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포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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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 포머스는 미국의 작사가이자 블루스, 로큰롤 가수로, 1925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음악적 재능을 발휘했다. 10대 시절부터 '독 포머스'라는 예명으로 블루스 가수로 활동하며 흑인 클럽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레스터 영, 듀크 엘링턴과 협연하기도 했다. 작곡가로 전향하여 모트 슈먼과 협력하여 "Save the Last Dance for Me", "A Teenager in Love"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으며, 레이 찰스, 엘비스 프레슬리 등 유명 아티스트들에게 곡을 제공했다. 1991년 폐암으로 사망했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에 헌액되었다. 그의 음악은 한국 전쟁 이후 미8군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어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독 포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제롬 솔론 펠더
출생일1925년 6월 27일
출생지브루클린, 뉴욕 시, 미국
사망일1991년 3월 14일
사망지맨해튼, 뉴욕 시, 미국
직업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장르블루스, 로큰롤
관련 활동엘비스 프레슬리, 바비 대린, 모트 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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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제로미 펠더는 1925년 브루클린에서 노동계급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라디오를 통해 클래식 음악, 핫 재즈, 점프 블루스를 접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빅 조 터너의 음반은 그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독 포머스"라는 예명으로 흑인 클럽에서 블루스를 불렀으며, 목발을 짚고 무대에 올랐다. 레스터 영, 듀크 엘링턴 등과 협연했고,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여러 음반사에서 40여 곡(싱글 20장)을 녹음했다.

1950년대, 브로드웨이 배우와 결혼 후 가장으로서 가사뿐만 아니라 잡지 기고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신혼여행 중 더 코스터스가 부른 "영 블러드"를 듣고 작사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 리버-스톨러에게 수정된 곡으로 1500달러의 인세를 받았다.

1957년, 전업 작사가가 되어 모트 셔먼과 브릴 빌딩에서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로큰롤을 잘 알지 못했기에 셔먼을 파트너로 선택했다고 한다.

포머스와 셔먼은 〈Turn Me Loose〉, 〈Teenager in Love〉, 〈Little Sister〉, 〈This Magic Moment〉, 드리프터스의 〈Save the Last Dance for Me〉 등 히트곡을 냈다. 〈Save the Last Dance for Me〉는 결혼식에서 휠체어를 탄 채 아내가 다른 사람과 춤추는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을 담은 곡이다.

1959년 영국을 방문했으나, 1964년 비틀즈의 미국 방문으로 상황이 변했다. 《에드 설리번 쇼》 출연 이후, 고용 작곡가들은 설 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후 B.B. 킹의 〈There Must Be a Better World Somewhere〉 등을 썼지만, 포커와 브루스 스프링스틴, 돌리 파튼 등의 곡 커버 저작료로 생계를 유지했다. 말년에는 뉴욕 작곡가계의 원로로 존경받았으며, 1991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2.1. 어린 시절과 장애

제로미 펠더는 1925년 브루클린에서 영국 태생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1년 동안 인공호흡기를 사용했고, 목발을 짚고 다녔다. 이후 사고로 소아마비 후유증이 악화되어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었다.

라디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접하고, 핫 재즈와 점프 블루스도 알게 되었다. 빅 조 터너의 "Piney Brown Blues" 음반을 듣고 블루스에 빠져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2.2. 가수 활동과 좌절

Doc Pomus영어라는 예명으로 십 대 시절부터 브루클린을 비롯한 뉴욕 일대의 여러 클럽에서 블루스 가수로 활동했다. 흑인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소아마비 장애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매너로 인기를 얻었다. 재즈 클럽에 다니기 시작했고, 흑인 관객 앞에서 공연할 용기를 얻어 클럽 후원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인기 있는 블루스 곡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렀다.

레스터 영, 듀크 엘링턴 등 당대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과 협연하기도 했다. 18세에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조지스 선술집에서 데뷔했으며, 클럽들의 초청을 받아 공연했고,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이 그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클럽에서 종종 자신이 유일한 백인이었지만, 소아마비를 앓는 유대인으로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특별한 약자 의식을 느꼈고, 그들은 그의 용기를 존경하고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걸쳐 체스, 아폴로, 사보이 등 여러 음반사에서 50여 곡을 녹음했다. 1944년부터 1954년까지 약 10~12년 동안 뉴욕 대도시 지역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미키 베이커와 킹 커티스가 포함된 밴드를 이끌었다. 뉴욕시 주변의 클럽에서 공연하면서 밀트 잭슨, 호레이스 실버, 버디 테이트, 베이커, 커티스와 함께 공연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블루스 가수로서 활동에 제약이 많았고, 결국 1957년 가수 활동을 중단했다. 30대 초반에 그의 노래 "Heartlessly"가 디스크 자키 앨런 프리드에 의해 연주되었다. 하지만 노래에 대한 권리를 가진 회사는 포머스의 삶과 상황을 알고 그의 가수 경력을 홍보하는 데 관심이 없었고, 그는 다른 생계 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 작곡가로서의 성공

