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쿠비야
1. 개요
루이스 쿠비야는 우루과이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 페냐롤, FC 바르셀로나, 나시오날 등에서 활약하며 우루과이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등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으로 3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올림피아를 이끌며 파라과이 리그에서 8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2번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0년에는 남미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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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코파 아메리카 참가 감독 -
알피오 바실레
알피오 바실레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으로, 선수 시절 라싱 클루브 등에서 활약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등을 경험했고, 은퇴 후 여러 클럽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코파 아메리카 우승 등 다양한 대회에서 우승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
1991년 코파 아메리카 참가 감독 -
파울루 호베르투 파우캉
파울루 호베르투 파우캉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브라질을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인테르나시오나우와 AS 로마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한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
코무니카시오네스 FC의 축구 감독 -
미겔 앙헬 브린디시
미겔 앙헬 브린디시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및 감독으로, 선수 시절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득점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감독으로서는 과테말라, 에콰도르 리그 우승과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등을 기록했다. -
코무니카시오네스 FC의 축구 감독 -
알레샨드리 기마랑이스
알레샨드리 기마랑이스는 브라질 출신의 코스타리카 축구 선수 및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코스타리카 리그에서 활약하고 199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감독으로서 코스타리카, 파나마, 중국 등 여러 국가의 팀을 지도하며 우승을 경험했다. -
바르셀로나 SC의 축구 감독 -
알렉스 아기나가
알렉스 아기나가는 에콰도르의 축구 선수 및 감독으로, 선수 시절 멕시코 리그 클루브 네카사 주장과 LDU 키토의 에콰도르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 핵심 선수로 활약, 은퇴 후에는 클럽 아메리카 코치를 거쳐 바르셀로나 스포르팅 클럽과 코레카미노스 UAT의 감독을 역임했다. -
바르셀로나 SC의 축구 감독 -
베니토 플로로
베니토 플로로는 스페인 출신의 축구 감독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으며,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2. 선수 경력
"엘 네그로"(El Negro스페인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루이스 쿠비야는 파이산두 출신으로, 콜론 데 파이산두 유소년 팀을 거쳐 1957년 페냐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페냐롤에서 다수의 리그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경험한 후, 1962년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기여했다.
1964년 남아메리카로 복귀하여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를 거쳐 1969년 우루과이의 나시오날에 합류, 이곳에서도 여러 차례 리그 및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칠레의 산티아고 모닝과 우루과이의 데펜소르 스포르팅에서 뛰었으며, 특히 데펜소르 스포르팅에서는 1976년 클럽 역사상 첫 리그 우승을 이끌며 페냐롤과 나시오날의 양강 체제를 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1959년부터 1974년까지 활약하며 A매치 38경기 11골을 기록했고, 세 차례의 FIFA 월드컵(1962, 1970, 1974)에 출전하여 1970년 대회 4위 달성에 기여했다.
2.1. 클럽 경력
파이산두에서 태어나 지역 클럽 콜론 데 파이산두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쿠비야는 1957년 페냐롤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페냐롤 소속으로 뛰는 동안 그는 4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1958년, 1959년, 1960년, 1961년)과 2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1960년, 1961년), 그리고 한 번의 인터콘티넨털컵 우승(1961년)을 경험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1962년, 쿠비야는 스페인의 명문 클럽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1963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으며, 총 49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다.
1964년, 쿠비야는 남아메리카로 복귀하여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 입단했다. 하지만 당시 리버 플레이트는 클럽 역사상 암흑기를 겪고 있었고, 쿠비야는 리버 플레이트 소속으로 국내 리그나 국제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1969년, 그는 우루과이로 돌아와 나시오날에 합류했다. 나시오날에서는 다시 한번 성공적인 시기를 보내며 4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한 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1971년), 한 번의 인터콘티넨털컵 우승(1971년), 그리고 한 번의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우승(1972년)을 달성했다.
선수 경력 말년에는 칠레의 산티아고 모닝과 우루과이의 데펜소르 스포르팅에서 활약했다. 특히 1976년 데펜소르 스포르팅 소속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페냐롤과 나시오날이 양분하던 우루과이 리그의 오랜 양강 체제를 깨뜨린 역사적인 우승이었다. 데펜소르 스포르팅은 1932년 리그 프로화 이후 페냐롤과 나시오날 외에 처음으로 리그 정상에 오른 클럽이 되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쿠비야는 1959년부터 1974년까지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38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
그는 총 세 번의 FIFA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칠레에서 열린 1962년 FIFA 월드컵에 처음 출전했으나 팀은 1차 리그에서 탈락했다. 잉글랜드에서 개최된 1966년 FIFA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멕시코에서 열린 1970년 FIFA 월드컵에 다시 출전하여 우루과이가 4위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마지막 월드컵 출전은 서독에서 개최된 1974년 FIFA 월드컵이었으며, 이때도 팀은 1차 리그에서 탈락했다.
