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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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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스파르-펠릭스 투르나숑(Gaspard-Félix Tournachon, 나다르)은 1820년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사진작가, 언론인, 작가이다. 그는 캐리커처와 소설가로 활동하며 파리의 보헤미안들과 교류했고, 1850년대부터 사진을 시작하여 다양한 유명 인사들의 초상 사진을 촬영했다. 나다르는 습판 콜로디온법을 이용한 항공사진 촬영과 파리 지하묘지에서의 인공 조명 사용을 개척했으며, 1863년에는 대형 기구 '르 자앙'을 제작하여 쥘 베른의 소설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에는 군사용 기구 부대를 조직하여 항공우편 수송 작전을 수행했고, 1886년에는 아들과 함께 100세 과학자를 인터뷰하여 최초의 포토 리포트를 제작했다. 나다르는 1895년 아들에게 스튜디오를 넘기고 마르세유에서 활동하다가 191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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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나다르 자화상
1854년경 나다르 자화상
본명가스파르-펠릭스 투르나숑
출생일1820년 4월 5일
출생지파리, 프랑스
사망일1910년 3월 20일
사망지파리, 프랑스
안장 장소페르 라셰즈 묘지
안장 장소 좌표48.860, 2.396
직업사진가
풍자 만화가
언론인
소설가
기구 비행사
알려진 업적사진술 개척자
자녀폴 나다르
아버지빅토르 투르나숑
나다르 서명
서명
이름
다른 이름나다르
기타 정보
참고 자료브리태니커 국제 대백과사전
관련 매거진타임
관련 저널l'Aérophile

2. 생애

가스파르-펠릭스 투르나숑(나다르(Nadar)로도 알려짐)[3]은 1820년 4월 초 파리[4]에서 태어났지만, 일부 자료에서는 리옹 출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빅토르 투르나숑은 인쇄업자이자 서점 주인이었다. 나다르는 의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제적 이유로 중퇴했다.[5][4]

나다르는 여러 신문에서 캐리커처리스트이자 소설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라르 드 네르발, 샤를 보들레르, 테오도르 드 방빌 등 파리의 보헤미안 그룹과 어울렸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어쩌면 단어 끝에 "dar"를 붙이는 장난스러운 습관에서 비롯된 "Tournadar"였고, 이후 "Nadar"가 되었다.[5] 그의 작품은 1848년 처음으로 ''르 샤리바리''에 실렸다. 1849년 그는 ''진지한 사람들을 위한 웃긴 잡지(La Revue Comique à l'Usage des Gens Sérieux)''를 창간했으며, ''르 쁘띠 주르날 푸르 리르(Le Petit Journal pour Rire)''를 편집했다.[4]

캐리커처리스트에서 사진작가로 전향한 그는 1853년에 첫 사진을 찍었고, 1854년에는 생 라자르 거리 113번지에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다.[5] 1860년에는 35 캡시느 거리로 이전했다. 나다르는 정치인(프랑수아 기조,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배우(사라 베르나르, 파울루스), 작가(빅토르 위고, 샤를 보들레르, 조르주 상, 제라르 드 네르발, 테오필 고티에, 알렉상드르 뒤마), 화가(카미유 코로, 외젠 들라크루아, 장프랑수아 밀레), 음악가(프란츠 리스트, 조아키노 로시니, 자크 오펜바흐, 주세페 베르디, 엑토르 베를리오즈) 등 다양한 인물들을 촬영했다.[5] 그는 초상 사진에서 화려한 장식 대신 자연광을 선호하고 불필요한 소품을 배제했다.

1858년, 그는 최초로 항공사진을 촬영했으며, 파리 지하묘지에서 인공 조명을 사용한 사진 촬영을 개척했다.

1863년, 나다르는 거대한 기구 ''르 자앙''(거인)을 제작했다. ''르 자앙''은 쥘 베른의 ''기구로 다섯 주''에 영감을 주었으며, 나다르는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미셸 아르당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다. 1862년, 베른과 나다르는 항공 항해 연구 협회를 설립했고, 이는 후에 보다 무거운 기계를 이용한 항공 운송 장려 협회가 되었다. 나다르는 회장, 베른은 서기로 활동했다.

1870년~1871년 파리 공방전 동안 나다르는 기구를 이용해 포위된 파리와 외부를 연결, 세계 최초의 항공우편 서비스를 구축했다.

