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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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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가보안본부(RSHA)는 나치 독일 시대에 나치당과 독일의 보안 및 정보 업무를 총괄했던 조직이다. 1939년 하인리히 힘러의 지시로 친위대 보안국(SD)과 보안경찰(Sipo)을 통합하여 설립되었으며, 하인리히 뮐러, 아돌프 아이히만 등이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RSHA는 게슈타포(Gestapo)와 크리포(Kripo)를 포함한 7개의 청으로 구성되었으며, 독일 국내 첩보, 반유대주의 선전, 유대인 학살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RSHA는 특수작전집단(Einsatzgruppen)을 지휘하여 유대인, 공산주의자 등을 대량 학살하는 등 홀로코스트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RSHA는 전쟁 기간 동안 공포와 압제를 통해 초법적인 지배를 행사하며,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책임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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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본부 - [정부기관]에 관한 문서
개요
보안경찰 및 SD 수장의 깃발 (1942년)
보안경찰 및 SD 수장의 깃발
명칭국가보안본부
원어 명칭(RSHA)
약칭RSHA
로마자 표기Reichssicherheitshauptamt
유형비밀 경찰
정보 기관
관할 지역나치 독일
독일 점령하 유럽
본부8, 베를린
설립일}}
전신(SiPo)
(SD)
상위 기관내무부 (명목상)
하위 기관게슈타포
(SD)
(SiPo)
(Kripo)
지휘부
책임자 (1939년–1942년)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책임자 직책보안경찰 및 SD 수장
책임자 (1942년–1943년)하인리히 히믈러 (권한대행)
책임자 직책보안경찰 및 SD 수장
책임자 (1943년–1945년)에른스트 칼텐브루너
책임자 직책보안경찰 및 SD 수장
담당 장관 (1939년–1945년)하인리히 히믈러
규모
직원1944년 2월 기준 약 50,648명
이념
이념나치즘

2. 역사

1939년 9월 27일, 하인리히 힘러의 명령으로 국가안전본부(RSHA)가 창설되었다.[1] 힘러는 독일의 보안 및 경찰력을 SS 통제하에 두는 것을 SS의 국가 장악 및 권력 증대를 위한 필수 전제조건으로 보았다.[1] 이에 따라 나치당 소속 보안국(SD)과 내무부 소속 보안경찰(지포)을 하나로 합쳐 RSHA를 만들었다.[1] 지포는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과 형사경찰(크리포) 두 개의 하위 부서로 이루어져 있었다.[1] 한편 친위대 인종 및 개척본부(RuSHA)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RSi-H 라는 약자를 사용하기도 했다.[1]

전쟁이 시작되면서 RSHA는 급속도로 팽창했고 여러 차례 재편을 반복했다.[2] 그러나 중앙집권적 경향 및 RSHA 같은 기관들이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직접 관계를 형성하는 추세에는 변화가 없었다.[2] 힘러 및 그의 부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게슈타포를 통제하고 있었을 때부터 RSHA는 이미 나치 독일의 핵심부에 존재했다. 그들은 모든 독일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으며, 사실상 법을 초월한 위치에 있었다.[2]

하이드리히는 1942년 유인원 작전으로 암살당할 때까지 RSHA 본부장 직을 유지했다. 1943년 1월 힘러는 에른스트 칼텐브루너를 후임 본부장으로 임명했고,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칼텐브루너가 본부장을 지냈다.[3] RSHA 본부장은 "보안경찰 및 보안국 총수"(Chef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de), 줄여서 CSSD 라고도 했다.[3]

1941년, 독소전쟁 개시와 함께 하이드리히는 국가안전본부의 SD(제3국), 비밀국가경찰(제4국), 범죄경찰(제5국) 각국에서 여러 개의 아인자츠그룹펜(특별 학살대, 이동 특별 부대, 특별 행동대 등으로 번역됨)을 창설하여 점령지 유대인을 제거하기 위해 국방군의 진격에 따라 점령지에서 유대계 주민을 이주시킨다는 명목으로 집결시켜 학살했다. 총격에 의한 대량 학살은 부대원들에게 과도한 정신적 부담을 주었고, 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볼 수 있는 가스실(치클론 B)에 의한 대량 학살 방법이 고안되는 계기가 되었다.

