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타니 미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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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케타니 미쓰오는 일본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로, 원자핵 및 소립자론 연구에 기여했다. 교토 대학에서 유카와 히데키, 사카타 쇼이치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으며, 반파시즘 운동에 참여하여 두 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의 원자폭탄 개발에 관여했다. 종전 후에는 과학사, 기술론 분야에서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원자력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릿쿄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다케타니 이론'으로 불리는 과학 방법론을 제시했으며, "원자력 평화 이용 3원칙"을 제창하는 등 사회적 책임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다케타니 미쓰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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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타니와 그의 아들 (1949년)
원어 이름武谷 三男 (たけたに みつお)
출생1911년 10월 2일
출생지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
사망2000년 4월 22일 (88세)
국적일본
학문 분야
분야이론 물리학
모교교토 제국 대학
직장리켄
릿쿄 대학
도카이 대학
오사카 대학
교토 대학
지도 교수(정보 없음)
제자(정보 없음)
주요 업적삼단계론 및 기술론 제창
가만량 (다케타니설) 제창
브라질에서의 이론 물리학 지원
수상
수상(정보 없음)
종교
종교(정보 없음)
기타
참고(정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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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와 경력

다케타니 미쓰오는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타이베이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 대학 이학부를 졸업했다. 1943년 러시아인 의사 피니로피와 결혼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니시나 요시오의 조수로 일하며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고, 종전 후 릿쿄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72년 원자력 안전 문제 연구회를 발족시켰고, 1976년 원자력 자료 정보실 대표가 되었다. 2000년 4월 22일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

2.1. 학문적 활동

1934년 교토 대학에서 물리학 학위를 받은 다케타니 미쓰오는 유카와 히데키, 사카타 쇼이치와 함께 핵 및 소립자 이론을 연구했다. 나카이 쇼이치, 쿠노 오사무와 함께 반파시스트 잡지 《세계문화》, 《토요일》에 참여하여 두 번 체포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니시나 요시오의 조수로 일하며 원자폭탄 개발 (니호 연구)에도 관여했다.

전쟁 후에는 쓰루미 슌스케 등과 함께 《사상의 과학》을 창간하고, 사상의 과학 연구회의 일원으로서 과학사, 기술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핵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했는데, 미국수소폭탄 실험을 비판하면서도 사회주의 국가의 핵무기 보유는 긍정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원폭 투하에 대해서는 "반파쇼"의 "인도적 행위"로서 예찬하는 입장을 보였다.

1952년 릿쿄 대학 교수가 되어 1969년까지 재직했다. 1954년에는 원자력에 관한 일본 최초의 교과서로 불리는 《교양의 과학 원자력》을 공동 집필하고, 릿쿄 대학의 원자로 도입을 추진하여 1957년 동 대학의 원자력 연구소 설립에 기여했다. 1972년에는 원자력 안전 문제 연구회를 설립했고, 1976년에는 원자력 자료 정보실을 발족하여 대표를 맡았다.

2.2. 사회 참여 활동

다케타니 미쓰오는 교토 대학에서 물리학 학위를 받은 후, 유카와 히데키, 사카타 쇼이치와 함께 핵 및 소립자 이론을 연구했다. 한편, 나카이 쇼이치, 쿠노 오사무와 함께 반파시스트 잡지 《세계문화》와 《토요일》에 참여하여 두 번 체포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쓰루미 슌스케 등과 함께 "사상의 과학"을 공동 창립했다. 그는 사상과학 연구 그룹의 일원으로서 과학사, 기술 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핵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미국수소 폭탄 실험을 비판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긍정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원폭 투하에 대해서는 "반파쇼"의 "인도적 행위"로서 이를 예찬했다.