제로미 펠더는 1925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다. 라디오를 통해 클래식 음악, 핫 재즈, 점프 블루스를 접했고, 빅 조 터너의 음반을 들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독 포머스"라는 이름으로 흑인 클럽에서 블루스를 부르며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레스터 영, 듀크 엘링턴 등과 협연했지만, 미국의 음악 변화와 장애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1956년 레이 찰스가 부른 포머스의 곡이 히트하면서 작곡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R&B에 대한 꿈을 접고 로큰롤 작곡에 집중하게 되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모트 셔먼과 함께 〈Turn Me Loose〉, 〈Teenager in Love〉, 〈Little Sister〉, 〈This Magic Moment〉, 드리프터스의 〈Save the Last Dance for Me〉 등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특히 〈Save the Last Dance for Me〉는 자신의 결혼식 경험을 바탕으로 작사한 곡이다.

1959년 포머스와 셔먼은 영국을 방문했고, 1964년 비틀즈의 미국 방문 이후 음악계의 변화를 체감했다. B.B. 킹의 〈There Must Be a Better World Somewhere〉 같은 히트곡을 냈지만, 포머스의 시대는 저물어갔다. 이후 포커와 저작료 수입으로 생활하며, 뉴욕 작곡가계의 원로로 활동하다 1991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10대에 블루스 가수가 된 포머스는 장애 덕분에 흑인 청중과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뉴욕 클럽에서 실력을 쌓고, 밀트 잭슨, 킹 커티스와 공연했으며, Chess, Apollo 등의 레이블에서 1940년대와 1950년대에 40곡(싱글 20장)을 녹음했다.

1950년대에는 브로드웨이 배우와 결혼하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잡지 기사를 쓰기도 했다. 신혼여행 중 자신의 작품 "영 블러드"의 더 코스터스 버전이 주크 박스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 작곡가로서의 기회를 잡았다. 1957년에는 전업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5년에는 라이노 레코드에서 포머스를 기리는 트리뷰트 앨범 《Till The Night Is Gone》을 발표했다. 밥 딜런, 브라이언 윌슨, Dion DiMucci영어, 닥터 존, 아르마 토마스, 솔로몬 버크, 존 하이아트, 숀 콜빈, 아론 네빌, 루 리드, 더 밴드, B.B. 킹, 로스 로보스, 로잔느 캐시 등이 참여했다.

3.1. 모트 슈먼과의 협업

1950년대 후반, 포머스는 피아니스트 모트 슈먼과 협업하여 작곡가로서 새로운 시기를 맞이한다. 포머스는 주로 가사를 쓰고, 슈먼은 멜로디를 만드는 방식으로 함께 작업했다. 이들은 〈Turn Me Loose〉, 〈Teenager in Love〉, 〈Save the Last Dance for Me〉, 〈This Magic Moment〉, 〈Little Sister〉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특히 〈Save the Last Dance for Me〉는 포머스가 자신의 결혼식 경험을 바탕으로 쓴 곡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포머스의 아내가 그의 오빠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무도회장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을 담고 있다.

3.2.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

포머스는 여러 유명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다양한 장르의 곡을 만들었다. 1957년에는 전업 작가가 되어 사촌과 교제하던 피아니스트 몰트 슈만과 브릴 빌딩의 힐 & 레인지 Music Co./Rumbalero Music에서 공동 작업을 했다. 슈만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이 로큰롤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슈만과의 공동 작업으로는 사랑의 십대 (A Teenager in Love), 마지막 춤은 나에게 (Save The Last Dance For Me), 후에 비치 보이스가 커버한 해시바이, "This Magic Moment", "Turn Me Loose", 스위츠 포 마이 스위트, 엘비스 프레슬리의 바이브라토 만세, 리틀 시스터, 서렌더, 마리는 연인 등이 있다.

1960년대 초에는 필 스펙터와 "Young Boy Blues", "Ecstasy", "What Am I To Do?"를 공동 작업했다. 리버-스톨러와는 "She's Not You"도 공동 작업했다. 1956년에는 레이 찰스에게 Lonely Avenue를 써 주었는데, 이 곡은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1970년대에는 닥터 존, 켄 허쉬영어, 윌리 드빌과 공동 작업했다. 이 시기의 "There Must Be A Better World", "There Is Always One More Time", "That World Outside", "You Just Keep Holding On", "Something Beautiful Dying"은 윌리 드빌, B.B. 킹, 아르마 토마스, 마리안느 페이스풀, 찰리 리치, 루스 브라운, 닥터 존, 제임스 부커, 조니 아담스가 녹음했다. 이들을 그의 대표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3.3. 브릴 빌딩 시대의 종말과 이후 활동