1944년, 빌헬름 카나리스 제독이 반 히틀러 음모에 가담했기 때문에 국방군 정보부의 해외 첩보 부서가 국가안전본부로 이관되어 군사정보부 (Militärabteilung der RSHA)가 되었다.

2. 1. 나치당의 권력 장악과 경찰 조직 통합

1925년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돌격대의 하부 조직으로 친위대(SS)를 창설했다. 1929년 히틀러는 하인리히 힘러를 친위대 전국 지도자로 임명했다. 1931년 힘러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자신의 경호대인 보안국(SD) 지휘를 맡겨 당내외 적대분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1933년 3월 23일 전권위임법을 통해 히틀러 독재 체제가 합법화되었다. 헤르만 괴링게슈타포(프로이센 비밀경찰국)를 창설하고 베를린에서 정치적 대숙청을 시작했다.

1934년 4월, 힘러는 프로이센 주 비밀경찰국장 직책을 인계받았다. 같은 해 5월, 프로이센 주 내무부는 독일 내무부로 이관되었고, 게슈타포의 관할권도 독일 전체로 확대되었다.

1934년 6월 30일 긴 칼의 밤에서 힘러는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친위대를 이용해 돌격대 지휘관 에른스트 뢰름 등 당내 불만 세력을 제거했다.

1936년, 힘러는 '전 독일 경찰 총감'에 임명되어 독일 내 모든 경찰 권력을 장악했다. 힘러는 장악한 경찰 권력을 다음과 같이 부하들에게 위임했다.

조직지휘관역할
질서경찰쿠르트 달뤼게도시 및 지방의 범죄를 단속하는 일반 경찰(제복 경찰)
* 도시경찰
* 도시 외 특정 지역 관할 경찰
* 시정촌 경찰
보안경찰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정치적, 민족적 적대 분자들을 단속하는 정치경찰(사복 경찰)
*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
* 형사경찰(크리포)


2. 2. 국가안전본부(RSHA) 창설

1939년 9월 27일, 하인리히 힘러의 명령에 따라 국가안전본부(RSHA)가 창설되었다.[1] 힘러는 독일의 보안 및 경찰력을 SS의 통제하에 두는 것을 SS의 국가 장악 및 권력 증대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보았다.[1] 이에 따라 나치당 소속 보안국(SD)과 내무부 소속 보안경찰(지포)을 통합하여 RSHA를 만들었다.[1]

보안경찰(지포)은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과 형사경찰(크리포)의 두 하위 부서로 구성되어 있었다.[1] 친위대 인종 및 개척본부(RuSHA)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RSi-H'라는 약칭을 사용하기도 했다.[1]

RSHA의 설립은 보안국(SD)가 보안경찰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기능하는 관계를 공식화한 것을 의미했다. 지역 사무소에서도 게슈타포, 형사경찰, SD는 공식적으로는 별개의 조직이었지만, 상급 SS 및 경찰 지도자의 감찰관에 의해 조정되었다. 지역 SD 부대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지역 게슈타포 부대를 위한 정보기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5]

초대 RSHA 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당시 SS상급지도자(1940년 8월 사진).