1972년 다케타니는 원자력 안전 문제 연구회를 발족시켰다. 1976년, 원자력 자료 정보실이 발족하여 대표가 되었다. 그는 안전성에 관한 이론을 통해 공해 반대 운동 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2.3. 가족 관계

백계 러시아인 출신 아내 피니로피는 제정 러시아 직업 군인의 딸로, 러시아 혁명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 아이즈에서 자라 안과의가 되었으며, 도쿄 기요세시에 다케타니 병원 (현・기요세노모리 종합병원, 의료법인 레니아회)을 개설했다. 피니로피를 모델로 한 소설로는 『슬픔의 마리아』 (구마가이 게이타로, NHK 출판 상하, 2014년)가 있다.

아들 다케타니 히카루는 재즈 피아노 작곡가를 거쳐 현재 의학 경제 평론가이며, 의료법인 레니아회 이사도 맡고 있다. 며느리 칸다카오리(본명 다케타니 미츠코)는 강담사로, 시어머니를 모델로 한 저서 『여의사 레니야의 이야기 - 러시아에서 온 여성은 "사랑"의 씨앗을 뿌렸다』 (주부의 벗사 1990년)를 출간했다.

3. 다케타니 이론

다케타니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독자적인 과학 방법론을 제시했는데, 이를 다케타니 이론이라고 한다. 다케타니 이론은 주로 삼단계론과 기술론으로 구성된다.

삼단계론은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문제, 즉 측정과 해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론 형성 기법으로, 유물변증법의 실체론적 방법을 명확히 한 것이 특징이다.

다케타니는 "기술이란 인간 실천(생산적 실천)에서의 객관적 법칙성의 의식적 적용"이라고 파악하는 기술론을 주장했다. 전후 일관되게 이루어진 다케타니의 현대 기술 비판은 이 기술론을 구체적으로 전개한 것이다.

3.1. 삼단계론

다케타니 미쓰오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독자적인 과학 방법론인 '다케타니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의 핵심인 삼단계론은 양자역학의 측정 및 해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론 형성 기법으로, 유물변증법의 실체론적 방법을 명확히 한 것이 특징이다.

3.1.1. 단계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문제, 즉 양자역학의 측정과 해석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이론 형성 기법으로 제창된 방법론이다. 유물변증법의 실체론적 방법의 명확화가 혁신적인 부분이다.

다케타니 미쓰오는 헤겔의 변증법 이론을 적용하여 현상, 실체, 본질의 삼위일체를 제시했다. 메손 발견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카와 히데키와 함께 일하면서, 이를 새로운 실체의 예로 사용했다. 동료이자 협력자인 사카타 쇼이치와 함께, 다케타니는 세 단계 이론으로 알려진 마르크스주의 과학 철학을 발전시켰다.

삼단계론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현상론적 단계: 양자역학의 범주에 들어오는 현상으로서 측정에 걸리는 것을 측정된 그대로 기술하는 단계
# 실체론적 단계: 상기 현상의 방정식을 만들기 전에, 현상론적 단계에는 나오지 않는 실체(모형, 입자 등 가설상의 존재)를 아는(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이 도입하는) 단계
# 본질론적 단계: 현상론적 단계에서 기술된 현상을 실재론적 단계에서 도입한 실체를 포함하여 방정식 등 수학적 방법으로 기술하는 단계

이 이론에 따르면, 과학은 우리의 경험을 묘사하는 역할을 하는 현상 단계에서 시작된다. 다음으로, 과학은 어떤 종류의 실체가 경험의 대상을 구성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구조를 가질 수 있는지 묻는데, 이를 실체 단계라고 부른다. 그 후 실체와 현상 모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본질 단계로 나타나고, 이는 이전 두 단계를 종합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은 이후 더 높은 수준에서 유사한 주기로 반복된다.

다케타니와 사카타 쇼이치는 이 삼단계론을 기초로 연구를 진행했고, 사카타는 나고야 대학을 거점으로 많은 연구자를 배출했다. 또한 다케타니는 그밖에도 여러 연구실을 방문해서 자기 과학 철학을 퍼뜨렸는데, 난부 요이치로는 자신이 “다케타니 철학의 신도”라고 밝힌 바 있다.

