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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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영철은 1946년 양강도 출생으로, 조선인민군에서 복무하며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 정찰총국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1989년부터 남북고위당국자회담, 남북고위급회담,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등 남북 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회담에서 북측 대표로 활동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북한 대표단으로 참석했고, 미국을 방문하여 김정은의 친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2019년 통일전선부장에서 경질되었으나, 2023년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다시 위촉되었다.

김영철 (1946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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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김영철
이름김영철
한자金英徹
로마자 표기Gim Yeong-cheol
출생년도1946년
출생지량강도, 소비에트 점령 하의 한국
소속 정당조선로동당
군사 계급대장
직책
임기 시작2021년
임기 종료2022년 6월 11일
이전 부장장금철
후임 부장리선권
임기 시작 (2)2016년 1월 4일
임기 종료 (2)2019년
이전 부장 (2)김양건
후임 부장 (2)장금철
임기 시작 (3)2016년 5월 9일
임기 종료 (3)2021년 1월 10일
위원장김정은
이전 부위원장황병서
후임 부위원장직책 폐지
임기 시작 (4)2009년 2월 11일
임기 종료 (4)2016년 1월 4일
최고 지도자김정일, 김정은
이전 국장직책 신설
후임 국장박영식 (직무대행)
학력
학교김일성군사종합대학
만경대혁명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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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김영철은 량강도 출신으로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 1962년 군 복무를 시작하여 1968년 푸에블로 호 납치 사건 당시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를 맡는 등 초기부터 주요 직책을 맡았다. 1989년 이후 대남 업무를 담당하며 남북 회담에 참여했고, 2009년에는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장에 올랐다. 2010년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고, 조명록, 김정일 사망 당시 국가 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4년에는 판문점 남북 군사당국 접촉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승진과 강등을 반복했다.

2.1. 초기 생애

김영철은 1946년 양강도에서 태어났다.

2.2. 군 경력

김영철은 1946년 량강도에서 태어나 만경대혁명학원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 1962년 인민군 15사단 DMZ 민경중대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며, 1968년 인민군 소좌로 푸에블로 호 미국 정보함 납치 사건 당시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를 맡았다.

1989년 2월부터 1990년 7월까지 조선인민군 소장, 인민무력부 부국장 자격으로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북측대표(1~8차)를 지냈다.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는 남북고위급회담 대표(1~8차)로 활동했으며, 1992년 3월부터 8월까지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원회 북측위원장(1~7차)을 역임했다. 1992년 5월에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00년 4월에는 남북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접촉 수석대표를 지냈으며, 2006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는 인민군 중장으로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3~7차)를 맡았다. 이후 인민군 상장으로 승진하여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정찰총국장을 역임했다.

2010년 9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 위원에 선임되었으며, 2010년 11월 조명록,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에는 국가 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4년 10월에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당국 접촉에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김영철의 주요 군 경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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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직책
1962년인민군 15사단 DMZ 민경중대 근무
1968년인민군 소좌,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 (푸에블로 호 납치 사건 당시)
1989년 2월 ~ 1990년 7월조선인민군 소장, 인민무력부 부국장,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북측대표 (1~8차)
1990년 9월 ~ 1992년 9월남북고위급회담 대표 (1~8차)
1992년 3월 ~ 8월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원회 북측위원장 (1~7차)
1992년 5월남북군사공동위원회 위원
2000년 4월남북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접촉 수석대표
2006년 3월 ~ 2007년 12월인민군 중장,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 (3~7차)
2009년인민군 상장,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정찰총국
2010년 9월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 위원
2012년 2월 15일대장
2012년 가을중장으로 강등
2013년 2월대장으로 복귀
2014년 10월판문점 남북 군사당국 접촉 대표
2015년 4월상장으로 강등

3. 남북 관계 및 대외 활동

1968년 인민군 소좌로 푸에블로 호 미국 정보함 납치 사건 당시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를 맡았다. 1989년 2월부터 조선인민군 소장, 인민무력부 부국장을 역임하였다. 2016년 6월 29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4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대신하여 신설된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통일부에 따르면 고압적인 태도 등의 이유로 2016년 8월 중순까지 약 1개월 동안 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3.1. 1990년대 남북 회담

