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마테라치
1. 개요
마르코 마테라치는 이탈리아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센터백으로 활동했으며,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10시즌 동안 활약하며 세리에 A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을 포함해 15개의 트로피를 획득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과의 충돌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첸나이인 FC의 선수 겸 감독을 맡아 인도 슈퍼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거친 수비 스타일과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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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Marco Materazzi |
|---|---|
| 출생일 | 1973년 8월 19일 |
| 출생지 | 레체, 이탈리아 |
| 키 | 1.93m |
| 포지션 | 중앙 수비수 |
| 별칭 | The Matrix |
| 유소년 클럽 | 1988–1990: 라치오 |
|---|---|
| 프로 클럽 | 1990–1991: 메시나 (출장 1, 득점 0) 1991–1993: 루파 로마 F.C.|토르 디 퀸토 (출장 12, 득점 0) 1993–1994: 마르살라 (출장 25, 득점 4) 1994–1995: 트라파니 (출장 13, 득점 2) 1995–1998: 페루자 (출장 47, 득점 7) 1996–1997: 카르피 (임대) (출장 18, 득점 7) 1998–1999: 에버턴 (출장 25, 득점 1) 1999–2001: 페루자 (출장 51, 득점 15) 2001–2011: 인테르 밀란 (출장 184, 득점 18) 2014: 첸나이 (출장 7, 득점 0) |
| 총 출장 수 | 383 |
| 총 득점 수 | 55 |
| 국가대표팀 | 이탈리아 (2001–2008) |
|---|---|
| 국가대표 출장 수 | 41 |
| 국가대표 득점 수 | 2 |
| 감독 | 첸나이 (2014–2016) (선수 겸 감독) |
|---|
| 훈장 | Ufficiale OMR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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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거주한 이탈리아인 -
마리아 몬테소리
마리아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의사이자 몬테소리 교육법을 개발한 교육자로, 장애 아동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아동의 자기 발전 가능성을 중시하는 교육법을 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으며, 국제 몬테소리 협회 설립 및 아동의 권리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
인도에 거주한 이탈리아인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에서 상징적인 선수로 활동하며 세리에 A 최다 출전 및 득점 기록을 세우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한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판타지스타"로 불린다. -
풀리아주 출신 -
파리넬리
파리넬리는 18세기 유럽에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명성을 떨친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 소프라노 가수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의 예명이며, 스페인 궁정에서 펠리페 5세의 우울증 치료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삶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풀리아주 출신 -
레지나 비앙키
레지나 비앙키는 이탈리아의 배우로,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영화 《나폴리의 4일》 등으로 은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1996년 예술적 공로로 훈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 사망했다. -
인도 슈퍼리그의 축구 감독 -
테디 셰링엄
테디 셰링엄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으로, 프리미어리그 원년 득점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트레블 달성,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극적인 동점골, PFA와 FWA 올해의 선수상 동시 수상, 2002 FIFA 월드컵 참가, 프리미어리그 최고령 득점 기록 등 1983년부터 2008년까지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
인도 슈퍼리그의 축구 감독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 선수 경력
마테라치는 메시나와 토르 디 퀸토에서 유소년 선수 생활을 했고, 세리에 C2의 마르살라와 세리에 C1의 트라파니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5년 세리에 B의 페루자에 입단했으나, 1996년 세리에 C의 카르피로 임대되기도 하였다. 1998-99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으로 이적하여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골을 넣었으나, 27경기에서 4번 퇴장당했다. 1999-00 시즌 페루자로 복귀, 2000-01 시즌 12골을 기록하여 다니엘 파사레야를 제치고 세리에 A 역사상 수비수 한 시즌 최다골을 경신하였다. 2001년 10에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 2006-07 시즌 10골을 기록하여 해당 시즌 수비수 중 최다골을 기록하였다. 2011년 인테르와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이후 은퇴하였다.