3.1.2. 영향

다케타니 미쓰오는 헤겔의 변증법 이론을 적용하여 현상, 실체, 본질의 삼위일체를 제시했다. 메손 발견 과정에서 유카와 히데키와 함께 일하면서, 이를 새로운 실체의 예로 사용했다. 사카타 쇼이치와 함께, 다케타니는 세 단계 이론으로 알려진 마르크스주의 과학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과학은 우리의 경험을 묘사하는 현상 단계에서 시작된다. 다음으로, 과학은 어떤 종류의 실체가 경험의 대상을 구성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구조를 가질 수 있는지 묻는데, 이를 실체 단계라고 부른다. 그 후 실체와 현상 모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본질 단계로 나타나고, 이는 이전 두 단계를 종합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은 이후 더 높은 수준에서 유사한 주기로 반복된다.

삼단계론(三段階論)이란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문제, 즉 양자역학의 측정 및 해석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인 이론 형성 기법으로 제창된 방법론이다. 유물변증법적인 실체론적 방법의 명확화가 혁신적이었다.

# 현상론적 단계: 양자역학의 범주에 속하는 현상으로 측정에 관여하는 것을 그대로 기술하는 단계
# 실체론적 단계: 위 현상의 방정식을 만들기 전에, 현상론적 단계에 나타나지 않는 실체(모형, 입자 등)를 아는(경우에 따라 새롭게 도입하는) 단계
# 본질론적 단계: 현상론적 단계에서 기술되는 현상을, 실체론적 단계에서 도입한 실체도 포함하여, 방정식 등 주로 수학적 수법으로 기술하는 단계

사카타 쇼이치와 다케타니 미쓰오는 삼단계론을 기초로 연구를 진행했고, 사카타는 나고야 대학을 거점으로 많은 연구자를 배출했다. 또한, 다케타니는 여러 연구실을 방문하여 방법론을 포함해 활발한 논의를 벌여 많은 자극을 주었다. 도모나가 신이치로 연구실에도 활발하게 방문했다. 이 중에는 난부 요이치로도 있었다. 난부는 다케타니의 삼단계론에 관해 자신을 사카타-다케타니 철학의 신도라고 말했다.

3.2. 기술론

다케타니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자기 나름의 과학방법론을 형성해서 제기했는데, 이를 다케타니 이론이라고 한다. 다케타니 이론은 주로 3단계론기술론으로 구성된다.

다케타니는 "기술이란 인간 실천(생산적 실천)에서의 객관적 법칙성의 의식적 적용이다"라고 파악하는 새로운 기술론을 제시했다. (「기술론 - 박해와 싸운 지식인에게 바침 -」, 『변증법의 제 문제』수록) 「기술론」의 초출은 『신생』(1946년 2월호)이며, 「1. 일본 민주주의 혁명과 기술자」 및 「2. 기술론(특고조서)」의 2부로 구성된다. 「기술론」의 본체는 「특고조서」이며, 「여러 사람에 대한 비판에는 정치적 고려가 담겨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3.2.1. 특징

다케타니는 "기술이란 인간 실천(생산적 실천)에 있어서의 객관적 법칙성의 의식적 적용"이라고 파악하는 기술론을 주장했다. 전후 일관되게 이루어진 다케타니의 현대기술 비판은 이 기술론의 구체적인 전개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이론을 검토・평가하는 것은 오늘날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다케타니는 헤겔의 변증법 이론을 적용하여 현상, 실체, 본질의 삼위일체를 제시했다. 메손 발견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카와와 함께 일하면서, 이를 새로운 실체의 예로 사용했다. 동료이자 협력자인 사카타 쇼이치와 함께, 다케타니는 세 단계 이론으로 알려진 마르크스주의 과학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과학은 우리의 경험을 묘사하는 역할을 하는 현상 단계에서 시작된다. 다음으로, 과학은 어떤 종류의 실체가 경험의 대상을 구성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구조를 가질 수 있는지 묻는데, 그는 이를 실체 단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그 후 실체와 현상 모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본질 단계로 나타나고, 이는 이전 두 단계를 종합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은 이후 더 높은 수준에서 유사한 주기로 반복된다.

