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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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사무네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남북조 시대에 걸쳐 활동한 일본의 대표적인 칼 장인이다. 그는 소슈덴 양식을 확립하고 뛰어난 기술로 명성을 얻었으며, '혼조 마사무네'를 비롯한 여러 명검을 제작했다. 마사무네의 작품은 국보, 중요문화재 등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의 제자들 또한 소슈덴을 계승하여 일본 도검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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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무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이름 | 고로 뉴도 마사무네 (五郎入道正宗) |
본명 | 마사무네 (正宗) |
직업 | 도공 |
사망 | 1343년 (79세) |
활동 기간 | ~ 1328년 |
영향 | |
영향 받은 도공 | 지오기 가네미쓰 시즈 사부로 가네우지 긴주 구니시게 구니쓰구 사에몬자부로 사에키 노리시게 고 요시히로 나오쓰나 히로미쓰 사다무네 아키히로 |
가족 | |
자녀 | 히코시로 사다무네 |
2. 역사적 배경
마사무네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소슈덴 양식을 확립한 대표적인 도공이다. 일본도검사에서는 야마시로국, 야마토국, 비젠국, 미노국, 사가미국을 5개 국가(오카덴)의 도검에 특징적인 작풍을 각각 "야마시로덴", "야마토덴", "비젠덴", "미노덴", "소슈덴"이라고 칭한다.
2. 1. 초기 활동 및 출신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소슈덴"이라고 불리는 작풍을 확립한 도공이다. 일본도검사에서는 야마시로국, 야마토국, 비젠국, 미노국, 사가미국의 5개 국가의 도검에 특징적인 작풍을 각각 "야마시로덴", "야마토덴", "비젠덴", "미노덴", "소슈덴"이라고 칭하며, 이를 통칭하여 "오카덴"이라고 한다. 마사무네는 이 중 "소슈덴"의 대표적인 도공이다.
무사의 도시였던 가마쿠라에는 이른 시대부터 칼 장인이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가마쿠라 막부 제5대 집권 호조 도키요리는 야마시로 (교토)에서 아와타구치 쿠니츠나나 비젠에서 비젠 사부로 쿠니무네, 이치몬지스케자네 등을 불러 칼을 만들게 했다고 전해지지만, 소슈 단야의 실질적인 조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활동하며, 마사무네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신토고 쿠니미츠이다.
마사무네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쇼와 5년(1316년)에 쓰여진 일본 최고(最古)의 도검 감정서인 『메이즈쿠시』(에이오 30년(1423년)의 사본)에 사가미 단야 계도에 신토고 쿠니미츠의 제자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33]
- 사가미 단야 계도: 사다쿠니─쿠니히로─스케자네─쿠니미츠─쿠니시게・쿠니히로・유키미츠・마사무네
- 가마쿠라 단야: 쿠니무네─쿠니미츠─신토 타로・신토 마타시로・다이신보 히가키나리・유키미츠 후지사부로 입도・쿠니미츠 제자.
즉, 사가미국 단야의 신토고 쿠니미츠를 잇는 쿠니시게, 쿠니히로, 유키미츠, 마사무네이며, 가마쿠라 단야의 쿠니미츠 제자가 마사무네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오라이모노의 『카츠라가와 지조키』(에이오 23년 10월 14일 조항)에 텐고쿠(칼 장인) 이후, "가마쿠라 신토고, 히코시로, 고로 입도, 쿠로지로..."라고 게재되어 있다.[34]
마사무네의 출신에 대해서는, 타케야 리안본(텐쇼 7년(1579년))에 유키미츠의 아들로 기재하고 있다.[35] 또한, 유키미츠의 동생으로 후에 양자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쿠니미츠의 아들로 하는 설도 있다.
마사무네의 제자로 여겨지는 사람에 "마사무네 10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지만, 작도(作刀) 연대가 겹치지 않고, 후세의 이야기이며 사제 관계는 없다.
2. 2. 소슈덴(相州伝) 양식 확립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소슈덴" 양식을 확립한 도공이다. 일본도검사에서는 야마시로국, 야마토국, 비젠국, 미노국, 사가미국 5개 국가의 도검에 특징적인 작풍을 각각 "야마시로덴", "야마토덴", "비젠덴", "미노덴", "소슈덴"이라고 칭하며, 이를 통칭하여 "오카덴"이라고 한다. 마사무네는 이 중 "소슈덴"의 대표적인 도공이다.
2. 3. 남북조 시대와 마사무네
메이지 시대에는 정종의 실존 자체를 의문시하는 "정종 말살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종의 스승인 국광의 작품에는 "가마쿠라 거주 신토고 국광 작 영인 원년 10월 3일" 명의 단도가 현존하며, 국광이 영인 원년(1293년)에 활동했고 가마쿠라에 거주한 대장장이였음이 분명하다.정종의 현존하는 온전한 칼에는 제작 연도를 명기한 것은 전혀 없지만, 오사카 함락 시 불에 타 후에 재연된 "가랴쿠 3년 8월 소슈 거주 정종" 명의 단도(명물 오사카 장명 정종)가 현존한다. 또한 "사가미국 가마쿠라 거주인 정종 정화 3년 11월 일"이라는 명이 있는 단도(명물 에도 장명 정종)가 과거에 존재했다는 기록이 《교호 명물장》 등의 기록에 남아 있다(가랴쿠 3년은 1328년, 정화 3년은 1314년).
현존하는 칼의 시대관으로 보아도, 정종의 활동 시기를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남북조 시대(13세기 말부터 14세기 초)로 보는 데에는 연구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지만, 그의 정확한 생몰년은 불명이다. 과거장에는 쇼오 고로 입도 정종 무자년(1288년) 정월 11일 법명 심룡 일현수 80세의 기록이 있다[36]). 또한 사료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고도명진대전》에는 분에이 원년(1264년)-고에이 2년(1343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37]).