2014년 9월, 인도 슈퍼리그 첸나이인의 선수 겸 감독으로 계약, 매 시즌 1에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마테라치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2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2004, 2006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2008에 참가하였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벤치 선수로 시작했지만,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체코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후 교체 투입되어 득점을 올리며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호주와의 16강전에서는 퇴장을 당해 우크라이나와의 8강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내줬지만, 곧바로 안드레아 피를로의 코너킥을 헤딩골로 연결하여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연장전에서는 지네딘 지단과의 언쟁 후 지단이 머리로 들이받아 퇴장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승부차기에서 마테라치는 이탈리아의 두 번째 키커로 나서 득점에 성공했고,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5-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54분에 교체되었고, 이후 다시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리피 감독이 복귀한 후에는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다.
마테라치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총 4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2.1. 클럽 경력
마테라치는 메시나와 토르 디 퀸토에서 유소년 선수 생활을 했고, 세리에 C2의 마르살라와 세리에 C1의 트라파니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5년 세리에 B의 페루자에 입단했으나, 1996년 세리에 C의 카르피로 임대되기도 하였다. 1998-99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으로 이적하여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골을 넣었으나, 27경기에서 4번 퇴장당했다. 1999-00 시즌 페루자로 복귀, 2000-01 시즌 12골을 기록하여 다니엘 파사레야를 제치고 세리에 A 역사상 수비수 한 시즌 최다골을 경신하였다. 2001년 10에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 2006-07 시즌 10골을 기록하여 해당 시즌 수비수 중 최다골을 기록하였다. 2011년 인테르와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이후 은퇴하였다.
2014년 9월, 인도 슈퍼리그 첸나이인의 선수 겸 감독으로 계약, 매 시즌 1에 2년 계약을 체결했다.
2.1.1. 초기 경력
마테라치는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메시나와 토르 디 퀸토에서 유소년 선수 생활을 했다. 이후 세리에 C2의 마르살라(1993-94), 세리에 C1의 트라파니(1994-95)를 거치며 이탈리아 축구 하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5년 세리에 B의 페루자에 입단했으나, 1996-97 시즌에는 세리에 C의 카르피로 임대되기도 하였다.
2.1.2. 페루자
마테라치는 1995년 세리에 B의 페루자에 입단하였으나, 1996년 세리에 C의 카르피로 임대를 떠나기도 하였다. 1998-99 시즌을 앞두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에버턴으로 이적하였으나, 1999-00 시즌 친정팀인 페루자로 복귀하였다. 2000-01 시즌 12골을 기록하여 다니엘 파사레야를 제치고 세리에 A 역사상 수비수가 한 시즌당 기록한 최다골을 경신하였다.
1996-97 시즌 전반에는 세리에 C1의 카르피로 임대 이적되어 18경기 7골을 기록했다. 겨울에 페루자로 복귀하여, 1997년 2월 2일 인테르와의 경기에서 23세의 나이로 처음 세리에 A 무대에 섰다. 이후 시즌 후반에 14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1998-99 시즌에는 프리미어 리그의 에버턴 FC로 이적하여 25경기 1골을 기록했지만, 다음 시즌에 페루자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반년 정도 나카타 히데토시와 함께 팀 동료로 활약했다. 2000-01 시즌에는 당시 다니엘 파사레야가 가지고 있던 수비수 시즌 최다 득점 기록(11골)을 경신하는 12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다.
2.1.3. 인테르나치오날레
마테라치는 2001년 7월, 10에 인테르에 입단했다. 등번호 23번을 받았으며, 8월 26일 2001–02 시즌 개막전에서 페루자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인테르 소속으로 두 번째 경기인 파르마전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2001–02 시즌 UEFA컵에서 8경기에 출전했다.
다음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13경기를 포함하여 모든 대회에서 33경기에 출전했다.
2003–04 시즌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4년 초, 시에나 선수 브루노 치릴로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3월 29일까지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04년 7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에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다음 시즌, 로마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1분 전 헤더 골을 넣어 팀에게 승점 1점을 안겨주었고, 로마의 11연승 기록을 깨뜨렸다.
