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마 신이치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고야마 신이치로는 일본의 전 야구 선수로, 투수와 코치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1순위 지명으로 입단하여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2004년 시즌 종료 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하여 2015년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라쿠텐에서 투수 코치를 역임했으며, 2025년부터는 친정팀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투수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다. 선수 시절에는 최고 153km/h의 빠른 공을 던지는 릴리프 투수로 활약하며, 특히 2007년에는 16세이브, 평균자책점 0.58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고야마 신이치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고마야 신이치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코치 시절 (2016년 6월 16일 도쿄 돔)
이름고야마 신이치로
원어 이름小山 伸一郎
로마자 표기Koyama Shinichiro
출생일1978년 6월 13일
출생지미에현 와타라이군 후타미정 (현재: 이세시)
신장180cm
체중90kg
포지션투수 / 코치
투구우투
타석우타
선수 경력
아마추어미에현립 아케노 고등학교
프로주니치 드래건스 (1997년 ~ 2004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년 ~ 2015년)
코치 경력
코치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6년 ~ 2024년)
주니치 드래건스 (2025년 ~ 현재)
선수 기록 (NPB)
데뷔 리그NPB
데뷔 일자1999년 6월 9일
데뷔 팀주니치 드래건스
마지막 리그NPB
마지막 일자2015년 10월 6일 (은퇴 경기)
마지막 팀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승-패28승 36패
평균 자책점3.87
탈삼진521
세이브36
홀드84
기타 정보
드래프트1996년 1순위
등번호77 (주니치 드래건스, 코치), 75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코치)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이세시 출신 - 이치카와 곤
    이치카와 곤은 일본의 영화감독으로, 애니메이터로 시작하여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특히 《버마의 하프》, 《들불》, 《도쿄 올림픽》, 《이누가미 일족》 등의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아내 와다 나토와의 협업과 "이치카와 터치"로 불리는 독특한 영상 스타일을 확립했다.
  • 이세시 출신 - 노구치 미즈키
    노구치 미즈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이며, 2002년 나고야 여자 마라톤 우승을 시작으로 2007년 도쿄 국제 여자 마라톤 우승까지 기록하며 활약했고, 2016년 은퇴 후 해설가로 활동했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 1978년 출생 - 코비 브라이언트
    코비 브라이언트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20시즌 동안 5회의 NBA 우승을 이룬 미국의 전설적인 프로 농구 선수로, 고등학교 졸업 후 NBA에 직행하여 뛰어난 득점력과 화려한 수상 경력을 쌓았으나 2020년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했다.
  • 1978년 출생 - 은지원
    은지원은 젝스키스 리더로 데뷔하여 솔로 가수와 예능인으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얻고 젝스키스 재결합 후에도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방송인이다.

2. 프로 입단 전

고야마 신이치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하여, 6학년 때는 외야수였다. 중학교에서는 8번 타자 겸 1루수로 활약했고, 미에현립 아케노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여름부터 투수로 전향했다. 140 km/h가 넘는 빠른 공으로 프로 야구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199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가쿠 겐지가 달았던 등번호 '33'번을 받았고, 주니치 입단 동기로는 모리노 마사히코가 있다. 입단 당시 고야마 신이치로일본어는 160km를 던지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2.1. 유년 시절

이세 시립 후타미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의 영향으로 지역 소프트볼팀 '후타미 스포츠 소년단'에 입단하여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외야수 후보였다. 이세 시립 후타미 중학교에서는 소프트볼부에 들어가 8번 1루수를 맡았다. 미에현 대회에서 춘계, 하계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도카이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2.2. 고교 시절

미에현립 아케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처음에는 3루수였으나, 강한 어깨를 인정받아 1학년 여름부터 투수로 전향했다. 2학년 가을부터 에이스를 맡았다. 3학년 여름, 미에현 대회 결승전에서 카이세이 고등학교에 패하여 고시엔 출전은 이루지 못했다. 구속 140 km/h를 넘는 속구가 프로 야구 스카우트진의 눈에 띄었다.