3. 감독 경력
쿠비야는 1978년 파라과이의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특히 올림피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감독으로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1979, 1990), 인터컨티넨탈컵 1회(1979),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1회(1990),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2회(1990) 우승 등 총 14개의 주요 트로피를 팀에 안겼다.
1979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유러피언컵 준우승팀인 스웨덴의 말뫼 FF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우승으로 쿠비야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인터컨티넨탈컵 정상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되었으며, 이후 후안 무히카도 같은 기록을 세웠다. 1979년 대회는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진 마지막 인터컨티넨탈컵이었고, 1980년부터는 일본에서 단판 승부로 방식이 변경되었다. 1989년에는 올림피아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1차전 2-0 승리에도 불구하고 2차전에서 동점을 허용하고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인 1990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모두 우승하며 국제 대회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고, 그 해 남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올림피아 외에도 남미 여러 국가의 클럽들을 지도했다. 우루과이에서는 나시오날, 페냐롤, 데펜소르 스포르팅, 다누비오를, 아르헨티나에서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 리버 플레이트, 라싱 클럽(1994년)을, 콜롬비아에서는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을, 파라과이에서는 올림피아 외에도 세로 포르테뇨와 클루브 리베르타드를 이끌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는 클럽 감독직과 병행하여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이 시기 그의 형인 페드로 쿠비야가 수석 코치로, 알레한드로 리치노가 피지컬 트레이너로 함께 일했다. 하지만 199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별 예선 탈락(5위)에 그쳤고,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8강에 진출했으나 콜롬비아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6위)하며 이전 시대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후 여러 클럽을 거쳐 2007년 2월에는 에콰도르의 바르셀로나 데 과야킬 감독으로 부임했고, 2010년에는 친정팀인 클루브 올림피아에 감독으로 복귀(통산 6번째)했다. 2012년 파라과이의 타카리 FC 감독을 마지막으로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3년 3월 3일,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4. 수상 내역
선수
| 년도 | 클럽 | 대회 |
|---|---|---|
| 1958 | 페냐롤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59 | 페냐롤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60 | 페냐롤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60 | 페냐롤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 1961 | 페냐롤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61 | 페냐롤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 1961 | 페냐롤 | 인터콘티넨털컵 |
| 1963 | FC 바르셀로나 | 코파 델 레이 |
| 1969 | 나시오날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70 | 나시오날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71 | 나시오날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71 | 나시오날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 1971 | 나시오날 | 인터콘티넨털컵 |
| 1972 | 나시오날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72 | 나시오날 |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
| 1976 | 데펜소르 스포르팅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감독
| 년도 | 클럽 | 대회 |
|---|---|---|
| 1978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79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79 | 클루브 올림피아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 1979 | 클루브 올림피아 |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
| 1980 | 클루브 올림피아 | 인터콘티넨털컵 |
| 1981 | 페냐롤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82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88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89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90 | 클루브 올림피아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
| 1990 | 클루브 올림피아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 1990 | 클루브 올림피아 |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
| 1995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97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98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99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2003 | 클루브 올림피아 |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
개인
* 남아메리카 올해의 감독: 1990
* IFFHS 우루과이 남자 드림팀
4.1. 선수
파이산두에서 태어나 지역 클럽 콜론 데 파이산두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57년 CA 페냐롤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리그 4회 우승(1958, 1959, 1960, 196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우승(1960, 1961), 인터콘티넨털컵 1회 우승(1961)을 달성했다.
1962년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여 1962-63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으며,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총 49경기에 출전해 12골을 기록했다.
1964년 남아메리카로 복귀하여 아르헨티나의 CA 리버 플레이트에 입단했지만, 당시 클럽의 암흑기로 인해 소속 기간 동안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1969년 우루과이의 나시오날로 이적하여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나시오날에서 리그 4회 우승(1969, 1970, 1971, 1972),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우승(1971), 인터콘티넨털컵 1회 우승(1971),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1회 우승(1972)을 차지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칠레의 산티아고 모닝과 우루과이의 데펜소르 스포르팅에서 활동했다. 특히 1976년 데펜소르 스포르팅 소속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역사상 첫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이는 1932년 우루과이 리그 프로화 이후 40년 넘게 이어져 온 페냐롤과 나시오날의 양강 독점 체제를 깬 역사적인 우승이었다.