2006년 8월, 2010년 6월까지 산 시로에 머무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2006-07 시즌에는 10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A 득점 수비수 1위에 올랐다. 밀란과의 마돈니나 더비에서 득점하고, 메시나를 상대로 오버헤드킥을 성공시켰으며, 시에나 원정 경기에서 멀티 골을 기록하며 클럽의 15번째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
2007-08 시즌 초반, 국가대표 경기 중 부상으로 결장했다. 2007-08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퇴장당하며 팀은 패배했다. 시즌 후반,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무승부를 기록, 우승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2008년 여름, 조제 모리뉴 감독 부임 후 주전 수비수에서 밀려났다. 부상까지 겹쳐 리그 출전 횟수가 8경기로 줄었다. 2008년 11월 4일, B조 4차전 아노르토시스와의 경기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2009년 6월, 2012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09-10 시즌 동안 출전 기회가 줄어들어 모든 대회를 통틀어 20경기에 출전했다. 2010년 1월,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2010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팀의 트레블 달성에 기여했다.
2010-11 시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로마를 상대로 교체 출전했다. 밀란과의 더비 경기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내주고, 발로 복부를 가격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2011년 7월,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으며, 인테르에서 10시즌 동안 공식 경기 276경기에 출전하여 20골을 기록, 15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선수 생활 은퇴를 발표했다.
2.1.4. 첸나이인
2014 시즌에 첸나이인의 선수 겸 감독으로 계약을 맺었다. 마테라치는 첸나이인과 매 시즌 1에 2년 계약을 체결했다. FC 고아와의 개막전에서 스스로를 선수로 선택하지 않았고, 이 경기에서 첸나이인은 마르키 선수이자 전 브라질 국가대표인 엘라누의 프리킥으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6일 후 첫 홈 경기에서 첸나이인은 케랄라 블래스터스를 2-1로 꺾었지만, 그로부터 4일 후 델리 다이나모스에 1-4로 패하며 첫 패배를 기록했다. 시즌 네 번째 경기에서 그는 처음으로 선수로 출전하여 뭄바이 시티를 5-1로 이기는 데 기여했다. 11월 28일, 그는 전 국가대표 수비 파트너인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은퇴에서 복귀시켜 시즌 말까지 첸나이인에서 뛰게 했다. 첸나이인은 14경기 정규 시즌을 리그 1위로 마쳤으며, 마테라치는 6경기에 출전했다. 시즌 말 플레이오프에서 팀은 케랄라 블래스터스에게 연장전 끝에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2015 시즌이 끝날 무렵, 마테라치는 첸나이인을 인도 슈퍼리그 챔피언십으로 이끌었고, 그의 계약은 종료되었다. 2016 시즌이 끝난 후, 마테라치가 2017년에는 클럽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마테라치는 2001년 4월 25일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는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파비오 칸나바로의 백업 선수로 기용되었으며, 조별 리그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네스타 대신 교체 출전하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마테라치는 크로아티아의 두 골에 대한 수비로 비판을 받았다.
UEFA 유로 2004에서는 처음 두 경기에서 벤치에 있었지만, 불가리아와의 마지막 조별 예선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2-1 역전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과 승점 동률을 이루며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벤치 선수로 시작했지만,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체코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후 교체 투입되어 득점을 올리며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호주와의 16강전에서는 퇴장을 당해 우크라이나와의 8강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내줬지만, 곧바로 안드레아 피를로의 코너킥을 헤딩골로 연결하여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연장전에서는 지네딘 지단과의 언쟁 후 지단이 머리로 들이받아 퇴장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승부차기에서 마테라치는 이탈리아의 두 번째 키커로 나서 득점에 성공했고,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5-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54분에 교체되었고, 이후 다시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리피 감독이 복귀한 후에는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다.