3. 마사무네의 작풍 및 특징
마사무네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소슈덴이라는 독자적인 작풍을 확립한 일본도 도공이다. 일본도검사에서는 야마시로국, 야마토국, 비젠국, 미노국, 사가미국의 5개 국가(각각 야마시로덴, 야마토덴, 비젠덴, 미노덴, 소슈덴)의 도검 작풍을 통칭하여 "오카덴"이라고 부른다.
마사무네의 검은 불순한 강철로 검을 만들던 시대에 뛰어난 아름다움과 품질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錵|니에일본어 (마르텐사이트 결정이 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혀 밤하늘의 별과 같다고 여겨지는 것)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여겨진다.[7]
마사무네는 신토고 쿠니미츠에게 사사했으며, ''스구하''(곧은 템퍼 선) 검을 만들었지만, 칼날의 선두 가장자리가 담금질된 부분에서 천천히 물결치는 ''노타레 하몬''을 만들었다. 또한 올드 비젠과 호키 국 스타일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코-미다레''(작은 불규칙성)를 가진 검도 있다. 그의 작품은 ''치케이''(하몬 위의 강철 입자 패턴을 따르는 어두운 선), ''킨스지''(번개 모양의 니에), ''니에''(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힌 마르텐사이트 결정)로 특징지어진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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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무네가 제작한 검은 다른 예술 작품처럼 검장(劍匠)의 이름과 개별 검의 이름으로 불린다. 도쿠가와 쇼군의 상징이자 쇼군에게 대대로 전해진 "혼조 마사무네"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후도 마사무네", "쿄고쿠 마사무네", "다이코쿠 마사무네" 등이 그의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사무네의 서명이 있는 작품은 드물며, 그의 스타일로 미루어 볼 때 가마쿠라 시대 후기부터 남북조 시대까지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사무네의 진품으로 현존하는 것은 타치와 단도가 있고, 와키자시도 전해진다.[38] 마사무네는 몽골의 침략과 같은 혼란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몽골군의 가죽 갑옷에 대항하기 위해 칼날 폭이 넓고 두께가 얇은 형태의 칼을 만들었다.
근세 이후, 마사무네는 저명한 도공으로서 일반 시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에도 시대 유적에서 "정종"이라고 쓰인 장난감 나무칼이 출토되었고,[43] 현대에도 장난감 칼에 "명검 정종"이라고 각인될 정도이다.[44]
3. 1. 지철(地鉄)과 칼날 무늬(刃文)
마사무네의 검은 강철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뛰어난 아름다움과 품질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錵|니에일본어라 불리는, 마르텐사이트 결정이 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혀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는 기술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마사무네는 신토고 쿠니미츠에게 배웠으며, '스구하'(곧은 템퍼 선) 검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칼날의 선두 가장자리가 담금질된 부분에서 천천히 물결치는 '노타레 하몬'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코-미다레'(작은 불규칙성)를 가진 검도 있는데, 이는 올드 비젠과 호키 국 스타일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은 '치케이'(하몬 위의 강철 입자 패턴을 따르는 어두운 선), '킨스지'(번개 모양의 니에), '니에'(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힌 마르텐사이트 결정)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마사무네 작품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딱딱하고 부드러운 강철을 조합하여 단련하고, 독자적인 지테츠(지면)를 만들었다.
# "니에(沸, 끓임)"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 지면과 칼날에 "하타라키(働き, 작용)"가 있다. 여기서 "니에"는 칼날 무늬나 지테츠를 구성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큰 금속 입자를 말하며, "하타라키"는 칼날의 지테츠나 칼날 무늬에 나타나는 다양한 모양과 변화를 의미한다.
마사무네 시대는 몽골의 침략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마사무네는 몽골 갑옷(가죽 갑옷)에 대항하여 칼을 만들었는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반전이 얕다.
- 칼날 폭이 넓다.
- 두께가 얇다.
- 능선이 높다.
- 능선 폭이 좁다.
- 평육(칼날의 통과를 좋게 하기 위한 부분)이 없다.
- 칼끝 폭이 좁지 않다.
- 칼끝이 길다.
- 후쿠라가 사라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칼날 무늬는 "노타레(물결)", "구노메(톱니 모양)" 등으로 불리는 난날이며, 니에카치(끓임 우세)인 점이 특징이다. "유바시리(끓는 물 흐름)", "스나나가시(모래 흐름)" 등으로 불리는 하타라키가 많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마사무네의 진수는 "니에의 묘미"라고 불리지만, 단순한 니에데키(끓여서 만들어짐)는 신토 이후에도 가능한 기술이었다. 킨스지(금색 줄)(筋金|스지카네일본어[39])·이나즈마(번개)와 같이 빛이 강한 S자형으로 된 킨스지, 하시미(칼날이 빛을 잃는 것)가 없고 투명감 있는 우츠리(비침)를 구운 "요헨(요변)의 묘미"(천변만화의 하타라키를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기술)는 주고토(중고도) 시대의 소슈덴, 그리고 마사무네의 특징이다.
마사무네의 중요한 특징은 나카고(칼자루)인데, 소슈덴 완성기 이후 작품에서는 후나카타 나카고(막힌)와는 달리 나카고까지 단련되어 끈적하고 울퉁불퉁한 녹이 아닌 좋은 녹슨 맛을 낸다. 나카고지리(칼자루 꼬리)는 습작기 단도에 키리데(베어냄)로 후리소데 나카고(후리소데 형태)라고 불리는 것 1구와, 에이세이 문고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에 보이는 밤 모양, 그리고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와 오사카부·법인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의 켄가타(칼 모양)의 3종류가 있다.
