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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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쿄 자미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모스크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무슬림 공동체를 위해 건설되었다. 1938년 목조 건축물로 처음 세워졌으나, 노후화로 인해 1984년 폐쇄된 후 1986년 철거되었다. 이후 터키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98년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2000년에 현재의 오스만 건축 양식의 모스크가 완공되었다. 도쿄 자미는 모스크로서의 기능과 함께 이슬람 문화 및 터키 문화를 알리는 센터 역할도 수행하며,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도쿄 자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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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 | |
원어 이름 | 東京ジャーミイ |
로마자 표기 | Tōkyō-jāmii |
다른 이름 | 東京トルコディヤーネットジャーミィ (Tōkyō Toruko Diyānetto Jāmii) |
종교 | 수니 이슬람 |
위치 |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
건축 | |
건축 유형 | 모스크 |
건축가 | 무하렘 힐미 세날프 |
착공 | 1998년 |
완공 | 2000년 |
개관 | 2000년 6월 30일 |
건설 비용 | 15억 엔 |
미나레트 수 | 1개 |
미나레트 높이 | 41.48 미터 |
돔 수 | 1개 |
운영 | |
지도자 | 이맘 하티비 무함메트 르파트 치나르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제국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바시키르와 타타르인 이민자들은 1938년 5월 12일 학교와 함께 도쿄 자미를 세웠다. 압두레시드 이브라힘과 압둘하야 쿠르반 알리가 초대 이맘이었다.[1]
1986년 도쿄 자미는 심각한 구조적 손상으로 철거되었다. 1998년 튀르키예 종교청의 지시와 지원으로 새 건물이 착공되었으며, 건축가는 힐미 세날프였다. 오스만 종교 건축 양식을 기반으로 한 장식은 약 70명의 튀르키예 장인이 담당했고, 상당량의 대리석이 튀르키예에서 수입되었다. 2000년 약 15억엔의 비용으로 완공되었으며, 준공식은 2000년 6월 30일에 열렸다.[1]
2. 1. 초기 역사 (1917-1938)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에 살던 회교도·튀르크 민족 다수가 국외로 피난했으며, 특히 자바이칼 주 및 만주국에 거주하던 회교도 상인 약 600명이 일본으로 이주해 왔다.[11] 그중 약 200명은 도쿄 주변에 거주했으며, 타타르인 이슬람교 지도자 쿠르반갈리 등은 1924년 "도쿄 회교도단"을 결성했다.[11]이 단체는 처음에는 센다가야 회관을 예배소로 사용했지만, 1931년 회당 건설이 결정되었다.[11] 쿠르반갈리를 회장으로 새로 결성된 일본 재류 교토 연맹회에는 일본인 유지들로부터 10만 엔(당시)의 기부가 모였고, 현재 부지(시부야구 토미가야)에 "도쿄 회교 예배당"이 건설되어, 1938년 5월 12일에 낙성식이 거행되었다.[11] 이 모스크는 러시아의 10월 혁명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바시키르와 타타르인 이민자들이 학교와 함께 세운 것이다. 초대 이맘은 압두레시드 이브라힘과 압둘하야 쿠르반 알리였다.
예배당 건설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대 이슬람 선무 정책이 있었으며, 건축 자금은 일본 측의 기부로 충당되었다. 낙성식에는 토야마 미쓰루, 마쓰이 이와네, 야마모토 에이스케 등 육해군 유력자들이 참렬했다. 이것이 도쿄 자미의 시작이며, 개설 후 이맘에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울라마(이슬람 법학자) 압둘레시트 이브라힘이 취임했다. 초대 예배당(도쿄 회교 예배당)은 목조 건축이었다.