3. 프로 선수 시절

고야마 신이치로는 199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당시 가쿠 겐지가 달았던 등번호 33번을 받았고, 160km/h를 던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등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2004년 오프 시즌에 무상 트레이드로 신생 구단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했다.

라쿠텐 이적 후, 2005년 3월 2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에 이적 후 첫 등판하여 무실점을 기록했다. 미야기 현지 개막전인 4월 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무실점으로 막았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마지막 2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구단 사상 첫 구원 승리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후쿠모리 가즈오의 부상으로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고, 12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시즌 중반부터 1군에 합류했음에도 3승 1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0.58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0년에는 아오야마 고지, 가타야마 히로시와 함께 ‘스리 마운텐즈’라고 불리는 강력한 중간 계투진을 구축했다. 시즌 최다인 55경기에 등판해 5승 4패 11세이브 15홀드, 평균자책점 2.41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고야마 게이지가 주니치에서 이적해 오면서, 전광판 표기가 고야마 신으로 변경되었다. 5년 연속 50경기 등판을 달성했고(57경기), 1승 2패 25홀드, 평균자책점 1.99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팀의 리그 첫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현역 시절(2013년 5월 12일, QVC 마린 필드)
현역 시절
(2013년 5월 12일, QVC 마린 필드)

3.1.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1997-2004)

199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가쿠 겐지가 달았던 등번호 33번을 받는 등 기대를 받았다. 입단 당시 160km/h를 던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97년과 1998년에는 1군 등판 없이 2군에서만 뛰었다. 1999년 6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같은 해 1군 공식전 3경기에 등판했다. 신축성 있는 스트레이트를 가지고 있어, 팜에서는 스토퍼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에는 1군 공식전 29경기에 등판하여 프로 첫 승리도 기록했지만, 2승 4패, 평균 자책점 5.58로 안정감을 보이지 못했다.

2001년에는 1군 공식전 4경기에만 등판했다. 웨스턴 리그에서는 다승 (10승)을 획득했다. 같은 해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사임했다.

야마다 히사시가 감독으로 취임한 2002년에는 21경기에 등판하여 등판 횟수는 늘었지만, 1군에 정착하지는 못했다. 웨스턴 리그에서는 최우수 구원 투수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1군 공식전 12경기 등판에 그쳤지만, 웨스턴 리그에서는 전년에 이어 최다 세이브 투수상을 수상했다. 9월 도중에 야마다 히사시 감독이 사임했다.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감독으로 취임한 2004년에는 1군에서 오카모토 신야가 활약하여, 고야마는 1군 공식전 2경기 등판에 그쳤다. 오프에 무상 트레이드로 신규 구단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했다.

3.2.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005-2015)

2005년 3월 2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후쿠오카 돔)에서 8회말에 이적 후 첫 등판, 무실점을 기록했다. 미야기 현지 개막전인 4월 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센다이)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무실점으로 막았다. 다음 날 경기에서도 마지막 2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구단 사상 첫 구원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제구력 문제로 5월 하순 2군으로 내려갔고, 그 해 중간 계투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시즌 평균자책점 8.56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2006년에도 개막부터 마무리를 맡았지만, 중간 계투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안정감을 보이지 못해, 1군 공식전 22경기 등판에 평균자책점 8.56으로 부진했다.

2007년에는 개막부터 2군 생활을 했지만, 7월 25일 팀의 마무리 투수였던 후쿠모리 가즈오가 오른쪽 팔꿈치 수술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다음 날 세이부전에 등판하여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후 뛰어난 안정감을 보이며 12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시즌 도중부터 1군에 합류했음에도 3승 1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0.58이라는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08년에는 시범 경기 부진으로 개막을 2군에서 시작했지만, 3월 29일에 1군으로 승격되었다. 4월 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구원승을 거두는 등 중간 계투로 기용되었지만, 불안정한 투구로 구원 실패가 이어졌다. 그러나 시즌 후반에는 점차 안정감을 되찾아 팀내 중간 계투로 활약했다.

