 외조부모는 코마게네의 안티오코스 4세 왕과 율리아 요타파 여왕이다.
3.1. 주요 인물
이두매 출신 안티파테르는 유대 총독이었다. 헤로데 대왕은 유대 왕이었다. 파사엘은 예루살렘 총독이었다.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5세는 아르메니아의 왕이었으며, 헤로데 대왕의 증손자였다. 헤로데 아그리파 1세는 유대 왕이었으며, 헤로데 대왕의 손자였다. 헤로데 5세는 칼키스 통치자였으며, 헤로데 대왕의 손자였다.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6세는 아르메니아의 왕이었으며, 티그라네스 5세의 아들이자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 베레니키아누스의 아버지였다. 헤로데 아그리파 2세는 유대 왕이었으며, 헤로데 아그리파 1세의 아들이었다. 아리스토불루스는 칼키스 통치자였으며, 칼키스의 헤로데의 아들이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는 킬리키아 통치자였으며, 티그라네스 6세의 아들이자 베레니키아누스의 형제였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파는 로마의 아시아 퀘스토르였으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의 아들이었다. 루키우스 율리우스 가이우스 파비우스 아그리파는 김나시아크였으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파의 아들이었다.
헤로데 왕조에는 파사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주요 인물이 있으며, 모두 요세푸스의 저작 "유대 전쟁사"(BJ)와 "유대 고대사"(AJ)에서 언급된다. 첫 번째 파사엘은 이두매 출신 안티파테르와 키프로스의 아들이다 (BJ 1.181; AJ 14.121). 두 번째 파사엘은 첫 번째 파사엘의 아들이다 (BJ 1.266; AJ 17.196). 세 번째 파사엘은 헤로데 대왕의 아들 (BJ 1.181; AJ 14.121)이자 키프로스의 아버지이며, 키프로스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의 아내였다.
3.2. 가계도 (도표)
* 이두매 출신 안티파테르 (유대 총독)
헤로데 1세 대왕 (유대 왕)
* (1) 안티파테르 (유대 계승자)
* (2) 알렉산더 1세 (유대 왕자)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5세
*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6세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 (킬리키아 통치자)
*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파 (아시아 퀘스토르)
루키우스 율리우스 가이우스 파비우스 아그리파 (김나시아크)
*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데르 베레니키아누스 (아시아 총독)
알렉산더 2세 (유대 왕자)
* (2) 아리스토불루스 4세 (유대 왕자)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유대 왕)
* 헤로데 아그리파 2세 (유대 왕)
칼키스의 헤로데 (칼키스 통치자)
* 아리스토불루스 (칼키스 통치자)
아리스토불루스 마이너
* (3) 헤로데 2세 필립 (유대 왕자)
* (4) 헤로데 안티파스 (갈릴리와 페레아의 영주)
* (4) 헤로데 아르켈라오스 (유대, 이두매 족장)
* (5) 필립 테트라크 (이투레아 및 트라코니티스)
파사엘 (예루살렘 총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