마테라치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총 4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거칠고 신체적인 플레이를 하는 센터백인 마테라치는 상대방을 끈덕지게 마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마르첼로 리피와 조세 무리뉴와 같은 세계 최고의 명장들에게 높이 평가받았으며, 이후 두 감독과 모두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특히 수비수로서 공중볼에 강해 세트피스 상황에서 위협적인 존재였고, 뛰어난 득점력으로 2000-01 시즌에는 수비수로서 세리에 A 최다 골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정확한 세트피스와 페널티킥 처리 능력을 갖췄으며, 멀리서 강력한 슛을 날릴 수 있었다. 이러한 능력 외에도, 탄탄한 기술과 안정적인 패스 능력을 갖추었으며, 공격수에게 롱 볼을 자주 찔러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인터 밀란에서 활약하는 동안, "매트릭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축구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던 그는 매우 거칠고 공격적인 수비 스타일, 끈덕진 마크, 강력하고 거친 태클로도 유명했으며, 선수 생활 동안 60개 이상의 옐로 카드와 7개의 레드 카드를 받았다. 다혈질적인 성격과 거친 태클 때문에, 선수 생활 동안 경기 중 다른 선수들과 여러 차례 충돌을 빚었고, 언론에서는 은퇴한 수비수 파스콸레 브루노와 비교되기도 했다. 더 타임스는 마테라치를 역대 가장 거친 축구 선수 50인 중 45위에 올렸다.
4. 논란
마테라치는 선수 시절 거칠고 공격적인 수비 스타일로 악명이 높았으며, 끈덕진 마크, 강력하고 거친 태클로 인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선수 생활 동안 60개 이상의 옐로 카드와 7개의 레드 카드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과 거친 태클 때문에, 그는 선수 생활 동안 경기 중 다른 선수들과 여러 차례 충돌을 빚었다.
* 2004년 2월, 세리에 A 시에나전에서 상대 DF 브루노 치릴로에게 악의적인 야유를 퍼부었고, 경기 후 항의하는 치릴로의 얼굴을 여러 차례 가격했다. 이로 인해 세리에 A 축구 협회는 마테라치에게 60일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 2007년 1월 28일 UC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 삼프도리아의 MF 젠나로 델베키오가 인테르의 GK 줄리우 세자르와 심하게 충돌하자 마테라치가 항의했다. 두 사람은 말다툼을 벌였고, 델베키오가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했다. 그 결과, 델베키오는 즉시 퇴장당했고, 격앙되어 계속 항의한 마테라치에게도 옐로 카드가 주어졌다. 경기 후 마테라치는 "(박치기를 맞고 이길 수 있다면) 괜찮다"며 긍정적으로 말했다.
* 2010년 1월 24일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직후, 이탈리아 총리이자 밀란의 구단주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고 피치에 나타나 팀 동료들과 승리를 기뻐한 것이 이탈리아 국내에서 물의를 빚었다. 며칠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그건 단지 농담일 뿐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문제가 된다."라고 해명했다.
* 2010년 4월 20일에 열린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경기 종료 후, 팬들의 비판에 분노하여 유니폼을 땅에 던진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격노하여 라커룸에서 때리고, 얼굴을 가격했다. 이 모습을 목격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마테라치는 발로텔리를 죽일 기세였다"고 말했다.
