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준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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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곽준은 삼국 시대 촉한의 장수로, 형주 남군 지강현 출신이다. 유표 사후 유비에게 귀순하여 중랑장이 되었으며, 유비의 익주 공략 당시 가맹성을 지켰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자동태수 겸 비장군을 역임했으나, 219년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비는 곽준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서를 내려 그의 공을 기렸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맹달과 함께 가맹관을 지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곽준 (삼국지)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곽준
본관형주남군지강현
자(字)중막(仲邈)
출생178년
사망217년 (향년 39세)
사인병사
매장지성도
형제곽두
자녀곽익
관직 및 직위
초기 소속유표
최종 소속유비
주요 직책중랑장
자동태수
비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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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곽준은 형주 남군 지강현(枝江縣) 출신으로, 현재의 후베이성 지장시에 해당한다. 형 곽독(霍篤)은 고향에서 수백 명을 모아 민병대를 조직했다. 곽독이 죽은 후, 형주의 자사(牧) 유표는 곽준에게 민병대를 지휘하게 했다. 208년 말 유표가 사망하자 곽준은 그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유비에게 합류하여 중랑장(中郞將)으로 임명되었다.

211년, 유비는 익주 (현재의 쓰촨성충칭시를 포함)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당시 익주 자사 유장을 도와 한중군에서 경쟁 군벌 장로에 대항했다. 214년 7월, 유장은 유비에게 항복했고, 이후 익주는 유비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곽준의 공헌을 인정하여 유비는 원래의 광한군(廣漢郡)에서 자통군(梓潼)을 분할하여 곽준을 자통군의 태수(太守)로 임명했다. 곽준은 또한 비장군(裨將軍)으로 승진했다. 그는 3년 동안 재직하다가 219년 40세(만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성도 (익주의 수도)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유비는 곽준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며, 친히 신하들을 이끌고 곽준의 장례식에 참배하고 제사를 지냈다.

2.1. 유비 휘하에 들어가기까지

형 곽독(霍篤)이 죽자, 형주유표의 명령으로 곽준은 형의 사병(私兵)을 물려받았다. 208년(건안 13년), 유표가 사망하자 곽준은 유비에게 귀순하여 중랑장에 임명되었다.

211년, 유비가 익주목 유장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익주로 들어갈 때, 곽준은 광한군 가맹현(葭萌縣)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다. 212년, 유비와 유장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자, 유비는 가맹에서 군대를 돌려 유장을 공격했고, 곽준은 가맹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때 장로의 부하 양앙(양백(楊帛))이 곽준에게 함께 성을 지키자고 권유했지만, 곽준은 '소인(小人)의 머리는 얻을 수 있어도 성은 얻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 유장은 부금(扶禁), 상존(향촌(向存)) 등에게 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맹을 공격하게 했다. 곽준은 수백 명의 병력만으로 1년 동안 성을 지켜냈다. 그는 적이 약하고 부주의한 틈을 타 정예병을 뽑아 반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상존을 참살했다.

2.2. 가맹성 전투

212년, 유비가 군을 돌려 유장을 습격하면서 서촉 공방전이 시작되자, 곽준은 가맹성을 지키게 되었다. 장로양앙을 보내와 공동으로 성을 지키자고 권하였으나 '소인의 머리는 얻을 수 있어도 성은 얻을 수 없다’며 거부하였다.

이후 유장의 장수 부금(扶禁), 상존(向存) 등이 만여 명을 통솔하여 낭수(閬水)를 타고 올라와 성을 포위하였다. 곽준은 1년을 버티면서 겨우 수백 명만이 남았는데, 부금·상존군이 나태해진 틈을 노려 정예병을 뽑아 출격하여 대파하고 상존을 참살했다.

2.3. 익주 평정 이후

212년, 유비가 군을 돌려 유장을 습격하면서 서촉 공방전이 시작되었고, 곽준은 가맹성을 지키게 되었다. 장로양앙을 보내와 공동으로 성을 지키자고 제안했지만, 곽준은 '소인의 머리는 얻을 수 있어도 성은 얻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 유장의 장수 부금(扶禁), 상존(向存) 등이 만여 명을 통솔하여 낭수(閬水)를 타고 올라와 성을 포위하였다. 곽준은 1년을 버티면서 겨우 수백 명만이 남았는데, 부금·상존군이 나태해진 틈을 노려 정예병을 뽑아 출격하여 대파하고 상존을 참살했다. 214년, 결국 유비가 익주를 정복하였다.

217년, 자동군(梓潼郡, 재동군)이 광한군에서 분리 신설되어 곽준이 자동태수 겸 비장군(裨將軍)에 올랐다. 219년, 관직에 있은 지 3년 만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장사는 촉군 성도현(成都縣)에서 치러졌다. 유비는 매우 슬퍼하며 제갈량에게 “곽준은 품행이 단정한 선비로서 나라에 공을 세웠으니 을 부어주고 싶다.”란 조서를 내리고 친히 관료들을 이끌고 조상해 그 묘역에서 묵었다. 사람들이 영예로 여겼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곽준은 제62회에 맹달의 소개로 처음 등장한다. 낙성 전투가 한창일 때, 유비군은 손권과 장로가 가맹관을 노린다는 첩보를 받는다. 방통이 맹달에게 가맹관 방어를 권하자, 맹달은 곽준과 함께라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라며 곽준과 함께 가맹관으로 파견된다.

제65회에서 장로 휘하의 마초, 양백, 마대가 쳐들어오자, 곽준과 맹달은 유비에게 원군을 요청한다. 제70회, 탕거 전투(와구관 전투)에서 패한 장합이 가맹관을 공격해오자, 맹달은 곽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전했다가 패배하고 돌아온다. 곽준은 성도로 급히 이 사실을 알린다.

이후 원군으로 온 황충엄안을, 성도에 있던 조운이 그랬던 것처럼 곽준과 맹달은 연로하다고 비웃지만, 황충과 엄안이 대승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곽준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익주 평정 후에도 곽준은 맹달과 함께 가맹관(정사에서는 가맹성)을 지켰다. 장합이 쳐들어오자 곽준은 농성을 주장했지만, 맹달은 출격하여 크게 패했다. 그 후, 원군으로 황충과 엄안 두 노장이 파견되자 곽준은 맹달과 함께 제갈량의 실책을 비웃었지만, 황충과 엄안의 활약으로 위군은 격퇴되었다.

4. 가계

* 형: 곽독
* 아들: 곽익 - 유비를 섬기며 삼국시대 촉한의 장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