1886년 아들 폴과 함께 100세 과학자 미셸 외젠 슈브뢰를 촬영하여 최초의 포토 리포트를 제작했다.[6] 이는 ''르 주르날 일러스트레(Le Journal Illustré)''에 실렸다.[5] 1874년, 최초의 인상파 전람회를 위해 자신의 스튜디오를 화가들에게 빌려주었으며, 1885년 임종 직전의 빅토르 위고를 촬영했다. 그는 자연스러운 포즈와 개성을 살린 여성 사진으로 주목받았으며, 사진 초상화의 관습을 깨고 피사체를 적극적인 참여자로 포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895년, 나다르는 파리 스튜디오를 아들 폴에게 넘기고 마르세이유에서 새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1909년 파리로 돌아온 그는[17] 1910년 89세로 사망하여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18] 스튜디오는 아들 폴 나다르의 지휘 아래 계속 운영되었다.

2. 1. 초기 생애와 언론 활동

1820년 4월 초 파리[4]에서 태어났으며, 일부 자료에는 리옹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 빅토르 투르나숑은 인쇄업자이자 서점 주인이었다. 나다르는 의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제적 이유로 중퇴했다.[5][4]

여러 신문에서 캐리커처 작가이자 소설가로 일했다. 그는 제라르 드 네르발, 샤를 보들레르, 테오도르 드 방빌 등 파리의 보헤미안 그룹과 어울렸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단어 끝에 "dar"를 붙이는 장난스러운 습관에서 비롯된 "Tournadar"였고, 이후 "Nadar"가 되었다.[5] 1848년 그의 작품이 처음으로 ''르 샤리바리''에 실렸다. 1849년 ''진지한 사람들을 위한 웃긴 잡지(La Revue Comique à l'Usage des Gens Sérieux)''를 창간했고, ''르 쁘띠 주르날 푸르 리르(Le Petit Journal pour Rire)''를 편집했다.[4]

1851년부터 1854년에 걸쳐 제작한 300명 이상의 당대 중요 인물들을 그린 풍자 초상화 시리즈인 "팡테옹 나다르"(Panthéon Nadar)는 그의 명성을 높였다.[4]

2. 2. 사진작가로서의 활동

1853년, 나다르는 처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854년에는 파리의 생 라자르 거리 113번지에 자신의 사진 스튜디오를 열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5] 1860년에는 스튜디오를 캡시느 거리 35번지로 이전하였다.Boulevard des Capucines|불르바르 데 카퓌신프랑스어[5]

1860년 캡시느 거리에 있던 나다르의 스튜디오


나다르는 정치인, 배우, 작가, 화가,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들을 촬영했다. 프랑수아 기조,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사라 베르나르, 빅토르 위고, 샤를 보들레르, 조르주 상, 제라르 드 네르발, 테오필 고티에, 알렉상드르 뒤마, 카미유 코로, 외젠 들라크루아, 장 프랑수아 밀레, 프란츠 리스트, 조아키노 로시니, 자크 오펜바흐, 주세페 베르디, 엑토르 베를리오즈 등이 그의 카메라 앞에 섰다.[5]

나다르는 화려한 장식 대신 자연광을 선호하고, 불필요한 소품을 배제하여 인물의 개성을 부각하는 간결한 배경의 초상 사진 스타일을 확립했다.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당시 초상 사진의 관습을 깨고 피사체를 적극적인 참여자로 포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16]

1886년, 나다르는 아들 폴과 함께 당시 100세였던 과학자 미셸 외젠 슈브뢰를 인터뷰하며 촬영한 사진들을 ''르 주르날 일러스트레''에 실었다. 이는 최초의 포토 리포트로 여겨진다.[6][5]

2. 3. 항공사진과 지하 탐험

1858년, 나다르는 습판 콜로디온법을 사용하여 세계 최초로 항공사진을 촬영했다. 습판 콜로디온법은 플레이트를 준비하고 현상해야 했기 때문에, 기구 바구니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 가스가 빠져나가면서 영상에 문제가 생겼다. 나다르는 방수천으로 기구 바구니를 덮은 후 안정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7] 그는 또한 파리 지하묘지에서 작업하면서 사진에 인공 조명을 사용하는 것을 개척했다. 이로써 그는 기구를 이용하여 공중에서 촬영한 최초의 인물이자 파리 지하묘지에서 지하 촬영을 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4]

오노레 도미에는 이러한 나다르의 모습을 풍자하여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려는 나다르"라는 석판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2. 4. 기구 비행과 항공 우편

1863년, 나다르는 높이 약 59.74m이고 용량이 6000m3인 거대한 기구 '르 자앙(거인)'을 제작했다.[7][24] 쥘 베른은 '르 자앙'에서 영감을 받아 ''기구를 타고 5주''를 썼으며, 나다르는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에 등장하는 미셸 아르당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다.[7][11][5]

나다르는 「거인호」(Le Géant)라 명명한 거대한 기구를 제작했으나, 10월 4일 파리에서의 공개 비행과 하노버로 향한 두 번째 비행은 실패로 끝났다.