*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에게 박치기를 당했을 때, 지단이 "내 유니폼을 나중에 줄게"라고 말하자 "유니폼보다 네 누나가 갖고 싶다"고 말했다고 2020년 5월 자신의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밝혔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나가토모 유토와는 나가토모가 인테르에 입단한 2011년 1월부터 마테라치가 퇴단할 때까지 6개월 동안 팀 동료였으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제 관계에 가까운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2023년에 열린 인테르의 프리시즌 일본 투어에 맞춰 방일한 마테라치는 나가토모와 오랜만에 재회했고, 음식점에서 다정한 모습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5. 수상 내역
| 클럽 | ||
|---|---|---|
| 상 | 연도 | 비고 |
| 세리에 A |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09-10 | 인테르 |
| 코파 이탈리아 | 2004-05, 2005-06, 2009-10, 2010-11 | 인테르 |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2005, 2006, 2010 | 인테르 |
| UEFA 챔피언스 리그 | 2009-10 | 인테르 |
| FIFA 클럽 월드컵 | 2010 | 인테르 |
| 국가대표 | ||
| 상 | 연도 | 비고 |
| FIFA 월드컵 | 2006 | 이탈리아 |
| 개인 | ||
| 상 | 연도 | 비고 |
|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 2006-07 | |
| 2006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2006년 | vs. 체코 (조별리그) |
| ESM 올해의 팀 | 2006-07 | |
| FIFPro 월드 XI 후보 | 2006, 2007 | |
| 인테르 밀란 명예의 전당 | 2021 | |
| 감독 | ||
| 상 | 연도 | 비고 |
| 인도 슈퍼리그 | 2015 | 첸나이인 |
5.1. 클럽
마르코 마테라치는 선수 생활 동안 여러 클럽에서 뛰며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인테르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4년 7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이끄는 인테르에 합류했으나, 첫 시즌에는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부터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팀에 기여했고, 2006년 3월 5일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헤딩골을 넣어 팀에게 귀중한 승점 1점을 안겨주며 로마의 11연승 기록을 저지했다.
2006년 8월, 마테라치는 2010년 6월까지 산 시로에 머무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2006-07 시즌에는 10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A 수비수 중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AC 밀란과의 마돈니나 더비에서 4-3 승리를 이끄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4월 23일 AC 시에나 원정 경기에서 멀티 골을 기록하며 팀의 15번째 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마테라치는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
2007-08 시즌 초반, 국가대표 경기 중 부상으로 인해 잠시 결장했으나, 2008년 2월 2007-08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리버풀 FC와의 경기에서 퇴장당하며 팀의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 시즌 후반 로부르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팀의 우승 기회를 놓치기도 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파르마를 꺾고 3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2008년 여름, 조제 모리뉴 감독 부임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고, 부상까지 겹치면서 리그 출전 횟수가 줄었다. 그러나 2008년 11월 4일 B조 4차전 아노르토시스와의 경기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첫 골을 기록했고, 2009년 5월 17일 팀의 네 번째 우승에 일조했다.
2009년 6월, 마테라치는 인테르와 2012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했지만, 2009-10 시즌 동안 출전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2010년 1월, 무릎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바이에른 뮌헨과의 2010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팀의 2-0 승리에 기여하며 트레블 달성에 일조했다.
2010-11 시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AS 로마를 상대로 교체 출전하며 시즌을 시작했고, 11월 밀란과의 더비 경기에서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고, 발로 복부를 가격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12월에는 2010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여 팀의 우승을 함께했다.
2011년 7월, 마테라치는 계약 만료로 인테르를 떠났고, 이후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인테르에서 약 270경기에 출전하여 15개의 트로피를 획득했다.
마테라치는 인테르에서 다음과 같은 우승 기록을 남겼다.
* 세리에 A: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09-10
* 코파 이탈리아: 2004-05, 2005-06, 2009-10,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5, 2006, 2010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9-10
* FIFA 클럽 월드컵: 2010
5.2. 국가대표팀
마테라치는 2006년 FIFA 월드컵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고, 팀이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공헌으로 2006년 12월에 이탈리아 공화국 훈장 4등급 (Ufficiale OMRI)을 받았다. 그는 원래 주전 선수는 아니었으나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2006년 6월 22일 체코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대신 투입되어 그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면서 공식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는 등 맹활약을 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16강전에서 퇴장을 당하여 우크라이나와의 8강전에 출장하지 못하였으나, 독일과의 준결승전부터 다시 중용되었다. 결승전에서는 프랑스를 상대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연장전에서는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이 그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는 행동으로 인해 퇴장당하기도 했다. 득점 없이 연장전이 끝난 후에는 승부차기도 성공하였다.