1960년대 중반, 비틀즈를 필두로 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영향으로 브릴 빌딩 스타일의 작곡가 시대는 저물었다. 포머스는 전문 도박사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닥터 존, 켄 허쉬(작곡가), 윌리 데빌과 함께 작곡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이 시기의 곡들에 대해 "밤에 방황하며, 자신이 어디에 속하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불확실하거나 항상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곡이라고 말했다. 윌리 데빌, B.B. 킹, 이르마 토마스, 마리안느 페이스풀, 찰리 리치, 루스 브라운, 닥터 존, 제임스 부커, 지미 위더스푼, 조니 아담스 등이 이 시기 포머스의 곡을 녹음했는데, 작가 피터 구랄닉, 음악가이자 작곡가 닥터 존, 프로듀서 조엘 돈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이 곡들을 포머스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다. B.B. 킹의 〈There Must Be a Better World Somewhere〉는 1981년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또한 1970년대 존 벨루시와 함께 블루스 브라더스의 백업 밴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베트 미들러의 음악 고문으로서 그녀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4. 리듬 앤 블루스 재단 활동과 사회 참여

포머스는 (Rhythm and Blues Foundation)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R&B 아티스트들을 지원하기 위한 '독 포머스 아티스트 지원 기금'을 조성했다. 그는 1991년 리듬 앤 블루스 재단 개척자 상을 수상한 최초의 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5. 사망과 유산

독 포머스는 1991년 3월 14일 폐암으로 인해 65세의 나이로 맨해튼의 뉴욕 대학교 의료 센터에서 사망했다.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1991년에는 리듬 앤 블루스 재단 개척자 상을 수상한 최초의 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레이 찰스가 사전 녹화된 메시지를 통해 상을 수여했다.

1995년 Rhino Records에서 포머스의 헌정 앨범 Till The Night Is Gone을 발매했다. 밥 딜런, 브라이언 윌슨, 디온, 닥터 존, 아르마 토마스, 솔로몬 버크, 존 하이엇, 숀 콜빈, 아론 네빌, 루 리드, 더 밴드, B.B. 킹, 로스 로보스, 로잔 캐시 등 많은 음악가들이 참여하여 포머스의 노래를 불렀다. 2010년에는 벤 폴즈닉 혼비가 공동 앨범 Lonely Avenue를 발매하면서 "Doc Pomus"라는 곡을 수록했다. 이 곡의 가사는 포머스의 미완성 자서전에서 인용한 구절을 담고 있다.

포머스의 오랜 친구였던 재즈 가수 지미 스콧은 그의 장례식에서 공연을 했고, 이를 계기로 그의 경력이 부활했다. 장례식에는 루 리드를 포함한 많은 지인들이 참석했다. 포머스는 루 리드를 1960년대 초 음악 산업에 입문시켰으며, 리드는 1992년 앨범 Magic and Loss에서 포머스를 추모했다. 펑크 밴드 Cameo는 포머스의 작곡 스타일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히트곡 "Word Up"을 연주하기 전에 그의 영향을 자주 언급했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A.K.A. Doc Pomus가 2012년에 제작되었다. 2012년에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6. 대표곡

독 포머스는 모트 슈먼과 함께 「사랑의 십대」, 「마지막 춤은 나에게」, 「해시바이」, "This Magic Moment", "Turn Me Loose", 「스위츠 포 마이 스위트」, 엘비스 프레슬리의 「바이브라토 만세」, 「리틀 시스터」, 「서렌더」, 「마리는 연인」 등을 작곡했다.

1956년에는 레이 찰스에게 〈Lonely Avenue〉를 써 주었고, 1970년대에는 닥터 존, 켄 허쉬영어, 윌리 드빌과 함께 작업했다. 이 시기 B.B. 킹에게 "There Must Be A Better World"를 제공했고, "There Is Always One More Time", "That World Outside", "You Just Keep Holding On", "Something Beautiful Dying" 등의 곡들은 여러 가수들이 녹음했다.

6.1. 모트 슈먼과 공동 작곡

슈만과의 공동 작업으로는 「사랑의 십대 (A Teenager in Love)」, 마지막 춤은 나에게 (Save The Last Dance For Me)」, 후에 비치 보이스가 커버한 「해시바이」, "This Magic Moment", "Turn Me Loose", 「스위츠 포 마이 스위트」, 엘비스 프레슬리의 「바이브라토 만세」, 「리틀 시스터」, 「서렌더」, 「마리는 연인」 등이 있다. 슈만과 『라스트 댄스는 나에게』, 『This Magic Moment영어』, 『Sweets for My Sweet영어』, 『Viva Las Vegas (song)영어』, "Little Sister", "Surrender", "Can't Get Used to Losing You", 『Suspicion (Pomus song)영어』, 『Turn Me Loose (Doc Pomus song)영어』, "A Mess of Blues"를 썼다.

6.2. 기타 공동 작곡

Doc Pomus영어는 1956년 레이 찰스에게 〈Lonely Avenue〉를 써 주었다. 1970년대에는 닥터 존, 켄 허쉬영어, 윌리 드빌과 공동 작업했다. 이 시기에 B.B. 킹에게 제공한 "There Must Be A Better World"를 비롯하여, "There Is Always One More Time", "That World Outside", "You Just Keep Holding On", "Something Beautiful Dying" 등의 곡들은 윌리 드빌, B.B. 킹, 아르마 토마스, 마리안느 페이스풀, 찰리 리치, 루스 브라운, 닥터 존, 제임스 부커, 조니 아담스 등이 녹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