힘러와 그의 직속 부하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게슈타포를 통제하면서 RSHA는 나치 독일의 핵심부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들은 모든 독일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으며, 사실상 법을 초월한 위치에 있었다.[2] 하이드리히는 유인원 작전으로 암살당할 때까지 RSHA 본부장 직을 유지했다.[3] 1943년 1월, 힘러는 에른스트 칼텐브루너를 후임 본부장으로 임명했고, 칼텐브루너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본부장 직을 맡았다.[3] RSHA 본부장은 '보안경찰 및 보안국 총수'(Chef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CSSD)라고도 불렸다.[3]

2. 3. 제2차 세계 대전과 RSHA의 역할 확대

1933년 1월 나치당이 정권을 획득한 후, 하인리히 힘러는 정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반체제파를 억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경찰 조직의 중앙집권화가 필수적임을 인식했다. 1936년 경찰 조직을 친위대에 흡수하고, 1939년 그의 오른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보안국(SD)과 국가 기관인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 및 형사경찰국을 친위대의 국가안전본부(Reichssicherheitshauptamt) 지휘 아래 통합하여 전국적인 국민 감시 기구를 완성했다.[1]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진행과 함께 폴란드 총독령, 유럽 및 소련 점령 지역에도 강권을 행사하며 공포 정치의 첨병이 되었다.[1] 특히 게슈타포는 레지스탕스 탄압, 스파이 색출, 유대인 사냥에 큰 역할을 했고, 상위 조직인 국가안전본부보다 더 악명 높은 존재가 되었다.[1]

2. 4. 주요 인물



국가보안본부(RSHA)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순서사진계급이름재임 기간비고
1--SS-상급집단지도자(Obergruppenführer)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1939년 9월 27일 ~ 1942년 6월 4일초대 RSHA 본부장. 1942년 유인원 작전으로 암살됨.
---제국 지도자(Reichsführer-SS)de하인리히 힘러1942년 6월 4일 ~ 1943년 1월 30일RSHA 본부장 대행
2--SS-상급집단지도자에른스트 칼텐브루너1943년 1월 30일 ~ 1945년 5월 12일1943년 1월 힘러에 의해 RSHA 본부장으로 임명됨.


  • '''하인리히 힘러''': 친위대 전국지도자로 1939년 9월 27일 RSHA를 창설했다.[1] 독일의 보안 및 경찰력을 SS 통제하에 두는 것을 SS의 국가 장악 및 권력 증대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보았다.[1]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힘러의 직속 부하이자 초대 RSHA 본부장으로, 1942년 암살될 때까지 재임했다.[6] "보안경찰 및 보안국 총수"(Chef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줄여서 CSSD라고도 불렸다.[7] 모든 독일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으며, 사실상 법을 초월한 위치에 있었다.[5]
  • '''에른스트 칼텐브루너''': 1943년 1월 힘러에 의해 RSHA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재임했다.[6]

3. 조직

국가보안본부(RSHA)는 7개의 청(Amt)으로 구성되었고, 각 청은 여러 하위 부서로 나뉘었다. 제4청(게슈타포)과 제5청(크리포)은 보안경찰(지포)을 이루어 유대인, 집시 등 국가의 적으로 간주되는 이들을 색출, 체포하여 절멸수용소로 이주시켰다.[2] RSHA는 각 지역 친위대 및 경찰지도자들이 필요로 하는 병력을 공급했으며, 독소전쟁 초기에는 무장친위대 일부 부대(제1SS보병여단, 제2SS보병여단, SS기병여단 등)의 지휘권을 가지기도 했다. 이 부대들은 SS해골부대 부대원을 차출해 만들어졌으며, 점령지에서 학살 등의 "경찰 및 보안작전"을 수행했다.

3. 1. 7개 청(Amt)

제럴드 레이틀링거에 따르면, 국가보안본부(RSHA)는 수백 개의 하부조직을 가진 복잡한 관료제 조직이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하위 직제는 7개의 청(Ämter)으로 나뉘었다.