3. 2. 칼의 형태
마사무네의 검은 강철로 검을 만들던 시대에 뛰어난 아름다움과 품질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錵|니에|마르텐사이트 결정이 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혀 있어 밤하늘의 별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일본어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여겨진다.마사무네는 '스구하'(곧은 템퍼 선) 검을 만들었지만, 칼날의 선두 가장자리가 담금질된 부분에서 천천히 물결치는 ''노타레 하몬''을 만들었다. 또한, 올드 비젠과 호키 국 스타일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코-미다레'(작은 불규칙성)를 가진 검도 있다. 그의 작품은 눈에 띄는 '치케이'(하몬 위의 강철의 입자 패턴을 따르는 어두운 선), '킨스지'(번개 모양의 니), 그리고 '니'(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힌 마르텐사이트 결정)로 특징지어진다.[7]
마사무네의 작품으로 현존하는 것은 타치와 단도가 있다. 와키자시도 마사무네의 작품으로 전해진다.[38] 타치는 본래 타치로 만들어졌으나, 후세에 오오스리아게(실전상의 이유로 타치를 잘라내어 다시 만든 것)되었다. 칼의 형태는 호리호리한 것과 폭이 넓고 웅장하며 칼끝이 약간 뻗은 것이 있는데, 후자는 남북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단도는 모습과 치수가 일반적이며, 반전이 없는 것 또는 안으로 굽은 것이 많고,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것도 일부 보인다. 다만, "호초 마사무네"라는 통칭이 있는 3자루의 단도는 예외적으로 폭이 넓고 기이한 조형으로, 칼날 무늬와 지면의 작용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이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 우부나카고(생선)의 코다치(칼날 길이 2척 미만의 타치)로 마사무네의 작품으로 극메이(鑑定, 감정)된 것이 존재한다.
마사무네 작풍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딱딱하고 부드러운 강철을 조합하여 단련하고, 독자적인 지테츠(지면)를 창조했다.
# '''니에'''(沸, 끓임)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 지면과 칼날에 "'''하타라키'''(働き, 작용)"가 있다.
"니에"란 칼날 무늬나 지테츠를 구성하는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는 큰 금속 입자이며, "하타라키"란 칼날의 지테츠나 칼날 무늬에 보이는 다양한 모양과 변화이다.
마사무네의 시대는 몽골의 침략과 같이 물정이 소연한 세상이었다. 마사무네는 몽골의 갑주(가죽 갑옷)에 대항하여 반전이 얕고, 칼날 폭이 넓고, 두께가 얇으며, 능선이 높고, 능선 폭이 좁고, 평육이 없는 형태의 칼을 만들었다.
칼날 무늬는 "노타레(湾れ, 물결)", "구노메(互の目, 톱니 모양)" 등으로 불리는 난날이며, 니에카치(沸勝, 끓임 우세)인 점이 볼거리 중 하나이다. "유바시리(湯走り, 끓는 물 흐름)", "스나나가시(砂流し, 모래 흐름)" 등으로 불리는 하타라키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마사무네의 진수는 "니에의 묘미"라고 하지만, 단순한 니에데키(沸出来, 끓여서 만들어짐)는 신토 이후에도 가능한 기술이다. '''킨스지'''(금색 줄, 여러 개 나타나는 금선[39]), '''이나즈마'''(평지에 나타나는 가늘고 긴 지경이 칼날 안으로 들어간 빛이 강한 S자형으로 된 킨스지), 하시미(刃染み, 탄소량의 관계 로 칼날이 빛을 잃는 것)가 없고 투명감 있는 우츠리(映り, 비침)을 구운 "요헨(曜変, 요변)의 묘미"(천변만화의 하타라키를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기술)는 주고토(中古刀, 중고도) 시대의 소슈덴이 가장 잘하는 영역이며, 마사무네의 특징이기도 하다.
마사무네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히는 나카고(茎, 칼자루)는 소슈덴 완성기 이후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후나카타 나카고이며, 후대의 히로미츠, 아키히로와 같은 후나카타 나카고(詰まった, 막힌)와는 달리, 나카고까지 단련(테코테츠의 불순물을 제거한다는 의미)되어 있으므로, 끈적하고 울퉁불퉁한 녹이 아닌 녹슨 맛이 좋다.
나카고지리(茎尻, 칼자루 꼬리)는 습작기의 단도에 키리데(切, 베어냄)로 후리소데 나카고(振袖茎, 기모노의 후리소데 형태에서 유래)라고 불리는 것이 1구와, 에이세이 문고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에 보이는 밤 모양, 그리고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와 오사카부·법인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의 켄가타(剣形, 칼 모양)의 3종류가 있다.
조각은 신토고 쿠니미츠의 삼남인 다이신보 유케이(大進坊祐慶)가 새겼으며, 밀교의 "범자", "소검", "손톱", "고마바시"(부동명왕 등을 본존으로 하여 질병 퇴치와 자손 번영 등을 기원하는 고마를 태울 때 사용하는 삼나무의 흰 부분으로 만든 큰 각젓가락)가 소재이다. "불상"이 조각된 것은 없다.
3. 3. 나카고(茎)
마사무네의 칼자루(나카고)는 소슈덴 완성기 이후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후나카타 나카고(舟形茎)이다. 후대의 히로미츠, 아키히로와 같은 후나카타 나카고와는 달리, 나카고까지 단련되어 끈적하고 울퉁불퉁한 녹이 아닌, 녹슨 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39]나카고지리(茎尻, 칼자루 꼬리)는 습작기 단도에 보이는 키리데(切)로 후리소데 나카고(振袖茎)라 불리는 것 한 자루와, 에이세이 문고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에 보이는 밤 모양, 그리고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와 오사카부 법인 소장 호초 마사무네(국보)의 켄가타(剣形) 세 종류가 있다. 이처럼 마사무네의 나카고지리는 켄가타뿐만이 아니다.