1959년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1974년까지 활약했다. FIFA 월드컵에는 세 차례 출전했는데, 1962년 FIFA 월드컵과 197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197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가 4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38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는 IFFHS 우루과이 남자 드림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4.2. 감독
쿠비야는 1978년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 클럽에서 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지도자로서 그는 주로 클루브 올림피아를 이끌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인터콘티넨털컵 1회,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1회,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2회 우승을 포함하여 총 14개의 트로피를 팀에 안겼다.
특히 1979년 인터콘티넨털컵에서는 UEFA 챔피언스컵 준우승팀인 말뫼 FF를 상대로 홈과 원정 경기 모두 승리하며 감독으로서 첫 세계 제패를 달성했다. 이 우승으로 그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인터콘티넨털컵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으며, 이후 후안 무히카도 같은 기록을 세웠다. 1979년 대회는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진 마지막 대회였고, 1980년부터는 중립지(일본)에서 단판 승부로 변경되었다. 1989년에는 올림피아를 다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1차전 2-0 승리에도 불구하고 2차전에서 동점을 허용하고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0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우승하며 국제 대회 3관왕을 달성했고, 남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올림피아 외에도 아르헨티나의 뉴웰스 올드 보이스, CA 리버 플레이트, 라싱 클럽, 우루과이의 CA 페냐롤과 나시오날 몬테비데오, 콜롬비아의 아틀레티코 나시오날, 파라과이의 세로 포르테뇨와 클루브 리베르타 등 다수의 명문 클럽 감독을 역임했다. CA 페냐롤 감독 시절인 1981년에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는 올림피아 감독직과 병행하여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당시 그의 형인 페드로 쿠비야가 수석 코치로 함께 일했다. 199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8강에 진출했으나 콜롬비아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1980년대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후 여러 클럽을 거쳐 2007년 2월 에콰도르의 바르셀로나 SC 감독으로 부임했고, 2010년에는 여섯 번째로 클루브 올림피아의 감독직을 맡았다. 2012년 파라과이의 타카리 FC 감독을 마지막으로 활동했으며, 2013년 3월 3일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향년 72세로 사망했다.
주요 우승 기록
| 년도 | 클럽 | 대회 |
|---|---|---|
| 1978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79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79 | 클루브 올림피아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 1979 | 클루브 올림피아 |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
| 1979 | 클루브 올림피아 | 인터콘티넨털컵 |
| 1981 | 페냐롤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82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88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89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90 | 클루브 올림피아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
| 1990 | 클루브 올림피아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 1990 | 클루브 올림피아 |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
| 1995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97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98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1999 | 클루브 올림피아 |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
| 2003 | 클루브 올림피아 |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
4.3. 개인
지도자로서 주로 클루브 올림피아를 이끌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인터컨티넨탈컵 1회,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1회,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2회 우승 등 총 14개의 트로피를 올림피아에 안겨주었다. 1979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UEFA 챔피언스컵 준우승팀인 스웨덴의 말뫼 FF와 대결하여, 2경기 모두 승리하여 자신의 세 번째 세계 제패를 달성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으며, 이 기록은 나중에 후안 무히카(우루과이)도 달성했다. 홈 앤 어웨이 방식의 2차전은 1979년 대회가 마지막이었으며, 1980년 대회부터는 중립지(일본)에서 1차전만 치르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1989년에는 올림피아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으로 이끌어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했지만, 2차전에서 따라잡혀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이듬해인 1990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의 국제컵 3관왕을 달성했고, 남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올림피아 외에도, 아르헨티나의 뉴웰스 올드 보이스, CA 리버 플레이트, 라싱 클럽, 우루과이의 빅 2(CA 페냐롤과 나시오날 몬테비데오), 콜롬비아의 아틀레티코 나시오날, 파라과이의 3대 클럽(올림피아 외 세로 포르테뇨와 클루브 리베르타)에서 감독을 맡았다. 2007년 2월에는 에콰도르의 바르셀로나 SC 감독으로 취임했고, 2010년에는 다시 올림피아 감독으로 취임(6번째)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는 올림피아 감독과 병행하여 우루과이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형인 페드로 쿠비야가 어시스턴트 코치로, 알레한드로 리시노가 피지컬 코치로 루이스를 보좌했다. 199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5위, 199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6위로 마무리하며, 2번 우승, 1번 준우승을 차지했던 1980년대와는 달리 1990년대의 우루과이 대표팀은 부진했다.
2013년 3월 3일, 아순시온에서 사망했다. 향년 7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