2009년에는 가와기시 쓰요시의 부상으로 시즌 초반에는 중간 계투를 맡았지만, 홈런이나 안타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아 후반기에는 주로 패전 처리나 롱 릴리프로 기용되었다. 후반기에는 안정감을 찾으며 팀 최다인 56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개막 2번째 경기에서 끝내기 폭투로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이후 후쿠모리의 부진으로 '중간 계투에는 가와기시, 셋업맨에 고야마'라는 형태가 되었다. 7월부터는 가와기시가 부진으로 중간 계투진에서 제외되면서 중간 계투를 맡게 되었다. 중반 이후에는 아오야마 고지, 가타야마 히로시와 함께 ‘스리 마운텐즈’라고 불리는 강력한 중간 계투진을 형성했다. 시즌 최다인 55경기에 등판해 5승 4패 11세이브 15홀드, 평균자책점 2.41을 기록했다.

2011년에는 주니치 시절 은사인 호시노 센이치가 라쿠텐 감독으로 부임했다. 1군 공식전 50경기에 등판하여, 구원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다나카 마사히로에 이어 팀 2위인 8승을 올렸다.

2012년에는 고야마 게이지가 주니치에서 이적해 오면서, 전광판 표기가 고야마 신으로 변경되었다. 1군 공식전 57경기에 등판하여 5년 연속 50경기 등판을 달성했고, 1승 2패 25홀드, 평균자책점 1.99를 기록했다.

현역 시절(2013년 5월 12일, QVC 마린 필드)
현역 시절
(2013년 5월 12일, QVC 마린 필드)


2013년에는 시즌 도중 2군 강등을 겪는 등 안정감을 잃은 투구를 보였지만, 팀의 리그 첫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4년에는 부진으로 인해 10경기 등판에 그쳤다.

2015년에는 오른쪽 어깨 관절 수술을 받고 재활에 전념했다.

4. 지도자 경력

2015년 은퇴 후 라쿠텐 구단에 남아 투수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4.1.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코치 (2016-2024)

2015년 은퇴 후, 라쿠텐 구단에 남아 투수 코치로 부임했다. 2016년 시즌 초에는 2군 투수 코치를 맡았으나, 5월 20일부터 1군 투수 코치로 보직을 변경하여 투수진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2017년부터는 다시 2군 투수 코치를 맡았다. 2020년부터 다시 1군 투수 코치를 맡았다. 2023년에도 개막부터 1군 투수 코치를 맡았지만, 1군 평균자책점이 리그 최저인 3.55로 부진하여 7월 19일에 나가이 레이와 교체되어 2군 투수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2024년 시즌 종료와 동시에 라쿠텐을 퇴단했다.

5. 선수 시절 특징

쓰리쿼터 투구폼에서 평균 구속 약 144km/h, 최고 구속 153km/h의 직구를 던지는 강속구 릴리프 투수였다. 테이크 백 타임이 짧은 독특한 폼을 가지고 있었다.

2007년 고속 싱커(일반적인 싱커보다는 투심에 가까운)를 습득한 후 슬라이더와 함께 주무기로 사용하며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슬라이더의 위력이 더욱 강해져 피안타율 .155를 기록하며, 결정구로 사용했다. 포크볼커브도 가끔 던졌다.