조각은 신토고 쿠니미츠의 삼남인 다이신보 유케이(大進坊祐慶)가 새겼으며, 밀교의 "범자", "소검", "손톱", "고마바시"(부동명왕 등을 본존으로 하여 질병 퇴치와 자손 번영 등을 기원하는 고마를 태울 때 사용하는 삼나무의 흰 부분으로 만든 큰 각젓가락)가 소재이다. 참고로, "불상"이 조각된 것은 없다.
3. 4. 조각
마사무네의 검은 불순한 강철로 검을 만들던 시대에 뛰어난 아름다움과 품질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마르텐사이트 결정이 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혀 밤하늘의 별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여겨진다.[7]마사무네는 신토고 쿠니미츠에게 사사했으며, ''스구하''(곧은 템퍼 선) 검을 만들었지만, 칼날의 선두 가장자리가 담금질된 부분에서 천천히 물결치는 ''노타레 하몬''을 만들었다. 또한, 올드 비젠과 호키 국 스타일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코-미다레''(작은 불규칙성)를 가진 검도 있다. 그의 작품은 ''치케이''(하몬 위의 강철 입자 패턴을 따르는 어두운 선), ''킨스지''(번개 모양), ''니에''(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힌 마르텐사이트 결정)로 특징지어진다.[7]
조각은 신토고 쿠니미츠의 삼남인 다이신보 유케이(大進坊祐慶)가 새겼으며, 밀교의 "범자", "소검", "손톱", "고마바시"(부동명왕 등을 본존으로 하여 질병 퇴치와 자손 번영 등을 기원하는 고마를 태울 때 사용하는 삼나무 흰 부분으로 만든 큰 각젓가락)가 소재이다. "불상"이 조각된 것은 없다.
4. 마사무네의 제자들
마사무네는 수많은 검공(칼을 만드는 장인)들을 훈련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5명이 그의 제자였고, 그 중 10명이 'Juttetsu' 즉, "마사무네의 10대 제자"로 여겨진다.
- '''나가요시(長義)''': 활동 시기 때문에 마사무네의 직계 제자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9] 그의 작품은 마사무네의 작품과 소슈 전통, 그리고 소덴 비젠 검장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한자는 일본어로 '나가요시'라고 발음하지만, 관례적으로 이 장인과 소수의 다른 장인(제자인 카네나가의 경우, '켄초'로 발음)에게는 ''음독''('쵸기') 발음이 사용된다.
- '''카네미츠(兼光)''':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칼을 만든 것으로 여겨지는 그는 후지시로의 저술에 따르면 "갑옷 절단" (Kabutowari), "돌 절단" (Ishikiri), "총 절단" (Teppokiri)이라는 유명한 칼을 가진 몇 안 되는 장인 중 한 명으로, 최고 수준의 "최상 대업물" (Sai-jo O-wazamono)로 평가받는다.[10] 가네미쓰는 유명한 인물과 장군들이 사용한 칼을 제작했다. 그는 아마도 마사무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소슈의 영향을 받았으며, 소덴 비젠 혁명의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칼을 제작했다.
- '''카네우지(兼氏)''': 야마토 지방에 거주하다가 미노로 가서 마사무네 밑에서 수련했으며, 그곳에서 그의 검술 스타일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의 칼은 마사무네의 칼과 가장 유사하며, 종종 마사무네의 칼과 혼동되기도 한다. 미시나 유파는 카네우지와 마사무네로 거슬러 올라간다.[11]
- '''킨주(金重)''': 킨주는 초기와 마찬가지로 관례상 ''음독''으로 발음된다. 그의 이름의 일본식 발음인 카네시게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카네우지와 함께 미노 양식의 창시자이다. 그는 쓰루가의 세이센지의 승려였으며, 에치젠의 검 제작에 영향을 미쳐 쿠니유키와 같은 검을 만들게 하였고, 랴쿠오(1338-1342) 시대 즈음에 미노로 이주하여 세키 전통을 창시했다.
- '''하세베 쿠니시게(長谷部国重)''': 소슈와 야마시로의 두 번째 시기 스타일로 검을 제작하는 하세베 학파를 창시했다. 그의 검은 아키히로와 히로미츠에 필적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교호 메이부츠 쵸에 등재된 ''헤시키리 하세베''(강력한 절단자)를 제작했으며,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소유한 후 오다 노부나가가 소유했다. 이 검에는 혼아미 코토쿠가 새긴 금상감(金象嵌) 감정서가 있다. 오늘날 이 검은 구로다 다이묘 가문의 가보이다. 이 검은 오다 노부나가가 그를 배신한 다도 스승 칸나이를 죽이기 위해 탁자를 베어 넘기며 검을 뽑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 '''라이 쿠니츠구(来源国次)''': 가마쿠라 라이(鎌倉来)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라이 쿠니유키의 손자이다. 그의 작품에서 소슈(相州)와 야마시로(山城) 전통의 영향을 관찰할 수 있다.
- '''사(Sa)(左)''': 야스요시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름의 첫 두 글자를 사용하여 작품에 서명했다. 일부에서는 마사무네의 가장 뛰어난 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소슈[상주] 검술 장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축전 전통을 창시했다.
