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도나리구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도나리구미는 1940년 일본 내무성의 명령으로 제도화된 지역 상호 지원 조직이다.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에 대응하여 국가 총동원법,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과 함께 시행되었으며, 10가구 내외를 묶어 주민들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주요 기능으로는 배급, 국채 배포, 소방, 공중 보건, 민방위 등이 있었으며, 정부 선전을 배포하고 애국 집회 참여를 조직하여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공공 안전 유지를 위해 특고경찰과 연계된 정보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사상 통제 및 주민 감시 역할을 담당했다. 도나리구미는 일본뿐 아니라, 만주국, 몽강, 왕징웨이 정권, 그리고 점령지인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조직되었다. 1947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폐지되었지만, 현대의 자치회나 정내회와 같은 형태로 그 잔재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애국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도 이식되어, 일제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준군사조직 - 국민의용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본 제국에서 조직된 국민의용대는 12세에서 65세 사이의 남성과 12세에서 45세 사이의 여성을 주축으로 본토 결전에 대비한 민간 방위 부대로 소방, 식량 생산, 대피 등의 후방 지원 임무를 수행했으며, 국민의용전투대로 개편되어 제한적인 전투 훈련을 받았다.
  • 전쟁 중의 민간인 - 미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는 주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한국 여성들을 지칭하며, 미군정 시기부터 기지촌이 형성되어 인권 유린 문제가 심각했고, 2014년에는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 전쟁 중의 민간인 - 대체복무제
    대체복무제는 징병 대상자 중 특정 사유로 현역 복무가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군 복무 대신 다른 형태의 복무를 이행하게 하는 제도로,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적,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안으로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통해 시행되고 있다.
  • 일본의 정치적 억압 - 특별고등경찰
    특별고등경찰은 일본 제국에서 위험 사상을 단속하기 위해 창설된 특별 경찰 조직으로, 치안유지법을 통해 사상 통제와 반체제 인사 탄압에 앞장섰으며, 해체 후 공안 경찰로 계승되어 일본 제국주의 시기 사상 검열과 탄압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 일본의 정치적 억압 - 3·15 사건
    1928년 3월 15일 일본 제국에서 다나카 기이치 내각이 일본공산당 등 공산주의 단체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탄압하여 1,600여 명을 체포한 사건으로, 노동 운동 탄압 및 치안유지법 강화의 계기가 되었다.
도나리구미
일반 정보
인민협력회의 휘장
인민협력회의 휘장
종류조직
국가일본 제국
존속 기간1930년대 ~ 1940년대
목적
목표상호 지원
공동 방어
국가 정책 홍보
주민 통제
역사적 배경
설립 배경만주사변 이후 전시체제 강화
국가총동원법 제정 (1938년)
제도화1938년, "교린상조, 공동방위" 목적으로 제도화됨
해체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해체
조직 구조
구성 단위10~15가구
역할방공 훈련 참여
소방 활동 지원
생활필수품 배급
국채 구매 할당
정보 수집 및 감시
사회적 영향
긍정적 측면지역 사회 결속력 강화
상호 부조 문화 확산
부정적 측면개인 자유 침해
사상 통제 수단 악용
밀고 문화 조장
관련 용어
인보반 (隣保班)대한민국의 유사 조직 (1960년대 ~ 1980년대)
기타
관련 정보전시 체제 하에서 국민정신총동원운동과 함께 강화됨

2. 역사적 배경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이전부터 인근 지역 상호 지원 조직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관습은 촌락 내 상호 부조적인 행정 하부 조직인 5인조·10인조 등으로 나타났다. 중일 전쟁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국가 총동원법,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 선거 숙정 운동과 함께, 1940년 내무성 훈령으로 '부락회 정내회 등 정비 요령'이 제도화되면서, 이웃 상조 조직은 더욱 체계화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일본의 도나리구미 제도가 이식되어 '애국반'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었다.[15][16] 애국반은 일제의 강제 동원, 친일 행위 강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이웃 상조 조직의 역사가 있다. 춘추전국 시대 말기의 십오제[18], 보갑제, · 시대의 리갑제 등이 인보제(이웃 조직 제도)에 해당한다.

