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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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브섬은 크로아티아 북부 아드리아해에 위치한 섬으로, 다양한 역사적 지배를 거치며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기원전 360년 일리리아인에 의해 처음 언급되었으며, 로마 시대에는 자치 도시가 되었고, 중세 시대에는 동로마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오스트리아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사이의 영토 분쟁을 겪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강제 수용소가 운영되기도 했다. 현재는 크로아티아에 속해 있으며, 풍부한 문화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관광지로 유명하다.
라브섬의 역사는 기원전 360년경 일리리아인들이 거주하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도시 성벽이 건설되고 무니키피움(자치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다. 산마리노를 건국한 성 마리누스가 라브섬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섬을 떠났다고 한다.
라브섬은 풍부한 문화 유산과 사적을 보유하고 있어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섬의 아름다운 자연, 모래 해변, 문화 유산,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는 많은 관광객과 가족 단위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석궁 토너먼트 대회와 중세 축제인 Rapska Fjera|랍스카 피에라hrv가 잘 알려져 있다.
라브섬은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 지정한 중요 조류 지역(IBA)인 크바르네르 제도의 일부를 이룬다. 이곳은 여러 조류 종, 특히 다양한 맹금류의 번식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요 조류 지역으로 지정되었다.[10]
2. 이름


라브섬은 그리스어 자료인 가짜 스킬라쿠스 항해기 (기원전 360년)에 처음 언급되었으며, 이후 다른 그리스와 로마 공화국의 지리학자들에 의해 '아르바'(Arbal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이름은 라브섬의 가장 오래된 거주민으로 알려진 리부르니아인에게서 유래했다. 아르바는 또한 현대 라브 시에 있던 리부르니아 정착지의 이름이기도 했다. 이 이름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리부르니아인들이 섬에 도시 성벽을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기 시대 초부터 정착지와 함께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리리아-리부르니아어 단어 '아르브'()는 '어두운, 모호한, 녹색의, 숲이 우거진'을 의미했다. 따라서 아르바라는 이름은 한때 섬에 무성했던 소나무 숲 때문에 "검은 섬"이라는 뜻의 지명으로 이해된다.
서기 1세기 이후, '아르바'(Arbala)와 '아르바'(Arvala)라는 이름으로 다른 많은 그리스 및 로마 작가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중세 달마티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은 라틴어로 쓰인 문서에서 '아르베'(Arbela), '아르비아'(Arbiala), '아르비아나'(Arbianala), '아르비타나'(Arbitanala), 그리고 가장 흔하게는 '아르붐'(Arbumla)을 사용했다.
15세기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아르베'(Arbevec)는 베네치아어로도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
크로아티아어 이름 '라브'(Rabhr)는 7세기경부터 슬라브족이 섬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4] 그러나 라브라는 이름의 첫 기록은 15세기 중반(성 에우페미야 프란체스코 수도원 설립과 관련된 라틴 문서)에만 보존되어 있다. 이는 도시의 주요 크로아티아인 거주가 섬과 지역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10세기 이전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3. 역사
중세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잠시 크로아티아 왕국에 속하기도 했다. 1358년에는 헝가리 왕국의 러요시 1세 국왕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르네상스 시대인 1409년부터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는 18세기 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점령기까지 이어졌다. 나폴레옹 몰락 후 1815년부터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섬 주민 다수가 이탈리아어 사용자였기에 이탈리아 왕국으로의 편입을 원했으나, 1921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할양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이스트라반도나 이탈리아 본토로 이주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의해 라브 강제 수용소가 건설되는 비극을 겪었다. 1953년에는 수용소가 있던 자리에 기념 시설이 세워졌다.
전후 라브섬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1991년 크로아티아가 독립하면서 크로아티아의 영토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라브섬은 풍부한 문화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3. 1. 고대
라브섬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360년경 일리리아인들이 거주하던 시기에 처음 나타난다. 이후 리부르니아의 일부였다가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이곳에 도시 성벽을 건설하고, 라브에 자치 도시의 지위인 무니키피움을 부여했다.