- '''노리시게(則重)''': 역사적으로 마사무네의 제자 중 최고로 여겨지며, 십철(十哲, Juttetsu)에 포함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는 마사무네의 선배이자, 유키미츠의 후배로, 위대한 스승 신토고 쿠니미츠의 제자였다. 그는 고와 마찬가지로 엣추 지방 출신이며, 송피다(松皮肌, matsukawa-hada) 양철(pine tree bark pattern steel)의 기법을 숙달한 유일한 장인으로 알려져, 그의 작품은 독특하다.
- '''고(Go)(義弘)''':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이 검공의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서명이 있는 작품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고 요시히로(Go Yoshihiro) 또는 단순히 고(Go)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그가 출신한 마을의 이름이다. 소슈(相州)의 검공인 동시에 엣추 전통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마사무네 십철(Masamune Juttetsu) 중에서도 검 제작 기술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나오츠나(直綱)''': 그는 실제로 사에몬자부로(左衛門三郎)의 제자였을 수 있다는 등, 여러 설이 존재한다. 그의 작품은 마사무네에게 직접 사사받지 않았더라도 소슈(相州)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며, 소덴 비젠(備前)과 이와미(石見) 지방의 양식에도 영향을 받았다.
- '''히로미츠(廣光)''': 아키히로와 함께 소슈 양식의 제2기를 이끌었다.
- '''사다무네(貞宗)''': 마사무네의 제자이자 아들이거나 양자였다.[13] 그는 아버지처럼 서명이 있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지만, 마사무네 이후 소슈 전통에서 견줄 자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13] 사다무네는 그의 위대한 아버지보다 약간 기술이 떨어졌다.[13]
- '''아키히로(秋廣)''': 마사무네의 직계 제자였으며, 히로미츠와 함께 소슈 양식을 다듬어 소슈 제2기를 창조하는 데 기여했다.
마사무네의 제자로 여겨지는 사람에 "마사무네 10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지만, 작도(作刀) 연대가 겹치지 않고, 후세의 이야기이며 사제 관계는 없다.
5. 마사무네와 무라마사의 전설
전설에 따르면 무라마사가 스승인 마사무네에게 누가 더 훌륭한 검을 만드는지 시합을 걸었다고 한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작업했고, 두 검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 결과를 시험하기로 결정했다. 시합은 각자 날카로운 면이 물살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작은 개울에 칼을 담그는 것이었다. 무라마사의 검은 물길을 따라 내려오는 모든 것, 즉 물고기, 나뭇잎, 심지어 그 위로 부는 바람까지 베어냈다. 제자의 솜씨에 깊은 감명을 받은 마사무네는 검을 물에 담그고 묵묵히 기다렸다. 나뭇잎만 잘렸다. 그러나 물고기는 그의 검까지 헤엄쳐 왔고, 칼날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났다. 얼마 후 무라마사는 자신의 검을 만드는 솜씨가 부족하다며 스승을 비웃기 시작했다. 마사무네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어 말리고 칼집에 넣었다. 그동안 무라마사는 그의 검이 아무것도 벨 수 없다고 조롱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한 승려가 다가와 두 검술가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8]
승려는 "첫 번째 검은 모든 면에서 훌륭한 검이었지만, 그것은 피에 굶주리고 사악한 칼날로서, 누구를 또는 무엇을 벨지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다. 그것은 머리를 베는 것만큼 나비도 벨 수 있다. 두 번째 검은 훨씬 더 훌륭했는데, 그것은 무고하고 자격 없는 것을 불필요하게 베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이야기의 또 다른 내용에 따르면, 두 검 모두 강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오는 나뭇잎을 똑같이 잘랐지만, 무라마사의 칼날에는 나뭇잎이 달라붙는 반면, 마사무네의 칼날에 잘린 나뭇잎은 미끄러져 지나갔다. 또는, 두 칼날 모두 나뭇잎을 잘랐지만, 마사무네의 칼날에 잘린 나뭇잎은 시내를 따라 내려가면서 다시 붙었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무라마사의 칼날에 나뭇잎이 잘리는 반면, 마사무네의 칼날은 나뭇잎을 튕겨냈고, 또 다른 버전에서는 무라마사의 칼날에 나뭇잎이 잘리고 마사무네의 칼날에 의해 치유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무라마사와 마사무네가 쇼군 또는 천황을 위해 검을 만들라는 소환을 받았고, 완성된 검이 폭포에 담가졌다. 결과는 다른 이야기와 같았고, 마사무네의 검은 성스러운 검으로 여겨졌다. 이 이야기의 한 버전에서는 무라마사가 사악한 검을 만든 죄로 죽임을 당한다.
두 사람이 만났다는 모든 알려진 전설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두 대장장이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널리 여겨진다.
6. 대표적인 작품
마사무네의 검은 강철로 검을 만들던 시대에 뛰어난 아름다움과 품질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錵|니에|마르텐사이트 결정이 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혀 있어 밤하늘의 별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일본어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7] 그의 작품은 ''치케이''(하몬 위의 강철의 입자 패턴을 따르는 어두운 선), ''킨스지''(번개 모양의 니), ''니''(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힌 마르텐사이트 결정)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마사무네는 신토고 쿠니미츠에게 사사했으며, ''스구하''(곧은 템퍼 선) 검을 만들었지만, 칼날의 선두 가장자리가 담금질된 부분에서 천천히 물결치는 ''노타레 하몬''을 만들었다. 또한, 올드 비젠과 호키 국 스타일을 모방한 ''코-미다레''(작은 불규칙성)를 가진 검도 있다.