2. 1. 일본의 도나리구미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이전부터 인근 지역 상호 지원 조직이 존재했다. 1940년 9월 11일 내무성 (일본)의 명령에 의해 대정익찬회 산하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총리대신 내각에 의해 공식화되었으며, 참여는 의무적이었다.[2]

도나리구미는 배급 물품 할당, 국채 배포, 소방, 공중 보건, 민방위를 담당하고, 정부 선전 배포 및 애국 집회 참여 조직을 통해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지원했다.[2] 또한 특고경찰과 연계하여 정보원 네트워크를 구축, 국가 법규 위반 및 의심스러운 정치적, 도덕적 행동을 감시했다.[3]

태평양 전쟁에서 도나리구미는 도시 상공의 적기나 해안의 의심스러운 선박을 관찰하는 기본 군사 훈련을 받았다. 전쟁 말기 일본 제국 정부는 도나리구미를 2차 민병대로 활용할 계획이었으며, 일부는 만주국, 북부 조선, 가라후토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1947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공식 폐지되었지만,[11] 이 시스템은 현대의 초나이카이 또는 자치회로 이어져 명목상 독립적인 자발적 협회이나, 지역 행정, 방범, 재난 구호 활동 조정에 제한적 책임을 갖는 준정부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6]

중일 전쟁제2차 세계 대전에 대응하여 국가 총동원법,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 선거 숙정 운동과 함께 1940년 9월 11일 내무성 훈령 "부락회 정내회 등 정비 요령(내무성 훈령 제17호)"으로 제도화되었다.

훈령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9]

# 인보 단결 정신을 바탕으로 시정촌 내 주민 조직, 결합, 만민 익찬 본지에 따른 지방 공동 임무 수행.

# 국민의 도덕적 연성과 정신적 단결을 위한 기초 조직.

# 국책을 국민에게 투철하게 하여 국정 전반의 원활한 운영에 기여.

# 국민 경제 생활의 지역적 통제 단위로서 통제 경제 운영과 국민 생활 안정 기능 발휘.

10채 전후 세대를 한 조로 묶어 단결, 지방 자치를 촉진하고, 전시 주민 동원, 물자 공출, 통제물 배급, 공습 방공 활동 등을 수행했다.

1941년 3월 인조 수는 120만에 달했다. 대정익찬회 하부 조직처럼 해석되어 각종 단체 활동에 이용되자, 내무성은 "인조는 대정익찬회 하부 조직이 아니다"라고 부정하며 해석과 운용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인조를 익찬 운동 기초 조직으로 위치시켜 동조 압력을 통한 사상 통제, 주민 간 감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47년 연합군 최고 사령관 총사령부에 의해 행정 조직으로서의 인조는 폐지되었으나, 21세기에도 인조나 정내회는 많이 잔존, 회람판 등 활동 형식을 남기고 있다.

2. 1. 1. 열차에서의 도나리구미

공습 시 차내 질서 유지 및 혼란 방지를 위해 차내 반상회가 결성되었다. 1량마다 승객 중 군인, 관료, 연장자 중에서 반상회장(1명)과 부반상회장(1~2명)이 차장에 의해 지명되었으며, 지명된 사람은 종이 팔찌를 착용하고 좌석에는 그 취지가 게시되었다[12].

반상회장은 승차 예절과 방첩을 다른 승객에게 지도하고, 경보가 발령되면 차장으로부터 전달받아 차내에 통지하며 승객에게 지시를 전달했다[12]. 승객은 창문을 열고 덧문과 커튼을 닫고 짐은 낙하 방지를 위해 선반에서 내려 쇠 헬멧이나 방공 두건을 착용하고 의자를 빼내 창문에 세워 낮은 자세로 방어했다. 정차했을 때도 함부로 하차하지 않고, 직원의 지시에 따르도록 했다[13].

