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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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궁침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37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 암행어사, 형조 참판 등을 역임하며 관료로서 활동했다. 특히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진구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민생을 살피는 등 민생 안정에 기여했다. 또한 중종실록 편찬에 기사관으로 참여했다.

남궁침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남궁침 초상
본관의령(宜寧)
성여(聖汝)
모재(慕齋)
생애
출생1540년
사망1598년(선조 31년)
묘소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三河里)
가족
아버지남궁찬(南宮璨)
어머니정부인 연안 이씨(貞夫人 延安李氏)
부인정부인 파평 윤씨(貞夫人 坡平尹氏)
아들남궁황(南宮璜)
관력
과거1573년(선조 6년) 진사시 합격
1588년(선조 21년) 문과 급제
주요 관직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
성균관 저작(成均館著作)
공조좌랑(工曹佐郞)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
상의원 정(尙衣院正)
동래부사
병조참지(兵曹參知)
기타
관련 정보남궁침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성여(聖汝), 호는 모재(慕齋),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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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537년(중종 3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0년(중종 3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4년(중종 39) 사간원 정언에 제수되었고, 1546년(명종 1) 사헌부지평을 거쳐 사간원 헌납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남궁익이 동복 현감으로 재직 중일 때, 남궁침은 1548년 1월 조강에서 지평으로서 호남 지방의 흉년과 백성들의 어려움을 왕에게 아뢰고 진구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같은 해 홍문관 수찬으로서 강원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구황과 농사 형편을 살폈다. 또한 『중종실록』 편찬에 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이조좌랑, 부응교 등을 거쳐 1550년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 1552년 홍문관전한을 지내고 경상도 어사로 파견되었으며, 홍문관 직제학을 거쳐 1553년 승정원 좌승지에 올랐다. 1557년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1558년 진위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장례원판결사와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1563년(명종 18) 한성부우윤과 한성부좌윤을 지내고, 형조 참판에 올랐다. 1564년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1565년 다시 형조 참판을 지내고, 함경도 관찰사로 나갔다. 1566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567년 명종 승하 시 부총관으로서 치안을 담당하였고, 선조 즉위 시 형조참판으로 재직하였다.

2.1. 초기 활동

1537년(중종 3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0년(중종 3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4년(중종 39) 사간원 정언에 제수되었고, 1546년(명종 1) 사헌부지평을 거쳐 사간원 헌납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남궁익이 동복 현감으로 재직 중일 때, 남궁침은 1548년 1월 조강에서 지평으로서 호남 지방의 흉년과 백성들의 어려움을 왕에게 아뢰고 진구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같은 해 홍문관 수찬으로서 강원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구황과 농사 형편을 살폈다. 또한 『중종실록』 편찬에 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이조좌랑, 부응교 등을 거쳐 1550년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 1552년 홍문관전한을 지내고 경상도 어사로 파견되었으며, 홍문관 직제학을 거쳐 1553년 승정원 좌승지에 올랐다. 1557년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1558년 진위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장례원판결사와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1563년(명종 18) 한성부우윤과 한성부좌윤을 지내고, 형조 참판에 올랐다. 1564년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1565년 다시 형조 참판을 지내고, 함경도 관찰사로 나갔다. 1566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567년 명종 승하 시 부총관으로서 치안을 담당하였고, 선조 즉위 시 형조참판으로 재직하였다.

2.2. 민생 안정 노력

남궁침은 1548년(명종 3) 홍문관 수찬으로서 강원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구황 상황과 농사 형편을 살폈다. 같은 해, 사헌부지평으로서 호남 지역의 흉년과 백성들의 어려움을 왕에게 아뢰고, 진구(賑救)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당시 호남은 흉년이 계속되어 백성들의 곤궁함이 극에 달했고, 수재로 인해 수확할 곡식이 전혀 없어 백성들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는 상황이었다. 수령들은 조곡을 거두어 종자와 구황에 대비해야 했지만, 이마저도 백성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남궁침은 목화 열매도 맺지 못해 겨울옷을 준비하지 못한 백성들이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죽어갈 수 있음을 지적하며 진구 방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552년에는 경상도 어사로 파견되었다.

2.3. 관직 역임

남궁침은 1550년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다. 1552년 홍문관전한을 지내고 경상도 어사로 파견되었으며, 홍문관 직제학을 거쳐 1553년 승정원 좌승지에 올랐다. 155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고, 1558년 진위사(陳慰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장례원판결사와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1563년(명종 18) 한성부우윤과 한성부좌윤을 지내고, 형조 참판(刑曹參判)에 올랐다. 1564년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1565년 다시 형조 참판을 지내고, 함경도 관찰사로 나갔다. 1566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567년 명종의 승하 시 부총관으로서 치안을 담당하였고, 선조가 즉위했을 때 형조참판으로 재직하였다.

2.4. 실록 편찬 참여

1548년(명종 3) 홍문관 수찬 지제교 겸 경연 검토관(行弘文館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으로서 『중종실록』 편찬에 기사관(記事官)으로 참여하였다.

3. 가족

남궁찬(南宮璨)을 할아버지로, 남궁익(南宮翼)을 아버지로 두었다. 숙부는 남궁숙(南宮淑)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인각(金麟角)이며, 어머니는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다. 형제로는 형인 남궁희(南宮憘)와 남궁개(南宮愷)가 있다. 허윤관(許允寬)을 처부로, 양천 허씨(陽川 許氏)를 배우자로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