나다르는 '르 자앙'의 실패 이후, 기구가 아닌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 기계가 미래 비행 기술을 선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에 의한 비행 촉진을 위한 협회'를 결성하고, 나다르 자신이 회장을, 쥘 베른이 서기를 맡았다.[12]

1870년부터 1871년까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 파리 포위전 당시, 나다르는 군사용 기구를 제작하여 기구 부대를 조직했다.[7][5][8] 나다르는 몽마르트에 거점을 두고, 세 대의 기구를 이용하여 파리를 위협하는 적의 정찰과 촬영, 지도 제작, 서신 수송 등의 작전에 종사했다.

1870년 10월 7일, 석탄가스 기구 알망 바르베스호를 타고 포위된 파리에서 출발하는 레옹 깜베타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레옹 깜베타는 1870년 10월 7일, 알망 바르베스호를 타고 파리를 탈출하여 투르에 설치된 국방 정부 파견부에 합류하여 지도자가 되었다.

1870년 9월부터 1871년 1월까지 66대의 기구가 제작되어 포위되어 전신 케이블도 두절된 파리에서 각지로 11톤, 250만 통의 우편물 수송에 종사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항공우편 서비스였다. 그러나 경기구의 비행은 바람에 맡기는 비행이었기에 어디에 착륙할지는 예측할 수 없었고,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지방에서 파리 시내로 기구를 정확히 착륙시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기구는 모두 파리 출발 편도였고, 지방으로부터의 답신에는 주로 전서구가 사용되었다.

2. 5. 말년

1874년 4월, 나다르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모네, 드가, 르누아르, 세잔, 피사로, 모리조, 기요망, 시슬레 등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빌려주어 최초의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했다.[13] 1885년에는 임종 직전의 빅토르 위고를 촬영했다.[14]

1886년, 나다르는 아들 폴 투르나숑과 함께 당시 100세였던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뢰를 인터뷰하며 사진을 촬영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포토 인터뷰로 여겨진다.[6]

1895년, 나다르는 파리 스튜디오를 아들 폴에게 넘기고 마르세유에 새 스튜디오를 열었다.[17]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등 남프랑스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아들 폴이 기획한 나다르 회고전이 열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수상하기도 했다.

1909년 파리로 돌아온 나다르는[17] 1910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18]

3. 작품

나다르는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하다 사진으로 전향했다. 1853년에 첫 사진을 찍었고, 1854년에는 파리 생 라자르 거리 113번지에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다.[5] 1860년에는 캡시느 거리 35번지로 이전했다. 그는 정치인, 배우, 작가, 화가,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들을 촬영했다.[5]

나다르는 전통적인 화려한 장식 대신 자연광을 선호하고 불필요한 소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1886년에는 아들 폴과 함께 100세의 과학자 미셸 외젠 슈브뢰를 인터뷰하며 최초의 포토 리포트를 제작하기도 했다.[6][5] 이는 ''르 주르날 일러스트레(Le Journal Illustré)''에 실렸다.[5]

1858년, 나다르는 최초로 항공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습판 콜로디온법을 사용했는데, 기구 바구니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 가스가 빠져나가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방수 천을 이용하여 안정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7] 그는 또한 파리 지하묘지에서 인공 조명을 사용한 사진 촬영을 개척했다.[4]

1874년 4월에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자신의 사진 스튜디오를 빌려주어 최초의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하도록 했다.[13] 1885년에는 임종 직전의 빅토르 위고를 촬영했다.[14] 그의 여성 사진들은 자연스러운 포즈와 개성을 잘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15] 나다르는 사진 초상화에서 피사체를 적극적인 참여자로 포착한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16]

말년에 나다르는 회고록 ''내가 사진사였을 때(Quand j'étais photographe)''를 출판했다. 이 책에는 일화와 사진,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가 수록되어 있다.[19][20]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그림 연구용 사진 촬영을 위해 자신의 고객 일부를 나다르에게 보내기도 했다.[21]

