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정공주
1. 개요
경정공주는 조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둘째 딸로, 1401년에 경정공주에 봉해졌다. 1403년 조대림과 혼인하여 1남 4녀를 두었으며, 남편 조대림은 역모 누명을 쓰기도 했다. 1418년에는 오빠인 양녕대군의 기생과의 스캔들과 관련된 일에 연루되었으며, 1455년에 사망했다. 현재의 소공동은 경정공주와 조대림에게 하사된 남별궁이 있던 곳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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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 사망 -
프라 안젤리코
프라 안젤리코는 르네상스 초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도미니크 수도회 수사로,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특징을 아우르는 섬세한 색채, 고요한 분위기,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종교화를 다수 제작하여 가톨릭 예술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
1455년 사망 -
최사유
최사유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39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02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익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영원군에 봉해졌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경정공주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이다. 출생년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1401년(태종 1년)에 경정공주(慶貞公主)로 봉해졌으며, 실록에는 정경공주(貞慶公主)로도 기록되어 있다.
1403년(태종 3년) 9월, 개국공신 조준의 아들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과 혼인하여 1남 4녀를 두었다. 당시 조대림은 모친상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명나라에서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할 것을 우려한 태종이 서둘러 결혼을 추진하였다.
1408년(태종 8년), 남편 조대림이 목인해의 무고로 역모 누명을 쓰고 곤장을 맞았으나, 무고함이 밝혀져 목인해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1418년(태종 18년), 양녕대군이 사랑한 기생 어리가 세자의 아이를 낳자, 유모를 구해 세자궁에 보내주었다.
1430년(세종 12년) 남편 조대림이 사망하였다. 1455년 6월 6일에 경정공주가 사망하자 단종은 쌀과 콩 50석, 종이 100권을 부조하였다.
2.2. 공주 시절
1401년(태종 1년), 경정공주(慶貞公主)에 봉해졌다. 실록에는 정경공주(貞慶公主)로도 기록되어 있다.
1403년(태종 3년) 9월, 개국공신인 조준의 아들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과 혼인하였고 이후 1남 4녀를 낳았다. 혼인 당시 조대림은 모친상을 당한 지 넉 달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명나라에서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하려 하고 있었기에 태종은 서둘러 공주를 결혼시켰다.
1408년(태종 8년), 남편 조대림이 목인해의 무고로 인해 역모를 꾀했다는 누명을 쓰고 곤장 64대를 맞는 일이 발생하였다. 조대림의 무고함이 밝혀진 후 목인해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1418년(태종 18년), 세자(양녕대군)가 곽선의 첩인 기생 어리(於里)를 사랑하여 몰래 궁중에 들였다가 태종에 의해 쫓겨난 일이 있었다. 이후 어리가 임신하여 세자의 아이를 낳자, 경정공주는 유모를 구해 세자궁에 보내주었다.
1430년(세종 12년) 남편 조대림이 사망하였다.
2.3. 사망
1455년 6월 6일에 사망하였다. 단종은 쌀과 콩 50석, 종이 100권을 부조하였다.
3. 소공동 지명의 유래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小公洞)은 태종이 경정공주와 조대림에게 하사한 남별궁(南別宮)이 있던 곳이다. 한성부 남부 회현방에 위치하였으며, '작은 공주골', 소공주제(小公主第), 소공주댁(小公主宅) 등으로 불렸다. 이후 선조가 의안군에게 하사하여 소공주동궁(小公主洞宮)으로 불렸다. 여기서 오늘날의 소공동(小公洞)이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4. 가족 관계
경정공주의 둘째 사위 김중엄은 누이 휘빈 김씨가 문종의 세자빈이었으나 투기와 미신 행위 등으로 폐위되자 아버지 김오문과 함께 파면되었다. 김중엄의 아내인 둘째 딸 조씨는 이웃집에 초상이 나면 불길함을 쫓기 위해 쑥대로 만든 화살(봉시)을 목호에 끼워 지붕 위에 두었는데, 그 방향이 세종의 빈소를 향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직첩을 박탈당했다. 김중엄과 조씨의 딸이자 경정공주의 외손녀 김씨는 인수대비의 사촌 오빠 한충인과 혼인하였는데, 중종 비 단경왕후의 외조모이기도 하다.
경정공주의 자녀들은 경정공주 사후 노비와 전답 분배 문제로 다투는 등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4.1. 부계
* 조부: 태조 (1335~1408)
* 조모: 신의왕후 한씨 (1337~1391)
* 아버지: 태종 (1367~1422)
* 외조부: 여흥부원군 민제 (1339~1408)
* 외조모: 삼한국대부인 여산 송씨 (1342~1424)
*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 (1365~1420)
4.2. 모계
4.3. 형제자매
* 언니: 정순공주(1385~1460)
* 동생: 경안공주(1393~1415)
* 동생: 양녕대군(1394~1462)
* 동생: 효령대군(1396~1486)
* 동생: 세종(1397~1450)
* 동생: 정선공주(1404~1424)
* 동생: 성녕대군(1405~1418)
4.4. 배우자와 자녀
경정공주의 남편은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대림(趙大臨, 1387~1430)이며, 시아버지는 조준(趙浚, 1346∼1405), 시어머니는 고성 이씨(固城 李氏, 1361~1403)이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 자녀 | 이름 | 관계 | 비고 |
|---|---|---|---|
| 장녀 | 순흥 안씨 안진(安進)의 처 | 슬하 6남 1녀 | * 손자: 안잉(安扔, 1444 ~ ?), 안부(安拊), 안의(安㩘), 안륜(安掄), 안근(安㨷), 안탁(安擢) |
| 차녀 | 구 안동 김씨 김중엄(金仲淹)의 처 | 슬하 2남 1녀 | * 손자: 김선(金線), 김뉴(金紐) |
| 3녀 | 양주 조씨 감찰(監察) 조찬(趙瓚)의 처 | 슬하 2남 2녀 | * 손자: 조준(趙遵), 조선(趙選) |
| 4녀 | 경주 김씨 김중렴(金仲廉)의 처 | 슬하 1녀 | * 손녀: 파평 윤씨 군수(郡守) 윤우(尹遇)의 처 |
| 장남 | 조무영(趙武英) | 처 의령 남씨 좌의정(左議政) 남지(南智)의 딸, 슬하 6남 1녀 | * 손자: 조순(趙純), 조강(趙綱), 조기(趙紀, 1431 ~ ?), 조유(趙維), 조경(趙經), 조위(趙緯) |
경정공주의 둘째 사위 김중엄은 누이인 휘빈 김씨가 문종의 세자빈이었으나 폐위되자 아버지 김오문과 함께 파면되었다. 김중엄의 아내인 둘째 딸 조씨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직첩을 박탈당했다. 경정공주의 자녀들은 경정공주 사후 노비와 전답 분배 문제로 다투는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