2. 2. 한국의 애국반

일제강점기 도나리구미가 한국 사회에 이식되어 '애국반'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었다.[15][16] 애국반은 일제의 강제 동원, 친일 행위 강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해방 이후 애국반은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지역 사회에 남아 영향을 미쳤다.

2. 3. 아시아 다른 국가의 유사 사례

일본이 점령했던 만주국, 몽강, 왕징웨이 정권에서도 도나리구미와 유사한 조직이 운영되었으며, 이후 동남아시아 점령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RT/RW 시스템이 있다.[4][5]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이웃 상조 조직의 역사가 있다. 춘추전국 시대 말기의 십오제[18], 보갑제, · 시대의 리갑제 등이 인보제(이웃 조직 제도)에 해당한다.

3. 주요 특징 및 기능

도나리구미는 이웃 간 상호 협력을 강조하는 조직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다. 주요 특징과 기능은 다음과 같다.


  • 상호 부조: 에도 시대부터 존재했던 지역 상호 지원 조직의 전통을 계승했다.
  • 행정 보조: 1940년 내무성 (일본)의 명령으로 공식화되어 대정익찬회 산하에 편입되었다. 배급, 국채 배포, 소방, 공중 보건, 민방위 등의 행정 업무를 보조했다.[2]
  • 주민 통제 및 감시: 특고경찰과 연계된 정보원 네트워크를 통해 주민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국가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을 억압했다.[3]
  • 전시 동원: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주민들에게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민병대 조직을 시도하는 등 전시 동원 체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부 도나리구미는 만주국, 북부 조선, 가라후토 등에서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 전후 잔존: 1947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정내회와 같은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며 지역 행정 및 방범, 재난 구호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6]


이처럼 도나리구미는 단순한 이웃 조직을 넘어, 행정 보조, 주민 통제, 전시 동원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주민 통제와 수탈의 도구로 활용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3. 1. 행정 보조

5인조·10인조라는 촌락 내의 상호 부조적인 면이 있는 행정 하부 조직의 관습을 이용한 것이다. 중일 전쟁이나 유럽에서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에 대응하여 행해진 국가 총동원법,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 선거 숙정 운동과 함께, 1940년(쇼와 15년) 9월 11일에 내무성이 훈령한 "부락회 정내회 등 정비 요령(내무성 훈령 제17호)"(인조 강화법)에 의해 제도화되었다.[9]

구체적으로는 10채 전후의 세대를 한 조로 하여, 단결이나 지방 자치의 진행을 촉진하고, 전시 하의 주민 동원이나 물자의 공출, 통제물의 배급, 공습에서의 방공 활동 등을 했다.

1941년(쇼와 16년) 3월 시점의 인조의 수는 120만에 달했다. 보급될수록 인조는 대정익찬회의 하부 조직처럼 해석되어, 각종 단체의 활동에 이용되는 예도 보였기 때문에, 같은 해, 내무성은 다시 "인조는 대정익찬회의 하부 조직이 아니다"라고 부정하면서, 해석과 운용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조를 익찬 운동의 기초 조직으로 위치시켰기 때문에[10], 결과적으로 동조 압력을 통한 사상 통제나 주민 간의 감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전후의 1947년(쇼와 22년) 4월 1일, 연합군 최고 사령관 총사령부에 의해 행정 조직으로서의 인조는 폐지되었지만[11], 21세기에도 여전히 인조나 정내회는 많은 수가 잔존해 있으며, 회람판 등의 활동 형식을 뚜렷하게 남기고 있다.

실질적으로 정내회의 하부 조직이며, 각 조(반)마다 정비를 징수하고 구청장에게 정비를 납부하고 있다.