3.2.2. 한국에의 영향

다케타니는 "기술이란 인간 실천(생산적 실천)에서의 객관적 법칙성의 의식적 적용"이라고 파악하는 기술론을 주장했다. 전후 일관되게 이루어진 다케타니의 현대 기술 비판은 이 기술론의 구체적인 전개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이론을 검토·평가하는 것은 오늘날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4. 소립자론 연구

다케타니 미쓰오는 소립자론을 주로 연구했으며, 소립자론 연구 과정에서 삼단계론이 탄생했다. 다케타니는 유카와 히데키, 도모나가 신이치로, 사카타 쇼이치와 함께 연구했다. 도모나가는 다케타니의 비판은 매섭지만, 가끔 칭찬받으면 기쁘다고 말할 정도로, 다케타니는 학자들과 날카로운 토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케타니는 패리티 비보존을 해명하려 했지만, 젊은 연구자들은 패리티도 모른다며 아무도 다케타니를 따르지 않았다. 이후 패리티 비보존은 양전닝리정다오가 증명했고, 두 사람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다케타니는 아쉬워하며, "너희들은 훌륭해졌구나. 나는 젊었을 때 군론을 잘했다"고 말했다.

다케타니 미쓰오를 중심으로 한 유카와 그룹은 1개의 p 중간자를 교환하는 효과가 비교적 먼 거리에서의 핵력을 잘 설명할 수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근사를 높여 2개의 교환을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반면 사카타 모형에서는 기본 입자 간의 상호작용이 근본이며, 유카와형 상호작용은 그로부터 유도된 근사로 간주해야 한다. 나고야 그룹은 이 생각에 기초하여, 입자 1개의 교환으로 근거리까지의 핵력을 상당히 잘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하드론의 복합성을 소립자 반응의 측면에서도 뒷받침했다.

5. 원자력 평화 이용과 사회적 책임

다케타니 미쓰오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쓰루미 슌스케 등과 함께 사상의 과학을 창간하고, 사상의 과학 연구회 회원으로서 과학사, 기술론 등 여러 분야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원자력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하여, 미국수소폭탄 실험을 비판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긍정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서는 "반파쇼"의 "인도적 행위"로 예찬하기도 했다. 그의 안전성 이론은 공해 반대 운동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5.1. 원자력 평화 이용 3원칙 제창

1952년 4월 28일 강화 조약이 발효되자, 점령 하에 금지되었던 원자력 연구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일본 학술 회의에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같은 해 11월, 다케타니 미쓰오는 원자로 건설에 앞서 전제해야 할 여러 조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그는 원자 폭탄의 유일한 피해자인 일본인은 평화적인 원자력 연구를 수행할 권리를 가장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일본에서 수행하는 원자력 연구의 일체는 공개해야 한다. 또한 일본에서 수행하는 원자력 연구에는 외국 비밀 지식을 일절 배우지 않는다. 또한 외국과의 비밀 관계는 일절 맺지 않는다. 일본 원자력 연구소의 어떤 장소에도 어떤 사람의 출입도 거부하지 않는다. 또한 연구를 위해 어떤 사람이 그곳에서 연구를 신청해도 거부하지 않는다. 이상의 것을 법적으로 확인한 후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공개·민주·자주"를 3가지 기둥으로 하는 "원자력 평화 이용 3원칙"의 원형이 되었다.