2. 2. 도쿄 회교 예배당 건립 (1938-1986)
1938년 5월 12일, 러시아의 10월 혁명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바시키르와 타타르인 이민자들이 압두레시드 이브라힘과 압둘하야 쿠르반 알리의 지휘 하에 학교와 함께 이 모스크를 세웠다.[1]1917년 (다이쇼 6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에 살던 회교도·튀르크 민족 다수가 국외로 피난했으며, 특히 자바이칼 주 및 만주에 거주하던 회교도 상인 약 600명이 일본으로 이주해 왔다.[11] 이 중 약 200명은 도쿄 주변에 거주했으며, 타타르인 이슬람교 지도자 쿠르반갈리 등은 1924년(다이쇼 13년) "도쿄 회교도단"을 결성했다.[11] 처음에는 센다가야 회관을 예배소로 사용했지만, 1931년 (쇼와 6년) 회당 건설이 결정되었다.[11] 쿠르반갈리를 회장으로 새로 결성된 일본 재류 교토 연맹회에는 일본인 유지들로부터 10만 엔(당시)의 기부가 모였고, 현재 부지(시부야구 토미가야)에 "도쿄 회교 예배당"이 건설되어 1938년 (쇼와 13년) 5월 12일 낙성식이 거행되었다.[11]
이 예배당 건설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국책으로서 미국, 영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와의 전쟁에 대비한 대 이슬람 선무 정책이 있었으며, 건축 자금은 일본 측의 기부로 충당되었다. 낙성식에는 토야마 미쓰루, 마쓰이 이와네, 야마모토 에이스케 등 육해군 유력자들이 참렬했다. 이것이 도쿄 자미의 시작이며, 개설 후 이맘에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울라마(이슬람 법학자) 압둘레시트 이브라힘이 취임했다. 초대 예배당(도쿄 회교 예배당)은 목조 건축이었다.
초대 예배당은 도쿄 거주 터키 국적 무슬림들과 요요기 우에하라·오야마 정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지만, 노후화로 인해 1984년 (쇼와 59년) 폐쇄되었고, 1986년 (쇼와 61년) 철거되었다.
2. 3. 예배당 폐쇄 및 재건 (1986-2000)
1938년 5월 12일,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바시키르와 타타르인 이민자들이 학교와 함께 이 모스크를 세웠다. 초대 이맘은 압두레시드 이브라힘과 압둘하야 쿠르반 알리였다.[1]1917년 (다이쇼 6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 내 회교도·튀르크 민족 다수가 국외로 피난했으며, 특히 자바이칼 주 및 만주 거주 회교도 상인 약 600명이 일본으로 이주했다.[11] 이 중 약 200명은 도쿄 주변에 거주했으며, 타타르인 이슬람교 지도자 쿠르반갈리 등은 1924년 (다이쇼 13년) "도쿄 회교도단"을 결성했다.[11] 처음에는 센다가야 회관을 예배소로 사용했으나, 1931년 (쇼와 6년) 회당 건설이 결정되었다.[11] 쿠르반갈리를 회장으로 하는 일본 재류 교토 연맹회에는 일본인 유지들로부터 10만 엔(당시)의 기부가 모였고, 시부야구 토미가야에 "도쿄 회교 예배당"이 건설되어 1938년 (쇼와 13년) 5월 12일 낙성식이 거행되었다.[11]
이 예배당 건설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대 이슬람 선무 정책이 있었으며, 건축 자금은 일본 측 기부로 충당되었다. 낙성식에는 토야마 미쓰루, 마쓰이 이와네, 야마모토 에이스케 등 육해군 유력자들이 참렬했다. 초대 예배당(도쿄 회교 예배당)은 목조 건축이었으며, 개설 후 이맘은 울라마(이슬람 법학자) 압둘레시트 이브라힘이었다.
초대 예배당은 도쿄 거주 터키 국적 무슬림들과 요요기 우에하라·오야마 정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지만, 노후화로 1984년 (쇼와 59년) 폐쇄, 1986년 (쇼와 61년) 철거되었다. 도쿄 터키인 협회는 모스크 재건을 위해 부지를 터키 정부에 기부하고 재건을 위탁했다.
1986년 모스크는 심각한 구조적 손상으로 철거되었다. 1998년 튀르키예 종교청 지시와 지원으로 새 건물 착공, 건축가는 힐미 세날프였다. 장식은 오스만 종교 건축 양식이며, 약 70명의 튀르키예 장인이 마감 세부 작업을 수행했고, 상당량의 대리석이 튀르키예에서 수입되었다. 2000년 약 15억엔 비용으로 완공, 준공식은 2000년 6월 30일에 열렸다.[1]
터키 공화국 종무청은 "도쿄 자미 건설 기금"을 설립, 터키 전역에서 기부를 모금하고 모스크 건축 자재와 내장·외장 마무리 장인을 파견했다.
1998년 (헤이세이 10년) 6월 30일 착공, 2년 후인 2000년 (헤이세이 12년) 6월 30일 개당했다. 이후 도쿄 자미·터키 문화 센터는 모스크 활동과 함께 이슬람 문화·터키 문화를 전하는 센터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사진 첨부 이슬람 예배 가이드", "이슬람 ― 올바른 이해를 위해―",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 터키·이슬람의 마음과 사랑", "터키·이슬람 문명에 있어서의 비정부 조직 와크프와 그 작품" 등(비매품) 책을 출판하고 있으며, 비무슬림도 견학이나 강좌 수강이 가능하다.