3. 2. 주민 통제 및 감시

일제강점기 도나리구미는 주민 통제 및 감시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1940년 9월 11일 내무성의 명령에 의해 공식화된 도나리구미는 대정익찬회의 하부 조직으로,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에 의해 운영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배급 물품 할당, 국채 배포, 소방, 공중 보건, 민방위 등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특고경찰과의 연계를 통해 구축된 정보원 네트워크는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이는 국가 법규 위반뿐만 아니라, 의심스러운 정치적, 도덕적 행동까지 감시 대상에 포함시켜 사상 통제를 강화했다.[3]

1941년 3월, 도나리구미의 수는 120만에 달했으며, 이는 주민 대다수가 감시 체제 하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나리구미는 대정익찬회의 하부 조직처럼 해석되면서 동조 압력을 통해 사상 통제를 강요하고, 주민 간의 감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10] 이러한 강제적인 동원과 감시는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에 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47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11] 그 잔재는 정내회 등의 형태로 남아 주민 통제 및 감시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4. 현대적 의의 및 평가

도나리구미는 이웃 간 상호 협력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주민 통제와 감시의 도구로 악용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했다. 특히, 일제는 도나리구미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전시 체제에 강제로 동원하는 등 한국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도나리구미와 같은 주민 조직이 권력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4. 1. 부정적 측면

도나리구미는 일제강점기에 한국 사회에 강제로 이식되어 주민 통제와 억압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원래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이전부터 인근 지역 상호 지원 조직이 존재했으나, 1940년 내무성 (일본)의 명령에 의해 대정익찬회 산하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총리대신 내각에 의해 공식화되면서 변질되었다.[2]

도나리구미는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지원하고, 특고경찰과 연결된 정보원 네트워크를 통해 주민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2],[3] 이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생활을 감시하는 행위였다.

중일 전쟁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도나리구미는 국가 총동원법,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 선거 숙정 운동과 함께 1940년(쇼와 15년) 9월 11일 내무성 훈령으로 제도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주민 단결, 지방 자치 촉진, 전시 물자 배급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9] 실제로는 동조 압력을 통한 사상 통제와 주민 간 감시 역할을 담당했다.[10]

1941년(쇼와 16년) 3월, 도나리구미 수는 120만에 달했다. 대정익찬회 하부 조직처럼 해석되어 각종 단체 활동에 이용되기도 했다. 내무성은 이를 부정하면서도, 도나리구미를 익찬 운동의 기초 조직으로 위치시켜 사상 통제와 감시 역할을 강화했다.[10]

이처럼 도나리구미는 일제의 억압적인 통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전체주의적인 통제를 강화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참조

[1] 서적 Dear, The Oxford Companion to World War II
[2] 문서 Pekkanan, Japan's dual civil society. Members without advocates
[3] 서적 Cook, Japan at War: An Oral History
[4] 간행물 Roles of Tonarigumi to Promote Participatory Development in Indonesia: Case of Three Villages in Purbalingga District, Central Java Province http://en.calameo.co[...] 2014
[5] 서적 Dear, The Oxford Companion to World War II
[6] 문서 Pharr, The State of Civil Society in Japan
[7] 서적 昭和史 岩波書店 1959
[8] 서적 昭和史 岩波書店 1959
[9] 뉴스 十戸内外で組織、要綱を通達 東京日日新聞 1940-09-10
[10] 뉴스 "全国でただいま百十二万の隣組" 朝日新聞 1941-04-06
[11] 서적 増補新版 現代世相風俗史年表 昭和20年(1945)-平成20年(2008) 河出書房新社
[12] 서적 鉄道物語 はじめて鉄道に乗ったあの日 河出書房新社
[13] 간행물 旅と防空 1945-01
[14] 간행물 インドネシアの住民組織RT・RWの淵源 : 日本占領期ジャワにおける隣組・字常会の導入 https://hdl.handle.n[...] 東京都立大学都市研究センター
[15] 웹사이트 愛国班 https://kotobank.jp/[...]
[16] 간행물 躍動半島⑧ : 戦ふ愛国班 https://hdl.handle.n[...] 朝日新聞社
[17] 서적 ゆるす思想 ゆるさぬ思想 - 若い世代と語る平和・原爆・いま・未来 こうち書房 / 桐書房 1992-07
[18] 웹사이트 什伍の制 https://www.y-histor[...]
[19] 서적 《국화와 칼》 을유문화사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