청(Amt)역할청장비고
제1청(Amt I)행정 및 법무베르너 베슈트 박사초대 청장
브루노 슈트레켄바흐1940년 후임
에리히 에를링거1944년 4월 후임
제2청(Amt II)이념 및 내사프란츠 직스 교수
제3청(Amt III)독일인 생활청 (내지보안국, Inland-SD)오토 올렌도르프독일 국내 첩보, 전쟁 이전 독일 국경 너머의 민족독일인 및 독일어권 문화 업무 담당
제4청(Amt IV)억압 및 대응청 (게슈타포, 비밀국가경찰)하인리히 뮐러아돌프 아이히만은 RSHA 제4청 B4과(Referat IV B4) 과장, 홀로코스트 실무 책임자[2]
제5청(Amt V)범죄억압청 (형사경찰, 크리포)아르투어 네베초대 청장, 강간, 살인 등 비정치적 강력범죄 담당 (국가형사경찰청(RKPA)이라고도 불림)
프리드리히 판칭거후임 청장
제6청(Amt VI)대외정보청 (외지보안국, Ausland-SD)하인츠 요스트초대 청장
발터 셸렌베르크후임 청장
제7청(Amt VII)프란츠 직스의 제2청을 개편파울 디텔반유대주의, 반프리메이슨 선전 같은 이념 문제 담당


3. 2. 하위 부서


  • '''제1청'''(Amt I): "행정 및 법무청"으로, 베르너 베슈트가 초대 청장을 역임했다. 이후 브루노 슈트레켄바흐, 에리히 에를링거가 청장을 맡았다. 1941년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국장브루노 슈트레켄바흐(친위대 소장)
I A (인사부)
부장: 발터 블루메(친위대 대령)
*I A 1 (일반 인사 업무): 로베르트 모어(친위대 소령)
*I A 2 (게슈타포 인사 기록): 카를 텐트(친위대 소령)
*I A 3 (크리포 인사 기록): 게오르크 슈뢰펠(친위대 소령)
*I A 4 (SD 인사 기록): 프리츠 브라우네(친위대 소령)
*I A 5 (당 및 SS 인사 기록): 공석
*I A 6 (복지): 에트문트 트링클(친위대 중령)
I B (교육·훈련·강습)
부장: 에르빈 슐츠(친위대 대령)
*I B 1 (세계관 교육)
*I B 2 (후계자 육성)
*I B 3 (훈련 교육 계획)
*I B 4 (기타 교육 계획)
I C (체육부)
*I C 1 (일반 훈련 업무)
*I C 2 (훈련 및 군사 교육)
I D (징벌부)
부장: 브루노 슈트레켄바흐(친위대 소장)
*I D 1 (업무 징벌)
*I D 2 (친위대 규율 유지)


  • '''제2청'''(Amt II): "이념 및 내사청"으로, 프란츠 직스 교수가 청장을 역임했다. 1941년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국장한스 노케만 (친위대 대령)
II A (조직·법무)
*II A 1 (보안경찰과 SD의 조직)
*II A 2 (입법)
*II A 3 (법제 업무, 손해배상 대응)
*II A 4 (국가 방위 대응)
*II A 5 (국민·국가에 대한 적대 세력 색출, 재산 이동, 국적 식별 등)
II B (여권과 외사 경찰 관련 기본 사항)
*II B 1 (여권 관련 1)
*II B 2 (여권 관련 2)
*II B 3 (증명서 관련, 식별표)
*II B 4 (외사 경찰 및 국경 경비에 대한 기본 과제)
II C a (보안경찰의 예산·경영)
*II C 1 (예산과 급여)
*II C 2 (급여와 제비용)
*II C 3 (주거 및 구금자 관련)
*II C 4 (재무 관리)
II C b (SD의 예산·경영)
*II C 7 (SD의 예산과 급여)
*II C 8 (보험·계약·토지 관련·건축 관련·차량 관련)
*II C 9 (심사·감사)
II D (무선·전화·차량·총기 등 장비 담당)
*II D 1 (무선·사진·영화 관련)
*II D 2 (텔레타이프·전화 관련)
*II D 3 a (보안경찰의 차량 관련)
*II D 3 b (SD의 차량 관련)
*II D 4 (무기 관련)
*II D 5 (항공 관련)
*II D 6 (보안경찰·SD 기술 기금 관리)