2003년 (헤이세이 15년) 센터 내 종교 법인 도쿄·터키·디야나트·자미이 설립이 인가되어 정식 종교 단체 법인격을 취득했다.
2. 4. 현대 (2000-현재)
1986년, 모스크는 심각한 구조적 손상으로 인해 철거해야 했다. 튀르키예 종교청의 지시와 지원을 받아 1998년에 새로운 건물이 착공되었다. 건물의 건축가는 힐미 세날프였다. 장식은 오스만 종교 건축을 기반으로 했다. 약 70명의 튀르키예 장인이 마감 세부 작업을 수행했으며, 상당량의 대리석이 튀르키예에서 수입되었다. 건물은 2000년에 약 15억엔의 비용으로 완공되었다. 준공식은 2000년 6월 30일에 열렸다.[1]1938년 (쇼와 13년) 러시아 제국 출신의 타타르인들을 위한 모스크로 설립되었던 전신인 도쿄 회교 학원은 노후화로 인해 철거된 후, 망명 타타르인들이 터키 국적을 취득한 인연으로 터키 공화국 종무청의 원조를 받아 오스만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2000년 (헤이세이 12년) 6월에 개원했다.
도쿄 자미는 매일 5번의 예배 시간에 개관한다.[7] 모스크의 예배자는 도쿄 주변에 거주하는 무슬림으로, 그 주요 국적은 터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일본이다.[7] 매일 예배 참여자는 5-10명 정도, 금요일 합동 예배 참여자는 350-400명 정도이다.[7] 그 외, 일본 방문 외국인 여행 중인 무슬림도 많이 방문한다.[8]
3. 건축 특징
도쿄 자미는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건물 상층에 예배당을 설치하고 큰 돔을 얹어 광대한 공간을 확보하는 터키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설계는 터키의 건축 회사 대표인 할렘 힐미 세날프가 맡았다. 건물의 골조는 가시마 건설이 담당했지만, 내장과 외장은 대부분 터키에서 가져온 자재를 사용했으며, 100명에 가까운 터키인 건축가와 장인들이 마무리 작업을 했다.
3. 1. 오스만 양식
도쿄 자미는 오스만 건축 양식을 본떠 만들어졌으며, 내부와 외부 전체에 걸쳐 흰색과 튀르쿠아즈색이 많이 사용되었다. 튀르쿠아즈색은 신성함을 나타내는 색으로 여겨지며, 고대 이란 시대부터 묘사된 색상이다.[4] 민바르와 미흐라브는 모두 흰색 대리석으로 덮여 있는데, 이는 신과 순수한 빛과 관련하여 순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능적인 장식품에 있는 금색 디테일은 이 조각들이 모스크에서 더욱 돋보이게 한다.이 구조는 오스만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블루 모스크와 매우 유사하다.[5] 모스크 내부의 색상은 자연광과 인공 조명의 사용을 통해 강조되는데, 모스크를 둘러싼 많은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사용하고, 아래로 늘어뜨린 샹들리에를 통해 인공 조명을 사용한다. 건축가들은 건물 관람객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충분한 양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빛과 색상을 관객에게 사용하는 것 사이의 연결은 모스크를 만들 때 알려지고 사용된다.[4]

도쿄 자미는 건물 상층에 예배당을 설치하고, 큰 돔을 얹어 광대한 공간을 확보하는, 터키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설계는 터키에서 건축 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할렘 힐미 세날프가 맡았다.