마사무네가 제작한 검은 종종 검장(劍匠)의 이름과 개별 검의 이름으로 불린다. 도쿠가와 쇼군의 상징이자 쇼군에게 대대로 전해진 "혼조 마사무네"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마사무네의 서명이 있는 작품은 드물다.[7] 그의 검은 교호 시대에 혼아미 가문이 편집한 다이묘 소장품 중 뛰어난 검들을 모아놓은 목록인 ''교호 명물장''에 가장 자주 언급된다.[7]
마사무네가 만든 많은 ''타치''는 후에 자루(''나카고'')를 잘라 ''카타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은 ''카타나'', ''단토'', ''와키자시''이다.[2][3] 현존하는 마사무네 검 중 4개의 ''카타나''와 5개의 ''단토''가 국보로, 6개의 ''카타나'', 3개의 ''단토'', 1개의 ''와키자시''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2][3]
정종의 작품에 명(銘)이 있는 것은 드물며, 대부분 무명(無銘)이거나 후세의 금상감명이 들어간 것이다.[40] 현존하는 유명작(有銘作)은 단도(短刀)에 몇 자루, 장물(長物)(태도, 도)로는 기노시타 정종(중요미술품) 한 자루뿐이다.[40] 중요문화재 지정품에서는 단도 "부동 마사무네"가 유명(在銘)이며, 그 외에 "교고쿠 마사무네"(단도), "다이코쿠 마사무네"(단도),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단도 등이 유명하다.[40]
6. 1. 국보


마사무네의 작품 중 국보로 지정된 것은 칼 4자루와 단도 5자루이다. 다음은 그 목록의 일부이다(순서 무관). 작품명 뒤의 숫자는 칼날 길이이며, '금상감명'은 마사무네 본인이 새긴 명이 아닌 후세의 감정명이다.
종류 | 명칭(별명) | 칼날 길이(cm) | 소장처 | 비고 |
---|---|---|---|---|
칼 | 금상감명 조성이즈미노카미 소지 마사무네 마루야마 혼아 (화압) | 70.8 | 도쿄 국립박물관 | 다케다 가문 가신 조 이즈미노카미 마사시게 소유, 이후 쓰가루 가문 소장 |
칼 | 무명 오오스리 아게 (명물 타로사쿠 마사무네) | 64.3 | 마에다 이쿠토쿠카이 | 도쿠가와 가문 가신 미즈노 타로사쿠 마사시게 소유,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헌상, 도쿠가와 이에미쓰 시대에 마에다 가문에 전해짐 |
칼 | 무명 오오스리 아게 (명물 간제 마사무네) | 64.6 | 도쿄 국립박물관 | 간제 쿠로유키 소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거두어 도쿠가와 히데타다 시대에 센히메를 통해 혼다 가문에 전해짐, 이후 도쿠가와 쇼군 가문으로 돌아와 아리스가와노미야에게 헌상 |
칼 | 금상감명 마사무네 혼아 (화압) (명물 나카쓰카사 마사무네) | 67.0 | 문화청 | 도쿠가와 가문 가신 혼다 타다카쓰 소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헌상, 미토 도쿠가와 가문 → 고후번주 도쿠가와 쓰나요시를 거쳐 다시 도쿠가와 쇼군 가문 소유 |
단도 | 무명 (명물 호초 마사무네) | 24.1 | 도쿠가와 미술관 | 슨푸 어분물 (도쿠가와 이에야스 유품) 안에 있던 것으로,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에 전해짐 |
단도 | 무명 (명물 호초 마사무네) | 21.8 | 에이세이 문고 | 안코쿠지 에케이 소장,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오쿠다이라 노부마사 소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헌상, 마쓰다이라 타다아키에게 하사, 오쿠다이라 마쓰다이라 가문에 전해짐 |
단도 | 무명 (명물 호초 마사무네) | 21.7 | 오사카부[46] 법인 | 휴가 노베오카 나이토 가문 전래 |
단도 | 무명 (명물 휴가 마사무네) | 24.8 | 미쓰이 기념 미술관 | 미즈노 휴가노카미 카쓰나리 소유, 이시다 미쓰나리로부터 후쿠하라 나가타카에게 주어졌고, 세키가하라 전투 때 미즈노 카쓰나리가 빼앗음 |
단도 | 무명 (명물 구키 마사무네) | 24.8 | 하야시바라 미술관 | 구키 요시타카 아들 나가토노카미 모리타카 소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헌상, 기슈 도쿠가와 가문・도쿠가와 요리노부를 거쳐 이요 사이조 마쓰다이라 가문 소장 |
6. 2. 중요문화재
마사무네의 검은 강철로 검을 만들던 시대에 뛰어난 아름다움과 품질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錵|니에|마르텐사이트 결정이 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혀 있어 밤하늘의 별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일본어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7]마사무네가 제작한 검은 종종 검장(劍匠)의 이름과 개별 검의 이름으로 불린다. 도쿠가와 쇼군의 상징이자 쇼군에게 대대로 전해진 "혼조 마사무네"가 가장 잘 알려진 마사무네 검일 것이다. 마사무네의 서명이 있는 작품은 드물다.[7]
그의 검은 교호 시대에 혼아미 가문이 편집한 다이묘 소장품 중 뛰어난 검들을 모아놓은 목록인 ''교호 명물장''에 가장 자주 언급된다.[7]
마사무네가 만든 많은 ''타치''는 후에 자루(''나카고'')를 잘라 ''카타나''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은 ''카타나'', ''단토'', ''와키자시''이다.[2][3] 현존하는 마사무네 검 중 4개의 ''카타나''와 5개의 ''단토''가 국보로, 6개의 ''카타나'', 3개의 ''단토'', 1개의 ''와키자시''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2][3]
정종의 작품에 명(銘)이 있는 것은 드물며, 대부분 무명(無銘)이거나 후세의 금상감명이 들어간 것이다.[40] 현존하는 유명작(有銘作)은 단도(短刀)에 몇 자루, 장물(長物)(태도, 도)로는 기노시타 정종(중요미술품) 한 자루뿐이다.[40] 중요문화재 지정품에서는 단도 "부동 정종(不動正宗)"이 유명(在銘)이며, 그 외에 "교고쿠 정종(京極正宗)"(단도), "다이코쿠 정종(大黒正宗)"(단도),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단도 등이 유명하다.[40]
현존하는 작품 중 국보(칼 4자루, 단도 5자루), 어물 등 유명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순서 무관).