  • '''제3청'''(Amt III): "독일인 생활청" 또는 "내지보안국(Inland-SD)"으로 불렸으며, 오토 올렌도르프가 청장을 맡아 독일 국내 첩보를 담당했다. 1941년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국장오토 올렌도르프(친위대 대령)
III A (법질서와 국가 체제)
부장: 카를 겐겐바흐(친위대 소령)
*III A 1 (생활권 작업에 대한 일반적 문제)
*III A 2 (법적 생활)
*III A 3 (규칙과 관리)
*III A 4 (일반적 국민 생활)
III B (동포)
부장: 한스 에를리히(친위대 중령)
*III B 1 (동포 작업)
*III B 2 (소수 민족)
*III B 3 (인종·민족적 건전성)
*III B 4 (동포의 귀환·재정착)
*III B 5 (점령 지역)
III C (문화)
부장: 빌헬름 슈펭글러(친위대 소령)
*III C 1 (학술 분야)
*III C 2 (교육·종교 생활)
*III C 3 (국민 문화·예술)
*III C 4 (보도·출판·방송)
III D (경제)
부장: 빌리 자이베르트(친위대 소령)
*III D 1 (식량 경제)
*III D 2 (무역·수공업·교통)
*III D 3 (공업·에너지 경제)
*III D 4 (노동·복지 관련)


국장하인리히 뮐러(친위대 소장)
IV A (적성 분자 척결)
부장: 프리드리히 판칭거(친위대 중령)
*IV A 1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반전주의·불법적 적성 선전)
*IV A 2 (사보타주 예방·척결 등)
*IV A 3 (IV A 1에 포함되지 않는 반동주의·대항 세력·자유주의·이민 등)
*IV A 4 (테러 통보·감시 등)
IV B (각종 종파)
부장: 알베르트 하르틀(친위대 소령)
*IV B 1 (가톨릭의 정치 활동)
*IV B 2 (프로테스탄트의 정치 활동)
*IV B 3 (기타 각종 종파·프리메이슨)
*IV B 4 (유대인)
과장: 아돌프 아이히만(친위대 소령)
IV C (개인 조사 데이터 관련)
부장: 프리츠 랑(친위대 중령)
*IV C 1 (분석, 개인 정보 카드 센터, 개인 정보 관리, 조회 대응, 감시 대상자 카드, 외국인 감시 등)
*IV C 2 (예방 구금 관련)
*IV C 3 (보도·출판 관련)
*IV C 4 (당과 당 각 조직 관련)
IV D (점령 지역)
부장: 에르빈 바인만(친위대 중령)
*IV D 1 (보헤미아 모라비아 보호령)
*IV D 2 (폴란드 총독령)
*IV D 3 (적성 외국인)
*IV D 4 (점령 지역)
IV E (방첩)
부장: 발터 셰렌베르크(친위대 소령) (7월부터 발터 후펜코텐)
*IV E 1 (일반 방첩 관련, 국가 반역 행위 감정·보고, 공업의 보전, 감시망)
*IV E 2 (일반 경제 관련, 산업 스파이 방첩)
*IV E 3 (서부 지역 방첩)
*IV E 4 (북부 지역 방첩)
*IV E 5 (동부 지역 방첩)
*IV E 6 (남부 지역 방첩)


  • '''제5청'''(Amt V): "범죄억압청"으로, 형사경찰(크리포)을 의미한다. 아르투어 네베가 초대 청장을 역임했고, 이후 프리드리히 판칭거가 청장을 맡았다. 1941년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국장아르투어 네베(친위대 소장)
V A (범죄 행정·예방)
부장: 파울 베르너(친위대 대령)
*V A 1 (법무, 국제 협력, 범죄 연구)
*V A 2 (예방)
*V A 3 (여성에 대한 형사 경찰)
V B (특무)
부장: 게오르크 갈초(형사 경찰 대령)
*V B 1 (중대 범죄 행위)
*V B 2 (사기)
*V B 3 (성범죄)
V C (감식·수사)
부장: 볼프강 베르거(형사 경찰 중령)
*V C 1 (국가 감식 업무 센터)
*V C 2 (수사)
V D (보안경찰 범죄 연구소)
부장: 발터 헤스(친위대 중령)
*V D 1 (흔적 특정)
*V D 2 (화학·생물학)
*V D 3 (문서 감정)