건물의 골조 공사는 가시마 건설이 담당했지만, 내장과 외장의 대부분은 터키에서 보내온 자재를 사용했으며, 100명에 가까운 터키인 건축가와 장인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9][8] 시마다 히로미는 이처럼 장식이 화려한 것은 (2017년 시점의 시설이) 모스크로서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10]



3. 2. 건축 및 내부 장식
도쿄 자미는 면적이 734m2이며,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총 1477m2의 연면적을 가지고 있다. 주 돔은 높이가 23.25m이고 6개의 기둥으로 지탱되며, 인접한 미나렛의 높이는 41.48m이다.[2]건물의 각 층은 예배자를 위한 다른 활동 공간으로 사용된다. 1층은 공용 공간이며, 2층은 기도실로 미흐라브와 민바르가 있다. 민바르는 이맘이 설교를 할 때 사용하는 높은 계단이다.[3]
도쿄 자미의 내부와 외부 전체에 걸쳐 흰색과 튀르쿠아즈색이 많이 사용된다. 이 모스크는 오스만 건축 양식을 본떠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용된 색상은 이 구조 전체에 반영되며, 구현된 색상의 사용 또한 상호 작용한다. 튀르쿠아즈색은 신성함을 나타내는 색으로 여겨지며, 고대 이란 시대부터 묘사된 색상이다.[4] 민바르와 미흐라브는 모두 흰색 대리석으로 덮여 있는데, 이는 신과 순수한 빛과 관련하여 순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색상이다. 기능적인 장식품에 있는 금색 디테일은 이 조각들이 모스크에서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구조는 블루 모스크와 매우 유사하다.[5] 모스크 내부의 색상은 자연광과 인공 조명의 사용을 통해 강조되는데, 모스크를 둘러싼 많은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사용하고, 아래로 늘어뜨린 샹들리에를 통해 인공 조명을 사용한다. 건축가들은 건물 관람객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충분한 양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빛과 색상을 관객에게 사용하는 것 사이의 연결은 모스크를 만들 때 알려지고 사용된다.[4]
도쿄 자미는 오스만 양식의 모스크로, 건물 상층에 예배당을 설치하고 큰 돔을 얹어 광대한 공간을 확보하는, 터키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설계는 터키에서 건축 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할렘 힐미 세날프가 맡았다. 건물의 골조 공사는 가시마 건설이 담당했지만, 내장과 외장의 대부분은 터키에서 보내온 자재를 사용했으며, 100명에 가까운 터키인 건축가와 장인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1층에는 터키의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강좌 등에 사용되는 넓은 방이 있다. 2층의 예배당은 최대 2,000명 수용 가능하며, 여성용 예배실도 있고, 전담 이맘(지도자)도 있는 등, 일본 최대의 모스크이다. 부지 면적은 734m2, 건물 바닥 면적은 1693m2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9][8]
3. 3. 색채 사용
도쿄 자미의 내부와 외부 전체에는 흰색과 튀르쿠아즈색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모스크는 오스만 건축 양식을 본떠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용된 색상은 이 구조 전체에 반영되며, 구현된 색상의 사용 또한 상호 작용한다. 튀르쿠아즈색은 신성함을 나타내는 색으로 여겨지며, 고대 이란 시대부터 묘사된 색상이다.[4] 민바르와 미흐라브는 모두 흰색 대리석으로 덮여 있는데, 이는 신과 순수한 빛과 관련하여 순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색상이다. 기능적인 장식품에 있는 금색 디테일은 이 조각들이 모스크에서 더욱 돋보이게 한다.이 구조는 동일한 오스만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블루 모스크와 매우 유사하다.[5] 모스크 내부의 색상은 자연광과 인공 조명의 사용을 통해 강조되는데, 모스크를 둘러싼 많은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사용하고, 아래로 늘어뜨린 샹들리에를 통해 인공 조명을 사용한다. 건축가들은 건물 관람객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충분한 양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빛과 색상을 관객에게 사용하는 것 사이의 연결은 모스크를 만들 때 알려지고 사용된다.[4]
4. 역대 이맘
도쿄 자미의 역대 이맘은 터키 공화국 종무청에서 선출 및 파견하며, 임기는 4년이다.[7] 초대 이맘은 압둘하이 쿠르반 알리였다.