1953년 12월 8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원자력 평화를 위한" 국제 관리 기구 설치 및 핵분열 물질의 국제 풀 안을 제안했다. 이를 받아 일본에서는 1954년 3월 3일,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중심으로 235의 원자로 축조 예산이 상정되어 즉시 가결되었다. 학술 회의는 즉시 이에 대항하여 먼저 후시미 고지에 의해 "원자력 헌장"이 작성되었고, 3월 20일에는 학술 회의 원자핵 특별 위원회(도모나가 신이치로 위원장)에서 원자핵 물리학자들의 의견이 수렴되었다. 그리고 4월 23일, 일본 학술 회의 제17회 총회에서 원자력 평화 이용을 보장하는 "공개·민주·자주"의 3원칙을 주장하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3원칙의 문구는 1955년 12월, 원자력 기본법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에서 타협이 있었다. 원자력 연구와 이용에 관한 "일체의 정보 완전 공개"가 "성과 공개"로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원자력 개발의 기정 사실이 차례로 쌓여갔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2011년 3월 11일) 이후, 원자력 규제 위원회 설치법이 성립(2012년 6월 20일)됨과 동시에, "원자력 기본법" 제2조에 제2항이 추가되었다. 현행 원자력 기본법 제2조는 다음과 같다. "원자력 이용은 평화의 목적에 한하여, 안전 확보를 중요하게 여기고, 민주적인 운영 하에, 자주적으로 이를 행하는 것으로 하며, 그 성과를 공개하고, 진취적으로 국제 협력에 기여하는 것으로 한다. 2. 전항의 안전 확보에 대해서는, … 우리나라의 안전 보장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한다". 여기서 안전 보장이란 군사 용어임을 유의해야 한다. 즉, 오늘날 중요한 것은 "원자력 평화 이용 3원칙"을 지탱하는 과학·기술 사상 그 자체이다.

5.2. 방사선 피폭 허용량에 대한 '다케타니 설'

다케타니는 '허용량'이란 안전을 보장하는 자연과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방사선 이용의 이익·편익과 그에 따른 피폭의 유해함·위험을 비교하여 결정되는 사회적인 개념이며, "참는 양"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취지의 설을 제창했다(다케타니 설)

이후, 다케타니 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으며, ICRP의 국제 권고에서도 방사선 방호 체계라는 형태로 반영되어 있다.

6. 저작

다케타니 미쓰오의 주요 저작은 다음과 같다.

