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서
1. 개요
박만서는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1895년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유학 후 개화파 활동을 했다. 1901년 귀국하여 법조계에 종사, 평리원 판사 및 법관양성소 교관 등을 지내며 항일 의병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했다. 1909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1921년 조선변호사협회 창립총회에 참여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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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법조인 -
김낙헌
김낙헌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의병 재판에 참여하고 조선총독부 판사, 중추원 부찬의를 지낸 인물로,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대한제국의 법조인 -
홍종억
홍종억은 조선 말기 관료이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로, 의병 재판에 참여하여 중형을 선고하고 한일 병합 후 중추원 찬의를 지내며 일제에 협력한 행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되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생애
1895년 박영효가 주도해 구성한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의 게이오의숙으로 유학, 개화파 계열의 인물로 활동했다. 게이오의숙 보통과를 졸업하고 1897년부터 도쿄법학원에 입학해 3년간 법률을 공부했다.
일본의 재판소 견습까지 마친 뒤 1901년에 귀국하여 법조 계열에서 근무했다. 1906년 법부의 법률기초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06년에는 평리원 판사와 법관양성소 교관이 되었다.
이 무렵은 항일 의병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인데, 박만서는 평리원 판사와 경성지방재판소 판사(1907년) 등을 지내면서 의병 재판에서 대부분 중형을 선고했다. 박만수에게 재판을 받은 의병장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 공훈을 추서받았다.
1909년부터 변호사 등록을 하고 변호사로 일했으며, 1921년 조선변호사협회 창립총회가 열렸을 때 14인의 평의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3.1. 일본 유학 및 개화파 활동
1895년 박영효가 주도해 구성한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의 게이오의숙으로 유학, 개화파 계열의 인물로 활동했다. 게이오의숙 보통과를 졸업하고 1897년부터 도쿄법학원에 입학해 3년간 법률을 공부했다.
일본의 재판소 견습까지 마친 뒤 1901년에 귀국하여 법조 계열에서 근무했다. 1906년 법부의 법률기초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06년에는 평리원 판사와 법관양성소 교관이 되었다.
이 무렵은 항일 의병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인데, 박만서는 평리원 판사와 경성지방재판소 판사(1907년) 등을 지내면서 의병 재판에서 대부분 중형을 선고했다. 박만수에게 재판을 받은 의병장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 공훈을 추서받았다.
3.2. 법조인 활동 및 의병 재판
박만서는 1901년 귀국하여 법조계에서 근무하였다. 1906년 법부 법률기초위원, 평리원 판사, 법관양성소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1907년에는 경성지방재판소 판사로 근무했다.
이 시기는 항일 의병운동이 활발하던 때로, 박만서는 평리원 및 경성지방재판소 판사로 재직하며 의병 재판에서 대부분 중형을 선고했다. 박만서에게 재판을 받은 의병장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 공훈을 추서받았다.
박만서가 판사로 근무하면서 담당한 의병 사건은 약 24건이다. 이 가운데 해당 의병장이 징역 또는 유형 5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대한민국 국가보훈처가 훈장을 수여한 주요 사건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재판 날짜 | 의병장 이름 | 주활동 지역 | 국가보훈처의 서훈 내역 | 재판 결과 |
|---|---|---|---|---|
| 1906년 11월 23일 | 이사성 외 2인 | 충청북도 | 건국훈장 애족장 등 | 유형 10년 등 |
| 1906년 11월 23일 | 이세영 | 충청북도 | 건국훈장 애족장 | 종신 유형 |
| 1906년 12월 13일 | 전덕원 외 1인 | 평안도 | 건국훈장 국민장 등 | 유형 15년 등 |
| 1907년 12월 29일 | 윤이병 외 22인 | 이완용 집 방화 | 건국훈장 국민장 등 | 종신 유형 등 |
| 1908년 3월 13일 | 김봉기 | 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 사형 |
| 1908년 4월 3일 | 임응서 | 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 종신 유형 |
| 1908년 5월 22일 | 김경선 | 경기도 | 건국훈장 애족장 | 유형 10년 |
| 1908년 5월 22일 | 이연년 | 경기도 | 건국포장 | 유형 10년 |
| 1908년 5월 29일 | 박경채 | 경기도 | 건국훈장 애족장 | 유형 10년 |
| 1908년 5월 29일 | 정철화 | 경기도 | 건국훈장 독립장 | 유형 15년 |
| 1908년 6월 6일 | 한원태 외 2인 | 이인영 부대 | 건국훈장 애국장 등 | 유형 15년 등 |
| 1908년 6월 8일 | 박순길 | 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 유형 10년 |
| 1908년 7월 13일 | 김재선 외 2인 | 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등 | 유형 15년 등 |
| 1908년 7월 14일 | 정치삼 외 1인 | 경기도 | 건국훈장 애족장 등 | 유형 10년 등 |
| 1908년 7월 29일 | 우상옥 | 충청도·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 유형 15년 |
| 1908년 7월 31일 | 정시항 외 2인 | 충청북도 | 건국훈장 애족장 등 | 유형 15년 등 |
1909년부터는 변호사 등록을 하고 변호사로 일했으며, 1921년 조선변호사협회 창립총회에 평의원으로 참여했다.
4. 의병 재판 (상세)
박만서가 판사로 근무하면서 담당한 의병 사건은 약 24건이다. 이 가운데 징역 또는 유형 5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고 대한민국 국가보훈처가 훈장을 수여한 주요 사건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재판 날짜 | 의병장 이름 | 주활동 지역 | 국가보훈처의 서훈 내역 | 재판 결과 |
|---|---|---|---|---|
| 1906년 11월 23일 | 이사성 외 2인 | 충청북도 | 건국훈장 애족장 등 | 유형 10년 등 |
| 1906년 11월 23일 | 이세영 | 충청북도 | 건국훈장 애족장 | 종신 유형 |
| 1906년 12월 13일 | 전덕원 외 1인 | 평안도 | 건국훈장 국민장 등 | 유형 15년 등 |
| 1907년 12월 29일 | 윤이병 외 22인 | 이완용 집 방화 | 건국훈장 국민장 등 | 종신 유형 등 |
| 1908년 3월 13일 | 김봉기 | 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 사형 |
| 1908년 4월 3일 | 임응서 | 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 종신 유형 |
| 1908년 5월 22일 | 김경선 | 경기도 | 건국훈장 애족장 | 유형 10년 |
| 1908년 5월 22일 | 이연년 | 경기도 | 건국포장 | 유형 10년 |
| 1908년 5월 29일 | 박경채 | 경기도 | 건국훈장 애족장 | 유형 10년 |
| 1908년 5월 29일 | 정철화 | 경기도 | 건국훈장 독립장 | 유형 15년 |
| 1908년 6월 6일 | 한원태 외 2인 | 이인영 부대 | 건국훈장 애국장 등 | 유형 15년 등 |
| 1908년 6월 8일 | 박순길 | 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 유형 10년 |
| 1908년 7월 13일 | 김재선 외 2인 | 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등 | 유형 15년 등 |
| 1908년 7월 14일 | 정치삼 외 1인 | 경기도 | 건국훈장 애족장 등 | 유형 10년 등 |
| 1908년 7월 29일 | 우상옥 | 충청도·경기도 | 건국훈장 애국장 | 유형 15년 |
| 1908년 7월 31일 | 정시항 외 2인 | 충청북도 | 건국훈장 애족장 등 | 유형 15년 등 |
5. 사후 평가
박만서는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 중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