종류 | 이름 | 길이(cm) | 소장처 | 비고 |
---|---|---|---|---|
칼 | 이시다 마사무네 | 68.8 | 도쿄 국립 박물관 | 이시다 미쓰나리 소유, 우키타 히데이에를 거쳐 유키 히데야스로부터 쓰야마 마쓰다이라가 소장 |
칼 | 68.2 | 사노 미술관 | 도쿠가와 쇼군 가문에 전해지는 칼, 칼집 기록에서 "포창 마사무네" | |
칼 | 이케다 마사무네 | 66.9 | 도쿠가와 미술관 | 이케다 나가요시 소유, 다테 마사무네를 거쳐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 소장 |
칼 | 73.2 | 도쿠가와 미술관 | ||
단도 | 부동 마사무네 | 25.1 | 도쿠가와 미술관 | |
단도 | 후시미 마사무네 | 25.7 | 개인 | 가나모리 나가치카가 후시미에서 구하여 도쿠가와 가문에 헌상 |
다음은 "전 마사무네"로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 칼 72.1cm 개인 소장 (1982년 도난)[41]
- 와키자시 53.3cm 슈스이 미술관 소장
- 단도(명물 '''이치안 마사무네''') 24.5cm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 칼 도쿠가와 쇼군 가문 구소장(명물 '''혼조 마사무네''') : 혼조 시게나가가 도젠지 가쓰마사로부터 빼앗아 우에스기 가문으로부터 여러 소장처를 거쳐 도쿠가와 쇼군 가문 소장. 1945년 연합군에 접수되어 소재 불명.
6. 3. 중요미술품
마사무네가 제작한 많은 ''타치''(太刀)는 훗날 칼자루(''나카고'')를 잘라내어 ''카타나''(刀)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현존하는 마사무네의 작품은 대부분 ''카타나'', ''단토''(短刀), ''와키자시''(脇差)이다.[2][3] 이처럼 오래된 ''타치''의 자루를 잘라 ''카타나''로 만드는 것을 ''스리아게''라고 하며, 이는 일본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14]

무사시 마사무네는 한때 기슈 번을 거쳐 도쿠가와 막부가 소유했던 작품으로, 전성기에는 에도의 도쿠가와 본가에 기증되었다.[25]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된 이 칼은[26] 바쿠마츠 시기, 에도를 전쟁과 파괴로부터 구하기 위한 가쓰 가이슈와의 평화 협상을 이끈 야마오카 뎃슈의 노력을 기려 도쿠가와 이에사토가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선물했다. 야마오카는 이 걸작을 이와쿠라 도모미에게 양도했고,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2000년 일본 미술 도검 보존 협회에 소장되었다. 74cm 길이의 타치인 무사시 마사무네는 마사무네의 특징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으며, 가마쿠라 시대에서 남북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사시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지만, 미야모토 무사시가 소유했다는 설도 있다. ''메이부쓰''(名物)로 분류된다.
마사무네의 작품은 대부분 명(銘)이 없거나, 후대에 혼아미 가문 등에서 금상감으로 도공 이름을 새긴 것이다. 현존하는 유명작(有銘作)은 단도 몇 자루와 기노시타 마사무네(중요미술품)라는 태도 한 자루뿐이다. 제작 연도가 명기된 작품은 없지만, 『교호 명물장』에는 "에도장명 정종(江戸長銘正宗, 1314년)", "오사카장명 정종(大坂長銘正宗, 1328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단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요문화재 중에서는 단도 "부동 정종(不動正宗)"이 유명(在銘)이며, "교고쿠 정종(京極正宗)", "다이코쿠 정종(大黒正宗)",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단도 등이 유명하다. "다이코쿠 정종"은 "정종 작(正宗作)" 3자 명(字銘)이고, 나머지는 "정종(正宗)" 2자 명이다. "기노시타 정종"은 "정종(正宗)" 명(銘)이 있지만, 불에 타서 일부 손상되었다. 혼마 쥰지는 이 명(銘)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40]
현존하는 마사무네 작품 중 국보는 ''카타나'' 4자루와 ''단토'' 5자루, 중요문화재는 ''카타나'' 6자루, ''단토'' 3자루, ''와키자시'' 1자루가 있다.
- 칼 무명(명물 '''무사시 마사무네''') 74.0cm, 2022년 "일본도 다채로운 조형"전(도검 박물관) 출품. 도쿠가와 요시노부→야마오카 텟슈→이와쿠라 도모미 전래.
- 단도 무명(명물 '''코다마 마사무네''') 25.2cm, 개인 소장. 2002년 "특별전 마사무네" 출품.
