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공
1. 개요
노자공은 백제의 조원사로, 612년 일본에 귀화하여 정원과 다리 건설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수미산과 오교가 있는 정원을 건설했으며, 전국을 돌며 다리 건설에 참여했다. 일본서기에는 노자공이 180개의 다리 건설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야마나시현 사루하시와 관련하여, 사루하시를 건설했다는 전승이 있으며, 노자공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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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예술가 -
미마지
미마지는 7세기 초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기악을 전파한 인물로, 일본서기에 따르면 612년 귀화하여 오(吳)에서 기악을 배워 일본에 전수했으며, 그의 망명 배경에는 아막성 전투 이후 백제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해석도 있다. -
백제의 예술가 -
양고 (서예가)
양고는 588년 백제 위덕왕이 일본에 파견한 사신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서예가이자 아스카데라 조영에 참여한 기술자로서 불교 문화를 전파하고 건축 기술을 지원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그를 포함한 백제 장인들이 이란계 호인의 후손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
정원사 -
이사무 노구치
이사무 노구치는 동서양 융합을 추구하며 조각, 무대 디자인, 가구 디자인, 조경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이다. -
정원사 -
무소 소세키
무소 소세키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서 남북조 시대에 걸쳐 활약한 선승이자 정원 디자이너로, 고다이고 천황과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신임을 받아 겐무 신정과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에 기여했으며, 유서 깊은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며 선종을 알리고 독창적인 정원 디자인으로 일본 조경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 -
오선화
오선화는 대한민국 출신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평론가이자 작가, 대학교수로, 호스티스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 데뷔 후 한일 관계와 한국 사회,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했다. -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 -
마에다 아키라
마에다 아키라는 일본의 격투기 선수이자 프로레슬러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하여 UWF, 링스를 거쳐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은퇴 시합을 갖고 K-1 슈퍼바이저로 참여하기도 했다.
2. 생애 및 기록
노자공은 백제의 조원사로 왜에 파견되었으며, 궁궐 및 연못 조영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612년에 일본에 귀화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미 정원 건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기술자로서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로는 노자공이 가장 오래되었다.
백제는 인도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동진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강남과 밀접한 교류를 했다. 고구려, 신라와 비교해도 중국남북조 시대와의 교섭이 활발했으며, 황해를 건너면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국남북조 시대로부터 온 도래인도 많았다. 『양서』 열전 동이조의 신라에 관한 기술에는 "언어는 백제를 기다린 후에야 통한다(語言待百済而後通焉)"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인이 신라인과 대화할 때 백제인을 통역으로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중국남북조 시대에는 이른 시기부터 이란계(페르시아) 호인, 아랍인 상인들이 진출해 있었으며, 노자공도 그러한 경로를 거쳐 백제에 온 이란계(페르시아) 호인으로 추정된다.
노자공은 몸에 흰 반점이 있어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겨 바다 한가운데 섬에 버려질 뻔했지만, 뛰어난 언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어소에 수미산과 당풍의 오교(지붕과 난간이 있는 다리)가 있는 정원을 건설하여 노자공(路子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전국을 돌며 미카와의 야히키 다리(矢引橋), 미즈치의 곡교(曲橋), 기소의 사다리 다리, 토오토미의 하마나 다리, 아이즈의 야미카와 다리, 투구 바위의 사루하시(猿橋) 등 180개나 되는 다리 건설에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2.2. 일본 측 기록
612년에 일본으로 귀화하여, 궁궐 남쪽 정원(南庭)에 수미산을 쌓고 구레하시(吳橋)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3. 백제와 중국 남조의 교류
백제는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전래한 것을 계기로 중국강남과 밀접하게 교류하였다. 고구려, 신라에 비해 중국남북조 시대와의 교섭이 활발했고, 황해를 건너면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국남북조 시대에서 온 도래인도 많았다.
3.1. 문화 교류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는 중국강남과 밀접하게 교류하였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비교해도 중국남북조 시대와의 교섭이 활발했으며, 황해를 건너면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중국남북조 시대로부터의 도래인도 많았다. 『양서』 열전 동이조의 신라에 관한 기술에는 "언어는 백제를 기다린 후에야 통한다(語言待百済而後通焉)"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중국인이 신라인과 대화할 때 백제인을 통역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중국남북조 시대에는 이른 시기부터 이란계 (페르시아) 호인, 아랍인 상인들이 진출해 있었으며, 노자공(路子工)도 그러한 경로를 거쳐 백제에 이른 이란계 (페르시아) 호인으로 추정된다.
3.2. 이란계 도래인 가능성
중국남북조 시대에는 이른 시기부터 이란계(페르시아) 호인, 아랍인 상인들이 진출해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비교해도 중국남북조 시대와의 교섭이 활발했으며, 황해를 건너면 가깝다는 지세적인 사정으로 중국남북조 시대로부터의 도래인도 많았다. 『양서』 열전 동이조의 신라에 관한 기술에 "언어는 백제를 기다린 후에야 통한다(語言待百済而後通焉)"라고 있으며, 중국인이 신라인과 대화할 때는 백제인을 통역으로 세우는 것이 상례였다. 노자공(路子工)도 그러한 경로를 거쳐 백제에 이른 이란계(페르시아) 호인으로 보인다.
4. 일본에서의 활동
노자공은 백제에서 왜로 파견된 조원사(造園師)로, 궁궐과 연못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야마나시현 오쓰키시 사루하시마치 사루하시의 가쓰라가와에 가설된 사루하시는 시라코(志羅呼)라는 백제 도래인이 건설했다는 전승이 있다. 사루하시에 관한 문헌 기록은 중세부터 존재하며, 현재의 사루하시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투구 바위의 사루하시와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자공의 출신지가 같고, 다리 건설 시기가 스이코 천황 시대와 노자공의 활동 시기가 겹치기 때문에,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4.1. 정원 건설
노자공일본어은 백제에서 왜로 파견된 조원사(造園師)로, 궁궐과 연못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612년 왜로 귀화하여 궁실 남쪽 정원(南庭)에 수미산을 쌓고 구레하시(吳橋)를 만들었다.
4.2. 다리 건설
노자공은 백제의 조원사로서, 궁궐 및 연못 건설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61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궁실 남정(南庭)에 수미산을 쌓고 구레하시(吳橋)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5. 야마나시현 사루하시와의 관련성
야마나시현 오쓰키시 사루하시마치 사루하시와 가쓰라가와에 가설된 사루하시에는 백제 도래인 시라코(志羅呼)가 건설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사루하시에 대한 기록은 중세부터 나타나며, 현재 사루하시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투구 바위의 사루하시와 같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노자공과 시라코의 출신지가 같고, 다리 건설 시기가 스이코 천황 시대와 겹치므로, 동일 인물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5.1. 사루하시 전설
야마나시현오쓰키시 사루하시마치 사루하시에 위치하며, 가쓰라가와에 가설된 사루하시에는 시라코(志羅呼)라는 백제에서 온 도래인이 건설했다는 전승이 있다. 사루하시에 관한 문헌 사료는 중세부터 존재하며, 현재의 사루하시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투구 바위의 사루하시와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노자공의 출신지가 동일하고, 가교 시기가 스이코 천황 시대와 노자공의 활동 시기가 겹치기 때문에,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