1989년 2월부터 1990년 7월까지 조선인민군 소장, 인민무력부 부국장 자격으로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북측 대표(1~8차)를 지냈다.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남북고위급회담 대표(1~8차)를 역임했으며, 1992년 3월부터 8월까지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원회 북측 위원장(1~7차)을 지냈다. 1992년 5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3.2. 2000년대 이후 활동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접촉 수석대표를 지냈다. 2006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인민군 중장으로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3~7차)를 맡았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정찰총국장으로 재직하며, 2010년 9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 위원에 선임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에 국가 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4년 10월 판문점에서 남북 군사군사당국 접촉 때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2009년 정찰총국 국장 겸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2010년 상장으로 진급하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제6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2년 대장으로 진급했다. 2014년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016년 5월 제7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조선로동당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임명되었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8년 6월 1일 김영철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모습.
2018년 6월 1일 김영철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모습.


2018년 2월 24일 2018년 동계 올림픽 폐막식에 북한 올림픽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을 주도하여 46명의 해군 장병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참석은 논란이 되었다.

2018년 5월 30일, 중국을 경유하여 뉴욕으로 가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2018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다. 6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했다.

2019년 4월 10일 노동당 7기 4차 전원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정무국 통일전선부장에서 경질되었다. 2023년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다시 위촉되었다.

2020년 7월, 노동신문 기사에서 김여정과 함께 남북 소통에 관여한 것으로 언급되었다. 2020년 6월 24일 기사 이전에, 김영철은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한 "상호 노력"을 촉구한 한국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비난했다.

2012년 2월 15일 대장으로 승진했으나, 같은 해 가을 실시된 대규모 검열에서 중장으로 강등되었다. 정찰총국 내에서 구 당 작전부와 구 군 정찰국 간의 세력 다툼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강등 3개월 후인 2013년 2월 대장으로 복귀했다.

2016년 5월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당 통일전선부장에 취임했고, 서열 18위였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서기 대신 신설된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으며, 당내 서열도 12위로 승격했다.

2018년 3월 25일 최고 지도자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한 김정은과 리설주 여사, 리수용, 최룡해 등과 함께 동행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김여정과 함께 동행했다.

2018년 5월 7일, 중국 대련에서 시진핑 총서기를 만난 김정은의 방중에 동행했다.

2018년 6월, 미북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김정은과 김여정, 리수용 등과 함께 동행했다. 같은 해 7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때 상대역으로 대응하며 강경한 협상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2019년 1월 17일 방미하여, 다음 날인 18일에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미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협의했다. 미국 측은 같은 날 협의 결과를 토대로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2019년 2월 미북정상회담은 협상이 결렬되었고, 3월 10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대의원 명부에서 이름이 사라져, 협상 책임자로서 책임을 추궁받고 숙청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2019년 5월 31일 조선일보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서 해임된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자강도에서 혁명화 교육(강제 노동 및 사상 교육)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6월 2일 밤 김정은 등과 함께 예술 공연을 관람한 사실이 조선중앙통신 등에서 보도되었으며, 김영철 숙청설은 오보로 밝혀졌다.

2021년 1월 5일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으며, 1월 10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차 총회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통일전선부장으로 선출되었으나, 당 중앙위원회 서기(구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와 당 중앙군사위원에서 탈락했다.

3.3.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및 북미 관계

2018년 동계 올림픽 폐막식에 북한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주도하여 46명의 대한민국 해군 장병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그의 참석은 논란이 되었다. 한국일보는 김영철의 참석이 한반도에 "격렬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대회는 별다른 사건 없이 종료되었다.

2018년 6월 1일 김영철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모습.
2018년 6월 1일 김영철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모습.


2018년 5월 30일, 김영철은 중국을 거쳐 뉴욕으로 가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2018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유엔 미국 대표단의 주거 시설에서 미국 측 관계자들과 매우 "비밀리에"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6월 1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 트럼프에게 김정은으로부터 온 편지를 전달했다. 김영철은 미국의 제재 대상이었기 때문에 방문을 위해 특별 허가가 필요했다.

4. 논란 및 비판

김영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강경한 대남 정책으로 인해 여러 논란과 비판을 받아왔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대한민국 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18년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북한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했을 때, 천안함 침몰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인물의 방문에 대해 대한민국 내 유족과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있었다.

2015년 8월에는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한국군 병사 2명이 중상을 입었다.

2016년에는 고압적인 태도 등의 이유로 약 1개월 동안 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기도 했다.

2019년에는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협상 책임자로서 책임을 추궁받고 숙청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