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시프테 파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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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골시프테 파라하니는 이란 출신의 배우이자 음악가이다. 1997년 영화 《배나무》로 데뷔하여, 《엘리에 관하여》, 《바디 오브 라이즈》, 《패터슨》,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익스트랙션》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국제적으로 활동했다. 2008년 《바디 오브 라이즈》 출연 이후 히잡 미착용 문제로 이란 정부와 갈등을 겪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환경 문제, 결핵 퇴치 운동에 참여하고,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 멤버로 활동하며,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콜드플레이 콘서트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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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골시프테 파라하니는 1983년 7월 10일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베흐자드 파라하니이며, 어머니는 예술가 파히메 라힘 니아이다.[2] "골시프테"라는 이름은 "사랑스러운 꽃"을, 법적 이름인 "라하바르드"는 "길의 선물"을 의미한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와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12세에 테헤란 음악 학교에 입학했다. 14세에 다리우쉬 메르주이 감독의 영화 《배나무》에 출연하여 파즈르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3]
골시프테 파라하니는 1997년 영화 《배나무》로 데뷔한 이후 이란에서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2003년 영화 《부티크》로 낭트 3대륙 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하프 문》에 출연했다. 2008년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바디 오브 라이즈》에 출연하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연기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4] 2009년에는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어바웃 엘리》에 출연하여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3. 경력
이란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2009년부터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활동하고 있다.[4] 파리 이주 후 롤랑 조페, 후네르 살림, 마르잔 사트라피 등 다양한 감독들과 협업했다. 2012년 아티크 라히미 감독의 《인내의 돌》에서 주연을 맡아 호평을 받았으며, 세자르 영화제에서 가장 유망한 여배우상 후보에 올랐다.[6]
2016년에는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에서 로라 역을 맡아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17년에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서 샨사 역을 맡아 블록버스터 영화에도 출연했다.[7] 2020년에는 넷플릭스 영화 《익스트랙션》에서 닉 칸 역을 맡아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그녀의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3. 1. 이란과의 관계 및 망명
2008년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에 출연하면서 이란 정부와 갈등을 겪었다. 이란 당국은 파라하니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영화에 출연한 것을 문제 삼았고, 미국과의 협력을 이유로 2009년부터 이란에서의 활동을 금지했다.[4]
2012년 프랑스 잡지 《마담 피가로》에 누드 사진을 게재하여 이란 정부로부터 "이란은 당신과 같은 배우나 예술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 당신의 예술적 재능을 펼치세요."라는 비난을 받았다.[14] 이후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4]
3. 2. 사회 운동 및 음악 활동
파라하니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란의 결핵 퇴치 운동을 옹호하고 있다.[11]
이란의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 쿠치 네신(Kooch Neshin)의 멤버로 활동했다. 이란을 떠난 후, 망명 이란 음악가 모흐센 남주와 협력하여 2009년 10월에 앨범 《오이》를 발매했다.[11]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2022년 10월, 콜드플레이의 콘서트에 초청되어 시위 찬가로 여겨지는 셰르빈 하지푸르의 《바라예》를 불렀다.[11]
4. 출연작
서지라고도 알려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