  • '''제6청'''(Amt VI): "대외정보청" 또는 "외지보안국(Ausland-SD)"으로 불렸으며, 하인츠 요스트가 초대 청장을, 이후 발터 셸렌베르크가 청장을 역임했다. 1941년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국장하인츠 요스트(친위대 소장)
VI A (해외 첩보상 일반 과제)
부장: 알베르트 필베르트(친위대 중령)
VI B (유럽·아프리카·중동에 있는 독일·이탈리아 영향권, 계획만)
부장: 오이겐 슈타임레(친위대 대령)
VI C (소련·일본 영향 하에 있는 동부 지역, 계획만)
부장: 하인츠 그래페(친위대 중령)
VI D (영국·미국 영향 하에 있는 서부 지역, 계획만)
부장: 테오도르 페프겐(친위대 소령)
VI E (해외에 있는 세계관적 적대 세력 탐지, 계획만)
부장: 발터 하머(친위대 소령)
VI F (해외 첩보를 위한 기술 지원 장비, 계획만)
부장: 발터 라우프(친위대 소령)


  • '''제7청'''(Amt VII): 반유대주의, 반프리메이슨 선전 같은 이념 문제를 담당했으며, 파울 디텔을 거쳐 프란츠 칙스가 청장을 역임했다. 1941년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국장프란츠 칙스(친위대 소장)
VII A (자료 수집)
*VII A 1 (도서관)
*VII A 2 (보고서 작성, 번역 업무, 보도 간행물 감시 및 평가)
*VII A 3 (조회 대응, 정보 연락)
VII B (분석)
*VII B 1 (프리메이슨주의 및 유대주의)
*VII B 2 (기독교의 정치 활동)
*VII B 3 (마르크스주의)
*VII B 4 (기타 적성 집단)
*VII B 5 (국내 문제에 대한 학술적 개별 조사)
*VII B 6 (해외 문제에 대한 학술적 개별 조사)
VII C (문서관, 자료관, 학술적 특별 과제)
*VII C 2 (자료관)
*VII C 3 (학술적 특별 과제)


4. 홀로코스트

RSHA는 나치 독일의 보안 업무를 총괄하며, 홀로코스트에 깊이 관여했다. RSHA의 "국가의 적"에는 유대인, 공산주의자, 프리메이슨, 평화주의자, 기독교 운동가 등이 포함되었다.[3] RSHA는 동방총괄계획 수립에 참여하여 중앙유럽 및 동유럽의 비독일계 주민들을 몰아내고 독일인을 이주시키는 계획을 추진했다.[4]

RSHA는 특히 인종 문제에 신경 썼으며,[5] 1941년 5월 20일 발표된 명령을 통해 유대인 이주를 차단하고, 아돌프 아이히만과 협력하여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같은 절멸 수용소로 보냈다.[6] 또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지시에 따라 편성된 학살 전담 특무부대인 특수작전집단을 총괄하여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했으며, 그 중 130만 명이 유대인이었다.[9]

4. 1.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

RSHA는 인종 문제, 특히 유대인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5] 1941년 5월 20일 RSHA에서 발표한 명령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을 위해 유대인이 벨기에나 프랑스로 이주하는 것을 차단했는데,[6] 이는 RSHA가 유대인 절멸 작전을 전적으로 계획하고 공모했음을 보여준다. RSHA는 이주 차단 뿐만 아니라, 아돌프 아이히만의 독일유대인협회와 공조하여 독일 및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같은 절멸수용소로 보냈다. 이들은 유대인들에게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는 거짓말을 했다.