라쿠텐 시절인 2011년에는 나카타 쇼를 6타수 무안타, 나카무라 다케야를 5타수 무안타로 막는 등 힘으로 승부하는 타자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

6. 인물

현역 시절 라쿠텐에서 투수진의 리더 역할을 했다. 2005년 구단 창설 때부터 라쿠텐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2015년 현역에서 은퇴할 당시 투수진 중 유일하게 구단 창설 멤버로 남아있었다. 후배나 젊은 선수들을 엄하게 지도하기도 했고, 때로는 형님처럼 젊은 선수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팀을 이끄는 역할도 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으로부터 "투수는 고야마가 잘 이끌어 줄 테니 괜찮아"라며 투수진 운영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등판할 때 고글을 착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글에는 도수가 들어가 있으며, 포수의 사인을 볼 수 없게 되어 2003년쯤부터 착용하기 시작했다. 연습이나 불펜에 있을 때는 착용하지 않고 마운드에 올라갈 때 처음 착용하며, 동기 부여와 기합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고글 색깔은 라쿠텐 이적 첫 해에는 빨강, 2년째는 파랑, 3년째는 빨강과 같이 시즌 전에 색깔을 정하고 1년 동안 사용했다.

초봄의 쌀쌀한 날씨에도 혼자만 반소매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기 때문에 "반소매 마인", "반소매 왕자"라고 불렸다. 특히 "반소매 마인"은 잡지나 라쿠텐 구단의 공식 페이지, 스포츠 뉴스 사이트 등에서도 사용되어 공식적인 별명이 되었다. 항상 반소매를 입는 이유는 옷자락이 신경 쓰여서 던지기 힘들기 때문이며, 주니치 시절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에디 겔라드에게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또한, 퍼포먼스의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시즌에는 초봄에 반소매만 입으면 체온이 쉽게 떨어지고 근육의 활동이 저하되기 때문에 긴 소매 셔츠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시범 경기부터 부진이 이어져 2군에서 시작하게 되자 바로 반소매 언더셔츠로 돌아갔다. 2010년의 자율 훈련 중에는 평생 반소매 언더셔츠로 투구할 것을 선언했다. 하지만 2012년에 다나카 마사히로로부터 팔꿈치가 차갑다는 지적을 받고 반소매를 졸업했으며, 스스로 만든 오른팔 쪽만 7부 길이인 언더셔츠를 사용하게 되었다.

2007년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로 다음 사항을 꼽았다.

* 기술적인 면에서는 내딛는 발의 위치를 마하라 타카히로의 투구 동작을 참고하여 바꾸었고, 노무라 카츠야 감독(당시)의 조언도 참고하여 투구 동작 수정이 이전보다 쉬워졌다.
*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신 외에는 마무리 투수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팀 사정과 동료들의 격려 덕분에 정신적으로 초연해져서, 구원 실패를 질질 끄는 일이 없어졌다.

축구에도 조예가 깊어 닛칸 스포츠에 고야마의 축구 평론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7. 상세 정보

고야마 신이치로는 5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 기록을 역대 11번째로 달성했다.(2008년 ~ 2012년)

그의 등번호는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
* 1997년 ~ 2004년: 33번
* 2005년 ~ 2015년: 57번
* 2016년 ~ 2024년: 75번
* 2025년 ~ 현재: 77번

中野 栄一일본어 포수는 27번으로 변경되었다.

7.0.1. 첫 기록

* 1999년 6월 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0차전(도쿄 돔): 8회말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 1999년 6월 10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1차전(도쿄 돔): 6회말에 니오카 도모히로에게서 헛스윙 삼진.
* 2000년 8월 9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8차전(나고야 돔): 7회초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 2005년 4월 30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7차전(풀캐스트 스타디움 미야기): 9회초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 2007년 7월 25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15차전(굿윌 돔): 9회말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7.0.2. 기타

2012년 9월 19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22차전(도쿄 돔)에서 8회말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5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 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역대 11번째이다.(2008년 - 2012년)

7.1. 등번호

* 33 (1997년 ~ 2004년)
* 57 (2005년 ~ 2015년)
* 75 (2016년 ~ 2024년)
* 77 (2025년 ~ )
中野 栄一일본어 포수는 27번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