4. 나다르의 초상 사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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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가 및 영향

나다르는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는 심리적 묘사에 뛰어났으며, 간결한 배경과 조명을 활용하여 초상 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15][16] 그는 전통적인 화려한 장식을 거부하고 자연광을 선호했으며, 불필요한 소품을 사용하지 않았다.[5] 특히 여성 사진에서 자연스러운 포즈와 개성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15]

오노레 도미에는 1862년 석판화 ''"나다르가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다(Nadar élevant la Photographie à la hauteur de l'Art)''"를 통해 나다르의 업적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4]

나다르는 항공사진과 파리 카타콤 사진을 통해 사진 기술의 한계를 넓혔다.[4] 1858년, 그는 세계 최초로 습판 콜로디온법을 사용하여 항공사진을 촬영했다.[7] 또한, 파리 지하묘지에서 인공 조명을 사용한 사진 촬영을 개척했다.[4]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에는 기구 부대를 조직하여 파리 포위망을 뚫고 우편물을 운반하는 등 애국적인 활동을 펼쳤다.[7][5][8] 이는 세계 최초의 항공우편 서비스로 기록되었다.[7][5][8]

1874년, 나다르는 자신의 사진 스튜디오를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빌려주어 최초의 인상주의 전람회를 개최하도록 지원했다.[13]

나다르는 1849년에 잡지 「라 르뷔 코믹」(Revue comique), 「르 쥬르날 푸르 리르」(Petit journal pour rire) 등의 풍자 신문을 발행했다. 특히 1851년부터 1854년에 걸쳐 완성한 당시 중요 인물 300명 이상을 그린 풍자 초상화 시리즈 「팡테옹 나다르」(Panthéon Nadar)는 그의 명성을 높였다.

참조

[1] 논문 La Mort de Nadar http://gallica.bnf.f[...] 1910-04-01
[2] 잡지 These Incredible Images Show How Aerial Photography Has Developed https://time.com/lon[...] 2022-07-17
[3] 서적 Dead Famous: An Unexpected History of Celebrity from Bronze Age to Silver Screen https://books.google[...] Orion 2020-03-19
[4] 웹사이트 Félix Nadar Gaspard-Félix Tournachon (6 April 1820 – 23 March 1910, France) https://www.lambiek.[...] 2019-11-12
[5] 웹사이트 Archives de France http://www.archivesd[...] 2015-10-15
[6] 뉴스 "Le Journal Illustré" Publishes the First Photo-Interview 9/5/1886 http://www.historyof[...] 2019-11-12
[7] 서적 Falling upwards : how we took to the air HarperPress
[8] 서적 Taking Flight: Inventing the Aerial Age, from Antiquity through the First World War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9] 웹사이트 Nadar with His Wife, Ernestine, in a Balloon https://www.metmuseu[...]
[10] 웹사이트 Nadar https://www.britanni[...]
[11] 뉴스 Luftmensch in Paris https://www.nybooks.[...] 2018-05-24
[12] 서적 Abandoned in place : preserving America's space history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2019-11-12
[13] 논문 How the First Impressionist Exhibition Came to Be https://www.thoughtc[...] 2019-09-23
[14] 웹사이트 Victor Hugo on his Death Bed https://www.philamus[...] 2019-11-12
[15] 서적 Nadar https://books.googl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95
[16] 서적 The short story of photography : a pocket guide to key genres, works, themes & techniques https://www.worldcat[...] Laurence King Publishing 2018
[17] 서적 When I Was a Photographer https://books.google[...] MIT Press 2015-11-06
[18] 웹사이트 Question of Trieste https://www.milhist.[...]
[19] 뉴스 The absurd life of Félix Nadar, French portraitist and human flight advocate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15-12-23
[20] 서적 The Great Nadar: The Man Behind the Camera Tim Duggan Books 2017-07-11
[21] 서적 Gardner's Art Through the Ages https://archive.org/[...] Thomson/Wadsworth 1991
[22] 웹사이트 Le Modèle noir de Géricault à Matisse http://www.19thc-art[...]
[23] 웹사이트 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 小項目事典の解説 https://kotobank.jp/[...] コトバンク 2018-07-15
[24] 서적 二度目のパリ 歴史歩き ディスカヴァー・トゥエンティワン
[25] 백과사전 사진의 역사·방법·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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