산마리노 공화국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성 마리누스는 본래 라브섬 출신이었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섬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역사적 인연으로 현재 라브와 산마리노는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
라브섬의 초기 기독교 역사도 기록으로 남아있다. 현존하는 문서에 따르면, 라브의 가장 초기 주교는 티티아누스로, 그는 532년 살로나에서 열린 공의회에 참석했다. 당시 라브는 살로나 관구에 속해 있었다. 또한,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서명자 명단에는 라브의 주교 우르수스(Ursus episcopus Avaritianensium ecclesiae|라브의 우르수스la)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5][6] 1154년 10월 17일, 라브 교구는 자다르 대교구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1828년 6월 30일, 교황 레오 12세의 교황 칙서 ''Locum Beati Petri''에 따라 라브 교구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그 관할 지역은 크르크 교구에 통합되었다.[7][8]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는 라브를 명목 교구로 지정하고 있다.[9]
3. 2. 중세
중세 시대 동안 라브는 달마티아의 도시 국가 중 하나였으며, 다양한 자치권을 가진 채 비잔티움 제국의 일부로 남았다.[5][6] 잠시 동안은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를 형성하기도 했다. 1000년, 이 섬은 달마티아의 많은 다른 섬 및 도시들과 함께 베네치아 공화국에 복종했다.
현존하는 문서에 따르면 아르바(Arba, 라브의 옛 이름)의 가장 초기 주교는 티티아누스(Titianus)로, 그는 532년 살로나에서 열린 공의회에 참석했다. 당시 아르바는 살로나의 관구였다.[7][8]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서명자 중에는 라브의 주교인 우르수스(Ursus episcopus Avaritianensium ecclesiae|라브의 우르수스la)도 있었다.[5][6] 1154년 10월 17일, 아르바 교구는 자다르 로마 가톨릭 대교구에 귀속되었다.[7][8]
1358년 이 섬은 헝가리 왕국의 앙주 가문 통치자인 러요시 1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3. 3. 베네치아 공화국 시대
르네상스 시대에 라브섬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는 1409년부터 시작하여 18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는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등장하여 섬을 일시적으로 점령하면서 막을 내렸다.
3. 4. 오스트리아 제국 시대
1815년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라브섬은 오스트리아 제국에 병합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는 1918년까지 지속되었다.
3. 5. 유고슬라비아 시대와 크로아티아 독립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라브섬의 귀속 문제가 떠올랐다. 당시 섬 주민의 대다수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이들이었기에 이탈리아 왕국으로의 합병을 원했지만, 1921년 이탈리아는 라브섬을 신생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할양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섬에 거주하던 많은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이스트라반도나 이탈리아 본토로 이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대가 섬에 라브 강제 수용소를 건설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53년에는 과거 강제 수용소가 있던 캄포르 마을 부지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 복합 시설이 들어섰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라브섬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라브섬은 크로아티아 영토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4. 문화
5. 자연
6. 자매 도시
참조
[1]
간행물
Coastline lengths and areas of islands in the Croatian part of the Adriatic Sea determined from the topographic maps at the scale of 1 : 25 000
https://hrcak.srce.h[...]
2019-11-27
[2]
웹사이트
Objavljeni konačni rezultati Popisa 2021.
https://dzs.gov.hr/v[...]
2024-11-14
[3]
웹사이트
European Coastal Airlines ceases operations
https://www.exyuavia[...]
2018-11-15
[4]
웹사이트
Povijest
https://www.rab.hr/g[...]
City of Rab
2019-11-27
[5]
서적
New evidence for the re-establishment of the Adriatic dioceses in the late eighth century
[6]
서적
The Sarnian diocese (Sarniensis Ecclesia)
https://www.anubih.b[...]
[7]
서적
Series episcoporum Ecclesiae Catholicae
http://www.wbc.pozna[...]
1931
[8]
웹사이트
Hierarchia Catholica Medii Aevi
[9]
서적
Annuario Pontificio 2013
Libreria Editrice Vaticana
[10]
웹사이트
Kvarner islands
https://datazone.bir[...]
BirdLife International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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