- 단도(호 '''하치스카 마사무네''') 주명(朱銘) 마사무네, '날 저무는 단도'라는 별명.[47] 시마바라의 난 전공으로 토다 가문이 쇼군에게 하사받아 오가키 번주 토다 가문 전래. 도검 박물관 소장.[48][49]
6. 4. 기타
마사무네가 제작한 많은 타치(太刀)는 훗날 칼자루(茎, 나카고)를 잘라내어 카타나(刀)로 개조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카타나, 단토(短刀), 와키자시(脇差)이다.[2][3] 이처럼 오래된 타치의 자루를 잘라 카타나 형태로 만드는 것을 스리아게(磨上げ)라고 하며, 이는 일본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14]현재 마사무네의 검 중 4개의 카타나와 5개의 단토가 국보로, 6개의 카타나, 3개의 단토, 1개의 와키자시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2][3]
혼조 마사무네(本庄正宗)[7]는 에도 시대 대부분 도쿠가와 막부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쇼군(将軍)에게 대대로 전해졌다. 마사무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며, 일본 역사상 최고의 일본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39년 일본 국보(고쿠호)로 지정되었다.[15][16] 혼조라는 이름은 1561년 전투에서 이 칼을 얻은 혼조 시게나가 장군(1540–1614)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17]
"호초" 마사무네(包丁正宗)는 마사무네의 작품 중 특이하게 넓은 칼날을 가진 세 자루의 단도를 가리킨다.[28] 이 칼들은 마치 일본 식칼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 세 자루 모두 도쿠가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으며,[27]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2]
마사무네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이 칼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마사무네의 작품 중에는 명(銘)이 새겨진 것이 드물며, 대부분 무명(無銘)이거나 후대에 금상감명(金象嵌銘)을 넣은 것이다. 현존하는 유명작(有銘作)으로는 단도 몇 자루와 기노시타 정종(중요미술품)이라는 태도 한 자루 정도가 정진작(正真作)으로 여겨진다.
7. 평가 및 영향
마사무네의 검은 강철로 검을 만들던 시대에 뛰어난 아름다움과 품질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錵|니에|일본어 (마르텐사이트 결정이 펄라이트 매트릭스에 박혀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7]
마사무네는 신토고 쿠니미츠에게 배웠으며, '스구하'(곧은 템퍼 선) 검을 만들었지만, 칼날의 선두 가장자리가 담금질된 부분에서 천천히 물결치는 '노타레 하몬'을 만들기도 했다. 올드 비젠과 호키 국 스타일을 모방한 '코-미다레'(작은 불규칙성)를 가진 검도 있다. 그의 작품은 '치케이'(하몬 위의 강철 입자 패턴을 따르는 어두운 선), '킨스지'(번개 모양의 니), '니'로 특징지어진다.
마사무네가 제작한 검은 검장(劍匠)의 이름과 개별 검의 이름을 따서 불린다. 도쿠가와 쇼군의 상징이자 쇼군에게 대대로 전해진 "혼조 마사무네"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7] 마사무네의 서명이 있는 작품은 드물지만, "후도 마사무네", "쿄고쿠 마사무네", "다이코쿠 마사무네"는 진품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가마쿠라 시대 후기부터 남북조 시대까지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검은 쿄호 시대에 혼아미 가문이 편집한 '쿄호 메이부츠 쵸'에 가장 자주 언급된다.[7] 1714년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이 목록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니혼 산사쿠'로 알려진 첫 번째 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본 세 명의 가장 위대한 검장 목록으로, 마사무네의 검 41자루를 나열하고 있다. 세 권에는 마사무네의 검 61자루가 실려 있는데, 이는 다른 두 검장의 검을 합친 것보다 많다. 히데요시가 소슈 검장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이유로 추정된다. 목록에 있는 검의 3분의 1은 마사무네의 제자를 포함한 소슈 거장들이 만든 것이다.
무라마사와의 일화가 전해지는데, 무라마사가 마사무네에게 누가 더 훌륭한 검을 만드는지 시합을 제안했다고 한다. 두 자루의 검을 개울에 담갔을 때, 무라마사의 검은 모든 것을 베었지만, 마사무네의 검은 무고한 것을 베지 않았다는 이야기다.[8] 다른 이야기에서는 무라마사의 칼날에는 나뭇잎이 달라붙었지만, 마사무네의 칼날에서는 미끄러져 지나갔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났다는 전설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두 대장장이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널리 여겨진다.
마사무네는 "소슈덴"을 확립한 가마쿠라 시대 말기의 도공이다. 오카덴은 야마시로국, 야마토국, 비젠국, 미노국, 사가미국 5개 국가 도검의 특징적인 작풍을 칭하는 말이다.
마사무네의 생애는 강담, 연극 등에서 각색되어 전설화되었다. 야기부시의 『고로 마사무네 효자전』에는 헤어진 아버지 유키미츠와 재회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대부분 후세의 가탁으로 여겨진다.
메이지 시대에는 "마사무네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범용한 장인이었다"는 "마사무네 말살론"이 제창되기도 했다.[45] 1896년 이마무라 조카는 요미우리 신문 기고를 통해 마사무네의 진품은 없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 이후 명공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 이전 문헌에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시카가 요시미쓰 시대 명공 182명 중에도 마사무네는 없으며, 히데요시가 혼아미 가문에게 지시하여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쓰비시 재벌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는 "돈을 아끼지 말고 마사무네를 구하라"고 고미술상들에게 명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사무네 작품은 정해진 곳에 소장되어 시중에 나오지 않는다. 근세에는 가격이 무대(값이 매겨지지 않음)로 여겨졌고, 금전 거래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칼 금상감명 정종 본아(화압) 혼다 나카쓰카사 소지(명물 나카쓰카사 마사무네)』(국보, 도쿠가와 쇼군가 전래품)를 문화청이 매입했을 때 가격은 166250000JPY이었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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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蔵正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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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e samurai sword was a gift to Harry S. Tr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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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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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画像で黒白の模様のように見えるものは刃文ではなく、「刃取り」と呼ばれるも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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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マ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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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示作品紹介】No.8 重要美術品 短刀 朱銘 正宗(蜂須賀正宗)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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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宗(重要美術品)が日本美術刀剣保存協会へ寄贈され、評価査定を行わせていただき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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徳川実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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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웹사이트
所さん!大変ですよ「日本刀が消えた!?ブームの陰で何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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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報号外政府調達
200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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