4. 2. 특수작전집단(Einsatzgruppen)

RSHA는 학살 전담 특무부대인 특수작전집단을 총괄했다. 이 부대는 RSHA 본부장 하이드리히의 지시에 따라 편성되었으며, 친위대원들이 부대원으로 활동했다. 특수작전집단은 원래 보안경찰 산하 조직이었으나 1939년 9월 RSHA 본부 직속 조직으로 바뀐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소전이 개전하기 이전 재편된 특수작전집단 부대원은 보안국, 비밀국가경찰, 형사경찰, 질서경찰, 무장친위대 등 다양한 곳에서 차출되었다.[9] 이들은 동유럽을 침공하는 독일 국방군 육군 병력을 따라다니며 활동했다. RSHA는 국가 및 당의 보안기관으로서 여러 분야의 많은 책임 기관들과 공조했다.[7] 특수작전집단 및 그 예하 부대인 특수작전특공대의 지휘관들은 대개 RSHA 본부의 사무직 관료들이었다.[8] 1941년-1945년 사이에 특수작전집단 및 그 관련 부대들이 죽인 사람의 수는 200만 명을 넘으며, 그 중 130만 명이 유대인이었다.[9]

4. 3. 로젠슈트라세 항의와 RSHA의 대응

1941년 초, 요제프 괴벨스는 군수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에서 이송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이들은 대체 불가능한 노동자로 여겨져 강제 이송에서 보호받았고, 많은 이들이 아리아인 독일인과 결혼하여 이러한 요소들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1942년 말, 히틀러와 RSHA는 베를린에 남은 독일 유대인들을 제거할 준비를 마쳤다. 1942년 9월, 히틀러는 이 노동자들을 여전히 보호하겠지만, 국외로 보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한편, 아우슈비츠 관리들은 무기 생산업체 IG 파르벤과 노예 노동을 이용한 무기 개발을 위한 수용소 건설에 대한 거래를 맺었기 때문에 정부에 더 많은 무기 노동자들을 보내라고 로비하고 있었다. 그 결과, RSHA는 군수 생산에 종사하는 모든 유대인을 등록하는 'Fabrik-Aktion'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주요 표적은 아리아인과 결혼한 유대인들이었다.

RSHA는 1943년 초에 모든 독일 유대인을 베를린에서 제거할 계획이었다(괴벨스가 2월 초에 쓴 일기장에 따르면 이 유대인들을 강제 이송할 마감일은 1943년 2월 28일이었다). 1943년 2월 27일, RSHA는 사복을 입은 게슈타포 요원들을 보내 혼혈 유대인들을 체포하고 여러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약 2,000명의 혼혈 유대인 남성들이 로젠슈트라세 2-4번지로 끌려가 구금되었다. 괴벨스는 일부 기업가들이 4,000명의 유대인을 구금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것과 달리 많은 체포가 좌절되었다고 불평했다. "독일인의 피를 가진 여성들"인 분노한 아내들은 남편들이 구금된 로젠슈트라세 건물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3월 6일, 혼혈 유대인 중 25명을 제외한 모두가 석방되었고, 남은 25명은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3월 8일, RSHA 국장 에른스트 칼텐브루너는 내무부 장관 빌헬름 프릭에게 강제 이송이 혼혈이 아닌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었다고 말했다.

참조

[1] 문서 null
[2] 웹인용 Adolf Eichmann: Timeline http://www.ushmm.org[...] 2015-12-23
[3] 서적 Hitler’s Empire: How the Nazis Ruled Europe 2009
[4] 서적 Nazi Germany 1933-1945: Faith and Annihilation 2009
[5] 서적 The Third Reich 1986
[6] 문서 Nürnberger Dokumente
[7] 서적 The Third Reich: The Essential Readings Wiley-Blackwell 1999
[8] 서적 The Third Reich: A New History 2001
[9] 서적 Masters of Death: The SS-Einsatzgruppen and the Invention of the Holocaust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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