* 理論物理学の形成の論理일본어 (이학 박사 학위 논문, 나고야 대학, 1949년)
* 弁証法の諸問題일본어 (理学社일본어, 1946년, 개정 신판 霞書房일본어 1951년, 理論社일본어판 1954년, 勁草書房일본어에서 武谷三男著作集일본어 제1권으로 재수록, 1968년)
* 量子力学の形成と論理 Ⅰ 原子模型の形成일본어 (銀座出版社일본어, 1948년, 복각판 {{lang, 1972년)
* 続 弁証法の諸問題일본어 (世界評論社일본어, 1950년, 理論社일본어판 1955년)
* 物理学入門 (上) - 力と運動일본어 (岩波書店일본어, 1952년, 증보판 物理学入門일본어 [「自然科学概論」일본어=사전, 「科学的な考え方とは何か」일본어=板倉聖宣일본어과의 대화] 추가, 季節社일본어, 1977년)
* 科学の門일본어 (케플러, 파스퇴르, 아인슈타인에 관한 3장으로 구성, 毎日新聞社일본어, 1953년, 勁草書房일본어에서 科学入門일본어으로 재수록, 1964년, 1970년 증보판)
* 皆殺し戦争としての現代戦일본어 (毎日新聞社일본어, 1953년)
* 原水爆実験일본어 (이와나미 신서, 岩波書店일본어, 1957년)
* 現代の理論的諸問題일본어 (岩波書店일본어, 1968년)
* 市民の論理と科学일본어 (筑摩書房일본어, 1975년)
* 科学者の社会的責任 - 核兵器について일본어 (勁草書房일본어, 1982년)
* 科学大予言 - 凶運な未来を生き残る法일본어 (光文社일본어, 1983년)
* 思想を織る일본어 (朝日新聞社일본어, 1985년)
* フェイルセーフ神話の崩壊일본어 (技術と人間일본어, 1989년)
* 環境と社会体制일본어 (技術と人間일본어, 1998년)
* 罪つくりな科学 - 人類再生にいま何が必要か일본어 (青春出版社일본어, 1998년)
* あぶない科学技術일본어 (青春出版社일본어, 2000년)
* 武谷三男著作集(全6巻)일본어 (勁草書房일본어)
* 1권: 弁証法の諸問題일본어 (1968년)
* 2권: 原子力と科学者일본어 (1968년)
* 3권: 戦争と科学일본어 (1968년)
* 4권: 科学と技術일본어 (1969년)
* 5권: 自然科学と社会科学일본어 (1970년)
* 6권: 文化論일본어 (1969년)
* 武谷三男現代論集(全7巻)일본어 (勁草書房일본어)
* 1권: 原子力 - 闘争の歴史と哲学일본어 (1974년)
* 2권: 核時代 - 小国主義と大国主義일본어 (1974년)
* 3권: 技術と科学技術政策 - 文明・大学問題・独占資本일본어 (1976년)
* 4권: 思想・科学・哲学일본어 (1977년)
* 5권: 安全性と公害일본어 (1976년)
* 6권: 市民と政治 - 憲法・生活・医療일본어 (1975년)
* 7권: 芸術と教育일본어 (1977년)
* 유카와 히데키, 사카타 쇼이치 공저, 真理の場に立ちて일본어 (毎日新聞社일본어, 1951년)
* 유카와 히데키, 사카타 쇼이치 공저, 現代学問論일본어 (勁草書房일본어, 1970년)
* 長崎正幸일본어, 量子力学の形成と論理 Ⅱ量子力学への道일본어 (勁草書房일본어, 1991년)
* 長崎正幸일본어, 量子力学の形成と論理 Ⅲ量子力学の成立とその論理일본어 (勁草書房일본어, 1993년)
* 素粒子論の研究 Ⅰ - 中間子討論会報告일본어 (素粒子論研究会일본어 편, 대표: 다케타니 미쓰오, 岩波書店일본어, 1949년)
* 死の灰일본어 (이와나미 신서, 岩波書店일본어, 1954년)
* 自然科学概論일본어 (勁草書房일본어)
* 제1권: 科学技術と日本社会일본어 (1957년, 1962년 개정)
* 제2권: 現代科学と科学論일본어 (1960년)
* 제3권: 科学者・技術者の組織論일본어 (1963년)
* 素粒子の本質일본어 (사카타 쇼이치, 中村誠太郎일본어와 공편, 岩波書店일본어, 1963년)
* 素粒子の探求일본어 (星野芳郎일본어와 공편, 勁草書房일본어, 1965년)
* 安全性の考え方일본어 (岩波書店일본어, 1967년)
* 宇宙線研究일본어 (岩波書店일본어, 1970년)
* 公害・安全性・人権일본어 (読売新聞社일본어, 1972년)
* 原子力発電の安全性일본어 (原子力安全問題研究会일본어 편, 大野周・中島篤之助・藤本陽一일본어와 공편저, 岩波書店일본어, 1975년)
* 原子力発電일본어 (이와나미 신서, 岩波書店일본어, 1976년)
* 狭山裁判と科学 - 法科学ノート -일본어 (社会思想社일본어, 1977년)
* 特権と人権 - 不確実性を超える論理일본어 (勁草書房일본어, 1979년)
* 「王様は裸だ」の論理 - 現代を考える25章일본어 (高橋曻・岡村春彦일본어와 대담, 勁草書房일본어, 1981년)

7. 평가 및 영향

다케타니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자기 나름의 과학방법론을 형성해서 제기했는데, 이를 다케타니 이론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