그는 UEFA 유로 2008 당시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 선발 출전하였지만 54분 교체되었고, 이후 다시 출전하지 못하였다.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득점 |
|---|---|---|---|
| 이탈리아 | 2001 | 4 | 0 |
| 2002 | 5 | 0 | |
| 2003 | 1 | 0 | |
| 2004 | 8 | 0 | |
| 2005 | 7 | 0 | |
| 2006 | 10 | 2 | |
| 2007 | 4 | 0 | |
| 2008 | 2 | 0 | |
| 합계 | 41 | 2 | |
이탈리아 점수가 먼저 나열되었으며, 점수 열은 마테라치의 각 골 이후의 점수를 나타냅니다.
| No. | 날짜 | 경기장 | 출장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2006년 6월 22일 |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함부르크, 독일 | 29 | 체코 | 1–0 | 2–0 | 2006년 FIFA 월드컵 |
| 2 | 2006년 7월 9일 | 올림피아스타디온, 베를린, 독일 | 32 | 프랑스 | 1–1 | 1–1 (5–3 승부차기) | 2006년 FIFA 월드컵 |
* FIFA 월드컵 : 우승 (2006)
5.3. 개인
| 상 | 연도 | 비고 |
|---|---|---|
|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 2006-07 | |
| 2006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2006년 | vs. 체코 (조별리그) |
| ESM 올해의 팀 | 2006-07 | |
| FIFPro 월드 XI 후보 | 2006, 2007 | |
| 인테르 밀란 명예의 전당 | 2021 |
5.4. 감독
마테라치는 2014년 9월 22일 인도 슈퍼리그의 첸나이인 FC와 선수 겸 감독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는 첸나이인과 매 시즌 1에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마테라치는 2014년 10월 15일 FC 고아와의 개막전에서는 선수로 출전하지 않았고, 첸나이인은 전 브라질 국가대표 엘라누의 프리킥 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6일 후 홈 경기에서 첸나이인은 케랄라 블래스터스를 2-1로 꺾었지만, 4일 후 델리 다이나모스에 1-4로 패하며 첫 패배를 기록했다. 시즌 네 번째 경기에서 그는 처음으로 선수로 출전하여 뭄바이 시티 FC를 5-1로 이기는 데 기여했다. 11월 28일, 그는 전 국가대표팀 수비 파트너였던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은퇴에서 복귀시켜 시즌 말까지 첸나이인에서 뛰게 했다. 첸나이인은 14경기 정규 시즌을 리그 1위로 마쳤으며, 마테라치는 6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시즌 말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케랄라 블래스터스에게 연장전 끝에 패하며 탈락했다.
2015 시즌이 끝날 무렵, 마테라치는 첸나이인을 인도 슈퍼리그 챔피언십으로 이끌었고, 그의 계약은 종료되었다. 2016 시즌이 끝난 후, 마테라치는 2017년에 클럽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 팀 | 국적 | 연도 | 기록 | ||||
|---|---|---|---|---|---|---|---|
| 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 첸나이인 | 인도 | 2014–2016 | 47 | 19 | 12 | 16 | 53.19 |
| 경력 합계 | 47 | 19 | 12 | 16 | 53.19 | ||
* 인도 슈퍼리그: 2015
6. 기타
마르코 마테라치는 주세페가 US 레체에서 프로 축구 선수로 뛰던 레체에서 태어났다. 주세페는 피사, 라치오, 스포르팅 CP, 톈진 테다 감독을 역임한 축구 코치였다. 마테라치의 어머니는 그가 15세 때 사망했다. 그의 누나 모니아는 전 감독 토마소 마에스트렐리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마에스트렐리와 결혼했으며, 마우리치오는 2011년 11월 28일에 사망했다. 모니아와 마우리치오의 아들 알레시오 마에스트렐리도 축구 선수가 되어 2022년에 프로 데뷔했다. 그의 형제 마테오는 스포츠 에이전트이다.
그의 아버지에 따르면, 마르코는 라치오의 팬으로 자랐다. 2007년 9월, 그는 기자 안드레아 엘레판테(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 로베르토 데 폰티(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출판한 자서전 "Una vita da guerriero"(전사의 삶)를 출간했다.
1997년 6월 23일, 마테라치는 다니엘라와 결혼했으며, 그 사이에 안나, 다비데, 지안마르코 세 자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