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헌
1. 개요
김낙헌은 안동 출신의 대한제국 법관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판사 및 중추원 부찬의를 지냈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의 사법권 장악에 협조했으며, 1909년부터 1917년까지 의병 및 독립운동 관련 재판에 검사 또는 판사로 참여하여 독립운동가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어 친일 행위자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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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법조인 -
박만서
박만서는 대한제국 시기 법조인으로, 일본에서 법률을 공부한 후 평리원 판사, 경성지방재판소 판사 등을 지냈으나 항일 의병 운동 관련 재판에서 의병에게 중형을 선고하여 비판받았고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대한제국의 법조인 -
홍종억
홍종억은 조선 말기 관료이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로, 의병 재판에 참여하여 중형을 선고하고 한일 병합 후 중추원 찬의를 지내며 일제에 협력한 행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되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일제강점기의 법조인 -
이호 (법조인)
이호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후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본 대사 등을 역임하고 12·12 군사 반란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지냈다. -
일제강점기의 법조인 -
이태희 (1911년)
이태희는 일제 강점기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법조인으로 해방 후 검찰총장, 이화여자대학교 법정대학장 등을 역임했으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2. 생애
경상북도 안동 출신이다. 1895년 대한제국의 법부 주사가 되면서 사법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해 검사시보, 검사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1901년에는 평리원 검사, 이듬해에는 평리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의병 항쟁 탄압을 위해 사법권 장악을 시도했는데, 김낙헌(김락헌)은 이 과정에서 충실히 협조했다. 1905년에는 법관양성소장을 맡았고 1909년에는 경성공소원 검사를 지내며 의병 재판에 검사로 참여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뒤 이듬해 조선총독부 산하의 고등법원 판사가 되었고, 1918년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될 때까지 판사로 재직했다. 조선총독부 판사로 재임한 기간 중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 다이쇼대례기념장을 수여받았으며, 중추원 부찬의 임기 중인 1919년 사망했다.
3. 의병장 및 독립운동가 재판
김낙헌은 을미사변, 단발령, 을사조약, 대한제국 군대 해산, 한일 병합 등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검사 및 판사로 근무하면서 의병 봉기 및 독립운동 사건 재판에 참여했다. 1910년까지는 검사로, 이후에는 판사로 재판에 참가했다.
3.1. 주요 재판 목록
김낙헌이 검사 및 판사로 근무한 기간은 을미사변, 단발령, 을사조약, 대한제국 군대 해산, 한일 병합 등으로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김낙헌은 검사 또는 판사로서 총 12건의 의병 봉기 및 독립운동 사건 재판에 참여했다. 1910년 의병장 김춘삼 재판까지는 검사로, 이후에는 판사로 재판에 참가했다.
| 재판 날짜 | 독립운동가 이름 | 활동 내역 | 국가보훈처의 서훈 내역 | 재판 결과 |
|---|---|---|---|---|
| 1909년 11월 22일 | 김수민 | 경기도 장단 의병 봉기 | 건국훈장 국민장 | 교수형 확정 |
| 1909년 12월 2일 | 정용대 | 경기도 적성, 양주 의병 봉기 | 건국훈장 국민장 | 교수형 확정 |
| 1910년 1월 27일 | 이교영, 심경섭, 박내원 | 경북 일대 의병 봉기 | 건국훈장 독립장 (이교영) 등 | 교수형 확정 (이교영) 등 |
| 1910년 4월 19일 | 김춘삼 | 충북 제천, 강원도 원주 의병 봉기 | 건국훈장 애국장 | 유형 10년형 |
| 1912년 8월 21일 | 표창순 | 중국 왕래 간첩 행위 | - | 징역 2년형 확정 |
| 1913년 5월 14일 | 윤치호, 양기탁, 이승훈 외 3인 | 105인 사건 | 건국훈장 대통령장 (양기탁) 등 | 대구복심법원 이송 |
| 1913년 10월 9일 | 윤치호, 양기탁, 이승훈 외 3인 | 105인 사건 | 건국훈장 대통령장 (양기탁) 등 | 상고 기각 |
| 1914년 12월 7일 | 최두영 | 친일파, 천황, 총독에게 규탄문서 발송 | 건국훈장 애국장 | 상고 기각 |
| 1915년 11월 4일 | 김재성 | 충북 보은, 괴산 의병 봉기 | 건국훈장 애국장 | 사형 확정 |
| 1915년 9월 9일 | 윤길 | 만주 독립운동 조직 결성 | 건국훈장 애국장 | 상고 기각 |
| 1917년 2월 5일 | 이강래 | 간도 독립운동 조직 결성 | 건국훈장 애족장 | 상고 기각 |
| 1917년 5월 31일 | 이학룡 | 학교 수업 중 독립사상 고취 | - | 상고 기각 |
3.2. 재판 결과에 대한 비판
김낙헌은 검사 및 판사로 근무하면서 을미사변, 단발령, 을사조약, 대한제국 군대 해산, 한일 병합 등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총 12건의 의병 봉기 및 독립운동 사건 재판에 참여했다. 1910년 의병장 김춘삼 재판까지는 검사로, 이후에는 판사로 재판에 참가했다.
| 재판 날짜 | 독립운동가 이름 | 활동 내역 | 국가보훈처의 서훈 내역 | 재판 결과 |
|---|---|---|---|---|
| 1909년 11월 22일 | 김수민 | 경기도 장단 의병봉기 | 건국훈장 국민장 | 교수형 확정 |
| 1909년 12월 2일 | 정용대 | 경기도 적성, 양주 의병 봉기 | 건국훈장 국민장 | 교수형 확정 |
| 1910년 1월 27일 | 이교영, 심경섭, 박내원 | 경북 일대 의병 봉기 | 건국훈장 독립장 (이교영) 등 | 교수형 확정 (이교영) 등 |
| 1910년 4월 19일 | 김춘삼 | 충북 제천, 강원도 원주 의병 봉기 | 건국훈장 애국장 | 유형 10년형 |
| 1912년 8월 21일 | 표창순 | 중국 왕래 간첩 행위 | - | 징역 2년형 확정 |
| 1913년 5월 14일 | 윤치호, 양기탁, 이인환 외 3인 | 105인 사건 | 건국훈장 대통령장 (양기탁) 등 | 대구복심법원 이송 |
| 1913년 10월 9일 | 윤치호, 양기탁, 이인환 외 3인 | 105인 사건 | 건국훈장 대통령장 (양기탁) 등 | 상고 기각 |
| 1914년 12월 7일 | 최두영 | 친일파, 천황, 총독에게 규탄문서 발송 | 건국훈장 애국장 | 상고 기각 |
| 1915년 11월 4일 | 김재성 | 충북 보은, 괴산 의병 봉기 | 건국훈장 애국장 | 사형 확정 |
| 1915년 9월 9일 | 윤길 | 만주 독립운동 조직 결성 | 건국훈장 애국장 | 상고 기각 |
| 1917년 2월 5일 | 이강래 | 간도 독립운동 조직 결성 | 건국훈장 애족장 | 상고 기각 |
| 1917년 5월 31일 | 이학룡 | 학교 수업 중 독립사상 고취 | - | 상고 기각 |
4. 친일 행적 및 사후 평가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광복회가 공동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두 목록에서 중추원, 사법 부문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