4. 1. 도쿄 회교 예배당
도쿄 자미의 책임자·이맘은 터키 공화국 종무청에 의해 선출·파견되며, 임기는 4년이다.[7]재임 기간 | 이름 |
---|---|
1938년 (쇼와 13년) - 1943년 (쇼와 18년) | 압둘하이 쿠르반 알리 |
1943년 (쇼와 18년) - 1950년 (쇼와 25년) | 압두르레시트 이브라힘 |
1950년 (쇼와 25년) - 1969년 (쇼와 44년) | 투르키스탄르 에민 이슬라미 |
1969년 (쇼와 44년) - 1979년 (쇼와 54년) | 셰리푸라흐 미프타후딘 |
1979년 (쇼와 54년) - 1983년 (쇼와 58년) | 아이난 사파 |
1983년 (쇼와 58년) - | 후세인 바슈 |
2000년 (헤이세이 12년) - 2004년 (헤이세이 16년) | 제밀 아야즈 |
2004년 (헤이세이 16년) - 2008년 (헤이세이 20년) | 엔사리 예니투르크 |
2008년 (헤이세이 20년) - 2011년 (헤이세이 23년) | 엔사리 예니투르크 (2기) |
2011년 (헤이세이 23년) - 2012년 (헤이세이 24년) | 무라트 체비크 |
2012년 (헤이세이 24년) - 2013년 (헤이세이 25년) | 누르라흐 아야즈 |
2013년 (헤이세이 25년) - 2020년 (레이와 2년) | 무함메드 라시트 아라스 |
2019년 (헤이세이 31년) - 2024년 (레이와 6년) | 무함메트 리파트 치나르 |
2024년 (레이와 6년) - | 아뎀 레벤트 |
4. 2. 도쿄 자미
도쿄 자미의 책임자·이맘은 터키 공화국 종무청에 의해 선출·파견되며, 임기는 4년이다.[7]취임 연도 | 이름 |
---|---|
2000년 (헤이세이 12년) ~ 2004년 (헤이세이 16년) | 제밀 아야즈(Cemil Ayaz) |
2004년 (헤이세이 16년) ~ 2008년 (헤이세이 20년) | 엔사리 예니투르크(Ensari Yentürk) |
2008년 (헤이세이 20년) ~ 2011년 (헤이세이 23년) | 엔사리 예니투르크(Ensari Yentürk) (2기) |
2011년 (헤이세이 23년) ~ 2012년 (헤이세이 24년) | 무라트 체비크(Murat Çevik) |
2012년 (헤이세이 24년) ~ 2013년 (헤이세이 25년) | 누르라흐 아야즈(Nurullah Ayaz) |
2013년 (헤이세이 25년) ~ 2020년 (레이와 2년) | 무함메드 라시트 아라스(Muhammed Raşit Alas) |
2019년 (헤이세이 31년) ~ 2024년 (레이와 6년) | 무함메트 리파트 치나르(Muhammet Rıfat Çınar) |
2024년 (레이와 6년) ~ | 아뎀 레벤트(Adem Levent) |
5. 현대적 의의
도쿄 자미는 요요기우에하라역에서 가까운 시부야구 오야마정의 이노카시라 거리를 따라 위치하며, 오스만 양식의 모스크를 특징으로 한다.[7]
"자미이"는 터키어로 금요 예배를 포함한 하루 5번의 예배가 행해지는 대규모 모스크를 나타내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의미하는 아랍어가 어원이다.[7]
1938년(쇼와 13년) 러시아 제국 출신의 타타르인들을 위한 모스크로 설립되었던 도쿄 회교 학원이 전신이다. 해당 모스크가 노후화로 인해 철거된 후, 망명 타타르인들이 터키 국적을 취득한 인연으로 터키 공화국 종무청의 원조를 받아 오스만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2000년(헤이세이 12년) 6월에 개원했다.
도쿄 자미는 매일 5번의 예배 시간에 개관한다.[7] 모스크의 예배자는 도쿄 주변에 거주하는 무슬림으로, 그 주요 국적은 터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일본이다.[7] 매일의 예배 참여자는 5-10명 정도, 금요일의 합동 예배 참여자는 350-400명 정도이다.[7] 그 외, 일본 방문 외국인 여행 중인 무슬림도 많이 방문한다.[8]
참조
[1]
뉴스
New Tokyo Mosque opens
http://search.japant[...]
The Japan Times
2000-07-01
[2]
뉴스
Japan's largest mosque completed in Tokyo
http://www.kajima.co[...]
Kajima News & Notes
2000
[3]
웹사이트
Tokyo Camii Mosque Japan المسجد التٌركي-طوكيو {{!}} Japan Halal TV
http://jhtv.jp/blog/[...]
2021-12-07
[4]
논문
A study on the concepts and themes of color and light in the exquisite islamic architecture
2018-03-14
[5]
웹사이트
The Blue Interpretation of Art: The Blue Mosque
http://www.neurosurg[...]
[6]
문서
公式ウェブサイト(日本語)には、「東京ジャミイ」と「東京ジャミィ」という表記が混在している(平成24年1月11日閲覧)
[7]
웹사이트
よくある質問
https://web.archive.[...]
2014-08-19
[8]
뉴스
シンガポールをはじめ東南アジアのムスリムに人気上昇中の旅行先、日本。現状と課題とは?
https://web.archive.[...]
2014-07-15
[9]
뉴스
ムスリムになった日本人
http://www.nippon.co[...]
2013-05-09
[10]
서적
日本人の信仰
扶桑社新書
2017
[11]
서적
渋谷区の歴史
名著出版
1978-09-30
[12]
문서
1터키 리라는 한국 돈으로 약 139원, 일본 엔으로는 [[10엔 동전]] 1개와 [[1엔 동전]] 3개 내외 정도에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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